17화. 거침없는 보복 (3)
인터넷에 warrior의 새 글이 올라왔다.
이번에는 강기석과 양기택이 경찰들에게 뇌물을 주는 사진들과 함께 그들이 경찰들을 마음대로 조종한다는 글이었다.
안 그래도 지금 디씨소프트에 대한 민심이 흉흉한데 강기석과 경찰의 유착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꼴이었다.
-강기석 이 자식 진짜 무슨 양파 마냥 까도 까도 계속 깔게 나오냐?
-확률 조작하면서 사기 친 놈에게 뭘 기대해. 그냥 쓰레기지.
-아······졸라 자괴감 온다. 저런 놈이 만들었던 게임에 내 인생을 투자했다니.
-야. 나도 마찬가지야. ㅅㅂ 인생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야.
-경찰도 썩었네. 저런 놈한테 돈 받아서 뒤나 봐주고 말이야.
-이거 관련자들 엄중하게 처벌해야 해.
-warrior 없었으면 우린 이런 것도 몰랐을 거 아니야?
-진짜 warrior가 대단하긴 해.
사람들은 warrior가 올린 글은 무조건 신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미 두 번의 폭로로 사람들에게 warriror의 공신력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warrior는 스타성도 있었다.
그가 나이스의 대표를 까는 글을 나이스의 메인 화면에 올린 것도 사람들을 엄청나게 열광하게 하는 포인트였다.
심지어 이 글은 지금까지도 내려오지 않는다.
대한민국 최고 포털 사이트인 나이스에서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가 없고 누가 그렇게 했는지도 전혀 밝혀내지 못했다는 게 확연히 드러났다.
사람들은 warrior의 힘에 놀라워했다.
음지에서 운영되는 해커 커뮤니티에서도 warrior는 핫이슈였다.
-대체 warrior가 누굴까? 아니 모든 포털 사이트의 메인 화면을 장악했다는 게 말이 돼?
-진짜 역대급이야. 듣자 하니 추적도 못 한대
-외국 서버를 이용한 거야? 아니면 우회를 엄청 많이 한 거야?
-그런 것은 맘먹고 추적하려면 추적이 가능해. 실마리를 남길 수밖에 없거든. 근데 warrior는 아예 단서를 안 남긴대.
-관계자 말로는 warrior 관련해서 추적해보면 null 값밖에 안 떠서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다던데.
-미친. 대체 어떻게 한 거야? 갑자기 이런 괴물이 어디서 나타난 건데?
-한국 사람일까?
-한글로 글 올린 거 보면 모르냐? 그리고 외국인이 굳이 디씨소프트랑 경찰 건드려서 뭐하게?
-하긴 그래. 어떤 놈이지 완전 궁금.
-ㅅㅂ 누군지 알면 바로 제자로 받아주라고 무릎 꿇을 거임.
컴퓨터 관계자들은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한 warrior의 등장에 모두 충격을 받았다.
모두가 그의 정체를 알고 싶어했다.
그런 엄청난 능력을 지니고 있으면서 굳이 디씨소프트와 경찰을 타겟으로 삼은 이유도 궁금해 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떠한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warrior가 올린 글은 경찰 내에서도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관련자들은 모두 옷을 벗었고 처벌받을 준비를 했다.
경찰청장은 공개 석상에 올라와 이 사태에 대해서 사과를 하기 시작했고 관련자들을 엄중히 처벌할 것을 약속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저 뻔뻔한 자식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그러게요. 정말 어이가 없네요. 강기석한테 뇌물을 제일 많이 받은 장본인이 관련자들을 엄중히 처벌하겠다고 나서다니.]
사람이 아닌 디오도 저 광경을 보며 얼이 빠질 정도였다.
“에휴. 진짜 저 녀석. 자기에 대한 폭로 글이 올라올 때 과연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저도 궁금합니다. 이건 예측이 안 되는군요.]
디오도 저런 놈은 이해가 안 되나 보다.
어찌 보면 정말 인간은 위대하다.
“일단 저 녀석은 나중에 터트리고 이번에는 양기택을 가지고 놀아보자고.”
[알겠습니다. 바로 연결해 드리지요.]
***
“으아아아!!!”
쾅! 쾅! 쾅!!!!
양기택은 주먹으로 책상을 깨부수었다.
“망할!!!!!!”
그는 책상 위에 있던 컴퓨터고 뭐고 다 엎어버렸다.
비서는 이런 와중에도 침착하게 있으려고 애썼다.
“대체 warrior가 어떤 놈이야?!!!!”
“전혀 모르겠습니다.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실마리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그게 말이 돼?!!!”
양기택은 애꿎은 비서를 쏘아붙였다.
“왜 다들 모르겠다고만 하는 거야?!!! 모르겠으면 빨리 알아내라고!!!!”
그는 분이 안 풀린 지 계속 윽박지르기만 했다.
“하아······씨발.”
그 사진과 자료는 양기택 본인까지 나오는 거라 그냥 단순히 경찰들이 말을 안 들을 때 협박용으로만 사용할 생각이었다.
애초에 그걸 공개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warrior란 놈이 어떻게 한 건지 그가 몰래 가지고 있던 자료를 빼내서 공개해버렸다.
그것도 나이스 메인 화면에 버젓이 말이다.
양기택은 안 그래도 최근에 신경 쓰이는 일이 하나 있어서 신경이 날카로웠다.
이라일 그놈이 지가연에게 접근해서 자신을 신고하도록 그녀를 부추겼기 때문이다.
그녀를 몰래 죽여서 자살로 위장할 생각이었지만 그마저도 이라일의 도움으로 막혔고 이후로도 그녀를 죽이는 데 번번이 실패했다.
오히려 지가연을 죽이러 갔던 놈들만 당하거나 잡혀왔다.
이라일이라는 놈도 뭔가 미스테리한 놈이었다.
별것도 아닌 놈 같은데 자꾸만 신경 쓰게 만들었다.
그때 순간적으로 양기택의 머릿속에는 warrior가 설마 이라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띠리리리~!!!
그와 동시에 전화가 울렸다.
“뭐?!!!!”
발신자의 이름을 본 양기택은 기절초풍했다.
warrior였다.
그는 망설임 없이 전화를 받았다.
“너 누구야?!!!!”
“나지. 누구겠어?”
양기택은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가 누군지 알아챘다.
그날 무전기에서 들리던 목소리와 똑같은 목소리였다.
“이라일······역시 warrior가 너였나?”
“뭐야. 눈치채고 있었어? 목소리가 기석이와는 달리 차분한 걸로 봐서 진짜인 것 같긴 한데······에이. 재미없네.”
“재미? 넌 이게 단순히 재미로만 보이는가 보지?”
양기택은 차분하게 말했지만 목소리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럼. 개그 코너 보는 것보다 더 재밌지. 자기들끼리 자화자찬하면서 들떴다가 한순간에 서로 욕하면서 갈라져 버리고.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지 모른 채 삽질만 하고 있고. 관람하는 입장에서는 이렇게 재밌을 수가 없어.”
이라일은 살인 충동이 일어날 정도로 이죽거리며 약을 올렸다.
양기택은 이라일의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게 최대한 차분하려고 노력했다.
“이라일. 너 사람 잘못 건드렸어. 이 양기택의 무서움을 모르나 본데. 난 한 번 문 사냥감은 놓치지 않아.”
양기택은 무게를 잡으며 말했다.
“기택아. 내 생각에는 너희들이 먼저 나를 건드린 것 같은데? 나도 그 말 똑같이 되돌려 줄게. 너 사람 잘못 건드렸어.”
“······”
양기택은 화를 꾸역꾸역 참았다.
하지만 그의 거친 숨소리는 핸드폰 너머로 그대로 전해졌다.
“크크크. 애쓴다. 기택아. 하나 더 서비스로 알려주자면. 지가연 씨를 보호하고 있는 것도 나야. 너가 자꾸 되지도 않는 짓 하니까 짠해서 알려주는 건데 넌 지가연 씨 털끝 하나 건들 수 없으니까 그만 포기해라.”
“포기? 이 양기택이 이런 치욕을 당했는데 포기할 것 같아? 언제까지 그 건방진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지 두고 보지.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흐흐. 그렇게 나와야 내가 마음 안 약해지지. 전의를 상실한 놈이랑은 싸워봤자 맛이 안 나거든. 기대할게. 제발 더 발악해 줘.”
탁!
양기택은 더 이상 이라일과 말도 섞고 싶지 않아서 핸드폰을 끈 다음 냅다 던졌다.
“당장······”
양기택은 오른 검지를 치켜든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당장! 강철파랑 류헤이카이 놈들한테 연락해서 지가연이랑 이라일 조져버려!!!”
그는 비서에서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명령했다.
“네. 알겠습니다!”
비서는 양기택의 심기를 더 이상 건들지 않기 위해 재빠르게 움직였다.
여기서 실수했다가는 비서의 목부터 떨어질 정도로 분위기가 매우 험악했다.
“이라일. 내 꼭 널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어.”
양기택은 이를 빠드득 갈며 설욕을 다졌다.
***
[양기택. 결국 깡패들이랑 야쿠자 놈들에게 의뢰했습니다.]
“좋아. 바라던 바야.”
나는 코웃음 치며 웃었다.
“뭘 그렇게 혼잣말하면서 웃어요?”
지가연은 그런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면서 말했다.
“양기택이 곧 무너질 것을 생각하니까 상상만 해도 즐겁네요.”
“하하.”
지가연은 내 말에 멋쩍게 웃었다.
“그 양기택을 상대로 이렇게 말하다니 라일 씨는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깟 쓰레기 놈이 뭐가 대단하다고 그래요? 한낱 양아치일 뿐입니다.”
“그 양아치가 여러 조직 폭력배들을 등에 업은 사람이에요. 저는 아직도 습격당할 때마다 무서워 죽겠다고요.”
“이제는 익숙해질 때가 되지 않았어요? 제가 항상 미리 알려줘서 잘 피했잖아요. 직접 만난 적도 없으면서 왜 그래요?”
“그러긴 하지만······그래도 무섭다고요.”
지가연은 시무룩 해하며 말했다.
그래.
무섭긴 하겠지.
“그래서 이번에는 이렇게 제 집으로 불렀잖아요. 대규모 습격이 예상되거든요.”
“대규모요?”
“네. 이전까지는 한두 명이었는데 이번에는 많이 몰려올 거라서요. 한 50명 정도 예상하고 있어요.”
“아니······그렇게나 많이요?”
“제가 지금 지가연 씨랑 저의 위치 정보를 놈들에게 풀어준 상태거든요. 그래서 지가연 씨 잡으러 오는 놈들이랑 저 잡으러 온 놈들 다 여기로 몰려올 거예요.”
지가연은 내 말을 듣고 기겁했다.
“아니. 라일 씨! 어쩌려고 그래요?”
“한 곳으로 불러들여서 처리하는 게 편하잖아요. 녀석들은 오늘 완전히 소탕당할 것입니다.”
내가 너무 태연하게 말하자 지가연은 황당한 듯 나를 바라봤다.
“진심이세요?”
“제가 이제껏 헛소리한 적 있었나요?”
“······”
“지금부터는 제가 놈들을 직접 상대합니다.”
“라일 씨는 정말 대단하네요······하긴 허풍이 아닌 게 이전부터 계속 말도 안 되는 일 다 하셨잖아요. 솔직히 믿음이 가긴 해요.”
지가연은 납득한 듯 말했다.
“무슨 당연한 말씀을. 그러니까 저 믿고 이번 일 끝나면 꼭 양기택의 실체에 대해 다 밝혀주세요. 이제 협조 안 해주던 경찰들도 싹 다 바뀌어서 문제없어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손님들 맞이할 준비 좀 하겠습니다.”
***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한지완 대장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계속된 밤샘 수사로 인해 피곤에 찌들어 있었다.
고생은 고생대로 했지만 수사는 전혀 진전이 안 됐다.
최근 류헤이카이라는 야쿠자 놈들이 한국에서 활동 중이라는 첩보를 받아 조사 중이지만 녀석들의 아지트가 어딨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망할. 내부에 첩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번번이 코앞에서 놓쳐?”
최근에 그는 놈들을 거의 몰아넣은 상태에서 놓쳐버려서 기분이 많이 상한 상태였다.
경찰청장을 비롯해 양기택에게 뇌물을 받은 경찰들이 정보를 흘린 까닭이었다.
그는 그것도 모른 채 계속 허탕만 쳤다.
한지완 대장은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인 다음 업무 공지를 위해 폴넷으로 들어갔다.
“세상에······”
그는 모니터를 보고 놀라서 그만 들고 있던 커피를 다 쏟고 말았다.
“워매. 대장님. 많이 피곤하신가 봐요.”
부하 경찰관이 와서 티슈를 꺼내 흘린 곳을 닦아줬다.
“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이거 봐봐!!!”
한지완은 동료를 끌고 와 자신의 모니터를 보게 만들었다.
“이게 뭐야?!!!”
동료 또한 모니터를 보고 경악했다.
폴넷에는 warrior란 아이디로 류헤이카이에 대한 정보들이 다 올라와 있었다.
114화. 업그레이드 (4)
“…….”
박이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설명이 더 필요할 거 같았다.
“박이나 씨가 저와 같은 능력을 가지게 되면 더 편하게 회사 운영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또 동시에 제가 추구하는 일에도 동참하실 수 있고요.”
“…….”
박이나는 여전히 내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싫으신가요?”
“아뇨……. 싫지는 않은데 좀 갑작스러워서요.”
박이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제일 걱정스러운 것은 제가 그 능력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능력을 갖게 되면 분명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거잖아요. 솔직히 그게 분명 좋다고만은 못하니까요.”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거라는 박이나의 말은 옳다.
그건 분명한 팩트이다.
하지만 뒷부분에는 동의 못 한다.
왜냐면 나는 능력을 얻고 나서가 얻기 전보다 훨씬 좋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일단 아무도 박이나 씨를 건들지 못하게 될 거니까요. 정석한 같은 놈들이 찝쩍대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하하하하. 그건 좋네요.”
다행히 내 말에 박이나는 해맑게 웃었다.
“또 만능이 될 겁니다. 뭐든지 쉽게 알 수 있으니까요.”
“그것도 좋네요.”
박이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제가 그 능력을 잘 쓸 수 있을까요?”
“전 박이나 씨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보다 더 정의감이 뛰어나시니, 분명 나쁜 짓은 안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봐주시다니 솔직히 좋긴 하네요.”
그녀는 내게 싱긋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박이나는 결심했다는 듯 당차게 말했다.
“저도 라일 씨처럼 그 능력이 갖고 싶어요.”
“잘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뭘 하면 될까요?”
“계속 하시던 대로 하시면 됩니다.”
“네?”
“개발은 일수랑 수진이가 할 거거든요. 이나 씨는 그냥 개발한 거 받기만 하면 돼요.”
“……그게 다예요?”
박이나는 허무해 하며 내게 물었다.
“네. 개발은 데이터 지식의 전문가인 사람들이 맡을 거예요.”
“아…….”
박이나도 같이 개발하면 좋겠지만 그랬다가는 한세월이다.
“저…… 근데 궁금한 게 있어요.”
“뭐죠?”
“라일 씨는 왜 저에게 그 능력을 주려고 하시는 거예요?”
“제가 데이터 쉴드 드릴 때 말 안 했었나요? 제게 소중한 사람에게 주는 거라고요. 같은 대답입니다.”
“…….”
내 말에 박이나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기분 탓인가?
그녀는 뭔가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 라일 씨는 그런 낯부끄러운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시는군요.”
“사실이니까요.”
“하하…….”
박이나는 멋쩍게 웃었다.
뭔가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지금 저는 누군가에게 계속 공격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말하고 나서 드는 생각이, 너무 갑자기 화제가 전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하지만 박이나는 그런 건 상관없는지 바로 거기에 반응해주었다.
“공격을 받고 있는 중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말 그대로입니다. 저랑 비슷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또 존재하더라고요. 그게 한 명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그런 적이 나타난 이상 저희 쪽에서도 힘을 늘릴 필요가 있어서요. 그래서 저는 이나 씨가 저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어차피 알게 될 거라 나는 솔직하게 밝히기로 했다.
“그게 라일 씨의 진짜 목적이었군요.”
박이나는 약간 씁쓸해하며 어둡게 말했다.
“아까 이나 씨가 그 능력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셨죠? 멋대로 사용하면 그야말로 재앙 그 자체인 능력이니까요. 그런데 그 엄청난 능력을 멋대로 써서 인류에게 위협이 될지도 모르는 적이 지금 나타났어요. 만약 우리가 그놈을 막지 못한다면 정말 재앙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조금 과장되게 말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만약 그놈이 나를 없애고 혼자 독주하게 되면 정말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이것은 정말 제 개인적인 이익을 떠나 대의를 위한 일입니다.”
“라일 씨.”
박이나의 어두운 표정이 풀리기 시작했다.
“전 이미 라일 씨를 돕기로 마음먹었고 그 능력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어요. 제가 라일 씨에게 도움이 된다면 오히려 영광이죠. 라일 씨를 공격하는 그 나쁜 사람을 같이 막도록 해요.”
박이나는 확고하게 제 뜻을 밝혔다.
그렇게 말해준 그녀가 너무 고마웠다.
“감사합니다. 이나 씨.”
“뭘요. 라일 씨가 저에게 해준 것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죠. 그리고 사실 그 능력을 가지면 저에게도 좋은 거잖아요.”
“물론 그렇지만, 힘든 싸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감당해야죠. 인류에게 재앙이 떨어질 수도 있는 마당인데 어떻게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하하하. 역시 박이나 씨입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또 그것을 훌륭하게 해내는 그녀다.
분명 이번 일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다.
“그럼 이나 씨. 저와 또 새로운 일에 합류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서로 기분 좋게 악수를 나눴다.
이렇게 나는 박이나까지 포섭했다.
***
나는 집으로 와서 연구를 시작했다.
일수와 수진이가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나도 놀고 있을 수만은 없다.
“디오야.”
[네.]
“업그레이드를 시작하자.”
[예. 알겠습니다.]
일수와 수진이가 하고 있는 작업은 데이터 응축 작업이다.
세계 데이터를 다루는 데 가장 초보적인 단계라 할 수 있다.
난 이미 여기에 도가 텄고, 사실 디오처럼 응축 데이터에 자아가 생긴 시점에서는 데이터를 더 응축해봤자 그렇게 업그레이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다음 단계인 데이터를 읽고 변환하는 단계이다.
나는 이 단계 또한 이미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한 상황이다.
문서 기록을 바로 데이터화 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 사기긴 하니까.
하지만 여기서 그칠 수는 없다.
이미 나와 디오는 아마존에서 데이터를 읽는 것의 한계를 경험했다.
데이터를 읽는 능력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변환도 마찬가지이다.
이전보다 변환 능력이 더 강화되긴 했지만, 데이터 감옥 300개가 아직까진 한계이다.
다중 변환 역시 강화해야겠지.
“디오. 데이터 읽기와 변환을 집중적으로 강화해야겠어.”
[알겠습니다.]
세계 데이터의 흐름이 전부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컴퓨터 데이터처럼 흐름이 활발한 것도 있지만, 아마존에 대한 데이터처럼 거의 흐르지 않는 데이터도 있다.
마치 컴퓨터 데이터가 바다와 같다면 아마존의 정보는 고여있는 작은 웅덩이에 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승부는 그런 미세한 흐름까지 읽을 수 있냐 없냐의 문제다.
상대가 아무리 데이터 흐름을 감추고 변환한다고 할지라도 기록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그 미세한 흐름을 읽을 수 있으면 나를 공격했던 놈이 누군지를 파악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데이터의 흐름을 파악하려고 했다.
내 기억의 자아가 갔었던 차원에서만큼은 아니더라도, 분명 이 세계에서도 세계 데이터는 흐른다.
그동안 나는 그 흐름에 너무 둔감했다.
하지만 집중해보니 많은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일단,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 흐름이 내게로 들어오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이건 나에 대한 해킹이 엄청나게 시도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대략 수천 개의 통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았지만, 이렇게 애매하게 파악해서는 발전이 없다.
완전히 세세하게 파악해야 한다.
나는 일일이 데이터 통로의 개수를 세어봤다.
“5,673개.”
중간에 개수를 놓칠 뻔한 게 몇 번 있었으나 온 힘을 다해 집중하면서 끝까지 세었다.
[제가 센 숫자도 5,673입니다.]
“하하하하.”
솔직히 집중해서 세는 게 겁나 지루하고 힘들었는데, 디오와 똑같이 계산했다는 것에 큰 만족감을 얻었다.
만약 달랐다면 진짜 멘탈이 많이 흔들렸을 거다.
어떤 데이터는 흐름이 매우 미약해서 파악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전 같으면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내버려 뒀을 텐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데이터 흐름이 미약할수록 그건 엄청나게 강한 놈이 자신의 기척을 숨기고 내게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거의 안 느껴졌던 그 데이터의 흐름은 그놈의 데이터인 것으로 보였다.
사실 꼬리를 잡아 추격해보려고 했으나 녀석도 금방 눈치채서 꽁무니를 뺐다.
건방진 녀석.
네놈은 내가 무조건 잡고 말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데이터의 흐름을 읽는 연습을 했다.
일수와 수진이도 야근까지 하면서 연구하고 있을 텐데 내가 대충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리고 녀석이 나에게 계속 접근하고 있는 이상 하루라도 더 빨리 강해져야 한다.
나는 데이터 변환 연습도 동시에 진행했다.
하루의 반이 데이터를 읽는 연습이라면 나머지 반은 변환 연습이었다.
나는 기존에 있는 사물들의 데이터를 변환시켜보려 했다.
앞의 있는 탁자를 만지며 나는 그것을 비물질 데이터로 전환해보려 했다.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의기소침해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시도해봤다.
“하아…….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된 시도에도 진전이 없어서 한숨이 나왔다.
어떻게 해야 변환을…….
근데 잠깐!
“아!”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쳤던 것처럼 내 머리 안에서 번뜻 아이디어가 솟구쳤다.
그건 바로 먼저 탁자의 데이터 구조를 읽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마침 데이터 읽기가 익숙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곧바로 탁자의 데이터 구조를 파악하려 했다.
직접 접촉했기 때문에 탁자의 데이터 구조는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데이터를 읽으니 바로 답이 나왔다.
나는 탁자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데이터 구조를 무너뜨렸고, 그것을 다시 비물질 데이터로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탁자는 다리에서부터 점점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털썩-!
탁자 위에 있던 노트가 떨어졌다.
“됐네.”
탁자는 완전히 비물질화 되어 있었다.
“좋아. 그렇다면 이제 다시 복원이다.”
복원은 탁자를 원래 데이터 구조대로 맞추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설계도를 따라 레고를 조립하듯이 데이터를 맞추어 나갔다.
탁자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좋아.”
데이터만 읽을 수 있으면 원리는 간단했다.
그냥 원래 있었던 데이터 구조를 무너뜨리고 다시 재구성하면 되는 것이다.
복원은 그 반대로 하면 되는 것이고.
탁자의 데이터를 변환하고 나서 나는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직접 접촉이 아닌 원격으로 변환을 시도해봤다.
데이터 흐름을 읽고 무너뜨린다.
나는 이 원리를 기억하며 멀리 있는 의자를 비물질로 변환시켰다.
데이터를 읽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것만 끝나니 금방 변환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데이터 읽기 연습과 변환 연습을 계속했고, 며칠이 지났다.
계속된 반복 훈련으로 인해 나는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하아…….”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 파악하지 못한 데이터들이 수두룩했다.
잠시 쉬기 위해서 나는 냉장고에 가 콜라를 벌컥 들이켰다.
“잠깐!”
그 순간 또 내 머리에서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