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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첫 번째 타겟 (2) (5/201)

4화. 첫 번째 타겟 (2)

뭔데 내 단잠을 깨워?

짜증 내면서 시간을 확인했는데······

벌써 다음 날 아침이다.

미친······

많이도 잤네.

나는 한바탕 늘어지게 기지개를 켠 다음 전화를 받았다.

“네. 이나 씨.”

“라일 씨. 저 변호사 만났고 고소할 준비도 됐어요.”

이 여자······

실행력이 어마어마하다.

벌써 변호사까지 만났다니.

“잘하셨어요.”

“파일 복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아! 증거 자료 더 있어요.”

“네?!!”

“회사 CCTV 영상 다 복구시켰고 절대 지우지 못하도록 설정해 놨어요. 그러니까 안심하시고 그냥 정석한 그 자식의 만행을 다 드러내면 됩니다.”

“······그게 가능해요?”

“전 가능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내 안에 있는 디오가 가능하지.

뭐 상관없으니까······

“저······”

박이나는 뭔가 더 말하려는 눈치였다.

“사실 저 말고도 그 자식한테 당한 사람들이 더 있는데요. 그래서 제가 사람들을 모아봤어요. 그들도 저와 비슷하게 당했더라고요. 혹시 그 사람들도 도와줄 수 있나요?”

호오라.

이거 알아서 판을 만들어주시는데?

“네. 기꺼이 도와드리죠.”

박이나의 주선으로 나는 곧바로 피해자들과 만날 수 있었다.

박이나.

일을 척척 진행시키는 게 보통이 아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금방 모이다니······

피해자들은 내게 자신들의 사연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정석한 뿐만 아니라 강기석을 포함해 디씨소프트의 여러 임원들이 그런 만행을 저지르고 다녔다는 것이다.

하긴 수장이 썩었는데 아래라고 맑겠는가.

가해자들은 CCTV가 빤히 찍고 있는 데서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회사의 CCTV DVR이 자기들 멋대로 조작되고 있으니까 신고해도 소용없다면서 피해자들을 조롱했다.

그게 블러핑이 아니었던 게 사실 이전에 한번 누가 성범죄로 신고를 해서 회사 CCTV를 압수수색을 했었는데 경찰 쪽에서는 아무 증거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재판 또한 가해자의 무죄로 끝났다.

그 사건 이후로 가해자들은 더 날뛰기 시작했고 피해자들은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디씨소프트.

이거 완전 썩은 회사였다.

“이것들이 장난하나!”

탁!

나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분노하며 책상을 내려찍었다.

“여러분 싹 다 신고하십시오. 제가 승소하게 해주겠습니다.”

“어떻게요? 아무런 증거도 없는데요.”

피해자들은 망연자실한 태도였다.

“CCTV DVR에 그놈들의 만행이 다 그대로 남아있을 겁니다. 제가 다 복구시켰고 지우지도 못하게 만들었으니까요. 그리고 지워진 음성 파일들도 제가 복구시켜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피해자들은 놀란 얼굴로 쳐다봤다.

“제가 지금 이 회사를 끝장낼 생각이거든요. 그래서 미리 작업을 다 해놨죠. 제가 또 프로그래밍을 잘하거든요.”

디오에 대해서 설명하기가 좀 그래서 대충 둘러서 말했다.

“여러분은 걱정하지 마시고 맘 편히 신고하면 됩니다.”

“그래요 여러분. 라일 씨를 믿고 싸우자고요. 라일 씨가 정석한 그놈이 지워버린 제 음성 파일도 다 복구시켜 줬어요.”

박이나가 나서서 내 말에 힘을 실어줬다.

“좋아요.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어요. 그놈한테 당한 것만 생각하면 아주 치가 떨린다고요.”

“맞아요! 우리가 왜 이렇게 주눅 들어야 해요? 잘못은 그놈들이 했는데.”

박이나의 도움으로 의지가 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좋습니다. 여러분. 그 자식들을 한번 작살 내 보자고요.”

***

정석한 전무는 초조해하며 강기석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석한이 무슨 일이야?”

“저기 그게······”

정석한은 불안해하며 말하기를 주저했다.

“그 이전에 저희 USB 가져갔던 직원 말입니다.”

“어! 그래. 그놈 잘 처리했어?”

“사실······그놈이 지금 버젓이 살아있습니다.”

“뭐?!!”

강기석 사장은 화들짝 놀라며 외쳤다.

“아니. 자네 그동안 일 처리 잘해왔으면서 왜 그러는 거야? 항상 깔끔하게 처리했잖아?”

“믿기실지 모르겠지만 애들 말로는 몸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마치 유령처럼 자기들을 지나갔다고······”

“뭔 개소리야?!!!!”

강기석은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성을 냈다.

“저도 믿기지는 않지만 애들이 그랬다고 합니다. 게다가······”

“또 뭐?”

“그놈이 USB 파일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카피해서 보관한 듯합니다.”

“아 놔 진짜!! 한 부장 그 새끼를 믿은 내가 잘못이지. 실수할 게 따로 있지 어떻게 그걸 잘못 넘겨가지고······진짜 도움이 안 되는 놈이야.”

강기석은 답답한지 한숨을 내쉬었다.

“사장님······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처리해야지! 당장 애들 풀어서 정리해.”

“알겠습니다!”

“몸에 손을 댈 수 있는지 없는지는 알아서 하라고 하고. 대체 뭔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이번에는 똑바로 처리해! 끊어!”

통화를 마친 정석한은 골치가 아픈지 인상을 쓰며 이마를 짚었다.

“하아······”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믿기지 않는다고요······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그는 힘없이 의자에 푹 늘어졌다.

한동안 그러고 있었던 그는 다시 폰을 들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난데. 애들 풀어서. 그놈 당장 처리해!”

***

디씨소프트.

1998년에 창설해 대한민국 PC방 열풍을 불러일으키는 데 한몫한 게임 ‘레인 오버’를 만든 회사다.

‘대한민국 아재들이 청춘을 바친 게임’

어느 평론가는 ‘레인 오버’를 이렇게 평했다.

그만큼 이 게임에 아재들의 인생이 담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레인 오버’의 성공으로 디씨소프트는 IMF 외환위기 여파에도 불구하고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에 연이어 내 논 게임들도 줄줄이 히트하면서 디씨소프트는 코스피에 상장된 가장 큰 게임 회사가 되었고 게임회사치고 주식시장에서 자주 언급되는 회사로까지 성장했다.

많은 게임 개발자들이 디씨소프트의 성공신화를 보며 꿈을 키워나갔다.

나와 일수도 그런 사람들에 속했다.

하지만 이 회사의 이면에는 추잡하기 그지없는 것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나는 이제야 그 사실을 알아버린 거고······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디씨소프트는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둘 수는 없다.

일단 나를 건드렸다는 것 자체가 매우 화난다.

[회사를 망하게 할 생각입니까?]

내 속을 눈치챘는지 디오가 물었다.

“어. 아주 처참하게 말이야.”

[아시겠지만 성범죄 스캔들 정도로 디씨소프트는 망하지 않습니다. 그 정도는 금방 묻힐 거니까요.]

얘 완전 현실적이다.

이 정도면 사실 인간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겠지. 하지만 일단 관련자들이 몰매 맞을 것은 확실해. 그리고 회사를 망하게 할 유무를 떠나서 이건 바로잡아야 하는 일이야.”

하지만 디오 말대로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디씨소프트는 워낙 충성심 높은 팬들이 많아서 스캔들이 나도 사과글 몇 개 올리고 반성하는 척만 하면 금방 민심이 회복될 거다.

다른 카드들이 필요하다.

“성범죄 말고도 다른 비리들이 분명 많을 거야. 알아봐 줄 수 있어?”

[이미 분석해 논 상태입니다.]

진짜 디오 너란 녀석은.

“브리핑 부탁.”

[곧 디씨소프트에서 게임 두 개를 동시 발매할 예정인 것은 아시죠?]

“내가 그걸 모르겠니?”

조만간 디씨소프트는 ‘레인 오버 리마스터’와 ‘레인 오버 2’를 내놓을 예정이다.

개발소식이 처음 알려졌을 때 각종 게임 커뮤니티는 난리가 났다.

-내 첫사랑이 돌아왔다.

-다시 인생을 바칠 순간이군.

-기다려라. 마누라 눈치고 뭐고 나는 이제 이 게임에 올인이다.

등과 같은 반응들이 쏟아져 나왔다.

현재 많은 아재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발매일만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상황.

미리 베타 서비스를 체험한 사람들과 평론가들의 호평이 자자해서 사람들의 기대감은 날로 커져갔다.

덕분에 디씨소프트의 주가도 눈에 띄게 오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근데 그게 왜?”

[두 게임 다 가챠 확률을 조작해놓은 상태입니다.]

“하하하.”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온다.

이거 완전 쓰레기들이네.

레인 오버 개발팀 그렇게 안 봤는데 완전 양아치 놈들이잖아?

아주 추억팔이해서 한몫 제대로 챙길 생각이었군.

아재들은 가챠에 미련 없이 돈을 투자할 테니까 말이야.

[필요하다면 소스코드와 주석까지 드리죠.]

“그래. 그건 뭐 나중에 확인할게. 다른 것은?”

[현 경찰청장과의 유착입니다. 경찰청장은 강기석 사장으로부터 내부 정보와 주식 매입자금을 받아 수백 원 억의 시세 차익을 챙겼습니다. 이 때문에 강기석 사장은 경찰들 눈치 안 보고 맘대로 행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젠 별로 놀랍지도 않다. 아주 비리 덩어리 회사구먼.”

진짜 가지가지 한다.

지금껏 이런 회사에 들어가려고 그 개고생을 했다니······

“뭐 이것도 딱 보나 마나 그냥 공개하면 그 위법수집증거배제의 원칙인가 뭔가 때문에 증거로도 못 쓰고 나만 잡혀가겠지?”

[네. 형사소송법 제308조의 2입니다.]

“그건 안 물어봤고.”

[무안하게 하시네요.]

“너도 그런 걸 느끼냐? 어이가 없네.”

개발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 녀석을 꽤 수다쟁이로 만든 것 같기도 하다.

“뭐 나도 지금 당장 디씨소프트를 한 번에 무너뜨릴 생각은 없어. 차근차근 무너뜨려야지. 왜냐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거든.”

[뭡니까?]

“아까 말한 대로 디씨소프트는 주가가 계속 오르고 있는 중이야. 지금 곧 발매할 신작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엄청나지. 마켓팅도 엄청 해서 그런가 나오기만 하면 바로 하겠다고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어.”

[맞습니다. 인터넷 댓글 지표를 모두 분석해본 결과 ‘레인 오버 리마스터’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은 91.3% ‘레인 오버 2’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은 85%입니다.]

“그래. TMI 고맙다. 아무튼 아무도 지금 디씨소프트의 주가가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다들 매수하느라 바쁘지.”

[그것 또한 맞습니다. 디씨소프트의 매수율은 매일 오르고 있는 반면 매도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으니까요.]

아주 하나하나 다 분석해 주는구나······

뭐 내 말이 들어맞고 있다는 게 확인돼서 좋기는 하다.

“하지만 이때 나는 디씨소프트의 주가가 떨어지는 쪽으로 투자를 하는 거지. 예를 들면 디씨소프트 관련 풋옵션을 매수한다던가 아니면 디씨소프트 주가가 떨어졌을 때 이익을 낼 수 있는 파생상품들은 죄다 사들이는 거야.”

[그런 다음 비리를 폭로하면서 점점 주가를 떨어뜨릴 작정이시군요.]

“그래. 바로 그거야. 역시 똑똑하군.”

[이정도야 제겐 껌입니다.]

“개발자가 겸손의 미덕은 탑재를 안 시켰나 보네.”

[······]

이 녀석이 좀 재수 없어지려고도 한다.

하지만 왠지 삐칠 것 같으니까 말은 안 해야지.

“어쨌든 내 계획은 이래. 비리를 폭로해 강기석과 정석한을 감방 가게 만들고 디씨소프트의 주가를 떨어뜨려서 그놈들한테 막대한 손해를 입힐 거야. 그 와중에 복수하면서 나는 돈도 벌고. 그리고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디씨소프트 주식을 다 사들여서 결국에는 회사를 내가 먹는 거지.”

[가능합니다. 제가 도와드릴 테니까요.]

“하하하하. 너 진짜 재밌다. 하긴 너가 없으면 이 계획은 무용지물이지.”

그래.

재수 없는 녀석이면 뭐 어때?

이 녀석만 있으면 난 최강인데.

“근데 일단 그러려면 돈이 좀 필요한데······내가 지금 모아둔 돈이 별로 없거든.”

젠장.

돈이 별로 없다는 것을 말하려니 뭔가 콧잔등이 시린다.

“너 혹시 미래도 예측 가능하냐?”

[아직 업데이트가 안 돼서 불안정하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는 가능합니다.]

“그래? 그러면 로또 번호도 예측할 수 있어?”

[그 정도는 가능합니다.]

“진짜? 8,145,060분의 1의 확률을 맞출 수 있다고?”

[식은 죽 먹기죠.]

“너 막 무슨 양자컴퓨터 같은 존재냐?”

[그런 비천한 것이랑 저를 비교하지 마십시오.]

아직 상용화되지도 않은 양자컴퓨터가 비천하다고?

허허.

기가 찰 노릇이군.

가만 이 녀석 설마······

“너 혹시 도박 같은 것도 잘해?”

[그건 로또 예측보다 더 쉽습니다. 모든 게임에서 돈을 따게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잭팟 기계를 해킹해 100% 확률로 무조건 터지게 할 수도 있고요.]

“미쳤다. 야! 당장 로또 산 다음에 강원랜드 가!”

이 녀석만 있으면 떼돈 버는 건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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