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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디오(The Omniscience) (1) (2/201)

1화. 디오(The Omniscience) (1)

“후······빡세다.”

한숨을 깊게 내쉰 다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러게. 그래도 통과돼서 다행이야.”

직장 동료이자 친구인 일수도 커피를 한 모금 했다.

“진짜 이제까지 기획 회의만 몇 번 했냐? 농담 아니라 한 열 번은 했겠다. 일을 진행할 수가 있어야지 원.”

“부장이 워낙 깐깐하잖아. 그래도 이번에는 반응이 좋았어.”

“이번에도 엎었으면 난 사표 쓰고 때려 쳤을 거야. 그놈의 ‘그래 가지고 돈이 되겠어?’ 이제 신물이 난다. 몇 시간 회의한 게 그 한 마디로 도로 아미타불이 되잖아.”

“하하하하. 진짜 재수 없긴 하다.”

일수는 내 되지도 않는 부장님 성대모사에 웃어줬다.

“넌 이 와중에 참 해맑다.”

“당연한 거 아니야? 일단 통과됐잖아. 난 그것만으로 행복하다고. 이제 드디어 우리의 꿈이 실현되는 거야.”

일수 말대로 이번 게임 기획은 처음으로 우리의 아이디어가 온전히 담겨있는 우리의 오래된 꿈이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

이건 딱 나에게 해당 되는 말이다.

난 녀석을 따라 지금 이 자리까지 왔으니까

일찍 부모님을 여읜 나에게 일수는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줬다.

녀석은 충격으로 한 달째 집 안에 틀어박혀 폐인처럼 지내는 나를 억지로 끌고 나가 밥을 사 먹이고 그제 서야 울먹이는 나를 말 없이 안아 줬다.

그때 일수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난 게임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일수는 게임광이었다.

녀석과 같이 놀기 위해 나는 게임을 시작했고 정말 질릴 정도로 같이 게임을 했다.

우리가 고2였을 때 하루는 녀석이 이렇게 말했다.

“난 꼭 기막힌 게임을 만들고야 말겠어. 세계적인 대회도 하는 그런 게임 말이야.”

그때 나는 그만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나도 거기에 끼워 줘. 같이 만들자.”

고맙다 과거의 나야.

덕분에 이렇게 생고생하고 있으니까.

그 뒤 우리는 같은 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갔고 같은 회사에 취직했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 꿈꿔왔던 그 꿈이 15년이 지나 이제 이렇게 실현되기 일보 직전이다.

“그래. 오래도 걸렸다. 네 말대로 꿈이 실현되기 시작한 것에 만족해야지.”

“하하하. 짜식. 드디어 긍정적으로 나오는구먼. 그리고 이렇게 오후 4시에 커피 마시러 나오게 해주는 직장이 어딨냐? 이것도 행복한 거지.”

“개뿔! 어차피 야근이 기다리고 있는데 이것도 못 하게 하면 양심이 없는 거지.”

“왜 이리 사람이 비관적이야? 꿈을 실현하려면 이 정도 고생은 감수해야지.”

“회의를 하도 많이 해서 회의주의자가 돼서 그런다.”

“와······얘 진짜 아재 다 됐네. 더럽게 재미없다.”

일수는 질색하며 인상을 썼다.

“재밌으라고 한 거 아니거든! 됐고. 빨리 들어가자. 벌써 30분이나 지났다.”

온갖 불만을 말했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직장인이다.

짜증나니까 ‘될 대로 돼라’ 하면서 그냥 1시간 정도 더 놀다가 들어갈 수도 있지만 그랬다간 부장의 폭풍 잔소리가 기다릴 것이다.

“오케이. 다시 힘차게 일해보자고!”

우리는 허겁지겁 커피를 챙기며 다시 회사로 들어갔다.

***

썩을······

산적한 업무는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인다.

벌써 밤 9시인데 내일까지 제출해야 할 보고서가 아직도 한참 남았다.

기획안이 통과됐으니 이제 열심히 달려야 한다.

뭐 나만 그런 것은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다.

서버팀 사람들은 입이 삐죽 나온 채로 일하고 있다.

우리 기획팀이 야근하면 서버팀도 무조건 야근이니까.

하하······미안합니다.

“으아~!”

기지개를 피며 일수 쪽을 쳐다봤다.

녀석은 일에 한참 열중해 있다.

진짜 대단한 놈이다.

배울 점이 많기도 하고.

띠리리리~!

일수를 보며 혼자 감탄하던 중 전화가 울렸다.

[부장님]

아까 사장님과 전무님이랑 일이 있다고 먼저 퇴근한 부장이었다.

근데 일은 무슨!

그냥 사장님과 전무님 술 마시는 데 따라가서 간사스럽게 아양 떨며 점수나 딸 생각이겠지.

안 봐도 비디오다.

술 시중이나 들 것이지 무슨 일이야?

“네. 부장님.”

“라일 씨!!!!”

부장님의 목소리는 꽤 다급해 보였다.

“네. 어쩐 일이세요?”

“아직 회사지?”

그럼.

퍼 놀고 있는 누구와는 다르게 할 일이 태산이거든.

“네. 아직 일이 많이 남아서요. 오늘 집에 가기는 그른 것 같네요.”

양심에 찔리라고 일부러 티를 냈다.

뭐 그래 봤자 신경도 안 쓸 것 같지만······

“혹시 내가 아까 낮에 준 USB 가지고 있어?”

“네.”

코딩 확인해보라고 준 USB였다.

근데 보고서 작성하느라 아직 확인을 못 했는데······

“혹시 그 USB 열어봤어?”

또 귀신같이 물어본다.

안 봤다고 하면 한소리 할 것 같은데······

그렇다고 거짓말로 봤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혹시나 내용 물어보면 대답도 못 한다.

뭐 이실직고 사실대로 말해야지.

“아직 못했습니다. 보고서 작성이 밀려서요······”

“그래?”

잔소리들을 준비했는데 오히려 부장은 반색하는 눈치다.

“그거 절대로 열어보지 말고 지금 바로 이리로 가지고 와줄래? 아주 중요한 USB인데 내가 헷갈려서 다른 것을 줘버렸지 뭐야.”

“네. 어디로 갈까요?”

“내가 주소 보내줄게. 어서 당장 오게.”

“알겠습니다.”

나이스.

이거 핑계로 퇴근해야겠다.

왜 보고서 늦었냐고 하면 갑자기 불러서 그랬다고 둘러대면 되지.

USB 바뀐 게 내 잘못도 아니고 부장 지 잘못인데.

나는 짐을 싸서 퇴근할 준비를 했다.

“뭐야 어디 가? 다 끝났어?”

어느새 일수가 내 쪽으로 왔다.

“아니.”

“이것 보소. 근데 어딜 가는 거야? 간댕이가 부었네.”

“부장이 급하게 불러서 말이야.”

“부장이?”

일수 역시 부장이 지금 뭐 하고 있는지 뻔히 알고 있기 때문에 묻는 거다.

“어. 아까 나에게 USB 하나 줬는데 잘못 줬나 봐. 지금 급하다고 당장 가지고 오라는데?”

“어디로?”

핸드폰을 확인하니 주소가 보내져 있었다.

역시나 유흥업소다.

“문리버.”

“거긴 또 어디야? 술 마시는데 뭔 USB?”

“나도 모르지. 일단 오라니까 간다. 그럼 수고!”

나는 작별인사를 하고 회사를 나섰다.

***

[문리버]

강남에 위치한 고급 술집이었다.

딱 봐도 겁나 비싸 보인다.

덩치가 우람한 경비들이 입구를 철옹성 같이 지키고 있다.

아무나 못 들어가는가 보다.

술집에는 화려하게 꾸민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예쁜 사람들도 많고······

그나저나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다.

옷을 입은 건지 만 건지······

나는 뭔가 민망해서 황급히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라일 씨. 다 왔어?”

“네. 지금 ‘문리버’ 입구인데요. 여기서 기다리면 될까요?”

“아니. 사장님께서 잠깐 자네를 보자고 하시니까 이쪽으로 빨리 오게.”

“네?!!!”

이건 또 뭔 소리야?

“사장님이랑 전무님뿐만 아니라 다른 높으신 분들도 같이 계시니까 와서 인사 똑바로 해야 돼. 아! 그리고 오늘 본 것은 절대 비밀이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어서 와!”

방이 어딘지는 알려주고 끊어라······

뭐 물어보면 알겠지.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긴 했다.

내가 이런 곳에 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니까.

안으로 들어가려니 역시나 경비들이 막는다.

“뭡니까?”

“아 저 디씨소프트 다니는 사람인데요. 저희 사장님이랑 전무님이 갑자기 저를 부르셔서요.”

나는 경비에게 사원증을 보여줬다.

“······”

경비는 사원증을 확인한 후 나를 스캔하듯 위아래로 훑어봤다.

······

기분 나쁘게 뭔데?

경비는 직원에게 나를 인계했다.

“따라오시죠.”

직원은 나를 어떤 방으로 안내했다.

방으로 들어가니 정말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 연출됐다.

온갖 화려한 장식으로 뒤범벅되어있는 방에 테이블에는 갖은 좋은 음식이 꽉 차 있다.

높으신 분들은 예쁜 여자들을 끼며 희희낙락거리며 웃고 있었다.

부장 말 대로 방안에는 사장님과 전무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여러 사람들이 있었고 외국인들도 몇 명 있었다.

뭔가 다들 포스가 장난 아니다.

내가 들어오자 갑자기 방에 싸늘한 적막이 흐르며 나에게로 이목이 집중됐다.

부담스럽게 왜 이래?

“디씨소프트 기획팀 소속 이라일입니다.”

나는 얼른 인사를 했다.

그러자 한쪽 구석에 앉아 있던 부장이 헐레벌떡 나한테 뛰어왔다.

근데 부장은 어디서 좀 맞았는지 얼굴에 멍이 들어있다.

“라일 씨. USB는?”

나는 곧바로 USB를 건넸다.

“여기 있습니다.”

부장은 신줏단지 모시듯 그 USB를 받았다.

“그럼 저는 이만.”

왠지 거기에 계속 있기 싫어서 얼른 나가고 싶었다.

그렇게 인사하고 나가려는데······

“잠깐!”

사장님이 나를 불렀다.

“자네. 이거 정말 안 열어봤나?”

사장님은 어느새 부장에게 받은 USB를 가리키며 물었다.

“네. 정말 안 봤습니다.”

“그래?”

사장님은 피식 웃었다.

“만약 봤다고 해도 어디 가서 그걸 말할 생각은 마. 후회할 테니까.”

“하하. 무슨 말씀인지······”

알아듣기 힘든 말을 해서 멋쩍게 웃었다.

“됐어. 가봐. 분위기 깨지 말고.”

사장님은 손짓하며 마치 꺼지라는 듯이 말했다.

갈 거다.

이 썩을 놈아.

“안녕히 계십시오.”

욕은 속으로 하고 앞에서는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어쩔 수 없는 갑과 을의 구조다.

룸에서 나온 나는 화장실을 들렀다.

손을 씻으며 거울을 보는데 뭔가 자괴감이 들었다.

“뭐 하고 있는 건지.”

짧게 혀를 차며 화장실을 나왔다.

그런데 웬 여자가 비틀거리며 아까 내가 있었던 룸에서 걸어 나왔다.

그 여자는 나를 발견하고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 살려주세요.”

“네?”

“저를 강간하려고 해요! 어, 어서 경찰에 신고해주세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는 당황했다.

여자는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뭔가 약을 먹은 것 같기도 하고······

쿵!

갑자기 여자는 눈이 풀리면서 쓰러진 다음 발작하기 시작했다.

“뭐, 뭐야?!!!”

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119에 전화를 했다.

휙!

그때 갑자기 경비들이 나타나 내 폰을 뺏어 전화를 끊었다.

“뭡니까? 지금 사람이 쓰러진 거 안 보여요?”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들에게 따졌다.

“여기는 우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가던 길 가시죠.”

“······”

알아서 하겠다니 뭐 딱히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이 사람 뭔가 무섭다.

“알았어요. 저는 갈 테니까 잘 보살펴주세요.”

경비는 코웃음 치며 뺏은 폰을 돌려줬다.

그냥 그렇게 나가려다가 뭔가 석연치 않아서 뒤를 돌아봤다.

그런데······

경비들이 그 여자를 사장님과 전무님이 있는 룸으로 다시 끌고 들어가고 있었다!

저 여자······

나보고 자기가 강간당할 것 같다고 살려달라고 했었지?

나는 얼른 그곳을 나왔다.

뭔가 엄청난 일에 휘말린 것 같다.

두려움에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무서웠지만 인도적으로 해야 할 일은 해야 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112 번호를 눌렀다.

“네.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 여기 어떤 여자가 쓰러진 채로 끌려갔어요! 어서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어디시죠?”

“여기 논현동에 문리버라고 하는 술집이 있는데요.”

“······네. 알겠습니다. 곧 출동하겠습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경찰을 기다렸다.

“빨리 와야 할 텐데······”

삐용! 삐용!

잠시 뒤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차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곧바로 거기로 달려가 경찰을 불렀다.

“저기요! 제가 신고했습니다. 저기 문리버예요. 빨리 들어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간판을 가리키며 경찰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가능하시다면 사건이 발생한 곳으로 직접 안내해주시겠습니까?”

“예! 따라오세요.”

경찰이 같이 있으니 나는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경찰과 함께 문리버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갑자기 경비가 나타나 막아섰다.

아까 119 신고를 막고 여자를 룸으로 끌고 들어갔던 그 경비였다.

“뭡니까?”

그는 인상을 쓰며 무섭게 나를 노려봤다.

“이 사람이에요! 이 사람이 그 여자를 끌고 저기로······”

퍼억!

경찰에게 범행 사실을 알리고 있던 중 갑자기 둔탁한 소리와 함께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컥!”

경비가 나를 뒤에서 가격한 것이었다!

나는 엄청난 충격으로 인해 그대로 털썩 쓰러져버렸다.

“다, 당신······”

너무 고통스러워서 말도 제대로 안 나왔다.

“그냥 갔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경비는 비릿하게 웃으며 쓰러진 나를 내려다봤다.

이놈은 경찰이 보고 있는 앞에서 나를 때린 것이다.

나는 도움을 구하려고 경찰 쪽을 쳐다봤다.

하지만 경찰은 그냥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 가만히 잠자코 있었다.

“그쪽을 왜 쳐다봐? 도와달라고? 하하하하. 아쉽지만 여기서 너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 그런······”

너무 고통스러워서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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