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체 포
그들은 수건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결렬하게 몸부림치면서 계속 기침을 해댔다. 눈은 마치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처럼 아팠고, 물 흐르듯 눈물이
흘러내리는 바람에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 방안은 앞을 분간 할
수 없을 정도로 최류탄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도
방안으로는 계속 최류탄이 날아들고 있었다.
"더 이상 안 되겠어! 이 정도에서 자수하는 게 어때?"
그때 총알이 우박처럼 방안으로 쏟아져들어왔다. 그들은 총에
맞지 않으려고 구석에 웅크렸다. 창문으로 사람이 뛰어드는
소리가 쿵하고 났지만 그들은 그대로 웅크리고 있었다.
"손들어!"
등 뒤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뿌연 연기를 뚫고 강렬한
플래쉬의 불빛이 그들 쪽으로 날아왔다. 완전히 노출된 그들은
당황했다.
"손들어! 무기를 버려!"
그들은 그 살기등등한 한국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몸뚱이에 총알이 들어와 박힐 것만 같아 그들은 들고
있던 권총을 버렸다. 그리고 두 손을 쳐들었다. 또 한 사람이
창문을 통해 방안으로 뛰어들었고, 이어서 방안에 불이 켜졌다.
창문으로 빠져나가는 뿌연 최루탄 연기 사이로 시커먼
옷차림의 사나이 두 명이 보였다.
두 명 다 기관단총을 들고 있었고, 얼굴에는 가스마스크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흡사 무슨 괴물 같았다. 그들의 몸이 증오와
분노로 떨리고 있는 것이 뚜렷이 보였다. 이쪽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기관단총이 불을 뿜을 것만 같았다. 그들은 기관단총을
발사할 수 있는 구실이 생기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 그런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해 테러리스트들은 얼어붙은
자세로 서 있었다.
그들이 움직이지 않자 특공요원 한 명이 다가왔다. 그는
일본인 앞에 다가서서 가만히 그를 노려보더니 갑자기 총대로
그의 턱을 후려쳤다. 사쓰마 겐지가 '엌!'하면서 웅크리자
이번에는 발로 그의 사타구니를 힘껏 걷어찼다. 일본인은
사타구니를 움켜쥔 채 떼굴떼굴 굴렀다.
영국인은 자기 앞으로 다가서는 특공요원을 노려보면서
경계태세를 취했다.
"움직이지 마!"
밑으로부터 올려치는 충격에 프레드릭 마주르는 턱이
으스러지는 것을 느끼면서 무릎을 꺾었다. 그리고 두번째 충격에
일본인처럼 사타구니를 싸쥐고 방바닥 위를 굴렀다.
방바닥에서 고통스럽게 신음하고 있는 두 명의 외국인들 위로
총탄이 비오듯이 쏟아졌다. 그들은 총소리가 멈출 때까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쥔 채 엎드려 있었다. 그 특공요원은 총알이
떨어질 때까지 기관단총의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그러나
총알은 아슬아슬하게 그들을 비켜가고 있었다.
병호는 수갑에 채여 밖으로 끌려나오고 있는 두 외국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주위가 너무 시끄럽고 소란스럽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당연한 것인 줄 알면서도 그는 그것이 싫었다.
체포작전은 조용히 진행되었어야 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게 상황이 변해 있었다. 한참 동안 주위를 울린 총소리때문에
새벽의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아파트 주민들은 모두 놀라 깨어
사건현장 부근으로 몰려와 있었다. 어느 새 알았는지
신문기자들까지 몰려와 있었고, 테러리스트들을 향해 쉴새 없이
카메라 플래쉬가 터지고 있었다.
범인들이 호송차량에 오르는 것을 보고 병호도 뒤따라 차에
올랐다. 그들을 임시수사본부로 사용하고 있는 호텔방으로
데려가는 것은 문제가 많을 것 같아 병호는 행선지를 바꾸기로
했다. 그곳은 외부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경찰이 특별히
중요한 사건의 용의자를 취조할 때에만 이용하는 장소였는데,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었다.
차가 달리는 동안 병호는 외국인 테러리스트들을 줄곧
관찰하고 있었다. 그들은 조금도 위축되거나 하지 않고 당당하고
적의에 찬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들은 죽음 같은 것은
두려워하지도 않을 그런 사나이들 같았다. 체포될 때
얻어맞았는지 그들의 턱은 시퍼렇게 부어 있었다. 병호가 담배를
권하자 회색 눈의 사나이는 머뭇거리지 않고 입으로 그것을
받았지만 일본인은 단호하게 그것을 거절했다.
"당신들 조직 이름이 뭐지?"
병호가 영어로 묻자 일본인의 입가에 냉소가 떠올랐다.
가소롭다는 그런 표정이었다. 병호는 손가락으로 사쓰마 겐지를
가리켰다.
"네가 일본적군파라는 거 다 알고 있어. 하지만 당신은 뭐지?
합작인가?"
병호는 회색 눈의 사나이를 가리켰다. 영국인은 무표정하게
병호를 마주 바라보았다. 병호가 다시 물었지만 그는 여전히
같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너희들은 살인자야!"
왕형사가 분노로 몸을 떨며 소리쳤다. 그러나 그들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너희들하고는 상대도 하지 않겠다는 그런
태도였다.
얼마 후 호송차량은 커브진 길을 올라가다가 벽돌로 지은 어느
낡은 건물 앞에 멈추어섰다. 그 건물은 5층짜리 건물로, 앞면이
온통 담쟁이 덩굴로 덮여 있는 것이 가로등 불빛에 보였다.
정문 옆에 있는 셔터가 올라가자 호송 차량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셔터가 닫히자 비로소 사람들은 차에서
내렸다. 계단을 오르내리고 시멘트 바닥을 울리는 구둣발 소리가
어지럽게 들려오고 있었다.
테러리스트들은 지하실로 끌려내려갔다. 거기에는 이미 오다
기미도 와있었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서는 사내들을 창백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사쓰마 겐지는 그녀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면서 소리쳤다.
"더러운 년! 우리를 배신하다니!"
"배신한 게 아니예요! 저도 체포됐어요!"
"체포됐으면 혼자 감당할 것이지 왜 우리가 있는 곳을
불었어?! 그게 배신이 아니고 뭐야?! 넌 모든 걸 불었지?!
그렇지?!"
오다 기미는 머리를 흔들다가 급기야 울음을 터뜨리며
소리쳤다.
"그래요! 모든 걸 불었어요! 우리들 계획을 하나도 숨기지
않고 불었어요! 난 이제 지쳤어요! 이런 짓에 진력이 나요! 난
이런 짓이 싫어요! 난 아기를 갖고 싶어요! 아기가 더 소중해요!
당신들보다 아기가 더 소중해요! 난 한국에 망명하기로 했어요!
당신도 망명하세요! 그리고 아기 아빠가 되세요!"
"미친 년!"
사쓰마는 그녀를 무섭게 노려보면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하실은 숨막힐듯 무더웠다. 지하 3층에 자리한 취조실은
취조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일부러 무덥게 차단되어 있었다.
에어컨은 물론이고 선풍기 하나 놓여 있지 않았다. 그것은
신문을 받는 피의자들이 질실할 것 같은 무더위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얼른 입을 열려고 들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서 만들어 놓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피의자를 신문하는 수사관도 무더위에 고통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고통을 빨리 덜기 위해서도 그는 피의자를
혹독하게 몰아치기 마련이다.
병호가 저고리를 벗어부치고 막 신문을 시작하려는데
보스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병호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보스의
껄끄러운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놈들을 일망타진했다고? 수고 많았어. 정말 큰 일을 해냈어.
이건 세계적인 뉴스감이야. 세계금융가회의를 습격하려던 국제
테러리스트들을 일망타진했다는 건 확실히 세계적인 뉴스거리야.
이걸로 한국 경찰의 위치는 선진국 수준으로 격상됐어. 조금
있으면 외신기자들이 몰려들 거야. 인터뷰 준비를 하고
있으라구. 아주 멋지게 말이야. 만일 놈들을 체포하지
못했더라면 어쩔뻔했어? 생각만해도 모골이 송연하다구. 특진을
상신할 테니까 마무리를 잘 지어요."
"아직 일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직 한 명이 체포되지 않았습니다."
"그거야 시간 문제 아니야? 설사 놈을 빨리 체포하지 못한다
해도 제놈이 혼자서 무슨 일을 하겠어. 빨리 마무리나 지어요.
내가 멋진데 가서 한잔 살 테니까."
"글쎄요. 그렇게 빨리 끝날 것 같지 않은데요."
"우물쭈물할 필요 없다니까. 빨리 끝내버려. 오반장도 좀
쉬어야 할 거 아니야. 인터뷰 준비나 잘해두라구."
병호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회색 눈의 사나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생각난 듯 물었다.
"당신이 소속되어 있는 조직의 이름이 뭐지?"
프레드릭 마주르의 잿빛 눈이 더욱 짙은 색깔로 굳어지는 것
같았다.
병호는 11시 30분경에 중앙박물관에 도착했다. 메인 홀로
들어서자 먼저 와있던 왕형사가 다가왔다.
"준비는 끝났습니다."
"아래 위는 물론 밖에도 배치시켜야 해."
"밖에는 25명을 배치시켰습니다."
병호는 대리석으로 되어 있는 1층 홀을 둘러보다가 2층을
올려다보았다. 2층에는 메인 홀을 내려다볼 수 있게 복도가
둥그렇게 나있었는데 기둥 뒤에 수사요원들이 숨어 있는 것이
보였다.
"희생자가 나지 않아야 할텐데 걱정이야. 놈이 여기서
수류탄이라도 터뜨리는 날에는 이 학생들을 어떡 하지?"
병호는 메인 홀을 가득 메우고 있는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방학중이었기 때문에 개관한 지 얼마 안 된
박물관에는 아침부터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놈이 나타나면 재빨리 기습하겠습니다. 얼른 손을 써서 놈이
무기를 꺼내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유단자를 여섯 명 대기시켜
놨습니다."
병호는 끄덕이고 나서 2층으로 올라갔다.
그는 메인 홀이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서 있다가 등을 돌리고
서서 가지고온 신문을 보기 시작했다. 신문에는 국제
테러리스트들을 체포한 사건이 3면에 걸쳐 대대적으로 보도되어
있었다. 신문은 오랜만에 한국 경찰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고, 세계금융가총회 관계자들은 하마터면 피로 물들뻔한
총회를 무사히 치룰 수 있게 사전 예방해 준 한국 경찰에 심심한
사의를 표하고 있었다. 신문에는 병호의 사진 대신 보스의
사진이 큼직하게 실려 있었다.
병호는 아직 국내외 기자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아직 사건이 끝나지 않았다고 보고 있었다. 그의 육감은 사건이
마무리되었다고 보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12시 35분이 되었을 때 워키토키의 신호음이 들려왔다.
"그자가 나타났습니다!"
귀에 꽂고 있는 레시버를 통해 왕형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병호는 신문을 거두고 몸을 돌렸다.
한 외국인이 메인 홀에 들어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검은 머리에 색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턱수염은
보이지 않았다. 깎아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병호는
"러트가 틀림없나?"
하고 물었다.
"수염이 없어 그렇지 몽타지하고 비슷합니다."
그 외국인은 콤비 차림에 한 손에 여행 가방을 들고 있었다.
계속 두리번거리며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는 것이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체포해!"
병호의 명령이 떨어지자 여기저기서 건장한 사나이들이 그
외국인을 향해 접근했다. 제일 먼저 그에게 돌진한 사람은
왕형사였다. 그는 비호처럼 돌진하더니 뒤에서 외국인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쓰러졌다. 앞으로 달려든 태권도 유단자가 구둣발로
외국인의 가슴을 올려차자 그는 뒤로 쿵하고 떨어졌다. 그 위로
여러 명이 한꺼번에 덮쳐들었다. 외국인은 거세게 항거했다.
그러나 그는 무기를 뽑을 수가 없었다. 거친 사나이들은 그에게
그럴 틈을 주지 않고 무자비하게 그를 깔아뭉갰다. 몇 번 더
얻어맞고 두 팔이 뒤로 꺾여 수갑이 채워진 다음에야 그는
저항을 포기했다.
학생들은 메인 홀에서 벌어진 어른들의 싸움을 흥미진진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박물관 구경 따위는 젖혀두고
어른들이 차를 타고 사라질 때까지 그 주위를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