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광란의 밤
그 시간에 H호텔 1825호실에서는 해괴망측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제3자가 보는 앞에서의 노골적인 성행위였다.
상상도 못할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고 유화시는
처음에는 수치심과 함께 어안이 벙벙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신도 점점 흥분되어 가면서 그 해괴한 분위기에 휩쓸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신을 버티어내는데
격심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나이트클럽에서 나와 율무의 방으로 따라들어갈 때까지만해도
화시는 그들이 그녀가 보는 앞에서 차마 그런 짓은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적어도 그녀가 잠든 뒤에나 그 짓을 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녀의 그런 생각은 빗나가고
말았다.
방안에 들어선 그들은 처음에는 술을 마셨다.
나이트클럽에서도 적지 않게 술을 마셨는데 방안에 들어와 또
마시니 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화시만은 입장이 달랐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마셨지만 황무자와 율무는 그렇지가 않았다.
그들은 화시가 보는 앞에서 서로 끌어안고 히히덕거리면서
위스키를 마구 마셔댔다. 그러다가 몸을 가누기가 어려울 정도로
취했을 때 율무가 마침내 옷을 벗었다. 그는 여자들이 보는
앞에서 거침없이 옷을 벗으면서
"자, 우리 목욕하러 가지."
하고 말했다. 그때 그는 비로소 탈을 벗고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 같았다.
"우리 함께 목욕하고 나서 멋지게 사랑해 보자구. 멋진
사랑이란 어떤 것인지 내가 가르쳐주지. 1대 2로 사랑하면 아주
근사할 거야. 나는 너희들 두 명을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어.
날이 샐 때까지 밤새도록 말이야. 너희들을 녹아웃시킬 자신이
있단 말이야. 자, 어때? 이걸 보라구. 근사하게 생기지 않았어?"
팬티까지 벗어버린 그는 여자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성기를
흔들어보였다.
그것은 잔뜩 발기해 있었고,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보였다. 여자들은 입을 딱 벌리고 그것을 쳐다보았다. 이윽고
무자의 눈빛은 마치 먹음직스런 먹이라도 발견한 듯 탐욕스럽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화시의 두 눈은 더욱 커지기만 했다.
그녀는 경악에 가까운 눈으로 그것을 쳐다보면서 거기에서 결코
눈을 떼려고 하지는 않았다.
마침내 무자가 참을 수 없다는 듯 몸에 걸치고 있던 옷들을 한
꺼풀씩 벗기 시작했다.
"안 돼요! 그러면 안 돼요!"
화시가 놀라 소리쳤지만 그녀는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띤 채
스커트의 후크를 빼내고 지퍼를 거침없이 내린 다음 허리를
뒤틀었다. 회색의 타이트 미니스커드가 발등을 타고 내리자
그녀는 그것을 오른발 끝으로 걷어올리더니 공중으로 홱
차올렸다. 스커트는 높이 날아올랐다가 화시가 앉아 있는 앞에
떨어졌다.
"안 돼요! 이러지 말아요!"
화시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듯 외쳤지만 무자는 멈추지
않았다.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야? 위선자 같으니! 침대
위에서는 모두 똑같아! 재지 말고 옷 벗어. 옷벗기 싫으면
얌전히 앉아서 구경이나 해! 이런 구경이 어디 흔한 줄 알아."
그녀는 빨간 삼각 팬티만으로 아슬아슬하게 가려진 하체를
흔들어대며 말했다.
화시는 너무 기막힌 나머지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정색을 하고 내뱉는 말에 그녀는 심한 모욕감까지 느꼈다.
무자는 셔츠를 머리 위로 뒤집어 뽑았다. 노브러였기 때문에
젓가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약간 묵직하게 밑으로 처진
젖가슴이 흔들렸다. 그녀는 셔츠를 바닥에다 패대기쳤다. 이제
그녀의 몸에는 손바닥만한 삼각 팬티만이 남아 있었다.
"아, 제발 그것만은......"
화시가 애걸조로 말했지만 무자는 요염하게 웃으며 팬티를
끌어내렸다. 그것은 탐스러운 엉덩이에 잠시 걸려 있다가 밖으로
빠져나와 그녀의 손 끝에 걸렸다. 그녀는 그것을 돌리다가 율무
쪽으로 홱 던졌다. 율무는 그것을 받아 '부라보!'하고 외쳤다.
"미쳤어! 모두가 미쳤어!"
화시는 두 주먹을 쥐고 소리질렀다.
율무는 팬티를 코에 대고 킁킁거리다가 갑자기 무자에게
달려들었다. 무자는 비명을 지르며 욕실로 뛰어들어갔다.
율무는 그녀를 따라 욕실로 들어가려다말고 몸을 돌려
화시에게 달려들었다.
화시는 발딱 일어나 뒷걸음치다가 구석으로 몰렸다. 그녀의
손에는 재떨이가 들려 있었다.
"오지 말아요!"
그녀가 위협했지만 율무는 싱글싱글 웃으며 다가서더니 갑자기
그녀를 끌어안으며 입을 덮쳤다. 그녀의 입술은 순식간에 그의
입속으로 빨려들어갔고, 그녀는 숨을 쉴 수가 없어 바둥거렸다.
그는 한 손으로 그녀를 꼼짝 못하게 끌어안은 채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가슴을 더듬던 손은 미끄러지듯 밑으로 내려가더니 하복부
밑을 집중적으로 애무했다. 화시는 허리를 뒤틀면서 숨이 막혀
몸부림쳤다. 마침내 남자의 손이 옷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보드라운 습지대에 닿자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재떨이로
남자의 이마를 후려쳤다. 어떻게나 세게 쳤는지 딱하는 소리가
났다. 율무는 손으로 이마를 누르면서 뒤로 물러섰다. 가까스로
손에서 벗어난 화시는 그를 노려보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그가 뭐라고 외쳤다. 그러나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가 이마에서 손을 떼더니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이마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가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그녀를 노려보았는데 그것은 처음 보는 무서운 얼굴이었다.
화시는 너무 무서워 뒷걸음질쳤다. 그가 다시 뭐라고 외쳤는데
아마 욕설 같았다. 욕설과 함께 주먹이 날아왔다.
턱에 격심한 충격을 느낀 화시는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쓰러진 그녀를 향해 외국인은 발길질을 했다. 옆구리를 심하게
걷어채인 그녀는 신음 소리를 내면서 의식을 잃었다. 율무는
쓰러진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의 몸
위로 손을 뻗었다.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었던 화시는 자신의 몸뚱이가 남자의 손
끝에서 마음대로 농락당하고 있는 것을 알았지만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흐릿한 의식 속에서 손 끝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화시를 알몸으로 만든 율무는
그녀를 카피트 바닥 위에다 그대로 눕혀놓은 채 그녀의 몸을
덮쳤다.
"아!"
화시의 입이 벌어지면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는
고함치면서 몸부림치고 싶었지만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남자의 그것이 피스톤처럼 맹렬한 기세로 몸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을 때에도 그녀는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었다.
안개가 낀 듯 뿌우옇게 흐려졌던 시야가 밝아졌을 때 그녀의
눈에 처음 보인 것은 거친 숨을 내뿜고 있는 야수의 얼굴이었다.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는 야수의 이글거리는 두 눈이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입을 맞추려고 했기 때문에
그녀는 오른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 그의 어깨 너머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또 한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그것은
황무자의 얼굴이었다. 무자는 흥미진진한 눈으로 두 사람의
성행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사실 두 사람이 서로 협조해서 벌이는 화합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것은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여자한테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가혹행위일 뿐이었다. 다시 말해 강간이었다.
화시는 무자가 그 치욕적인 장면을 마치 구경꾼처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고만 있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자의 얼굴에는 잔인한 미소가 나타나 있었다. 분노를 기대했던
화시는 그녀의 잔인한 미소를 보고 그녀가 자신을 적대시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더 세게! 힘을 내요!"
무자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튀어나왔다. 그녀는 율무의 어깨를
두드려주면서 그를 격려했다.
"안 돼요! 비켜! 이 악마!"
화시는 두 손으로 율무의 얼굴을 밀어내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 율무는 으스러지게 그녀를 부둥켜안으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동시에 화시는 뜨거운 것이 몸속으로 깊이 분출해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이윽고 율무가 천천히 몸을 들어올렸는데, 그의 얼굴에는
야욕을 채운 만족감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반면 화시는
흐느끼면서 그대로 누워 있었다. 그때의 그녀는 경찰관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연약한 아가씨에 지나지 않았다.
율무가 욕실로 들어가자 무자가 화시 곁으로 다가앉아 그녀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이제 우리는 같은 수준이 됐어요. 당신이 나보다 나은 것은
하나도 없어요. 이제부터 우리는 같은 자격으로 게임에 임하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지 않아요?"
"손대지 말아요!"
화시는 격렬하게 외치면서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상체를 일으켰다.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러나 무자는 웃기만 했다.
"가만두지 않으면 어떡 할 거야? 숫처녀도 아니면서 뭘
그래요."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화시는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그녀가 그렇게 모욕을 당해보기는 처음이었다. 수치심과
모욕감에 그녀는 몸둘 바를 몰랐다.
"난 갈 테니까 당신 혼자 알아서 해요!"
"맘대로 해요."
무자는 웃으면서 욕실로 들어갔다.
화시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그녀는 주섬주섬 옷을 입으면서
계속 분노에 몸을 떨었다.
그런데 옷을 입고 나서도 그녀는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아니,
떠날 수가 없었다. 어떤 강한 힘이 그녀를 그곳에 붙들어 매놓고
있었던 것이다.
분노와 함께 오기가 서서히 고개를 쳐드는 것을 그녀는
느꼈다. 그대로 물러가면 더욱 모욕감과 수치심만 느낄 것
같았다. 그와 함께 패배감에 사로잡혀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욕실 쪽에서는 히히덕거리며 장난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있자 율무가 무자를 안아들고 욕실에서 나왔다. 그들의 몸에서는
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무자는 율무의 목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화시가 보기에 이제 그것은 결코 놀라운 광경이
아니었다.
율무는 무자를 침대 위에 내던졌다. 침대가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율무는 화시에게 한번 웃어보이고 나서 침대 위로
올라가 무자 위에 몸을 실었다. 그는 다시 힘을 회복한 것
같았다.
침대 위에 그들은 화시의 존재를 완전히 묵살한 채, 마치
그녀가 거기에 없고 그들만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무자는
형식적으로 남자를 받아들이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아주
적극적으로 그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녀가 혹시 자신의 임무를
망각한 게 아닐까 하고 생각될 정도였다.
행위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방안은 무자의 환희에 찬
신음 소리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행위가 격렬해짐에 따라
그녀가 내지르는 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 출렁이는 침대와
그 위에서 결렬하게 맞부딪치고 있는 두 사람의 벌거벗은
몸뚱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동안 화시는 비참하게 일그러져
있는 자신의 몸뚱이가 서서히 뜨거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율무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을 때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그때에는 말할 수 없는 수치감과 모욕감으로 온몸이
걸레처럼 구겨지는 느낌만이 들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가
않았다. 지금 그녀의 몸속에서 서서히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것은 동물적인 욕망이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뒤틀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무자는 울고 있었다. 그 행위를 하면서 여자가 울 수도
있다는 것을 화시는 처음 알았다. 이제 그녀에게는 수치심도
모욕감도 사라지고 있었다. 그녀는 무자가 우리는 이제 같은
수준이 됐다고 한 말이 정말이었음을 깨달았다. 같은 자격으로
게임에 임하자는 무자의 말에 따르고 싶은 충동을 화시는 강하게
느꼈다.
무자가 숨 넘어가는 소리를 내면서 몸을 뒤집었다. 그 바람에
그들의 체위가 바뀌었다. 율무는 말처럼 뒤에서 그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화시는 갑자기 몸을 돌려 욕실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차가운
샤워물을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썼다.
몸이 완전히 식었을 때 그녀가 생각한 것은 인간은 과연 어느
정도까지 동물적일 수가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