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사 오병호-23화 (23/45)

23. 밤열차

같은 날 밤 11시 15분 전, 서울역. 한 대의 콜택시가 광장에

면한 택시정류장에 빗물을 튀기며 굴러와 멎자 유난히 키가

작아보이는 외국인 남자가 먼저 차에서 뛰어내리면서 우산을

펴들었다. 그리고 뒷좌석의 문을 열자 흑발의 미녀가 밖으로

내려섰다. 난장이는 그녀가 비를 맞지 않게 발돋움하면서 그녀의

머리 위로 우산을 가져갔다. 이윽고 그들은 새마을호 대합실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광장 위로는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우산이 뒤집어지자

그들은 나란히 걷는 것을 포기하고 뛰어가기 시작했다.

대합실 안은 혼잡스러웠다. 대합실 안으로 들어선 그들은 비에

젖은 머리와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미모의

외국 여인에게 쏠렸다. 사람들은 흥미있다는 듯 그녀와 난장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름다운 미녀가 난장이와 함께 여행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신기해 보인다는 그런 표정들이었다. 그러나 그

외국인들은 사람들의 시선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웃으며 상대방의 얼굴을 닦아주기까지 하는 다정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간편하고 검소한 차림인 것으로 보아 관광을 목적으로 한국에

온 여행자들 같았다. 여인은 색이 바랜 청바지 위에 노란색의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티셔츠는 비에 젖어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았는지 부푼 젖가슴이 그대로

드러나보였고 젖꼭지가 유난히 자극적인 모습으로 도드라져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주로 그녀의 젖가슴 위로 쏠리고

있었다. 그것은 무료하게 차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난장이는

푸른색의 사파리를 입고 있었다. 그의 머리는 붉은 색이었고 두

눈은 노리끼했다. 그는 동그란 눈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두 눈은

계속 장난기어린 미소를 담고 있었다. 그와 미녀는 여행가방

하나씩을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여인의 목에는 일제 니콘

카메라가 걸려 있었다.

개찰구를 통해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개찰구 위에는

경부선을 표시하는 노란 불빛이 들어와 있었다. 미녀가 난장이의

팔짱을 끼면서 개찰구 쪽을 가리켰다. 그들은 이미 승차권을

구입해 둔 것 같았다.

개찰구를 통과한 그들은 계단을 내려가 플랫폼에 서 있는

경부선 하행 새마을 열차에 올랐다.

열차는 정각 23시에 출발했다.

그 어울리지 않는 한쌍의 외국인들은 별실 안에 앉아 있었다.

별실에는 조그만 탁자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소퍼가 놓여져

있었다. 복도에 면한 출입문을 닫고 커튼을 치자 그런대로 두

사람만의 아늑한 분위기가 이루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외국의

훌륭한 시설에 접해온 미녀는 별실의 초라함에 미간을

찌푸려보였다.

난장이는 차창에 부딪쳐 흘러내리는 빗물을 히죽히죽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지아는 섬세하게 생긴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나서

"가랄......"

하고 불렀다. 가랄은 재빨리 라이터를 꺼내 그녀의 담배에다

불을 붙였다.

"아, 답답해. 꼭 감옥에 갇혀 있는 것 같아."

그리지아가 천장을 향해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은 아랍계통의 말이었다. 상체를 뒤로 젖힌 채 편한

자세로 앉아 있었기 때문에 젖가슴이 마치 고무풍선처럼

부풀어올라 있었다. 그녀의 가슴은 처지지 않고 앞으로 탄력있게

솟아 있었다.

가랄이 가방을 열더니 그 안에서 캔맥주 두 개를 꺼냈다.

"금주라는 거 잊었어요?"

그리지아가 정색을 하고 물었다. 난장이는 히죽 웃었다.

"여긴 괜찮지 않아요. 보는 사람도 없고......위험하지도

않고......"

그 역시 아랍말로 말했다.

"그래도 안 돼!"

가랄이 캔을 도로 가방 속에 집어넣는 것을 보고 그녀가 다시

말했다.

"하지만 이번만 특별히 봐주겠어요. 많이 마시지 말아요."

"목이 말라서요."

난장이는 마개를 따내고 캔 하나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그것을 받아 입으로 가져갔다. 난장이도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지아는 창문에 흘러내리는 빗물을 원망스러운 듯이

바라보면서 맥주를 마셨다.

"언제 시작할 겁니까?"

가랄이 물었다.

"내일이 고비예요. 내일 오후에는 일정을 잡을 수 있을

거예요."

그녀는 창쪽으로 시선을 향한 채 말했다.

"빨리 서두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요."

난장이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미녀는 맥주를 꼴칵

삼켰다.

"가랄, 솔직히 말해줘요. 대원들 중에 누가 제일 많이

동요하고 있는지......"

난장이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런 사람 없어요."

"누군가가 나를 거역하고 계획 자체를 포기시키려고 하는 것

같아요. 내가 없는 사이에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가랄

당신이 일을 처리해 줘요."

난장이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그럴 리 없습니다. 계획이 연기되다 보니까 모두가 신경이

너무 날카로워진 모양이에요. 그런 걱정은 하지 말아요."

"가랄, 난 여자예요. 여자로서의 느낌은 유별난 거예요.

모두가 나를 여자라고 깔보고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 같지가 않아요. 나를 쳐다보는 눈들이

모두가 불안했어요."

가랄은 그녀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앉은 키가 그녀보다

작았으므로 그는 그녀의 어깨대신 허리를 껴안았다.

"그리지아, 너무 신경과민이에요. 그런데 당신은 한 가지

실수를 저지른 게 있어요."

"뭔데?"

"로렌스를 죽이지 말았어야 했어요."

노엘 화이트의 죽음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당신도 로렌스한테 손을 대놓고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난 당신의 명령대로 했을 뿐이에요. 당신이 죽이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놈을 죽인 거예요. 내가 언제 당신의 명령을

거역한 적이 있나요?"

"그건 그래요."

그녀는 끄덕이고 나서 남은 맥주를 마저 들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로렌스는 죽일 수밖에 없었어요. 너무 큰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에 살려둘 수가 없었어요."

"네, 나도 그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시기가 안 좋았어요.

장소도 안 좋았고요."

"난 모두에게 내가 어떠한 사람인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뿐만 아니라 벌칙이 어떻게 집행되는가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알고 있습니다. 그런 모든 점들을 감안하더라도 로렌스를

죽인 것은 너무 성급했습니다. 한 사람을 죽이니까 다른

사람들까지 연쇄적으로 죽이게 됩니다. 그때문에 우리는 현재

너무 많은 증거를 남기게 됐습니다."

난장이의 목소리는 그의 몸뚱이에 비해 영 어울리지 않게

들렸다. 그것은 걸걸하고 쉰 듯한 목소리였다. 그는 그리지아의

심복이었다. 그리지아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그녀를 그림자처럼

따르며 그녀를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인물이었다.

"증거를 많이 남겼다고? 무슨 증거를 남겼다는 거지?"

그리지아의 검은 눈이 더욱 검어지는 것 같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증거도 됩니다. 무엇보다도 한국 경찰의

시선을 끌었다는 점이 문제가 됩니다. 그들의 수사가 어느

정도까지 진척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무시할 상대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지아는 뚫어질듯이 난장이를 쳐다보았다. 그가 그런 말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자기 의견을 말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히죽히죽 웃기만 하고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는

기계적인 인물이라고 알고들 있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그리지아는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다가 다시 담배를

집어들었다. 가랄이 재빨리 라이터 불을 켰다.

"나도 한국 경찰이 엉터리라고 생각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우리 정체를 알아냈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그들이 우리 정체를

알아내어 우리를 추적한다 해도 그때는 이미 우리는 한국에 있지

않을 거예요. 나는 한국 경찰의 수사력이 그렇게 기민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그들은 이제 겨우 후진국 수준을

벗어난 정도 아니예요?"

난장이는 노리끼한 두 눈을 깜박거렸다.

"나는 그렇게 간단하게 보고 싶지 않습니다. 우수한 수사관이

있다면 그는 얼마든지 우리를 추적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선

죽은 로렌스의 신원을 알아내려고 할 겁니다. 이미 알아냈을지도

모르죠. 그리고 그들은 토머스 러트를 추적하고 있을 겁니다.

로렌스가 그의 호텔 방에서 살해됐으니까 러트가 제1의 용의자로

떠오를 것은 당연합니다."

"그야 그렇지. 하지만 러트는 안전한 곳에 숨어 있어요."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기는 한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러트 외에 H호텔에 투숙했던 동지들도

수사선상에 올라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 경찰은 틀림없이

투숙객을 상대로 수사를 벌이고 있을 테니까요. 호텔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투숙객들을 조사하지 않는다는 건 오히려

이상한 일이고 그건 직무유기에 해당하는 일이 아니겠어요?

사쓰마 겐지, 프레드릭 마주르, 오다 기미, 그리고 오노와

율무...... 러트까지 포함해서 모두 여섯 명의 수사선상에 올라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노와 율무는 여태까지 그 호텔에 있는데 아직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감시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그럴까."

그리지아는 중얼거리면서 허공에 시선을 던졌다. 그녀의

안색이 어느 새 창백해져 있었다. 그녀는 이내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요. 율무가 제2의 은신처에

나타났는데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어요. 경찰이 그를

미행했다면 그가 제2의 은신처에 나타났을 때 우리는 한국

경찰에 일망타진됐어야 했어요.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오노와 율무에 대해서는 혐의점이 없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숨어버렸기 때문에 경찰이

계속 추적하고 있을 겁니다. 숨어버렸기 때문에 혐의점은 계속

남아 있는 것이고, 그러니까 추적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녀가 숨을 죽이고 물었다.

"우리는 그 호텔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으니가 아직까지는

위험하지 않을 겁니다. 대장과 닥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침묵이 흘렀다. 난장이의 머리가 그리지아의 젖가슴에

와닿았다. 난장이는 머리로 그것을 건드리다가 이윽고 입으로

티셔츠 안에 도드라져 있는 젖꼭지를 물었다.

"아!"

그리지아는 신음하면서 천천히 티셔츠를 뒤집어 뽑았다.

그녀는 작전중 남자 대원들이 모르는 여자와 관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그대신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대원에게는

그녀 자신의 몸을 제공하고 있었다. 그녀 자신은 물론 대원들도

그것을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난장이는 그녀의 두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으로

젖가슴을 쥐었지만 가슴이 워낙 풍만해서 두 손에 다 들어오지가

않았다. 그는 검은 빛을 띠고 있는 굵은 젖꼭지 하나를 입속에

빨아들였다. 그리고 한 손으로 나머지 젖꼭지를 만지작거리면서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바지 지퍼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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