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사 오병호-21화 (21/45)

21. 불행한 女人

황무자에 대해 경찰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녀는 대학까지

나온 인텔리로 두 번 결혼한 적이 있는 몸이었다.

그녀는 부모도 모르고 자란 고아였다. 고아원에서 자란 그녀는

너무 영리했기 때문에 대학까지 졸업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온순하고 내성적인

여자였었다. 성장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내재되어 왔던

피해의식과 공격적인 성격은 그때까지만해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안에 깊숙이 침잠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겪어야 했던 불행한 일들로 해서 그런 것들이 마침내

겉으로 드러나면서 난폭한 성격으로 변했던 모양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경찰이 조사한 자료를 통해 추정한 것이지만

사실에서 그렇게 벗어난 추정은 아닌 것 같았다.

그녀의 첫번째 결혼 상대자는 대학 시절 연애하던 남자였다.

그 남자는 어느 대기업체의 신입사원이었는데 그녀와 결혼한 지

2개월만에 자동차 사고로 죽고 말았다. 결혼하기 전 그녀는

사주를 본적이 있었는데, 사주를 본 사람이 하는 말이 절대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 이유를 묻자 그녀는

남자를 잡아먹을 상이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그녀와 결혼하는

남자는 모두 죽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코웃음치고 그

말을 잊어 먹었는데 첫번째 남편이 결혼 2개월만에 비명에 죽자

비로소 그때 그 말을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었다.

첫번째 남자가 죽은 지 2년쯤 지나 그녀는 연하의 가난한

대학생과 두번째로 결혼했다. 그녀보다 다섯 살이나 아래인

대학생이었다. 그때 그녀는 친구와 함께 조그만 카페를 경영하고

있었는데 그 대학생은 휴학중 그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녀를 누나라고 부르다가 어느 날 밤 술에 취해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게 되었고, 그것이 문제가 되어 갈등을 겪다가

결국 그들은 합쳐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 남자 대학생 역시 고아

출신이었고, 그 사실을 알고 처음에는 동정으로 시작되었던 것이

나중에는 사랑으로 변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알게된 일인데 그 대학생은 폐결핵

중증환자였다. 결혼하고 한 달쯤 지나 그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자 그녀는 그를 병원에 입원시켰다. 고아 출신의 청년이

폐결핵을 앓는 것은 그녀의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이해될 수 있는

일이었다. 병원에서는 그에 대해 치료 불가능이라는 진단 결과를

내놓았지만 그녀는 온정성을 다해 그를 간호했다. 친구와 함께

경영하던 카페는 그렇지 않아도 장사가 안 되었는데, 친구가

투자분을 빼내가는 바람에 그녀는 돈 한푼 건지지 못하고 문을

닫고 말았다. 그녀의 남편에 대한 병 간호는 그야말로 눈물겨울

정도였다. 그녀는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내다 팔고 아파트

전세금까지 빼내 치료비를 댔지만 남편의 병세는 더욱

절망적으로 되어갔다. 더 이상 치료비를 댈 수 없게된 어느 날

그녀는 임신 7개월의 몸으로, 부유하게 살고 있는 대학 동창생의

집에서 값비싼 패물을 훔쳤다가 붙들려 절도범으로 구속되고

말았다.

그녀는 교도소 안에서 아기를 낳았는데 아들이었다.

교도소안에서 아기를 기를 수 없었기 때문에 아이는 그녀가

출감할 때까지 양육기관에 맡겨졌다. 그녀는 교도소에 갇혀 있던

6개월 동안을 거의 미친 듯이 지냈다. 남편과 자식 생각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가 남편의 죽음을 통보받은 것은

출감하기 한 달 전쯤이었다. 그러고 나서 1주일쯤 지나 이번에는

아기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녀는 거의 미친 상태에서

교도소를 나왔다. 그때부터 세상을 보는 그녀의 눈과 생활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녀는 자진해서 교도소 생활중에 알게 되었던 여자를 찾아

나섰다. 그녀는 과거의 친구들과 어울렸다. 그 여자들이란 이미

범죄의 세계에 깊이 발을 들여놓았거나 그런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남자들과 관계하고 있는 여자들이었다. 그녀는 마약과

절도로 두 번 더 교도소에 드나들었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그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어느 새 그녀는 남자들까지

거느린 한 조직의 보스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지적이면서도

냉혹하고 과격한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가까이 오지 마! 저리 가! 물러가란 말이야!"

그녀가 다시 악을 썼다. 병호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다가섰다.

그녀도 한 걸음 더 물러섰다.

"자기 목숨을 함부로 버리지 마! 황무자, 당신은 현명한

여자야! 그걸 던져서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죽이겠다는 건가?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겠지. 정말 던지고 싶으면 나한테만

던져, 나한테만 말이야."

병호는 옆걸음으로 움직이면서 말했다.

"흥, 오병호! 잘 만났다! 그렇지 않아도 네놈을 만나고

싶었어. 죽고 싶단 말이지? 영웅이 되고 싶단 말이지?"

그녀는 수류탄을 들고 있는 오른손을 높이 쳐들었다.

금방이라도 던질 것 같은 기세였지만, 얼른 날아오지는 않고

있었다. 병호는 아주 오랫동안 끈질기게 그녀를 추적했기 때문에

그녀도 병호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오해하지 마. 난 영웅이 되기 위해 여기 온게 아니야. 당신을

살리기 위해 온 거야. 당신은 성격 파탄자야. 자신을 학대하고

남까지 학대해야 만족을 얻는 정신병자야. 당신은 이 세상을

파괴하고 모든 사람들을 죽이고 싶겠지. 그렇지만 그게 얼마나

부질없고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걸 당신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거야, 당신은 자신을 기만하고 있어. 당신은

위선자야."

병호가 두 서너 걸음 더 다가서자 그녀는 바들바들 떨면서

다시 뒤로 물러섰다.

"개새끼, 웃기는 소리하지 마! 난 너희들을 믿지 않아!

너희들은 모두 쓰레기야! 쓰레기!"

그녀는 두 손을 쳐들고 몸을 떨어대면서 악을 썼다. 벽때문에

더 이상 물러설 수 없게 되자 그녀는 벽을 의지하면서 옆으로

이동했다.

"오지 마! 오면 죽어버릴 거야!"

그녀는 조그만 약병 같은 것을 왼손에 들고 있었다. 약병

뚜껑은 열려 있었다. 병호는 멈춰섰다. 그의 얼굴은 온통 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는 손을 흔들었다. 그의 얼굴은 그녀를

이해하려는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무자! 제발 그러지 말아요? 자기 목숨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왜 내 맘대로 못해? 난 얼마든지 내 자신을 죽일 수 있어!"

"그렇지가 않아. 당신을 포함해 모든 생명은 소중한 거야.

자기 마음대로 끊을 수 있는 게 아니야. 난 당신의 불행했던

과거를 잘 알고 있어요."

"그럴듯한 말로 날 꾀려고 하지 마. 차라리 날 쏴죽여! 난

붙잡혀서 죽고 싶지 않으니까 날 쏴죽여!"

그는 그녀가 수류탄을 던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두 눈 속에는 증오의 빛이 서려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눈 속에 안타까움이 서려 있는 것 같이

생각되었다. 그는 멈추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갔다. 죽을 각오를

하고 걸어간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수류탄을 던질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었다. 그가 염려한 것은 그녀가

청산가리를 먹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그를 피하지 않았다. 온몸을 떨어대면서

그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소리치다가 마침내 그가 그녀 앞에

바싹 다가서자 두 손을 내리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당신은 죽을 팔자가 아니야. 그거 이리 내요."

그녀의 손에서 수류탄과 약병이 떨어졌다. 순간 그는 그녀를

껴안고 몇 바퀴 몸을 굴렸다. 그는 그녀의 몸을 위에서 덮쳐누른

채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폭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입에서 야릇한 웃음 소리가 흘러나왔을 때에야

그는 비로소 몸을 일으켰다. 수많은 발자국 소리가 몰려오고

있었다. 황무자의 웃음 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었다. 그는

수류탄이 떨어져 있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것을

집어들어 보았다. 안전핀이 뽑혀져 있는데도 그것은 폭발하지

않고 있었다. 뇌관이 장치되어 있는 수류탄의 윗부분 구멍은

나무로 막혀 있었고 그 위에 손잡이가 걸려 있었다. 나무 부분은

수류탄 색깔과 똑같이 색칠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까이서

들여다보기 전에는 식별하기 어려웠다. 그는 나무 뚜껑을 잡아

뽑아보았다. 그것은 쉽게 빠졌고, 화약이 들어 있어야할 속에는

만원짜리 지폐가 한 장 들어 있었다.

그녀는 경찰관들한테 에워싸인 채 소리내어 웃고 있었다.

그녀의 손목에는 이미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 그런 그녀를 향해

쉴새 없이 플래쉬가 터지고 있었다.

다이어먼드 살인사건은 병호의 소관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그 사건을 담당한 수사관들이 그녀를 심문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체포했을 때 수사관들은 물론

기자들까지도 그에게 그 수류탄이 가짜라는 것을 알고 접근한 게

아니었느냐고 물었었다. 그가 전혀 몰랐다고 했지만 그들은 그

말을 믿으려 들지 않았다. 그는 굳이 그것을 강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웃기만 했었다.

황무자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얌전히 앉아 있었는데 수사관의

질문에는 처음부터 침묵으로 일관했다. 병호는 한 시간쯤

지켜보다가 그곳을 나와 수사본부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보스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쇠약한 목소리가 다이어먼드

살인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그는 잠자코 들었다.

"그건 정말 멋진 결말이었어. 난 정말 오랜만에 기자들한테

자랑스럽게 말할 수가 있었어. 그건 용기만 가지고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이야. 거기에는 용기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어. 그 여자를 굴복시킬 수 있다는 남자로서의 어떤 확신,

바로 그것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어. 이건 농담인데

말이야...... 반장은 여자를 보는 눈이 뛰어나. 그렇지 않나?"

"글쎄요."

그는 난처해서 얼른 수화기를 놓아버리고 싶었다. 웃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보스의 목소리가 은근해졌다.

"그런데 말이야...... 그 여자가 말썽을 부리는 모양이야.

지금까지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고 있다는 거야."

"그러다가 열겠죠."

"아니야. 그게 아니야. 오반장 아니면 누구하고도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거야. 오반장한테는 여자를 끄는 무슨 매력이라도 있는

모양이지?"

병호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아마 저한테 침이라도 뱉고 싶어서 그럴

겁니다."

"아니야. 분명히 오반장을 지목했다는 거야. 오반장하고만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이야. 좀 도와주어야겠어."

"저는 지금 바쁩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알고 있어. 뭐 언제는 바쁘지 않았나. 그 여자한테 매달려

있으라는 게 아니야. 말문만 열어놓으라는 거야. 아무리 바빠도

서로 협조해야 할 것은 협조해야......"

"알겠습니다."

보스와 길게 이야기 해봐야 소용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말은 명령이었다. 그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일어섰다.

밖은 운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비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황무자가 구속되어 있는 곳으로 차를

몰고 갔다.

그녀가 갇혀 있는 취조실은 숨막힐 정도로 무더웠다. 그가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녀는 세 수사관을 상대하고 앉아 있었다.

그녀의 연분홍색 블라우스는 땀에 젖어 있었고 얼굴에서도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병호는 위층에 있는 통풍이 잘

되는 방으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그녀의 손목에 걸려 있는

수갑도 풀어주고 나서 가지고 온 캔맥주를 내놓았다.

"시원하니까 마셔봐요."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마개를 따내고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병호도 맥주를 입으로 가져갔다.

"당신이 맥주를 마시고 싶어할 거라고 생각했지."

그녀는 그를 쏘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목이 말라 혼났어요."

"물을 달라고 하면 될 텐데......"

"그 사람들이 주는 건 마시고 싶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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