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사 오병호-11화 (11/45)

11. 이상한 집

일본에 적군파(赤軍派)가 결성된 것은 1969년의 일이었다.

1960년대 후반 세계를 풍미한 월남전 반대운동에 편승하여

일본에서는 미·일 안보조약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이

전개되었는데, 그것을 계기로 각종 과격 단체들이 탄생되었고,

적군파도 그런 단체들 가운데 하나로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적군파는 첫번째 테러 대상으로 도꾜 주재 미국대사관과

소련대사관을 폭파하려고 했으나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 약 2백명

가까운 대원들이 체포됨으로써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한다.

그러나 그들은 조직을 정비하여 1970년 3월 31일 마침내 JAL

소속 727기를 납치하는데 성공한다.

악명을 떨치기 시작한 적군파는 이듬해 정부관리와 기업인들을

납치하려다가 다시 경찰의 기습을 받고 그 대원들이 다수

체포되고, 일부는 해외로 도주하여 팔레스타인 게릴라 조직과

제휴함으로써 적군파가 반제국주의 투쟁에 앞장서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1972년 일본 내에 남아 있던 적군파는 다른 과격단체와 손을

잡고 연합적군을 결성한다. 그들은 새로운 투쟁을 위하여 혹독한

훈련과 자아비판 및 자체 내의 숙청을 단행하는데 그 숙청방법이

너무도 악랄하고 혹독하여 세상에 큰 파문을 불러 일으킨다.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된 대원들이 피살체가 지상에 공개됨으로써

일본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내게 했고, 급기야 상당수의 대원들이

이탈하는 사태를 빚게 했다. 1973년 1월 1일에는 연합적군의

지도자가 형무소에서 자살하고, 체포된 나머지 간부들은

실형선고를 받게 되어 연합적군은 사실상 일본 국내에서

와해되고 만다.

그러나 일본 국내에서는 적군파가 발붙일 곳이 없어졌지만

국외에서는 여전히 그 잔류파들이 테러활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본 국내의 적군파와는 다른 별도의 새로운 적군파로

자처하면서 그 이름도 '일본적군'(日本亦軍:The Japanese Red

Army:JRA)이라고 고쳐부른다. 그들이 그 존재를 처음 드러낸

것은 1972년 5월 30일 이스라엘의 텔아비브공항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함으로써 24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살해하는 잔인한 테러를 감행하면서부터였다.

일본적군은 적군파의 아랍지부가 그 세력을 확장하여

팔레스타인 게릴라 조직과 제휴, 그 활동범위를 국제화함으로써

새로운 테러단체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1972년 6월 15일

'아랍적군으로부터의 강령'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한다. 그

성명서에서 그들은 일본 국내의 적군파를 공격하고 독자적인

노선을 걸어갈 것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우리는 1971년 2월 일본내 적군파와 동일한 의식을 갖고

아랍지부 건설에 착수하여 1년여에 걸쳐 세계의 각 전선과

교류해 가며 PFLP(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와의 공동 무장

투쟁을 전개해 왔지만, 아랍과 일본적군의 공통적인 노선을

전인민 앞에 표명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적군파의 구성원이었던 우리들이 국경을 초월한다는 현실 속에서

적군파를 일본의 혁명세력으로 끌어올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스스로 자기비판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동시에 우리에 대한 적군파의 대응이 어떠한 것이었나를 묻지

않으면 안 된다. 1971년 11월을 기점으로 우리와 적군파의

관계는 단절된 상태에 있었으며, 아랍지부 건설에서부터 물질적,

인력적 원조는 일절 없었다. 더욱이 현재의 무장을 모든 면에서

공유하도록 준비한 우리들에게 적군파의 대응은 불만의

연속뿐이었다."

일본적군은 1969년 적군파가 정립하였던 '세계당--세계적군--

세계혁명통일전선'이라는 전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게릴라 조직들이 추구하는 것처럼 이스라엘과의

투쟁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스라엘과의 투쟁은 바로 그를

지원하고 있는 선진자본주의 제국들과의 투쟁이며 그것은 곧

세계제국주의와의 투쟁이라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부르조아 계급의 대표적 존재로 인식하고 있고,

이스라엘이야말로 제3세계의 자원을 착취하고 수탈하는

제국주의의 거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팔레스타인 게릴라 조직들과 제휴하여 제국주의의 상징인

이스라엘을 타도하는 것을 지상목표로 삼고 있고, 그것이야말로

세계제국주의를 타도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그를 위해 일본적군은 팔레스타인 게릴라 조직뿐 아니라 터키

인민해방군, 서독적군파, 아일랜드의 IRA, 모잠비크 해방전선 등

세계 각국의 테러조직들과 제휴를 맺고 있으며, 2대 국제

테러조직인 '국제혁명기구'와 '세계혁명평의회'에도 모두

가입되어 있었다.

1977년 5월 일본적군은 그때까지의 팔레스타인 일변도의

노선에 과오가 있었음을 시인하고, 이후로는 일본혁명에 전력을

기울일 것을 선언한다.

"우리들이 팔레스타인 게릴라와 제휴한 이래 6년이

경과하였으나, 그간 우리들은 일본 인민에 대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떠한 사회를 실현시키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것인가를 전할 수

없었다. 우리들은 자신의 불충분함을 결과로 받아들여 일본

인민공화국의 실현을 위한 투쟁을 계속할 것을 약속한다."

마스오 부장의 일본적군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 경찰관들에게는

새로운 감각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그런 것은

남의 나라 이야기 정도로 피상적으로 들어왔었는데 마스오

부장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것이 현실적인 느낌으로 피부에

와닿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적군이 팔레스타인 게릴라 조직과 손을

끊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들은 세계혁명을 위해 공동전선을

펴되 자국 내에 먼저 혁명의 불길을 당겨야 한다는 거죠."

그의 이야기는 사쓰마 겐지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더욱 명확히

해주고 있었다. 병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적군파가 벌인 하이재킹을 보니까 주로

일본항공기를 대상으로 했더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것은 일본 국민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다른 항공기보다 일본항공기를

택함으로써 그들은 보다 큰 선전효과를 노린 겁니다."

"이번에도 그들은 JAL기를 대상으로 삼지 않을까요?"

"그럴 가능성이 크죠.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일본항공에 주의를 환기시켜 놨습니다. 보다 검색을

철저히 하고 보안을 강화하도록 지시해 놓았습니다."

"정보가 들어갔다고 해서 그들이 계획을 포기할까요?"

"정보도 정보 나름입니다. 자신들의 신원이 드러났을 경우에는

계획을 수정하거나 포기하겠지요. 하지만 막연히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그들은 계획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그들의 속성은 과격하고 저돌적이니까요. 웬만큼 위험해

가지고는 그들은 물러서지 않습니다. 놈들은 기어코 해내고야 말

겁니다."

"만일 이번에 일이 터지면 상당히 충격적인 것이 되겠군요."

"그럴 겁니다. 오랫동안 침묵을 지켜왔기 때문에 큰 것을

터뜨릴 가능성이 큽니다."

그게 무엇일까 하고 병호는 생각했다. 비행기를 폭파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을 무차별 학살할 것인가, 그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돈을 요구할 것인가.

장길모의 집은 한 마디로 호화 저택이었다. 그 집은 부유층이

살고 있는 J동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집 주위에는 성벽 같은 높은

담이 둘러쳐져 있어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형사 두 명은 꼬박 하룻동안 그 집 주위에 잠복해 보았지만

이렇다하게 이상한 사람들이 출입하는 것은 볼 수가 없었다. 그

집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집처럼 괴괴한 적막 속에 싸여

있었는데 밤에 불이 켜져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동네 반장의 말에 따르면 그 집에는 노부부만이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들 중 남자 쪽이 불치의 병에 걸려 있어서

노파가 간병을 하고 있으며 가끔씩 의사가 들르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는 듯 아침에는 앰뷸런스

한 대가 그 집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앰뷸런스의 옆구리에는

'K피부과의원' 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동네 반장은 그 집

노인이 무슨 병에 걸려 있느냐는 물음에 얼른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나병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나병환자라면 수용시설에 옮겨 치료를 받게 해야하지 않느냐고

하자 그렇지 않아도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런 말들이

오갔다고 했다. 나병환자를 동네에 둘 수는 없다고 처음에는

모두가 강경하게 나왔지만 노파가 눈물로 호소하는 바람에

그대로 눈감아주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노파는 영감과 단 둘이

살고 있는데 영감을 딴데로 가게하면 자기는 혼자서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 동네에 절대 폐를 끼치지 않게 하겠다. 영감을

절대 밖에 내보내지 않겠다. 영감은 이제 일흔이 넘어 얼마

살지도 못한다. 영감이 죽으면 자기도 죽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눈감아 달라. 여기는 우리가 20년 이상 살아온 집이다. 그리고

영감의 병명이 나병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나는 우리 영감과

한솥 밥을 먹고 있지만 전염되지 않고 있다. 제발 이 동네에

그대로 있게 해달라. 노파의 이같은 호소는 동네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그들은 더 이상 그들 부부를 쫓아내는 것을

강요하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동네 사람들과 내왕이 없으니 자연 그 집은

동네 속의 절해고도 같은 집이 되고 말았다. 아무도 그 집을

찾지 않았고 노부부 역시 남의 집을 찾아가는 일이 없었다.

가끔씩 노파가 장바구니를 들고 바깥 출입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동사무소에 비치되어 있는 주민등록표에는 노부부 외에

장길모라는 40대의 남자가 동거인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란에는 장길모가 아들로 되어 있었다. 형사들은

하룻동안 잠복해 보았지만 장길모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출입하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형사 한 명이 본부로 상황을 보고했다. 이야기를 듣고 난

병호는 잠복을 그만두고 한번 그 집에 들어가 일단 사람들을

만나보라고 지시했다.

젊은 형사들은 땀에 젖은 몸을 이끌고 그 집으로 향했다. 그

집의 높다란 담벽은 담쟁이 덩굴로 덮여 있었다.

"과거에는 아주 잘 살았던 집 같아."

안경을 낀 형사의 말에 멀쑥하게 키만 커보이는 형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초인종을 눌렀다.

철제 대문에는 두텁게 녹이 슬어 있었다. 기둥에는

장문구(張文九)라는 낡아빠진 나무 문패가 붙어 있었다.

한참만에야 안쪽에서 신발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늙은 노파의 목소리가 안쪽에서 들려왔다.

"실례합니다. 동회에서 호구조사 나왔습니다."

오후 6시가 지났는데 동회에서 호구조사를 나왔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것을 모르는지 노파가 쇠빗장을

잡아빼는 소리가 끼익끽하고 들려왔다. 이윽고 쪽문이 열리면서

노파의 모습이 보였다.

"실례합니다."

형사들은 안으로 들어섰다.

노파의 머리는 온통 잿빛으로 덮여 있었다. 얼굴은 주름으로

쪼글쪼글해 보였다. 조그만 눈이 흐릿하게 흔들렸다. 노파의

등은 굽어 있었다. 그녀는 무표정하게 방문객들을 쳐다보았다.

"여기 장길모씨 계십니까?"

"길모라구요?"

노파가 혀짧은 소리로 물었다.

"네, 장길모씨 말입니다. 그 사람 지금 이 댁에 있습니까?"

노파가 머리를 흔들었다.

"없어."

"어디 갔나요?"

"몰라."

노파는 머리를 흔들었다.

"장길모씨하고 어떻게 되십니까?"

"아들이야.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야."

정원에는 수목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손질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값비싼 정원수들이 아무렇게나 자라고 있었다.

"아드님도 여기에 살고 있습니까?"

노파가 다시 머리를 흔들었다.

"살지 않아. 미국에 갔어."

"언제 미국에 갔나요?"

"오래 됐어."

"할머니, 거짓말하시면 안 됩니다. 아드님은 며칠 전에

귀국했습니다."

"몰라. 그런 것 몰라. 그애는 여기 오지 않아."

저만치 수목 사이에서 누군가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형사들은 긴장해서 그쪽을 바라보았다.

"저기 누가 있습니까?"

형사들이 그쪽으로 가려고 하자 노파가 그들을 막아섰다.

"안 돼, 물어볼 게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요. 우리 영감은 안

돼."

"잠깐이면 됩니다."

형사들은 노파를 뿌리치고 그쪽으로 다가가 보았다.

이윽고 나무 뒤로 돌아간 그들은 멈칫하고 그 자리에

서버렸다.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진 노인이 그들을 쏘아보며 서 있었다.

그의 입에는 파이프가 물려 있었다. 코는 문드러져 있었고 입은

뒤틀려져 있었다. 뒤틀린 입에 파이프가 물려 있는 것이 더욱

괴기스러워 보였다. 두 눈은 벌겋게 짓물려 있었다. 머리에는

머리카락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누구요? 어디서 왔소?"

노인의 입에서 파이프가 굴러떨어졌다. 그는 허리를 굽혀

문드러진 손으로 그것을 집어들었다.

"경찰에서 왔습니다."

"왜? 무슨 일로 왔소?"

뒤틀린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분명하지가 않았지만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장길모씨가 아드님 되십니까?"

"그렇소."

노인의 두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피가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아드님을 좀 만나려고 왔습니다만......"

"그애는 여기에 없소. 그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아닙니다. 참고인으로 뭘좀 물어볼려고 왔습니다."

"그애는 여기 살지 않아요. 발 끊은 지가 오래 돼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왜 부모가 살고 있는 집에 들어오지

않는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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