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사 오병호-8화 (8/45)

8. 본격수사

두 사람은 지난 7월 14일 노엘 화이트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입국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검토해 보았다. 이번에는 함께 작업을

했기 때문에 아까보다는 좀더 빨리 해치울 수가 있었다.

7월 14일 오후 6시 KAL 706편으로 노엘 화이트와 함께 입국한

사람들은 모두해서 389명이었다. 입국자들을 국적별로 보면 단연

일본인이 제일 많았고, 그 다음이 한국인들이었다. 389명 가운데

입국 당일 혹은 7월 20일까지의 사이에 H호텔에 투숙한 적이

있는 사람은 6명이었다.

1. 大野保(오노 다모쓰) : 일본인 남자. 1942년 5월 4일생.

여권번호 05720467X. 호텔 투숙일자 7월 14일.

2. 多田紀美(오다 기미) : 일본인 여자. 1958년 11월 19일생.

여권번호 09152684X. 호텔 투숙일자 7월 17일.

3. 右川龍造(우가와 류조) : 일본인 남자. 1946년 9월 2일생.

여권번호 07236582X. 호텔 투숙일자 7월 18일.

4. Guinter Yulmut(귄터 율무) : 독일인 남자. 1953년 4월

10일생. 여권번호 AM261852X. 호텔 투숙일자 7월 18일.

5. 馬如九 : 홍콩인 남자. 1947년 8월 16일생. 여권번호

S9186349X. 호텔 투숙일자 7월 14일.

6. Frederick Masur(프레드릭 마주르) : 영국인 남자. 1944년

9월 5일생. 여권번호 M9803519X. 호텔 투숙일자 7월 19일.

여섯 명 가운데 지금까지 호텔에 남아 있는 사람은 일본인

오노 다모쓰와 독일인 귄터 율무뿐이었다.

오다 기미와 우가와 류조는 7월 21일에 H호텔에서 나간 것으로

되어 있었다. 영국인 프레드릭 마주르도 같은 날짜에 프런트에서

체크아웃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홍콩인 마여구는 그보다 하루

전날인 7월 20일에 호텔에서 빠져나간 것으로 되어 있었다.

"토머스 러트, 그리고 노엘 화이트...... 그들과 함께

입국해서 H호텔에 묵었거나 현재 묵고 있는 사람은 모두

10명이야. 이들 중에 공범이 있을지 모르니까 이들의 뒤를

철저히 추적해볼 필요가 있어."

"먼저, 출국했는지 그것부터 알아봐야겠는데요."

왕이 완전히 잠에서 깨어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이어서

"만일 아직 출국하지 않은 자가 있으면 어떻게 할까요?"하고

물었다.

"출국 정지를 시켜. 그렇다고 오랫동안 붙잡아둘 수는 없고

하루 이틀 정도 붙잡아두고 철저히 조사를 해보고 나서 혐의점이

없으면 출국시켜."

"알겠습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수사범위가

확대되는데요. 인원이 절대 부족합니다."

"지원을 요청해야겠어. 인원이 부족해서 수사를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 무제한으로 투입시킬 테니까 철저히 조사를

해."

"이건 순전히 육감입니다만......이번 사건은 단순 살인사건이

아닌, 모종의 흑막이 있는 꽤 심각한 사건 같은 생각이 듭니다."

오병호는 심복 부하에게만 속에 품고 있는 생각을 털어놓고

싶었다. 그는 소퍼에서 자고 있는 형사 쪽을 한번 쳐다보고 나서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어 입을 열었다.

"하이재킹일 가능성이 많아. 아니, 하이재킹이라고 나는

단정을 내리고 싶어."

병호를 바라보는 두꺼비의 두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병호는 자신의 그렇게 보는 이유를 왕에게 설명해 주었다.

설명을 듣고 난 왕형사는 병호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이라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군요. 바로 그것이었군요."

하고 얼거렸다.

"하지만 이건 당분간 우리 둘만이 알고 있는 게 좋아. 지금

터뜨리면 소동만 일어나지 수사에 도움이 될 게 하나도 없어.

신문에 공개되기라도 하면 수사는 더욱 어려워져. 그리고 그들이

노리고 있는 게 하이재킹일 거라는 건 어디까지나 심증일 뿐이지

정확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야. 그러니까 우리는 그 증거를

찾아야 해. 증거를 찾는 방향으로 수사를 전개해야 해."

두꺼비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물론 신문과 방송에서는 H호텔에서 발생한 외국인 피살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사건내용이 특이하고 잔인한데다

그동안 별로 큰 사건이 없었기 때문에 각 보도기관에서는 외국인

피살사건을 때를 만난 듯 다투어 센세이셔널하게 보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건 보도에는 수류탄에 관한 이야기는

하나도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수류탄에

관한 이야기는 공개되지 않은 채 병호의 안주머니 속에 깊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설사 보도기관에서 수류탄에 관한

이야기를 알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외국인 피살사건과 연관시켜

생각한다는 것은 수사기관의 도움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토머스 러트에 대해서는 이미 사건 발생 직후부터 출국

정지명령이 내려져 있었다. 그가 호텔에 체크아웃도 하지 않은

채 행방을 감추었고 지금까지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노엘 화이트를 살해했을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었다. 사건 발생 직후 경찰은 공항과 항만을 봉쇄하고 러트가

출국했는지 그것부터 알아보았는데 다행히 그때까지 그가 출국한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경찰은 그가

틀림없이 국내에 잠복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품고 전력을

기울여 그를 찾고 있었다.

날이 새자 새로 투입된 수사요원들이 10명의 입국자들에 대한

소재 파악에 나섰다.

10명 중 아직 출국하지 않고 H호텔에 남아 있는 일본인 오노

다모쓰아 독일인 귄터 율무에 대해서는 경찰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생각해서 그들이 공범이라면 지금까지

사건이 발생한 그 호텔에 묵고 있을 리가 없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단 형식적으로나마 면담 정도는 해보고

넘겨야 뒤끝이 깨끗할 것이라고 생각되어 병호는 여자 형사로

하여금 그들을 만나보게 했다. 여형사에게 그 일을 맡긴 것은

일손이 달리는 지금 형식적인 일을 처리하는데는 별로 능력도

없어 보이는 그녀가 제일 적당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녀는 뛰어난 미모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고 필요한 것을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스물여섯 살의 미혼 처녀로 경찰에 들어온 것은 3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나마 수사계통에서 일한 지는 1년

조금 넘은 햇병아리 형사였다. 그녀의 신분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녀를 보면 그녀는 번화가의 패션이나 썩 어울리는 멋쟁이

아가씨였다. 그런 아가씨가 형사라고 하면 모두들 의외라는 듯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화장도 진하게 하는 편이었다.

"외국인을 조사하는 것은 매우 실례되는 일이니까 기분상하지

않게 요령껏 해야 해요. 두 가지 측면에서 알아봐요. 하나는

그들이 공범일 가능성에 대비해서 알아봐요. 다른 한 가지는

그들이 공범이 아닐 경우인데, 그 경우라 하더라도 기내에서

혹시 노엘 화이트와 러트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들의 사진과 몽타지를 보여주면서 동행이 없었는지 물어봐요.

요령 있게 물어봐요. 외국인들이니까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돼요."

병호는 그 정도로 말해주고 그녀를 내보냈다. 그런데 그녀는

나간지 10분도 못 되어 돌아왔다. 일본인과 독일인이 제각기

묵고 있는 두 방에 가봤는데 모두 공교롭게도 외출중이라는

것이었다.

"언제 나갔는지 알아봐요."

병호의 말에 그녀는 프런트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전화를

걸고 나서 하는 말이 이랬다.

"잘 모르겠다는데요."

병호는 그녀에게 그녀가 다음에 취해야 할 행동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

아침 10시가 되기 전에 병호는 충혈된 눈으로 4명의 명단을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법무부 출국과에서 통보되어 온 출국자

명단이었다. 10명 가운데 이미 출국한 사람은 미국인 필립 로이,

프랑스인 알렝 가베, 일본인 우가와 류조, 그리고 홍콩인

마여구였다. 그들이 H호텔에서 체크아웃한 날짜와 출국일자는

서로 일치했다.

병호는 그들의 명단을 한쪽으로 제쳐놓고 아직 출굴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의 명단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그들 가운데는

한국인 장길모도 끼어 있었다. 그리고 두 명은 아직 H호텔에

남아 있었다. 나머지 세 명은 일본인 사쓰마 겐지와 역시 같은

일본인으로서 젊은 여자인 오다 기미, 그리고 영국인 프레드릭

마주르였다.

10시가 지났을 때 신원조회를 의뢰했던 각국 대사관으로부터

하나 둘씩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맨처음 연락을 해온 곳은 미국 대사관이었다.

미국 대사관 직원은 피살된 노엘 화이트의 여권이

위조여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행방을 감춘 토머스 러트의

인적사항은 모두 허위라고 알려주었다. 나머지 사람들, 그러니까

사건 발생당일인 7월 20일 H호텔에 투숙해 있던 미국인들의 인적

사항은 모두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그 직원은

말했다.

"노엘 화이트와 토머스 러트에 대해서 좀더 자세한 것을 알 수

없을까요?"

"신원이 모두 가짜이기 때문에 당장 알아낸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보내주신 그들의 사진과 몽타지를 FBI에

보내서 수사를 의뢰했기 때문에 조만간 어떤 연락이 있을

겁니다. 그때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그 직원은 사무적으로 말하고 나서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오후 3시가 지났을 때는 한국에 주재하고 있는 18개국

대사관으로부터 신원조회 의뢰에 대한 결과가 모두 도착해

있었다. 그 가운데 미국측을 제외하고 문제의 인물이 있다고

통보해온 곳은 일본과 영국 대사관 두 군데였다. 나머지는

이상이 없다고 통보해왔다.

일본측에서 이상이 있다고 연락해준 인물은 사쓰마 겐지라는

자였다. 그는 지난 7월 13일 토머스 러트가 타고온 AF 271편기에

동승하여 입국했고, 바로 그날부터 H호텔에 투숙해 있다가 8일

후인 21일에 호텔을 나간 인물이었다. 그리고 아직 국내에 남아

있는 것으로 판명된 자였다. 주한 일본국 대사관에서 통보해 온

내용은 조금 구체적인 것이었다.

"사쓰마 겐지 -- 일본 적군파 대원으로 현재

지명수배중인자임."

그것은 긴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일본국 대사관 직원은 사쓰마 겐지가 아직 한국 내에 있을

경우에 따라서는 일본 경찰이 한국으로 건너와 수사에 협조할

수도 있다고 전해주었다. 병호는 즉시 일본 경찰의 협조를

구했다. 일본에서 수사팀이 와주면 사쓰마에 대한 정보를 보다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영국측에서 문제가 있다고 통보해온 인물은 프레드릭

마주르였다. 그는 7월 14일 노엘 화이트가 타고온 KAL 706편으로

입국한 영국인이었다. 그는 7월 19일에 H호텔에 투숙했다가

21일에 체크아웃했고, 아직 출국하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

"프레드릭 마주르 -- 그의 여권은 변조여권임. 프레드릭

마주르는 2년 전에 사망했음."

어렴풋하던 하나의 윤곽이 이제 뚜렷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 같다고 병호는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물들이 눈앞을 어지럽히고 있었지만 이제는

수배대상 인물이 분명해졌다. 그들을 빨리 체포해야 한다. 체포

이유도 충분하다. 한 명은 일본적군과 대원으로 일본 경찰이

수배중인 자이고 토머스 러트와 프레드릭 마주르는 위조 여권을

지니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체포 사유가 되고도 남는다.

병호는 상부에 보고하러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가

생각을 고쳐 먹고 도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보고를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어 보스한테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시간

절약을 위해 전화로 간단히 끝내면 된다. 상대방이 불쾌하게

생각하든 말든 그런 건 알 바 아니다. 그런 것까지 고려한다는

것은 너무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한 그는 수화기를 집어들고

보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스는 마침 자리에 있었다.

보스는 콜록거리면서 병호의 이야기를 듣고 나더니 흥하고

코웃음쳤다. 그리고 피곤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바야흐로 범죄도 국제화 시대를 맞이했군. 인터내셔널

킬러들이 한국에 몰려들어와 설쳐대고 있다는 건가? 재미있는

일이야."

"전경찰력을 동원해서 이들 세 명을 빨리 체포하지

않으면......"

병호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보스의 말을 막으려고 했지만 그는

듣지 않고 자신의 말을 계속했다.

"타겟이 정해진 이상 이제 쏘는 일만 남았지 않나. 방아쇠만

당기면 되는데 문제될 것 없단 말이야. 아주 좋은 찬스야.

인터내셔널 킬러들을 일망타진해서 코리안 폴리스의 저력을

세계에 과시할 수 있는 좋은 찬스란 말이야. 사람은 찬스를

이용할 줄 알아야지."

"네, 그렇습니다."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경찰력을 총동원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보스는 외국어를 섞어서 말하는 그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저 버릇을 언제쯤 고칠 수 있을까. 저것도 일종의

병이겠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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