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장(4권) (29/30)

1장

“얘들은 또 뭐야?”

자신을 올려다보며 그 자리에서 흠칫 굳은 여기자를 잠시 쳐다보던 강패가 입구에 우글우글 몰려 있는 기자들을 보곤 인상을 찌푸렸다.

“허어……. 이게 무슨 일입니까 병원장님?”

역시 그 모습을 본 조모강이 기가 차다는 듯, 옆에서 허리를 굽실거리고 있는 중년 남자를 향해 물었다.

병원장이라 불린 중년 남자가 허둥지둥 손을 내저었다.

“저…… 저도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리시면…….”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병원장의 기름진 이마를 불쾌하게 일별한 조모강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병원 관리를 이 정도밖에 못하는 겁니까? 이토록 무능력한 사람이 병원장이라니…… 하아…….”

그냥 인상을 찌푸린 채 몇 마디 한 것뿐이지만, 병원장은 사신의 낫이 자신의 목 근처에서 살랑거리는 듯한 오싹함을 느꼈다.

조모강.

조선 그룹의 총수이자 이 병원의 최대 투자자.

병원장 하나 갈아치우는 것쯤은, 작은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다.

“세인이한테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고 한 건 병원장님이 아니셨습니까. 그런데 지금, 이 병원이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보입니까?”

로비에 있는 환자들이나 환자 가족들 역시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고성이 계속해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병원장은 안절부절못하며 식은땀만 뻘뻘 흘렸다.

조모강이 강패를 데리고 간 곳은 세인이 입원해 있는 대학로의 한 대학 병원이었다.

초호화 1인실에 가만히 누워 있던 세인은 조모강이 들어오자 좀이 쑤셔서 못 견디겠다며 몸을 비비 꼬았다.

그러면서 퇴원하면 안 되겠냐고 아양을 떨었고, 그 와중에 강패가 들어오자 화들짝 놀라 침대에서 떨어졌다.

만여와 소영은 강패 앞에서 얼굴을 붉히며 쑥스러워하는 세인을 보면서, 굳이 여자의 육감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 하나를 인지할 수 있었다.

연정.

세인이 다른 재벌가의 혈육들과는 다르게 개념이나 생각이 똑바로 박힌 사람이란 것은 만여와 소영, 둘 다 인정하는 바였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봉사활동을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하면서 꽤 오랜 시간 동안 해 온 데다, 더불어 조모강의 손녀란 이름을 팔아서 한 일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온실 속의 화초였다.

어려서부터 조선 그룹이라는 거대하고 견고하며 화려한 성 안에서 공주 취급을 받아온 그녀는, 기본적으로 ‘백마 탄 왕자’에 대한 로망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면에서 강패는 그 로망에 부합하는 거의 완벽한 표본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이 주목한 점은 그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저 변태를 한 번에 알아봤지?’

‘저 애보다 내 눈이 못한가?’

어떻게 알아 본 것인지, 세인은 180도 바뀌어 버린 외형에도 불구하고 한눈에 강패를 알아봤던 것이다.

만여와 소영은 새삼 세인에게 감탄했다. 저렇게 순수하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다는 것 자체가 만여와 소영에게는 신기하고, 또 부러운 일이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는 꽤 잘생겼지…….’

‘강하니까…….’

소영이나 만여가 강패를 바라보는 관점은 사뭇 달랐지만, 둘은 금세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한편, 강패는 계속해서 자신의 몸을 툭툭 건드리는 기자들의 행동에 이를 갈았다.

툭, 툭.

“…….”

뿌득!

섬뜩한 소리에 만여와 소영은 움찔했다. 하지만 정작 기자들은 자신들의 소리에 묻혀 듣지 못했다. 더군다나 강패를 등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뒤에 강패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오싹!

“뭐…… 뭐야?”

“갑자기 웬 오한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재미와 명진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던 기자들 중 일부가, 서늘해지는 느낌과 동시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목덜미에 섬뜩한 한기가 느껴지는 것도 같고, 예리한 무언가가 몸을 스쳐 지나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 느낌을 받은 기자들이 주위를 휘휘 둘러봤다. 하지만 섬뜩한 느낌은 딱 달라붙어 사라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던 강패가 서늘하게 말했다.

“안 비켜?”

“……!”

오싹함을 느끼고 있던 기자들은 마치 마취 총에 맞기라도 한 듯 석상처럼 굳었다.

그런 증상을 보이는 기자들은 점점 그 수가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결국 병원 본관 입구를 꽉 틀어막고 있던 수십 명의 기자들이 같은 증상을 보이기에 이르렀다.

한 톨의 기운도 끌어올리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자신이 생각하는 것에 따라 강패의 기세가 실타래처럼 풀리며 기자들의 온몸을 꽁꽁 묶어 놓은 것이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입구를 보며 강패는 그제야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병원에선 정숙해야지.”

어느 순간부터인가 강패가 뿜어내는 기세는 그의 의지와 맞물려서 수발이 자유로워지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그가 잠들기 전이었던 65년 전과는 다른 수준이었지만, 정작 강패는 그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강패가 휘적거리며 기자들 사이를 헤집었다.

기자들은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기자들은 그저 눈으로만 빠르게 강패를 훑어보았을 뿐이었다.

“아, 형님! 이때예요!”

“응?”

순간 들린 익숙한 목소리에 강패는 고개를 순간적으로 갸웃거렸다.

동시에 앞쪽의 기자들이 비틀거리며 물러나더니, 명진의 옷자락을 붙잡은 재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시끄러운 놈이랑…… 안 형?”

강패의 목소리에 재미와 명진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저를 아세요?”

“나…… 나를 압니까?”

겉모습이 워낙 달라졌기 때문에 재미도, 명진도 강패를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다.

멍청히 자신을 쳐다보는 재미와 명진을 심드렁하게 쳐다보던 강패가 툭 던지듯 말했다.

“넌 시끄러운 여자 꼬맹이들 달고 다니면서 시끄럽던 놈. 그리고 안 형은 여기서 뭐하는 거요? 왜 이놈이랑 같이 다녀?”

“강패…… 형?”

“강패…… 아우?”

재미가 선이 고운 꽃미남이라면 강패는 그와 정반대의, 강인하고 위압감이 넘치는 인상이었다.

생김새 자체만 보면 재미보다 잘생겼다고 할 수 없었지만, 이 시대의 일반인은 가질 수 없는 특유의 분위기가 흘러넘쳤다.

남을 죽여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백척간두에서 오랜 기간을 살아왔던 강인함.

그러한 강자의 여유가 느껴지는 강패의 눈은 평화로운 현대의 사람들에게 낯설었기에, 무의식적으로 동경하거나 경외하게 되는 그런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재미와 명진도 다르지 않았다.

남자가 남자에게 보내는 눈빛치고는 과한 것이었기 때문에 강패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 떨거지들은 또 뭐고?”

강패가 인상을 찌푸린 채 기자들을 돌아봤다.

슬슬 기세가 풀려가고 있던 시점에서 움찔거리고 있던 기자들은 그 자리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머리가 아닌 본능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기자들이 낑낑거리고 있는 것을 본 강패가 명진과 재미를 재차 쳐다보았다. 그때 강패의 뒤에서 총알처럼 튀어나오는 것이 있었다.

“바커스의 재미! 재미 맞죠? 꺄아아아! 진짜 재미야! 어쩜 좋아! 할아버지! 할아버지이!”

강패 앞에서 계속 조신한 척 몸을 배배 꼬던 세인이 총알처럼 튀어나와 재미의 손을 붙잡고 방방 뛰었다.

“네, 네…….”

“풋…….”

“푸흣…….”

마치 주인을 보고 반가워하는 강아지 같은 그녀의 모습에 재미가 얼떨결에 대답했고, 만여와 소영이 웃음을 터뜨렸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이분이 바커스란 그룹의 재미에요! 재미라고요!”

“호오……. 강패 님과 아는 사이십니까?”

세인의 호들갑에 조모강이 재미를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조모강도 세인에게서 바커스란 아이돌 그룹에 대해 귀가 따갑게 들어 왔다. 그들이 속한 연예 기획사가 한국 연예계를 가르는 거대 기획사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조모강은 강패와의 연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때문에 세인보다는 강패와의 인연에 관심이 더 있었다.

“꼬맹아, 시끄럽다. 조용히 좀 해.”

하도 난리를 치는지라 강패가 귀를 후비적대면서 세인에게 말했다.

“아, 아! 저, 저기…… 그게 아니라요 아저씨…….”

그제야 강패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세인이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팍 숙였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아까의 오두방정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재미와 명진은 놀람과 반가움에 강패의 손을 하나씩 덥석 붙잡았다. 말하는 투가 영락없는 강패였던 것이다.

“형! 진짜 형 맞네요! 이러니까 완전 딴사람인데요? 엄청 잘생겼어요!”

“아우! 몸은 멀쩡한가? 병원에서 나오다니…… 역시 다친 거 맞지?”

“왜, 왜 이래?”

격한 반응에 놀란 것은 오히려 강패였다. 하지만 놓지 않을 듯 꽉 맞잡은 둘의 손에 곧 인상을 찌푸렸다.

한 명은 노숙자, 그리고 또 한 명은 유명 연예인.

그 둘이 강패의 손을 붙잡고 있는 모습에 조모강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자……. 일단 자리를 옮깁시다. 여기는 회포를 풀 만한 자리가 아닌 것 같으니까요. 괜찮으시겠습니까, 강패 님?”

시끌벅적한 지금 상황을 정리하려는 듯 조모강이 묻자 강패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끙…….”

강패는 자신의 양옆을 차지하고 앉은 여자 두 명을 보면서 골치 아프다는 듯한 신음성을 내뱉었다.

“뭐에요 그 소리는?”

“너 대체 언제까지 졸졸 따라다닐 생각인 거냐?”

자신을 째려보는 소영에게 강패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소영이 흠칫 놀라면서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따라다니고 싶어서 따라다녀요? 차장님이 따라다니라니까 따라다니는 거지! 나도 싫다고요!”

사실 싫은 것은 거의 없다고 하는 것이 맞았다.

파견 형식이지만 딱히 임무를 부여받은 것도 아니니 번거롭지 않아서 좋았다. 출퇴근 시간이 불규칙하다는 점은 불편했지만, 파견이니 그런 것쯤은 감수할 수 있었다.

왜 강패만 보면 서로 이렇게 으르렁대는지는 소영 자신도 몰랐다.

그녀는 그저 강패와의 첫 만남 자체가 좋지 않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하지만 날 구해 주기도 했었는데…….’

소영이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녀는 강패에게 구명받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왜 강패와 자꾸 엇나가는 것일까?

‘이왕에 받은 임무면 그냥 편하게, 친하게 지내도 좋을 텐데…….’

이왕 파견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거라면, 그 대상인 강패와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것이 최선책이었다.

소영은 강패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면서 내심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인간이랑 뭘 오손도손 놀겠다고……. 생각을 말자, 말아!’

내심 고개를 젓는 소영이었지만, 이내 다시 강패의 옆모습을 살폈다.

‘잘생기기는 했는데……. 어쩌면 핑크빛 로맨스도…….’

혼자 다시금 망상의 세계로 빠지는 소영을 뒤로하고, 강패는 앞에 앉아 싱글벙글 웃고 있는 재미와 명진을 쳐다봤다.

“날 찾아다녔다고?”

명진과 재미의 어드벤쳐를 들은 강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명진은 그렇다 쳐도, 재미는 그럴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넌 왜?”

“형, 오늘 행색을 보니 노숙자는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형한테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장내의 시선이 모두 재미에게 모였다.

재미가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여기 옆에 명진 형님까지 구하시는 셈치시고, 저 하는 일 좀 같이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네 일?”

강패가 선 굵은 눈썹을 잔뜩 찌푸렸다.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눈치였기에 재미가 설명을 덧붙였다.

“저번에 형이 저한테 처음 보여 주셨던 거, 그거 저 정말 필요하거든요. 형이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월급은 넉넉히 드릴게요.”

“보여 줬던 게 뭔데?”

강패가 인상을 와락 찡그렸다.

누가 봐도 기분이 나빠지는 모양새라 재미도 깜짝 놀랐지만, 그렇다고 물러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정말 인간답게 살아 보고 싶어요. 노래가 좋고 춤이 좋아서 연예인이 됐는데. 이건 정말 사람이 살 수가 없어요. 형도 보셨잖아요, 그 사생 팬들……. 새벽까지 쫓아다니던 그…….”

재미는 사생 팬들이 기억난 것인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강패도 그런 재미의 모습에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였지만, 못마땅한 기색은 여전했다.

“그러니까, 지금 나더러 네 뒤꽁무니나 따라다니면서 쓰레기 처리를 하라는 거냐?”

“아니에요. 전 그냥…….”

강패의 과격한 표현에 재미가 손을 황급히 내저었다.

그러나 어쨌든 비슷한 일로 부탁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재미는 금세 할 말을 잃었다.

그때, 옆에서 가만히 보고 있던 조모강이 불쑥 입을 열었다.

“강패 님, 한번 해 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뭐요?”

거칠 것 없는 강패였지만 조모강의 말을 다른 이들처럼 마냥 무시할 순 없었다.

나이로만 따지면 강패가 훨씬 많았으나, 그건 특수한 경우였기에 외관으로 보나 실질적으로 살아온 세월은 앞지를 수 없었다.

적어도 조모강이 호의적으로 대하는 이상, 선을 과도하게 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나더러 애나 돌보라?”

강패에게 있어 어려울 것은 없었다.

단지 자존심이 상할 뿐.

게다가 자유분방하고 거슬릴 것 없이 살아온 강패에게 있어, 이런 제약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달갑지 않았다.

“아닙니다. 요즘 연예계는 그렇게만 보실 것이 아닙니다.”

“…….”

강패는 침묵을 유지했다. 그 모습을 더 말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 조모강이 물로 목을 축인 후 입을 열었다.

“물론 강패 님께서 이런 일을 하신다는 게 자존심 상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

마음을 헤아리는 말에 강패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그에 재미가 조모강에게 감사의 눈빛을 보냈지만, 조모강은 강패의 얼굴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하지만 요즘 연예계, 그중 이 친구가 속한 바커스는 하나의 작은 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년에 벌어들이는 수입만도 수백억을 호가하고, 사회적으로 끼치는 영향 역시 결코 작지 않습니다. 게다가 외국에서도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만큼 이들이 하는 노래와 춤은, 이제 그저 노래와 춤으로 볼 수만도 없게 되었습니다.”

“볼 수 없게 되었다?”

한결 누그러진 답변에 조모강이 목소리에 더욱 힘을 실었다.

“문화 정복입니다. 이들의 문화가 조금씩 다른 국가에 스며듦으로 인해, 적어도 어느 정도까지의 문화 정복이 가능한 것이지요. 이들의 노래로 인해, 이들의 존재로 인해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이 대한민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는 순간, 그 작은 토대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조모강의 말을 모두가 숨을 죽이고 들었다.

스케일이 너무 컸고, 허무맹랑한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다들 고개를 끄덕거렸다.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의 틈을 비집고 들어왔던 일본 문화로 인해 걱정스런 말들이 많이 나왔었다.

일제강점기의 흔적을 아직 완전하게 벗겨내지 못한 상태에서 흘러 들어온 일본 문화가 국민들의 정서를 침범, 일본의 문화 식민지가 될 수도 있다는 다소 과격한 의견들도 나오곤 했었다.

물리적으로 다른 나라를 정복하는 것도 무섭지만,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한 나라의 문화를 침범해 물들이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문화 정복.

문화란 것은 단순히 향유하고 소비하는 컨텐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언어, 생활 습관, 취미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분야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기에, 문화를 정복한다는 것은 한 개인의 정체성이 다른 문화의 하위 객체로서 받아들여진다는 것과도 일맥상통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강제로 창씨개명을 하게끔 시키고, 한국어 말살 정책을 펼치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에 비해 그것을 가능하게끔 해 주는 이들, 그러니까 이 청년처럼 예술을 행하는 주체에 대한 정책과 시민 의식이 매우 미흡합니다. 아무 이유 없이 이들을 싫어하는 이들도 부지기수입니다. 반대로 이들을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이들도 문제지요. 싫어하는 이들은 단순히 욕을 하는 것만이 아니라 섬뜩한 저주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공인이라는 것을 악용하여 공격하기도 합니다. 동시에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이들은 그들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등, 삐뚤어진 욕망으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요.”

“결론이 뭐요?”

설명을 듣던 강패가 성급하게 묻자 조모강이 미소를 지었다.

“강패 님은 얼마 전까지 노숙자 생활을 하셨습니다. 사회생활을 해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노숙자에서 벗어나신 만큼 현 사회에 적응하실 시간이 필요하실 겁니다. 그러니 길지는 않더라도 한 번쯤은 경험해 보십시오. 연예계만큼 현 사회의 축소판인 곳도 또 없습니다.”

조모강의 의도는 단순했다.

강패로 하여금 연예계의 경험을 하게끔 함으로써 사회의 텁텁함을 확실하게 각인시키려는 것.

연예계만큼 살기 힘든 곳도 없다.

일견 화려하지만 뒤로는 더럽기 그지없으며, 순수했던 사람도 순식간에 타락하는 곳이다.

무엇보다 ‘돈’과 대단히 밀접하게 연관되는 곳이기에, 조모강은 조선 그룹의 위력을 확실하게 각인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모습을 강패가 지켜보게 함으로써 조선 그룹이란 이름이 가지는 거대한 힘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래서 강패가 자신들과 연을 맺게끔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국정원 차장을 통해 우리는 재계 서열 1위로 올라설 수 있다.’

조모강이 속으로 미소를 머금었다.

강패가 그런 조모강의 얼굴을, 특히 그중에서도 눈을 유심히 살폈다.

강패를 진지하게 쳐다보는 얼굴에서는 진심이 담뿍 묻어 나오는 것 같았지만 마음의 창, 눈동자에서는 본심이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뭐, 본심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지켜보도록 하지.’

조모강의 눈을 통해 꿍꿍이를 느낀 강패가 피식 웃었다.

하지만 조모강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사회 적응이라…….”

확실히 전장에서만 시간을 보냈던 강패가 사회가 돌아가는 원리를 제대로 알고 있을 리 만무했다.

조모강의 제안은 확실히 논리적이고 합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누군가의 보모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다.

“……한 달만 하도록 하지.”

“하…… 한 달이요? 형, 그건 너무 짧은…….”

한 달만 하겠다는 말에 재미가 말끝을 흐렸다.

조모강이 재빨리 그 뒤를 이었다.

“아니, 그 정도만 해보고 일단 더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강패 님은 이 차장님과 일하실 생각이십니까?”

조모강은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준족의 이름을 꺼냈다.

강패가 조모강을 빤히 쳐다봤다.

자신이 아는 사람 중에 조모강이 알 만한 사람은 준족 밖에 없었다.

“일이라니?”

강패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조모강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이 차장님께서 강패 님에게 하도 극진하셔서, 전 두 분께서 같이 일을 하시는 분인 줄 알았습니다. 상전을 대하는 듯한 태도더군요.”

살짝 찌푸려졌던 강패의 눈썹이 금세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냥 아는 사이일 뿐이오.”

“그렇습니까. 그러면…….”

조모강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 눈빛을 본 만여는 조모강이 무언가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냥 잠자코 있었다. 조모강이 지금까지 강패를 대하는 태도로 봤을 때 호의적이면 호의적이었지, 나쁜 쪽으로 수를 낼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일하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제가 들은 바로는 강패 님의 무술 실력도 대단하시다고 들었는데……. 소속 없이 활동하시는 것보다는 소속을 하나 만드시는 것이 어떠실는지……?”

“소속?”

“지금은 여기 있는 청년과 아시는 사이라 구두로 계약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모름지기 모든 사회생활과 비즈니스의 기본은 계약서입니다. 문서로 계약 조항을 써 놓아야 나중에 뒤탈이 없을 겁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소속이 있는 것이 활동하시기에 편하실 것이고요.”

“……그래서 법전에 그렇게 계약서하고 뭐니 나오는 것이었군.”

지하보도에서 책을 읽을 때 법전 쪽도 읽어 본 강패였다.

그때는 계약서니 뭐니 하는 단어가 생소했는데, 그것이 기본이란다.

생각해 봐도 그냥 구두로 약속을 하고 넘어가기에는 찜찜한 점도 많았다. 그렇게 간단하게 일이 이뤄진다고 보기에는 2010년의 대한민국은 너무나도 거대했고,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일리가 있다는 듯 강패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조모강이 넌지시 말했다.

“이 기회에 저희 조선 그룹 경호팀으로 들어오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강패 님이면 특별 직위라도 만들겠습니다. 그냥 소속만 저희 조선 그룹 경호팀으로 하시는 게…….”

은근한 조모강의 제의에 만여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강패가 들어온다면 경호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눈앞에 훤히 보이는 듯했다.

아무리 조모강이 직접 임명한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불만이 팽배할 터다.

평생을 몸을 쓰며 살아온 경호원들이 강패를 탐탁지 않게 볼 것은 뻔하고, 며칠 동안 겪어본 강패의 성격상 경호원들의 그런 태도를 그냥 눈감고 지나갈 리 없었다.

‘난리 나겠군.’

고개를 내젓는 만여였지만, 그녀의 예상에는 아주 큰 허점이 존재했다. 바로 강패가 당연히 조모강의 제안을 수락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건 필요 없소.”

강패는 당연하다는 듯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

놀란 것은 오히려 만여와 소영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노숙자였던 사람이 조선 그룹 총수의 제안을 일말의 여지없이 거절한 것이다.

하지만 조모강은 그런 강패의 태도에도 전혀 개의치 않은 표정이었다. 아니,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국정원 실세에게서 극존칭을 듣는 사람이 이 정도로 넘어올 리가 없지.’

준족이 강패에게 극존칭을 쓰던 그 모습을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는 조모강이었다.

‘마치 상관을 대하는 것 같았는데…… 내가 모르는 비밀스런 뭐라도 있는 건가?’

그냥 단순히 은인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다. 마치 까마득한 상관을 대하는 것 같이 공손했다.

둘 사이의 관계가 상식적인 선에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아서 지난밤 백방으로 정보력을 총동원했던 조모강이었지만, 국정원보다 못한 조선 그룹의 정보력으로 알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럼 아예 소속을 만드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저희 조선 그룹에서 전폭적으로 도와드리겠습니다. 어떠십니까?”

강패가 당연히 거절할 것이라 예상했던 조모강은 당황하지 않고 두 번째 안을 내밀었다.

“소속을 만들라? 내가?”

강패가 흥미를 보이자 조모강이 웃으면서 말했다.

“예. 그리고 그 절차는 저희 조선 그룹에서 다 알아서 해 드리겠습니다.”

조모강으로서는 어떤 식으로든 강패에게 빚을 지우고 싶은 마음이었다.

강패 입장에서는 빚이라고 생각하지 않을지도 몰랐지만, 그래도 사람이라면 부탁 정도는 거절하지 못하리라.

조모강의 빙긋 웃는 얼굴을 바라보던 강패가 표정을 지우며 무심히 말했다.

“그런데, 왜 나를 이렇게 전폭적으로 도와주는 거요? 나한테 원하는 게 있는 거요?”

주위에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 다른 식으로 돌려서 말할 법도 하건만, 강패는 거침없었다.

그 직설적인 태도에 다른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조모강은 달랐다.

재계에서 수십 년 동안 구르면서 얻은 연륜은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었다. 조모강은 여전히 웃는 낯을 유지하면서 강패에게 말했다.

“그럴 리 있습니까. 순수한 호의입니다.”

“호의라…….”

조모강의 말을 곱씹던 강패가 진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이글거리는 눈으로 진한 미소를 머금은 강패의 모습은, 순간적이나마 앞에 앉은 재미의 존재감을 지워 버릴 만큼 매력적이었다.

화악!

강인함과 여유가 공존하는 남자는 여자에게 두근거림을 안겨 주기 마련.

그것도 만여와 소영처럼, 험하게 훈련을 받으며 남자들 사이에서 경쟁했던 여자들에게는 더욱더 그랬다.

그런 여자들은 남자들을 이기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더욱더 강한 남자에게 의지하고 싶어 하는 무의식적인 본능이 있는 것이다.

강패의 웃음에 만여와 소영, 세인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패는 여전히 진한 미소를 띤 채 입을 열었다.

“그 호의가 계속해서 내 마음속의 호의로 남아 있으면 좋겠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손녀를 구해 주신 은인이시기도 하니.”

의미심장한 강패의 말에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조모강이 여전히 웃는 낯으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등골에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무슨 사람 눈빛이…….’

맹수의 눈이었다.

조모강은 강패의 눈에서 그 안에 숨어 있는 광폭한 광기를 본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확실히…… 이윤을 제외하고서라도 붙잡을 만한 가치가 있어.’

강패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했다.

국정원 차장과의 인맥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서라도,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체면 따위는 버리고 붙잡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남자라는 것을.

“으악!” 늦었다! 형! 그럼 제가 조만간에 매니저와 같이 들를게요! 으아악! 늦었어!”

순간 시계를 바라본 재미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평창동이라고 했죠? 거기로 갈게요! 그럼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으악!”

호들갑을 떨면서 카페를 박차고 나가는 와중에도 일행에게 인사하는 것은 잊지 않는 재미였다.

“……골치 좀 아프겠군. 저놈을 내가…….”

강패가 고개를 저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

*

*

“뭐? 경호원?”

“네, 할아버님. 경호원으로 활동하신다고…….”

“푸하…… 하하하하하하핫!”

눈이 동그래졌던 준족은 민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몸이 들썩거릴 정도로 웃음을 터뜨린 준족은 휠체어까지 휘청거리자 간신히 웃음을 멈췄고, 주름진 얼굴을 들어 민준을 쳐다봤다.

“그래. 연예인 경호를 하신다, 이 말이지? 그것도 조모강의 도움으로?”

“예. 강소영 요원의 보고에 따르면 조모강 회장이 이상할 정도로 호의적이었다고 하더군요.”

“아마 나와 연을 맺고 싶어서 그런 것일 터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너무…….”

민준도 예상했다는 듯 말했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표정이었다.

준족이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이 할애비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 것 같으냐?”

준족의 질문에 민준은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어디까지나 할아버님의 공식적인 신분은 국정원 차장이시지 않습니까. 장관급이나, 심지어는 대통령 비서실장도 모르는 일인데 조 회장이 알 리 없습니다.”

민준의 표정은 확신에 차 있었다.

하지만 준족은 그런 민준의 표정을 보면서도 여전히 웃음을 띤 채 고개를 살살 저었다.

“그래. 이 할애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각하와 나만이 알고 있는 일이지. 그런데, 그 ‘대한독립군‘을 양성하는데 드는 비용은 어디서 나오는 것 같더냐?”

강패가 보았던 그들.

국정원이라는 하나의 국가 단체가 보유하기에는 과해 보였던 ‘대한독립군’은, 대한민국이 비밀리에 양성하고 있는 무력 단체였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리고 서로의 왕래가 거의 끊겨,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에 주둔하게 되면서 대한민국이 잃게 된 ‘주권’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물론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국이 가지는 전쟁 억지력은 돈으로 환산하자면 어마어마한 수치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SOFA(Status of Forces Agreement in Korea)라는 협정을 제안하고 체결함으로써, 대한민국은 세계 13위 경제 대국이 된 지금까지도 ‘자주 국방’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철저히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을 억제하였으나, 그 결과로 군사력에 관련된 거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미국의 감찰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현재의 ‘대한독립군’은 강패가 활동하던 1940년대의 시절과는 조금 다르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의 진정한 ‘자주 국방’을 꿈꾸는 준족이 안배해 놓은 최강의 무력 집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서. 설마…… 그걸 우리나라 대기업들한테서 받으신 겁니까?”

민준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묻자 준족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주한미군으로 인해 현저하게 줄어든 국방부 예산으로는 도저히 그들을 양성할 자금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나라 세금을 횡령할 수도 없으니 대기업의 지원을 받는 수밖에…….”

“하……. 하지만 할아버님! 그토록 외부에 드러나지 않게 신경 쓰시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기업인입니다! 그들은 이득을 좇을 뿐이지, 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바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나라를 위해 안배해 놓은 대한독립군을 양성하는데 대기업의 돈이 들어갔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러한 반응을 예상했던 준족이지만,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 그래서 나나 각하께서도 기업가적인 마인드로 그들과 거래를 할 수밖에 없었다.”

“거…… 거래라니요?”

민준도 국정원 3처장이었지만 이런 비사는 처음으로 듣는 이야기였다. 국정원 처장인 민준이 몰랐을 정도라면 보통 은밀하게 이뤄졌던 일이 아닐 터였다.

“그냥 그렇게만 알고 있어라. 내가 지원을 받은 그룹은 재계 서열 1위부터 5위까지의 그룹이다. 그리고 그들은 국정원 차장이라는 것 말고도 나의 다른 직함도 알고 있지. 그런 조 회장이 나를 봤으니, 당연히 연을 대려고 하지 않겠느냐.”

준족이 근 삼십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몰아친 모진 풍파에도 자리를 지킨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토록 깊게 뿌리 내린 준족에게, 그리고 그가 단순한 국정원 차장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조모강의 이번 행동은 당연한 것이었다.

“내가 바라는 것이기도 했고.”

자신이 강패를 대하던 태도를 봤을 테니, 척을 지기보다는 지금처럼 원조하려고 들 것이 뻔했다.

공식적으로 나설 수 없는 자신을 대신해서, 조모강은 강패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 줄 터였다.

“강패 형님께 부족한 것이 없도록 네가 잘 봐 드려라.”

“……알았습니다. 할아버님.”

“내일부터는 국정원 말고 평창동으로 가고.”

“……예.”

준족은 마치 뒤통수를 맞은 듯한 표정의 민준을 보지 않았다. 아마 자신 또한 같은 반응을 보였으리라.

입맛이 쓰다는 것을 느낀 준족은 휠체어를 돌려 창밖을 쳐다봤다.

“이 모든 게 다 나라를 위함이야. 내 조국, 이 나라를 위해서…….”

등 돌려 나가는 민준의 귀로 가느다란 준족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민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때문에, 아주 나지막하게 이어지는 준족의 중얼거림도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강패 형님이 계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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