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장 (27/30)

7장

“혀, 형! 이 뉴스 봤어? 어?”

인기 아이돌 그룹인 바커스의 멤버이자 개인 활동을 하고 있던 재미가 운전하고 있던 매니저의 눈앞에 자신의 스마트폰을 불쑥 들이댔다.

“야, 야! 안 보이잖아! 야!”

촬영장에 늦지 않기 위해 악셀을 잔뜩 밟고 있던 매니저는 기겁하며 브레이크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재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잔뜩 들떠서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저번에 내가 형 데리고 갔었던 곳 있잖아. 거기서 패싸움이 벌어졌대. 고딩 일진들이.”

“아아, 그래서?”

매니저가 퉁명스럽게 답하자 재미가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병원에서 탈출극이 있고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재미는 아직도 강패의 강인한 모습을 잊지 못했다.

하지만 그 이후 매니저는 재미가 노숙자로 의심되는 강패를 찾아다니는 것을 엄격하게 금했다. 그래서 최근 재미는 강패를 찾을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엎친 데 덮쳐서, 스케줄이 잔뜩 있는 인기 연예인이니 시간도 없었다.

머뭇거리던 재미가 슬쩍 운을 띄웠다.

“형…….”

“안 돼.”

“그, 그래도 내가 도움을 받은 사람인데……. 혹시 거기에 휘말려서 다치기라도 하면…….”

“안 된다니까.”

재미의 목소리가 은근해졌지만 매니저는 단호했다.

바커스의 팬이라면 재미의 이런 모습에 환호성을 내질렀겠지만, 매니저에게 재미는 담당 연예인이자 동성이었다. 같은 남자의 애교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한두 번 넘어가다 보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곤 했기에, 매니저의 태도는 확고했다.

“그렇게 휙휙 날아다닌다며. 네가 경호원으로 쓰려고 했으면 실력이 보통이 아닐 텐데 뭔 걱정이야.”

연신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매니저의 말투에 재미가 풀 죽은 표정을 지었다.

“알았어…….”

힘없이 대답하며 고개를 숙이는 재미의 모습을 백미러로 확인한 매니저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바람에, 재미의 눈이 순간 반짝이는 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

*

*

“자, 먼저 들어가서 메이크업이랑 헤어 받아. 바로 촬영장으로 가야 되니까.”

청담동에 위치한 샵 주차장에 차를 세운 매니저의 말에, 재미가 여전히 풀 죽은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그 모습에 매니저의 마음도 살짝 약해졌다

‘하지만 이상한 루머가 도느니 차라리 이게 낫지.’

그렇게 생각한 매니저가 자신도 차에서 내렸다.

그새 먼저 올라간 것인지 저만치 열렸다가 닫히는 자동문이 보였다.

매니저는 차문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아, 배고프네. 샌드위치라도 사 와야 하나…….”

연예인의 스케줄을 관리해야 하는 매니저에게, 불규칙적인 식사라는 고충은 어느 때고 따라붙는 꼬리표였다.

언제나처럼 아침을 못 먹은 매니저는 애매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먹고 살기 위해 샌드위치를 생각하며 주머니를 뒤졌다. 그리고 방금 문을 닫은 차 안에 지갑을 놓고 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내 정신 좀 봐. 차 안에 지갑을…….”

부릉!

“으어억!”

차에 두고 내린 지갑을 다시 꺼내기 위해 몸을 돌리던 매니저가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뒤로 넘어졌다. 동시에 아무도 타고 있지 않던 차가 요란스런 엔진 소리를 내면서 급하게 후진을 했다.

멍하니 기현상을 바라보던 매니저의 눈이 부릅떠졌다.

아무도 없어야 할 차 안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한 것이다.

“재…… 재미야! 야!”

부아아앙!

매니저가 뒤늦게 벌떡 일어섰지만 이미 차는 골목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야! 멈춰! 인마!”

서둘러 쫓아갔지만 자동차를 사람이 따라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매니저는 점점 멀어지는 차의 뒷모습을 보면서 턱까지 차오른 숨을 격하게 내뱉었다.

“아…… 젠장…….”

코너를 돌아 사라지는 차를 보며 욕지거리를 내뱉던 매니저의 핸드폰이 부르르 진동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핸드폰을 꺼내 액정을 확인한 매니저가 아련한 눈으로 차가 향한 방향을 쳐다봤다.

[형. 저 빨리 강북 좀 다녀올게요. 늦지 않게 바로 올 테니까 이번만 봐주세요 ^_____^]

“넌 죽었어……. 들키면 나도 죽고……. 크흑…….”

이 사실을 실장이나 대표가 알게 된다면 또 어떤 처벌이 있을지 두려웠다. 매니저로서는 그저 조용히 이를 가는 수밖에 없었다.

*

*

*

“강패 동생은 괜찮으려나…….”

그날은 마치 악몽 같았다.

그나마 재빨리 눈치채고 피해서 다행이었지만, 만약 거기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이렇게 두 발로 멀쩡히 서 있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명진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지하보도에서 늘 앉아 있던 자리에 멍하니 앉아 중얼거렸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조폭들은 또 뭐고?”

뉴스에서는 고등학생 일진들의 패싸움이라고 보도되었지만, 그는 조폭들이 검은 물결처럼 지하보도로 달려 내려가던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 다음에는 너무 무서워서 무작정 도망쳤지만, 왜 언론에서 영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세인이는 잘 빠져나왔을까……?”

때마침 화장실을 가려고 바리를 비웠을 때 벌어진 일이다. 덕분에 무사했지만, 당시 자리에 있던 세인이 걱정되는 명진이었다.

“그래도 일단 지키던 건 끝까지 지켜야겠지?”

그 일이 있은 뒤로 강패와 세인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명진은 다시 지하보도로 돌아와 엉망이 된 강패의 책을 엉성하게나마 다시 쌓아 놓고, 무작정 그 앞에 앉아 있었다.

온통 찢어지고 밟혀서 원래의 글자를 알아볼 수 없는 책이 대다수였다. 그래도 명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마음먹었다.

“어차피 노숙자라 시간도 남아도는걸 뭐.”

노숙자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의 괄시를 받고, 심지어 고등학생들에게까지 폐물 취급을 받던 그를 유일하게 도와준 사람이 강패였다.

자기 자리에 침을 뱉어서 그랬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도와준 것은 도와준 것이 아닌가.

서로 노숙자인 상황에서 자신이 보답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강패의 책을 지켜 주는 일밖에 없었다. 또 이마저 하지 못한다면 스스로가 정말 폐물처럼 여겨질 것 같은 이유도 있었다.

“다친 데가 없어야 할 텐데…….”

같이 보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친해졌다고 해 봐야 몇 주 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명진은 노숙자 생활을 하면서 가장 편한 시간을 보냈다.

그는 강패의 책을 지켜 주었고, 강패는 그런 명진에게 끼니를 때우게 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딸만큼이나 귀여운 세인이 가끔씩 와서 살갑게 대해 줬으니, 명진은 근래 들어 이만큼 편했던 시간이 없었다.

“아이구, 박 형. 여기서 뭐하시나?”

그때, 김 씨가 어슬렁거리면서 지하보도에 나타났다.

김 씨를 발견한 명진이 반가운 얼굴로 일어섰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그동안 어디 갔었던 거야? 한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말이야.”

오고 가는 것이 자유롭고, 언제 왔다가 언제 사라지는지 알 수 없는 것이 노숙자들이다.

그래도 얼굴을 오래 본 사람들끼리는 제법 살가운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고, 김 씨와 명진이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

“아니, 뭐……. 노숙자들이란 게 원래 그렇고 그렇지 않나? 그나저나 김 형은 여기서 뭐하는 거요?”

서글서글한 김 씨는 다른 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그가 예전처럼 꾀죄죄하지 않다는 것이었지만, 노숙자들도 아주 가끔 목욕을 할 때가 있어서 명진도 그리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왜 그 친구 있지 않나. 김 씨랑 같이 다니던 그 친구.”

“아, 강 아우를 말하는 거요?”

“그래. 강패 동생. 어휴, 말도 말게. 얼마 전 여기서 폭력 사건 일어났던 거 알지? 그 친구가 그때 여기 있었는데 그 이후로 도통 보이지가 않네. 내 걱정이 돼서 말이지…….”

명진의 말에 김 씨의 눈이 순간 붉은색으로 번쩍였다. 하지만 강패의 책을 쳐다보고 있던 명진은 그 모습을 미처 보지 못했다.

“그래요? 여기서 그 일이 터지고 난 다음에 안 보이는 거요?”

“그래. 혹시 김 씨는 모르는가? 가장 친하게 붙어 다니지 않았는가. 김 씨도 모르면 아무도 모르는데…….”

“허어, 이걸 어쩌나……. 나도 강 아우는 요새 본 적이 없어서…….”

명진의 걱정에 김 씨 역시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눈동자는 걱정하는 사람답지 않게 재빠르게 굴러다니고 있었지만, 잔뜩 걱정이 녹아 있는 목소리였기 때문에 명진은 감쪽같이 넘어갔다.

“요즘 사채업자들 때문에 몸 좀 피하느라 다른 곳에 있다가 왔수. 그 친구 몸 성했으면 좋겠는데…….”

진면목까지는 아니지만 강패의 능력 중 일부를 본 김 씨였다. 강패가 그런 조폭들이나 고등학생 일진들에게 당할 리가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김 씨가 눈알을 뒤룩뒤룩 굴렸다.

‘어쨌든 여기서 다른 곳으로 옮겼다는 소리군. 찾아봐야겠어.’

왜 그의 상관이 강패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는 몰랐다.

강패의 능력이 그들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일까?

‘확실히 위험한 놈이기는 하지.’

무식한 듯하지만 무식하지 않았다.

단순한 듯하지만 그가 행동하는 것처럼 단순하게 일들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었다. 항상 강패의 주위에선 무슨 일이든 벌어졌고, 그것은 모두 강패에게 유리한 쪽으로 풀려나갔다.

그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강패의 능력일까.

그게 만약 능력이라면 그의 상관이 강패를 경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뭐, 내가 알 바 아니지. 난 돈만 받으면 그만이니까!’

생각을 마친 김 씨가 애써 표정을 밝게 만들면서 등에 맨 낡은 백 팩을 열었다.

그 안에서 검은 비닐 하나를 꺼내 든 김 씨가 명진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명진이 그것을 엉겁결에 받자 김 씨가 씨익 웃었다.

“난 이제 여기를 뜰 거요. 사채업자 놈들이 여길 알았으니 다른 곳으로 가야겠지. 이건 이별 선물이요.”

“아이구, 뭘 이런 걸 다…….”

봉지를 통해 전해지는 감촉이 소주병과 참치 통조림이란 것을 안 명진이 반색했다.

명진에게 웃어 준 김 씨가 그대로 등을 돌렸다. 동시에 웃던 낯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골치 아프게 됐군. 어떻게 찾지?’

그의 상관은 강패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기를 원한다.

그를 만족시켜 주려면 이렇게 놓쳐서는 곤란했다.

‘이 근처부터 차근차근 훑어봐야겠군.’

눈에서 한 차례 적광을 번쩍인 김 씨가 지하보도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탁탁탁!

지하보도 계단을 올라가는 김 씨 옆으로 매니저를 따돌린 재미가 스쳐 내려왔다.

마스크와 모자를 푹 눌러쓴 재미가 지하보도를 휙휙 둘러봤다.

“없네……. 없어…….”

그때도 없었지만 오늘도 없었다.

아니, 사실 오늘도 없으리란 것은 대충이나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와 본 것이었다.

실망한 재미의 눈에 엉망이 된 책 더미 옆을 지키고 있는 명진이 눈에 들어왔다.

“저어, 아저씨.”

“음……? 나 말하는 거요?”

드러난 피부가 하얗고 키까지 훤칠한 재미가 다가오자 명진이 화들짝 놀랐다.

지난번 일진들에게 당한 그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에 명진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 혹시 키는 저만 하고…… 와이셔츠 차림에 머리가 이 정도 남자 못 봤어요? 말투나 성격은 좀…… 아니, 많이 거친 편인데…….”

“예? 에?”

재미의 설명에 부합되는 사람은 곧장 명진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너무 딱 들어맞는 이미지라 명진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흠, 모르시나? 그 형을 찾아야 되는데……. 하아, 이거 난감하네.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지? 다친 데는 없으려나? 에이, 그러니까 저번에 확실히 경호원으로 데려갔어야 하는 건데. 그러면 같이 잘 지내고, 재밌고. 나도 편하고. 얼마나 좋아?”

명진의 표정을 모른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재미가 속사포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명진이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호, 혹시 강패 동생을 찾아온 거요?”

“강패? 그 형 이름이 강패였어요? 깡패도 아니고 강패가 뭐래.”

명진의 말에 재미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가 킥킥대며 웃었다.

그 모습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던 명진이 재미에게 말했다.

“나도 지금 강패 동생 찾고 있는데 보이지가 않아요. 그 일이 벌어진부터는 도통……. 후우…….”

걱정하는 모습이 역력한 명진을 보던 재미가 자신의 손바닥을 짝 하고 마주쳤다.

“아, 만약 다쳤으면 병원 쪽에 있을 테니까 한번 찾아보는 게 어때요, 우리? 저도 그 형한테 부탁할 일이 있는데…….”

“나, 나랑 말이요?”

명진이 다시 멍한 표정으로 재미를 쳐다봤다.

다른 사람 같으면 궁금한 걸 참았으면 참았지, 노숙자인 자신에게 먼저 물어보지도 않을 터였다.

그런데 이제는 아예 같이 동행하자는 소리 아닌가?

“네. 강패…… 큭큭, 아무튼 그 형을 안다고 하셨으니 저보다는 빨리 발견하시겠죠. 전 그 형 본 지가 오래돼서 솔직히 어떻게 생겼는지 가물가물하거든요.”

재미가 소탈하게 웃으면서 말하자 명진이 재차 물었다.

“나…… 노숙자요, 노숙자. 이런 꼴인데 나랑 같이 다니겠다는 거요?”

짧은 시간이지만 명진은 재미가 입고 있는 옷이 몇 십 만원은 호가하는 브랜드임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의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명진이 날을 세워 묻자 재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왜요? 나도 그런 옷들 좀 입어 봤는데, 조금 찝찝하긴 해도 편하기는 하더라고요. 그나저나 지금 이럴 시간 없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강패 형 돈이 없어서 병원에서 쫓겨날 판국일지도 모른다고요!”

마치 만담을 하듯 엄청난 속도로 내뱉어지는 재미의 말은 명진이 다 알아듣기에 무리였지만, 그래도 그가 말하려는 바는 잘 알 수 있었다.

강패는 자신과 같은 노숙자, 만약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다 하더라도 돈이 없으니 내쫓으려 할 것이라는 뜻이다.

“아……!”

앞의 청년이 왜 강패를 찾으려고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게 나쁜 의도 같지는 않았다.

‘하긴, 노숙자인 나한테 나쁜 의도로 접근해서 할 수 있는 게 뭐 있다고.’

잠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 낸 명진이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래. 아프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쫓겨나면 그것만큼 서러운 게 없지. 그쪽이 돈이 많아 보이니, 만약의 경우 치료비 좀 부탁합시다.”

“네. 강패 형을 찾기만 하면 아저씨한테도 섭섭하지 않게 보상해 드릴게요. 빨리 갑시다!”

“그러세! 나도 걱정되니까!”

결심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선 명진이 재미와 함께 지하보도 밖으로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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