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하암…….”
하도 많은 일을 겪고 나서인지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 같았다.
어느새 아침 시간이 훌쩍 넘어가 있었고, 점점 더 강해지는 겨울 햇살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여과 없이 통과해 땅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제법 따뜻하네…….”
하품을 찍어 누른 강패가 개운한 듯한 표정으로 햇빛을 받으면서 중얼거렸다.
그러다 문득 강패는 자신의 감각에 거슬리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서는 그쪽을 쳐다보았다.
“아저씨! 괜찮아요?”
타다닥!
“……넌 여기 왜 있는 거냐?”
노숙자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간 공원은 한산한 것을 넘어서 삭막하고 을씨년스러웠다.
그런데 세인은 여전히 이곳에 있었던 것이다.
강패가 어이없다는 듯 묻자 세인이 그게 뭔 소리냐며 답했다.
“왜 있냐니요! 급식차가 저기 그대로 있는데요! 오늘까지 해야 봉사활동 시간이 다 찬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원래 이런 상황이면 그냥 집에 가고…… 그러지 않나? 안 무서워?”
분명 강패의 기억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자신의 옆에서 직접 총을 본 사람도 이 소녀였고, 미국 중앙 정보국 소속이라고 말한 그 외국인들을 앞에서 용감무쌍하게 막아 낸 것도 이 소녀였다.
대체 담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아니면 아예 겁대가리가 없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분명히 어떤 기준에서건 간에 대단하긴 대단한 소녀였다.
그리고 이어진 세인의 말로 그 대단함이 다시금 증명되었다.
“근데 저 언제 봤다고 반말이에요? 아저씨도 나이가 그렇게 많아 보이진 않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강패를 올려다보고 있던 세인이 묘하게 기분이 나쁘다는 표정과 말투로 강패에게 말했다.
강패는 피식 웃으면서 답했다.
“아저씨라며?”
“그건! 아저씨가 아저씨 같기 때문에 부르는…….”
세인이 강패의 말에 발끈하며 말을 하려다 스스로 한 말의 모순을 찾아내고서는 순간적으로 멈칫거렸고, 그것을 본 강패가 씨익 웃었다.
“어이, 나도 너랑 똑같아.”
“우씨!”
강패의 말에 약 오른 듯한 표정의 세인이 분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처음 만난 강패와 세인이었지만, 그들은 이상하리만치 서로에 대해 그다지 격의 없어 보였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저씨, 아저씨는 이름이 뭐예요?”
세인이 발랄하게 묻자 그런 세인을 보며 피식 웃은 강패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성은 아. 이름은 저씨다. 그나저나 내일도 오냐, 저거?”
강패는 밥차를 가리키며 세인에게 물었다.
되도 않은 강패의 개그에 헛웃음을 터뜨린 세인은 강패의 손끝을 따라 밥차를 보고는 환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오죠. 우리를 기다리시는 분들이 이렇게나 많이 계신데.”
그렇게 환하게 웃는 세인을 힐끗 쳐다본 강패는 그럼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럼 내일 보자. 오늘 못 먹은 밥이나 먹어야겠네. 아우, 배고파…….”
긁적긁적.
내일 온다는 소리에 세인에게 손을 한번 흔들어 보이고는 강패는 바로 몸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배 위를 긁적이며 어슬렁거리는 폼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딱 전형적인 백수와 다름이 없었다.
세인은 그런 강패의 뒷모습을 보면서 킥하고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
“재밌는 아저씨네.”
강패가 사라지고, 강패가 사라진 곳을 쳐다보며 킥킥 웃는 세인이었다.
그때였다.
배가 불룩 나온 전형적인 중년 아저씨의 체형을 한 남자가 반짝거리는 높은 계급장을 달고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세인은 급히 웃음을 속으로 삼켰고 부드러우면서도 우아한 표정을 얼굴 가득 그렸다.
뒤에 경찰들을 잔뜩 달고 헐레벌떡 뛰어온 중년 남자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조세인 씨 맞으시죠? 전 종로 경찰서 경사 이진성이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조세인입니다.”
“아이구…… 이거 죄송합니다. 저희 경찰들이 조금 더 신경을 썼어야 하는건데…… 죄송합니다.”
중년 남자는 자신의 딸뻘이 될까 말까 한 세인에게 허리가 부러져라 연신 굽실거리면서 사과의 말을 건넸고 세인은 그것을 보더니 고개를 부드럽게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다행히도 별다른 피해가 없어서 다행이에요. 앞으로는 신경 좀 써 주세요.”
“예. 이런 일이 다시는 없게 만들겠습니다. 회…… 회장님한테는 안부 전해 주십시오.”
허리가 부러져라 인사하는 이진성을 보던 세인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을 본 이진성은 반색을 하면서 인사를 연신 해 댔다.
*
*
*
“알 게 너무나도 많긴 한데…….”
그 누구보다도 다이내믹한 아침을 보낸 강패였지만, 그런 소란스러움 따위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것인지 강패는 꽤 상쾌한 기분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밤새 굳은 몸을 가뿐하게 푼 강패는,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북적거리는 인파 속을 헤치고 나갔다.
“이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부터 알아봐야겠어.”
잘 곳은 지하보도면 적당했고, 아직 돈도 풍족하게 남아 있는 데다가 로날드에게서 받은 카드까지 있었다.
때문에 의식주에 관해서는 걱정하지 않기로 한 강패였다.
제아무리 추운 겨울이라고 하더라도 지하보도 정도면 강패에게는 따뜻한 보금자리였고, 옷도 단벌 신사라고는 하지만 이 정도면 적당했으며 먹는 거야 돈 주고 언제든지 사먹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걱정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강패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찾아내는 것. 그리고 65년 만에 아예 다른 곳으로 바뀌어 버린 듯한 이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대한 정보를 필히 얻고 습득해야 할 필요성.
이 두 가지를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비록 민준이 국정원 내부 비밀 안가에서 30분에 걸친 대략적인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설명해 줬지만, 그 정보는 매우 축약되어 있었다.
정작 세세한 부분은 많이 누락되어 있음을 강패는 느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패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했다.
그것이 책이건, 아니면 다른 것을 통해서든 간에.
“어떻게 한담?”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아직 이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강패에게는 낯선 나라였고, 별의별 신기한 것들이 도처에 존재하는 미지의 세계나 다름없었다.
더군다나 아는 사람 하나 없었으니, 당연히 강패로서는 뭔가를 하고 싶어도 뭘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물론 민준이나 준족에게 말하면 간단하게 끝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놈의 자존심이 걸렸다. 예전에는 자신이 먹여 살리고 보살펴 주었던 준족에게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럽다고 생각한 강패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쪽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다.
두 팔과 두 다리가 다 멀쩡하고 이렇게 쌩쌩 돌아가는 머리도 있는데, 할 수 있는 게 없다니.
“빌어먹을. 오라지게도 답답하군.”
강패는 오죽하면 욕지거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책방? 서점?…… 호오…….”
머리가 아픈 듯, 답을 찾지 못해 인상을 찡그리고 걸어가던 강패는 순간 ‘책방’이라 쓰여진 상점을 보고서는 두 눈을 반짝였다.
“책방이면…… 책을 사고파는 곳인가? 조선어로 쓰여진 책이 있다는 소리인가?”
1940년대 출판업계라고 해 봤자 극히 사회의 일부분, 지식인들에게만 개방된 상황이었고 그마저도 이윤의 창출이란 거의 불가능해서 몇몇 의식 있는 지성인들이 자비를 털어서 문학잡지를 간행하는 것이 전부였다.
게다가 일제 치하가 시작되면서 조선어 말살 정책이 이뤄졌으니, 강패가 살던 그 시절에서는 조선어로 된 책을 본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강패에게는 조선어인 한국어를 쓰고 있었고, 도시 도처에 한국말로 된 표지판들이 있었으며, 한국어로 된 책을 파는 곳이 있었다.
“좋아, 좋아.”
강패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책방 안으로 발을 성큼 내디뎠다.
“저…… 손님, 이 책들을 전부 사실 건가요?”
근처에 아주 유명한 대형 책방이 있었기 때문에 주로 주변에 위치한 오피스텔의 직장인들에게 잡지나 일간 신문 정도를 파는 것으로 유지하던 책방 주인은 강패가 계산대 위에 올려놓은 책더미를 보고서는 조심스럽게 강패에게 물었다.
끄덕.
“무슨 문제 있습니까?”
“아니, 조…… 조금 많은 것 같아서요.”
푸짐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사람 좋은 얼굴에 난처한 기색을 떠올리며 강패와 책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물론 강패가 입고 있는 옷이 고급스러워 보였기 때문에 돈을 낼 능력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괜찮으니 계산해 주시죠.”
강패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여 보이면서 말하자 가게 주인은 강패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어디 책 선물이라도 하시나 봐요? 은사님 댁에라도 찾아가시는 거예요?”
책방 주인은 강패가 내민 책을 하나씩 계산하며 봉투에 담으면서 넌지시 물었지만 강패는 그런 책방 주인의 얼굴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내가 보려고 사는데, 무슨 문제 있습니까?”
묘하게 불량스러움이 풍겨나는 강패의 말투였지만 책방 주인은 오히려 그런 강패의 말이 더욱더 놀라웠다.
“이…… 이 책을 모두요?”
강패가 골라 온 책들의 수준도 수준이었지만, 책방 주인이 놀란 것은 전혀 분야가 다른 책들이 뒤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대사 책에서부터 시작해서 컴퓨터 공학에 관한 책까지, 스펙트럼이 엄청나게 넓었기 때문에 책방 주인은 이 책을 모두 보려고 구입한다는 강패가 혹시 엄청나게 똑똑한 천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더 보고 싶은 책들이 있는데…… 일단은 이것만 사 가고 내일 다시 오죠. 그럼 계산은…….”
책들이 모두 봉투 안으로 들어가자 강패는 책방 주인이 다시 놀랄 만한 말을 하며 주머니에서 검은색 신용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러더니 잠시 신용카드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망설이다 책방 주인에게 물었다.
“이거…… 그쪽한테 주면 되는 겁니까?”
“……네?”
신용카드를 내밀며 말하는 모습이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르는 듯한 사람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책방 주인은 조금 어이없는 표정으로 강패를 쳐다보았다.
“이거, 그쪽한테 건네주면 되는 겁니까?”
“네, 네. 저한테 주시면 돼요. 잠시만요…….”
강패에게서 얼떨결에 신용카드를 받아든 책방 주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신용카드를 사용할 줄 모르는 것 같은데……?”
마치 처음 보는 물건인양, 신용카드를 앞뒤로 돌려보다가 자신에게 말하는 폼이 누가 보더라도 손에 들린 물건을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은 사람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드는 책방 주인이었다.
“설마…… 저런 책들을 읽는데 카드 사용하는 법을 모를까. 나도 참.”
*
*
*
조금 ‘논다’ 하는 고등학생들에게 명동과 종로는 훌륭한 안식처였다.
강남이나 신촌 같은 번화가는 대학가와 껴 있기 때문에 고등학생들인 그들이 놀기에는 조금 부적합했다.
그와 달리 주변에 여러 학교들이 퍼져 있는 곳인 종로 부근은 골목골목 복잡한 곳에도 유흥거리들이 많은 지역이었다.
때문에 고등학생들이 놀기에도 딱 적합한 지역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와 동시에 주변에 정부 기관들이 많기 때문에 경찰들이 그만큼 많았지만, 그래도 그런 경찰들의 눈을 피해 조금 논다 하는 고등학생들이 뚫을 수 있는 곳도 그만큼 많았다.
소위 ‘일진’인 태운은 방학을 맞아 머리를 샛노란 색으로 염색하고, 일진의 필수품이라는 ‘북면’ 패딩을 입은 채 한 손에는 대놓고 담배를 들고 있었다.
그 옆에는 태운의 친한 일진 친구인 성수가 있었고, 둘은 함께 명동 앞의 지하 보도를 걷고 있었다.
“아. 방학도 더럽게 재미없네. 차라리 학교 다니는 게 재밌어.”
“미친.”
태운의 말에 앞머리를 매만지며 걸어가던 성수가 킥킥 거리면서 대꾸했고 태운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생각해 보라며 말했다.
“잘 생각해 봐. 그나마 학교 다닐 때는 샌드백이라도 있었고, 좆찐따들이라도 있었는데 방학이니깐 이게 뭐냐. 할 게 아무것도 없잖아.”
“아, 그래서 어제도 한 놈 불러내서 그렇게 조졌냐?”
“지랄, 니도 오랜만에 하니깐 재밌어 죽겠다고 낄낄거렸으면서.”
바로 어제만 해도 같은 반 찐따 중에 하나를 불러내서는 아침부터 밤까지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가지고 놀았던 태운과 성수였다.
구타는 기본이거니와 돈을 갈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요새는 새로운 일이 없을까 하다가 이제는 대놓고 데리고 다니면서 심심할 때마다 샌드백처럼 구타하곤 했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신경 쓰는 사람들이 없었다.
어른들은 자신들 인생만 보고 산다. 그들의 일탈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을뿐더러 개중에는 그들을 멀찌감치 피해 도망가는 어른들도 있었다.
오히려 태운과 성수는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희열을 느꼈다.
다 큰 성인들이 자신들을 무서워한다는 것 때문에, 그것 때문에 그들은 더욱더 불량스럽게 하고 다녔다.
그 짜릿한 희열감을 느낄 때마다 더욱더 난폭해져만 가는 둘이었다.
“아후. 냄새.”
“아. 거지도 아니고. 노숙자잖아?”
그런 태운과 성수의 눈에는 지하 보도의 벽에 등을 대고 멍하니 앉아 있던 노숙자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목소리를 죽일 생각도 하지 않고서는 노숙자더러 들으라는 듯이 크게 말했다.
스윽.
하지만 노숙자는 그들을 한번 쳐다보는 것만으로 신경을 꺼 버렸고, 그 모습을 보던 태운과 성수는 울컥했다.
멀쩡한 어른들도 무서워하면서 피해 다니는 자신들을, 거지나 다름없는 노숙자 따위가 무시한 것이지 않은가.
제대로 된 어른도 아닌 노숙자가, 멀쩡한 어른들도 무서워하는 자신들을 그냥 무시해 버렸다는 생각에 태운과 성수는 금세 화가 치솟았다.
“야. 방금 꼬나 봤냐?”
“이 새끼가 죽을라고…….”
태운과 성수를 한번 쳐다봤던 노숙자는 그냥 소리가 나길래 쓱 봤을 뿐, 그들이 하는 말에 반응한 것이 아니었다.
그로서는 억울한 상황이었지만, 초라하고 볼품없는 모습의 노숙자의 모습은 태운과 성수의 눈에는 자신의 반에 있는 찐다들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어른들 사이의 찐따.
흠칫.
“캬! 저 새끼 쪼는 거 봐라! 봤어?”
“봤어. 병신 같은 새끼. 돈도 못 벌면서 저러고 있는 꼬라지 좀 봐라. 킥킥.”
그제야 태운과 성수의 행동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그 노숙자가 흠칫 몸을 떨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태운과 성수의 희열감을 불러일으켰고, 태운과 성수는 아예 찐따들을 대하는 것처럼 노숙자에게 폭언을 퍼붓기 시작했다.
부르르.
“어? 몸을 떠네?”
“뭐야. 아니꼬워?”
노숙자들을 모두 평범한 삶을 살지 않고, 일반인들은 경험하지 못한 험한 경험을 통해 거리에 나앉은 사람들이리라 판단해 거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노숙자들은 험한 일들을 당했기 때문에 더욱더 위축되고 움츠러든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만약 그들이 거칠었다면 노숙자를 하지 않고 적어도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는 암흑가 쪽으로 뛰어들었을 터였다.
그래서 그런지, 남자 나이 한창 때인 40대의 노숙자는 건들거리며 다가오는 두 명의 고등학생들이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퉤!
탁!
태운과 성수는 누런 가래침과 담배꽁초를 노숙자들이 주로 자는 지하 보도의 가장자리에 던지고서 몸을 풀었다.
그리고 천천히, 노숙자가 충분히 겁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그에게 걸어갔다.
노숙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다 겁에 질려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쳤다.
“이…… 이놈들!”
피식.
“뭐래는 거야?”
“놈? 무슨 놈? 허참.”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인지 태운과 성수는 더욱더 기세등등해졌다. 물론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터였다.
“이 거지같은 새끼가!”
퍼억!
우당탕탕!
하필이면 다른 노숙자들도 없고 혼자 남아 있을 때 벌어진 일이었기에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태운에게 걷어 차인 곳을 어루만질 생각조차 못하고 벌벌 떨 뿐이었다.
“놈? 노옴? 이런 개새끼가!”
퍽! 퍽!
성수까지 가세해 노숙자의 몸에 주먹과 발길질을 꽂아 넣기 시작했고, 청소년 훈방이라는 아주 훌륭한 방패막을 착용한 태운과 성수는 어른을 구타한다는 짜릿함과 희열감에 더욱더 난폭해졌다.
*
*
*
“햐! 이건 내 자리에 놔둬야겠다.”
강패는 꽤 즐거운 얼굴로 자신이 어제 잤던 지하보도로 들어오던 길이었다.
그런데, 지하보도 깊숙한 곳에서 이상한 소리가 울려 나오고 있었다.
퍽! 퍽!
“찐따 때릴 때랑은 손맛이 다르네.”
“킥킥. 어른도 별거 아니잖아, 이거?”
“끄으…….”
강패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거의 계단 한 블록을 통째로 뛰어넘었다.
“싸움?”
싸움이라면 강패도 마다하지 않았고, 싸움 구경은 더욱더 마다하지 않는 호전적인 성격마저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싸움이 일어난 것으로 착각한 강패가 싸움 구경을 위해 몸을 날린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강패가 바랐던 그런 광경이 아니었다.
퉤!
“힘을 썼더니 목이 다 칼칼하네.”
“앞으로 종종 이용할게, 거지새끼야. 큭큭.”
시원하게 침을 뱉은 태운과 성수의 얼굴은 아까전과는 다르게 가뿐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노숙자의 상태는 심각했다.
꼭 금방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부들부들 몸마저 떨고 있었던 것이다.
얼굴은 여기저기 붓고 찢어지고 코에서 났는지 찢어진 피부에서 났는지 피가 바닥으로 번지고 있었다.
그 피가 태운의 운동화에 묻었던 모양이다.
“아! 내 신발! 내 신발이 더러워졌잖아! 이 더러운 새끼!”
퍽!
“끄윽!”
태운이 다시금 노숙자의 허리를 걷어찼다.
노숙자는 비명 소리조차 못 지르고 끙끙 앓았다. 이윽고 욱 하는 소리와 함께 피기침을 토해 내고 말았다.
“우리 간다!”
“앞으로는 가능하면 돈도 좀 가지고 다니고. 아무리 노숙자라고 해도 돈이 한 푼도 없는 게 뭐냐 이게. 킥킥.”
근 이십여 분간을 노숙자를 때린 태운과 성수는 끝까지 노숙자를 조롱하며 자기네들끼리 킥킥 웃어 댔다.
그리고 그들이 지하보도를 나가려고 몸을 돌린 순간, 지하보도 반대편에 서 있는 강패를 발견했다.
“뭐…… 뭐야.”
“신경 쓰지 마. 그냥 가자.”
쓰러진 노숙자와는 다르게 키도 태운과 성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강패의 모습에 태운은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하지만 성수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강패 뒤에 있는 계단으로 걸어 나갈 생각으로 당당히 걸음을 옮겼다.
태운이 잠시 쫄았던 게 부끄러웠는지 그 뒤를 바싹 따랐다.
오싹.
그런데, 그들이 강패에게 다가갈수록 태운과 성수는 온몸에서 닭살이 돋는 것 같은, 흡사 차가운 얼음물에 빠진 것 같은 서늘함을 느끼고 말았다.
“뭐…… 뭐야!”
강패와 그들의 거리는 아직 일정 간격 이상 떨어져 있었는데, 다음 순간 그가 입을 열자, 태운과 성수는 그가 마치 코앞에 고개를 들이밀고 있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너네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아냐?”
강패는 너무나도 즐겁고 유쾌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태운과 성수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강패의 두 눈은 오싹한 기운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태운과 성수는 창피함을 감추려고 일부러 시비조로 말했다.
“뭐! 우리가 무슨 짓을 했으면 어쩔 건데?”
“보는 사람도 없는데 확!”
그 말에 강패는 씩 웃었다.
“그래, 보는 사람이 없지. 크큭…….”
저벅.
강패가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오며 스산하게 웃었다.
그 순간, 태운과 성수의 본능이 맹렬하게 위험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둘은 오기와 자존심으로 절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이런 씨발!”
“너 우리가 누군지 알아?”
털썩.
강패의 손에 들려 있던 무거운 책 봉투가 바닥에 떨어지며 털썩 소리를 냈다.
그다음 순간, 강패는 두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스산한 미소로 태운과 성수에게 다가갔다.
“그건 모르겠고, 너희들이 무슨 개짓거리를 했는지 알려 줄까?”
특별히 기운을 끌어올린 것도 아니건만, 강패의 몸에서는 이미 수많은 싸움과 사선을 거친 숙련자의 거친 투기와 기세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제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기껏해야 고등학교 일진들인 태운과 성수가 그 기세를 정면에서 받아 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덜덜덜.
“이런 씨!”
“오…… 오지 마!”
태운과 성수의 다리는 이미 사시나무 떨 듯이 떨리고 있었다.
“이런 씨발!”
“우와악!”
강패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태운과 성수는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무조건 달려들며 주먹을 내뻗었다.
강패는 자신의 얼굴로 주먹이 날아오는 것을 보면서도 스산한 웃음을 얼굴에서 지우지 않은 채 계속해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태운과 성수에게로.
퍽!
“하…… 하하! 이 개새끼! 이거 봐!”
(환생자 강패 3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