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장 (19/30)

9장

“요 조그마한 게 돈 대신 쓸 수 있는 거라…….”

공중화장실에서 걸어 나온 강패는 손에 든 조막만 한 검은색의 신용카드가 신기했는데 계속해 앞뒤를 뒤집어 보면서 살펴보고 있었다.

“편하게 지낼 수 있겠어.”

강패가 돈이란 것에 크게 집착을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돈이 손에 들어왔는데 그것을 아끼는 성격도 아니었다.

대한독립군들은 누가 언제 죽어 나갈지 모르는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습관처럼 짧은 자유의 시간 동안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것들을 누리려고 노력했던 버릇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들에게 돈은 아낄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최고’를 누리게 해 줄 법한 하나의 방편일 뿐이었다.

물론, 개중에 딸린 처자식이 있던 대원들은 가족을 위해 돈을 쓰지 않고 모으기도 했지만 가족이 없는 강패 역시 그랬고,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끙…… 일단 옷부터 새로 사야겠군.”

다른 노숙자들이나 세인이 가장 의아하게 여긴, 수트의 목 부분이 답답한 듯 잡아당기면서 강패가 투덜댔다.

보기에는 좋았는데, 1940년대의 정장과는 좀 다른 것인지 강패는 이 옷이 꽤 불편했다.

가진 옷이라고 해 봤자 이것밖에 없었고, 그나마 이 옷 전에는 옷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천 쪼가리를 걸치고 있었기 때문에 감지덕지하면서 입었던 것이다.

“그 전에…….”

신용카드를 이리저리 돌려보면서 신기한 듯 쳐다보던 강패는 순간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서더니, 아무도 없는 뒤편의 풀숲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투둑.

아무런 인기척도 없는 풀숲을 묘한 눈길로 뚫어져라 보더니, 강패는 돌연 자신의 옷에서 거침없이 단추를 툭 뜯어냈다.

곧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단추를 끼고는 만지작거렸다.

“쥐새끼 먼저 잡고!”

핑!

강패가 풀숲을 향해 단추를 던졌다.

그의 손가락에서 순간적으로 백색의 광채가 반짝이는가 싶더니 검은색 단추가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풀숲으로 꽂혀들 듯 날아갔다.

파삭!

“히…… 히익!”

벌떡!

무엇인가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풀숲에서 가만히 숨어 있던 김 씨가 놀라 벌떡 일어섰다.

강패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묘한 눈길로 김 씨를 쳐다보았다.

그런 김 씨의 오른손에는 강패가 던진 단추가 반쯤 파고 든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김 씨? 거기서 대체 뭐하는 거요? 쥐새끼처럼 숨어서.”

“나…… 나 말인가?”

강패가 김 씨를 향해 넌지시 물어보았다.

갑작스런 강패의 행동에 엄청 놀랐던지 아직까지도 토끼눈을 한 김 씨가 말을 더듬었다.

그에 반해 강패의 표정은 평소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는데, 흡사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과도 같았다.

그런 눈빛 때문에 더더욱 김 씨는 우물쭈물 뜸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젠장!’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재빨리 주위를 살핀 김 씨였다. 어디 달아나거나 숨을 데가 없나 싶어서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거라고는 강패와 김 씨, 둘뿐이었다.

더군다나 강패가 김 씨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심드렁하게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리고 아까처럼 단추라도 던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단추지,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진 무슨 총이라도 쏜 줄 알았다.

‘움직여도 금방 잡힐 거야. 어떻게 하지?’

그동안 잘 숨겨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강패를 마주 보고 있자 김 씨는 강패가 왠지 알면서도 속아 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럴 정도로, 강패의 얼굴에는 조금의 놀라움이나 의구심 같은 감정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지’ 하는 눈빛으로 김 씨를 쳐다보고 있었으니, 김 씨로서는 속이 타들어 가고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쥐새끼란 말이지…….”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밖으로 드러난 표정일 뿐이었다.

내심 강패도 꽤 놀란 상태였다.

저번에 느꼈던 그 이상한 느낌이 김 씨에게서 느껴졌던 느낌이었단 말인가?

‘그런데 너무 약하단 말이지.’

하지만 강패가 김 씨를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것은,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라고 해 봤자 일반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그저 보잘 것 없는 미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신경에 거슬리지도 않았다고 하는 게 맞았다.

“거참. 안타깝게 됐소, 김 씨. 그래도 슬슬 정이 들어가려고 했는데…… 쥐새끼라니.”

“자, 자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게 강패의 마음이 크게 요동칠 정도는 아니었다.

김 씨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지식을 얻는 정도의 선에서 이미 연은 끝났다고 봐도 족했다.

더 깊이 들어가지도 않았을뿐더러, 돈을 주는 것으로 어느 정도 해결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런 것보다 더 큰 이유도 물론 있었다.

하룻밤을 자다 깨거나, 잠시 한눈을 파는 새에 아까까지만 해도 옆에 멀쩡히 있던 동료가 죽어 나가는 곳에서 살아온 강패였다.

그런 상황을 한두 번 겪어 본 것이 아닌 강패의 강인한 정신은, 지금껏 붙어 다니던 김 씨가 쥐새끼였음을 알았다고 해서 흔들리지 않았다.

“나…… 난 말이지. 그게 말일세…… 음…….”

“…….”

계속해서 말을 더듬을 뿐, 김 씨는 끝내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런 김 씨를 쳐다보기만 할 뿐, 강패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김 씨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파해 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정작 상대인 강패가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으니 막막하고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때였다.

“꼼짝 마!”

“너…… 너 이 자식! 잘 걸렸다!”

왜에에엥! 삐뽀삐뽀!

김 씨를 하늘이 도와주는 것처럼, 그를 구원해 줄 천사가 나타났다.

그 천사는 흡사 아까의 서양인들처럼 손에 거무튀튀한 총을 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인물을 보는 순간, 강패는 멈칫했다.

“어……?”

바로 옆에서 미사일이 날아와 터져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을 정도로 거의 놀라는 일이 없는 강패였지만, 의외의 인물이 불쑥 튀어나오자 흠칫 놀라고 말았던 것이다.

“너는……?”

“이크!”

후다닥!

갑자기 나타난 인물은 소영이었다.

그녀가 팀원들과 함께 총을 들고 뛰어오다가 강패를 보고서는 움찔하며 그 자리에 멈춰 섰던 것이다.

둘 다 서로를 보고 놀란 듯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틈을 타 김 씨가 마치 먼지가 바람에 흩날려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듯, 검붉은 안개로 변해서는 그 자리에서 증발하듯 사라져 버린 것이다.

꿈틀.

“어라?”

“이 근방을 수색해라! 놈들을 찾아!”

“네!”

강패는 김 씨가 검붉은 안개로 변해 사라지는 모습을 모두 보고 있었다.

하지만 소영과 소영의 팀원들은 김 씨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것 같았다.

잠시 강패를 쳐다보고서는 못 박은 듯 서 있던 소영이 명령을 내렸고, 곧장 팀원들은 사방으로 산개해 흩어졌던 것이다.

“괘…… 괜찮으세요?”

“응? 아, 어어. 괜찮아.”

팀원들이 전부 흩어지자 어색하게 쭈볏거리던 소영은 김 씨가 사라진 방향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강패에게 말을 걸었다.

강패는 잠시 김 씨가 사라진 쪽을 쳐다보다 갑자기 들려온 소영의 목소리에 그녀를 돌아보며 대강대강 답을 해 주었다.

그가 잠시 멀뚱멀뚱 소영의 얼굴을 쳐다보자 소영이 민망한 듯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흠. 이번에는 또 괜찮네.”

자신의 가슴께와 머리를 만진 강패는 이번에는 아무런 통증도 없자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런데 여기서 뭐하고 있던 거죠?”

“내가 왜 가르쳐 줘야 하지?”

“에…… 그건…….”

소영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받은 명령이라고는 강패를 지켜보라는 것뿐이었다.

그가 전하는 말을 자신에게 전해 달라는 민준의 명령 때문에 그를 전담했을 뿐, 강패가 ‘범죄의 용의자’라거나 수사 선상에 오른 사람 같은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런 이유 때문에 쫓아왔노라고 밝히고 뭘 하고 있었는지 말해 달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아무래도 이상하잖아요. 그런 꼴을 하고 있는데 서양인들이 찾아와서 총을 꺼내 들질 않나…….”

“그게 수상하면 체포해 보든가.”

강패는 소영의 말에 툴툴대듯 퉁명스레 대답했을 뿐이었다.

아예 체포하라는 듯 손까지 내밀며 절대 말해 주지 않겠다는 제스쳐를 팍팍 취하자 주춤하며 기가 죽은 건 오히려 소영이었다.

하지만, 강패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내가 65년만에 깨어났는데 말이야, 미국에서 깨어났더라고. 그런데 어떤 놈들이 쳐들어와서 내가 깨어난 곳을 깨부수는 바람에 그냥 나왔더니 내가 그런 줄 알고 미국 놈들이 쫓아온단 말이야…… 이렇게 말해 줄 수는 없겠지?’

그때 삐오- 삐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소영 외에도 다른 경찰 병력들이 몰려오고 있는 듯했다.

강패가 잠시 생각을 하다 소영을 불렀다.

“어이.”

“왜요!”

하라는 대답은 안 해 주고 퉁명스레 자신을 부르는 강패의 행동에 소영이라고 좋은 반응이 나올 리가 없었다.

뾰족하게 대답한 소영이 강패를 올려다봤고, 강패는 그런 소영을 잠시 쳐다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말했다.

“너, 그렇게 한눈팔고 있어도 되냐?”

“그게 무슨…….”

“찾던 애, 저기 있잖아?”

강패의 말에 소영이 무슨 소리냐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패는 조용히 어깨 너머를 가리켰고, 소영의 시선이 그쪽을 따라가다 깜짝 놀랐다.

강패가 방금 나온 공중화장실에서 로날드가 어기적어기적 기다시피 나오다가, 총을 쥔 소영을 비롯한 국정원 요원들을 보고서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있었던 것이다.

“에…….”

“너 거기서!”

“shit!”

갑자기 낙후된 공중 화장실에서 금발머리의 외국인이 튀어나오는 상황이 벌어지자 소영은 크게 당황했지만,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것은 로날드도 마찬가지였다.

소영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국정원 요원들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로날드는 이미 부리나케 도망치고 있었다.

“어어!”

소영이 놀라 그 뒤를 쫓아간다.

탁!

“으음…….”

그러다 강패를 스쳐 지나가면서 어깨로 툭 치고 지나갔다.

그러자 강패는 다시 한 번 심장이 저릿한 느낌이 듦과 동시에 이전과는 다르게, 묘한 상실감이 가슴속에서 느껴졌다.

“왜 이러지?”

강패 스스로도 전혀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자꾸만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강패는 몹시 혼란스러웠다.

마치 강패의 몸은 아주 예전부터 소영을 알고 있는 양 반응했던 것이다.

하지만 강패는 여전히 소영은 본 기억도 나지 않았고, 심지어는 그 이름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후. 답답하군…….”

65년 동안 잠들어 있었던 부작용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난생처음 본다고 생각한 사람을 보고, 심지어는 그가 살던 시대와도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한테 아무 의미 없이 이런 일이 일어날 리 없었다.

그렇다고 머리를 굴려 봐야 답이 나올 일도 아니었다.

‘언제고 이러는 이유가 밝혀지겠지.’

애써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고 한 강패였다.

엉덩이를 씰룩거리면서 열심히 로날드를 쫓아가는 국정원 요원들의 뒤꽁무니를 보면서 짐짓 웃어 보려고 애썼다.

“거참. 참 잘들 뛴다. 하하.”

어쨌던 저들도 과거의 강패처럼, 자신의 조국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이들이 아니던가.

그런 생각을 하자 국정원 요원들에게 묘한 공감대가 느껴졌다.

강패가 입꼬리를 씰룩였다.

“저놈. 제법 쓸모가 있겠는데.”

로날드의 이름조차도 알지 못하는 강패였지만, 저 코쟁이가 제법 쓸모가 있을 것 같았다.

코쟁이 주제에 이 나라에 들어와 법률이고 뭐고, 나라의 위상을 들먹이면서 나대는 모습은 심히 좋지 않았지만, 그런 놈들일수록 더욱더 강력한 힘에는 쉽게 굴복하는 법이었다.

뭔가 꿍꿍이를 숨겨 놓은 것 같은 표정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그 어떤 의도가 숨어 있건 간에 로날드가 살기 위한 목숨 값으로 제공한 편의를, 강패는 절대 거부할 생각이 없었다.

“뭐, 준 거니깐 잘 쓰긴 쓰겠는데…….”

로날드가 주고 간 검은색 카드,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고 마그네틱만 있는 그 카드를 이리저리 돌려보던 강패가 씨익 웃었다.

“어디, 위대한 위상을 가진 나라의 나랏돈을 마구 써도 무사하나 볼까? 큭큭.”

혼자 미친놈처럼 킬킬 댄 강패는 검은색 카드를 아무렇게나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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