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워…… 원하는 것이 뭐냐!”
강패에게 뒷덜미가 잡힌 채 질질 끌려가던 CIA 요원, 로날드는 비명처럼 악을 질렀다.
하지만 강패는 묵묵부답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 빌어먹을 자식은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아!’
로날드는 단 한마디 말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에 푸른 눈 가득 절망을 떠올렸다.
‘빌어먹을, 지부장 놈! 이런 놈을 잡아오라면서 고작 다섯 명밖에 안 붙여 준 거야? 지부 전체가 달려들어도 모자를 판인데!’
자신에게 웃는 낯으로 실적을 올릴 기회라며 선뜻 테러범 체포건을 넘겨주었던 CIA 동아시아 지부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로날드는 피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부장에 대한 원망이 드는 한편으론, 강패에 대한 정보를 반드시 CIA에 넘겨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저변에는 투철한 애국심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런 괴물 같은 놈이 있다는 건 반드시 알려야 할 일이다!’
로날드는 다시금 어떻게든 강패와 이야기를 해서 협상을 해 볼 수밖에 없다는 걸 느꼈다.
이미 강패를 무력으로 제압한다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권총이 으스러지는 것을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는데, 어떻게 홀로 덤빈다는 생각을 품을 수 있겠는가.
로날드는 적어도 경우를 판단할 줄 알았다.
지금은 정당한 방법이 아니라 비겁한 방법이라고 한들 뭘 사용해서든 여기서 빠져나가야 할 때였다.
물론 강패가 살 떨리게 무서웠고, 얼굴조차도 마주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목소리를 크게 해서 외쳤다.
“네가 원하는 것은 모두 다 들어주겠다! 나만 풀어 준다면!”
비겁하다고 해도 로날드는 개의치 않을 자신이 있었다. 이런 괴물과, 인간을 벗어난 초인과 맞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꼼수가 필요했다.
“내가 원하는 것?”
로날드의 무엇이든지 다 해 주겠다는 말에 강패가 처음으로 반응하자 로날드의 눈에 ‘그러면 그렇지.’ 하는 기색이 떠올랐다가 금세 사라졌다.
‘놓아주기만 하면, 반드시 널 죽여 버릴 거다!’
일단은 강패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일단 벗어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지원군을 불러서 다시 공격할 수 있다. 제아무리 초인이라고 하지만 총알을 맞으면 죽는 것은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한 로날드는 강패가 다시 관심을 끄기 전에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 그래! 난 미 중앙정보국 요원이다! 너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해 줄 수…….”
퍽!
“큭!”
“개소리하고 있네.”
로날드의 말을 끊고 강패는 인정사정없이 로날드의 얼굴을 후려쳤다.
로날드는 말도 다 끝내지 못한 채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번개가 친 것처럼 눈앞이 번쩍거리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요즘은 원하는 걸 들어줄 때 총부터 꺼내 들고 말하냐?”
강패는 다시 로날드의 뒷덜미를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갔다.
“후, 여기면 되겠지?”
무료 배식차가 있던 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한 공중 화장실에 온 강패는 주위에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더니 한 대 맞은 후로 얌전히 입을 다물고 있는 로날드를 일으켜 세웠다.
“뭐…… 뭐야?”
“들어가.”
“여, 여기로?”
선글라스를 쓰고 총을 겨누던 그 당당한 모습은 어디로 간 것인지, 로날드는 반항할 의지조차 잃고 완벽한 포로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라는 강패의 말에는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기 딱 좋을 만큼 공중 화장실은 충분히 더러웠고, 또 하필이면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한적한 곳에 있었다.
“날 죽이면 넌 평생 미국의 추적을 받게 될 거야. 그러니까…….”
꿈틀.
“일단 들어가지.”
화장실 입구에서 머뭇거리면서 들어가지 않으려던 로날드는 강패의 눈썹이 꿈틀거리자 얌전히 안으로 들어갔다.
‘빌어먹을! 내 스스로 빠져나가야 하나!’
그 어느 나라도 자신의 나라에서 버젓이 타 국가의 정보원이 돌아다니는 것을 두 눈 뜨고 볼 리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원래 CIA의 계획은 최대한 빠르게 테러범을 제압한 후 한국 경찰들이 몰려오기 전에 미군 부대로 돌아가거나 미리 준비된 안가로 숨어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작전들이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애초에 강패를 일반적인 테러범으로 예상한 것 자체가 CIA의 패착이었다.
그 패착으로 인해 로날드 자신은 본부와 연락 두절 상태가 되었다.
임무에 들어간 요원에게서 주기적으로 연락이 오지 않으면 CIA에서는 임무에 실패한 것으로 간주하고 그 즉시 해당 요원이나 해당 임무에 투입된 요원의 모든 기록들을 삭제해 일말의 후환도 남기지 않는다.
CIA는 미국의 안보를 위해서라면 수족을 잘라 내는 일도 서슴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로날드는 자력으로 살아 나가야만 했다.
이미 노숙자들을 도망가게 놔둔 상황에서 치안으로는 세계 수위를 다투는 한국 경찰이니, 이미 출동했을 거라는 건 예상이 아닌 확신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임무를 위해 자신과 같이 파견된 다른 요원들은 모두 붙잡혀 갔을 터였다.
심한 악취가 나는 공중 화장실에 들어온 로날드는 저절로 찌푸려지려는 인상을 간신히 펴면서 강패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강패는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오히려 심드렁한 표정으로 로날드에게 말했다.
“꿇어.”
“……?”
“무릎 꿇어.”
“뭐…… 뭐?”
강패의 말에 로날드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강패는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기세에서 전혀 거짓말이 아님을 느낀 로날드는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이 바닥에 말이냐?”
“그럼 머리 박을래?”
“…….”
털썩.
온갖 악취로 뒤덮인 곳, 더구나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잔뜩 더러워져 있으며 정체 모를 액체로 끈적끈적해진 바닥에 무릎을 꿇으라니.
하지만 머리 박으란 소리에 로날드는 눈물을 삼키며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로날드를 내려다보며 강패가 말했다.
“이제 네 앞길은 너 스스로에게 달렸어.”
꿀꺽.
여전히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심드렁하고 지루한 표정이었지만 그 표정이 로날드에게는 더욱더 무섭게 다가왔다.
총을 가볍게 우그러뜨릴 정도의 악력을 가진 게 강패였다.
그 악력으로 자신의 머리를 잡는다면…….
끄덕끄덕.
수박처럼 터져 나가는 자신의 머리통을 상상한 로날드가 재빨리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에 관해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해라.”
강패가 로날드를 이곳까지 끌고 온 목적은 단 하나였다.
자신에 대한 정보를 코쟁이들이 어느 정도나 갖고 있고, 어떤 이유로 자신을 쫓고 있는지.
그리고 실제로 연구소를 폭파시켰던 그 주범을 미국에서 아는가 모르는가 확인하기 위해서.
만약 자신을 주범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실제로 연구소를 폭파시킨 진범은 미국에서조차 알지 못하는 비밀 집단이라는 소리가 됐다.
“네바다 주에 위치한 그룸 호수 공군 기지의 시설을 폭파한 테러범…… 이것이 다다.”
그다지 숨길 만한 정보도 아니었기 때문에 로날드는 별로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바로 말했다.
강패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알고 있는 놈들이라면 고작 다섯 놈만 보냈을 리 없었다.
“CIA가 하는 역할은 정확히 뭐지?”
강패는, 대체 그 CIA인가 뭔가 하는 기관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 나라의 법규를 무시할 정도인지 궁금증이 일었다.
그때, 로날드가 강패를 조심스럽게 쳐다보면서 말했다.
“테러범이면서 CIA를 모르는 건가? CIA는 미국 중앙 정보국으로서…….”
“국정원이랑 비슷한 곳이군. 알았다.”
‘말을 시키질 말든가…….’
강패에게 CIA의 위대함에 관해 어필하고 자신이 풀려날 기회를 만들려 했는데 먹히질 않았다.
단칼에 말을 끊어 버린 강패를 원망스럽게 쳐다보려던 로날드가 강패와 눈이 마주치자 찔끔 놀라 고개를 돌렸다.
“뭐, 그다지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너무 형편없는 놈들이 와 버렸군. 최소한 그놈들과 관련된 놈들이 오기를 기다렸는데…….”
강패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잘 들어. 너네가 생각한 테러범은 따로 있어. 내가 아니야. 내가 터뜨렸으면 이렇게 대놓고 돌아다니지도 않아. 그러니깐 다시 조사를 해 보도록 해.”
“……뭐?”
다 끝났다는 듯, 훈계하듯이 말하는 강패의 모습에 로날드가 멍한 표정으로 강패를 쳐다보았다.
이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테러범이 언제 자기 스스로 테러범 맞다며 인정을 하던가?
알카에다 같은 종교나 정치적 사상으로 똘똘 뭉친 광신도들이 아닌 이상, 그 어떤 범죄자도 자신의 범죄를 순순히 대놓고 인정한 적은 없었다.
로날드는, 자신의 귀에 들리는 강패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틀림없이 미친놈일 것이라는 생각을 굳혀 가고 있었다.
‘미친놈이 확실해. CIA도 모르고…… 테러범이 아니라고 하면 내가 설마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지만, 로날드는 일단 강패가 테러범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단은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에 로날드는 억지로 수긍하는 척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강패를 올려다보았다.
흠칫!
강패의 눈을 보는 순간, 로날드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누…… 눈이…….’
강패는 더할 나위 없이 심드렁했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강패의 눈을 처음으로 쳐다본 로날드는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숨이 가빠 오는 것을 느꼈다.
공포를 느꼈을 때의 전형적인 증상이었다.
강패의 눈동자 속에 담긴 광폭함은 아무리 강패가 기운을 몸속으로 갈무리하고 다닌다 한들 절대로 숨길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강패가 수많은 사선을 넘나들면서 온몸으로 겪었던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으로서 가질 수 없는 비정함, 때로는 살려 달라고 비는 적의 목도 가차 없이 내려쳐야만 했던 무정함.
강패의 세상은 그러했다.
그 속에서 강자로서 거듭났던 강패의 삶의 경험이 그대로 그의 눈에서 묻어 나오고 있었다.
로날드는 나름대로 혹독한 훈련과 수없이 많은 실전을 겪었던 베테랑이고, CIA 요원이었기 때문에 다른 일반인보다 강패의 눈 속에 담긴 그것을 더 잘 읽어 낼 수 있었다.
“다시 조사할 거야, 말 거야.”
강패와 로날드가 눈을 마주한 순간은 채 몇 초가 되지 않았지만, 로날드는 그게 몇 시간은 된 것처럼 느껴졌다.
강패가 눈을 돌리자 그제야 로날드는 자신을 옭아매던 기운이 사라졌음을 느꼈다.
“다…… 다시 조사하도록 하지. 반…… 반드시.”
제정신으로 돌아온 로날드는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일개 요원인 로날드에게 그러한 결정권은 없었다.
하지만 일단은 이곳에서 살아나가는 것이 급선무 아니겠는가. 뒷일은 일단 나가서 생각해 볼 일이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 로날드는 자신의 이마에 어느새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적…… 할 수 없어…….’
강패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생각했어. 괜히 귀찮게 굴었다가는 아마 내 손으로 직접 날려 버렸을 거야.”
“크…… 크흠…….”
귀찮은 짐을 덜었다는 생각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강패는 헛기침을 하는 로날드를 내려다보았다.
“코쟁이치고는 한국말도 잘하고, 말귀도 잘 알아먹고. 나름 쓸 만한 놈이군.”
“……고맙군.”
지금 상황이 강패에게 고마워해야 할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칼자루를 쥔 쪽은 강패였다.
완전히 전의를 상실해 버린 로날드는 살기 위해서라도, 본부에 보고를 하기 위해서라도 강패의 말에 억지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 이런 괴물이 있다니. 반드시 동선을 체크해야 해 항상 우리 눈에 들어오는 곳에 있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상황에서도 로날드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CIA 요원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똑똑한 머리와 단련된 육체만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미국에 대한 애국심이었고, 로날드의 애국심은 강패란 존재를 반드시 자신들의 제어하에 놔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어떻게 방법이…… 아!’
살면서 이렇게 머리를 미친 듯이 굴렸던가 싶을 정도로 머리를 굴리던 로날드는 아까 무료 배식차 앞에서 배식을 받기 위해 서 있던 강패의 모습을 기억해 내고서는 눈을 번뜩였다.
‘홈리스라……. 그러고 보니 위조 여권으로 들어왔었지…….’
과연 CIA 요원답게 강패가 라스베가스에서 구한 위조여권으로 한국에 입국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로날드는 그 점을 파고들면 어떻게 제어하에 둘 수도 있을 것 같다 판단하고, 홈리스인 강패에게 필요한 것을 제시할 생각이었다.
“나도 당신이 마음에 들었소. 그래서 앞으로도 종종 볼 수 있었음 싶은데…… 당장 당신이 필요로 할 만한 것을 주겠소. 어떻소?”
갑자기 180도 뒤바뀐 로날드의 태도와 말투였다.
그가 내민 것을 강패는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다.
한 손에 들어오는 얇은 직사각형 물체였다.
다른 사람들이 쓰는 걸 보긴 했지만, 익숙하진 않았다.
그것은 검은색 신용카드였다.
하지만 신용카드가 무엇인지 모르는 강패는 로날드가 지갑에서 꺼내 내민 것을 받아들고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뭔데?”
“……신용카드도 모르오?”
“이것의 이름이 신용카드였군. 뭘 그리 긁나 궁금했는데. 신용? 뭘 믿고 쓸 수 있는 카드란 거지?”
신용카드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은 미국에서도 1950년대가 넘어서야 이뤄진 일이었다.
당연히 강패가 살던 시기에는 신용카드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뭐야. 신용카드를 몰라? 범죄자가 돈에 대해서 모르는 것도 있던가?’
아까 CIA를 모른다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신용카드를 모른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조사를 해 봐야겠군.’
제3화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현대 사회에서 신용카드는 현물을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모르다니.
로날드는 한순간 이런 이상한 놈한테 겁을 집어먹었던 자신이 한심해졌다.
하지만, 힘이 없는 것을 어찌하랴.
“노숙자면 돈이 없을 것 아니오. 그 카드는 돈 대신 쓸 수 있는 거요. 내 작은 성의이니 마음껏 쓰셔도 별 상관없소.”
‘그리고 네가 그 카드를 긁으면 남는 정보로 네 위치를 항상 파악할 수 있겠지.’
“호오. 이 조그만한 카드가 돈 대신 쓸 수 있다고? 신기하네.”
로날드의 말에 강패의 눈이 번쩍였다.
안 그래도 지금으로선 돈이 가장 필요했던 강패였다.
2억 5천이란 거금을 마련해 두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련해 뒀던 것일 뿐이었다.
이 사회에 적응하는 데 있어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할지 강패는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주위에서 온통 떠들고 이야기하는 주제라고는 돈밖에 없었고, 그들이 그토록 돈에 목을 맨다는 것을 보면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그 ‘돈’이란 놈은 과거보다 훨씬 더 심화되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놈일 것 같았다.
“호오, 잘 쓰도록 하지. 나중에 이거 가지고 문제 삼는 거 아니야?”
껄렁거리며 검은색 신용 카드를 손가락에 끼운 채 흔들어 대던 강패가 순간 눈을 번뜩이며 날카롭게 로날드를 내려다보았다.
“아니 뭐, 처음에는 안 좋게 만났다고는 했지만 크게 다친 사람도 없었거니와 당신 같은 강자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덤빈 죗값이라고 생각하고 빌려 드리겠소. 얼마든지 마음껏 사용해도 무방하오.”
부러진 듯한 갈비뼈가 시큰거려 왔다.
강패의 희번덕거리는 눈을 보며, 로날드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강패에게 생색이라도 내듯 말했다.
‘어차피 내 카드도 아니고…….’
어차피 로날드의 개인 카드인 것도 아니었다.
CIA에서 발급한 신용카드였고 임무 수행시 발생하는 여타 경비들을 해결하는 용도였는데, 미국 정부에서 발급한 카드인 만큼 전 세계에서 쓸 수 있을뿐더러 제한이 없었다.
때문에 무한도로 쓸 수도 있었다.
강패가 천문학적인 금액만 쓰지 않을 바에야 로날드는 그에 대해 어느 정도 CIA에서 책임을 질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인간의 잣대로 감히 판단할 수 없을 만한 무력을 지닌 강패라는 초인을 제어하는 데 있어 그 정보료로 칠 수 있다면, 그 돈이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피식.
로날드의 생색 어리고 아부성마저 어린 발언을 들은 강패가 웃어 보였다.
“신세를 졌으니 언젠가는 갚아야겠지. 그래도…….”
강패가 쭈그리고 앉으며 로날드의 눈을 마주쳤다.
흠칫.
부르르…….
강패의 눈을 또다시 정면으로 마주 볼 수밖에 없게 된 로날드는 떨리는 몸을 애써 가다듬으려고 애써야 했다.
강패가 여전히 씩 웃는 얼굴로 이죽였다.
“너무 그렇게 티 나는 얼굴을 하면 별로 속아 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잖아?”
휙.
로날드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 강패가 다리를 펴며 몸을 다시 일으켰고, 얼어붙은 채로 가만히 있는 로날드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다가 몸을 휙 돌렸다.
머엉…….
강패 앞에서 마치 고양이 앞의 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 로날드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 강패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