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털썩.
중앙 복도의 끝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온 강패는 하얀 소파 위에 털썩 주저앉으면서 황당한 얼굴로 준족을 쳐다봤다.
“대한독립군? 그게 지금 왜 필요해?”
방금 전 이곳이 대한독립군 투사 양성소라는 준족의 말에 할 말을 잃었던 강패는 이제야 다급히 준족에게 물었다.
“…….”
하지만 준족은 그런 강패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강패는 민준을 쳐다봤지만 민준도 강패의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피웠다.
“그리고 그 녀석들이 쓰던 건 뭐고?”
“눈치채셨습니까, 형님?”
“말 돌리지 말고 말해! 대한독립군이 쓰던 거랑은 약간씩 달라. 아까 바깥에서 본 놈들은 그림자 품 밟기보다는 귀신 새끼들처럼 이상한 거 뒤집어쓰고 다니고.”
강패가 다그치듯 준족을 향해 말하자 그제야 민준이 책상에서 리모콘을 집어 들더니 벽에 걸린 스크린으로 향했다.
“할아버님께서 설명해 드리기 전에, 제가 간단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프리젠테이션을 하려는 듯, 민준이 버튼을 누르자 스크린이 파랗게 변하더니 화면이 떠올랐다.
민준은 강패를 쳐다봤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패전. 조선 독립.”
민준이 짤막하게 말하자 화면에는 1945년 당시, 일본 천황이 항복 선언을 하는 모습과 일제로부터 해방된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광복을 만끽하는 사진이 비춰졌다.
“1950년 6월 25일. 6.25 전쟁 발발. 김일성 정권의 공산주의와 이승만 정권의 자유민주주의의 이념 대립으로 인해 생긴 갈등이 번져서 시작됐지만, 세계사적으로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 간의 충돌로 비춰지고 있으며 냉전 체제의 시작.”
삑!
민준이 다시 리모콘을 누르자 스크린에 출력되는 영상이 바뀌면서 6.25전쟁으로 인해 극도로 피폐해진 한국의 모습이 비쳤다.
강패는 멍한 눈으로 스크린을 쳐다봤다.
“뭐, 뭐야, 저게……?”
전쟁이라니.
광복한 지 채 5년도 지나지 않아 남과 북으로 나뉘어 한민족끼리 전쟁이라니.
강패로서는 상상도 해 보지 못한 역사였고,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도 해 보지 않은 역사였다.
강패는 멍한 눈으로 정신이 나간 것처럼 민준이 보여 주는 영상을 봤다.
“1953년. 전쟁 종료.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나뉘어 북한, 남한으로 불리기 시작했으며 휴전선 생성. 미국이 한국에 주둔하기 시작했으며 북한은 소련과 중국의 원조를 받으며 휴전 상태를 유지하기 시작.”
민준이 말함에 따라 바뀐 영상은 강패의 기억 속에 있는 조선이라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피폐해져 있었다.
건물이 제대로 남아 있는 것도 없었고,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들이 길가에 죽어 넘어져 있거나 삐쩍 골아서는 길거리를 방황하고 있었다.
죽은 군인들의 시체는 산처럼 쌓여 여기저기서 불타올랐다.
처참하게 무너진 한강 다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건너는 피난민의 모습들이 강패의 눈에 들어왔다.
그 이후로도 민준의 프리젠테이션은 한참을 지속됐다.
아웅산 테러부터 시작해 KAL기의 폭파, 쿠테타 정권, 5공화국부터 시작해 IMF, 독도 영유권 분쟁, 동북공정과 이어도 분쟁, 그리고 북한의 핵테러 위협과 일본의 위안부, 서해교전과 주한미군의 실태까지.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버티기에는 버거워 보일 정도로 동북아시아 주변국들과 멀리에는 태평양 넘어 있는 미국이라는 초강대국 사이에 껴서 치이는 대한민국의 적나라한 현실이 민준의 입을 통해 강패의 귓가로 계속해서 들려왔다.
“이상 1945년부터 2010년 현재까지의 간략한 브리핑이었습니다.”
굵직한 사건만 뽑아서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이 거의 30분 가까이 걸린 프리젠테이션이었다.
민준이 물을 따라 마시며 목을 축이는 동안에도 프리젠테이션을 옴짝달싹 않고 굳은 석상처럼 들었던 강패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한반도의 남쪽에 있는 작은 나라.
강패가 보고 느끼기에는 무척이나 잘사는 나라였고, 근심걱정 없는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다고 생각했었다.
노숙자들과 함께 생활하기는 했지만 그가 살던 1940년에 비교하면 노숙자들이라고 해도 적어도 굶지는 않았고, 자신이 몸 건강하고 일만 하려고 한다면 막노동을 해서라도 돈을 벌며 살 수 있었다.
굶어 죽는 사람이 없고 얼어 죽는 사람이 없는 것만 해도 그것이 어디냐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강패가 그렇게 보고 느꼈던 게 단지 착각에 지나지 않았으며 시대에 뒤처진 생각이었다니.
단지 발전한 것은 대한민국뿐만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한반도라는 작은 땅덩어리를 둘러싼 덩치 큰 동북아시아 나라들은 대한민국이 발전한 만큼 더 발전해 있었고 심지어는 미국이란 초강대국마저 대한민국에 한 발을 걸치고 있는 와중이었다.
까닥 잘못하다가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져 나갈 것만 같은, 불안한 미래가 그려지는 나라.
“준족아.”
마침내 강패의 입이 열렸고 준족은 강패의 진지한 목소리에 표정을 굳히면서 강패를 쳐다봤다.
“예. 형님.”
고개를 돌려 강패와 시선을 마주친 준족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했다.
강패의 눈이 타오르고 있다 해도 좋을 정도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지금…… 네 손주 녀석이 말해 준 게 모두 사실이냐?”
“…….”
“저게 모두 진짜 일어났던 일이란 말이지?”
“…….”
“내가 처질러 자며 누워 있던 그 시간에 모두 벌어진 일이란 말이지?”
“…….”
강패의 말에 준족은 함부로 대답할 수 없었다.
목소리는 부글부글 끓고 있었고, 눈빛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했다.
강패는 짙은 자괴감과 무력감을 느꼈던 것이다.
‘자신이 없었던 것을 탓하시는 건가…….’
강패가 없었던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라는 것.
그동안 자신이 이곳에 없었다는 것을, 강패는 스스로 탓하고 있었다.
“후우……. 후우…….”
자신이 없었던 동안의 역사를 알고 나니 지금까지 자신이 품어 왔던 모든 의문점이 해소되는 느낌이 드는 강패였다.
간첩이니 뭐시기 했던 것들과 1940년과 비교할 수 없는 시설을 가지고 있는 국정원에서 누군가의 눈을 피해 비밀스러운 장소를 만들었다는 것.
대한독립군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을 키우고 있다는 것까지 모두.
“하아아…….”
순간 강패의 몸에서 기세가 일어났다.
그 기세가 어찌나 강한지 보는 이로선 마치 강패의 몸에서 아지랑이가 이는 듯했다.
“하…… 할아버님!”
“으음…….”
준족은 감탄사를 흘렸다.
‘훨씬 강해지셨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마음을 잡을 수 있었다.
‘대한독립군을 맡아 주실 분은 역시 형님밖에 없으시다!’
전율이 일 정도의 힘을 본 준족의 눈이 반짝였다.
“후아아……. 내가 조금 흥분했었군.”
터져 나올 것 같은 분노와 자신에 대한 무력감을 가까스로 내리누른 강패는 목을 매만지며 다시 소파에 몸을 묻었다.
“덕분에 개괄적으로나마 내가 없었을 때의 상황을 알게 되었군. 고맙다.”
“아닙니다.”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 강패가 시선을 돌려 준족을 쳐다봤다.
“그래. 그래서 날 이곳까지 데려온 이유는 뭐야. 설마 여기를 맡아 달라는 건 아니겠지?”
“……알고 계셨습니까?”
준족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긍정하자, 강패는 피식 웃었다.
“그 전까지는 모르겠는데, 대한독립군이라는 이름을 들은 이후에는 알겠더라. 너무 적나라하지 않나?”
강패의 너스레에 준족이 웃음을 터뜨렸다.
“껄껄걸. 맞습니다. 정확히 맞추셨습니다, 형님. 이 대한독립군을, 형님이 맡아 주십시오. 우리 대한민국이 더 이상 외세에 휘청거리지 않기 위해 극비리에 추진된 프로젝트입니다. 형님께서 이들을 이끌어 주십시오.”
열망이 잔뜩 서려 있는 준족의 목소리와 그런 그의 표정을 쳐다본 강패는, 시선을 외면하며 입을 열었다.
“싫다.”
*
*
*
“여기입니다.”
민준이 안내해 준 방 안으로 들어선 강패는 눈을 감은 채 병상 위에 누워 있는 소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흐음…….”
민준이 나가고, 잠시 턱을 매만진 강패는 자신의 심장 부근도 쓸어 보고, 관자놀이도 건드려 봤지만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자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금은 또 괜찮네?”
분명히 동대문에서, 소영이 간첩에게 위협당하고 있을 때 자신의 심장과 머리에서 갑작스레 통증이 발생했었다.
한데 지금은 이렇게 바로 앞에서 소영을 보고 있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하긴. 그 사람 많은 데서도 괜찮긴 했어.”
생각해 보면 소영과 처음 만나는 것도 아니었고, 소영에게 무슨 수로든 접근하기 위해 별 이상한 짓을 다 했을 때도 갑작스런 통증은 찾아온 적이 없었다.
“흐음…… 목을 다친……. 큭…….”
간첩의 단검에 목에 생채기가 낫기 때문에 반창고가 붙여진 소영의 목을 본 강패는, 갑작스레 다시 심장이 칼로 찌른 것처럼 욱씬거리자 뒤로 물러섰다.
“후우…….”
한 발자국 떨어지자 심장에서 느껴지던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뭐지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언제나 싸움터를 전전해 왔기 때문에 상처나 통증이라면 지겨울 정도로 많이 입어 봐서 통증에 익숙한 강패였다.
한데 이렇게 전혀 뜬금없이 찾아오는 심장의 통증과 두통은 강패로서도 참기 힘들 만큼 대단했다.
그런데 그런 통증이 소영을 볼 때 어떠한 조건 하에서만 나오는 것 같았다.
그러니 의아할 법도 했다.
“야, 야…….”
일단 물어봐야겠기에 강패가 소영의 볼을 툭툭 건드려 보았지만, 깊이 잠이라도 든 것인지 꿈적도 하지 않았다.
“하아…….”
방 안을 두리번거리던 강패는 이 온통 하얗기만 한 병실에 그가 앉을 곳이 소영의 침대밖에 없음을 보고서는 한숨을 내쉬면서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기다려야 하나?”
소영이 일어나면, 확인해 봐야 될 것이 산더미였다.
물론 민준이나 준족에게 물어 소영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모두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과 연관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강패의 몸에 ‘이유 모를 통증’이라는 기현상이라니.
“그나저나 준족 녀석. 괜찮으려나?”
소영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강패는 문득 준족이 떠올랐다.
자신이 매몰차게 거절하자 실망한 빛이 역력하던 준족의 표정.
약간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말이 좋아 교관이지, 이건 무슨 애 보모도 아니고. 그런 걸 누가 시키래 그러니까?”
대한독립군이라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뛰긴 했던 강패였고, 이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처한 암울한 상황을 민준의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대략적으로나마 인지한 강패였다.
그렇다고 해서 또다시 대한독립군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일단 이곳에 적응하는 게 먼저야. 틀림없이 저거 하겠다고 하면 저놈은 날 백날이고 여기에만 처박아 둘 놈이지.”
국제 정세가 어떻건 간에 강패는 민준의 입을 통해서만 들었기 때문에 확실히 체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민준의 프리젠테이션을 들을 때는 그것이 ‘정보’로서 강패의 머릿속에 와 닿았지만, 최소한 강패가 ‘체감’하기에는 이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대한독립군까지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고도로 발전된 문명 사회였다.
거기에서 오는 괴리감이 강패로 하여금 거절하게 한 것이었다.
“이 녀석과도 해결을 봐야 하고.”
그리고 대한독립군이고 뭐고 간에, 강패의 잃어버린 기억, 그가 왜 히로시마에 가서 원자폭탄을 맞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 잃어버린 기억과 대체 자신이 느끼는 기이한 통증에는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인지 해결해야 했다.
“그 빌어먹을 연구소만 부숴 먹지 않았어도 해결될 일이었는데…… 으득.”
미국에서 보았던 늑대 같던 놈을 떠올리며 이를 바드득 간 강패는 그것도 잠시, 몇 분 지나지 않아 무료한 표정으로 소영이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
*
*
“할아버님…… 괜찮으십니까?”
민준은 강패를 소영이 있는 병실까지 데려다 준 후, 강패가 제안을 거절하자 안색이 급속도로 안 좋아졌던 준족을 위로하기 위해 돌아왔다.
한쪽에 나 있는 창으로 열심히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을 하고 있는 요원들.
준족은 그러니까 대한독립군이라고 새로 명명한 국정원 비밀 조직원들을 보느라 민준을 등지고 있었다.
민준은 그 모습이 사뭇 슬퍼 보여 조심스레 준족에게 물었던 것이다.
“무엇이 말이냐?”
“그…… 강패 님께서 제안을 거절하신 것 말입니다…….”
“그럴 줄 알고 있었다.”
“예?”
준족은 민준의 질문에 빙긋 웃으며 휠체어를 돌렸다.
민준의 예상과는 다르게 준족은 멀쩡했다.
“네놈은 기억력이나 머리만 좋지, 사람을 파악하는 데는 아직 멀었구나.”
“제가 어떻게 감히 벌써 할아버님처럼 되기를 바라겠습니까.”
고개를 숙여 보인 민준은 궁금함에 준족에게 물었다.
“한데 알고 계셨다니요? 알고 계셨으면서 이곳까지 데려오신 것입니까?”
“그래. 워낙에 형님은 종잡을 수 없는 분이다. 대한독립군이라는 이름으로 혹하게 하려고 한 것도 있지만, 오늘은 이런 게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정도로 끝나는 게 좋아. 일단 일차 충격 요법은 성공적이지 않았느냐?”
“충격 요법이라…… 아! 그게 충격 요법이었습니까?”
민준은 자신의 프리젠테이션을 듣고 분노하고 슬퍼하던 강패의 모습이 떠오르자 자신도 모르게 크게 감탄했다.
“그럼 두 번째 충격 요법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처음에 CCTV 영상을 통해 강패의 얼굴을 본 준족이 뛸 듯이 반색하면서 민준에게 어서 강패를 데려오라고 재촉할 때만 해도 민준은 준족이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국가정보원의 말단 요원으로 시작해 적어도 한국 내에서는 미 중앙정보국, CIA도 함부로 할 수 없게끔 탄탄한 구조를 가진 국정원으로 탄생시킨 업적을 남긴 사람이 준족이었다.
그에 대한 존경심이 하늘을 찔렀던 민준이었기 때문에 대놓고 그것을 드러내 놓진 않았지만, 못내 의심이 가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비밀 통로를 통해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준족이 믿는 바가 있었고, 그의 눈을 믿었기 때문에 별 토를 달지 않았었다.
하지만 강패를 만난 이후 그 생각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지금은 민준도 기필코 강패를 자신들 쪽으로 끌어들여야겠다고 다짐했다.
“글쎄. 만약 형님께서 아직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계신 거면, 인지하게 해 드리면 되겠지. 형님에 대한 정보를 흘려라. CIA에.”
“하, 할아버님!”
준족의 말에 민준이 크게 놀랐지만, 준족은 그런 민준을 보면서 오히려 웃었다.
“왜 그러느냐. 설마 형님께서 그깟 CIA에 당하실 것 같아서 그러는 거냐?”
“하, 할아버님! 아무리 그래도 상대는 국가입니다! 그것도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세계의 법을 지킨다 뭐다 하면서 돌아다니는 강대한 단체입니다!”
“개인이 국가를 이기지 못한다. 집단을 이길 수는 없다.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게냐?”
“그건 당연합니다! 아무리 작은 힘이라도 모인다면…….”
민준이 말을 계속하려 했지만 준족은 고개를 젓고서는 손을 들어 민준의 말을 끊었다.
“아니, 형님이라면 가능하다. CIA 정도는 발끝도 건드리지 못해. 단지 CIA는 형님이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민준은 단 한 번도 자신의 할아버지가 저 정도로 확신에 찬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모든 결과가 뻔히 나와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민준이 아는 준족은 항상 ‘만약’을 대비하던 사람이었다.
한데 강패에 관해서는 너무나도 확고하고 뚜렷한 신념, 아니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 기회에 우리 꼬투리를 잡으려고 잔뜩 독이 올라 있는 CIA를 잠재워 주면 좋고 말이다. 일석이조, 아니 삼조인 건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리저리 꼬인 계략을 생각해 냈으면서도 준족은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그럼 먼저 나가 보겠습니다.”
준족이 말한 것을 실행시키기 위해 정중히 허리를 숙여 보인 민준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자 준족은 다시 고개를 돌려 구슬땀을 흘리는 대한독립군 요원들을 쳐다봤다.
스윽.
준족은 자신의 얼굴에 맺힌 검버섯이 더욱 검어진 듯한 느낌이 들자, 자신도 모르게 쭈글쭈글한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쓸어 보았다.
“정말 형님 말대로 많이 늙었구나…….”
*
*
*
호텔 방 안은 그 흔한 등 하나 켜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크기란 것을 알 수 있었다.
화려한 서울 밤 야경을 수놓는 수많은 불빛들에 의해 호텔 최상층에 위치한 특실에 은은한 빛이 새어들어 오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러셀, 혹은 지카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남자가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응. 미안해 여보. 이번에도 출장이라서 말이야. 애들 잘 돌보고. 금방 돌아갈 테니까. 응?”
가족과 통화를 하는 듯, 러셀의 얼굴은 공항에서와는 달리 사뭇 밝았고, 목소리도 또한 자상했다.
“그래. 우리 예쁜 딸. 나도 사랑한다.”
수화기 너머에서 어린 여자아이가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가 나자 희미한 미소를 띤 러셀은 자상하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가족사진으로 보이는 사진이 배경화면으로 저장된 핸드폰 액정도 함께 꺼졌다.
스윽.
“놈은?”
“하루 종일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디로 간 것인지 도저히 추적할 수가 없어서…….”
어둡기만 하던 호텔 방의 창밖에서 시커먼 물체가 문도 열지 않고 불쑥 들어왔지만, 지카인은 태연하게 반응했다.
그림자가 땅바닥에 툭하고 떨어지자 곧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놈의 옆에 잘 붙어 있으라고 하지 않았나?”
“죄, 죄송합니다. 따, 딸아이한테 돈을 부쳐 주는 사이에 없어졌을 줄은…….”
놀랍게도 그 사람은 김 씨였다.
김 씨는 러셀의 한마디 한마디에 잔뜩 주눅이 들어서는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
김 씨가 ‘딸’ 이야기를 꺼내자 무표정한 러셀이었지만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김 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띠리링!
그 순간, 조용하고 어둡던 호텔의 분위기를 깨고 러셀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러셀은 무표정하게 통화버튼을 누르고는 귀에 가져다 댔다.
“크리스 씨?”
-예, 러셀 님. 지금, 그놈. 미국에서 연구소를 폭파하고 도주한 그놈을 찾았습니다.
워낙 조용했기 때문에 통화 내용이 김 씨의 귓가에도 들려왔다.
러셀이 목표로 하는 자, 강패의 위치를 찾아냈다는 내용에 김 씨가 자신도 모르게 화들짝 놀랬다.
“요원들을 출동시키실 생각이십니까?”
-예.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내일 아침 정도에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움직이실 겁니까?
“……일단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굳이 러셀 님께서 나서지 않으셔도 저희가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러셀의 말에 크리스가 너스레를 떨면서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끊기자 검게 변한 액정을 바라본 러셀이 피식 웃었다.
“놈을? 겨우 CIA 따위가 해결한다고?”
이 강력한 힘을, 원치 않았지만 부여된 강력한 힘을 받은 이후로 처음으로 고전한 유일한 전투였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했던 건 아니지만, 연구소에서 마주쳤던 아시아 놈, 강패와 유일하게 싸워 본 경험이 있는 러셀은 CIA 수백 명이 몰려가 봤자 강패를 절대로 어찌하지 못할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욱씬.
“크흣.”
강패에게 직격 당했던 갈비뼈가 괜히 아파 는 기분에 실소를 터뜨린 러셀은,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김 씨를 힐끗 보고서는 말했다.
“내일, 놈과 CIA게 엇갈리는 일이 없게 잘 제어하도록. 난 근처에서 보고 있겠다.”
“예, 예……! 알겠습니다, 러셀 님!”
김 씨는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
*
*
“으응…… 으음…….”
소영이 입은 상처는 육체적으로 봤을 때는 그다지 큰 것이 없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아니었다.
항상 현장 요원으로서 살아왔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그렇게 느껴 보기는 처음이라 정신적으로 안정을 취하기 위해 맞은 진정제와 수면제로 소영은 몽롱한 눈으로 깨어났다.
욱씬.
“아코…….”
진정제와 수면제의 약효가 거의 떨어져 감에 따라 자연적으로 일어나게 됐던 소영은 몸을 일으키려다가 목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자신도 모르게 작게 신음 소리를 흘렸다.
“여기가 어디지?”
소영은 조심스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음냐…… 흠냐…… 으음…….”
“힉!”
소영이 땅바닥에 시커멓게 늘어져 있는 사람을 보고서는 화들짝 놀랐다.
“누, 누구세요?”
아직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던 것인지, 본래 성격과는 다르게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레 그 형체에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코고는 소리뿐이었다.
소영은 잠시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에 그 형체를 내려다보았다.
“…….”
찢어진 셔츠와 남루한 바지. 여기저기 구겨지고 주름이 잡혀 있는 구두와 산발인 머리, 파르스름하니 며칠 동안 깎지 않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턱수염까지.
제대로 나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남루한 모습이란 것을 확인한 소영은 왜 이 사람이 여기에 들어와 있는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봐요. 이봐요.”
혹시라도 몰랐기 때문에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고 있는 노숙자를 깨우려고 했다.
하지만 노숙자는 얼마나 곤히 잠들었는지 소영의 목소리에 반응도 하지 않았다.
이불 하나 없는 땅바닥에서 너무나도 태평하게 잠든 강패를 보며 소영은 갈등했다.
“대체 뭐야, 이 사람은?”
모르는 남자가 멀끔한 상태를 유지하고 들어와 있어도 놀랄 판에, 남루한 차림의 노숙자가 누워 있었으니 당황스러울 만도 했다.
소영은 조심스레 침대에서 내려와 강패에게로 다가갔다.
“이봐요! 이봐요!”
발끝으로 강패를 건드려 보았지만 강패는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응?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강패의 주위를 뱅글뱅글 돌며 관찰하던 소영은 왠지 강패의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노숙자라. 내가 노숙자를 알 리가 없는데.”
하지만 적어도 소영이 아는 한도 내에서 ‘노숙자’라고 불릴 만한 사람은 없었다.
이런 병실에 어째서 노숙자가 누워 있는지도 궁금했다.
일단 차가운 바닥에서 누워 자는 사람을 깨우는 게 우선인 것 같았다.
“스읍…… 어디서 봤더라……? 이봐요!”
소영은 자신을 구해 준 사람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강패의 엉덩이를 밀었다.
하지만 강패는 요지부동이었다.
“이 사람이 정말…… 그러다 입 돌아가요! 이봐요…….아!”
소영이 강패를 들어 올리려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제야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 남자!”
자신과 눈이 마주쳤던, 헐어서 낡아빠진 건물의 2층 창문에서 보였던 그 남자!
“이봐요! 이봐요!”
소영이 강패의 몸을 마구 흔들자 정신없이 자고 있던 강패가 그제야 눈을 떴다.
“뭐……뭐야!”
“꺅!”
쿵!
강패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자 소영은 벌러덩 넘어졌다.
“뭐, 뭐야 너!”
“뭐가요!”
강패는 강패 나름대로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소영을 기다리다가 너무 무료해서 잠이 들었다.
한데 일어나서는 오히려 자신에게 큰소리를 치는 게 아닌가?
소영의 큰소리에 강패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움찔해? 내가? 왜?’
강패는 또다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왜 움찔거린단 말인가? 이 여자한테 대체 왜?
“너!”
“뭐요!”
이러저러하게 복잡한 머리였지만 일단 강패는 지금까지 이곳에서 소영을 기다렸던 제1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소영을 불렀다.
소영은 그런 강패를 여전히 날카로운 눈으로 쳐다보면서 뾰료퉁하게 소리쳤다.
강패가 다시 움찔해서 조심스레 물었다.
“나 아냐? 내가 널 아냐? 응?”
*
*
*
“민준아, 형님 불편하신 것 없으시게 네가 신경 좀 써 드리거라.”
“알았습니다, 할아버님.”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형님.”
“그, 그래. 언제든지 보고 싶으면 연락해라.”
탁!
강패는 차에 탄 채 휠체어를 타고 돌아서는 준족의 모습을 쳐다봤다.
“저 녀석 참. 미안하게시리. 저렇게 늙은 노인네가 돼서도 저 불쌍한 표정을 짓는단 말이야?”
휠체어를 탄 채 돌아서는 준족의 얼굴에는, 여든이나 먹은 노인네임에도 불구하고 강패에게 원하는 것이 있을 때마다 불쌍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15살 준족의 표정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강패도 오랜만에 만나서 한 부탁인데 너무 매몰차게 거절한 것이 아닐까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늙은 얼굴로 저런 표정을 지으니 미안함이 한층 더 배가되었던 것이다.
“미안하시면 승낙해 주시면 되지 않습니까? 하하.”
민준은 백미러로 그런 강패의 표정을 본 것인지 너스레를 떨었다.
강패는 똥 씹은 표정으로 말했다.
“됐어, 인마. 누구더러 애를 보라고 그런 일을 맡겨. 절대로 안 해.”
“아쉽네요. 할아버님께서 많이 기대하셨는데.”
“이 할애비랑 손주된다는 놈들이 똑같구만 아주! 시꺼 임마!”
강패는 짐짓 불쌍한 표정을 짓는 민준을 보면서 퉁명스럽게 소리치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 강패를 백미러로 쳐다본 민준의 얼굴에는 묘한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김소영. 나이 26세. 나고 자란 것은 서울이고…… 어머니, 아버지 모두 생존해 계신다. 스읍. 뭔가 이상하단 말이야…….”
다짜고짜 소영에게 자신을 아냐고 물어본 강패는 몇 분 동안 소영에게 미친놈 취급을 받았다. 한데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았었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한다면 꽤 단순하고 직선적인 강패의 성격상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었다.
한데 이상하게도 소영 앞에만 가면 순한 양이라도 된 듯, 도저히 평소대로의 성격이 나오지가 않았다.
미친놈 취급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자신과의 접점을 찾기 위해 별의별 것을 다 물어봤지만, 강패가 알아낸 것이라고는 ‘극히 2010년도에 살아가는’ 한 여자란 것 외에는 전혀 접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모르겠다. 아니면 아닌 거고. 기억 안 나면 안 나는 거고. 안 나는 걸 억지로 하려고 해서 뭐 되겠어?”
강패는 어차피 준족이 국정원에 있는 이상, 소영은 만나려고 하기만 하면 쉽게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야.”
“예, 강패 님.”
지나가는 꼬마를 부르듯 민준을 부른 강패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민준은 싹싹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그 대한독립군이라는 거 말이야. 그거 해서 어디에 쓰겠다는 건데? 다른 나라 가서 전투라도 하겠다는 거야? 그 정도의 실력이면 충분할 것 같던데…….”
아직 강패가 대한독립군에 관해서 묻자 민준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도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죄송하지만 외부인에게는 발설할 수 없습니다. 강패 님.”
“외부인? 야, 인마! 내가 대한독립군이다!”
“그래도…… 지금은 아니시지 않습니까. 안 하겠다고 하신 분한테 대한독립군의 기밀을 말씀드릴 수도 없는 것이고…… 죄송합니다.”
민준이 웃는 얼굴로 사과했지만 강패는 ‘지금은 아니다’라는 민준의 말에 퍼뜩 놀란 듯했다.
“…….”
고작 3년이라지만, 강패가 살아왔던 세월보다 그 3년이란 세월이 뼛속 깊이 남아 있었다.
불과 3년이라는 시간에 친구도 없었던 강패에게는 전우라는 친구가 생겼었고, 불과 3년 만에 눈부신 업적을 남기며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다.
그리고 그 울타리 밖에 대한독립군이 있었다.
대한독립군이 아닌 자신을 거의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강패는, 민준의 말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음…… 그렇지. 난 더 이상 대한독립군이 아니지.”
강패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전우도 준족 한 명 빼고는 남아 있지 않았고, 더 이상 일제강점기도 아니다.
시간의 순리대로라면 자신은 원래 한참 전에 땅속에 들어가 썩어 버릴 수많은 사람 중에 하나였을 뿐인다.
지금은 무슨 운명의 장난이라도 된 듯 시간을 뛰어넘어 팔팔하게 살아 있는 것일 뿐이었다.
‘이게 아닌데!’
민준은 자신의 예상과는 다르게 반응하는 강패를 보면서 속으로 애가 탔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한독립군에 대한 추억이라면 날밤을 지새울 정도로 중하게 생각하는 자신의 할아버지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어 강패를 자극하려 했던 것뿐인데, 오히려 수긍하고 있지 않은가.
강패를 다시 대한독립군으로 반드시 끌어들여야 하는 민준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아니야. 할아버님의 충격 요법이 있잖아? 충분히 효과가 있을 거야.’
괜히 섣불리 나섰다가 벌집을 건드린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민준은 백미러로 계속해서 사색에 빠진 강패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차는 어느덧 강패가 늘 머무르던 지하보도에 도착했다.
“강패 님. 다 왔습니다.”
“음, 벌써?”
민준의 말에 퍼뜩 상념에서 깨어난 강패는 주위를 휘휘 둘러보더니 차 문을 열고 내렸다.
민준도 그런 강패를 따라 차에서 내렸다.
“저희가 마련한 안가에 가서 계셔도 되는데 왜 굳이…… 이런 노숙자 생활을 하시는 겁니까.”
사실 준족과 민준은 강패를 위해 이미 집까지 다 마련해 놓았고, 강패가 생활할 수 있는 일체의 물품들을 미리 다 준비해 놨었다.
하지만 강패는 지하보도로 돌아가겠다고 완강히 거절했다.
“지금은 여든이 다 돼서 골골거리는 노인이지만, 너희 할아버지를 먹여 살렸던 몸이다. 그런데 그 코흘리개의 도움을 받으라고? 미쳤냐?”
이렇게 살아도 불편하지 않았고, 자신이 먹여 살리던 준족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도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에 호기롭게 말했지만 사실 중요한 이유는 있었다.
“내가 완벽하게 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지금 이 모습이 편하다. 괜히 편한 곳에 갔다가는 몸이 게을러지기 마련이야.”
“……알겠습니다.”
적응할 시간.
이 사회에 대해 제대로 알고 적응할 시간이 강패에게는 필요했다.
편안하고 발전된 이 문화에 익숙해졌다가는 더 이상 이곳에 대해서 알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것 같았다.
“항상 저희 요원을 근처에 상주시키겠습니다. 일이 있으시면 그 요원을 통해 말씀하시면 됩니다. 음…… 아마…… 김소영 요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빙긋.
강패가 소영에게 지대한 관심이 있다는 것을 다른 쪽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민준은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강패는 인상을 찌푸렸다.
“괜히 머리만 복잡하…… 에이 됐다. 마음대로 해라.”
“주민등록증이나 만들어 두신 계좌도 다 정식으로 등록해 놓았으니 문제 생길 일은 없으실 겁니다. 그럼 이만…….”
“아, 빨리 가라니까! 안 가고 왜 계속 뭉그적대는 거야!”
강패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민준은 계속해서 싱글벙글한 표정을 유지한 채 강패에게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가! 가, 임마!”
퉁명스레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은 강패는 민준이 허리를 펴기도 전에 몸을 홱 돌려서는 지하보도로 들어갔다.
그런 강패의 뒷모습을 보면서 민준은 아무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꼭! 이 일을 하시게 될 겁니다 강패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