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장 (14/30)

4장

“어이, 어이!”

쾅쾅쾅쾅!

강패는 지금 경찰서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소음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원래라면 바로 국정원으로 이송이 되어야 했지만 이미 잡힌 간첩 두 명의 처리로 인해 강패는 임시로 유치장에 갇히게 되었다.

“그 여자애. 그 여자애 데려와! 그 여자애한테 들을 말이 있다니까?”

창살 사이로 팔을 뻗은 채 허우적대는 강패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웠지만, 경찰들은 얼굴에 짜증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그 여자애가 대체 누군데요. 이름 알아요? 그 사람이 뭐하는 사람인지는 알아요?”

“그걸 알면 내가 직접 가지! 너네가 찾아오라고! 순순히 잡혀 줬는데 그것도 못해 주냐!”

강패가 경찰 특공대에게 순순히 제압당한 이유는 단순히 소영 때문이었다.

호흡곤란과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살아난 충격으로 소영은 기절해 버렸다.

그녀에게 물어볼 게 있는 강패는 일단 소영을 병원에 보내서 치료받게끔 했어야만 했다.

그다음에 원활한 처리를 위해 경찰들한테 붙잡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싹 다 때려눕히고 내가 병원에 데려가는 건데.”

병원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병원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강패였다.

이렇게 떨어뜨려 놓을 줄 알았으면 그냥 몽땅 때려눕히는 것이 나았을 것 같았다.

“아. 거 좀 조용히 해요! 혼자서 쓰는 데도 아니고!”

강패가 계속해서 소란을 피우자 참다못한 경찰이 버럭했다.

강패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그러니깐 날 여기 왜 가두냐고, 이 새끼들아! 내가 뭘 잘못했는데. 어? 그 여자애 구한 게 여기 갇혀 있을 짓이야? 이거 그냥 확 다 부숴 버리고 나간다? 빨랑 풀어, 이 새끼들아!”

우당탕탕!

강패가 창살을 걷어차자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지금 당신은 간첩 용의자로 여기 갇혀 있는 겁니다. 괜히 소란 피워서 공무집행 방해죄도 추가하고 싶어요? 그냥 조용히 합시다. 조용조용. 어차피 내일이면 국정원으로 이송될 사람이…….”

간첩은 국정원의 관할이지 경찰인 자신들의 관할이 아니었기 때문에 심드렁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간첩이라고 하니 경찰들로서는 더욱더 불친절하고 불손하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얼씨구, 그딴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지금?”

경찰의 오만불손한 태도에 강패가 씹어뱉듯이 말하자 철창 밖의 경찰이 비웃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뭐 그거라도 부수고 나올 생각인가? 아, 간첩이면 할 수도 있으려나?”

제딴에는 작게 목소리를 낸다고 한 것이지만 강패의 귓가에는 너무나도 똑똑히 들려왔다.

강패가 그 경찰을 보면서 비릿하게 웃었다.

“지금 그 말, 책임지는 거다?”

흠칫

“뭐…… 뭐 말이오?”

강패가 정확하게 자신을 쳐다보면서 말하자 경찰은 설마 자기 말을 들었을까 싶으면서도 움찔했다.

강패는 그런 경찰을 보다가 어디론가 걸어갔다.

“여기가 문이지?”

철컹철컹.

유치장 문 앞에 선 강패가 창살로 된 문을 잡아당기자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깥의 자물쇠가 달칵거렸다.

혹시 무슨 짓을 할까 경찰들이 모두 강패를 쳐다봤다.

‘정말 부술라고?’

‘간첩이 아니라 미친놈 아니야?’

당연히 경찰서 안에 있는 경찰들은 동대문 시장에서의 강패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때문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강패가 순순히 경찰 특공대의 말에 따른 건 소영이 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죄목은 딱히 없었다.

단지 두 간첩과 같은 장소에 있었다는 용의만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오히려 국정원 요원을 구출하지 않았던가.

때문에 그가 간첩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었고, 지시에 순순히 따랐기에 위험도가 낮다고 판단, 유치장에 가둬 둔 것이었다.

만약 강패가 특공대를 공격하기라도 했으면 상황은 완전히 달랐으리라.

웅성웅성.

“왜 이렇게 시끄러워?”

“어떤 놈이 감히…… 여기 형님도 계신대.”

국정원의 요구로 강패는 유치장에 혼자 있었지만, 그 옆에 붙은 유치장은 달랐다.

그곳에는 조폭들이 앉아 있었는데, 저번에 기린파와의 충돌로 인해 붙잡혀 온 흑룡파였다.

“혀, 형님! 저, 저놈은 그놈이 아닙니까?”

조폭들에게 강패의 얼굴은 까먹을 수 있을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놈은 대담하게도 장부를 이용하여 흑룡파와 기린파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기린파에게 그 장부를 넘김으로써 막대한 돈을 챙긴데다가 경찰이 들이닥친 상황에서는 용케도 미꾸라지처럼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랬던 놈이 바로 옆 유치장에서 소동을 벌이고 있었으니, 흑룡파 조직원이 호들갑스러울 만도 했다.

그의 말에 우두머리의 감겨 있던 눈이 번쩍 뜨였다.

“뭐? 누구라고?”

“그때 그…… 장부 뺏어간 놈. 그놈 있지 않습니까. 그놈이 저기 옆 유치장에…….”

빠득.

“그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놈이 있다고?”

“야! 너 이 새끼야!”

“저 개 같은 새끼! 여기 나가면 넌 죽었어!”

우두머리가 행동하기도 전에 똘마니들이 먼저 일어나 삿대질을 하며 온갖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쾅!

“합…….”

“헙…….”

“…….”

유치장에서 터져 나온 굉음에 욕설과 비방이 쏙 들어갔다.

“미, 미친…… 저, 저게 사람이야?”

우두머리도 강패의 위력에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을 정도였다.

그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강패는 눈을 끔벅였다.

“은근히 튼튼하잖아?”

강패는 태연한 얼굴로 자신의 주먹과 창살문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확실히 기술 좋아졌다니까. 이 정도로도 안 부서지다니. 대단해.”

어쨌거나 이건 숫제 협조를 요구하는 태도가 아니라 강압적으로 포로나 죄인을 대하는 듯했다.

강패는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아까 그놈들. 다시 불러.”

강패가 으르렁거리는데 그 때, 출입구가 열리며 요란한 구둣발 소리들이 들려왔다.

곧 검은색 정장을 위아래로 맞춰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 일행의 마지막으로 들어오던 남자가 선글라스를 벗으면서 경찰들에게 배지를 보여 주고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국정원 제3처장 안민준이라고 합니다.”

젊어 보이는 사람이 국정원의 처장이라는 말에 경찰들이 놀라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세 개의 부서로 나뉘어 있는 국정원은 각 부서를 각기 처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사람이 통솔했다.

그렇다면 이 앞의 안민준이라는 젊은 남자가 국정원의 삼분지 일을 관할한다는 소리였다.

안민준은 불만이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강패를 발견하고서는 성큼성큼 다가갔다.

“……날 죄수 취급하는 이유가 뭐야?”

강패는 이미 꼬일 대로 꼬인 기분을 여실히 드러냈다.

“안녕하십니까. 안민준이라고 합니다.”

민준이 손을 내밀었다.

“내가 한 건 네놈들을 도와준 것뿐이다. 그런데 날 여기에 가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 채 앉아 있던 강패는 악수는커녕 대뜸 시비를 걸 듯 말했다.

머쓱해진 안민준이 손을 접었다.

“왜냐고 물으셨습니까?”

“그래. 왜.”

“글쎄요. 저희에 대해 얼마나 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가 그쪽에 대해서 아는 부분이 전혀 없어서 그랬습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저희가 찾을 수 있는 것은 위조된 신분증뿐. 뭐, 제법 공을 들여서 위조를 하긴 했습니다만 저희가 찾아낼 수 있는 부분은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당신, 대체 정체가 뭡니까. 이름은 뭐고, 국적은 어디고, 소속은 어디입니까?”

“내가 누군지 몰라서 이곳에 처넣었다고?”

스윽.

강패가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강패의 키가 조금 더 크기는 했지만 민준도 그리 작은 키는 아니어서 어느 정도 눈높이가 맞았다.

“이게 미…….”

“저희 측에서는 불가피하게 이런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 사과드리겠습니다. 국가 안보가 걸린 일이다 보니, 저희도 규칙상 이렇게 엄정하게 모든 것을 처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강패가 뭐라고 하려던 찰나 민준이 깍듯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이렇게 정중하게 나와 버리니 강패로선 그냥 화를 내기도 뭐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놈의 나라는 뭐가 대체…… 그놈들은 조선…… 아니, 한국 사람이 아닌가? 평안 지방 사투리를 쓰던데, 간첩이니 뭐니 그건 또 뭐야? 왜 그놈들을 잡아간 거야, 대체? 그리고 내가 그놈들이랑 같은 패거리라니 그건 무슨 소리고?”

강패는 이해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았다.

이 좁디좁은 한반도가 분단되었다는 것은 그도 들었지만, 정확히 어떠한 경위를 통해 분단이 됐는지는 자세히 알 리 없었다.

그가 살던 시기에 북은, 일제 치하에서 같이 고통을 받는 한민족일 뿐이었다.

2010년의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그 역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민준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음…….”

민준은 본능적으로 강패에게서 위화감을 느꼈다.

말하는 투하며, 말하는 내용하며, 북한 사람을 왜 잡아 갔냐느니 묻는 등 모든 것이 다 민준으로서는 의심스러웠다. 게다가 신분도 불분명하지 않은가.

‘일단 국정원으로 옮겨야겠군.’

이곳은 너무 보는 눈도 많았고 듣는 귀도 많았다.

강패를 국정원으로 이송할 필요성을 느낀 민준은 강패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조금 더 조사를 해야 할 것이 있어서 그러니 국정원까지 함께 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가 왜?”

“예? 그건…….”

지금까지 비교적 순순히 협조해 왔던 강패였기 때문에 설마 거절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던 민준이었다.

그의 똑똑한 머리로도 설마 강패가 여기까지 와서 거절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강패의 얼굴은 태연하기 그지없었고 자신이 왜 그곳까지 가야 하냐는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건 국가 안보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국민의 일인으로서 필히 도와주셔야…….”

늘 그렇듯, 정설을 펼치려던 민준은 문득 강패의 신분도, 이름도, 국적도, 소속도 알 수 없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고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이, 일단 저희를 도와주셨고, 요원도 구해 주셨으니 그에 합당한 보답을 한다치고 가 주시면…….”

“관심 없어. 그 아이만 여기로 데려와.”

강패의 신분과 국적이 불명확하다고 해서 무조건 강패를 잡아갈 수는 없었다.

민준은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동대문에서의 사건을 촬영한 영상을 보았다.

그래서 강패를 억지로 데려가려 했다간 무언가를 얻기는커녕, 손해나 보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믿을 것은 민준 스스로의 세 치 혀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그도 힘든 것이, 강패를 잡아갈 명분이 없었다.

이미 현장에서 기절한 두 명의 북한 간첩들의 상흔을 조사한 결과, 누군가가 순간적으로 강한 타격을 가해 기절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강패가 간첩을 잡은 셈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강패가 국정원 요원인 소영을 구해 낸 것으로 보아 결코 북한 간첩의 일인이라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강패는 수상한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기필코 데려가야만 했다.

“네 얼굴만 봐도 나한테 죄가 없다는 건 알겠으니깐 이상한 말로 속이려 하진 말고.”

없는 죄라도 뒤집어씌워서 데리고 가야 되나 하고 생각하고 있던 민준은 자신의 머리를 꿰뚫어보는 듯한 강패의 말에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표정변화나 움찔하는 것이 다른 사람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극미한 것이었다.

하지만 강패는 다 알고 있다는 듯 뻔뻔스러운 얼굴로 민준을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하는지가 그렇게 표정에 다 보여서야…… 쯧쯧…….”

아니, 강패는 다 알고 있는 듯한 게 아니라 실제로 다 알고 있었다.

“그……그 부상당한 요원이 지금 국정원 모처에서 치료를 받고 있어서 같이 가시는 것이…….”

궁여지책으로 민준이 생각해 낸 것은 강패가 그렇게 부르짖는 소영의 존재였다.

하지만 강패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어이 너. 지금 누구를 바보로 아는 거야? 그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 아니었을 텐데?”

당황하는 안민준을 향해 강패가 말을 이었다.

“내가 사람을 한두 번 고장내 본 것이 아니라서 말이야. 척하면 척이지. 고치지는 못하지만.”

사람을 고치는 재주는 없었지만, 사람을 죽이는 재주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났던 강패였다.

그래서 소영의 상태를 어느 정도는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띠리링!

그 순간, 난감해 하던 민준의 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민준은 핸드폰을 꺼내 들더니 깜짝 놀라며 구석으로 가서는 핸드폰을 받았다.

“예, 3처장 안민준입니다…… 네? 그런데 가지 않으려고…… 예? 정말 그렇게 말하라는…… 아,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만 전하고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자신보다 높은 직함, 그러니깐 최소 국정원의 차장이나 원장한테서 온 전화를 받은 것인지, 공손하게 받은 민준은 통화를 끊고 돌아오는 얼굴에 난감함이 한가득 떠올라 있었다.

“지금 당장 저희와 같이 안 가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꼭 그쪽을 보고 싶어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말했을 텐데? 일단 그 여자애를 데려오라고. 그다음에 생각해 보지.”

하지만 강패는 요지부동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민준은 하는 수 없다는 듯,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전하라는 말씀이 계셔서 전하겠습니다…… 후우.”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잔뜩 뜸을 들이자, 강패가 또 무슨 개소리를 하려는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민준을 쳐다봤다.

“‘살아계셨던 겁니까. 깡패 형님……’ 이라고 전해 드리라더군요.”

“……!”

벌떡!

순간, 강패가 눈을 부릅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발 아래 쓰러진 의자가 뒹굴었다.

*

*

*

“야! 재미야! 이건 진짜 아니다. 그냥 돌아가자. 지금 너 이렇게 나온 것만 해도 회사 발칵 뒤집어졌을 거야. 며칠 전에도 큰일 날 뻔했잖아. 어? 그러니깐 그냥 가…….”

“아 형! 그렇게 떠들어 대는 게 더 눈에 띄겠어요! 그냥 조용히 따라와요! 여기까지 기껏 왔는데 그냥 돌아가는 게 더 웃기잖아요!”

후드에 모자까지 푹 눌러쓴 재미가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옆에서 따라오는 매니저에게 눈총을 쏘았다.

매니저가 주위를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재미야. 그래도 이건…….”

“진짜 형이 그때 못 봐서 그래요. 그때 저 도와준 그 형만 찾으면 회사에서 할 일도 훨씬 줄어들 거예요. 제가 보장할게요. 정말. 한번만 믿어 주세요, 형.”

매니저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몸이 두 개, 아니 다섯 개여도 모자랄 정도로 잘나가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인 재미였다.

스케줄이 끝난 것도 아닌데 촬영 도중에 잠시 어디 갈 곳이 있다고 무작정 자신을 끌고 나오더니 한다는 소리가 사람을 찾으러 가야 한다니.

“너, 이거 잘못해서 방송 펑크 나면 큰일 나는 거 알지? 약속 안 지키는 연예인이 연예계에서 얼마나 처참하게 욕먹는지도 잘 알잖아. 그런데 왜 이러냐!”

한창 정상에서 군림하고 있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라고는 하지만 인기가 많은 만큼이나, 안티도 많은 것이 어쩔 수 없는 이 바닥의 생리였다.

인터넷에서는 작은 잘못 하나에도 팬들과 안티팬들의 설전이 펼쳐지기 일쑤였다.

아니, 단지 그뿐이면 말을 안 한다.

작은 꼬투리 하나라도 잡아내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기사를 만들어 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기자들로 득시글거렸다.

한데도 이렇게 위험천만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니.

“저기! 저기 있어요, 형!”

과로로 인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하던 그날.

어떻게 안 것인지 소식을 듣고 달려온 사생팬들에게서 빠져나가기 위해 매니저로서 장렬히 몸을 던져 희생했던 바로 그날.

어딘가를 다녀온 재미는 계속해서 누군가를 만나야겠다고 하더니 기어코 일을 저지른 것이었다.

모자와 후드를 눌러쓴 재미는, 작은 얼굴을 거의 반절이나 뒤덮은 큼지막한 선글라스를 쓴 채 지하보도를 향해 갔다.

아무리 가려도, 큰 키와 작은 얼굴이 만들어 내는 비율은 연예인의 분위기를 내는지라, 몇몇 눈치가 빠른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그 시선을 매니저도 느끼는데, 재미는 정신이 팔려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아이고 두야…… 아이고…….”

하지만 어쩌랴.

이제 재미는 연습생 시절의, 신인 시절의 인지도가 없는 연예인이 아니었다.

현재 시류에서는 최상급을 달리고 있었고, 회사에 그만큼 막대한 이익을 안겨 줬기 때문에 재미가 하는 일이 회사의 방침에 크게 위배되지 않는 이상, 매니저는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재미를 보살피는 일이었고, 일이 더 크게 확산되지 않게 미리 방지하는 일뿐이었다.

“딱 30분이다! 딱 30분!”

재미의 뒤통수에 대고 매니저가 소리쳤다.

어쨌든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

*

*

우우웅!

검은 세단은 인적이 별로 없는 길로 접어들자 한층 더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

차 안은 고요했다.

강패는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 옆엔 민준이 앉아 있었다.

“여든이라…… 여든…….”

강패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출발하고 근 30여 분 만에 처음으로 연 말문이었다.

민준과 요원이 흘끔 강패의 눈치를 살폈다.

“최소한 여든. 아니면 더 먹었을 수도 있다는 건가.”

강패는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본명도 모르는군.”

특능부대원들의 개인 신상은 비밀이나 다름없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은 아수라장이란 표현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수천 년 동안 터를 잡고 살던 사람들 사이로 섬나라 일제가 들어와 분탕질을 쳤다.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 시민들은 그들의 수탈에 시달려야만 했고, 괴롭힘을 당해야만 했으며, 죽어 나갔다.

친인척이 죽고, 가족이 파탄 났다.

그들을 잃고 각자 비극적인 사정으로 대한독립군에 들어온 이들은 스스로의 이름도 버렸고 태어난 곳도 잊었다.

단지 그들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제외하고서는 모두 지워 버린 채 살아왔다.

그러니 당연히 강패는 지금 그가 만나러 가는 이가 정확히 누구인지도,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단지 아는 것이라고는 이름 대신 불렸던 별명뿐.

강패는 깡패라 불렸고, 부대장은 대장이라고 불렸으며 이외에도 각자 가진 특기에 따라 이름을 대신하여 별명을 불렀다.

“독심 아니면 준족이겠구나.”

그리고 그중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을 정도로 어린 대원이라면, 그리고 개중에서도 강패를 형님이라고 부를 정도면 딱 두 명이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잘 읽어 낸다고 해서 독심이라 불렸던 소년과 그 소년보다 한두 살 정도 더 많은, 다리가 빠르다고 해서 준족이라는 이름을 얻은 소년이었다.

“여든이라 여든…….”

강패가 있었을 때 독심이 15살이었으니, 그 소년이 살아남았다면 최소 여든이었고 준족이 살아남았으면 여든을 넘긴 나이가 됐을 터였다.

피식.

절로 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웃기지 않은가.

강패 자신은 그저 정신을 잃고 쓰러졌을 뿐인데 눈을 뜨니 60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15살이던 소년은 강패가 깨어 보니 여든이었다.

끼익.

“다 왔습니다.”

웅장한 철문을 지나 어디론가 끊임없이 들어가던 검은색 승용차는 반원 모양의 도로를 지나 정문 앞에 섰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민준이 먼저 차에서 내려 차문을 열어 주었다.

강패는 하늘 아래 웅장하게 펼쳐진 건물을 스윽 훑어보고는 국정원 문앞으로 다가갔다.

“박영석 요원.”

민준이 여기까지 운전을 해 온 요원을 불렀다.

“어서 차장님께 연락드려. 그분께서 오셨다고.”

“예, 알겠습니다, 처장님.”

말하는 민준이나, 대답하는 영석이나 ‘차장’이라고 말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존경하는 기색이 흘러나왔다.

차장이란 자가 보통 인망과 신망을 얻고 있는 인물이 아닌 것 같았다.

“야! 여기서 이제 어떻게 들어가!”

“자,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강패의 재촉에 민준이 허겁지겁 달려갔다.

*

*

*

“여기였는데 분명히……?”

“재미야. 설마 네가 말한 사람이…… 여기에서 살아?”

지하보도로 들어온 재미는 열심히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낮 시간이라 그런지 지하보도는 깨끗하기만 했다.

노숙자들도 낮에는 돌아다니고, 밤에만 모여서 잠을 잤다.

때문에 지하보도는 제법 텅 비어 있었는데 정작 그것을 본 재미는 이만저만 실망한 표정이 아니었다.

“여기 있었는데 분명히…….”

“설마 정말 노숙자를 경호원으로 쓰려고 했다는 거야?”

설마 재미가 말하는 그 사람이 노숙자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매니저였다.

“안 돼. 노숙자는 절대로 안 돼. 너 미친 거 아니야? 너 제정신이 있어? 어?”

매니저의 언성이 높아졌지만 재미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형이 못 봐서 그래. 진짜 날아다녔어. 그 사람이면 날 충분히 지켜 줄 수 있다니까. 그리고 그 사람이면 믿을 수 있어. 반드시 믿을 수 있어.”

“재미야!”

매니저가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지만 재미는 강패를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넓은 지하보도가 아니었기에 한눈으로 훑어봐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재미는 미련이 남는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강패의 흔적을 찾았다.

“재미야, 돌아가자. 이제 녹화 시간도 다 됐고, 그 사람도 없다. 오늘은 이렇게 왔지만 다음부터는 절대로 안 올 줄 알아.”

이건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대체 자신의 위치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한단 말인가?

그렇게 경호원들이 차고 넘치는데 뭣하러 이런 노숙자를 꼭 경호원으로 쓰겠다고 난리를 치는 것인지, 매니저는 이해할 수도 없을뿐더러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작은 스캔들이나 가십거리가 어떻게 커지는지를 매니저 일을 하면서 한두 번 봐 온 것이 아니었다.

특히 정상급에 자리한 연예인일수록 그런 경향이 더욱 심했다.

때문에 매니저는 앞으로 관리를 더 강화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재미의 소매를 잡았다.

탁!

“놔!”

“재미야!”

매니저가 소매를 잡자 재미가 갑작스레 버럭 소리를 지르며 손을 뿌리쳤다.

재미가 이를 악물면서 말했다.

“형이 내 입장이 되어 본 적 있어?”

“재미야. 그게 무슨…….”

재미가 속한 그룹, 그러니깐 현재 가요계에서 남자 아이돌 중에는 최정상에 군림하고 있는 그룹인 ‘바커스’의 멤버들 중 성격으로만 따지면 재미가 가장 온순하고 유순했다.

가장 나이가 적은 것도 한몫을 하긴 했지만, 워낙 성격 자체가 긍정적이고 해맑았다.

지금껏 화를 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정도였는데 이런 과격한 모습이라니.

“요즘 길을 다니는 게 너무 무서워. 멤버들이랑 같이 다니는 것도 너무 무섭다고.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올지 모르겠다고. 그 기분 알아? 나 혼자 내 방에서 자고 일어났는데 물건들이 사라지거나, 내 옷이 하나씩 사라져 있으면? 그리고 처음 보는 여자 속옷이 들어와 있으면 얼마나 무서운지 형이 알기나 하냐고!”

버럭 소리지른 재미가 숨을 몰아쉬자 매니저는 할 말을 잃었다.

사생팬.

최정상급 아이돌인 바커스에게 사생팬이 없을 리 없었다.

처음에야 자신들도 드디어 톱가수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는 사생팬들이 생겼다는 것에 좋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24시간 내내 감시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대단한 스트레스였다.

게다가 몇몇 적극적이고 거침없는 사생팬들은 몰래 집의 문을 따고 들어오는 팬들도 있었다.

정말 정신 나간 것 같은 사생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일부라도 자기 것으로 소유하기 위해 별별 짓을 다했다.

심지어 피부를 할퀴어서 살점이라도 가지겠다든가, 뺨을 후려갈겨서 자신을 잊지 못하게 해 주겠다든가 등등.

교도소도 이렇게 24시간 감시를 하진 않을 터다.

이들은 가수라는 이유만으로, 팬들이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감옥보다도 더한 지독한 생활을 감수해야만 했다.

“다른 경호원들도 애들을 막아내는데 벅차지 뭘 할 수 있어. 원천봉쇄를 할 수 있어? 아니면 못 다가오게라도 할 수 있어. 대체 경호원들이 해 줄 수 있는 게 뭔데?”

물론 경호원들이 붙어서 밀착 경호를 했고 매니저들도 항상 붙어다녔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었다.

사생팬들은 덩치가 산만 한 경호원들을 무서워하지도 않았다.

제아무리 경호원들이라고 해도, 요즘 같이 인터넷이다 뭐다 잘 발달한 시대에서는 팬들을 잘못 건드렸다간 그 즉시 매장당할 수 있었다,

때문에 경호원들도 사생팬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선에서 최소한의 경호만 했지, 적극적으로 쫓아내든가 하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못했다.

“재미야 그래도…….”

“그런데도 그 경호원들만 믿고 있으라고?!”

매니저가 뭐라고 말을 하든 재미는 이미 굳건히 결심을 굳힌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하보도에 강패는 없었고 점점 시간만 흘러갔다.

매니저는 어쩔 수 없이 거의 반 강제적으로 재미를 끌었다.

“나중에 오자. 나중에. 이제 녹화 다시 시작할 때 다 됐다. 빨리 가야 돼.”

“형. 나 말리지 마. 기필코 그때 나 도와준 사람, 내가 고용할 거야. 회사에서 돈 못 주겠다면 내 돈을 주고서라도 고용할 거야.”

매니저의 손에 반강제적으로 끌리듯이 딸려 간 재미는 하는 수 없이 돌아가야만 했다.

그들이 사라지자 그림자 하나가 지하보도에 나타났다.

김 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언제 연예인도 알게 된 거야? 그나저나 어디로 가서 보이지 않는 거지. 젠장. 또 엄청 뭐라고 하겠군…….”

김 씨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젠장. 젠장.”

*

*

*

“흐음…….”

접견실 비슷한 곳으로 안내된 강패는 차와 함께 주어진 쿠키들을 열 접시째 비우면서 다리를 꼰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왜 안 나오는 거야?”

달달한 쿠키가 강패의 입맛을 자극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먹고 있었다.

한두 번은 그럴 만하다는 표정으로 들어온 비서가 다섯 접시를 넘기면서부터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변했지만, 강패는 인상을 찡그릴 뿐이었다.

“그래. 여든 된 노인이라니까. 참자. 참어.”

15살의 소년이라면 절대로 참지 않았겠지만, 65년이 지난 지금은 여든이 다 된 노인이란다.

강패는 단 한 번도 채워 보지 못한 나이였다.

그런 노인이 나오는 것이니, 조금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다고 관대하게 생각한 강패였지만 머지않아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었다.

“한 놈, 두 놈, 세 놈…… 많기도 하네. 저건 뭐, CCTV도 여기 하나…… 저기 하나…… 으음…….”

국정원이란 곳의 안내고 뭐고, 아직까지 경계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강패는 곧바로 접대실로 안내되었다.

강패는 자신이 한 번씩 자세를 바꾸거나 고개를 돌릴 때마다 자신을 따라붙는 시선들을 느끼고는 피식 웃었다.

“그냥 확 나가 버릴까?”

문 바깥에도 국정원 요원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것을 보니 함부로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시위라도 하는 듯했다.

하지만 강패는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 하는 성격이었다.

“경비도 더럽게 심하네.”

투덜거리면서 쿠키나 한 접시 더 비울까 고민하던 찰나, 지금껏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죄송합니다. 차장님께서 몸이 조금 불편하셔서…… 이제 준비가 다 끝나셨다고 합니다. 저랑 함께 가시죠.”

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민준이었다.

품위 있게 허리를 숙여 보인 민준이 차장이 있는 사무실로 강패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호오……?”

차장실로 가기 위해서는 부득이 하게 국정원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강패에게 있어 국정원의 깊숙한 곳은 별천지였다.

그래도 나름 일본군 진영을 제집 넘나들 듯 넘나들면서 온갖 신기한 것들을 다 봤다고 자부한 강패였다.

확실히 세월이 흐르긴 흐른 듯 국정원의 내부는 강패가 난생처음 본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이상한 연구소 뭐시깽이보다 훨씬 난데.”

감탄하는 강패의 말을 들은 민준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이래 봬도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손에 쥐고 흔드는 곳이 바로 국정원입니다.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모든 것들을 관리하는 곳이기도 하구요. 이 정도는 기본입니다.”

“그래?”

강패는 민준에게 말을 놓고 있었지만 그것이 너무 자연스러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똑똑.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국정원 내부를 지나 차장실에 도착했다.

똑똑.

“차장님. 그분을 모시고 왔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게.”

민준은 마침내 당도한 문 앞에 서서 정중하게 문을 두드렸고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 소리가 너무나도 작은 나머지 민준은 듣지 못한 듯했다.

“들어오래잖아. 뭐하고 있는 거야.”

강패가 한심한 표정으로 그런 민준 옆으로 밀었다.

“어…… 어엇…….”

민준이 종잇장처럼 나풀나풀 밀려났다.

강패가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독심이냐, 준조…….”

기세 좋게 문을 열고 들어간 강패는, 문을 채 다 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얼음 동상처럼 굳어 버렸다.

얼굴에 검버섯이 가득 피고, 하얀 머리칼은 단정하게 한쪽으로 쓸어 넘긴데다가 피부는 쭈글쭈글한 노인이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몸은 빼빼 말라서 옷은 헐렁해 보였고, 그나마 바지 부분은 다리마저도 없이 힘없이 휠체어에 늘어져 있었다.

“형님. 깡패 형님, 깡패 형님 맞으시네요, 형님.”

강패를 본 노인은 힘없이 늘어져 있던 눈꺼풀을 치켜 올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마저도 빈 타이어에서 바람이 새나오는 것처럼 미약하기 그지없어 귀를 귀울여야 간신히 들을 정도였다.

“너…… 대체 누구냐.”

세월이 풍화시킨 것은 단순히 돌이나 능선만이 아니었다.

65년이란 세월은 참 길기 그지없어서 강패는 도저히 머릿속의, 자신의 기억 속의 인물과 앞에 휠체어에 힘없이 앉아 있는 노인을 짜맞출 수 없었다.

노인이 처연하게 웃었다.

“준족입니다 형님. 많이…… 변했지요?”

“준족? 네가 준족이란 말이냐? 네가?”

터벅, 터벅.

강패는 믿을 수 없는 얼굴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씩 떼어 천천히 휠체어에 앉은 노인에게 다가갔다.

노인은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눈으로 강패를 올려다보았다.

“정말. 정말 네가 준족이란 말이냐? 네가?”

두 다리를 쓰는 것이 유난히 빨라서 준족이란 이름을 붙여 줬었다.

언제나 그 빠른 다리로 전령 역할을 하거나 현장에 나가 있는 요원들에게 정보 전달, 혹은 정탐 역할을 주로 했던 어린 소년이었다.

참 생기 넘치고 활기차 보이던 소년이었다.

근데 소년을 준족이라고 부를 수 있게 해 줬던 다리가, 두 다리가 없었다.

“너…… 이게 어쩌다…….”

준족은 씁쓸한 표정을 짓고서는 천천히, 노인 특유의 여유를 담아 천천히 말했다.

“6.25전쟁 때 폭탄에 맞아…… 다리가…….”

“…….”

6.25전쟁이 뭔지 모르는 강패였지만, 어쨌든 ‘전쟁’이란 단어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결국 그 총명하고 발랄하던 소년은 자신의 또 다른 이름이 되어 준 두 다리를 잃어버렸다.

태어나서 부모님께 받은 첫 번째 이름과 대한독립군에 들어와 받은 두 번째 이름을 모두 다 잃어버리고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말이었다.

“후우…….”

크게 한숨을 내쉰 강패가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가, 다시 목을 돌리더니 그제야 노인을 똑바로 쳐다봤다.

“65년 만이다. 많이 늙었구나, 준족아.”

“혀, 형님……. 크흑…….”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마치 어제 임무에 나갔다가 돌아와 인사를 건네는 것 같은 강패의 모습이었다.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그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강패의 모습과 목소리에, 노인은 65년 전 자신이 준족이라고 불렸던, 그리고 어린 나이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녔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노인의 볼을 따라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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