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장 (10/30)

10장

“외칼.”

기린파에서 저 장부를 반드시 입수하기로 결정을 본 것인지 돈은 억 단위로 계속해서 올라갔다.

흑웅은 기린파를 씹어 먹을 듯이 노려보던 외칼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예. 형님.”

외칼은 비장한 목소리로 답했다.

흑웅이 낮은 목소리로 소근거렸다.

“애들을 더 끌어 모아라. 네가 가서 직접. 그래서 놈들의 퇴로를 끊어. 기린파도 쓸어버리는 수밖에.”

“혀, 형님?”

“우리의 가용 자금을 동원해 같이 값을 올릴 거다. 그러다 적당히 빠진다. 저 두 놈들이 돈과 장부를 교환할 때, 덮친다.”

“하지만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이미 경찰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을 텐데…….”

흑웅의 말은 서울에서 대규모 난전을 벌어지는 말과 진배없었다.

때문에 외칼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대한민국을 삼분하는 거대 조직 중 두 개 조직이 한곳에 모였으니, 경찰들은 촉각을 곤두세운 채 눈을 부라리고 있을 터였다.

조폭들이 열 명 이상만 모여도 첩보를 입수하고 경찰조직의 감각이 예민해진다.

한데 이곳에 모인 기린파와 흑룡파의 조폭 수만 합쳐도 물경 100여 명에 달했다.

이 정도의 대규모 조폭들이 모였으니 경찰들이 두 발 뻗고 자고 있을 리 없었다.

“당연히 경찰이 움직이겠지!”

“그, 그럼 어떻게 합니까!”

사실 흑룡파나 기린파 정도 되면 경찰 조직에서도 대하기 껄끄러워진다.

그리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서로 뒤를 봐주기도 하는 게 경찰과 조폭의 관계였다.

하나 이렇게 일이 커지고 나면 그들로서도 보호막을 펴 줄 수는 없다.

“장부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겠나. 애들 몇 명은 들여보내는 수밖에…….”

흑웅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하자 외칼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애, 애들을요? 큰집에 보낸다는 말씀이십니까?”

큰집은 교도소를 뜻하는 은어였다.

외칼의 반응에 주변에 있던 조폭들이 힐끔 쳐다봤지만 흑웅이 눈을 부라리자 다들 찔끔했다.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지. 넌 시키는 대로나 해라.”

“아,알겠습니다 형님.”

때마침 기린파 측에서 하가 다시 한 번 값을 올렸다.

“5억을 드리겠습니다.”

흑웅은 다급해졌다. 그가 다시 한 번 눈을 부라리자 외칼이 빠르게 움직였다.

외칼은 하는 수 없이 일단 흑웅의 명령을 따르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경찰들이 몰려오면 동고동락한 부하들을 두 손으로 바치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저 장부 하나 때문에 괜히 애들만 철창신세를 지게 생겼으니 그의 심정은 착잡했다.

이 모든 것이 저 멀대같이 키만 큰 놈 때문이었다.

눈길에 살심이 이는 외칼이었다.

빠득!

“넌 반드시 내 손으로 끝장낸다.”

*

*

*

-뭐? 지원 요청? 조폭들? 거기에 우리가 왜 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흑룡파와 기린파 조직원이 백여 명이 넘게 모여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지금 경찰청에서도 난리가 났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저희 측에도 지원 요청을 넣은 것 같습니다.

“어휴. 시끄러…….”

소영은 거의 이 주일째 매일 계속되는 잠복과 미행에 신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안 그래도 목표 대상이 허점이나 약점을 드러내질 않아서 잠복과 미행이라면 짜증이 날 정도였다.

그런 소영의 인이어(In-ear)로 별별 잡다한 소음까지 다 들려왔으니…….

이젠 거의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근데 왜 그 지원 요청을 우리 보고 해결하라고 하는 건데! 노는 요원들 많잖아! 우린 임무 수행 중이라고!

-지금 한시가 촉박해서 어쩔 수 없답니다. 차장님 지시도 떨어졌습니다. 어차피 이 주일 동안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으니 최소한의 감시 인원만을 놔두고 일단 경찰에 협력하라는 명령입니다.

-젠장!

“아이고…… 다리야…….”

여전히 귓가에서는 지원이다 뭐다 하면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소영은 허리도 삐걱거렸는데 다리까지 저려 오자 눈물을 찔끔 빼면서 손가락에 침을 찍어 코에 묻히며 울상을 지었다.

힐끔, 힐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복잡한 곳에 있기 때문인지, 오다가다 소영을 쳐다보는 시선은 꽤 많았다.

그 대부분이 남자들이었다.

평소와는 달리 임무를 위해 가능한 평범하게 보여야 했다.

때문에 소영은 이곳을 지나다니는 대부분의 여자 회사원들처럼 보이기 위해 하얀 블라우스와 까만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 했던가.

평범한 복장으로도 가릴 수 없는 소영의 미모는 남자라면 눈이 절로 향할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게다가 평소 안 하던 화장과 머리 세팅까지 마쳤었기 때문에 소영은 더욱더 빛나 보엿다.

게다가 높은 힐까지 신어 늘씬한 몸매까지 더욱 돋보였으니…….

지나다니는 남자들의 눈길이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

소영은 가로수 뒤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척 연신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 간…….”

목표 대상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하자 소영도 그 뒤를 따르려 했다.

뚝!

“꺅!”

한데 하필이면 그 순간 보도블록 사이에 힐이 걸리고 말았다.

그 바람에 소영은 볼썽사납게 땅에 넘어져 버렸다.

“아이고…….”

여리여리하고 참한 인상의 소영이 땅에 쓰러지자, 주변을 거닐던 남자들이 움찔했다.

하지만 소영은 넘어진 속도만큼이나 재빨리 벌떡 일어나 무릎을 쓰다듬었다.

남자들이 괜히 머쓱하여 제 갈 길을 걸어갔다.

“아, 부러졌어! 히잉…….”

하이힐을 주워 든 소영은 힐 부분이 완전히 동강 나 있자 울상을 지었다.

스타킹만 신은 맨발로 보도블록을 걷은 꼴이 됐지만, 소영은 주변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 듯 그저 자신의 보물 1호인 하이힐만 보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하아……이거 비싼 건데……비용 청구 될까?”

그래도 나라의 국가 안보와 안전을 위해 힘쓰는 국정원 요원인데, 근무 중 과실로 인한 손해는 보상해 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때 인이어를 통해 들려오는 신경질적인 팀장의 목소리에 소영은 고개를 퍼뜩 들었다.

-소영! 거기는 민국이가 이미 따라붙었으니까 너는 돌아와서 애들이랑 같이 지원 요청 온 곳으로 가라!

“앗! 지, 진짜요?”

-빨리!

소영은 드디어 이 지겨운 잠복과 미행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에 제자리에서 팔짝 뛸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하지만 상기된 표정은 숨길 수 없었다.

“아차차, 이건 잘 가져가야지. 잘만 하면 붙일 수 있을지도 몰라.”

그래도 자신의 보물 1호인 하이힐이 아까운 듯, 혹시라도 고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기대감에 하이힐을 소중히 자신의 품에 안고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 하이힐은 하얀색이었다.

(환생자 강패 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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