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장 (5/30)

5장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다. 잘 보고 이런 놈 발견하면 반드시 연락해라.”

“예. 형님!”

블루 피쉬는 그 규모로 봤을 때 강남이나 청담, 압구정동 같은 곳의 룸살롱보다는 훨씬 작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망하지 않은 것은 조폭들에게 있어 선망의 지역인 종로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블루 피쉬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지만 그만큼 오래된 룸살롱이었기 때문에 짱짱한 단골들이 자주 들러 매상도 만만치 않게 높았다.

“에이. 기린파 잡놈들 때문에 이게 뭐야. 다영이 좀 만질려고 했더니.”

“말도 마라. 이 대낮부터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냐 이게.”

어제부터 흑룡파에서 기린파를 공격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때문에 방어를 준비하라는 소집령이 떨어졌다.

그래서 이른 대낮부터 블루 피쉬에 흑룡파 조직원들이 모여 있던 것이다.

그들은 모두 한 장의 몽타주를 보고 있었다.

모자와 그 부하들의 보고를 토대로 작성된 강패의 몽타주였다.

“설마 제 놈들이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은 이상 대낮에도 이러겠어? 쯧.”

이곳은 종로 한복판이었다.

낮엔 회사원들이 들락날락거리는 빌딩들이 즐비했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엔 중앙지방경찰청까지 있어 전경과 의경들이 득시글거렸다.

미치지 않은 이상 기린파가 이곳을 공격할 리는 없을 터였다.

“형님. 웬 이상한 놈이 문 앞에서 기웃거리던데요?”

“이상한 놈?”

짜장면 그릇을 내놓고 온 조폭이 말했지만 다른 조폭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룸살롱 문 앞에 서 있는 게 그리 대수라고.

“한데 그게…… 여기 이 그림이랑 비슷하게 생긴 것 같습니다요.”

“응? 뭐라고?”

그때였다.

“어? 그거 나 아냐?”

“그래. 이게 너…….”

“뭐…… 뭐야!”

“누구야 너!”

안 그래도 몽타주를 보고 뭐하러 이런 놈을 찾아야 하는지 짜증이 솟구치던 흑룡파였다.

한데 그 장본인이 직접 찾아온 것이다.

그것도 종로 한복판에 자리한 핵심 구역 블루 피쉬에!

“나 참. 그려도 이렇게 거지 같이 그리다니.”

어느새 한 조폭의 손으로부터 자신의 몽타주를 낚아챈 강패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몽타주엔 노숙자를 방불케 하는 강패의 모습이 디테일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너 뭐야, 이 새끼야!”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뒤늦게 정신을 차린 조폭들이 육두문자를 씹어뱉으며 분분히 일어났다.

블루 피쉬의 좁은 홀이 삽시간에 거대한 조폭들로 비좁아졌다.

하나 강패는 몽타주를 보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이거 좀 봐 봐. 이게 비슷하냐?”

한 조폭에게 몽타주를 자신의 얼굴 옆에 붙이면서 손으로 번갈아 가리켰다.

“너…… 네놈이 이놈이구나!”

“어라? 알아보네?”

강패가 보기에는 몽타주에 있는 얼굴은 완전 거지였다. 그런데 조폭들이 자신을 알아볼 줄이야!

“내가 이렇게 허름하게 생겼어?”

강패의 물음에 답변은 없었다.

“잡아!”

“우와아아!”

우르르르!

조폭들이 일제히 강패에게 달려들었다.

무슨 이유로 강패를 잡으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몽타주까지 그려 가면서 내려온 명령이다.

게다가 훌륭한 보상도 약속 받지 않았던가.

“네놈들 중에 한 놈은 알고 있겠지.”

수 명의 조폭들이 주변을 에워싸고 달려들었지만, 강패에게선 조금도 겁먹은 기색은 없었다.

강패로선 오히려 반가웠다.

이것들 중 한 놈이라도 기린파에 대해 알고 있으면 그만이었다.

콰직!

달려드는 조폭의 가슴팍에 주먹을 꽂자 거품을 물며 놈이 쓰러졌다.

벌벌벌.

“왜, 왜 이러십니까.”

“내가 뭘?”

“하, 한번만 봐 주십시오 형님!”

“형님? 내가 왜 네놈의 형님이냐?”

흑룡파의 중간 간부인 일영은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이 떨면서 강패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몰골은 중간 간부답지 않게 꼴이 상당히 우스웠다.

초등학생처럼 무릎을 꿇은 채 두 팔을 하늘로 올리고 있었고, 한쪽 눈은 멍이 시퍼렇게 들었다.

입술 한쪽은 터진 채 부어올라서 흡사 소시지를 입에 문 듯했다.

흑룡파의 중간 간부, 머리카락 한 올 없는 민머리의 일영은 대단히 희극적이었다.

하나, 단 한 명도 그 모습을 보고 웃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그런 일영의 처참한 모습을 비웃을 사람이 없었다.

“끙…….”

“헉, 헉…….”

블루 피쉬의 홀은 발을 디디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로 빽빽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그들은 두 발이 아닌, 세 발로 서 있었다.

두 다리와 머리를 이용해 바닥을 디디고 있다는 뜻이었다.

즉, 원산폭격 자세.

“이거!”

움찔!

“예, 예!”

흑룡파의 중간 간부치고 지나칠 정도로 공손한 일영이었지만 누구도 그를 비웃지 못했다.

원산폭격이나, 엎드려서 뻗치고 있는 그들은 무릎을 꿇은 채 손만 든 일영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강패가 몽타주 한 장을 펼치고 자신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자신을 때리는 줄 알고 움찔했던 일영에게 강패가 물었다.

“이게 정말 나처럼 보이냐?”

“아,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훨씬 더 잘생기셨는데…… 누가 이 그림을 보고 형님이라고 하겠습니까!”

일영의 아부는 필사적이었다.

강패는 만족스런 미소로 몽타주를 자신의 머리 위로 휙 던졌다.

일영은 이 현실을 믿기 힘들었다.

흑룡파의 중간 간부인 그는 종로에서도 꽤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가진 블루 피쉬의 지배인으로서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왔다.

한데 오늘 갑자기 재앙이 들이닥쳤다.

갑작스런 소란에 일영이 개인 사무실을 나왔을 땐 상황이 거의 종료되어 있었다.

기린파의 기습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블루 피쉬에 소속된 흑룡파 조직원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그 수가 무려 서른 명에 달했다.

한데 제 발로 서 있는 놈들이 채 다섯도 되어 보이지 않았다.

나머지 놈들은 바닥에 엎어진 채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아마 그때 일영이 정신을 차리고 바로 기었으면 이런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터다.

하나 흑룡파 중간 간부로서 소리를 떵떵 치고 다니던 일영이었다.

그는 자신의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목도하고 강패에게 덤벼들었다.

결과는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일영은 무릎을 꿇었다.

그다음에 기억나는 것은 끔찍한 고통뿐이었다.

눈앞이 하얘질 정도의 고통이 어느 정도 사라지고, 주위 사물을 분간할 만한 정신이 돌아오자 눈앞에 보인 것은 강패의 얼굴이었다.

그제야 일영은 강패의 말을 고분고분 따랐다.

흑룡파의 중간 간부일 정도로 힘도 세고 뚝심도 있는 일영이었지만 구타 앞에 장사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일영의 입에서는 형님이란 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기린파에 이런 무서운 놈이 있다니. 말도 안 돼.’

몽타주가 내려오며 놈이 기린파의 조직원일지 모른다는 얘기가 있었다.

놈이 발견되면 바로 보고를 하라고 했지만, 이건 보고고 자시고 할 시간조차 없이 순식간에 당해 버렸다.

“자. 딱 한 가지만 물어보자.”

“어, 얼마든지 물어보십시오, 형님! 백 가지도 괜찮습니다!”

일영이 과장스레 답하는데, 강패가 어디론가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퍼억!

“어디서 꼼수를 부려? 넌 물구나무 서!”

무릎을 땅바닥에 대고 쉬던 조폭을 강패가 귀신같이 알아채고 걷어찬 것이었다.

“죄……죄송합니다! 한번만…….”

“얼씨구? 변명까지? 넌 다리다.”

“다, 다리…… 예?”

땀으로 얼굴이 범벅된 조폭이 변명을 하려 하자 강패가 두 눈에 쌍심지를 켰다.

“기상.”

처적! 처저저적!

“후우…… 후우…….”

“허억…… 허억…….”

강패가 기상을 외치자 조폭들이 순식간에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강패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원래의 강패라면 한 놈 한 놈 패면서 기린파에 대해 질문을 했을 터다.

한데 지금까지의 과정으로 보아 그러기엔 시간도, 체력도 너무 걸리고 말도 제대로 못한다.

그래서 강패는 개선책을 내놓았다.

그것이 바로 얼차려였다.

원래 남자새끼들이란 힘 빠지면 고분고분해지는 법이었다.

“안타깝게도 네놈들 중 한 놈이 꼼수를 부렸다.”

부릅!

찌릿!

강패가 입을 열자 조폭들이 형형한 눈빛으로 꼼수를 부리다 걸린 조폭을 노려보았다.

그 시선에 담긴 살기가 얼마나 날카로운지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기세였다.

강패가 말을 이었다.

“두 명이서 등을 돌린 채 서로 어깨가 맞닿게 하고, 그대로 힘을 주어 앞으로 걸어간다. 몸이 다리 모양을 취하기 전까지다. 알았나?”

“옙!”

바드득.

뿌드득!

우렁차게 대답을 하면서도 조폭들의 살기 어린 시선은 강패에게 들킨 조폭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어느새 자신들을 이렇게 만든 강패보다 자신의 동료를 원망하는 조폭들이었다.

“끄응……. 끙…….”

“헉헉…….”

그들이 새로운 얼차려에 적응하는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던 강패는 꼼수를 부리는 놈이 없자 그제야 다시 일영에게로 돌아왔다.

“그럼 아까 하던 이야기를 다시 해 볼까?”

“예, 옙!”

손을 번쩍 치켜든 일영의 팔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곧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강패는 개의치 않고 입을 열었다.

“너. 기린파냐?”

“에?”

난데없는 물음에 일영은 자신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냈다.

순간 간절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던 조폭들의 몸이 일제히 움찔 떨리며 하나둘씩 무서운 눈초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번에 질문을 못 알아먹거나, 반문을 하면 곧이어 더 심한 무언가가 실행되고는 했기 때문에 조폭들은 무서운 눈으로 일영을 노려보았다.

일영은 일영 나름대로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 위에서는 강패가 기린파의 조직원이라며 몽타주를 돌렸는데, 기린파 조직원 놈이 와서는 자신에게 기린파냐고 물어보다니.

아무리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일영이라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것쯤은 느낄 수 있었다.

“스읍!”

강패가 손을 치켜들자 움찔한 일영이 재빨리 조심스레 말했다.

“기, 기린파 조직원이 아, 아니셨습니까?”

“기린파? 내가?”

강패가 무슨 소리냐는 듯 일영을 쳐다보았다.

일영은 강패의 표정을 읽고 그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너도 기린파가 아니야?”

강패도 자신에게 오히려 질문을 하는 일영을 보면서 그도 기린파가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대체 이 나라 폭력배 놈들은 어떻게 생겨먹어서 그 기린파란 놈들 하나 찾기 힘든 거야?”

자신이 두들겨 팬 놈들이 어디 소속인지 물어보지도 않았고, 들을 생각도 안 했다.

때문에 강패는 대한민국의 폭력배들이 큰 조직이 아닌, 점조직을 형성했다고 생각했다.

“그럼 너도 자라.”

강패가 손을 치켜들었다.

이놈도 기린파가 아니면 저놈들도 기린파가 아닐 것이었다.

“자, 잠깐만요! 형님! 잠깐!”

“뭐 임마. 그리고 내가 왜 형님이야?”

일영이 다급하게 말했다.

“기린파, 혹시 기린파를 찾으시는 겁니까?”

“그래. 근데 너 기린파 아니라며?”

강패가 주먹을 내지르려는 순간, 일영이 다급하게 덧붙였다.

“기린파가 어디 있는지는 압니다!”

“…….”

일영의 다급한 외침에 강패는 뒤통수를 맞은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그런 거 가르쳐 줘도 되는 거야?”

강패가 묻자 일영이 오히려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뭐 너네들은 같은 일 해 먹고 살아가는 거니깐 서로 돕고, 뭐 원래 이렇게 서로 보호해야 정상 아니야? 숨겨 주고 뭐 이런 거 말이야.”

“에이 형님, 지금이 무슨 김두한 시대도 아니고…… 무슨 소리십니까.”

일영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강패는 멍한 표정을 다시 지었다.

“뭐라……?”

아주 작은 차이였고, 사실 강패와는 별 상관도 없는 영역이었지만 그런 작은 차이에서 강패는 지금 이곳이 자신이 살던 곳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강패는 가슴속이 새삼 서늘해졌지만, 이내 고개를 휘휘 저으며 정신을 차렸다.

강패가 살던 시대, 그러니까 일제강점기만 해도 폭력배들은 무조건 힘없는 사람들을 등쳐 먹고 돈을 빼앗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그런 이들도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대한독립을 꿈꾸며 일본 폭력배들과 맞서던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일본의 검은 자금이 대한제국의 뒷골목으로 스며들지 않게 막아 낸 장본인들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폭력배들은 일본 순경들의 정보망을 피해 은밀하게 활동하기도 했고, 파벌이 달라도 같이 독립을 위해 싸운다는 전우애 때문인지 때로 동료애가 형성되고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다.

한데 지금은, 그런 공동의 적이 없었다.

“항상 중요한 걸 생각하지 못하는군. 그냥 간단하게 물어보면 끝나는 일을.”

정신은 여전히 1940년 대를 살아가는 강패였기에 아주 간단한 곳에서부터 사고방식의 차이가 있었다.

나지막하게 속삭이듯 말한 강패는 시선을 들어 일영을 쳐다보며 다시 물었다.

“그럼 기린파는 어디 있는 놈들이냐?”

*

*

*

조선 그룹 조모강은 사과하라!

조선 그룹은 즉시 임금을 지불하라!

조선 그룹 건설현장의 파업은 처음에는 작은 규모로 시작했지만, 점점 그 규모가 커져 가고 있었다.

때문에 용역 업체로 둔갑한 흑룡파에서는 조직원들을 더욱더 많이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속이 부글거리는 상태였다.

“이런 개 같은 새끼들이! 책상머리에 앉아서 책만 들여다보던 놈들이 뭘 알아?”

자금 장부를 기린파 조직원으로 추정되는 놈에게 빼앗겼다는 것이 조선 그룹의 귀에 들어가자, 조선 그룹에서 내려오는 압박이 장난이 아니었다.

기린파가 조선 그룹의 라이벌 기업인 광명 그룹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이 바닥 사람들이라면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그것을 빌미로 광명 그룹에서 어떤 식으로 나올지 모른다는 것이 조선 그룹의 골칫거리였다.

그 기우가 장부를 빼앗긴 흑룡파에게 비난의 화살이 전부 쏟아지게끔 만들었다.

조선 그룹에선 심심찮게 더 이상의 자금 지원은 없을 것이라는 압박이 전해져 오고 있었다.

그 때문에 흑웅이 동분서주하면서 여기저기 허리를 숙이고 다녔다.

그 사실을 잘 아는 행동대장인 외칼은 자신의 잘못인 것만 같아 안절부절못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파업의 규모는 더더욱 커졌다.

이제는 현장 인부들뿐만 아니라, 조선 그룹에서 하청을 받은 업체의 인부들까지 합세하여 파업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커지고 보니 슬슬 언론에서도 하나둘씩 관심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외칼은 여러모로 사면초가에 처한 기분이었다.

그냥 밀어 버리자니 관심을 보이는 언론에서 옳다구나 하고 달려들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두자니 조선 그룹에서 이런 일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며 눈총을 주는 상황이었으니, 정말이지 진퇴양난이었다.

“저 새끼들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나?”

장부가 당장 손에 없으니 조선 그룹에서 이 일을 무마할 유일한 탈출구는 빨리 파업을 해체시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돈을 덜컥 줘 버리면 이번 파업이 선례가 되어, 이후에도 인부들은 수시로 파업을 하고 점점 더 커다란 요구를 해 올 터였다.

때문에 무턱대고 돈을 줄 수도 없는 상황.

광명 그룹에서 선수를 치기 전에 조선 그룹은 어떻게든 파업 농성을 해체시켜야만 했다.

외칼이 머리를 굴렸지만 일평생을 험한 싸움터에서 죽자고 주먹만 날려 온 그가 뾰족한 방법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하긴 외칼과 조폭들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전에 조선 그룹에서 이미 지시가 내려왔을 터다.

“이번 일을 제대로 처리 못하면 형님도 끝장이다. 어떻게든 내 선에서 마무리를 지어야 돼.”

부하의 잘못은 곧 상관의 잘못이었다.

외칼이 제대로 일을 못한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형님인 흑웅에게 갈 수밖에 없었다.

“젠장.”

빠드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무력감을 느낀 외칼이 이를 갈고서는 구호를 외쳐 대는 파업 인부들을 쳐다보았다.

핑!

“……윽…….”

순간 외칼은 갑작스레 어지럼증을 느끼고 비틀거렸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놀란 부하가 다가와서 부축을 하자, 외칼은 고개를 두어 번 흔들고는 조폭을 밀어내면서 두 발로 버텨 섰다.

“요즘 너무 무리하셨나 봅니다, 형님. 많이 피로해 보이십니다.”

부하가 외칼의 얼굴을 걱정스레 쳐다보았다.

요즘 며칠을 바깥에서 생활하다 보니 까칠한 피부도 피부였지만, 부하는 문득 외칼의 두 눈이 심하게 충혈 된 것을 보았다.

“야.”

“예. 형님.”

외칼은 파업 인부들을 뚫어지도록 쳐다보며 부하를 불렀다.

“쓸어버려! 당장 저놈들 해체시켜 버려!”

“혀, 형님……?”

“애들 동원해서 싹 밀어 버려! 파업 따위는 생각도 하지 못하게!”

“형님! 그러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퍼억!

외칼이 자꾸 자기 말에 토를 다는 부하의 배를 거칠게 걷어찼다.

그리고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붉은 눈으로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당장 쓸어!”

“아, 알겠습니다, 형님.”

부하가 황급히 다른 조폭들에게 다가가 외칼의 말을 전했다.

건설현장 입구를 철통처럼 막고 있던 조폭들 사이에서 잠깐의 소요가 일어나더니, 곧 각자 각목과 야구 방망이를 집어 들었다.

와아아아!

직후, 흑룡파 조직원들이 파업 농성을 하는 인부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에 맞서 인부들도 아무 연장이나 들고서는 마주 달려들었다

콰직!

퍽! 퍽퍽!

우와아아!

파업 농성 현장이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공사 현장의 하늘로 고함과 비명 소리가 메아리쳐 울렸다.

*

*

*

처억!

“여깁니다, 형님.”

기린파의 주요 수입원인 워커힐 호텔의 카지노에 흑룡파 조직원이 떴다.

흑룡파와 기린파가 냉전 중이란 사실은 뒷골목에 있는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최근의 가장 큰 이슈였다.

한데 흑룡파 조직원이 직접 제 발로 기린파에 찾아온 것이다.

기린파에 금세 살얼음을 걷는 듯한 살벌한 분위기가 깔렸다.

최고급 호텔의 카지노에 뒷골목 조직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었다.

서울 내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호텔 카지노는 세 개가 있었는데 그곳을 남도파, 흑룡파, 기린파가 하나씩 나눠 가지고 있었다.

100퍼센트 그들의 것이라고는 하기 힘들었지만, 각자 연관 있는 그룹과 사업을 하다 보니 지분을 가지고 개입하게 된 경우였다.

어쨌든 각 조직의 중요한 수입원 중에 하나임에는 틀림없었다.

때문에 카지노를 지키기 위해 상주하고 있는 인원도 항상 많았다.

이곳의 책임자인 태촌은 어이없다는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듯 얼굴에 난 큼지막한 흉터를 씰룩였다.

“뭐야, 일영이 네놈 혼자 온 거냐? 죽고 싶어 환장했나?”

안 그래도 태촌은 혹시라도 흑룡파가 미쳐서 이곳을 공격하는 게 아닌가 싶어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한데 달랑 한 놈이, 그것보다 자신보다 실력도 떨어지는 일영 단 한 놈만이 덜렁 들어오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자신은 안중에도 없는 듯, 멀대같은 놈의 눈치만 잔뜩 살피고 있는 게 절로 실소를 자아냈다.

‘처음 보는 얼굴인 걸 보니, 흑룡파 놈은 아닌 듯한데…….’

잠시 멀대의 눈치를 살핀 태촌이 으름장을 놓았다.

“안 그래도 흑룡파가 요즘 미쳤다는 소리는 자주 들었는데. 난 흑룡 놈만 미친 줄 알았더니 그 아랫놈들까지 죄다 미친 모양이지?”

중급 간부인 일영과 고위 간부인 태촌은 조직 내에서의 위치 자체가 달랐다.

아무리 상대파라고 할지라도 일영으로선 태촌을 깍듯하게 형님이라고 불러야 할 판이다.

한데 일영 놈은 대답은 않고, 계속 멀대의 눈치만 살폈다.

졸지에 무시당한 태촌은 어이가 없었다.

“어이, 여기가 기린파냐?”

강패가 불쑥 입을 열자 태촌이 피식 웃었다.

안 그래도 일영 때문에 어이가 없는데, 어디서 기어들어 온 머저리 새끼가 감히 저딴 식으로 입을 놀리는 꼬락서니라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말하는 꼴 좀 봐라. 존댓말 안 하냐, 이 새끼야? 큰 키만큼 더 고개를 숙여야지, 새끼야.”

태촌의 말에 카지노 홀을 가득 메우고 있던 기린파 조직원들이 떠들썩하게 비웃었다.

“저, 저는 이만 가 봐도 되겠습니까?”

기린파 조직원들이 각자 연장을 든 채 왁자지껄하게 비웃고 있었지만, 일영은 기린파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놈들은 모른다.

이 새파랗게 어린 놈의 정체를.

기린파 놈들이 뭐라건 일영은 한시 바삐 이놈 곁을 떠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강패는 그를 놓아 주지 않았다.

“아니. 돌아갈 땐 난 어떻게 가라고.”

“아, 알겠습니다.”

일영은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지만 가타부타 토를 달지 않았다.

당연히 구겨진 얼굴은 고개를 숙임으로 강패에겐 보이지 않도록 감췄다.

강패는 기린파를 대충 쓸어 보며 혼잣말을 했다.

“어디 보자. 대충 보니까 여기가 기린파는 맞는 것 같은데.”

꿈틀.

혼잣말을 들은 태촌의 흉터가 씰룩였다.

자신이 으름장을 놓으면 웬만한 새끼들은 당장 허리를 굽히거나, 피해 가는 모습을 보인다.

한데 저 멀대 새끼는 자신의 말을 싹 무시하는 게 아닌가?

“그래, 여기가 기린파다 새끼야, 너 이리 와 봐.”

태촌은 강패의 말에 맞장구를 쳐 주었다.

기린파라는 얘기를 들었으니 이제 놈도 눈치를 채고 설설 기겠지.

한데 돌아오는 반응은 완전 예상외였다.

“잘됐네. 가서 너희들 두목이나 불러 와.”

“두목?”

태촌이 다시 눈썹을 씰룩거렸다.

“저 쳐 죽일 놈이!”

“저 새끼 뭘 믿고 저러는 거야?”

“미치려면 곱게 미칠 것이지!”

강패의 한 마디에 주위에 모인 조폭들도 발끈해서 소리쳤다.

하나 강패는 눈 한 번 깜박이지 않은 채 태촌을 쳐다봤다.

“두목? 내 위의 두목?”

태촌이 확인이라도 하듯 말하자 강패가 왜 또 묻냐는 듯 귀를 후볐다.

“그래. 그리고 이 덩어리들 다 치우고. 덩어리들이 너무 많으니깐 비린내가 나잖아. 어휴…….”

강패가 코를 막고 냄새 난다는 듯 과장스럽게 손을 저었다.

겉모습만 보면 냄새가 더 날 것 같은 것은 남루한 복장과 꾀죄죄한 모습의 강패였건만, 오히려 그런 모습 때문에 효과가 더욱 배가 되었다.

심지어 몇몇 조폭들은 금세라도 달려들 듯 연장을 고쳐 쥐기까지 했다.

하지만 태촌의 명령이 떨어지지 않아 차마 달려들지는 못했다.

“지금 네가 처한 상황을 모르는 것 같은데…….”

태촌이 표정을 굳히고 딱딱한 목소리로 말하자 주위 조폭들의 웅성거림이 삽시간에 줄어들었다.

태촌의 낮은 목소리가 이어서 울려 퍼졌다.

“당장에라도 너희 두 놈을 갈기갈기 찢어 개밥으로 던져 줄 수도 있다. 말투를 고치는 것이 네놈들의 신상에 좋을 게다.”

“흐음…… 말투?”

강패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영은 금세라도 사달이 일어날 것만 같은 상황에 긴장할 법도 했는데 묘하게 긴장이 안 됐다.

‘저 새끼들도 겪어 봐야 알지.’

자기 혼자라면 지금 상황은 범의 아가리에 머리를 밀어 넣은 꼴이다.

하지만 일영은 최소한 옆의 강패가 있는 이상 자신이 위험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일영의 머릿속에는 자신의 부하 서른 명을 땀 한 방울도 안 흘리고 순식간에 해치운 강패의 실력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이곳 기린파의 조직원들을 상대할 때도 크게 변함이 없으리라.

“말투를 어떻게 고치라는 건지는 모르겠고, 네놈들이나 괜히 나중에 큰 사달 만들지 말고 순순히 두목이나 불러 와. 안 부르면 후회할걸?”

강패가 손에 든 장부를 흔들자, 태촌이 굳은 표정으로 강패의 얼굴을 쳐다봤다.

“배포 하나 만큼은 정말 대단한 놈이구나. 하지만…….”

태촌이 말끝을 흐리더니 이내 스산한 목소리로 뒤를 이었다.

“그거야 너희 두 놈을 해치우고 우리가 가지면 되는 일이지. 굳이 우리 보스가 너희들을 만나야 할 이유가 있을까?”

손에 든 저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자신들과 흥정할 목적이거나, 무슨 꿍꿍이가 있기 때문에 온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자신들의 아지트에 찾아와 스스로 머리를 들이밀다니.

강패의 어리석음에 태촌은 조소를 머금고 부하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해치워.”

“예! 형님!”

부하들이 연장을 챙겨든 채 우렁차게 소리를 지르면서 강패와 일영을 둘러쌌다.

원을 그리며 주변을 에워싼 그들을 보며 강패가 중얼거렸다.

“어떡하면 다들 이렇게 똑같냐. 이놈들이나 저놈들이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수십 년이 지나도 이놈의 지긋지긋한 패턴은 변할 생각을 안 했다.

강패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와아아아!”

일영과 강패를 노리고 블루 피쉬에서 덤벼들었던 조폭들보다 최소 배는 많아 보이는 머릿수가 일제히 달려들었다.

무표정하게 그들을 쳐다보던 강패는 한숨을 푹 내쉬며 손에 든 장부를 치켜들었다.

*

*

*

타다다닥!

“젠장. 흑룡파 놈들이 여기까지 습격을 한 건가?”

해태의 부하 하는 흑룡파의 습격에 대비하여 알토란같은 영업장을 순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호텔 카지노를 거치고 있었는데, 때마침 소란이 일어난 것이다.

하는 정신없이 호텔 계단을 내려갔다.

강남에 있는 호텔이었고, 게다가 외국인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었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 싸움을 벌이다가는 일이 크게 번질 수도 있었다.

잘못하면 경찰과 검찰의 철퇴를 정통으로 맞을 수도 있었다.

아니, 그것은 둘째치고서라도 이곳은 절대로 뺏겨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카지노는 서울을 삼분하는 조직의 체계를 유지할 수 있는 핵심적인 기관이었다.

이곳에서 나오는 수익만도 기린파를 유지하는 수입의 삼 할을 차지했다.

때문에 카지노는 반드시 지켜야만 했다.

벌컥!

지하에 위치해 있었고, 대낮에는 운영을 하지 않기 때문에 다행히 사람들의 이목을 많이 끌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이곳을 습격할 정도라면 흑룡파에서도 대규모 병력을 동원했을 것이기 때문에 아주 큰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카지노의 문을 연 순간, 하는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입을 떡 벌리고 그 자리에 굳은 듯이 설 수밖에 없었다.

퍼억!

“크흑…….”

하가 문을 열고 들어선 곳은 카지노의 컨퍼런스 홀 같은 곳으로, 무려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규모였다.

한데 그런 그곳이 쓰러져 있는 기린파 조직원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습격한 상대편의 인원은 한 명도 보이질 않았다.

‘설마 벌써 싸움이 끝나고 돌아갔단 말인가?’

하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지만, 분명히 기린파가 아닌 사람은 보이질 않았다.

이렇게 빨리 싸움이 끝났을 리도 없었고, 설혹 끝났다 해도 그냥 보내 줄 기린파가 아닐 텐데?

순간 그의 눈에 보이는 허름한 몰골의 한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엔 기린파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가진 고위 간부 태촌이 무너질 듯이 서 있었다.

“조심하십시오, 하 형님!”

예상 못한 뜻밖의 상황에 하가 굳어져 있는데, 그를 지키는 부하가 소리쳤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하가 소리쳤다.

“그만, 그만! 잠깐! 거기 멈추시오!”

*

*

*

“하악…… 하악…….”

오랫동안 싸움으로 다져진 태촌의 몸은 탄탄하고 위력적이었지만, 지금은 물 먹은 솜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태촌은 자신의 팔다리가 이렇게 무거울 수도 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처음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 앞에 무릎을 꿇을 수는 없었다.

“이…… 괴물 같은…… 새끼…….”

태촌의 눈에 강패는 재앙이나 다름없는 놈이었다.

처음, 흑룡파 간부인 일영과 왔을 때까지만 해도 별 볼일 없는 놈이라고 우습게 여겼다.

쓸 만한 정보로 기린파와 흥정을 해 한몫 벌어 보려는 삼류 양아치 정도로만 여겼는데, 그 생각이 바뀌기까지는 순식간이었다.

거의 50명에 달하는 부하들이 우르르 달려들 때, 태촌은 이미 다 해결된 일이라 생각하고 다른 일을 보러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등을 돌린 태촌의 앞으로 부하들이 날아오더니 바닥을 굴렀다.

태촌은 의아함에 다시 몸을 돌리고 부하들이 달려든 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부릅떴다.

그 멀대 놈은 마치 양 무리에 뛰어든 늑대처럼 부하들 사이에서 날뛰고 있었다.

놈의 주변을 에워싸고 달려들던 부하들의 수는 눈 깜짝할 새에 줄어들었고, 자신감에 넘치던 부하들의 눈엔 서서히 공포와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그와 비례하듯 멀대 놈은 더욱 사나운 맹수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한 방.

한 명의 머릿수당 단 한 방 이상의 공격은 필요치 않았다.

강패의 일격에 한 명씩 나가떨어질 때마다 부하들은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그리고 이윽고, 태촌은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멀대가, 50명이 넘는 부하들을 모조리 쓰러트린 것이다.

그 후 태촌은 멀대와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멀대 놈은 50명의 부하들을 쓰러뜨리고 났음에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아니, 호흡조차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태촌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멀대와 대면한 태촌은 그제야 깨달았다.

놈은 벽이었다.

그리고 거대한 산이었다.

무슨 공격을 하고 어떤 수를 써도 놈은 땅에 뿌리박힌 것처럼,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고 모조리 받아넘기고 받아쳐 냈다.

제아무리 강한 바람이 불어도 산을 밀어낼 수 없는 것처럼, 태촌은 자신이 한가닥 미풍일 뿐이고 강패는 거대한 산이었다.

우득.

“그러게 그냥 두목을 불러오면 간단하게 끝나는 일이었는데 말이야. 지금이라도 불러오지그래?”

“네놈 말대로 하느니 그냥 여기서 죽겠다.”

말도 안 되는 허장성세였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태촌은 자존심에 금이 가는 것을 느끼면서 이를 바득 갈았다.

강패가 피식 웃었다.

타앗!

핏!

태촌이 이를 악물면서 어느새 꺼내 든 회칼을 내질렀다. 예리한 소리를 내며 회칼이 허공을 예리하게 베어 냈다.

하지만 강패는 없었다.

‘뒤!’

스각!

‘없다!’

태촌은 흡사 귀신을 상대하는 듯했다.

대체 얼마나 빠른지, 기척을 쫓아 몇 번이고 칼을 찔렀는데 강패는 어느새 다른 곳에 서 있었다.

“덤벼! 덤비란 말이다 이 새끼야! 으아아아!”

태촌은 자신이 농락당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계속 헛손질만 하느니 차라리 다른 놈들처럼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게 더 나은 것 같았다.

“그래?”

쿵!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패가 태촌의 어깨를 받아 버렸다.

태촌은 몸 내장이 흔들리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크윽…….”

부들부들.

힘껏 칼을 내질렀더니 팔이 떨리고, 강패의 한 방에 다리까지 떨렸다.

태촌은 불을 토하는 눈으로 강패를 노려봤다.

“그만, 그만! 잠깐! 거기 멈추시오!”

그때, 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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