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장 (4/30)

4장

“쩝. 할 것 없으면 이만 갑시다. 오늘 돈도 못 받고. 에이.”

강패는 김 씨에게 파업 때문에 전면 스톱된 현장에서 돌아가자고 말했지만, 김 씨는 영 자리를 뜨지 못했다.

“아. 할 거면 저 안으로 들어가든가, 아니면 가든가 둘 중에 하나만 정합시다. 이렇게 바깥에서 빙빙 돌지만 말고.”

결국 강패가 버럭하자 김 씨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니, 나도 돈이 필요한데…… 돈을 받아야 된단 말이야.”

어디에다가 돈을 쓰는지, 어제 분명히 돈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또 받아야 된다니.

김 씨는 미련이 남는 눈으로 파업 현장을 보면서 강패에게 말했다.

“그런데 무섭기도 하고. 아, 이거 미치겠네. 저기 잘못 껴서 일이 잘못되면 몸만 다치고, 잘못하면 구속될 거라고. 그런데 또 이 파업에서 못 이기면 돈을 못 받고. 하아…….”

결국 자신이 다칠까 무서워서 참가하진 못하지만, 돈을 받지 않고 그냥 가자니 그 돈이 아까운 모양이었다.

강패의 눈에는 한심한 작태로만 보이는 김 씨였다.

“너 이 새끼! 우리 돈 내놔!”

“왜, 왜 이러는가들…….”

“내가 일해서 번 돈 내놓으라고!”

그때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한 무리가 있었다.

강패는 그 모습을 보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조폭들에 이어 인부들에게 맞아 얼굴이 엉망이 된 조루가 끌려오던 것이었다.

휘익!

“아이쿠쿠!”

현장 감독관으로서 건설현장의 왕처럼 군림하던 조루의 모습치고는 너무나도 초라한 꼴이었다.

그를 떠미는 힘에 조루는 볼썽사납게 땅에 뒹굴었다.

“돈 내놔! 네가 다 빼돌린 것 알아!”

지금껏 조루의 횡령사실은 건설현장에서는 쉬쉬하면서도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괜히 돈을 달라고 보챘다가 짤리기라도 할까 봐 다들 꿀 먹은 벙어리마냥 굴었을 뿐.

“나도 없네, 나도 없어!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니까!”

조루는 열심히 고개를 저어 가면서 핑계를 댔지만, 인부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쯧쯧, 그렇게 돈 좋아하고 인부들을 족치더니……쯧…….”

김 씨가 혀를 끌끌 차면서 강패를 돌아보았다.

한데 강패가 어느새 성큼성큼 걸어 나가고 있었다.

“자, 잠깐!”

김 씨가 뒤늦게 소리를 쳤지만 강패는 조루를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허, 허억! 다, 당신은……!”

강패를 본 조루가 학질이라도 일으킨 듯 벌벌 떨자, 그를 끌고 온 인부들도 자신들도 모르게 움찔했다.

“이 새끼 너…… 잘 걸렸다.”

강패에게서 기세가 흘러나오자 조루를 둘러싸고 있던 인부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길을 내줬다.

“사, 살려 주시오. 살려 주시오!”

사실 조루는 컨테이너에서부터 기절해 있지 않았다.

괜히 일어났다가 불똥이 자기에게 튈지도 몰라서 기절한 척을 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조루는 처음부터 끝까지, 강패가 보인 신위를 지켜보았다. 모자를 비롯해 조폭들을 휙휙 날려 대던 것들도 모두.

조루가 벌벌 떨면서 사정했다.

“내 돈 내놔.”

“예?”

“내 돈 내놓으라고. 네가 떼먹은 만큼.”

“…….”

조루는 강패가 인부들을 대표해서 나타난 줄 알았다.

한데, 그 돈이 그저 자기 몫뿐이라니.

조루나 인부들이나 전부 입을 다물고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감히 날 속여? 그것도 나도 모르게? 그리고 다른 사람을 자르기까지 해? 내가 일을 잘하면 그만큼 더 돈을 주는 건 당연한데 왜 다른 사람을 잘라? 게다가 내 돈까지 먹고서는 입을 씻으려고 해?”

“아…… 저기…… 그게…….”

“이, 이봐. 잠깐…….”

강패가 조루에게 요구하는 것이 주위 상황과 전혀 동떨어진 것이라 인부들은 혼란스러웠다.

‘이놈은 뭐지?’

조루도 조루대로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무슨 대단한 게 아니라 못 받은 돈 몇 십만 원 때문에 조폭들을 때려눕혔다는 소리인가.

애초에 컨테이너 박스에 자신을 찾으러 온 것을 기억하는 조루였다.

그러던 와중 흑룡파 조직원들과 마찰이 생기자 강패는 그들을 전부 때려눕혀 버렸다.

‘잠깐. 이놈을 이용해 먹자.’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던가.

그 짧은 시간에 조루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게 있었다.

“나, 나도 돈이 한 푼도 없습니다. 정말이에요. 이게 모두 저 조선 그룹이랑 흑룡파 놈들 때문입니다.”

조루는 공부를 하지 못했을 뿐이지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어리석었다면 이런 현장 감독관을 맡을 수도 없을 터였다.

또한 조루는 자신이 인부였고, 인부였기 때문에 이런 건설현장에서의 인부들을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조루가 주위를 둘러싼 인부들을 향해 말했다.

“저, 정말일세. 위에서는 계속해서 인력을 긴축하라고 난리지, 그런데 인부들은 계속해서 들어오지. 점점 돈이 달리고 있었네. 게다가 흑룡파 녀석들이 들어와서 돈을 달라고 하질 않나, 그리고 자네들도 알지 않나. 저 조선 그룹 직원에게도 계속해서 뇌물을 줄 수밖에 없었네.”

“거짓말하지 마! 그럼 그걸 기록해 놓은 장부를 내놔!”

조루 앞에 서 있는 인부들은 인부들 중에서 파업을 주도한 인물들이었다.

그런 만큼 건설현장, 혹은 이러한 공사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건 이미 조선 그룹에서 가져갔어. 이 사실이 밖으로 새나가면 꼼짝없이 우리한테 돈을 줄 수밖에 없으니까. 정말이야. 자네들도 알지 않나. 컨테이너 건물 안에 장부가 없다는 사실을.”

“흐음…….”

조루는 강패를 보며 말을 이었다.

“정말입니다. 제가 돈을 덜 드린 것도 그만한 돈이 이미 없었습니다. 건설 자재를 살 돈에서 돈을 빼서 인부들에게 주고 있었는데, 너무 일을 잘하셔서……. 대신 그만큼 인부들을 빼면 자금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 해서…….”

말꼬리를 흐리며 고개를 숙이는 조루의 연기는 그럴듯했다.

때문에 인부들은 깜박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조루의 말마따나 파업이 선포되고 나서 인부들이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바로 자금 내역서였다.

하지만 이미 난장판이 난 컨테이너 사무실 안엔 자금 내역서가 없었다.

모자와 부하들이 물벼락을 맞고 재빨리 도망을 쳤는데, 그들이 챙긴 것으로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결국 강패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울먹이는 조루의 연기에 인부들은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나 강패는 눈을 여미고 조루의 뒤통수를 내려다봤다.

‘흐음……!’

거짓말이었다.

한번 어이없게 당하고 나서 보니 지금 모습도 거짓이란 게 뻔히 보였다.

독립군 때 강패는 정보를 얻기 위해 피부로 부딪친 적이 많았다.

진실을 알아내는 과정은 힘든 데 비해, 방법은 의외로 단순했다. 상대방의 정신력보다 더 강한 충격이나 고통을 주면 간단하게 끝나는 일이었다.

쉽게 말해 고문이 바로 그것이었다.

강패는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붙든 조루의 손을 통해 그의 심장이 쿵쾅거리는 게 느껴졌다.

급박한 상황 때문에 숨결은 거친 듯했지만, 규칙적이었다.

푹 숙인 고개 때문에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무릎을 꿇은 채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것을 보니 초조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어쩔 건데?”

“지, 지금은 드리지 못하지만 저를 도와주신다면 충분히 받아 낼 수 있습니다.”

‘흐음, 그래? 그럼 어디까지 가나 볼까?’

강패는 어느 정도 속아 주기로 했다. 정의감을 내세울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놈을 잘만 이용하면 인부들의 돈도 돌려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괜히 찝찝함을 남기느니, 이왕에 하는거 수고를 조금 더 하기로 한 것이다.

조루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강패를 이 일에 끌어들이려 하고 있었고, 번쩍 든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보니 또 꿍꿍이를 꾸미는 게 분명했다.

‘캬! 내 머리도 쓸 만하다니까.’

위급상황에서 기가 막히게 돌아가는 자신의 머리에 감탄한 조루였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한몫만 챙기면 네놈들 모조리 흑룡파에 떠넘겨 버릴 테다. 개자식들.’

강패가 조루를 재촉하는 척했다.

“빨리 말해 봐. 난 그 돈이 필요하다고.”

“그러니까…….”

이어지는 조루의 말에 인부들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강패는 흥미로운 눈으로 말했다.

“잔머리가 대단하구만. 날 속여먹을 때부터 알아봐야만 했어.”

이 조루란 놈이, 자신이 그 덩치들을 상대하던 모습을 본 게 틀림없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대담한 계획을 세울 리 없었다.

게다가 저놈이 말하는 장부, 그러니까 자금 내역이 적힌 장부가 자신의 품에 있기에 충분히 성공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그러니까, 그 자금 내역 장부를 복사해 놓은 것처럼 꾸며서 속이자? 그리고 그걸로 돈을 받아 내자?”

“네. 저 혼자면 불가능하겠지만 도와주신다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조루는 최소한 조폭 여섯 명을 가볍게 상대한 강패가 최악의 상황에선 적어도 자신이 도망갈 시간은 벌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도 같이 감세!”

불쑥.

김 씨가 갑자기 불쑥 끼어들었다.

인부들은 김 씨까지 미친놈 쳐다보듯 했지만, 김 씨는 흔들림 없는 눈으로 강패와 조루를 쳐다봤다.

“저놈, 머리 굴리는 게 보통이 아닐세. 내가 저놈을 감시하겠네. 대신 나도…….”

김 씨가 한몫을 떼어 달라는 제스처를 취하자 강패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게 하도록 해. 근데 너!”

강패의 승낙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조루가 다시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늘 일당은 네 사비로 내든, 돈을 훔쳐 오든 알아서 해라. 무조건. 무. 조. 건. 이다.”

“아, 알겠습니다.”

꼬박꼬박 강패에게 존댓말을 하는 조루가 다른 사람들 눈에는 이상해 보일 법도 했다.

하지만 다들 강패의 하대와 조루의 존대가 너무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럼 돈 가져와.”

“네, 넵!”

돈을 마련하기 위해 허겁지겁 달려가는 조루의 입가에는 야비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개자식. 넌 이제 죽었어. 크크크.”

분명히 모자와 부하들이 강패를 기린파로 오인했다는 것을 들었던 조루였다.

때문에 강패가 흑룡파에 간다면 무사할 리 없을 터였다.

자기는 돈은 돈대로 받고, 여차하면 튀면 된다.

그러던 한순간 조루는 고개를 갸웃했다.

“잠깐. 근데 그놈은 뭘 믿고 따라가겠다는 거야. 그놈이 싸우는 걸 봤나? 아니. 같이 붙어 다니는 놈이니깐 대충 실력을 아나 보지 뭐.”

갑자기 끼어든 김 씨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린 조루였지만, 대충 넘어갔다.

*

*

*

그날 밤.

파업 농성을 하는 근로자들의 감시 때문에 집에도 가지 못한 채 현장에서 쪽잠을 자던 조루 앞에 어둠이 일렁였다.

스윽.

발소리의 주인은 주위에 아무도 없는지를 살펴본 후 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톡톡.

“으응…….”

그러고선 볼을 가볍게 건드리자 조루가 신음 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누, 누구……!”

잠에 취한 조루는 뒤늦게 시커먼 그림자를 보곤 깜짝 놀라 소리쳤다.

하나 그의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전에 그림자가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꾸욱!

“읍!”

조루가 발버둥을 쳤지만, 손은 꿈쩍도 안 했다.

그림자는 작업을 서둘렀다.

스윽.

어느새 조루의 눈앞에 황금색의 회중시계가 내려왔다.

회중시계는 마치 시계초침처럼 일정하게 좌우로 흔들렸다.

“이제 당신은, 깊은 잠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림자의 목소리는 다급한 상황에서도 너무나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소곤. 소곤. 소곤.

괴인의 목소리는 더욱더 낮아지더니 종내에는 속삭이듯 했다.

결국 조루의 팔다리가 얌전히 땅바닥을 향했다.

“당신은 잠에서 깨어나면 나를 본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당신은 깨어나면 잠을 푹 잔 것처럼 매우 개운합니다. 하나, 둘, 셋.”

스윽.

괴인이 말을 마치자 조루가 눈을 스르르 감은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제야 괴인은 한숨을 쉬고 회중시계를 품안에 집어넣었다.

“정보를 수집하라니. 그런 괴물한테?”

혼잣말을 중얼거린 괴인이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파라락.

지하보도에 드러누운 강패는 품에서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수첩을 꺼내 넘겨 보았다.

“온통 숫자 천지구만. 이게 그 장부인가 뭔가 하는 것 같은데…….”

모자의 품에서 떨어진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일단 챙겨 넣고 본 강패는 어둠 속에서 중얼거렸다.

“기린파라고 했지?”

강패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음흉하게 웃었다.

바스락.

그 기운을 느꼈음인지, 노숙자 몇몇이 부스럭거리거나 몸을 움찔거렸다.

“음?”

순간, 강패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뭐지?”

스윽.

노숙자들을 훑어본 강패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언가 움직인 듯한 기척이 노숙자들 사이에서 느껴졌다.

크게 이상한 것은 없었지만 뭔가 찜찜한 기척이었다.

‘잠꼬대가 아니라…….’

잠꼬대로 움직인 것과 의식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잠깐. 이거 혹시……?”

강패가 주위를 휘휘 둘러보면서 이를 바드득 갈았다.

“그 개새낀가?”

강패의 머릿속에 이곳에서 처음 눈을 떴던 그때가 떠올랐다.

“흐음…… 너무 과민한 건가?”

미국에서 튀어나왔던 그 자식이 이곳에 있을 리 없었다.

“뭔가 비슷했는데…….”

늑대 같은 녀석.

혹시라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하보도 여기저기를 쿡쿡 쑤시고 다녔지만, 그놈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감각을 최대한 곤두세워도, 더 이상 이상한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쩝.”

찜찜함이 사라지진 않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강패가 다시 자기 자리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놈이 과연 날 찾으러 한국까지 올까?”

65년 만에 잠에서 깨어나 주변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할 때, 자신을 노리고 온 놈이었다.

“정말 내가 누구인지 알고 찾아오긴 한건가?”

여러 가지 의심가는 정황이 있었기에 다시 만나면 강패를 어떻게 알게 되었고, 어째서 자신을 죽이려는지에 대해 필히 물어 봐야 했다.

당시엔 강패가 의외의 상황으로 인해 주춤대다 놓쳤고, 놈의 능력도 생각 이상이라 실패했다.

“한번만 더 나타나라. 잘 다져진 고깃덩어리로 만들어 주마.”

으득.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낸, 몇 안 되던 놈 중 하나를 떠올리며 강패가 내심 이를 갈았다.

“후우…….”

문득 김 씨의 입에서는 잠꼬대인지, 아니면 추운 날씨 때문인지 알 수 없는 한숨이 스며 나왔다.

*

*

*

해태는 시비와 선악을 판단한다는 상상의 동물로, 사자와 비슷하나 머리에 뿔이 있는 동물이었다.

기린파의 두목인 해태는 별명만큼이나 해태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입술을 푸들거릴 때마다 입 안에서 맹수의 그것처럼 날카롭고 단단해 보이는 이빨이 돋보였다.

부리부리한 두 눈과 하회탈처럼 자글자글하게 잡힌 주름은 이제 갓 40대의 중년이란 것을 믿을 수 없는 인상이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흑룡파가 선전포고를 했다고?”

“어젯밤 갑작스런 기습으로 인해 영업장 몇 개를 뺏겼습니다. 회장님.”

빠득.

“이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놈들이…… 흑룡 그놈이 조선 그룹한테서 돈을 받아 처먹더니 돈에 환장한 놈이 된 모양이군.”

해태에게 보고를 한 남자는 조폭답지 않았다.

아니, 차분한 인상과 날카로운 눈빛이 마치 검찰의 검사 같달까?

그 남자를 쳐다보는 눈길에 신뢰가 가득한 게, 해태의 신임을 받는 자 같았다.

“‘하’야, 이제 어떡하지? 놈들이랑 전면전을 펼쳐야 되나?”

해태는 힘만 세고 머리가 좋지는 않았다.

그런 그가 이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아랫사람의 의견을 십분 활용한 덕분이었다.

하라고 불린 남자가 대답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합니다.”

“뭐가?”

“흑룡파한테 당한 애들이 이상한 말을 하더군요.”

“무슨 이상한 말?”

기린파는 작은 폭력 조직이 아니었다.

서울을 삼분하고 있는 셋 중에 하나였다.

흑룡파, 기린파, 남도파가 바로 그들이었는데 이들 사이에 자잘한 충돌은 있을지언정, 전면적인 싸움은 벌어지지 않도록 하자는 게 암묵적으로 합의되어 있었다.

서로 세력이 비등비등해서 자기들끼리 자중지란을 일으켜 봤자 득볼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흑룡파에서 기린파에 전면전을 선포함과 동시에 기습적으로 자신들의 영업장을 점령해 버렸다.

한데도 놈들이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우리가 먼저 자기네들 구역을 침범했다는 겁니다. 저희가 자기네들 일을 먼저 훼방 놨다고 했답니다.”

“훼방? 우리가?”

해태가 그럴 리 없다는 듯이 눈을 부라리면서 언성을 높이자 하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네. 저도 그래서 무슨 일이 있나 알아봤더니, 일이 상당히 어렵게 꼬였습니다. 어제 조선 그룹의 건설현장에서 파업이 일어났는데, 조선 그룹에서 흑룡파에 일을 맡긴 모양입니다. 파업을 마무리 짓기 위해 자금 장부를 가져오라고요. 한데 흑룡파 놈들이 건설현장에 갑자기 나타난 괴한에게 뺏긴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 괴한이 자신을 기린파라고 말했답니다.”

“뭐야? 애들은 뭐래? 어제 혹시 개인 행동한 놈들 중에 있는 거 아냐?”

“없습니다. 이미 다 확인해 봤습니다.”

“젠장. 그 말을 흑룡파에서 믿을 리는 없겠군.”

“자금 장부를 내어 준다면 전쟁을 멈추겠다고 하긴 했습니다만…….”

“없는 자금 장부를 어떻게 만들어?”

단순하고 머리가 나쁜 해태였지만 그로서도 흑룡파와의 전면대결은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절대로 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흑룡파와 기린파가 피 터지게 싸우면, 남도파만 어부지리할 일이었다.

그렇다고 없는 장부를 만들어서 넘길 수도 없는 일.

해태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놈, 대체 정체가 뭐야? 우리 기린파를 사칭했다고? 그럼 우리와 흑룡파의 관계를 제법 잘 알고 있는 놈일지도 모르잖아?”

“심증이 가는 곳이 있습니다만…….”

하가 안경을 고쳐 쓰면서 말하자 해태가 눈을 번쩍였다.

“누군데? 어떤 새낀데? 그 새낄 잡아서 넘기면 끝나는 거 아니야?”

“우리와 흑룡파가 싸움을 피하는 방법은 딱 한 가지뿐입니다. 이 일의 원흉을 찾아서 넘기는 것. 그리고 그 용의자로는…….”

잠시 말을 끊은 하가 찻잔을 들어 입술을 적시고는 다시 말했다.

“우리 기린파와 흑룡파가 박 터지게 싸우면 가장 큰 이득을 볼 남도파가 있습니다.”

“하긴…… 가장 크게 한몫 거둘 수 있겠지.”

해태가 하의 말이 일리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물증이 없으니 남도파에게 따질 수도 없는 일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흑룡파와 남도파가 연합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끄응…… 그래?”

“그리고 남도파가 아닐 가능성도 있습니다.”

해태가 골이 지끈거리는 듯,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누르면서 계속 말해 보라는 눈빛을 보냈다.

“남도파가 아니라면…… 제3의 세력이란 말입니다. 그럼 눈치 볼 것 없이 놈을 잡으면 그만입니다. 일단 어떤 놈인지부터 파악한 다음에 잡아들여서 사실을 불게 하는 게 제일 빠를 것 같습니다.”

“빌어먹을. 그럼 그동안 흑룡파는 어떻게 하고?”

사람 하나 찾아서 잡는 거야 그다지 어렵지 않다.

문제는 그동안 흑룡파가 계속해서 공격을 한다는 것이다.

부하들에게 무작정 막거나 피하라고만 할 수는 없었다.

분명히 해태의 지시와는 상관없이 문제가 커질 터다.

이미 간부들을 비롯한 똘마니들은, 숙적이나 다름없는 흑룡파를 밀어 버리자고 분분히 일어서고 있었다.

때문에 속히 수단을 강구해야만 했다.

“아마 흑룡파에서도 완전히 전면적으로 공격은 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기에는 경찰과 검찰들의 감시망이 너무 심하기도 하고, 또 이제는 우리처럼 조선 그룹을 배경으로 두고 있으니 우리를 공격하는 건 광명 그룹을 조선 그룹이 공격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게 됩니다.”

조직 세계도 외부 자금이 흘러온 이후부터는, 단순히 주먹만 잘 쓴다고 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가 아니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크게 피해를 입는 수가 있었다.

“우선 영업장에 경계를 강화하죠. 인원을 보강만 해 두면, 짜잘한 영업장 몇 개는 잃더라고 굵직한 것들은 뺏기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시간을 버는 수밖에요.”

“제기랄. 마음에 들지 않아. 흑룡파 따위를 신경 써서 이래야 한다니…… 으득.”

흑룡파가 먼저 시비를 걸었는데, 그것을 참으면서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녀야 하는 판이니.

왠지 흑룡파에게 밀리는 것 같아 부아가 치민 해태가 이를 바드득 갈았지만 하의 얼굴은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

“괜히 큰 싸움을 일으켜 남 좋은 일을 시키느니, 지금 참고 나중에 사실이 밝혀지면 흑룡파를 압박하시는 게 낫습니다. 그때는 흑룡파도 아무 말도 못할 테니까요.”

“젠장! 젠장!”

화가 치민 해태가 소파의 팔걸이를 탕탕 때렸다.

하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그리고…… 놈을 찾으면, 자금 장부를 우리가 먼저 찾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흑룡파에서 이 정도로 나오는 것이라면, 그만큼 중요할 게 틀림없으니까요. 이 기회에 이걸 구실로 놈들을 협박하는 것도 좋을 겁니다. 광명 그룹에서도 반길 것이구요.”

“그렇지! 흑룡파와 조선 그룹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게 그 자금 장부라고 했지? 당장 아이들 풀어! 우리 기린파를 사칭한 놈의 몽타주를 빨리 따고, 잡으면 반쯤 죽여 놔도 좋다고. 대신 자금 장부 있는 곳을 무조건 알아내고 나한테 데려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회장님.”

하의 말에 금세 분노가 환희로 뒤바뀐 해태가 서둘러 명령했다.

*

*

*

“아하암…….”

오랜만에 늘어지게 잠을 잔 강패는 해가 중천에 떠서야 까치집 지은 머리를 하고서는 부스스 일어났다.

“아흐, 오랜만에 이렇게 오래 자니 좋구만.”

파업 때문에 당분한 건설현장은 스톱이었고, 흑룡파에게 찾아가는 것도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지 이틀 후에 찾아가자고 한 조루 때문에 강패는 오랜만에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또 다들 밥차 먹으러 갔나 보구만.”

지하보도가 텅텅 빈 것을 보니 다들 무료 배식해 주는 식사를 먹으러 간 모양이었디.

강패는 머리를 긁적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린파라……. 뭐, 일단 먹고 생각해 볼까.”

몇 날 며칠을 굶어도 괜찮을 만큼 단련된 강패였지만, 그렇다고 안 먹을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2010년 대한민국의 음식은 강패에게 얼마나 맛있단 말인가!

그 때문에라도 강패는 더 꼬박꼬박 밥을 챙겨 먹었다.

아니, 사실 밥이라기보다는 강패가 먹어 보지 못한 서양 음식들이 태반이었지만.

털썩.

근처 빵집에서 자신을 꺼림칙하게 바라보는 직원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빵을 한가득 사서 나온 강패는 지하보도 앞에 앉아 빵을 뜯기 시작했다.

“음…….”

달콤한 맛에 그 맛을 음미라도 하듯 눈을 지그시 감는데, 문득 지난 며칠 동안 보지 못했던 익숙한 실루엣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뭐야. 이 시간에?”

김 씨에게 이 주변은 온통 회사라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인 회사원들은 회사 안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출퇴근이란 것을 하기 때문에 아침저녁이면 사람들이 많이 오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강패는 하얀 하이힐의 여자가 이 근처에 회사를 다니는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강패가 밥을 먹는 시간은 일정했고, 그녀가 보이는 모습도 일정했기 때문이다.

한데 요 며칠 현장에 나가느라 보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보게 되었다.

“뭐하는 여자야 대체?”

자신을 거지로 알고 감히 500원을 적선하고 가질 않나, 계속 이 근처에서 배회하질 않나.

어쨌든 강패는 자신과 연관이 없는 사람이니 아예 관심을 꺼 버렸다.

“그건 그렇고, 어떡해야 기린파를 찾아가나…….”

오늘은 건설현장에 나가지 않는다고 하나 강패는 충분히 바빴다.

“아무 놈이나 잡고 족쳐 봐야 하나. 흐음…….”

어느새 열 개가 넘는 빈 빵 봉지들이 강패의 주위를 굴러 다녔다.

마지막으로 남은 카스테라 한 조각을 입에 털어 넣은 강패가 입 주변의 빵 부스러기를 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저기부터 털어 볼까?”

팟!

강패가 기감에 걸려든 존재를 느끼고는 그 자리에서 씻은 듯이 사라졌다.

타닥!

아스팔트를 박찬 강패의 신형이 용수철처럼 튕겨 나갔다.

“으흐흐, 짭짤하구만. 역시 애들은 굴려야 제 맛이라니까.”

흑룡파의 말단 조직원, 영제는 지폐들을 넘기면서 실실댔다.

키는 보통이었지만, 옆으로 퍼진 살 때문에 보는 이로선 거대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전형적인 깍두기 머리 스타일인 영제는 얼굴에도 살이 오른 탓에 마치 살덩어리에 검은 잔디를 올려놓은 것만 같았다.

흑룡파의 말단 조직원인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밤에 나이트나 룸살롱 앞에 망을 서는 것이 전부였다.

하나 말단 조직원이라도 흑룡파.

영제는 흑룡파의 이름을 빌어 고등학생들의 등을 처먹는 일을 주된 낙으로 삼았는데, 흑룡파에 가입시켜 주겠다는 미끼로 고등학생들에게 앵벌이를 시켰다.

고구마를 파는 것은 물론 삥을 뜯어 오라고 시키거나, 심지어는 절도까지도 부추기고 그 돈을 자신이 받아 챙겼다.

“어, 그놈 참. 어디서 그렇게 잘 처먹고 다니냐. 기똥차네.”

영제는 식겁해서 들려오는 소리에 돈을 황급히 품속에 넣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말소리의 주인은 흑룡파 조직원이 아니라 호리호리한 모습에 남루한 거지 놈이었다.

영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데 곧이어 이어지는 말에 뒤통수를 얻어맞는 듯했다.

“돼지 비린내 난다. 입 닫아라.”

“이, 이놈이?”

황당했다. 한 주먹거리도 안 돼 보이는 놈이 무슨 배짱으로 감히 시비를 건단 말인가!

게다가 돼지는 제일 싫어하는 말이었다.

영제가 산처럼 솟아오른 배를 내밀며 눈을 부라렸다.

“너 내가 누군지 알고…….”

“내 말에 대답이나 해라. 너 기린파냐?”

“이 새끼가 정말 죽을라고…….”

퍼억!

채 말도 다 끝내지 못했는데 배에서 무지막지한 통증이 느껴져 영제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어…… 어억! 우웩!”

다짜고짜 영제의 배에 주먹을 꽂은 강패가 영 찝찝한 얼굴로 자신의 주먹을 쳐다봤다.

“이건 뭐. 어디까지가 비계고 어디부터가 몸인지를 모르겠네.”

“우웨에에엑!”

단 한 방인데도 영제가 점심에 잔뜩 먹었던 탕수육을 쏟아냈다.

“커, 컥컥…….”

영제가 지저분한 얼굴로 강패를 올려다봤다.

그러자 강패가 영제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빠악!

“드러워 새꺄!”

“네, 넵!”

단 한 방이었지만 영제는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알 수 있었다.

강패는 영제의 빠른 변화가 마음에 든 듯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애들은 때리면서 키워야 돼.”

부르르.

강패의 뿌듯한 목소리에 영제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살이 찐 만큼 웬만한 충격에는 끄덕도 않았건만 단 한 방에 아직도 속이 울렁거렸다.

“너 기린파냐?”

“네?”

두려움에 잔뜩 떨던 영제는 뜻밖의 질문에 자신도 모르게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강패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두 번 말하게 좀 하지 마. 너 기.린.파.냐고.”

“아, 아닌데요.”

뻐억!

순간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그런 영제의 귓가에 짜증 섞인 강패의 목소리가 메아리쳐서 들려오며 눈 앞에 까맣게 물들었다.

“아니면 아니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강패는 조폭들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조폭들만 보면 무조건 때려눕히고 기린파냐고 묻는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문제는 강패가 기린파의 구역이 아닌 흑룡파의 구역에 있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하릴 없이 흑룡파의 말단 조직원들만 우르르 쓰러져 나갔다.

중진 간부들은 길거리에서 나다닐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강패의 기세에 걸리는 건 워낙 말단 조직원들 뿐이라, 흑룡파에서는 무슨 사달이 일어나는지도 알지 못했다.

“제기랄, 더럽게 없네.”

사실 그냥 한 놈을 붙잡고 기린파가 어디냐며 장소를 물으면 될 일이었다.

한데 강패는 조폭들이 다 같은 놈들인 줄 알고 기린파가 맞는지만 확인하고 있었다.

아주 간단한 일을 놓고 멀리 돌아가는 강패였다.

덕분에 강패는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어디 덩어리들 아니랄까 봐, 짜증나게 하네!”

그때였다.

“음?”

어느덧 까마득하게 높은 빌딩 앞에 서 있던 강패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이 안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당연히 고층 빌딩이니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었지만, 강패가 보는 곳은 고층 빌딩이 아니라 그 옆에 딸린, 지하로 통하는 입구였다.

지하 계단 앞엔 거무죽죽한 색깔의 네온사인이 박혀 있었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기척이 한둘이 아니었다.

환한 대낮이기에 당연히 술집이 영업을 할 리 없었는데도 안에 인기척이 이렇게 많이 느껴지다니.

끼익.

덜컹!

강패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블루피쉬라 적힌 유리문이 열리더니 깍두기 머리를 한 남자가 고개를 스윽 내밀었다.

그는 문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강패를 무심히 쳐다보고서는 빈 짜장면 그릇을 내놓았다.

“호오…….”

강패는 개성 없게도 지난 몇 시간 동안 자신에게 줄기차게 맞고 나가떨어진 놈들과 똑같은 머리 스타일을 한 조폭을 발견하고서는 눈을 반짝였다.

“여기가 놈들의 아지트인가?”

이제야 그럴듯한 장소를 찾았다고 생각한 강패가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안에는 기린파 놈들이 있으면 좋겠는데.”

덜컥.

그릇을 내놓은 조폭이 문을 잠가 두었던지,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덜컥거리기만 할 뿐 열리지 않았다.

“흠!”

으득, 으드득.

강패가 손아귀에 천천히 힘을 주었다.

스테인리스 재질의 손잡이가 우그러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손잡이와 연결된 부분에 있는 유리들까지 쩍쩍 금이 가기 시작했다.

“자. 조용조용하게 끝내자.”

파사삭.

결국 철제 손잡이가 뽑혀 나오며 문짝이 박살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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