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장 (3/30)

3장

“좋은 말로 할 때 자금 장부 넘겨. 시공 상황이 적힌 파일이랑 전부.”

“다…… 다 가져갔잖소. 근데 왜…….”

“이 새끼가. 누굴 병신 핫바지로 보나?”

쿵!

“컥!”

현장 감독관 조현재는 이 모든 게 꿈이기를 바랐다.

노조 파업이다 뭐다 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기는 했지만, 돈줄을 쥔 것은 회사고 일할 사람은 많았기 때문에 설마 파업이 일어날까 생각했다.

한데 정말 파업이 일어날 낌새가 보이자 조선 그룹에서는 바로 그들과 결탁한 폭력 조직, 흑룡파를 이용해 건설현장을 점거하려고 했다.

흑룡파는 서울을 삼분하고 있는 거대 폭력 조직이었다.

파견 나온 조폭들은 건설현장에 도착하자마자 기습 공격을 하듯 빠르게 컨테이너 사무실을 급습했다.

건설현장에 관한 모든 자료들을 선점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바로 조현재, 속칭 ‘조루’를 족치는 것이었다.

현장을 통솔, 감독하는 조루를 통해 본사로 모든 정보가 전해졌기에, 조루만 족치면 모든 서류를 정리할 수 있었다.

파업의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임금 체불, 임금 미지불로 인한 불만의 폭주.

조선 그룹에선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돈이 지불되었는지에 관한 자금 내역서만 선점하고, 조작하면 모든 일은 간단하게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조루가 끈질기게 버티는 바람에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있었다.

“여기서 뒈지고 싶냐? 아니, 이렇게 버티다가 결국 일이 커지거나 수습이 안 되면, 넌 반드시 뒤진다.”

흑룡파의 부장, 모자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중절모를 삐딱하게 고쳐 쓰면서 으르렁댔다.

머리의 큰 상처를 가리기 위해 항상 중절모를 쓰고 다니기 시작한 모자는 흑룡파에서도 제법 인정받는 실력자였다.

이번 파업건은 조선 그룹의 이미지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조선 그룹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흑룡파로서도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다.

이 일만 수월하고 매끄럽게 잘 처리한다면 조직 내에서 모자의 입지는 한층 더 상승할 터였다.

잘하면 차기 행동대장급이 될 수도 있을 정도였는데, 이 조루란 감독관 새끼가 의외로 속을 썩였다.

“저, 정말이오. 아까 당신들한테 준 게 전부였소.”

얼마나 맞았는지 조루는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루는 거짓말을 했다. 아니,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조선 그룹의 정식 직원이 아닌, 하청 업체에서 근무하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자신이 돈을 횡령해 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모든 죄를 자신이 뒤집어써야 했다.

이 바닥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감으로, 장부가 넘어가게 되면 조선 그룹에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모든 죄를 자신에게 덮어씌울 게 분명했다.

‘그러고는 손을 싹 빼 버리겠지.’

“조선 그룹의 이 부장님에게 연락할 수 있게 해 주시오. 이건 뭔가 착오가…….”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조선 그룹에 탈출구를 만들어 두었다.

조루는 자신이 그동안 먹인 뇌물이 제 역할을 하기를 바랐다.

그런 조루를 쳐다보는 모자의 얼굴은 싸늘하기만 했다.

“이 부장? 하, 이 새끼. 어디서 대가리를 굴려! 네놈이 인부들 돈 다 가로챈 거 맞잖아, 새끼야! 우리가 다 알아 임마!”

쿵!

“큭!”

모자가 조루의 머리채를 붙잡고 책상에 처박았다.

조루는 침음을 흘리면서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모자라는 조폭의 말로 보아, 조선 그룹은 이미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일 모양이었다.

‘개 같은 새끼들. 내가 지금까지 너네들한테 먹인 돈이 얼만데!’

건설현장 감독관은 그룹 측에선 별 볼일 없는 자리다.

고작해야 일용직들의 고용을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장부에 장난을 쳐서 돈을 빼돌리는 정도?

하나 일개 감독관이 인부들의 임금 전체를 빼돌릴 정도의 권한은 당연히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그룹에선 모든 죄를 조루에게 덮어씌울 속셈인 것이다.

그리고 사실과 다르다 한들, 법적으로는 그 죄가 고스란히 조루에게 떠넘겨질 터였다.

조루는 머리를 굴렸다.

당장에 경찰에게 잡혀 감옥에 가지 않더라도 장부를 넘기지 않으면 지금 조폭들에 의해 죽을 판이었다.

“안 돌아가는 머리 열심히 굴리지 말고 빨리 장부나 넘겨. 어?”

조폭들은 장부를 넘기지 않으면 죽인다는 협박만 했다. 협상 따위는 입에 담지도 않는 것이다.

‘빌어먹을!’

도무지 빠져나갈 구석이 보이질 않았다.

조루는 자신의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구나 싶었다.

장부를 넘기면 지금 당장은 살 수 있을 테지만 남은 여생을 감방에서 썩을 것이 분명했다.

복역하고 나왔을 때의 자기 나이는, 이미 망한 것이나 다름없을 터다.

그렇다고 장부를 감추자니 으르렁거리는 조폭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이 새끼가 또 머리를 굴려?”

쿡!

“히, 히익!”

조루의 눈알이 이리저리 굴러가자 모자가 사시미를 꺼내 내리꽂았다.

조루의 눈 바로 옆에 떨어진 사시미가 시퍼런 살기를 줄기줄기 뿜어냈다.

“형님. 벌써 파업이 시작됐답니다.”

“이런 씨……! 야! 너 이 새끼. 장부 빨리 안 꺼낼래!”

“으…… 으으…….”

조루는 신음만 흘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새끼. 손가락 하나 잘라!”

다급해진 모자가 일그러진 얼굴로 소리쳤다.

스윽, 텁!

“자, 잠깐!”

조폭 하나가 조루의 손을 잡고 책상에 올린 다음 사시미를 꺼내 들었을 때였다.

조루가 소리쳤다.

“어디 있어!”

조루가 드디어 항복했다고 생각한 모자가 조루의 머리채를 잡고 들어올렸다.

조루가 떨리는 손으로 사무실 한 켠을 가리켰다.

“찾아!”

파업하는 이들도 바보는 아니다.

그들도 임금이 지불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줄 게 자금 내역서란 사실을 잘 알았다.

때문에 파업이 선언되고 집단이 형성되면 이곳으로 진입할 게 당연했다. 그들이 쳐들어오기 전에 장부를 챙겨야 했다.

노동자들이 뭉치고 머릿수가 많아지면 아무리 조폭들이라 해도 일이 피곤해질 터였다.

“형님! 찾았습니다!”

조루가 가리킨 곳을 뒤지던 조폭이 소리치자 조루는 눈을 질끈 감았다.

모자는 흡족한 미소를 짓고, 조루의 머리채를 붙잡았던 손을 풀었다.

“후우, 그러니깐 쉽게 쉽게 하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조현재 씨.”

목적을 달성하자 모자가 중절모를 고쳐 쓰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흑웅 형님께 장부 찾았다고 연락 드려라. 그리고 입구 막으라고 해.”

“알겠습니다, 형님.”

인부들은 자신들의 억울함을 바깥에 알리기 위해 틀림없이 파업 농성에 들어갈 터였다.

하지만 이미 가장 중요한 장부를 손에 넣었으니, 모든 죄는 조루의 잘못으로 조선 그룹에서 처리할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인부들은 받아야 할 돈을 조선 그룹이 아닌, 조루에게 받아내야 한다.

하지만 조루에게 그런 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돈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은 결국 파업 농성을 해체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때였다.

콰앙!

컨테이너 사무실의 문이 문짝째 뜯어져 쓰러졌다.

그리고 쓰러진 문짝 위엔 시커먼 사람 하나가 뒹굴고 있었다.

“뭐, 뭐야!”

“한수? 이, 이게……!”

“커…… 커헉…….”

문짝과 함께 쓰러진 사람은 사무실 바깥을 지키던 한수라는 조폭이었다.

모자 뒤에 있던 조폭이 황급히 안아 들자, 한수가 고통스러운 듯 옆구리를 움켜쥐고 몸을 꼬았다.

“늑골이 부러졌습니다, 형님!”

모자가 잔뜩 구겨진 얼굴로 뜯겨 나간 문 바깥을 쳐다보았다.

“컥! 커컥…….”

그러자 곧 바깥을 지키던 나머지 한 조폭이 모습을 드러냈다.

버둥버둥.

발이 허공에 뜬 채였다.

누군가에게 멱살이 잡힌 채로 붕 떠서 들려 오는 것이다.

“커헉…… 컥…….”

“엄살 피우지 마 새끼야.”

휙! 콰당탕!

그를 집어 던진 남자, 강패가 모자의 눈에 들어왔다.

씨익.

“너네도 나한테 볼일 있어?”

부르르.

강패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모자는 등골이 서늘했다.

“뭐, 뭐야……?”

강패에게서 뿜어져 나온 기세에 모자를 비롯한 조폭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문짝이 통째로 떨어져 나간단 말인가.

조루를 몰아붙이던 흉흉한 기세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자는 자신도 모르게 한 발자국 물러나며 길을 비켜 줬다.

“쯧. 의리도 없는 놈들.”

강패가 혀를 차고는 엉망진창이 된 사무실을 둘러보다가 조루를 발견하고 눈썹을 휘었다.

“뭐야? 이 새끼가 벌써 떡이 돼 있으면 어떻게 해? 난 뭐하라고?”

흠칫!

강패가 조루를 보며 말하자 모자가 움찔했다.

‘이, 이 남자는 뭐지? 파업 인부? 아니, 인부가 이럴 순 없어. 그럼……?’

행색은 남루했지만 기세만으로 자신과 부하들을 물러서게 만든 남자였다.

그런 자가 단순한 일용직 노동자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저놈한테 뭔가 받을 것이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안 돌아가는 머리를 가까스로 굴리자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모자가 눈을 부릅떴다.

조루에게 받으러 올 것이라고는 지금 그들이 챙겨 가려는 자금 내역서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자금 내역서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 이런 자금 내역서를 노리고 이 틈에 들어올 사람, 혹은 조직이라면…….

‘광명 그룹!’

조선 그룹과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는 상대 그룹일 테고, 이런 일에 동원될 사람이라면…….

‘기린파!’

조선 그룹에 흑룡파가 붙어 있다면, 광명 그룹은 기린파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

“기린파에서 나온 놈이냐?”

모자는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적개심이 끓어올랐다.

“기, 기린파?!”

조폭들도 그제야 현 상황을 납득했다.

하긴 이 바닥에 종사하지 않고서야 자신들을 기세만으로 물러나게 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됐다.

만약 기린파에서 보낸 놈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법했다.

“기린파?”

강패는 모자가 적개심을 뿜어내자 고개를 갸웃했다.

“동물원에 있는 그 기린?”

“기린파에서 우리 구역을 침범하다니, 전면전이라도 할 생각인가?”

강패의 중얼거림을 무시하며 모자는 자신의 생각을 확신한 듯 소리쳤다.

‘대체 누구지? 기린파에서 이 정도 실력자가 있었나? 저런 놈은 들은 적이 없는데!’

모자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지만 강패가 누군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기세를 보면 흑웅 형님 정도 되는 실력자인 것 같은데…….’

흑웅은 흑룡파의 간부 중 한 명으로 이번 일을 총괄 지휘하고 있었다.

흑웅과 강패의 실력을 가늠해 보던 모자는 다시 물었다.

“기린파에서 정말 전면전을 선포하겠다는 건가?”

엄연히 흑룡파의 영역에 기린파가 끼어든 것이기 때문에 전면전을 선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강패가 살아남든, 자신들이 살아남든 끝장을 봐야 했다.

전면전을 기린파에서 선포한 마당에 꽁무니까지 뺀다면 그날로 조폭 생활은 끝이나 다름없었다.

“형님! 이것저것 잴 게 있겠습니까? 우리 구역에 침범한 놈입니다! 그 자금 내역서를 노리는 놈이란 말입니다!”

강패가 무서운 실력자임엔 틀림없었지만, 기린파라는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

게다가 자기들은 머릿수가 더 많지 않은가.

아무리 놈의 실력이 뛰어나도 칼침 몇 방이면 쓰러트릴 수 있을 터였다.

질질 끄는 모자가 답답한 듯, 뒤편에 있던 조폭 중 하나가 재촉했다.

“기린이 아니라 개냐? 여기저기 구역 정하고 다니게?”

“이 새끼가! 감히 흑룡파를 무시하는 거냐?”

강패가 이죽거리자 조폭 하나가 발끈하며 나섰다.

아무리 날고 기는 실력자라 해도 네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면 손발이 꼬이기 마련이었다.

17대 1 같은 이야기가 농담조로 나돌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전문 싸움꾼이라고 할지라도 세 명을 한꺼번에 상대해 이기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조루를 툭툭 치면서 볼일이 있었다고 하는 걸 보니, 분명 놈도 장부를 찾으러 온 게 틀림없었다.

“쳐!”

부하가 강패의 시선을 붙드는 사이, 어느새 남은 일행이 강패의 사위를 포위했다.

모자의 명령에 조폭들이 달려들었다.

“이 새끼! 너 오늘 뒤졌어!”

“흐아아아!”

이미 맨 처음 기세에서 밀렸다는 사실은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였다.

이 바닥에서 경쟁파에게 밀린다면 어차피 돌아가도 방법이 없었다. 진급 따윈 물 건너가 버리는 것이다.

때문에 조폭들은 부나방처럼 강패에게 달려들었다.

“대체 뭐하는 놈들인지는 모르겠다만…….”

후웅!

고개를 살짝 비틀자 강패의 코앞으로 두꺼운 주먹이 흉흉한 소리를 내고 지나갔다.

“질이 좋은 놈들 같지는 않아.”

부웅!

그리고 가볍게 숙이자 머리 위로 조폭의 발길질이 정장바지를 펄럭이면서 스쳐 지나갔다.

“설마 너네들이 깡패들은 아닐 거야. 그렇지?”

스윽.

쉬익!

몸을 일으키면서 고개를 젖히자, 턱을 노리고 주먹을 날리던 주먹이 허공만 가르고 지나갔다.

“마, 말도 안 돼…….”

후웅! 후우웅!

파바박!

모자는 떨리는 목소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눈을 부릅떴다.

놈이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는 정도는 알았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놈의 실력은 예사 것 정도가 아니었다.

‘무, 무슨 이런 괴물이…….’

모자는 행동대장 밑의 부장급 중에 한 명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데리고 온 애들도 정예라고 하긴 다소 모자란 부분이 있었다.

그래도 흑룡파에 들어오려면 웬만한 배짱과 실력쯤은 갖추고 있어야 했다.

무조건 조직원들을 받는 것이 아니라 거대 조직답게 실력을 가려서 받았기에 말단조직원들도 다들 한가락하는 수준이었다.

모자는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주먹과 발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만 가득한 가운데, 강패는 여전히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상체를 움직이거나, 몸을 뒤트는 정도로 똘마니들의 공격을 모조리 피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름이 아깝다, 새끼들아. 너네가 깡패라면…….”

강패.

강패의 이름은 굳셀 강(强), 으뜸 패(覇)의 조합이었고, 강패 스스로가 지은 이름이었다.

전우들은 그 이름으로 강패를 종종 놀리곤 했다.

깡패.

사람을 먼지 나도록 패는 것을 잘한다고 깡패라고도 했고, 언제나 자신만만하고 무모할 정도로 단순직선적인 성격 때문에도 무식한 깡패라고 농을 던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허술한 놈들이 깡패다?

번쩍!

강패의 눈에서 순간적으로 하얀 순백색의 섬광이 치솟았다가 눈 깜짝할 새에 사그라졌다.

쉭! 터덥!

“커흑!”

“꺽!”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강패의 두 손이 조폭들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그러고는 잡힌 조폭 둘의 머리통을 서로 맞부딪쳤다.

쾅!

본의 아니게 박치기를 당한 조폭 둘이 쓰러져 버렸다.

“이 새끼가!”

남은 조폭 둘도 강패에게 달려들었다.

‘글렀다. 나 혼자라도 빠져나가야 되는데…….’

부하들이 강패와 싸우는 사이 모자는 이곳을 빠져나가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꽁무니를 뺀다면 나중에 그 원성을 고스란히 들어야 될 테지만, 자신은 명분이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모두가 당해서 자금 내역이 적힌 장부를 빼앗긴다면?

그리고 그 장부가 광명 그룹으로 넘어간다면?

그땐 흑룡파를 넘어 조선 그룹에도 큰 타격이다.

이것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빠져나왔다고 하면 충분히 자신의 처지는 살릴 수 있을 터였다.

게다가 일을 성공시킨 대가도 받을 수 있었다.

모자는 몰래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컨테이너엔 문이 하나뿐이었다.

한데 기린파 놈이 문 앞쪽에서 싸우고 있는지라 쉽게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모자는 재빨리 두 눈을 굴려 주위를 살펴봤다.

때마침 땅바닥에 누워 꿈틀거리는 조루 뒤편에 화재 방지를 위해 놓아 둔 소화기가 보였다.

우득!

“커헉!”

어느새 부하들이 모두 쓰러지고 마지막 한 놈이 강패에게 목이 졸린 채였다.

지금 기린파 놈은 부하들에게 신경이 미쳐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다.

“이딴 새끼들이 깡패라고…….”

목이 졸린 부하가 신음을 흘리자 강패가 으르렁거렸다.

“사, 살려…….”

정말 형편 없는 놈들이었다.

강패는 박치기로 목을 조르고 있던 조폭의 뒤통수를 내리찍었다.

쿵!

조폭이 뚝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것으로 조폭들을 모두 정리한 강패는 이어서 모자를 찾았다.

그 순간이었다.

“이 새끼!”

촤아아아악!

강패의 얼굴로 허연 연기가 폭사되었다.

모자가 집어 든 소화기를 강패를 향해 뿌렸던 것이다.

연기 때문에 시야가 가린 강패가 주춤하는 사이, 모자는 소화기를 뿌려 대며 재빨리 바깥으로 달려갔다.

‘됐다!’

강패가 고개를 돌리는 시점에 정확히 소화기를 분사했다.

방심했던 놈이 당황해서 손을 허우적거리는 꼴이 볼만했다.

더욱이 소화기를 뿌리기 직전, 문 쪽이 어디인지 확실히 봐 둔 덕분에 모자는 사방팔방으로 소화기를 뿌려 댔다.

강패의 시야를 가릴 뿐만 아니라, 자기의 모습도 감추기 위해서였다.

‘빨리 흑웅 형님께 가야 해!’

이곳만 벗어난다면 더 이상 장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터다.

혹 다른 일일 노동자 같은 파업을 진행하는 녀석들과 맞닥뜨릴 위험이 있지만, 기린파에서 나온 괴물 같은 녀석과는 비교가 안 됐다.

그딴 놈들쯤은 그냥 버럭 소리만 질러 주면 움찔해서 알아서 길을 틀 터였다.

자신의 손에 자금 장부가 들어온 이상, 기린파에서 보낸 실력자가 아닌 다음에야 빼앗기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조금만 더 벗어나면 지금쯤 흑웅을 비롯한 조직원들의 포위망이 완성되어 있을 거다.

그곳까지만 닿으면 안심이었다.

모자가 급박하게 움직였다.

바로 그때였다.

후웅!

“헉!”

뒤에서 뭔가 날아온다는 느낌에 모골이 송연해져 곧바로 몸을 납작하게 말고 앞으로 굴렀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모자 위로 뭔가 거대한 게 날아갔다.

쿠웅!

“크헉!”

날아간 그것은 곧 땅에 처박혔다.

그리고 이어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모자는 끔찍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 머리 위를 지나 날아간 건, 강패에게 당해 쓰러져 있던 부하였다.

강패가 쓰러진 부하를 다시 들어 자기한테 집어 던진 것이다.

타닥!

부하를 보자 모자는 부하 걱정보다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본능적인 두려움만이 커졌다.

모자가 재빨리 달음박질쳤다.

하나 몇 미터 되지도 않는 거리를 가지 못한 채 다시 바닥을 뒹굴었다.

후웅!

쿠웅!

다시 날아온 또 다른 부하도 썩은 통나무처럼 육중한 소리와 함께 땅에 처박혔다.

이번엔 아예 의식을 잃은 것인지 신음 소리도 내지 못했다.

‘괴, 괴물 새끼!’

사람을 드는 것도 모자라 휙휙 날리다니.

츄아아아악!

바닥을 구르며 땅바닥에 내던진 소화기에서는 계속해서 하얀 분말가루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모자는 차분해지려 노력하며 필사적으로 문 쪽을 살폈다.

다행히 바닥을 구른 게 맞는 방향이었는지, 바로 옆에 문이 보였다.

‘나간다! 기필코 나간다!’

두려운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두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자는 벌떡 일어서서 달려갔다. 아니, 달려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버둥버둥.

“어?”

하지만 몸이 앞으로 나아가질 않았다.

의아함에 고개를 내려 보니 바닥으로부터 한 뼘 정도 떨어진 발이 허공을 젓고 있었다.

모자는 그제야 자신의 뒷덜미가 누군가에게 잡혀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어딜 가려고?”

뒤통수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모자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퍽! 퍽!

“끅!”

강패의 손을 뿌리치기 위해 힘껏 뒤로 발을 뻗었다.

분명 걸리는 느낌이 자기 발길질에 강패가 맞는 것 같은데, 어째 돌아오는 건 강패의 신음이 아닌 자신의 고통이었다.

사람이 아닌 바위라도 걷어차는지, 찌르르 하는 아픔이 발끝에서부터 올라왔다.

모자가 포기한 채 축 늘어지자, 강패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딱 한 대만 맞고 끝내자. 나도 볼일이 있어서 말이야.”

모자는 뒷덜미를 잡힌 채라 강패의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어쩐지 알 수 있었다.

지금 강패가 웃고 있으리란 사실을.

모자는 본능적인 무의식에 고개를 세차게 저었지만, 강패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그럼 안녕.”

퍼억!

“끄어어…… 어…….”

모자가 눈을 까뒤집으면서 쓰러져 버렸다.

“이건 뭐야.”

모자가 쓰러지면서 품에 고이 모시고 있던 자금 장부가 땅에 툭 떨어졌다.

그것을 집어 든 강패가 고개를 갸웃했다.

촤아아악!

“불이야! 불!”

촤아악!

“불이야!”

그 순간, 부서진 컨테이너 박스의 문 너머에서 양동이가 불쑥 들어오더니 물벼락이 쏟아졌다.

“우악! 이게 뭐야!”

갑작스런 물벼락을 맞은 강패가 비명을 질러 댔지만 물은 끊임 없이 계속해서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이윽고 소화기 분말 가루가 물줄기에 가라앉자, 컨테이너 박스 앞에 모인 인부들 앞에 젖은 강패의 모습이 들어왔다.

“자, 자네 괜찮은가?”

그 틈에서 김 씨의 머리가 불쑥 솟아올랐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온 김 씨가 허둥지둥 달려와 강패의 몸을 여기저기 살폈다.

“갑자기 무슨 일이요? 이게 웬 물벼락이야!”

졸지에 물을 뒤집어쓴 강패가 찡그리며 소리치자 김 씨가 뒤통수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아니, 여기서 연기가 나서 불이 난 줄 알았지. 자네야말로 여기서 뭐하던 게야! 이 사람들은 또 뭐고?”

“글쎄올시다?”

김 씨가 주위에 널브러져 있는 흑룡파의 조직원들을 보면서 묻자 강패도 머리를 긁적였다.

김 씨가 재차 강패에게 물으려는 순간, 파업 인부들의 성난 목소리가 이어졌다.

“조루! 조루가 저기 있다!”

“저 새끼 끌어내!”

물벼락을 맞고 나서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온 조루가 몸을 일으키던 순간, 파업 인부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조루를 잡기 위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자 좁은 컨테이너 박스가 더욱더 혼란스러워졌다.

“자네. 일단 이쪽으로 오게. 일단 물기부터 닦고 보세. 아이구, 어쩌다가…….”

김 씨가 강패를 이끌고는 사람들을 헤치고 컨테이너 박스 밖으로 나갔다.

*

*

*

“이 머저리 같은 새끼들아!”

외칼은 자신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자와 부하들을 후려칠 기세로 버럭 소리쳤다.

모자와 부하들의 몰골은 참으로 볼만했다.

“고작 한 놈한테 깨져! 그것도 기린파 놈한테? 장부까지 빼앗기고? 너네 뭐하는 새끼야! 어?”

흑룡파의 간부인 흑웅의 최측근 심복이자 행동대장인 외칼이 외치는 고함에는 살기가 가득 서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외칼은 다른 조폭들처럼 덩치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단련한 무술가처럼 온몸이 단단하고 팔다리가 유연했는데, 칼로 찌르는 것처럼 날카로운 위력이 돋보였기에 외칼이라 불렸다.

그는 인상을 와락 찌푸리고 농성에 들어간 건설현장을 보면서 이를 갈았다.

으득.

이 가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리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모자의 고개가 더욱더 아래로 내려갔다.

“기린파 놈들이 감히 우리 영역에 들어와? 이 새끼들이 정말 돌아 버린 게 아니고서야!”

언제고 한번 붙을 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비겁하게 기습적으로 손을 쓸 줄이야.

외칼은 이를 바드득 갈았지만 지금 당장 기린파로 몰려갈 수는 없었다.

일단은 저 파업 인부들의 파업 농성을 감시할 필요가 있었고, 위에서 다시 지시가 내려오면 들어가서 진압까지 해야만 했다.

지금은 흑룡파 조직원이 아니라 조선 그룹이 합법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용역 업체의 직원이었다.

“그 장부 가져간 새끼. 얼굴 알지? 그 새끼 잡아서 죽여 버리겠어. 으드득.”

*

*

*

어제 보았던 몇몇 익숙한 얼굴들이 붉은 머리띠를 매고 팻말을 들며 소리치고 있었다.

조선 그룹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회장 조모강은 각성하라!

물을 홀딱 뒤집어쓴 강패는 김 씨의 손에서 건네받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뭐 때문에 저러는 거요?”

“다 돈 때문에 그런 게 아니겠는가.”

김 씨는 씁쓸한 얼굴로 그쪽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다 돈 때문에 저러는 것이지. 회사는 돈을 아끼려고 하고, 인부들은 그 돈을 받지 않으면 생활이 힘들고. 그러니 돈 때문에 저러는 거겠지.”

“흐음…….”

강패가 손으로 턱을 긁적이며 생각에 잠겼다.

“돈이 그토록 있어야만 하는 거요? 돈 같은 거 없어도 산속에 들어가 열매 따 먹고 살 수도 있지 않소?”

김 씨가 미친놈 쳐다보듯 강패를 쳐다봤다.

강패가 퉁명스레 말했다.

“모르니깐 묻는 거요. 꼭 돈이 그렇게 필요한 건지 난 잘 모르겠소.”

“아직 자네가 젊어서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게야.”

김 씨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주절주절 말을 이어 갔다.

“산속에 들어간다? 그거 듣기에는 참 쉬워 보이지. 그런데 태어나서 도시에서만 살아온 사람이 산속에 들어가면 뭘 할 수 있을 것 같나? 먹을 수 있는 열매와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분할 수 있을 줄 아는가? 그리고 온통 돈으로 도배질이 돼 있는 세상이다 보니 그냥 산열매를 먹었다 해도 사유지 침범으로 경찰한테 잡혀가고, 나무를 잘못 베면 환경법에 위반되어 또 경찰에 잡혀갈 테지.”

“산속에서도? 산도 돈을 주고 산단 말이오? 나무를 베면 안 된다는 법도 있다고?”

강패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묻자 오히려 김 씨가 당황했다.

“아니, 그것도 모르나?”

강패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일제강점기 때라면 가히 상상도 안 되는 얘기였다.

김 씨는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다시 푹 내쉬었다.

“일도 못하고, 돈도 못 받으면 그만큼 억울한 게 어디 있겠는가. 저 사람들도 나중에 돈을 받기로 하고 뼈가 닳도록 일했는데 이제 와서 돈이 없어 못 주겠다니 저러는 거겠지. 쯧쯧. 대기업이라는 놈들이…….”

대기업 어쩌구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강패는 산과, 심지어는 그 안의 나무 열매마저 주인이 생겼다는 소리에 더욱더 황당해 했다.

“그나저나 바깥에 보니까 용역들도 와 있는 것 같던데…… 다치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구먼.”

조선 그룹 같은 대기업에서 마음만 먹는다면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용역들을 투입시켜 농성을 밀어 버리고 강제 해산을 시킬 수도 있었다.

그러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아니, 조선 그룹에서 그런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게 언론이 먼저 움직여주기를 제발 바라고 있었다.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돈이 다 해결해 주는 세상이군.’

강패는 돈의 위력을 듣고 새삼스레 속으로 중얼거렸다.

땅과 건물뿐만 아니라 심지어 산과 나무, 들판마저도 누군가의 소유물이라니……. 그리고 그것을 손상하면 위법 행위라니.

결국 모든 것의 가장 머리 꼭대기에 있는 것은 돈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그 피잣집 사장이 치사하게 외상도 안 해 주고 내 옷을 가져간 거겠지.”

정말로 돈이란 게 그리 큰 위력을 발휘한다면, 그 위력은 강패가 1940년대에 느꼈던 돈의 위력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었다.

“이 세상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강패는 스스로가 너무 무지한 게 많다고 느꼈다.

평범하게 살아가거나, 아니면 전장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거나 결국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강패는 전장터에서 살아왔지, 평범하게 살아 보진 못했다.

그래서 평안한 삶을 살아 보고자 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은 안이했다.

전장이 아니라고 평안한 삶이라고 할 수 없었다.

강패의 눈이 총기로 반짝였다.

“돈이란 놈과의 전쟁인가. 내가 먹거나, 아니면 놈이 날 먹거나.”

강패가 킬킬대면서 머리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기를 수건으로 잡아챘다.

*

*

*

“뭐야! 광명 그룹에서 나온 놈한테 장부를 뺏겨?”

조모강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회장 집무실 안에 있던 사람들의 목이 거북이처럼 쑥 들어갔다.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거야? 흑룡파 놈들은 뭘 한 거고! 그걸 광명 그룹한테 뺏기면 어쩌자는 거야!”

일흔이 넘어가는 나이였건만 염색한 검은 머리와 곧은 허리, 우렁찬 목소리와 형형한 두 눈.

조모강은 나이답지 않게 정정했다.

흡사 50대로 보일 정도였다.

작은 건설 회사를 대한민국 5위에 오를 정도의 크기로 키운 입지전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조모강의 영향력은 조선 그룹 안에서는 거의 절대적이었다.

부회장이나 이사, 전무급들도 직접 서류를 결재 받는 것을 꺼려 할 정도로 그의 성격은 알아주어야 했다.

조모강은 거칠고 담력이 컸다. 그리고 동시에 정반대로 극도로 냉철하고 이성적이었다.

때문에 지금도 철혈의 군주로서 조선 그룹 안에서 군림할 수 있었다.

그런 조모강이, 광명 그룹에서 자금 내역서를 가져갔다는 말에 얼굴에 핏대가 설 정도로 분노하고 있었다.

“그게 언론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근로법 위반은 당연하고 기업 이미지도 실추할 거야! 그럼 네놈들이 그 피해액을 댈 거야? 어!”

더군다나 광명 그룹은 대한민국 4대 기업 안에 든다.

수치로 환산했을 때 그 차이는 미묘했기에, 조선 그룹은 항상 광명 그룹을 라이벌이자 먹잇감으로 여겼다.

그쪽에 자신들의 약점을 노출해 버렸으니, 조모강으로서는 더욱더 화가 났다.

“광명 그룹에서 그걸 어떻게 알고 가져간 거야! 너네들은 뭐 했어, 그동안!”

조모강이 눈을 부릅뜨면서 전략사업 본부에 소리쳤다.

본부장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죄송하다는 말만 연발했다.

조모강이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그놈. 우리 자금 내역서를 가져간 놈. 광명 그룹에서 보낸 기린파에서 나온 놈이라고 했나?”

“네, 회장님. 흑룡파에서 전한 말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머저리 같은 놈들! 그렇게 호언장담을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어떻게 할까요?”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해!”

탕!

전략사업본부장이 조심스레 묻자 조모강이 탁자를 내리쳤다.

그 시퍼런 서슬에 간부들이 전부 몸을 움찔했다.

“돈만 축내는 돈벌레 같은 녀석들 같으니! 흑룡한테 전해! 이번 일이 틀어지면 약속했던 보수는 없다고!”

“회, 회장님. 그건 너무…….”

“그놈들한테 우리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알아? 그런데 이런 간단한 일도 제대로 처리 못해서 우리한테 손을 벌려? 제대로 수습 못하면, 돈이고 뭐고 아예 콩밥을 먹여 버릴 테다! 에이!”

자기가 할 말만 뱉은 조모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는 집무실을 나가 버렸다.

앉아 있던 이사급 간부들이 서로 눈치를 살피며 조모강의 꽁무니를 쳐다봤다.

그중 전략사업본부의 본부장은 표정은 가장 암울했다.

“또 난리 나겠구만. 휴우…… 그 거친 놈들을 어떻게 감당한다.”

전형적인 엘리트 스타일로 공부만 해서 이 자리까지 올라온 본부장이다.

그런 그에게 거친 조폭들을 상대하는 것은 힘에 겨울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이럴 거면 거친 조모강이 직접 말을 전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였다.

하나 조모강의 성격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랬다가는 자기가 잘리는 건 둘째치고 흑룡파와 아예 갈라설지도 모른다.

그저 한숨만 내쉬는 본부장이었다.

“까라면 까야지. 별수 있나.”

조폭들에게 욕을 얻어먹더라도 나중에 불벼락을 맞느니, 일단 그대로 전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본부장이 처진 어깨로 회장 집무실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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