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막노동이란 게, 삽질이군.”
인력시장에서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던 강패는 현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김 씨에게 물어봤을 때는 시원스럽게 강패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지 못했다.
현장에 도착한 강패는 이미 뚝딱거리는 소리로 가득한 공사장의 흙먼지를 한껏 들이마시고 피식 웃었다.
이 정도야, 삽 하나만 준다면 오분 안에 장정 두 명이 숨을 수 있는 은신처를 만들 수 있는 강패에게는 단순 노동에 불과했다.
“힘도 못 쓰게 생겼다고? 내가?”
조장의 못마땅한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했다.
강패는 우스운 마음에 피식 웃었다.
누구도 알지 못할 일이었다.
일제강점기 때의 강패는 일본군과 중국군이 가장 두려워하던 ‘대재앙’이었다.
비록 그 이름은 후대에 전해지지 못하고 알려져서는 안 되는 역사였으나, 사라진 것은 이름뿐이지 강패 본인이 아니었다.
“자자, 일단 저쪽에 벽돌부터 나르도록 해. 오늘 처음 왔으니깐 너무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쉬엄쉬엄. 괜히 이런데서 죽자고 열심히 하다가 다치면 자네만 손해야.”
김 씨는 강패의 부탁으로 막노동판에 데려왔지만 사뭇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김 씨가 보기에, 조금 꾀죄죄해지기는 했어도 강패가 입은 옷은 꽤 비싸 보였다.
손에는 별로 굳은살도 없어 보였고, 햇빛도 별로 쐬지 않은 듯 피부색도 우윳빛이라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살아온 청년 같았다.
그래서 자칫 다칠까 봐 더더욱 걱정하는 기색이었다.
“걱정 마쇼.”
피식 웃은 강패가 주위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노란 안전모를 쓰고는 벽돌을 나르는 곳으로 갔다.
“뭐야. 오늘 일꾼이 왜 이래?”
벽돌을 담당하는 인부가 강패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강패는 개의치 않고 지게같이 생긴 도구의 끈을 어깨에 걸치기 위해 쭈그려 앉았다.
“그런 복장으로 일 하겠어?”
양복바지와 구두를 신은 강패의 복장은 인부라기보다는 시찰을 나온 시공사 측 인물 같았다.
강패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그저 대답 없이 빤히 인부를 올려 볼 뿐이었다.
“모르겠다. 괜히 다쳐서 나중에 후회하지나 말라고.”
김 씨와 비슷한 말을 하며 인부는 강패의 지게에 벽돌을 쌓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벽돌을 쌓자 지게를 툭 쳐 보였다.
“가 봐.”
“더 싣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너무 가볍잖소.”
강패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벽돌을 쌓던 인부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이거 못 나르면 오늘 일당 없을 줄 알아!”
‘무슨 막노동판이 장난도 아니고’라며 인부는 무서운 표정으로 지게에 계속해서 벽돌을 쌓았다.
벽돌의 층이 점점 높아지자 주변에 있던 인부들까지 흘끔거렸다.
“저, 저걸 들게 한다고? 너무한 거 아닌가?”
“아니, 저 청년이 계속 쌓아 달라고 했다는구만. 오늘 처음 일하는 것 같은데…… 쯧쯧…….”
한 번도 막노동판에서 일해 보지 않은 사람은 벽돌 나르기를 쉽게 여기곤 한다.
실제로 몇 십 장이라면 누구라도 나를 수 있다.
하지만 건물을 짓는데 이러한 벽돌이 몇 장이나 필요할까?
못해도 수천 장에서 수만 장이다.
한데 그걸 모두 인력으로 실어 날라야 한다.
현장에서 가장 힘든 작업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벽돌 운반이었다.
현장에선 한꺼번에 많이 나르고 지치는 사람보다, 적더라도 끈질기게 여러 번 나르는 사람을 선호한다.
강패는 당연히 그런 사람들 눈에 일의 어려움을 모르는 초짜 중의 초짜로 비쳤다.
“가 봐!”
벽돌을 무려 30장 가까이 쌓은 인부는 두고 보자는 눈빛으로 강패의 어깨를 툭 쳤다.
한데 강패는 일어서기는커녕 슬쩍 뒤를 돌아보더니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더.”
“뭐, 뭐……?”
인부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장당 3킬로그램짜리 벽돌을 30장 가까이 쌓았으면 90킬로그램에 달하는 무게였다.
그런데 이 젊은이놈은 더 쌓으라지 않는가!
“너 미쳤어? 거의 100킬로그램에 달하는 무게다! 그냥 나르기나 해!”
골탕이나 먹으라는 식으로 30장을 쌓았지만 사실 나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무거워 하면 핀잔이나 주고 기를 죽이려는 속셈이었는데, 벽돌을 더 올리라니!
인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 돼. 그러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우리 손해야.”
아무리 일용직이라고는 하나 장난을 넘어서다가는 큰 사달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젊은 놈은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일을 더 하면 돈을 더 준다고 하더라구. 내가 돈이 좀 필요해서 말이오.”
강패가 능글맞게 웃어 보였다.
돈이 필요해서 막노동판까지 나왔다는 말과 꾀죄죄해진 행색에 인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거우면 절대로 무리하지 말아. 잘못하면 큰일 나.”
이곳에 있는 대부분도 모두 ‘돈’이 필요해서 온 이들이다.
이쯤 되니 비록 강패가 패기만 있는 초짜라서 이 일을 깔보고 있는지도 모른다지만, 인부는 그의 처지가 남 같지 않았다.
그래서 꾀를 썼다.
아예 많이 쌓아서 일어나지도 못하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결국 강패의 지게에 벽돌 50장이 올라왔다.
무려 150킬로그램에 달하는 무게였다.
“우, 우와……. 저게 뭐야 대체?”
“그래도 너무하구만, 저 많은 걸 대체 어떻게 날라?”
주변에 있던 몇몇이 입을 떡 벌리는가 하면 몇몇은 혀를 내둘렀다.
“자, 이제 50장이야. 어디 일어나 보게.”
일반적으론 한번에 10개, 많아야 15개를 나른다.
50장이라면 일어나기도 힘들 터였다.
강패는 걱정스러운 눈의 인부를 보고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일어날 준비를 했다.
“진짜 저걸 나를 생각인가?”
“저 친구 이 일을 너무 무시하는구만!”
주변에서 혀를 차 거나, 무시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정작 벽돌을 날라야 하는 강패는 한번 지게 끈을 잡아당겨 보고 흡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흠. 이제야 좀 묵직해졌군.’
강패에게 있어 이 정도 무게는 그다지 부담이 가지 않았다.
옛날엔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전우를 지키기 위해서 이 정도 무게는 거뜬히 들고 뛰었다.
부상당한 전우를 업고 기관총과 탄, 그리고 식량 등을 줄줄이 달았을 때의 무게는 감히 벽돌 따위와 비교할 수 없었다.
그런 무게를 짊어지고서도 작전 지역을 이탈해 보급지까지 수 킬로미터에서 많게는 수십 킬로미터가 떨어진 거리를 달리곤 했다.
번쩍!
강패가 허리와 무릎을 펴자,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지게가 번쩍 올라갔다.
“마, 말도 안 돼.”
“저…… 저게 사람이야?”
모든 인부들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다들 막노동판에서 하루 이틀 일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눈대중만으로도 강패가 진 벽돌의 무게가 얼마만큼 나갈지는 대충이나마 알 수 있었다.
주변에서 걱정이나, 사고 날 걸 우려하는 눈빛과 목소리가 만연했다.
간간이 그를 무시하는 말소리도 이어졌다.
“쯧쯧, 저걸 옮기면 뭐 하나. 저거 한번 옮기고 나면 쓰러질걸?”
강패는 어깨를 누르는 무게에 오랜만에 단련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쁠 건 없겠지.’
오랜만에 힘을 써서인지 오히려 발을 옮길수록, 몸에 쌓인 노폐물이 다 타 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확실히 반응이 더 좋아졌어.’
다시 눈을 떴을 때, 뜨거운 기운이 용암처럼 치솟으며 온몸을 구석구석 누비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이 미증유의 기운이 패도적이고 파괴적이라는 것이었다.
원래 때려 부수던 것이 익숙하던 강패 입장에서, 몸의 기운이 그렇게 좋아졌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그간 이 힘을 어디에 써야 할지 찾지 못해 오히려 답답했었다.
쿠웅!
5층까지 올라온 강패는 자신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하는 인부 앞에 지게를 벗었다.
어찌나 무게가 나갔던지, 지게를 내려놓자 묵직한 소리와 함께 시멘트 가루들이 폴폴 피어올랐다.
“뭐해요?”
강패가 놀라운 광경에 멍한 인부에게 심드렁하게 말했다.
인부는 그제야 지게에서 벽돌을 내리기 시작했다.
“흐음, 할 만한데?”
다른 사람 같았으면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할 무게였다.
그것을 5층 높이까지 지고 올라온 사람치고 땀방울조차도 흘리지 않은 강패가 씨익 웃어 보였다.
현장 감독은 인부들을 감독하기 위해 현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인부들이 일은 안 하고 멍하니 서서 한쪽을 쳐다보는 모습을 보곤 인상을 와락 구겼다.
“뭐야 지금 일들 안 하고 뭐하고 있…… 헉!”
쿵…… 쿵…….
하루 바삐 공사를 끝내는 게 한 푼이라도 덜 들어가기 때문에 그는 항상 인부들을 재촉하고 독촉했다.
그래서 ‘조루’라는 별명이 붙은 현장 감독은 인부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가, 그들처럼 얼어붙었다.
그들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웬 청년이 탑처럼 쌓은 벽돌 지게를 지고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도대체 그 무게가 얼마나 나가는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쿵쿵 소리와 함께 먼지가 피어올랐다.
“쟤…… 쟤 뭐야?”
조루는 부릅뜬 눈으로 옆의 인부에게 물었다.
인부는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오늘 처음 나온 애인데, 힘이 아주 장사입니다 장사. 저게 자그마치 50장이라지 않습니까. 거참 50장이라니…….”
“5, 50장?”
지금은 나이를 먹어 현장 감독관으로 일한다지만, 조루도 젊을 적엔 공사판을 전전하던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래서 강패가 짊어진 짐의 무게를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지금 벌써 다섯 번째입니다. 조금 느리긴 해도 50장을 한꺼번에 다섯 번이나 나르고 있어요.”
“그래?”
조루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혼자 다섯 명 몫을 하는군! 그럼 돈은 두 배 정도만 준 다음에 네 명을 자르면…….’
안 그래도 요즘 노조와 회사 간의 사정이 안 좋아 공사 자금이 수월히 들어오지 않았다.
더욱이 완공일도 얼마 안 남았다.
현장 감독관이란 어수선한 사측 분위기에도 현장을 잘 다독여 공사를 이끌어 나가는 위치였다.
때문에 회사 측과 노조 사이에서 제일 고통 받는 것도 바로 그였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일을 하는 건 콩고물이 많이 떨어져서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노조와 회사 측의 냉전으로, 중간에서 자금을 약간 뻥튀기해서 챙겨 오던 것도 어려울 정도로 요즘은 빡빡했다.
적은 금액이나마 일용직 인부 몇 명 몫을 자신이 꿀꺽한다면 월급 못지않은 돈을 챙길 수 있을 터였다.
“휴…….”
강패는 무려 250장이 넘는 벽돌을 옮기고서는 그제야 허리를 쭈욱 폈다.
“오랜만에 몸을 쓰려니깐 제법 힘들군.”
그때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에 뒤를 돌아보았다.
“자네, 일을 제법 잘하는데?”
“……?”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말을 걸어오자 강패는 멀뚱히 쳐다보았다.
그는 바로 현장 감독관, 속칭 ‘조루’였다.
성격이 지랄맞게도 급해 일을 치르기도 전에 폭발한다고 해서 공사장 인부들이 킬킬대면서 붙인 이름이다.
“험험, 난 현장 감독관 조현재라고 하네.”
“안녕하쇼.”
강패는 조루에게 건성으로 고개를 까닥이며 인사했다.
자신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강패의 건방진 태도에 조루는 울컥했지만 자신이 받아먹을 돈을 생각하고서는 심호흡을 했다.
“원래 그렇게 힘이 센가? 대단하더구만. 웬만한 사람은 열 장도 버거워 하는데. 50장이라니.”
“그게 50장이었소? 더 실을 걸 그랬나?”
그 말을 듣자 조루가 더욱 눈을 반짝였다.
“자네. 혹시 내일도 나올 건가?”
“그건 왜 물으쇼?”
“아니, 자네가 워낙 일을 잘해서 내일도 나온다면 돈을 올려서 줄까 했는데……. 아닌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제안을 하는지 모르는 강패는 그저 씨익 웃으면서 조루를 쳐다보았다.
“돈을 올려 준다구요? 얼마나 올려 줄 생각이쇼?”
계속해서 건방지게 구는 게 거슬렸지만 조루는 세상 물정 모르는 이 무식한 놈을 잘만 구슬리면 한몫 거뜬히 챙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네 일당을 두 사람 몫에다 보너스를 붙여서 15만 원을 주도록 하지. 어떤가?”
“…….”
강패는 갑자기 호의를 베푸는 척하는 감독관이라는 자를 보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꿍꿍이가 있군.’
강패는 단박에 감독관의 표정을 읽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이지만 입술의 들썩거림이나 목 근육이 바짝 서고, 눈동자가 약간씩 흔들리는 것을 강패는 놓치지 않았다.
“25만 원으로 합시다.”
“2, 25만 원……?”
강패는 자신이 가진 힘을 어느 정도 알았다.
대놓고 드러낼 수 있는 힘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저평가로 인한 피해는 싫었다.
강패가 보건대 저 감독관이란 자는 틀림없이 자기 나름대로의 이익을 챙길 것이었다.
그 이익은 제시한 금액보다도 분명 더 클 터였다.
“싫으면 맙시다.”
가진 돈이라고는 500원짜리 하나밖에 없었지만 강패는 태연했다.
강패가 돈을 벌려는 데는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그저 이 달라진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자유롭게 살아 보고 싶어서였다.
‘25만 원이면 꽤 큰돈이겠지? 피자집에서 그렇게 먹었는데 10만 원 남짓이었으니…….’
강패는 피자값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25만 원. 에누리는 없소. 싫으면 말던가.”
“25만 원이라…… 흠…….”
주위의 인부들이 강패를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몫이 줄어들긴 하지만 어쨌든 이득이다.’
감독관은 고민하는 척하면서 계산을 마치고는 내키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알겠네. 25만으로 하지. 대신 오늘처럼 열심히 해야 하네. 알았나?”
“알겠소.”
조루는 이를 갈았다. 하지만 겉으로는 웃으면서 어깨를 두드렸다.
“뭣들 하는 거야! 어서 일들 해!”
조루가 성을 내면서 인부들을 또다시 독촉했다.
인부들은 강패가 부럽다느니, 대단하다느니 수군거리면서 흩어졌다.
“자네 대단하구만! 역시 젊어서 그런지 힘이 보통이 아니야!”
근무 시간이 끝나고 다가온 김 씨의 말에 강패는 피식 웃었다.
“그러게 말이요. 부모님께서 날 이렇게 낳아 주신 거겠지.”
얼굴도 모르는 부모님이지만, 어쨌든 지금의 강패에게는 꽤 도움이 되었다.
자신의 봉투와 강패의 봉투를 번갈아보던 김 씨가 한숨을 푹 쉬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그런데 말일세. 그 감독관이란 작자가…… 다른 말은 안 하던가?”
“말? 무슨 말?”
“아, 아닐세.”
김 씨의 모습이 이상했지만 강패는 이미 뭘 먹을지에 대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
‘또 피자는 그런데…….’
피자도 좋았지만, 또 다른 맛있는 게 있을지도 몰랐다.
문제는 뭐가 맛있는지 모른다는 것.
‘또 냄새를 쫓아야 하나?’
즐거운 상상을 하며 강패는 김 씨와 함께 돌아왔다.
*
*
*
“일주일 동안 그렇게 일 하고도 멀쩡하다니. 정말 막노동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구만 자네.”
강패가 막노동판을 나간 지도 어느덧 일주일 가까이 되었다.
“옷이나 한 벌 사지그래?”
강패의 옷은 여전히 와이셔츠와 정장바지뿐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핀잔을 준 김 씨가 앞으로 휘휘 걸어 나가자 강패가 피식 웃고서는 뒤를 따랐다.
지난 일주일 동안 강패는 매일매일 막노동판에서 일했다.
“목욕탕이나 갑시다.”
아무리 노숙자 신세라지만, 상거지 꼴인 강패가 보기 그랬던 김 씨가 한 번은 목욕탕으로 데리고 갔었다.
개운함이 제법 마음에 들었던지, 이후엔 꼬박꼬박 목욕탕을 챙기는 강패였다.
“돈도 그 정도 벌었으면 슬슬 고시원이라든지 그런 곳으로 가는 게 낫지 않아?
“먹는 데만 해도 돈이 빠듯한데. 지하보도도 충분히 편한데 굳이.”
“하긴. 그 정도 일하면 그렇게 먹어 대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
김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며칠간 강패와 다니며 김 씨는 한두 번 놀란 게 아니었다.
그중에는 강패의 어마어마한 식성도 있었다.
강패가 식욕은 가히 어마어마했다.
점심시간 식당에선 식판 대여섯 판을 해치웠고, 피자도 한번에 대여섯 판을 먹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정도로 먹어 댔기에 버는 돈에 비해 많은 액수가 먹는 데로 들어갔다.
그래도 남는 돈은 조금이라도 모아 두는 강패였다.
“오늘은 목욕하고 또 뭘 먹으러 가야 하나. 또 냄새만 맡고 찾아볼까?”
강패는 피자집을 찾았던 것처럼 무작정 냄새를 쫓을 생각을 했다.
그 순간,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강패가 상념을 깨고 재빨리 몸을 틀었다.
휙!
“너…… 너 이 새끼!”
“왜, 왜 이러나 자네!”
“뭐야 이건?”
강패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서 있던 자리에 주먹이 스쳐 지나갔고, 강패가 몸을 틀어 뒤를 보자 일면식도 없는 남자가 어설프게 주먹을 쥐고는 씩씩대고 있었다.
그와 강패 사이를 김 씨가 황급히 가로막았다.
“저 새끼 때문에 내가 내일부터 당장 먹고 살 게 없어졌어! 아이고…… 내 새끼들은 어떡하라고!”
먼지를 폭삭 뒤집어쓴 모습에 허름한 몰골.
삿대질을 하며 대성통곡을 하는 남자 때문에 강패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뭐야? 너, 죽고 싶어!”
강패가 위협적으로 으르렁댔다.
남자는 순간적으로 움찔했지만 다시 강패에게 대들었다.
“굴러들어 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더니!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멀쩡히 일하던 사람 자리를 뺏어? 네놈 때문에 내일부터 마누라와 자식들이 굶어야 된단 말이다! 이 추운 겨울에……!”
강패가 이해를 못하고 김 씨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개소리요 대체?”
김 씨는 한숨을 푹 내쉬고 남자를 달래면서 말했다.
“어쩌겠는가. 이 바닥이 원래 그런 것이지. 그리고 그게 어떻게 이 친구 잘못이야. 그 조루 놈 잘못이지…….”
“이보시오. 나 좀 살려 주시오. 당장 내일 마누라 먹일 약값도 없소. 애들도 집에서 쫄쫄 굶는단 말이오.”
인부는 달려들 때는 언제고 애걸복걸하며 통사정했다.
“그.러.니.까……!”
앞뒤 다 잘라먹고 통 알아듣지 못할 말만 지껄여 대자 강패가 기세를 실었다.
셋 사이에 순식간에 정적이 깔렸다.
그제야 조용해지자 강패가 또렷하게 물었다.
“무슨 말인지 내가 알아듣게 말해 보시오. 천천히, 그리고 세세하게.”
김 씨는 인부와 강패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고는 한숨을 푹 내쉰 뒤, 이내 감독관이 꾸민 일의 전말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김 씨가 말을 마치자 강패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니까…… 지금 자기 콩고물 먹겠다고 다른 사람도 자르고 나한테 주는 돈도 깎았다?”
“그렇지. 자네가 너덧 명 이상의 일을 하니까. 두어 명 돈을 주고 나머지는 자기가 갖는 거지. 그러니까 25만 원이나 준다지 않았는가. 허어…….”
이제야 전후사정이 파악된 강패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인부를 쳐다보았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이들이었다.
강패 앞에선 건설현장의 인부 중 한 명에 불과했지만, 집에선 가정을 이끄는 한 명의 가장이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자존심이고 욕심이고, 모두 다 버린.
“돈이라…….”
강패는 공사장의 먼지로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손에 쥔 두터운 돈봉투는 너무나도 깨끗했다.
자신 앞에 있는 인부의 얇은 봉투도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하긴 마찬가지였다.
순간적으로 자신이 희희낙락하며 손에 쥔 돈봉투가 너무도 불쾌했다.
으득.
“그 개새끼가…… 날 가지고 장난을 쳤단 말이지?”
거기다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매몰차게 내버렸다.
감독관이 꿍꿍이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돈을 더 높여 부른 것이었지만, 설마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애초에 수작을 부리고 머리를 쓰는 일과는 성격상 거리가 멀었던 강패는 정말로 자신이 일을 잘해서 돈을 더 받는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그 돈이, 설마 다른 사람의 몫일 줄이야.
깜빡 속아 넘어간 강패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감독관이란 놈을 향해 분노가 끓어올랐다.
“이 새끼를…….”
“자, 잠깐! 자네 어떻게 하려고?!”
“가서 그 자식을 족쳐 놔야지! 감히 누구를 가지고 장난질을……!”
번쩍.
김 씨는 순간 강패의 눈에서 번쩍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필사적으로 소맷자락을 붙들었다.
이대로 보내면 정말 사람 하나 골로 보낼 것 같았다.
“이미 가도 늦었네. 그리고 가서 어쩌려고? 돈을 더 달라고라도 할 텐가?”
강패는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어차피 내 돈이지 않소. 못할 것도 없지. 아니, 자기 두 손으로 돈을 바치게 만들 수도 있어.”
“알았네, 알았어. 그러니 일단 흥분 좀 가라앉히게.”
두 눈을 시퍼렇게 뜬 강패를 보는 것만으로도 김 씨는 온몸에 오한이 돋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대로 순순히 강패를 보낼 수는 없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강패를 달랬다.
“이미 돌아가 봤자 조루 놈은 집에 가고 없을 걸세. 괜히 가서 힘 빼지 말고 내일 하는 게 어떤가? 내일!”
“…….”
강패는 기분 같으면 당장이라도 감독관 놈을 두들겨 패서 빼돌린 돈을 게워 내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 보면 김 씨의 말이 맞았다.
“가서 찬찬히 생각해 보세. 내일 당장 세상이 망하는 것도 아니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고.”
가까스로 화를 가라앉힌 강패는 자신을 습격한 인부를 보고 말했다.
“내일 무조건 공사장으로 나오시오. 무슨 수가 있더라도 당신이 다시 일하게 해 주겠소.”
“저, 정말인가? 고, 고맙소! 정말 고마워!”
강패가 감독관도 아니었건만, 인부는 강패에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괜히 씁쓸해진 강패는 더 말하지 않고, 매정하게 몸을 돌렸다.
김 씨는 인부를 한 번 더 다독이고 다급하게 강패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서 맛있는 거 파는지 혹시 압니까?”
김 씨는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허허, 무뚝뚝하기만 할 줄 알았더니……. 제법 정이 있구만.”
강패는 더 말하지 않고, 그저 발을 옮길 따름이었다.
“이것도 피자 못지않네. 피자보다 훨씬 싼데 먹을 것도 다양하고 말이야.”
강패는 혼잣말을 하며 새로운 햄버거를 물었다.
피자 대여섯 판을 앉은 자리에서 해치우는 강패였다.
햄버거 세트 한 개로는 당연히 배가 찰 리 없었고, 이번에도 햄버거 열 세트를 먹어치웠다.
그러고도 모자라 세트 다섯 개를 더 포장해 왔다.
김 씨는 강패가 먹는 것만 봐도 속이 느글거리는지 먼저 지하보도로 들어가 버렸다.
“좋네. 이 세상이 내 식탁이구만.”
단순한 건지, 아니면 심하게 긍정적인 건지.
좀 전에 그토록 무서웠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어느새 강패는 처음 대한민국에 도착했을 때와 같은 사람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강패가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햄버거 집을 찾아 들어갈 정도였다.
“응?”
저녁 풍경을 구경거리 삼아 햄버거를 먹는데 뭔가 익숙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저건…….”
익숙한 모습이었다.
“또 보네?”
하얀 하이힐을 신은 죽이는 각선미의 여자.
그리고…….
“이 500원의 주인.”
강패는 500원을 꺼내 가로등 불빛에 비쳐 보다가 다시 주머니 속에 넣고서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대체 뭐하는 여자지?”
벌써 세 번째였다.
이 근처에서 묘하게도 강패의 눈에 밟히는 여자였다.
그녀는 이번에도 어딘가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강패는 이내 흥미를 끄고 새로운 햄버거를 뜯었다.
*
*
*
저벅저벅.
다음 날, 강패는 건설현장에 도착하자마자 감독관이 있는 사무실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 답답한 친구. 자네가 가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네! 잘못하면 자네도 쫓겨날 거라고!”
김 씨는 더욱더 안절부절못하며 강패를 뜯어말렸다.
“어제 그 친구를 도와주는 것은 나도 찬성이네.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니야. 조금 더 나은 방법으로…….”
“오늘 이 근처에서 모임 같은 게 있소?”
김 씨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강패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김 씨는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하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런 건설현장에서 무슨 모임 같은 걸 한다고…….”
“아니면 됐소.”
건설현장의 한구석에 사람들이 점점 모여드는 게 감각에 걸렸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은 감독관 놈을 족치는 게 우선이었다.
돈을 못 받을지도 모른다는 일 따윈 상관없었다.
강패에게 돈이란 목적을 위한 수단이지, 의무를 위한 필요는 아니었다.
감독관을 족치려는 이유도 돈 때문이 아니다.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는 사실과 그로 인해 누군가 피해를 보았다는 점 때문이다.
딱히 정의를 내세울 생각은 아니었지만, 자기 때문에 죄 없는 사람이 피해를 입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봐! 이보게!”
김 씨가 계속 뜯어말렸지만, 강패를 막지는 못했다.
그때 김 씨의 어깨를 잡는 손길이 있었다.
“형님! 이쪽으로 어서 오십시오!”
놀란 김 씨가 쳐다보자 직업소개소에서 김 씨를 형님이라 불렀던 조장이 보였다.
“지금 바쁘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따 얘기하세.”
하지만 상황이 급박한 듯 직업소개소의 조장은 자기 말만 이어 붙였다.
“심상치가 않습니다, 형님. 기어이 조선 그룹에서 건설업체에 돈을 주지 않은 모양이에요. 그래서 협상이 오가는 중이라는데 파업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파, 파업……?”
김 씨가 화들짝 놀랐다.
안 그래도 처음 인력사무소를 찾았을 때, 조장을 통해 노조 파업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파업에 들어갈 줄이야.
“그럼 일용직도 돈이 전혀 안 나오는 거야?”
“이미 몇몇은 나중에 준다고 한 모양이라, 지금 현장에 있는 인부들이 전부 파업에 들어갈 것 같아요.”
“대체 얼마나 밀렸길래…….”
“제가 받은 것도 어느 정도 안면이 있어 챙겨 줬던 겁니다. 다른 사무실은 아마 삼사 일 정도 못 받았을 거예요. 어떤 데는 나중에 한꺼번에 지불해 주겠다고까지 한 것 같은데…….”
노동자들은 돈을 나중에 받는다고 하더라도 일단 막노동판에 나오는 게 훨씬 나았다. 그나마도 안 하면 일자리도 못 찾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을 나오면 적어도 식사나마 사측에서 제공해 주었으니, 그냥 집에서 놀고먹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하아…….”
“오늘은 저한테도 임금이 없답니다, 형님. 저도 그래서 파업에 동참할 겁니다.”
“파, 파업? 그, 그러지 말고 다시 생각해 보게. 상대는 조선 그룹이지 않나!”
김 씨가 기겁한 얼굴로 말했다.
조선 그룹.
건설을 주력으로 하며 대한민국 재계 서열 5위에 이름을 올린 거대 기업.
대기업 계열에 접어든 십 년 전부터는 문어발식으로 여러 분야에 확장해 자리를 잡았다.
회장인 조모강은 중소 규모로 시작했던 조선 건설사를 불과 수십 년 만에 거대 기업으로 일궈 낸, CEO계의 신화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조선 그룹 안에서는 그의 말이라면 껌벅 죽는 사람이 파다할 정도로 절대적인 권력를 자랑했다.
하지만 조선 그룹은 피와 땀으로 얼룩진 검은 돈을 거머쥔 지저분한 괴물이었다.
그들에 맞서 파업을 한다니.
“진흙탕 싸움일 테지만 어쩌겠습니까. 저희들이 돈을 받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는걸요.”
조장급이라고 많은 돈을 받는 건 아니었다.
그저 경력이 좀 됐다고 허울 좋은 이름만 갖다 붙인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법적으로 돈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그룹을 상대로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또 언제 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놈들이 법망을 교묘히 피해 가며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덮어씌울 건 불을 보듯 뻔했다.
조장의 씁쓸한 얼굴을 보면서 김 씨는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 그럼…… 그 조루 놈은…….”
“지금 아마 난리가 났을 겁니다. 이미 조선 그룹에서 보낸 어깨들이 사무실을 점령했습니다.”
“어깨들도?”
아마 파업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도 조선 그룹이 점거했기 때문일 터다.
조직 폭력배들까지 동원됐다니, 조선 그룹에서 발 빠른 수습을 위해 힘을 기울이는 모양이었다.
“다치시기 전에 어서 돌아가시지 않구요. 어쩌다 형님께서 이런 신세가 되셨는지, 참…….”
조장이 김 씨를 형님이라고 친근하게 부르면서 안타깝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김 씨가 자조적으로 미소를 지었다.
“사람 일이란 게 다 그렇지 뭐……. 근데 나도 사람 하나를 기다려야 하네.”
“사람이요? 아, 그 힘 잘 쓴다는 그 청년? 정말 엄청나더군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힘을 쓸 수 있는지…….”
김 씨가 말하는 사람이 강패라는 것을 알아챈 조장이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이 바닥에서 십 년을 넘게 일했지만 강패 같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대체 그런 젊은이가 어쩌다 이런 데서 일을 하게 된 겁니까? 뭐 아시는 것 있습니까?”
조장이 궁금한 듯 김 씨에게 물었다.
“글쎄. 나도 지금은 지켜보고 있네만……. 확실히 특별한 청년인 것 같기는 해.”
김 씨가 걱정스런 기색으로 강패가 사라진 곳을 쳐다보았다.
“어깨들이라. 다치진 않겠지?”
그때 한쪽에서 크게 외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조선 그룹은 임금을 지불하라!”
“지불하라! 지불하라!”
“이크! 형님. 벌써 시작하려나 봅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조장이 김 씨의 팔을 끌고 고함 소리가 터져 나오는 곳으로 데려갔다.
뒤쪽에서 노동자들의 외침이 들려왔지만, 강패는 신경 쓰지 않고 조루의 사무실로 다가갔다.
콰당탕!
그런데 채 깽판을 치기도 전에 안쪽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지?”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나는 소란에 강패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것들은 또 뭐야?”
평소 같으면 컨테이너 건물에 조장급 인사들이 나다녀야 하는데, 오늘은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까만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 둘이 문 앞을 가로막고 서 있던 것이다.
“내가 올 줄 미리 알고 있었나?”
덩치 때문인지, 아니면 흉악한 인상 때문인지 위협스런 느낌을 팍팍 풍겨 대는 덩치들을 보며 강패가 중얼거렸다.
“넌 뭐야?”
“저리 가라. 지금은 못 들어간다.”
강패가 건물 쪽으로 다가오자 그들이 험악한 인상을 구기고 말했다.
목소리 가득 담긴 위협에 강패가 그들을 스윽 훑어보았다.
“덩어리들?”
하나 같이 상태가 평범해 보이지 않았지만, 강패는 서슴없이 컨테이너로 향했다.
“야! 너 귀 먹었어?”
강패가 계속 다가오자, 그중 하나가 으르렁대듯이 말했다.
“나? 아니, 멀쩡한데?”
덩치는 그들보다 작았지만 키는 강패가 더 컸다.
그들의 코앞까지 태연히 다가간 강패가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소리친 덩치가 강패 앞으로 나섰다.
툭, 툭.
“이 새끼가 죽고 싶어 환장했나. 미쳤으면 곱게 미칠 것이지 왜 여기로 기어와. 어?”
후줄근한 와이셔츠와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쓴 복장, 추레한 몰골 때문에 강패는 그저 그런 인부들로 보였다.
덩치는 강패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위협했다.
“죽고 싶어? 미쳐? 내가?”
강패는 마치 어딜 만지냐는 양 조폭이 건드린 자신의 어깨를 툭툭 털었다.
“크크큭! 이 미친놈 좀 봐라.”
“진짜 뒤지고 싶어 환장을 했나, 새끼가!”
그 모습을 본 조폭들이 서로를 쳐다보다니 손가락을 빙빙 돌리면서 킬킬거렸다.
그러자 강패도 크게 웃었다.
“하하…… 크하하하하하!”
우르릉!
순간 천둥이 터진 것처럼 우렛소리가 터져 나왔다.
심지어 한쪽에 쌓인 건축 자재들이 떨릴 정도였다.
하지만 조폭들은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뭐, 뭐야?”
“이 새낀 또 왜 웃어?”
갑자기 천둥소리가 터지고, 강패가 웃어 대자 조폭들이 당황했다.
“재밌어. 아주 재밌는 농담이었어. 덩어리들.”
“재, 재밌어?”
“덩어리? 이 새끼 정말 미친 거 아닐까?”
강패가 정말 마음껏 웃었다는 듯, 눈가를 손가락으로 훔치면서 말했다.
조폭들은 점점 더 이상한 눈으로 강패를 쳐다봤다.
“야, 그냥 빨리 쫓아내. 형님 오시기 전에. 안 그래도 조루 새끼 때문에 분위기도 안 좋은데.”
뚜둑.
한 조폭이 관절을 부딪치며 앞으로 나섰다.
“미친놈인 것 같아서 험하게 다루면 좀 찜찜하지만……그래도 미치려면 곱게 미쳐야지. 안 그래?”
가끔 이렇게 정신없는 놈들이 어딜 가나 한 놈씩은 있었다.
이놈도 그놈들처럼 허세나 부리는 놈이리라 생각한 조폭들이었다.
“어떻게 너희처럼 답 없는 놈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는 게 조금도 없을까?”
“뭐라 중얼거리냐, 이 새끼야!”
휙!
원래 일반인한테는 손을 안 쓰는 게 조폭이었지만, 현장을 접수하러 왔기 때문에 지금은 괜찮았다.
조폭은 강패가 주먹 한 방에 바닥을 나뒹굴 거라 확신했다.
뻑!
하지만 그런 자신감과 달리, 오히려 조폭의 주먹이 튕겨 나왔다.
강패가 날아오는 조폭의 주먹을 맞받아친 것이었다.
“으윽!”
조폭은 마치 콘크리트 벽을 때린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부러진 모양이었다.
그가 물러나자 다른 조폭이 나섰다.
“이 새끼가! 한 수가 있는 놈이었구나!”
그냥 미친놈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한가락하는 미친놈이었다.
날아오는 주먹을 맞받아치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 위력 역시 가볍지 않음을 알아챈 것이다.
하지만 조폭은 자신들이 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제깟 놈이 한가락하는 놈이어 봤자 자신들은 두 명이었고, 현역에서 활동하는 조폭들이었으며 상대는 한 명이었다.
“저 새끼 팔 부러 뜨려 버려! 큭…….”
먼저 공격해 놓고 꼴사납게 자신의 주먹이 부러진 조폭이 거칠게 소리쳤다.
“어이, 그런 솜 주먹으로 일 해 먹겠어? 적어도 주먹이라면…….”
강패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 듯싶더니 갑자기 조폭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뭐, 뭐야!”
“어디 갔어?”
강패가 허깨비처럼 사라지자 조폭들이 크게 당황했다.
“여기다.”
타닥!
두 조폭이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부러질 듯이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강패가 허공에서 뚝 떨어졌다.
“헉!”
“허거걱!”
“주먹이란 이런 거다. 애송이들.”
쾅!
주먹에서 날 수 없는 소리와 함께, 조폭이 컨테이너 사무실 문짝으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