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끼익!
빠아앙!
“야! 너 눈깔을 어디에 달고 다니는 거야! 미쳤어!”
급정거를 한 자동차의 타이어는 잿빛 도로 위에 긴 검은색 줄을 남겨 놓았다.
차에 타고 있던 남자는 얼굴에 벌게진 채 클락션을 누르는 것으로도 모자라 분을 이기지 못하고 머리를 창문 밖으로 빼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뭐야 이건?”
틀림없이 횡단보도였고 보행자 신호가 들어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건너는 것을 보고 함께 건넜던 훤칠한 인상의 청년은, 자기의 신호위반으로 보행자를 칠 뻔해 놓고도 뻔뻔하게 자신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운전자를 보면서 거슬린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차가 오면 비켜야지 미쳤다고 보고 있어? 어? 어! 너 죽고 싶어 환장했어!!”
고급 외제차임을 나타내는 엠블렘이 우뚝 서 있는 것이 몹시도 자랑스러운지, 열린 창문을 너머로 욕을 해 대는 남자는 차에 부딪칠 뻔한 청년과 얼마 나이차가 없어 보였다.
갑작스런 소란에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며 지나갔다.
“저 새끼가 죽을라고…….”
딱 봐도 ‘나 돈 좀 있어요’하는 인상의 청년이 얼굴이 시뻘개질 정도로 소리 지르는 것을 보면 대부분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같이 소리를 지르거나, 돈이 많아 보이는 상대이기 때문에 똥 밟았다고 생각하며 그냥 무시하거나.
아무래도 이 청년은 전자인 듯싶었다.
훤칠한 청년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이제 파란불로 바뀐 도로 한복판에 서서는 빵빵 대는 자동차를 쳐다보다가 자신에게 욕을 해 대는 새파랗게 어린놈을 보고서는 울컥해서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뭐 임마! 너 죽고 싶어! 어!”
제 딴에는 위협적으로 보이겠다고 행동하는 듯했지만 청년은 그런 위협적인 분위기와 달리 키만 멀대처럼 컸다.
운전자는 선글라스는 벗을 생각도 하지 않고 조금도 겁 먹지 않은 채 계속해서 소리를 질러댔다.
주변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여전히 힐끔힐끔 보면서 지나갔지만 함부로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거만하게 팔을 한쪽 창에 걸친 남자는 더욱더 으름장을 놓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
저벅. 저벅.
이윽고 청년이 다가오자 운전자는 당황하고 말았다.
설마 때리겠냐는 표정을 지었지만 못내 불안해지는 마음을 감출 수는 없는 운전자였다.
“너, 죽고 싶어?”
“으음…….”
막상 청년이 다가오니 운전자는 주눅이 들었다.
키가 크다는 것은 알았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더욱더 커 보였다.
게다가 으르렁대면서 말하는 모습이 제법 위협적이었다.
남자는 그래도 자존심이 있는지 금방 꼬리를 내리지는 않고 침음성을 흘렸다.
자기에겐 모름지기 대한민국의 절대권력 돈이 있지 않은가.
“이 새끼가…….”
턱.
청년이 운전자의 열린 창문 위에 위협적으로 손을 걸쳤다.
“뭐, 뭐야. 손 안 치워? 창문 올린다! 올려!”
틱! 틱틱!
한데 자동차의 창 조절 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꿈적도 하지 않았다.
“뭐, 뭐야?”
“오늘은 기념할 만한 날이니깐 그냥 넘어가는데…….”
스윽.
지이이잉.
고장 났나 하고 운전자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청년이 나지막하게 경고하며 손에 힘을 풀자 청년의 손에 막혀 있던 창문이 다시 올라왔다.
그 모습을 본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뻐끔거렸다.
그렇다면 힘으로 창문을 눌렀다는 소리가 아닌가.
“한 번만 더 그딴 식으로 입 놀려라. 어?”
꾸욱.
지이…… 지이…… 지잉…….
청년이 다시 손에 힘을 주자 반쯤 올라왔던 창문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곧 자동차의 창틀이 우직거리는 소리를 냈다.
선글라스를 낀 남자는 두 눈을 꿈벅거리고 입을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가라.”
툭툭.
“히, 히익!”
부우웅!
탁, 탁.
“이곳이 서울인가.”
청년은 가볍게 손바닥을 털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감회로 젖은 눈이 주변을 쓸었다.
서울의 날씨는 너무나도 좋았다.
새파란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어 푸르고 투명했다.
아직은 겨울이라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길가에 놓인 가로수는 앙상한 가지들을 서로 부딪치며 벌벌 떨었다.
청년, 강패는 상쾌한 표정으로 길거리를 돌아봤다.
“드디어…… 드디어 경성, 아니 이곳이 서울이란 말인가? 조선이 아닌 대한민국의.”
곰처럼 떡 벌어진 어깨에 표범처럼 늘씬한 허리, 그리고 남들보다 기다란 팔다리를 에워싼 고급스런 정장을 차려입은 외모.
그는 말할 때마다 입김이 불어 나오는 것에도 아랑곳없이 감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비교적 한가해야 할 평일 낮 시간.
2010년의 새해가 밝아 온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어서인지 거리는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히야…… 코쟁이들 나라랑 별 차이가 없고만?”
강패는 시골에서 갓 상경한 촌놈처럼 주위를 휘휘 둘러보며 중얼거리길 계속했다.
“기껏 피땀 흘리며 싸워 놨더니 남북으로 갈라져 있다길래 울화통이 터질 뻔했는데……. 이 정도면 그때보다 훨씬 더 낫질 않나?”
마치 한반도가 북한과 남한으로 나뉘었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야 안 것처럼 말하는 강패였다.
강패가 종로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마천루들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이곳에서 살아가야 되는 건가…….”
한겨울의 칼날 같은 추위에 사람들은 몸을 웅크리고, 옷깃을 세웠다.
하지만 강패는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듯, 어깨와 등을 꼿꼿이 펴고 있었다.
“65년이라……. 실감이 안 나는데…….”
강패는 고개를 높이 빼고 사면에 늘어선 높다란 빌딩들을 두리번거렸다.
2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그의 말을 누군가 들었다면 미친놈 취급할 테지만, 강패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하긴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이 준수한 청년이, 실은 1900년대 초반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그래도…….”
심호흡을 하며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힌 강패가 다시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슬그머니 옆을 지나다니는 여자들의 늘씬한 다리를 바라보았다.
소위 말하는 ‘하의실종’ 패션을 처음 본 강패의 두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저…… 저게 대체…….”
하얀 허벅지가 거의 다 드러날 정도로…… 입은 건지, 안 입은 건지 구분할 수 없는 하의를 입고 돌아다니는 늘씬한 여자들.
그런 여자들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거리 도처에 깔려 있었으니 강패에게는 신천지나 다름없었다.
“커흠! 여기도 제법 나쁘지 않은걸.”
*
*
*
“하아…….”
서울 이곳저곳을 거닐던 사이, 어느새 점심때가 되었다.
강패는 지친 얼굴로 빌딩 벽에 등을 기대고 털썩 주저앉았다.
그 바람에 고급 정장에 흙먼지가 묻어 뿌옇게 변했고, 주위를 지나다니던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강패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자기 옷도 아니었고, 강패에게 있어 ‘옷’이란 몸을 가려 주는 최소한의 도구일 뿐이지, 멋을 위한 따위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대한독립군 시절의 열악한 상황에서는 그랬었다.
“음, 평화롭군.”
65년 전에도 그랬고, 그때보다도 훨씬 더 강해진 강패가 몇 시간을 걸어 다녔다고 해서 지칠 리는 전혀 없었다.
대한독립군 시절에는 일분일초를, 칼날 위를 걷는 듯한 긴장감 속에서 살아왔다.
항상 살아남기 위해, 혹은 다른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강패는 무언가에 몰두하거나 집중하고 있었다.
하나 지금은 달랐다.
지금은 대한독립군이 필요한 시절이 아니었고, 서울은 세계에서 가장 치안이 좋은 도시 중 하나였다.
서울의 변화한 모습에 경성의 모습을 반추하며 돌아다니는 것도 몇 시간이다.
그도 어느 정도 지나자 성격상 좀이 쑤시기 시작하더니 벌써부터 따분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의 강패는 이 땅에서 땡전 한 푼은 물론이고, 아는 사람 하나 없다.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아리밖에 없는 강패는 무일푼치고 대단히 여유롭고 태평스러워 보였지만, 실은 방법이 없다고 말하는 게 옳았다.
“신분증도 없고, 집도 절도 없으니. 당장 돈이 문제군.”
2010년의 대한민국의 생활이 어떤 것인지 강패는 완벽하게 알지 못했다.
그가 오늘날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라스베가스에서 우연찮게 만난 미영에게서 짤막하게 들었던 게 전부였다.
그래도 강패는 태평하게 생각했다.
사람 사는 곳이란 다 일맥상통하는 법이었다.
그런 점에 있어 강패는 65년 전의 경성이나 65년 후의 서울이나 사는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돈을 버는 방법이라…….”
강패는 우두커니 땅바닥에 앉은 채 생각에 골몰했다.
유동인구가 제일 많은 종로 한복판에서, 그것도 점심시간이 되어 우르르 쏟아져 나온 회사원들한테 구경거리가 되는지도 모른 채였다.
“경성이나 서울이나 돈 없이 살아가기는 힘든 곳이겠지?”
강패는 대한독립군이라는 직함에도 불구하고 열악하기만 했던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일제 치하 아래에 있던 경성에서도, 심지어 일본이 아닌 조선에도 돈 없이 살아가기란 대단히 힘들었다.
이 사회는, 오래전이나 지금이나 돈 없으면 살아가기 힘들었다.
“일단은 뭘 할지보다 돈을 버는 게 우선인가.”
먼 옛날 사람이라고, 사람이 아닌 건 아니다.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필요한 모든 것들 또한 강패에게 모두 필요한 법이었다.
땡그랑.
턱을 괴고 곰곰이 자신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정하고 있는데, 문득 구두 앞에 떨어진 동전에 강패는 상념에서 퍼뜩 깨어날 수 있었다.
그러자 잔털 하나 없는 매끈한 여자 다리와 그 여자가 신고 있는 하얀 하이힐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자신 앞에 떨어진 동전이었다.
“…….”
‘500’이라는 숫자가 적힌 동전은 강패의 발 앞에 고이 누워 있었다.
강패는 순간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인식하지 못하고 멍한 눈으로 한참 동안 그 동전을 바라보았다.
“…….”
여전히 강패 주위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개중엔 호기심 어린 눈빛, 또는 안쓰럽다는 눈빛 등도 있었다.
스윽.
강패는 손을 뻗어 쥔 500원짜리를 눈앞에 가져다 대고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이것이…… 이곳의 돈인가?”
엄지손톱보다 약간 큰 크기에, 반짝반짝 은빛으로 빛나는 동전에서 쇠붙이 냄새가 났다.
한쪽 면엔 500이란 숫자가, 또 다른 한쪽 면엔 날개를 활짝 편 학이 있었다.
잠시 동전을 신기하게 쳐다보던 강패는 순간적으로 눈을 부릅떴다.
그러고는 뒤늦게 깨달았다.
“뭐야. 내가 거지처럼 보였다는 거야? 그래서 이런 적선을? 이런 씨…….”
벌떡!
수치심과 분노가 뒤섞인 얼굴로 강패가 벌떡 일어났다.
“감히 날 거지로 알아!”
강패가 돈을 던지고 간 사람을 찾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샅샅이 뒤져 보았다.
그가 아는 것이라고는 여자란 것과 하얀색 하이힐을 신고 있다는 것, 그리고…….
“끝내주는 각선미를 가진 여자!”
두 눈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강패가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동전을 던진, ‘적선’이라는 수치를 안겨 준 장본인을 찾기 시작했다.
“놓칠까 보냐!”
자기 생각에만 빠져 있던 강패는 주변에 유난히 여자들의 비중이 높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당연히 그 여자들이 하나씩 들고 있던 핸드폰의 사진기에 자신이 찍혔다는 사실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가 사라지자 여자들은 아쉬움의 탄성을 뱉었지만, 차마 쫓아가지 못하고 핸드폰을 자신들의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그날 인터넷에는 한 SNS에서 시작된 한 장의 사진이 불길처럼 퍼져 나갔다.
고급 정장을 입은 강패가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500원짜리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진이었다.
일일 검색어 순위 10위에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한 그 사진의 제목은 이러했다.
종로 꽃거지.
그렇게 강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서울에 진한 발자취 하나를 남겨 두었다.
*
*
*
“후아…… 이, 이건 정말 아니야.”
자신에게 감히 동전을 투척하고 간 하얀 하이힐을 신은 죽이는 각선미의 여자를 찾으려 했지만, 머지않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떡하면 사람이 이렇게 많지?”
조선과 비교하면 다른 세상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바뀌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토록 사람이 많을 줄은 상상도 못한 강패였다.
여기도 사람, 저기도 사람.
앞에도 사람, 뒤에도 사람.
“사람 지옥이 따로 없군.”
이렇게도 사람들이 많으면 서로 부딪칠 만도 하건만, 복잡함 속에서도 사람들은 서로 잘 피해 다녔다.
강패가 보기엔 신기할 정도였다.
“내가…… 사람을 놓치다니.”
강패는 자신이 목표한 사람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에도 꽤 충격을 받았다.
물론 전문적인 추적술을 배운 것도 아니고, 그런 능력을 지니지도 않았지만, 적어도 일반인 수준의 사람을 놓칠 정도로 무력하지는 않았다.
더욱이 대한독립군 시절처럼 누군가의 눈치를 보거나, 방해를 받은 것도 아닌 상황에서 말이다.
“에이……!”
옛날이었다면 홧김에 돌멩이라도 걷어찼을 테지만, 대한제국이 아닌 서울의 포장도로는, 말 그대로 ‘깨끗’했다.
그래서 강패는 애꿎은 바닥만 걷어찰 뿐이었다.
“어째 사람이 아까보다 더 많아진 것 같은데?”
아까도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가득했다.
그런데 조금 날이 어둑해지기 시작하자, 피부로 느껴질 만큼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거리의 상점들에도 하나둘씩 불빛이 들어왔다.
강패는 방금까지의 짜증도 잊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킁, 킁킁.
“오…… 맛있는 냄새…….”
그리고 어디선가 식욕을 마구 자극하는 냄새가 났다.
강패는 그제야 하루 종일 먹은 게 없음을 깨달았다.
그러자 시장기가 불같이 일었다.
강패는 본능적으로 냄새를 쫓아 움직였다.
멈칫.
그러다가 순간 우뚝 멈춰 섰다.
“나 돈 없지?”
순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에서 동전 하나가 굴러다녔다. 죽이는 각선미의 여자가 적선한 거금 500원이었다.
“아, 맞다!”
500원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강패는 잠시 유심히 쳐다보더니, 동전을 소중히 자신의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었다.
500원.
그러고 보니 독립군 시절 땐 상상도 못할 거금이 아니던가!
작금의 화폐도 처음 본 강패가, 바뀐 화폐 개념 또한 알 리 만무했다.
‘500환이라…… 적선치곤 통이 크군.’
새삼 죽이는 각선미를 지닌 새하얀 하이힐의 여자가 무척 통이 큰 여자로 생각됐다.
꼬르륵.
뱃속에서 다시 배고프다는 아우성 소리가 들려오자 강패는 매력적인 미소를 띠고서는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성격상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은 귀찮았다.
“어서 오십시오, 몇 분이서 오셨습니까?”
강패는 자신이 맡을 수 있는 수백 가지의 음식 냄새들 중에 가장 끌리는 냄새를 쫓아 무작정 걸었다.
그리고 귀신같이 냄새를 쫓아 다다른 이곳.
“…….”
요상한 꼬부랑글자가 적힌 앞치마를 두르고 모자를 쓴 여자 점원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강패를 맞았다.
순간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들은 강패는 아무 말도 못하고 점원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왜 몇 명이서 왔는지 묻는 거지? 여기가 음식점이 아니라 주점인가?’
그가 살던 시절엔 그저 들어가서 앉으면 머릿수대로 음식이 나왔다. 오늘날의 식당 문화를 알지 못하는 강패로선 의아한 게 당연했다.
강패가 그냥 멀뚱히 쳐다만 보자 점원이 잠시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프로정신을 발휘하며 다시 영업용 미소를 띠운 채 말했다.
“혹시 혼자 오셨나요?”
주위에 다른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혼자였다.
당연한 걸 묻는 점원을 이상하게 쳐다보던 강패는 대답 대신 점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점원이 웃는 얼굴로 자리를 안내했다.
강패는 생글생글 웃는 점원을 따라 들어가 보니 다른 자리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보고 자신이 잘못 찾아오지 않았음을 이해했다.
‘흠, 이상한 걸 먹는군. 빈대떡 같기도 한데…… 늘어나는 저건 뭐지?’
강패는 자리를 안내하는 점원의 뒤를 따르며 난생처음 보는 음식에 흥미를 느꼈다.
넓은 원형 판 위에 빈대떡 같기도 하고, 빵 같기도 한 쭉쭉 늘어나는 흰색 떡(?)이 올라와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조각조각으로 잘라, 손으로 집어 먹거나 썰어 먹었다.
‘한국 음식은 아닌 것 같군.’
그러고 보니 서양인들이 저런 식으로 먹는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도 같았다.
“메뉴판은 여기 있습니다. 주문하실 때 불러 주세요.”
자리를 안내한 점원이 강패의 얼굴을 힐끔거리며 예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강패의 신경은 메뉴판이란 것에만 온통 쏠려 있었다.
“피자…… 피자라. 이 음식 이름이 피자인가 보군.”
다행스럽게도 메뉴판에는 사진과 함께 음식 이름이 한글로 적혀 있었다.
“이름도 요상하네. 콤비…… 네이션…… 포…… 테이토?”
강패는 한글로 적힌 영어 발음을 서툴게 읽으면서 메뉴판을 훑었다.
“오오…….”
강패는 자신 앞에 놓인 음식을 보고 탄성을 뱉었다.
성인 여자가 두 팔로 원을 만들었을 때 나올 만한 너비의 빵, 그 안으로는 하얀색의 쭈욱 늘어나는 떡 비슷한 것과 갖가지 색의 야채, 그리고 고기가 있었다.
“이렇게…… 이걸 가지고 잘라서 먹었지?”
주문을 마치고 기다리는 동안 강패는 주변 사람들이 먹는 모습을 미리 관찰해 두었다.
숟가락과 젓가락이 아니라 칼과 뾰죡한 막대기로 썰어먹거나, 손으로 집어먹고, 오이 쪼가리도 먹는 것을 보는 동안 맛있는 냄새가 계속 풍겨져 왔기 때문에 나무판이라도 씹어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힘들면 그냥 손으로 먹지 뭐.’
깊이 생각하기 귀찮았던 강패는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서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썰어먹으면 되는 건가?”
덜어서 먹는 것까지만 봤지 어떤 식으로 자르는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 강패다.
잠시 고민 끝에 강패는 나이프를 들이댔다.
“호오!”
별로 어렵지 않게 피자 한 가운데를 정사각형으로 도려낸 강패가 눈을 반짝였다.
피자가 쭈욱 늘어나며 고소한 향이 번져 왔다.
접시에 옮기지도 않고, 일단 무작정 나이프에 올린 피자를 들어 입으로 우겨넣은 강패의 입 주변에 하얀 치즈가 늘어졌다.
“오오…… 오……!”
컬쳐 쇼크였다.
일초를 다투는 전쟁터나 늘 촉박한 상황에서 끼니를 때워야 했기에, 주로 건빵이나 육포 등의 간편한 식품을 먹던 강패였다.
말라서 굳은 밥과 식은 국도 진수성찬이라며 맛있다고 혀를 내둘렀었으니, 따듯한 피자 한 조각은 거의 황홀경에 가까웠다.
“여기…… 마음에 드는 게 하나 더 생겼다!”
미식가는커녕 대식가의 대가인 강패는 심지어 전율마저 느끼고 있었다.
“여기 피자…… 헉!”
강패가 주문한 피자‘들’을 가져오던 여자 점원이 경악했다.
불과 십여 분 전에 피자 한 판을 내갔는데, 두 번째 피자를 가지고 가는 사이 피자판이 깔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이쪽으로!”
한 판을 금세 해치운 강패가 포크와 나이프를 든 채 눈을 빛냈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점원이 두 번째 피자를 내려놓았다.
“마, 맛있게 드세요.”
강패는 두 번째 피자 역시도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었다.
여점원은 피자가 사라지는 속도 말고도, 강패가 정중앙부터 시작하여 피자 조각을 나누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경악했다.
*
*
*
강패는 자신이 가진 돈이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사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대한독립군에 들어가기 전 끝발 날리며 잘 살고 있을 때나, 대한독립군 시절에도 강패는 금전 감각에 대해 그닥 연연하지 않았다.
아니, 연연하지 않는다기보다는 무감각한 게 맞았다.
어렸을 적에는 돈을 만지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가난했고, 커서는 조직이 있었으니 굳이 돈이 필요 없었다.
당시의 돈이란 벌면 버는 대로 썼고, 받으면 받는 대로 나갔다.
굳이 돈을 쟁여두고 있어봤자 언제 저승으로 갈지 모르니 당연한 일이었다. 돈은 갈 때 가져갈 수도 있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그래서 500환, 아니 500원의 가치 또한 크게 생각지 않았던 게 불찰이었다.
“뭐야! 먹어 놓고 돈이 없다면 다야?”
“빈대떡이 그렇게 비싸다니! 그게 말이 돼?”
“고작 500원밖에 없으면서 무슨 큰소리야, 큰소리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인심은 강패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각박했다.
“경찰 부를 거야. 당신 여기 가만히 있어!”
강패는 무려 여섯 판에 달하는 피자를 해치웠다.
문제는 음식을 다 먹고 난 뒤에 일어났다.
강패는 피자 가격을 듣고 놀라긴 했지만, 워낙 돈에 대해 무감각했던 터라 태연하게 외상을 해 달라고 했다.
피잣집 주인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삿대질을 하며 미친 소처럼 들이받을 듯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500환, 아니 500원이라는 돈의 가치가 이 정도밖에 안 됐다니…….’
강패로서는 나름대로 억울한 상황이었다.
500환이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500환이라는 큰돈을 그렇게 던지듯 적선하고 갈 리가 없지 않은가.
단순하게 500환의 가치라고 생각했던 게 불찰이었지만, 강패는 너무도 각박한 인심에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는 친일파가 아닌 이상, 같이 고통 받는 동족끼리 콩 한쪽도 나눠 먹는 게 당연했다.
게다가 조국의 해방을 위해 싸우던 대한독립군 시절엔 강패가 굳이 돈을 낸다 말해도 상대방이 받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당시엔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로 고통을 나누고 돌보며 보듬어 주었었다.
한데 겨우 한 끼니를 돈 없이 먹었다고 저렇듯 죽일 기세로 소리치다니…….
‘10만원. 내가 가진 돈은 오, 백원. 환이 아니라. 오백 원. 젠장.’
배가 고프기도 했고 처음 먹어 보는 음식에, 지나치게 금전에 무감각했다는 사실을 강패는 인정했다.
그리고 그때야 바뀐 화폐 개념과 물가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억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깟 외상 한번 하는 게 뭐 그리 큰일이라고, 인정머리 없이 각박하게 외치는 피잣집 사장이 아니꼬웠다.
사실 피잣집 주인 입장에서는 처음 보는 강패에게 외상을 준다는 것이 더욱 이상했지만, 여전히 정신은 반쯤 1940년대의 조선에 머물러 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훤칠하게 생겼는데 저런 사람이 외상을 하나?”
주위에서 강패의 행색을 보고 수군거렸다.
“10만 원 안 내놓을 거면 당장 경찰서에 가자! 너 같은 놈은 콩밥을 먹어야 돼!”
피잣집 주인의 흉흉한 말에 ‘경찰서란 곳에 잡혀 가면 콩밥을 주는구나’라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은 강패는 앞으로 배가 고프면 그곳에 가 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피잣집 주인에게 말했다.
“내가 반드시 갚는다고 하지 않았나! 외상 해 주는 게 그렇게 어렵나? 어?”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어디서 자꾸 반말이야 반말이! 그리고 내가 뭘 믿고 외상을 해 줘!”
적반하장이랍시고, 강패가 반말까지 찍찍해 대자 피잣집 주인은 얼굴까지 시뻘게져서 날뛰었다.
반성의 기색이라도 보였다면 모르지만, 조카뻘 정도밖에 안 돼 보이는 놈이 오히려 자기가 잘났다고 박박 대드는 꼴을 보니 일말의 자비심마저 사라져 버렸다.
“우와. 저거 엄청 비싼 양복 아니야? 근데 왜 돈이 없을까?”
쫑긋.
순간 사람들이 쑥덕이는 소리를 들은 강패가 귀를 세웠다.
‘비싸? 이 옷이?’
자신이 입은 옷이 얼마짜리인지도 당연히 몰랐던 강패였다.
미국에 있을 때도 그냥 알아서 사다 받쳤으니 입었지, 눈을 떴을 때 처음 입고 있던 그 얇은 티 한 장만을 입고 거리를 활보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잠깐! 그럼 물물교환은 어때?”
강패가 전화를 걸려는 피잣집 주인에게 말했다.
“이거. 이걸 주지.”
강패가 얼른 양복 상의를 벗어 주인에게 내밀었다.
“……이걸?”
“나름 비싼 옷이라고 하더군. 이 정도면 내가 먹은 음식 값을 충분히 대신할 수 있지 않나?”
사실 양복상의 하나만 해도 10만 원의 몇 배에 달하는 가격이었다.
하나 그 사실을 모르는 강패는 그것을 덥썩 담보로 내밀었다. 아니, 알더라도 그냥 주고 말았을 강패였다.
피잣집 주인은 얼떨결에 옷을 받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상표를 보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큼큼, 좋아. 어쩔 수 없지. 앞으로 한 번 더 이러면 정말 경찰 불러서 콩밥 먹여 버릴 거야. 알았어?”
내심 좋은 기색을 감추면서 별것 아니라는 듯, 강패의 옷을 뒤로 싹 숨긴 피잣집 주인이 강패에게 엄포를 놓듯 으르렁거렸다.
“아, 그리고 말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강패는 태연한 얼굴로 주인에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피자 두 판만 더 포장해 줘.”
*
*
*
“아. 거참 치사하게. 그 옷이 그렇게 비싸다는데 고작…….”
강패는 포장된 피자를 든 채 거리를 걸었다.
양복 상의를 줘 버리는 바람에 남은 상의라곤 홑겹의 얇은 와이셔츠 한 벌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패는 한겨울의 삭풍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 피자에 대해서만 투덜거릴 뿐이었다.
“이제 잘 곳을 찾아야 할 텐데…….”
맨 처음 깨어났을 때는 말귀도 알아들을 수 없는 코쟁이들 나라였고, 연구소를 나와 우연찮게 한국으로 올 방법을 얻었다.
당연히 연줄도 없고, 인맥도 없는 강패로선 한국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전혀 몰랐다.
“호텔이란 곳을 찾아가야 하나.”
그나마 연구소에서 빠져나왔을 때 라스베가스에서 잠을 잤던 곳이 호텔이란 곳을 기억한 강패는 그런 곳이라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으음…….”
그렇게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둠이 깔렸을 때까지도 강패는 길거리를 거닐다, 어느 지하보도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곳에서 강패는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오가는 지하보도 한가운데 남루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누워 있는 모습이었다.
추울 만도 하건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옷을 두껍게 입거나, 신문지를 이불 삼아, 혹은 종이 박스로 울타리를 치는 식으로 겨울바람을 피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노숙자라…….”
65년 만에 찾은 서울.
이제 조선도 아니었고 경성도 아닌, 대한민국이고 서울인 이곳은……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바뀌지 않은 것이라고는 사람들의 얼굴이나 한국어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그 바뀌지 않은 또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강패는 오랜만에 보는 익숙한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길거리에서 걸식을 하면서 살아갔던 65년 전.
1940년 대의 사람들은 이들보다 훨씬 얇은 옷을 걸치고도 겨울을 났으며, 흙바닥에 누워서 자기도 하고 통금 시간이 되면 순경들에게 쫓겨 다니기도 했었다.
그런 광경은 강패에게 있어 일상의 일부분이자 생활이었다.
강패는 손가락을 튕기며 미소 지었다.
“굳이 잘 장소를 구할 필요가 없겠군.”
강패는 마음 편하게 길바닥 한쪽을 잡고 털푸덕 앉아 버렸다.
그러고는 포장해 온 피자를 열었다.
고소한 피자 냄새가 지하보도에 퍼져 나갔다.
그 기름진 냄새에 주위 노숙자들이 반응을 보였다.
“킁킁.”
부스럭, 부스럭.
강패가 별 생각 없이 피자를 우물거리자 주변 노숙자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쳐다보았다.
“쩝쩝.”
강패는 자신을 향한 노숙자들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왜 쳐다보는지 알지 못해서였다.
그러자 노숙자들이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부렸다.
그렇지만 목울대로 넘어가는 침은 참을 수 없었는지, 침 삼키는 소리는 감추지 못했다.
피식.
강패는 예전 생각이 나자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 피자 박스를 내밀었다.
“와서 드쇼들.”
“흠…… 흠…….”
“큼!”
노숙자들은 경계심 어린 눈초리였다.
개중 몇몇은 엉덩이를 들썩이긴 했지만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싫음 말고.”
그 모습에 강패는 매몰차게도 피자 박스를 다시 끌어당겼다.
노숙자들은 그제야 아쉬운지 한숨을 쉬며 피자 박스를 흘끔거렸다.
“크하하하! 좋다! 이게 얼마만이냐!”
“젊은이, 보기와는 다르게 엄청 털털하구만!”
“자자, 한잔 받아. 이 피자에는 또 소주가 제격이지!”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명동의 한 지하도보에선 노숙자들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연방 끊이질 않았다.
빙 둘러앉은 그들 가운데는 강패가 가져온 피자 두 박스가 있었다.
강패가 노숙자들과 함께 피자를 나누어 먹고 있던 것이다.
“아저씨. 좀 천천히 드쇼. 내가 사 온 거 아닙니까.”
“아니, 이 사람이? 낙장불입 몰라 낙장불입? 크하하!”
강패의 핀잔에 한가득 수염이 난 노숙자는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소주를 들이켰다.
피자 판이 다시 벌어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채 십 분도 필요치 않았다.
어느새 강패는 노숙자들 사이에서 원래 노숙자였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어울렸다.
노숙자들도 처음의 경계 어린 시선과는 다르게 일이 년 동안 같이 지낸 사이처럼 강패를 대했다.
그리고 어디에 숨겨 놨던지 소주병을 하나둘씩 꺼내 들고 온 노숙자들이 주거니 받거니 하더니, 이내 술판이 벌여졌다.
“그나저나 아저씨들은 왜 여기서 자는 거요. 집 없어요? 집?”
그렇게 얼마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노숙자들 중 몇몇이 얼굴이 벌게졌을 정도로 술이 불콰하게 들어가자 강패가 물었다.
그 순간 노숙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꿀 먹은 벙어리처럼 침묵했다.
“뭐, 나야 지붕 없는 데서 자 본 적이 더 많아서 그렇다 쳐도, 왜 좋은 데 놔두고 이 한겨울에 춥게 여기서 자요. 입 돌아가 입.”
다들 사연이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강패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모두들 살아가면서 각자 그들만의 사연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인생이다.
개인의 잣대와 기준으로 타인의 인생을 판단하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었기에 강패는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게 노숙자들을 대했다.
“쳇. 좋기는 개뿔. 그건 돈 있는 사람들이나 맞는 말이지.”
강패의 무신경함이 오히려 편하게 다가간 것일까, 아니면 거슬린 것일까.
한 노숙자가 투덜대듯 입을 열었다.
“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번듯한 가게에 여우같은 마누라, 토끼 같은 자식들이 있었어. 그런데…….”
한 명의 입이 열리기 시작하자 그다음 사람들도 입이 열리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 각각의 사연을 들은 강패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옛날엔 힘이 없어 다른 나라에 휘둘리고,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국의 눈치를 보느라 그 힘을 쓸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바라 왔다.
경성이 아닌 서울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 강패는 이 나라가 어느 정도 자신이 바랐던 그런 나라에 부합되어 간다고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 2010년의 서울은 1940년대의 경성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지금의 사람들은 입을 걱정, 먹을 걱정 없이 잘 사는 것처럼 보였으며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냉정히 바라보면 적의 피와 목숨을 수도 없이 뒤집어쓰면서 공을 들였던 오늘날의 대한제국은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다.
그토록 부숴 버리고 싶던 일제는, 일본이란 이름으로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었다.
강패는 다시 생각했다.
오산이었고, 너무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노숙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도시는, 이 나라는, 이 시대는 겉보기와는 다르게 차가워 보였다.
돈으로 인해 이 노숙자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돈이 없어 가족과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었다.
돈 때문에 자기네 인생을 포기했다.
돈.
‘화폐’라는 단위가 절대적인 권위와 위치를 차지하는 시대.
더 이상 칼과 총, 주먹을 들고 싸우는 일은 없었다.
하나, 돈이란 놈과 일생 내내 고뇌하고, 고통을 감수하며 싸워야만 했다.
이 시대에 있어 ‘돈’이란 무력보다 더욱 무서운 놈이었다.
“후…….”
거나한 술판이 끝나자 노숙자들은 불콰해진 얼굴로 잠자리에 들기 위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홀로 남은 강패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강패는 단순했다. 아니, 단순하다기보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우직하고 고집스럽더라도 직선만을 추구했다.
그래서 가로막는 것은 뛰어넘거나 피하지 않고 부숴 왔다.
자신의 소신을 믿었으며, 두 주먹으로 나라가 바뀔 수 있다 믿었다.
그러나 서울은, 겉으로 화려하기 그지없어 보였던 서울의 실상은 달랐다.
1940년대 조선은 일본의 치하에서 신음했고, 2010년의 대한민국은 돈이라는 종이쪼가리 밑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돈’이란 놈은 강패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세 나라에 의해 주로 돌아가고 있었다.
코쟁이, 뙤놈, 쪽바리들.
“빌어먹을 놈들. 걸리기만 해 봐라. 기껏 노력했더니 나라를 이 꼴로 만들어?”
강패는 소주병을 베개 삼아, 신문지 하나 없이 차가운 땅바닥에 드러누운 채 조용히 중얼거렸다.
“흐아암.”
“허어…… 어떡하면 이런 데서도 잠을 그렇게 잘 자지?”
강패가 기지개를 켜면서 하품을 하자 곁에 있던 노숙자가 혀를 내둘렀다.
“역시 젊음이 최고지!”
어느덧 해가 중천에 떴는지 지하보도 안은 어슴푸레하게 밝았고, 지나다니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간혹 사람들의 이상한 눈길이 이어졌지만, 강패는 여전히 무신경하게 기지개만 펼 따름이었다.
“끙! 역시 누가 뭐라 해도 내 나라가 좋은 거야. 이렇게 개운하게 자기는 오랜만이네.”
그리 큰 지하보도가 아니었기에 모인 노숙자들은 채 열 명이 되지 않았다.
그중 강패의 옆자리에 있던 노숙자가 말했다.
“어제는 어두워서 몰랐는데, 이제 보니 허우대도 멀쩡하고, 옷도 멀끔하니 우리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왜 여기서 잔 거요?”
사 온 피자를 거리낌 없이 내놓고, 자신들과 어색해 하지도 않고 술도 마신 강패였다.
한데 오늘 날이 밝은 곳에서 다시 보니 멀쩡한 행색이었다. 그러다 보니 껄끄러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다른 노숙자들도 강패의 위아래를 보면서 맞장구쳤다.
“이 옷이요?”
강패가 자신이 입은 수트를 슬쩍 가리키면서 말했다.
“뭐, 집도 절도 없으면 댁들이랑 똑같은 거 아니요? 나도 집도 절도 없으니 똑같다고 생각합시다. 후후.”
“…….”
“…….”
그 미소가 비웃는 것처럼 느껴진 것일까.
노숙자 중 몇몇이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 사람들이 왜 이러나! 인상 풀게 풀어. 이 아침부터 그게 무슨 표정들인가! 하하하.”
“아니 김 씨. 저 청년이 정말 우리 같아 보이는가? 어제 이야기할 때는 괜찮은 청년 같은데…… 오늘 보니깐 영 믿을 수가 없구만. 에잉. 우릴 놀리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김 씨라 불린 노숙자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끼어들자 다른 노숙자들의 적개심이 조금은 풀어졌다.
하지만 기분도 나아진 건 아닌지, 강패를 받아 주지는 않았다.
“나 참. 이런 옷 입고 있으면 길거리에서 잠도 못 자나? 옷 보고 노숙자 따져? 집 없고, 절 없고, 발 붙일 데 없으면 그게 노숙자 아닌가?”
“커흠…… 흠…….”
“그, 그건 그렇네.”
김 씨가 웃으면서 말하자 몇몇은 헛기침을 하기도 했고, 몇몇은 얕게나마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했다.
“오호?”
다른 노숙자들을 토닥거리는 김 씨를 쳐다보던 강패가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집도 절도 없었고, 도시의 유랑자나 다름없는 사람들인 만큼 어딘가에 얽매이지도 않았다.
때문에 어떻게 보면 감정 표현 또한 굉장히 솔직했다.
뼛속 깊은 열등의식은 그들이 ‘분노’나 ‘경계심’ 같은 감정을 표현하는 데 더욱더 직설적이게 만들었는데, 김 씨는 그들을 너무나도 쉽게 다독거렸다.
“자자. 다들 밥이나 먹으러 가세들. 늦으면 국물도 없을 게야. 벌써 시간이…… 어이쿠!”
김 씨가 넉살 좋게 웃으며 말하자, 그제야 다른 노숙자들도 배식에 생각이 미쳤다.
우르르.
노숙자들이 떼거리로 사라지자, 김 씨가 강패에게 말했다.
“자네도 아침밥 먹어야지?”
“밥?”
강패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김 씨가 이어서 말했다.
“무료 급식 몰라? 이 친구 진짜 초짜구만. 어쩐지 입은 옷이 깨끗하다 했더니…… 길거리에 나앉은 지 며칠 되지도 않았지? 빨리 따라와!”
혼자 남은 강패가 안쓰러웠는지 김 씨가 강패의 소매를 붙들었다.
‘구휼단 같은 건가…… 뭐, 나쁘지 않겠지.’
굳이 따라갈 이유는 없었지만, 배가 출출하기도 하고 김 씨의 호의도 마음에 든 강패는 그의 뒤를 따랐다.
자원봉사단이 준비한 밥차로 든든하게 아침을 때운 강패는 금방 심심해졌다.
“무언가를 하긴 해야 할 텐데…….”
이곳에서 살아가기로 한 강패는 딱히 목적의식이 없었다.
그래서 도로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할 일 없이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있을 따름이었다.
“돈이 없으면 정말 거지같은 곳이라…….”
강패는 곰곰이 노숙자들과 한 이야기를 곱씹었다.
“돈을 벌어야 하나?”
노숙자들은 돈이 없어 길거리로 나앉게 된, 화려한 서울의 이면이었다.
돈이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돈이 없으면 무엇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천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주인과 신분은 없었으나, 냉정히 말한다면 그들은 현대판 노비였다.
밥을 먹으면서도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게 바로 그 ‘돈’이었다.
“근데 돈을 어떻게 벌어?”
어젠 피자 가게에서 돈이 없다는 이유로 난생처음 그토록 괄시를 당했다.
때문에 강패는 돈의 필요성을 느꼈다.
문제는 돈을 벌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점이다.
아니, 돈을 벌어 본 적이 없다기보다 돈을 벌 필요가 없었다.
열악한 대한독립군 사정에 무슨 돈이란 말인가.
독립군이라는 조직 자체가 먹고살기 위해서 군인이 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바치겠다는 애국심으로 뭉친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때문에 강패는 살아오며 ‘돈’이란 것을 어떻게 벌어야 하는지 전혀 배우지 못했다.
강패에게 돈을 번다는 경제생활은 일반인들의 개념과 많이 달랐다.
“어이. 김 씨.”
“응?”
강패는 조금 떨어진 벤치에 앉은 김 씨를 불렀다.
지금 그에게 있어 최대한의 조력자가 바로 김 씨였다.
“돈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하오?”
“뭐? 돈을 번다고?”
김 씨가 강패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글쎄. 나도 이 꼴이 되고 나서부터는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할지 까먹었구만. 뭐, 가장 쉬운 방법이라면 인력시장에 나가는 거겠지. 우리 같은 사람들은.”
노숙자들은 좋게 말하면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살아가고, 나쁘게 말하면 사회의 패배자였다.
돈을 벌 방법도 많지 않았지만, 돈을 벌려는 특별한 노력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때문에 인력시장을 말하는 김 씨는 시큰둥했다.
“그런데 돈이 없어서 길거리에 나앉았다고 하지 않았나?”
강패가 그런 모습에 의아해 하며 묻자 김 씨가 퉁명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그랬지. 그런데 굳이 그렇게 돈을 안 벌어도 이렇게 살 수 있어. 돈을 벌면 가지고 싶은 게 많아지지. 지금은 저기 파는 떡볶이나 오뎅이 먹고 싶지만, 분명히 돈을 벌면 식당에서 따뜻한 밥을 먹고 싶게 될 거고,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게 되면 그다음에는 레스토랑에 가고 싶을 거야.”
“그래?”
강패는 김 씨의 논리가 특이하다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씁쓸함과 함께 아련한 감정이 김 씨의 눈에서 묻어 나오고 있어서였다.
“그럼 그 인력시장이란 건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거요?”
김 씨가 강패를 빤히 쳐다보았다.
“내 얼굴에 뭐 묻었소? 뭘 그리 쳐다봐.”
“아니, 대체 무슨 일을 하다가 이 지경이 됐는지 궁금해서. 인력시장이 뭘 하는 데인지는 아나? 혹시 집이 재벌이었나?”
강패는 피식 웃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뭐, 그럴 수도 있지. 인력시장은 아침 일찍부터 시작해. 늦게 가면 대기만 하다 그냥 돌아올 수도 있지. 일하려는 사람은 많은데 공사장은 점점 줄어들거든. 어쨌든 그 방법이 아마 제일 쉬운 방법일 걸세.”
노숙자 중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때문에 김 씨는 캐묻지 않고 설명을 해 주었다.
“인력시장이라…….”
내일부터 인력시장에 나가 봐야겠다고 되뇌던 강패가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어라?”
저 멀리 사람들 틈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쩝, 뭐 이제 와서 뭐 해 봐야…….”
인파 사이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하얀 하이힐이 눈에 들어왔지만, 이내 신경을 꺼 버렸다.
“김 씨. 김 씨는 이쪽에 관심 없다고 하지 않았나?”
강패에게 있어 김 씨는 최대한의 정보원이었다.
때문에 강패는 역시 김 씨에 의존해 인력시장에 관한 것을 알아보았다.
한데 김 씨는 인력시장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서 강패는 의아했다.
인력시장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자신을 따라나서는 게 아닌가?
김 씨는 새벽 칼바람에 잔뜩 웅크리면서도 씩 웃어 보였다.
“뭐, 나야 이 바닥 돌아가는 꼴을 너무 잘 아니 별로 보고 싶지 않아서였지. 그래도 초짜가 현장에 나간다는데,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지 않나. 내 도와주지.”
“그럼 나야 고맙고.”
“대신 오늘 저녁은 자네가 사게!”
와이셔츠 한 장만 걸친 강패는 추위도 안 타는 듯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어깨를 편 채 빙긋 웃었다.
“어렵지 않지. 많이 도와주기만 한다면.”
“쩝, 그 친구. 말버릇하고는…….”
겉으로 보기에 강패는 기껏해야 20대 중후반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에 김 씨는 슬슬 귀밑머리에 흰머리가 생기기 시작하는 나이였다.
한데 이상하게도 김 씨는 강패가 자신보다 어린 사람 같지 않았다.
김 씨는 강패보다 앞장서 직업소개소의 문을 열었다.
강패도 그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의 남자들 열대엿 명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호, 사람이 많네?”
“그래서 아마 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 거야. 보통 이 중에서 삼 할 정도는 그냥 돌아간다고 보면 되지.”
요즘은 직업소개소에서 구할 수 있는 일일 노동 자리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세계를 강타한 경제난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의 숨통조차도 조여 왔다.
그 탓에 없는 사람들은 더욱더 추운 겨울을 나야만 했다.
“자! 오늘 일할 사람은 열 명이 필요한데…….”
직업소개소의 조장으로 보이는 자가 사무실에서 나왔다가 모인 사람들을 보더니 말끝을 흐렸다.
필요한 인원보다 많은 인원이 나와서 난처함을 감추지 못한 것이다.
“한 씨. 어제는 이 씨가 못 나갔으니까, 오늘은 양보해 주자구. 어?”
“에휴, 어쩔 수 없죠.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그래그래, 미안해.”
대기실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전부 간절한 눈으로 조장을 쳐다보았다.
조장은 난처한 표정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을 죽 훑어보다가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걸어가 차근차근 말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조장의 말에 난처함을 표하기도 했지만,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말에 실망한 얼굴로 돌아 나갔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차근차근 말을 건네던 조장이 김 씨 앞에 이르자 반가운 기색을 나타냈다.
“어이구, 형님! 오랜만에 나오십니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그래. 요즘은 좀 어때?”
김 씨와 아는 사이였던지 조장이 넙죽 허리를 굽히면서 인사를 했다.
당황한 김 씨는 손을 뻗어 조장을 일으켜 주었다.
조장이 뒤통수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뭐, 말도 못 하죠. 원래 이 바닥이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안 그래도 요즘 현장 분위기도 안 좋아서…… 휴우…….”
“현장 분위기가 안 좋다니 그게 무슨……?”
“임금 체불 때문에 노조가…….”
조장의 말에 김 씨가 화들짝 놀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강패는 들어도 이해하지 못할 말들이 둘 사이에 오갔다.
‘노조? 파업?’
강패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순간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눈을 돌리자, 나이 지긋해 보이는 중년인이 부러운 듯한 눈길로 김 씨와 강패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강패와 눈이 마주치자 잔뜩 주눅이 들어선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그때 김 씨가 강패의 등을 건드렸다.
“어서 준비해. 오늘 특별히 일 하는 거 한번 보겠다고 하니깐.”
“형님 말씀만 아니었어도……. 힘도 제대로 못 쓰게 생겼구만. 에잉.”
김 씨가 부탁을 한 것인지 조장은 못마땅한 얼굴로 강패의 위아래를 훑어보면서 혀를 찼다.
강패는 팔과 다리가 낭창낭창했고, 키만 멀대처럼 커서 근육질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조장이 몇몇을 더 돌려보내자 대기실에는 열 명 남짓한 인원만 남았다.
“자. 그럼 가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