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인간-33화 (33/217)

제9장 복수의 서막 (3)

20년 전통의 청담 설렁탕집으로 현수가 들어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빈자리가 있는지 살펴보는데 먼저 와서 설렁탕을 먹고 있는 이지연을 발견했다.

오늘은 친구 없이 혼자서 설렁탕을 먹고 있었다.

빈자리가 몇 개 있었지만 현수가 이지연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오늘은 혼자군요.”

“아, 예. 안녕하세요.”

“합석해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앉으세요.”

“감사합니다.”

현수가 의자에 앉았다.

주위의 손님들이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직원이 다가와 물수건과 물컵을 내려놓았다.

현수가 특 설렁탕과 수육 대자를 주문했다.

“양이 많을 텐데 다 드실 수 있겠어요?”

“물론입니다.”

“평소에도 이렇게 많이 드세요?”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많이 먹는 거 같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살이 찌지 않는 거 같아요.”

“그렇게 보입니까?”

“예, 그렇게 생각되지 않으세요?”

“전보다는 살이 좀 붙어서 딱 좋습니다.”

“어머, 그러세요?”

“예, 너무 말라서 살이 좀 붙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몇 개월 전부터 챙겨 먹었더니 이제야 살이 좀 붙었습니다.”

“요즘 카오스 제약이 잘 나간다는 소문이 있던데 맞아요?”

“예, 그 소문은 사실입니다. 미국에도 신약을 시판하고 있거든요.”

현수의 말에 이지연이 머리를 끄떡였다.

나름 호기심에 현수와 카오스 제약에 관하여 조사를 해보았기에 제법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비슷한 약도 없는 독보적인 신약이기에 막대한 매출과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특히, 미국에 대량으로 위암 치료제 그린터치 정을 시판하고 있지만 주문량을 생산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앞으로 얼마나 더 매출과 수익을 올릴지 알 수 없었다.

수조에서 수십조 원이 될 수도 있었다.

국내에 위암 환자들이 많고 전 세계적으로도 수가 많아서 그들이 살려면 신약을 구입하여 복용해야 했다.

‘신약을 개발하다니 정말 대단해.’

사실 신약을 개발하려는 제약 회사들은 많았다.

그렇지만 기대한 만큼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었다.

신생 제약 회사인 카오스 제약 회사가 설립된 지 몇 개월 되지 않았는데 신약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특허도 등록되고 임상시험도 통과하여 시판하고 있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성공시킨 것이니 충분히 능력이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조사를 해보니 나이도 이제 겨우 23살에 불과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지 미루어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잘생기고 머리까지 좋아 보여. 매력 있어.’

현수가 주문한 특 설렁탕과 수육 대자가 나왔다.

김이 모락 피어나는 수육 대자가 먹음직스러웠다.

“수육 좀 드세요.”

“그래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내가 먹으면 부족하지 않겠어요?”

“그럼 수육 한 접시 더 주문하면 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듣고 보니 그러네요.”

수육이 부족하면 한 접시 더 주문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걱정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었다.

고정관념을 간단히 깨뜨리는 현수의 말에 이지연은 머리를 끄떡이면서 인정했다.

보통 설렁탕을 주문하여 거의 다 먹었기에 사실 약간 부족하다고 생각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현수의 수육 대자를 보니 조금 먹으면 딱 맞을 거 같았다.

굳이 사양을 하지 않고 수육을 간장에 살짝 찍어서 먹었다.

고소하면서 부드러워서 맛있었다.

현수가 손을 치켜들어서 직원을 부르더니 수육 대자 한 접시를 주문했다.

“어머, 저 이 수육 조금만 먹을 거예요.”

“굳이 그럴 필요 없습니다. 먹고 싶은 만큼 먹어도 됩니다. 어차피 내가 한 접시 더 주문했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수육 대자 한 접시는 다 못 먹어요.”

“그럼 남겨도 됩니다. 그럼 제가 다 먹을 테니 말입니다.”

“아, 알겠어요. 그럼 커피는 제가 살게요.”

“좋습니다.”

현수가 설렁탕을 맛있게 먹으면서 수육도 먹었다.

깍두기와 배추김치도 맛있는데 척척 올려서 맛있게 잘 먹었다.

여자라면 남자들의 눈치가 보여서라도 조신하게 먹는다.

그렇지만 남자들은 이렇게 퍽퍽 잘 먹는 이지연의 모습이 더 좋게 보이는 법이었다.

이지연이 수육을 3분의 1정도 먹고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현수는 어느새 새로 주문하였던 수육 대자 한 접시를 다 먹고 이지연이 먹다가 남긴 수육도 깔끔하게 다 먹었다.

설렁탕도 국물까지 뚝딱 비웠다.

“어머, 정말 잘 드시네요.”

“제가 좀 그렇습니다.”

현수와 이지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로 걸어갔다.

현수가 지갑에서 대륙은행 신용카드를 꺼내어서 이지연의 식사비까지 계산했다.

그렇게 밖으로 나온 둘은 인근에 있는 시다모 커피전문점으로 들어갔다.

바리스타가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주는 곳이라서 현수는 에티오피아 시다모 내추럴 핸드드립 커피로 결정하자 이지연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현수와 같은 것으로 주문했다.

배가 부르기에 디저트는 주문하지 않았다.

창가 자리에 앉아서 잠시 기다렸다가 진동 벨이 울리자 현수가 일어나려는 것을 이지연이 말리더니 그녀가 가서 가져왔다.

찻잔을 들어 커피 향을 맡고는 음미하듯이 마셨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지연도 찻잔을 들어 커피를 마셨다.

둘은 상대에게 호감이 있지만 아직 정식으로 사귀는 것은 아니었다.

“커피가 맛있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서로에게 부담이 없는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커피를 마셨다.

현수는 아직 이지연에 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청담동 제우스 빌라에 사는 것은 아는데 혼자 사는 것인지 아님 가족과 함께 사는지도 몰랐다.

그것에 비하여 이지연은 나름 호기심에 뒷조사를 하여 현수에 관하여 많은 것들을 파악하고 알고 있었다.

이지연이 생각하기에 현수가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느낌으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통의 남자들처럼 사귀자거나 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 언제 사귀자고 말하려는 걸까?’

‘예쁘고 몸매 좋고 매력적이야.’

핸드드립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도 현수가 사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둘은 함께 시다모 커피전문점을 나와 걸어가다가 횡단보도를 건넜다.

청담동 제우스 빌라로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엘리베이터가 10층에 멈추더니 문이 열렸다.

“그럼 들어가세요.”

“예, 그럼.”

이지연이 1001호의 출입문을 여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더니 올라갔다.

혹시나 사귀자고 하지는 않을까 했었는데 결국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다.

몰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부담스러워서 사귀자고 하지 않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지연은 여자의 자존심에 먼저 사귀자고 하지 못했다.

좀 더 만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귀게 될 것으로 보였지만 미래는 알 수가 없었다.

현수는 이지연이 아름답고 몸매가 좋고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아직 사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강남 로즈 클럽.

회원제로 운영이 되는 곳으로 고급 술집이다.

섹시하고 가슴 풍만하고 몸매가 좋은 에이스급의 미녀 접대부들이 수십 명으로 많았다.

신강제약의 이석열 상무가 일이 바빠서 한동안 발길을 끓었다가 최근에 다시 출입을 했다.

핵심 측근이었던 김 과장이 허무하게 옥상에서 추락사했다.

그 영향으로 윤 과장을 곁에 두고 일을 지시했다.

그렇지만 아직은 이석열 상무에 대하여 성향을 다 파악하지 못했는지 입안의 혀처럼 잘 대처하지 못했다.

그런 만큼 김 과장의 부재에 이석열 상무는 아쉬움을 느꼈다.

“정말 어이없어. 어떻게 옥상에서 추락사를 할 수 있어?”

양쪽에 미녀들을 끼고 양주를 반 병 정도 마신 이석열 상무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화장실에 들어갔다.

소변기 앞에 서서 소변을 누고 나서 세면대에서 손을 씻으려고 다가가는데 갑자기 몸이 마비가 되었다.

“어, 이게?”

이석열 상무는 양주를 반병 마셨기에 약간 취하기는 하지만 아직은 정신이 멀쩡했다.

그런데 갑자기 몸이 마비가 되어 손가락하나 조차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왜 이런 마비가 생긴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치 화장실 바닥에 물이 있어서 미끄러지는 거처럼 그렇게 몸이 갑자기 기우뚱하더니 대리석 칸의 모서리에 정통으로 이마의 가장자리 부분에 세게 충돌했다.

퍼억!

“크아악!”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대리석 칸의 모서리에 이마의 가장자리 부분이 충돌하였기에 살이 찢어지면서 피가 흘러내렸다.

화장실 바닥이 온통 이석열 상무가 흘린 피로 지저분해졌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완전히 몸이 뒤로 넘어가면서 순간 공중에 떴다.

“아, 안 돼!”

콰앙!

마치 유도의 업어치기를 무방비 상태에서 당한 거처럼 세게 뒤통수를 화장실 바닥과 충돌했고 등도 부딪쳤다.

누군가 보았다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었으며 이석열 상무 혼자였다.

“크으으, 내가 이렇게 허무하게?”

이석열 상무의 의식이 흐릿해지다가 순간 암전처럼 되었다.

뒤통수가 완전히 깨지면서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누가 보더라도 최소 중상이었다.

그렇지만 이석열 상무는 이미 의식이 없었다.

심장도 아주 미약하게 뛰었는데 투명화 마법을 펼쳐 모습을 숨기고 있던 현수가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츠츠츠츠!

현수가 염력으로 의식이 없는 이석열 상무가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는데 그의 기도를 완전히 막아버렸다.

숨을 쉴 때 공기가 지나가는 길인 기도를 염력으로 막아버렸기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질식사하면서 심장도 멈추었다.

현수가 확인 사살을 하기 위하여 투시 마법을 펼쳐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석열 상무의 몸속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심장이 멈추었다.

“확실히 죽었군.”

기도를 막고 있던 염력을 그제야 거두었다.

이석열 상무가 겉으로 보기에는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실수로 넘어져 이마와 뒤통수가 깨지고 죽은 거였다.

보통 사람들은 첫 살인을 하게 되면 공포를 느끼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현수는 아니었다.

전생에서 여러 번이나 사람들이 죽거나 살해되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었다.

그리고 초능력이 생기면서 원수들을 현수의 손으로 죽였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칼을 손에 쥐고 찔러서 원수들을 죽이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대신에 무지막지한 염력으로 원수들의 머리통을 찌그러뜨려서 죽이거나 심장을 염력으로 마치 움켜쥔 거처럼 하여 터뜨려 죽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살인을 하여도 무덤덤했다.

밀레니엄 회귀를 한 이후에는 김 과장을 염력으로 옥상에서 밀어서 추락사시켰고, 두 번째가 바로 지금이었다.

현수의 앞길을 자꾸 방해하는 자였기에 신강제약의 이석열 상무를 화장실에서 이렇게 깔끔하고 은밀하게 죽여 버린 거였다.

재빨리 살인 현장을 벗어나야 하는데 현수는 아니었다.

이석열 상무가 죽은 것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지켜보고 서 있었다.

누군가 화장실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누군가 오는군?”

스으읏!

현수가 화장실 벽으로 스며들었다.

그때,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의 눈이 커졌다.

“허억, 이게 뭐야?”

화장실 바닥이 온통 피범벅이었다.

누군가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깜짝 놀란 남자는 재빨리 화장실의 문을 열고 외쳤다.

“야, 여기 와봐. 누군가 쓰러져 있다.”

남자의 외침에 남자 직원들이 뛰어왔다.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석열 상무를 발견하고 놀랐다.

“허엇, 이건?”

“내가 그런 거 아니야. 화장실에 들어와 보니 이런 상황이었어.”

“정말입니까?”

“정말이라니까.”

“어서 신고해.”

“구급차도 불러. 어서!”

“예, 알겠습니다.”

이석열 상무는 피를 많이 흘려 지저분한 상태였다.

화장실 벽으로 스며든 현수가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다가 그제야 사라졌다.

이미 이석열 상무는 심장이 멈추었고 완벽하게 죽은 상태였다.

아무리 종합병원 응급실로 후송되어도 되살리기에는 늦었다.

이번에도 현수가 전혀 흔적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살인에 성공했다.

벌써 두 번째 살인이었지만 증거나 흔적이 없어서 노련하고 경험이 많은 형사라고 하더라도 범인을 찾아내기는 불가능했다.

가만히 있는 현수에게 신강제약의 이석열 상무와 김 과장이 압력을 행사하고 협박까지 했었다.

앞길을 가로막으려고 흉계까지 꾸몄다.

하룻강아지가 겁도 없이 호랑이에게 도발을 한 거였다.

현수가 판단하기에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앞으로도 계속 앞길을 가로막으려고 하는 자들이었다.

어지간하면 죽이지 않으려고 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독하게 마음을 먹었기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완벽하고 깔끔하게 죽여 버렸다.

이렇게 해서 며칠 간격으로 현수의 앞길을 어설프게 가로막으려고 했었던 이석열 상무와 김 과장은 세상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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