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인간-9화 (9/217)

제3장 비밀의 약 조제 (1)

“여기 트렁크에 실어 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직원이 나서서 과학 실험도구 세트가 들어 있는 박스를 들고 열려진 검은색 에스유브이 랜드로버 디스커버리의 트렁크에 실어 주었다.

현수는 한곳에서 구입하지 않고 조금은 번거롭지만 여러 도매상에 들러서 나누어 구입했다.

필요한 약들도 500가지가 넘었다.

이 약들 중에 필요한 성분만 따로 추출을 해내어야 했다.

번거롭지만 조금의 실수를 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펜트하우스의 방들 중에 하나를 연구실로 꾸며 놓았다.

다른 곳을 얻어서 비밀의 약을 조제하려면 자칫 비밀이 누설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보다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을 생각하다 보니 펜트하우스의 남는 방들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연구실로 꾸며 놓은 거였다.

“확실히 번거롭기는 하지만 내가 직접 나서서 모든 것들을 준비하는 것이 안전하고 좋아. 비밀 누설 걱정도 없고 말이야.”

돈을 쓰니 과학 실험도구 세트와 필요한 약들, 그리고 비밀의 약을 조제하는 연구실까지 준비가 되었다.

“다 실어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현수가 트렁크를 닫고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 부드럽게 출발했다.

직원이 잠시 서서 바라보다가 뒤돌아 도매상으로 들어갔다.

현수는 곧장 청담동 제우스 빌라로 돌아와 지하 주차장에 주차하고 내렸다.

트렁크에 실어 놓은 박스 6개를 두 개씩 들고 엘리베이터 앞에 가져다 놓았다.

조금 번거롭기는 했지만 남에게 맡기고 싶지는 않았다.

엘리베이터에 박스 6개를 싣고 11층 펜트하우스로 올라갔다.

11층까지 올라가는 동안에 엘리베이터는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11층에 도착하여 박스 6개를 내리고 펜트하우스 출입문을 열고 연구실로 옮겼다.

냉장고를 열어서 시원한 생수를 꺼내어 마셨다.

“아, 시원하고 좋다.”

그런 다음에 드레스 실로 들어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나왔다.

연구실로 들어가서 흰 가운을 입고 라텍스 장갑을 꼈다.

박스를 뜯어서 구입한 것들을 꺼내어 실험을 위한 책상에 놓았다.

실험을 위한 책상은 3개씩 전부 6개를 붙여 놓았기에 넓었다.

보안경과 전자저울, 마스크, 장갑, 비커, 플라스크, 깔때기, 삼각 비커, 연소숟가락, 펱리 접시, 막자, 막자사발, 증발접시, 석면 철망, 눈금 플라스크, 눈금 실린더, 홀 피펫, 눈금 피펫, 피펫 필러, 유리막대, 가지 플라스크, 뷰렛, 리비히 냉각기, 흡인여과기, 분별 깔때기, 스텐드, 가스버너, 중탕냄비까지 있었다.

여기에 집기병, 시험관, 시험관 솔, 삼발이, 도가니 집게, 약수저, 비중병, 리트머스 시험지, 거름종이, 알코올램프, 온도계, 클램프, 핀치코크, 유독기체나 악취가 발생하는 실험을 할 때에 사용하는 장치인 후드, 분진을 막을 수 있는 흄 후드, 산과 염기의 세기를 간편히 측정할 수 있는 시험지인 PH 시험지, 액체를 물리적으로 섞기 위한 장치인 교반기도 있었다.

또한, 자기력을 이용해 액체를 섞기 위한 장치인 자력교반기, 고체나 액체의 건조제를 사용하여 각종 물체를 건조시키거나 저장하는데 쓰이는 두꺼운 유리 용기인 데시케이터, 액체를 담는 그릇으로 빛의 진행을 관찰하거나 수상치환으로 기체를 모을 때 집기병을 넣는 그릇으로 사용하는 수조, 삼각석쇠, 분말을 옮기기 위한 작은 주걱인 스패출러까지 아주 다양했다.

각종 과학 실험도구 세트가 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다양하게 구입하여 조용히 준비를 해야 했었다.

“후후후, 이것들을 조용히 은밀하게 준비하느라 5일이나 걸렸어.”

비밀의 약을 조제하는데 필요한 약들도 500가지나 되었다.

대부분 시중의 약국에서 흔하게 구입할 수 있는 약들이었다.

다만 몇 가지 약들은 은밀히 돈을 들여서 구입했다.

그렇다고 마약이나 향정신성 의약품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구입하는 것이 더욱 힘들었을 거였다.

재수가 없으면 형사의 추격을 받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렇지만 그런 약들이 아니었기에 조금 신경을 써서 구입할 수 있었다.

“필요한 것들은 이제 다 준비가 되었으니 본격적으로 조제를 하려면 시간이 걸리고 집중을 해야 돼.”

너무 성급하거나 무리하게 조제를 하지는 않을 거였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서 조제를 할 것이기에 10일 정도는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조제하는 10일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조용히 조제를 완수할 수 있을 거였다.

그럼 비밀의 약을 조제한 것을 은밀히 복용하면 된다.

현수가 의자에 앉았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조제를 시작해볼까.”

위험하지 않고 간단한 작업부터 시작을 하였다.

한두 시간에 끝나는 작업이 아니기에 서둘지 않았다.

10일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하는 조제 작업이었다.

두 시간을 작업하고 30분 정도 쉬었다가 다시 작업을 하였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초반에 하는 작업들은 위험하지 않고 단순 반복 작업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5일이 지나면서 조금씩 정밀 작업을 하였다.

조금의 실수가 있어서도 안 되는 정밀 작업이었기에 집중은 필수였다.

전생에 한번 해본 작업이지만 긴장되었다.

“휴우, 너무 정신을 집중하다 보니 피곤해.”

정밀 작업을 중지하고는 라텍스 장갑을 벗었다.

그런 다음에 쓰고 있던 보안경과 마스크도 벗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연구실을 나왔다.

라면 두 개를 끓이면서 김치와 깍두기를 그릇에 담아 식탁에 준비했다.

잠시 후에 냄비의 라면을 그릇에 옮겨 담아 식탁 의자에 앉아서 라면을 먹었다.

“아, 맛있다.”

김치와 깍두기를 곁들여 먹으니 아주 맛있었다.

보통은 라면 두 개를 먹으면 배가 부르다.

그런데 정밀 작업을 하다 보니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되었다.

“으음, 국물이 남았으니 밥을 말아 먹어야겠어.”

밥통에 들어 있는 밥을 퍼서 그릇에 담았다.

김치와 깍두기를 곁들어 먹으니 꿀맛이었다.

정신없이 먹다 보니 어느새 다 먹었고 빈 그릇만 남아 있었다.

“내가 미친 듯이 먹다니 믿어지지 않아.”

신속하게 식탁에 펼쳐져 있던 것들을 싱크대로 옮겼다.

그런 후에 커피믹스 두 개를 넣고 커피를 타서 마셨다.

달콤하고 부드러워서 맛있었다.

“이제 설거지를 해볼까.”

그냥 내버려 두면 보기에 좋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은 귀찮았지만 깔끔하게 설거지를 하고 치우려는 거였다.

작정을 하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가정주부 같은 모습이지만 누군가 곁에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창피하지는 않았다.

뚝딱 설거지를 마치고 거실로 이동하여 커튼을 젖히고 한강을 내려다보았다.

연구실에서 집중하여 작업을 하다 보니 마음이 조금 갑갑했었다.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이렇게 한강을 내려다보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며칠만 더 고생을 하면 돼.”

배도 부르고 한강을 내려다보니 갑갑하던 마음도 풀리면서 편해졌기에 이 펜트하우스에서 사는 것이 좋다는 것을 느꼈다.

사실 168평형의 펜트하우스는 혼자 살기에는 너무 넓었다.

아무리 깨끗하게 청소하고 럭셔리하게 꾸며 놓았어도 혼자이기에 휑한 느낌이다.

“후후후, 전생에서는 장애를 가지고 고통받고 어렵고 힘들게 살았으니 이제는 좀 누리고 살아도 돼. 나는 그럴 자격이 충분하니까 말이야.”

고교 동창 병규의 음주운전으로 인하여 조수석에 타고 있었다가 날벼락을 당하였다.

음주운전에 과속으로 인하여 사고가 나면서 운전을 하였던 병규는 현장에서 즉사했었다.

조수석에 타고 있었던 현수 자신은 무방비 상태로 치명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이 되었지만 반신불수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보통 하반신 불구가 되는데 현수는 왼팔과 왼다리를 사용할 수 없는 그런 반신불수였다.

이렇게 평생 살아야 한다는 것이 너무 억울했지만 누구에게 하소연을 할 수도 없었다.

음주운전을 하였던 고교 동창 병규는 현장에서 즉사해 버렸으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현수도 현장에서 즉사한 것이 더 좋았을 수도 있었다.

죽지 않고 치명상을 입고 반신불수가 되어 평생을 고통받고 어렵고 힘들게 살았었다.

모진 목숨을 끊을 수도 없었기에 생활비를 벌려고 다양한 일들을 했었다.

국가에서 주는 보조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약값과 써야 할 곳은 많았었다.

어느 날 불법 신약을 복용하면서 돈을 받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복통과 설사, 발진 등 다양한 부작용에 시달리기도 했었다.

그래도 많은 돈을 받고 하는 거라서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지금 생각을 해보면 살기 위한 몸부림이라 할 수 있었다.

“으음, 그때에는 정말이지 지옥 같은 나날이었지.”

세계 각국에는 중소 제약회사들이 많았기에 현수는 나름 실험체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

반신불수 장애를 가진 사람이었기에 사회적인 약자였다.

그렇기에 돈을 주고 신약의 약효 실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돈만 준다면 어떤 신약의 실험도 마다하지 않았었다.

수천 번의 불법 임상실험까지 하였는데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하긴 죽을 정도로 지독한 신약들은 아니었다.

사람에게 치명적인 약이라면 동물 실험부터 하였을 테니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돈을 벌어서 약을 사먹고 생활비에도 충당을 했었다.

나이가 들어 늙었음에도 그만두지 못하고 계속 했었다.

현수의 인생을 바꿀 일이 문득 찾아왔었다.

그날도 제법 두둑한 돈을 받고 신약을 받아서 복용을 했었다.

머릿속에서 폭죽이 연속으로 터진 듯한 그런 생소하지만 너무나 강렬하고 짜릿한 느낌이었다.

단어나 말로는 표현을 하기 힘들 그런 거였다.

그날 이후 한동안 무기력해서 불법 임상실험을 하지 못했었다.

집안의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좀처럼 기운을 차리지 못했었다.

“이러다가 죽는 거 아니야?”

갑자기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는데 신기하게도 일주일 만에 기운을 차리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 신약의 부작용인지 이상하게 허기가 생겨서 무자비하게 음식들을 퍼먹기 시작했다.

마치 폭주를 하는 기관차처럼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닥치는 대로 음식물을 먹었다.

비유를 하자면 배터리의 충전 상태가 바닥이었는데 음식물을 섭취하면서 충전하여 끌어 올리는 듯한 그런 느낌이라 할 수 있었다.

“그때에는 정말 이상한 느낌이었어.”

처음 경험해보고 느껴보는 거였다.

마치 뇌가 엄청나게 활성화되는 그런 거였다.

많이 배우지 못했고 똑똑하지 못하여 아는 것이 많지 않았던 현수였다.

“어, 이게?”

반신불수로 몸이 불편한 현수였기에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힘들다.

물을 마시려고 물주전자를 잡으려고 손을 내밀었다가 공중을 가로질러 끌려오는 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말도 안 되는 황당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방안에 혼자 있었기에 누군가 장난을 치는 것은 아니었다.

물 주전자를 손에 들고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그제야 정신이 좀 들었다.

현수 자신이 한 일이지만 너무 신기했기에 다시 한 번 시도를 해보았다.

그랬더니 진짜 놀랍게도 물 주전자가 원래의 자리로 이동하였고 살며시 내려놓았다.

“허엇, 이게 환상이 아니었어.”

새로운 능력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수가 이번에 불법 임상실험을 하려고 브로커에게 3분의 1의 돈을 받고 하루에 3회 복용에 한 달분 약을 받았었다.

임상실험이 끝이 나면 나머지 돈을 받는 구조였다.

첫날에 첫 복용으로 인하여 머릿속에서 폭죽이 연속으로 터진 듯한 생소하지만 너무나 강렬하고 짜릿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 다음에는 부작용인지 엄청 무기력해지면서 손가락 하나조차 까딱하기 어려웠었다.

어쩔 수 없이 침대에 누워 계속 시간을 보내었다.

일주일 만에야 겨우 기운을 차리고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무자비하게 음식을 퍼먹었고 목까지 찼을 때에야 멈출 수가 있었다.

혼자 먹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폭식이고 엄청난 양이었다.

쉽게 표현을 하자면 한꺼번에 건장한 성인 남자 10명이 먹은 양이라고 보면 된다.

얼마나 현수가 미친 듯이 먹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으음, 뭔가 이상해.”

현수가 브로커에게 전화하여 물어보았더니 놀랍게도 이번 신약을 임상실험 하다가 그만 단속에 걸렸다는 거였다.

그 영향으로 프로젝트가 중지되고 자료들은 폐기가 되었다는 거였다.

어차피 불법으로 하는 임상실험이기에 간혹 이런 경우가 있었다.

“부작용으로 그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거야?”

“어, 너무 무기력해서 전화할 힘도 없었어.”

“뭐, 그 정도였어?”

“그랬다니까. 당분간 몸을 회복하기 전까지는 일도 못할 거 같아.”

“그거 안타깝군. 일단 잔금을 입금해 줄 테니 그것으로 버티다가 나중에 몸이 회복되면 연락하라고.”

“그래. 알았다.”

이렇게 하여 브로커가 수수료를 제하고 나머지 돈을 입금시켜 주었다.

그래서 현수가 거래하는 브로커는 비교적 양심적이기에 돈을 떼어먹거나 하지는 않았다.

보통의 이런 경우라면 부작용이 심하기에 받은 약들은 전부 폐기를 해야 했다.

그렇지만 염력이라는 능력이 생겨났기에 중지를 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어쩌면 신약을 계속 복용하면 추가로 새로운 능력들이 더 생겨날 수도 있었다.

확신을 할 수는 없었지만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한 달 분의 약에서 겨우 1회 분만 복용했었다.

하루에 3번 한달 분을 복용해야 하기에 아직도 약이 그대로 많이 남아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