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나는 돌아왔다 (4)
부아앙!
검은색 에스유브이 랜드로버 디스커버리가 비포장 길을 달리고 있었다.
흙먼지가 날리고 길이 좋지 않아서 차가 많이 흔들렸다.
“으음, 역시나 내가 예상한 대로군.”
달리던 차의 속도를 팍 줄여서 천천히 달렸다.
그제야 흙먼지가 많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이곳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인데 몇 년 후에는 판교신도시가 건설된다.
비포장 길의 오른쪽으로 붉은 벽돌의 단층 주택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50가구 정도 되었다.
왼쪽으로는 임야이며 넓은 과수원이었다.
비포장 길에서 왼쪽으로 진입을 하는 곳에는 시멘트 길로 조성되어 있었는데 6미터 정도로 넓은 길이었다.
30미터 정도 이어지더니 붉은 벽돌의 단층 주택이 하나 있었다.
녹색의 메쉬펜스 철망이 설치되어 있었다.
대문 양쪽으로는 공터처럼 조성되어 있어서 20대의 차들을 주차할 수 있었다.
친척들이 제사를 지내려고 오면 이곳에 차를 주차한다.
그랬기에 현수가 운전하는 검은색 에스유브이 랜드로버 디스커버리가 다가와 대문 옆에 멈추었다.
차문을 열고 내린 현수가 녹색의 메쉬펜스 철망과 단층 주택을 살펴보았다.
“고향 집을 다시 오게 되다니 신기해.”
붉은 벽돌의 단층 주택은 60평형으로 방이 4개이며 여기에 천장이 높았으며 넓은 다락방도 있었다.
마당은 150평형이며 텃밭으로 조성되어 있어서 각종 채소들이 자라고 있었다.
마당 한쪽에는 원목으로 만든 원두막 파고라가 만들어져 있었다.
원래는 평상을 만들어 설치하려고 했었는데 비가 내리면 막아줄 것이 필요하기에 돈을 들여서 원목으로 원두막 파고라를 만든 거였다.
가족들이 가끔씩 이곳에 모여앉아 고기를 구워 먹거나 식사를 하기도 했었다.
딩동!
대문 옆에 설치된 초인종을 누르자 단층 주택의 출입문을 열고 누군가 나왔는데 현수의 여동생 김유라였다.
여고 2학년이며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큰오빠!”
“그래. 큰오빠다.”
여동생 유라가 대문을 열어주었다.
현수가 운전하는 검은색 에스유브이 랜드로버 디스커버리의 트렁크를 열어서 준비해온 각종 선물들을 양손에 들었다.
“이게 다 뭐야?”
“이것저것 준비해왔다.”
머리를 갸웃거리던 유라가 적당한 크기의 물건들을 양손에 들고 따라왔다.
제법 짐들이 많아서 현수와 유라가 3번씩이나 왕복을 해야 했다.
현수가 재킷을 벗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유라가 냉장고에서 오렌지주스를 꺼내어 두 개의 유리 주스 잔에 각각 부어서 가져왔다.
“큰오빠, 정말 멋있어졌다.”
“그래 보이냐?”
“응, 연말의 모습과는 너무 달라졌어. 무슨 일 있었어?”
“있었지.”
“무슨 일이 있었는데?”
“궁금하더라도 좀 참아라. 저녁에 가족들이 모이면 말해 줄게.”
“알았어. 그건 그렇고 무슨 선물이 저렇게 많아?”
“유라 너의 것도 몇 개 되니까 기대해.”
“정말?”
“그렇다니까. 아마 깜짝 놀랄 거다.”
“그러니까 더 궁금하다.”
유라의 말에 현수가 씨익 웃었다.
궁금하더라도 당장 알려줄 수는 없었다.
확실히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고향집은 언제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이런 고향 집과 임야 과수원이 사기를 당하면서 빼앗긴다.
믿었던 친척이기에 배신감이 컸었다.
‘이제는 절대 그런 어이없는 사기는 당하지 않을 거야.’
현수가 오렌지주스를 마시고 내려놓더니 지갑을 꺼내었다.
유라가 눈을 반짝이며 쳐다보았다.
지갑을 펼치자 자기앞수표와 만 원짜리 현금이 가득했다.
현수가 태연하게 만 원짜리를 꺼내더니 50장을 세더니 내밀었다.
“나 주는 거야?”
“그래. 용돈이다.”
“정말이지?”
“그렇다니까.”
“우와, 50만 원이야.”
너무 신난 유라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유라는 이제까지 부모님이나 오빠에게 용돈을 받아도 1만 원이나 2만 원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생각인지 큰오빠가 처음으로 용돈이라고 하면서 무려 50만 원이나 주었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기에 순간 멍했다.
여고 2학년인 유라는 나름 용돈이 많이 필요했지만 그렇다고 부모에게 자꾸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랬는데 이 돈이면 충분히 친구들에게 쓸 수 있었다.
“큰오빠, 정말 고마워.”
“아직 좋아하기는 이르다.”
“어? 그게 무슨 말이야?”
“유라 네가 저금하고 있는 농협 통장 있지?”
“있어. 그게 왜?”
“그거 오빠에게 계좌번호 알려주고 내일 당장 현금카드를 하나 만들어 둬.”
“현금카드는 왜?”
“오빠가 2천만 원을 입금시켜 줄 테니 앞으로 필요할 때 인출하여 용돈으로 써.”
“뭐? 농담이지?”
“농담 아니야. 앞으로 유라 너의 용돈이니 필요할 때 쓰라고 주는 거야.”
“·······”
너무 황당한 상황에 유라가 현수를 쳐다보았다.
누구라도 이런 상황이라면 의심부터 할 거였다.
“아니다. 내일 오전에 오빠와 함께 농협에 같이 가자. 새로 통장과 현금카드를 만들자. 오빠가 2천만 원을 넣어주면 되니까 말이야.”
“큰오빠, 농담하지 마.”
“농담 아니라니까.”
“정말이야?”
“정말이라니까.”
너무 황당하기는 하지만 농담은 아닌 거 같았다.
농협 통장을 새로 만들고 2천만 원을 넣어 줄 테니 그것으로 용돈으로 쓰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현수가 지갑을 펼치더니 자기앞수표 한 장을 꺼내 보여주었다.
놀랍게도 대륙은행 1천만 원짜리 자기앞수표였다.
대충 보아도 지갑 안에 수표가 10장이 넘어 보였다.
앞쪽 칸에도 수표들이 두둑하게 들어 있었다.
현수의 지갑에 많은 돈이 들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너무 큰돈을 유라 네가 가지고 있으면 위험하니까 내일 오전에 오빠와 함께 농협에 가서 통장과 현금카드를 만들자는 거야. 알겠지?”
“응, 알았어.”
“이제 용돈 걱정이 없으니 마음껏 써도 돼. 필요할 때 오빠가 돈을 넣어 줄 테니 말이야.”
“2천만 원이 끝이 아니고 계속 넣어준다고?”
“그래. 3개월마다 오빠가 보고 넣어줄게. 그전에 떨어지면 오빠에게 연락하고 말이야.”
“오빠,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가족들이 모인 저녁에 알려줄 테니 궁금하더라도 참아. 그리고 오빠가 넣어주는 돈으로 고급 옷을 사 입어도 되고 친구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어도 돼. 아무튼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에는 써도 돼. 다만 나쁜 짓 그러니까 술이나 담배를 구입하거나 상식을 벗어나는 나쁜 짓에 쓰면 안 돼.”
“그런 거라면 걱정 마.”
“그럼 되었다. 오빠가 나쁜 짓을 해서 번 이상한 돈이 아니니까 걱정 마.”
“정말이지?”
“그렇다니까. 어차피 저녁이 되면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오빠가 다 설명해줄게.”
“알았어.”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친구들과 친하게 잘 지내. 그리고 일진들과 어울리거나 친구들을 따돌림 하거나 나쁜 짓 등은 절대 하면 안 돼. 알았지?”
“응, 알았어.”
“공부를 열심히 하여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려고 하면 오빠가 등록금과 지원을 팍팍 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말이야.”
현수의 말에 유라가 머리를 끄떡였다.
“오빠는 다락방에 들어가서 쉬고 있을 테니 부모님이 오시면 깨워줘.”
“응, 알았어.”
거실 소파에서 일어난 현수가 벗어놓은 재킷을 들고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유라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현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한쪽에 모아놓은 각종 선물들을 보았다.
백화점 쇼핑백이나 고급 보자기로 보아서는 제법 비싼 선물로 생각되었다.
궁금하기는 했지만 저녁에 가족들이 모이면 풀어보면 되기에 참기로 했다.
“큰오빠.”
“으응?”
유라가 몸을 흔들어 깨웠기에 잠들어 있던 현수가 눈을 떴다.
“아빠와 엄마가 왔어.”
“그래? 현민이는?”
“학원에서 나올 시간이 되었으니 곧 집에 올 거야.”
“알았다.”
현수가 상체를 일으켰다.
그제야 유라가 다락방을 나갔다.
현수가 기지개를 펴면서 정신을 차린 후에 일어나 거실로 내려왔다.
세수를 하고 손을 씻고 발까지 씻은 아버지가 욕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는 다가가서 꼭 안았다.
향긋한 비누 냄새가 났다.
“아이고, 쑥스럽다.”
“아버지,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크흠, 갑자기 연락도 없이 집에 오고 껴안으니 불안한데? 사고 친 거 아니지?”
“그런 거 아닙니다.”
아버지가 머리를 갸웃거렸다.
현수가 씨익 웃더니 떨어졌다.
그리고는 주방으로 가보았다.
어머니가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큰아들, 왔어?”
“예, 어머니. 오늘 저녁은 뭡니까?”
“불고기하고 된장찌개야.”
“어머니의 손맛과 된장찌개가 그리웠습니다. 오늘은 배불리 먹을 수 있겠습니다.”
“그랬어?”
“예, 현민이가 오면 같이 먹으면 되겠습니다.”
“그래. 현민이도 곧 올 거야. 그건 그렇고 큰아들이 엄청 세련되었는데?”
“예, 좀 신경을 썼습니다.”
“무슨 일 있었어?”
“있기는 있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말씀을 드릴게요.”
“그래. 알았어.”
현수가 뒤돌아 거실로 와서 소파에 앉았다.
TV에는 고향 소식이라는 프로가 방송되고 있었다.
농촌의 모습을 보여주는 정겨운 프로그램으로 인기였다.
현수는 조용히 고향 소식을 시청했다.
가족들은 과수원을 하시는 부모님과 큰아들 현수, 고등학교 3학년의 둘째 아들 현민, 그리고 여고 2학년의 유라, 이렇게 모두 다섯 식구였다.
딩동!
초인종 소리가 나자 유라가 버튼을 눌러 대문을 열어주었다.
출입문을 열고 현민이 들어오면서 말했다.
“학원 다녀왔습니다.”
“그래. 어서 와라.”
“형, 왔어?”
“그래. 곧 저녁을 먹을 테니 옷 갈아입고 손 씻고 와라.”
“어, 알았어.”
곧장 방으로 들어간 현민이 옷을 갈아입고 손을 씻고 거실로 나왔다.
어느새 저녁 준비가 다 되었기에 식탁에 차린 후에 의자에 앉았다.
“먹자.”
“잘 먹겠습니다.”
모처럼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기에 분위기가 아주 화기애애해졌다.
현수는 어머니의 손맛이 너무 그리웠는데 오늘 마음껏 충족할 수 있었다.
각종 밑반찬과 불고기, 그리고 집 된장으로 끓인 된장찌개까지 너무 맛있었다.
정신없이 먹는 것을 모두 식사를 멈추고 멍하게 현수를 바라보았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현수가 고개를 들었더니 그제야 가족들이 다시 식사했다.
“어머니, 밥 더 주세요.”
“그, 그래.”
평소에는 밥을 한 그릇만 먹는 현수가 오늘은 무슨 일인지 밥을 더 달라고 하자 어머니는 깜짝 놀라면서도 재빨리 밥을 그릇에 많이 퍼주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현수가 평소에는 느긋하게 식사를 하는데 오늘은 누가 뺏어 먹기라도 하는 것인지 허겁지겁 먹었다.
그러니 가족들이 멍하게 쳐다보는 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온통 어머니의 손맛이 들어간 김치와 밑반찬들을 싹싹 긁어서 다 먹어 치웠다.
며칠 굶은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아, 정말 맛있다. 어머니 밥 한 그릇 더요.”
“한 그릇 더?”
“예, 충분히 먹을 수 있으니 많이 담아 주세요.”
“현수야, 정말 괜찮겠어?”
“그럼요. 어서 주세요.”
“그, 그래 알았다.”
현수는 마치 걸신이 들린 사람처럼 허겁지겁 무자비하게 밥을 먹었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평소와 다른 모습이기에 충분히 오해를 할 수도 있었다.
“엄마, 큰오빠 이상해.”
“맞아, 이상해.”
“·······”
“·······”
부모님들조차 현수가 평소와 다르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걸 말하지는 않았다.
수십 년을 불행하고 고통 속에서 살아왔었던 현수였다.
그랬기에 따듯한 어머니의 손맛이 들어간 집밥을 먹으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수가 깔끔하게 밥을 3그릇이나 먹은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욱 놀라운 것은 현수가 나서서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까지 하였다.
보통은 어머니와 유라가 설거지를 하는데 오늘은 큰아들 현수가 다 해버리니 놀라는 거였다.
“어머니, 거실에 앉아 계세요. 금방 끝내고 가겠습니다.”
“그, 그래.”
“유라 너도 거실에서 먹을 과일과 커피를 챙겨가.”
“응, 알았어.”
유라가 냉장고를 열어 과일을 꺼내었다.
쟁반에 과일칼과 과일 접시를 놓았다.
커피도 한 잔씩 해야 하기에 전기포트에 물을 붓고 버튼을 눌렀다.
현수는 아주 능숙한 솜씨로 많은 설거지를 깨끗하게 하였다.
군 제대를 하고 나서는 한 번도 설거지를 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설사 설거지를 하더라도 깔끔하게 잘 하지는 못했었다.
그런 현수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진짜 깨끗하게 설거지를 하고 물로 두 번씩 잘 헹구었다.
그러니 어머니와 유라가 그걸 보고 놀라는 거였다.
뭔가 크게 달라졌다는 것을 가족들은 알았다.
‘이렇게 내가 설거지를 해보는 것도 수십 년 만이군.’
아주 평범한 일들이지만 현수는 이런 것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하였다.
인생이 망가지고 불행하게 늙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도 이런 현수의 마음을 모를 거였다.
하지만 거짓말 같은 회귀를 하면서 불행했었던 인생을 바꾸고 얼마든지 인생역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는 불행했었던 인생을 살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맹세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