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인간-2화 (2/217)

제1장 나는 돌아왔다 (2)

최고 장례식장.

감색 정장을 입은 현수가 나타났다.

고교 동창 2명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가갔다.

“어, 현수구나.”

“정훈아, 어찌 된 거야?”

“음주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가 일어났대.”

“그래? 어찌 된 일인지 좀 더 자세히 말해봐.”

정훈이 현수에게 자세히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니까 어제 신촌의 다락방에 모여서 술을 마시고 나와 2차로 노래연습장으로 향했었다.

현수와 2명의 고교 동창들은 2차를 가지 않고 헤어졌는데 그중에 한 명이 정훈이었다.

오늘 오전에 연락을 받은 정훈이 사고 소식을 알게 된 거였다.

병규와 고교 동창들이 노래연습장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두 시간 후에 나왔다.

병규는 자신의 차에 4명의 고교 동창들을 전부 태우고 이동하다가 한 명씩 3명을 내려주었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가장 먼 거리의 동윤이와 함께 마지막으로 이동하다가 교통사고가 일어났다는 거였다.

신호를 받고 정차해 있던 차를 두 대나 들이박은 후에 가로수를 박고 차가 전복이 되어 병규와 동윤이 현장에서 즉사했다는 거였다.

원 역사에서는 운전을 하던 병규는 즉사하고 조수석에 타고 있었던 현수는 왼쪽의 반신불수가 되어 평생을 장애로 살았었다.

이것을 알고 있었기에 현수가 병규를 따라가지 않은 거였다.

현수가 고교 동창들과 함께 장례식장으로 들어가서 절을 하고 부조금을 부의함에 넣었다.

‘병규야, 저승에서 편안하게 쉬어라. 대신 내가 부조금으로 20만 원을 넣었다.’

그런 다음에 조문객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이동하여 육개장을 먹었다.

고교 동창 병규와 동윤이의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으음, 내가 말렸어도 듣지 않았을 거야.’

현수의 생각대로였다.

만약 어제 현수가 병규를 말렸다고 하더라도 술에 취해서 말을 듣지 않았을 거였다.

교통사고가 일어나니까 음주운전을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같이 노래연습장으로 가서 노래를 불렀던 고교 동창들은 말리지 않았다고 유족에게 원망을 듣고 있었다.

그래서 현수는 2차 노래연습장을 따라가지 않았던 거였다.

어쨌든 현수 자신은 미래를 알고 있었기에 위험을 피했다.

그게 가장 중요한 거였다.

불행했었던 전생대로 살지는 않을 거였다.

미래를 바꾼 만큼 앞으로 찬란한 미래가 펼쳐질 거였다.

최선을 다하여 병규를 말리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지는 않았다.

현수 자신의 인생도 아니었다.

병규 때문에 자신의 이전 생은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고, 때문에 비참하게 살았었다.

그런 것을 감안한다면 이제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병규 자신이 음주운전을 하여 사고를 내고 즉사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깔끔하게 잊어버리고 나도 새 출발을 하는 거야. 찬란한 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어.’

“현수야, 한잔 할래?”

“아니, 오늘 가봐야 하는 곳이 있어서 말이야.”

정훈이 종이컵에 소주를 부어서 마셨다.

현수는 육개장을 다 먹은 후에 젓가락으로 떡을 집어 먹었다.

“병규와 정훈이 허무하게 죽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나도 그래.”

“왜 하필 음주운전을 해서 죽은 거야?”

“그러게 말이야.”

현수는 속과 다르게 겉으로는 정훈의 말에 장단이라도 맞추려는 듯이 말해 주었다.

정훈이 한잔을 더 마시고 나서 말했다.

“현수 너는 요즘 뭐하냐?”

“나는 노량진에 원룸을 얻어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공무원 하려고?”

“그럴 생각인데 아직은 모르겠다.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계속 놀고 있을 수는 없으니 말이야.”

“그럼 복학은 하지 않을 거야?”

“지금 당장은 복학할 생각은 없어.”

“케이대 경영학과면 명문대이고 좋은 학과인데 말이야.”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취업을 하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현수의 말에 정훈이 머리를 끄떡였다.

“정훈이 너는 요즘 뭐하냐?”

“나는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조만간 다시 복학할 거야.”

“취업할 생각은 없고?”

“어, 아직은 없어. 대학을 먼저 졸업한 후에 생각해봐야지.”

“그것도 좋은 생각이다.”

현수가 일어나더니 정훈에게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를 하고 나갔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정훈이 종이컵을 들어 소주를 마셨다.

최고 장례식장을 나온 현수는 택시를 타고 노량진의 원룸으로 향했다.

대륙은행 본점.

정장 차림의 현수가 다가오더니 의자에 앉았다.

지갑에서 럭키복권 1장과 신분증, 그리고 도장을 꺼내어 내밀었다.

은행 담당자가 현수를 한차례 쳐다보더니 나직하게 말했다.

“확인을 해야 하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예, 그러죠.”

은행 담당자가 럭키복권을 확인해 보더니 머리를 끄떡였다.

“확인을 해보니 1등과 2등에 당첨되셨군요.”

“예, 그렇습니다.”

“이번 회차의 럭키복권 1등은 112억 원입니다. 그리고 2등은 1억 원으로 고정되어 있고 말입니다.”

“나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럭키복권 1등 112억 원에는 33%의 세금이 있습니다. 기타소득세 30%에 지방소득세 3%해서 33%입니다. 그럼 112억 원에서 세금 33%인 36억 9600만 원을 제하고 나면 75억 400만 원입니다. 그리고 2등은 1억 원으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세금 22%인 2200만 원을 제하면 7800만 원입니다.”

“흐음, 그렇군요.”

“세금을 제하고 나면 75억 8200만 원입니다.”

세금을 많이 제하더라도 75억 8200만 원이니 보통 사람들에게는 아주 큰돈이었다.

“새 통장과 신용카드, 그리고 현금카드를 각각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아, 잠깐만요.”

스윽!

현수가 지갑에서 럭키복권 1장을 꺼내어 내밀었다.

은행 담당자가 럭키복권을 보더니 눈이 커졌다.

“허엇, 이건?”

“맞습니다. 1등과 2등에 당첨된 겁니다.”

“어떻게 이것을?”

“운이 좋았습니다. 함께 처리를 해주세요.”

“으음, 알겠습니다.”

은행 담당자는 처음 당해보는 상황에 살짝 당황했다.

럭키복권 1등과 2등에 당첨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흔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1등과 2등에 2매씩 당첨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럭키복권을 확인해 보았는데 진짜였다.

세금을 제하고 실수령액은 합계 151억6400만 원이었다.

“100만 원짜리 자기앞수표로 100장 즉, 1억 원으로 주시고, 1만 원짜리 현금다발로 1천만 원을 주십시오.”

“으음, 알겠습니다.”

잠시 후에 은행 담당자가 새로운 통장을 만들어 주고 자세한 내역이 찍혀 있었다.

또한, 100만 원짜리 자기앞수표 100장 1억 원과 1만 원짜리 현금다발로 1천만 원을 내어주었다.

은행 담당자가 현수에게 여러 가지 금융상품을 권하였지만 거부했다.

현수는 아주 태연하게 지갑에 신분증과 신용카드, 현금카드, 그리고 수표를 넣었다.

도장은 별도로 정장 주머니에 넣고, 현금다발은 5다발씩 나누어 넣었다.

현수의 이런 모습을 은행 담당자가 쳐다보고는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동안 당첨자들을 많이 보았지만 현수처럼 침착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침착하다고 수상한 것은 아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현수가 뒤돌아 나가는 것을 보았다.

이상하게 다시 또 만날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담당자는 럭키복권의 다른 당첨자를 상대해야 하기에 현수에게 시선을 거두었다.

대륙은행 본점을 나온 현수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후후후, 이제야 자금이 준비되었군.”

무엇을 해보려고 해도 현재의 현수가 가진 돈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럭키복권에 당첨된 거였다.

1등 2매와 2등 2매에 각각 당첨되어 세금을 제하고 151억 6400만 원을 수령했으니 말이다.

음주운전 교통사고도 피하여 당당하게 걸어 다닐 수 있었기에 야망을 제대로 펼칠 수 있게 되었다.

그 시작점에 서서 럭키복권 당첨금으로 원하는 것들을 시작할 수 있었다.

“흐음, 일단 점심 식사를 하고 다음 일을 하는 것이 좋겠군.”

택시를 세워서 그것을 타고 10분을 이동하여 ‘이가 설렁탕’ 앞에 내렸다.

30년 전통을 자랑하는 설렁탕집으로 제법 유명한 곳이었다.

“설렁탕도 나쁘지 않아.”

마침 빈자리가 보였기에 그곳으로 가서 앉았다.

특 설렁탕과 중자 수육 한 접시를 주문했다.

깍두기와 배추김치를 접시에 덜었다.

이윽고 특 설렁탕과 중자 수육 한 접시가 차려졌다.

“설렁탕과 수육을 언제 먹어보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군.”

설렁탕에 후추를 조금 뿌리고 소금을 넣고 간을 맞추었다.

그런 다음에 설렁탕을 떠먹으면서 깍두기와 배추김치를 번갈아 먹었다.

입에 착착 붙을 정도로 부드럽고 고소하고 맛있었다.

30년 전통이라서 그런지 마음에 들었다.

중자 수육도 고소하고 부드러웠다.

‘아, 너무 맛있어.’

너무 맛있어서 진짜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

그렇다고 성인 남자가 창피하게 눈물을 질질 흘릴 수는 없었기에 재빨리 냅킨으로 땀을 닦는 것처럼 하면서 눈물이 흘러내리려는 것을 닦았다.

자연스럽게 이마의 땀도 닦았다.

“설렁탕을 먹는 것이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나는 이런 것도 하지 못하고 살았어.”

너무나 억울했었던 전생이었다.

이제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밀레니엄 시대로 회귀했다.

미래에 일어나는 일들을 많이 알고 있었기에 그것을 이용하면 충분히 사업가로 성공할 수 있었다.

여기에 복수까지 하고 말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아주 특별한 것들을 준비해야 했다.

“자금은 충분하니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어.”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와이셔츠를 입은 회사원들이 삼삼오오 이가 설렁탕 안으로 들어갔다.

길가에 서서 손을 치켜들어 택시를 세우고 탔다.

“청담동으로 가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부우웅!

택시가 청담동을 향해 달렸다.

택시 기사가 룸 밀러로 뒷좌석에 앉아 있는 현수를 쳐다보았다.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기에 말을 붙이기가 어려웠다.

“청담동 어디로 갈까요?”

“청담사거리 앞에 세워주시면 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택시가 청담사거리 앞의 길가에 멈추었다.

택시비를 지불하고 내린 현수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청담 최고 부동산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고급 빌라를 매입하려고 하는데 매물이 있습니까?”

“매물은 있는데 원하시는 빌라가 있습니까?”

“신축한 제우스 빌라가 좋아 보이던데 말입니다.”

“제우스 빌라는 평수가 넓어서 가격대가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매물은 있습니까?”

“그럼요.”

작년 초에 신축한 제우스 빌라는 2개 동이 나란히 위치해 있었다.

한강 조망이며 고급 빌라이기에 가격이 비싸다.

각각 12층 건물이며 54평형이 가장 작은 평수이며 가장 넓은 펜트하우스는 168평형이었다.

아무나 구입하여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현수를 부동산 중개인이 쳐다보고는 머리를 갸웃거렸다.

강남에 위치한 아파트도 비싸기에 보통 사람이 구입하기는 쉽지 않았다.

23살의 현수가 강남의 아파트를 구입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랬기에 부동산 중개인이 머리를 갸웃거린 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장난이나 하려고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부동산 중개인이 부동산 목록을 들고 오더니 현수에게 보여주었다.

“이게 작년 초에 신축한 제우스 빌라입니다. 평수는 몇 평으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좀 넓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가장 작은 평수가 54평형입니다.”

“요즘 평당 시세는 어떻게 됩니까?”

“강남구의 아파트 가격이 평당 650만 원 수준입니다. 하지만 제우스 빌라는 평당 720만 원입니다. 54평형이면 3억 8880만 원이지요.”

“좀 더 넓은 평수는요?”

“그렇다면 84평형은 어떻습니까? 평당 720만 원이니 6억 4800만 원입니다.”

제우스 빌라의 84평형 내부 모습을 찍은 사진들을 살펴보다가 뒷장의 펜트하우스가 보였다.

확실히 84평형도 대단하지만 펜트하우스의 모습은 더 럭셔리하고 고급스러웠다.

“혹시 펜트하우스가 매물로 나온 겁니까?”

“예, 오늘 오전에 급매물로 나왔습니다.”

“그래요?”

현수가 호기심을 보이면서 제우스 빌라의 펜트하우스 사진들을 살펴보았다.

표시된 것을 보았더니 펜트하우스는 168평형이었다.

“제우스 빌라의 펜트하우스는 얼마입니까?”

“IMF이전에는 15억이 넘었는데 현재의 시세는 12억5천만 원입니다.”

“현재의 시세가 아니라 급매물로 나온 시세 말입니다.”

“11억5천만 원입니다.”

“호오, 그렇습니까?”

“쉽게 나오지 않는 매물입니다. 이런 급매물은 아주 드문 경우이지요.”

부동산 중개인의 말은 사실이었다.

내년에는 부동산이 폭등하게 된다.

20억 원 이상으로 폭등할 것이고 몇 년 후에는 40억 원 이상이었다.

돈만 있다면 지금 매입해 놓으면 엄청난 시세 차익을 올릴 수 있었다.

“으음, 제우스 빌라의 84평형과 펜트하우스를 보고 싶습니다.”

“정말 매입하실 겁니까?”

“둘러보고 결정할 생각입니다.”

이렇게 하여 부동산 중개인의 차를 타고 인근에 위치한 제우스 빌라로 향했다.

한강 조망이 되는 제우스 빌라는 웅장하고 멋있었다.

매물로 나온 84평형은 11층이며 12층은 펜트하우스였다.

소유자들이 매물로 내어놓은 것을 보면 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나거나 해서 망한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고급 빌라는 매물로 잘 나오지 않는다.

IMF 영향으로 대한민국의 경제가 완전히 작살난 상태였다.

회복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시간이 더 필요했다.

어쨌든 IMF라고 하는 사상초유의 사태로 인하여 대한민국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언제 IMF 시기를 탈출할 수 있을지 누구도 알지 못하였다.

현금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 현수에게 이것은 엄청난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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