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인간-1화 (1/217)

제1장 나는 돌아왔다 (1)

“으음, 이게 나의 젊은 모습이라니 신기하군?”

벽거울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가능성은 있었지만 진짜 생각한 대로 될 줄은 몰랐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성공했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어떻게 보면 무모한 도전이니까 말이다.

그는 178센티미터의 신장에 몸무게는 65킬로그램으로 호리한 편이었다.

얼굴은 평범하지만 못생기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세련되거나 하지도 않았다.

조금만 꾸민다면 훈남으로 보일 정도는 될 것 같았다.

고개를 살짝 돌려서 벽에 걸려 있는 일일 달력을 보았더니 2000년 1월 6일 목요일이었다.

벽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1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TV를 켰더니 마침 뉴스가 나오고 있었는데 2000년 1월 6일 목요일로 표시되어 있었다.

“후후후, 성공할 줄 몰랐는데 성공하다니 놀랍군.”

김현수는 자신의 두 다리로 서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었다.

그날의 사고 이후 누워서 살았기 때문에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몸의 절반이 마비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반신 불구가 되면 하체를 사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현수는 몸을 세로로 나눈다면 왼쪽 부분이 마비가 된 거였다.

그랬기에 왼팔과 왼다리를 사용할 수 없었다.

그 영향으로 휠체어에 앉아서 이동하였고, 가끔씩은 목발을 짚고 서 있어 보기는 했었지만 짧은 시간에 불과했다.

빰빠라빰!

갑자기 트럼펫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려 보았더니 흰색의 삼송 핸드폰이 침대 옆에 놓여 있었다.

그것을 집어 들어서 액정화면을 보았더니 익숙한 전화번호였다.

“으음, 드디어 그 전화인가?”

통화 버튼을 꾸욱 눌렀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현수야, 나 병규다.-

“어, 그래.”

-오랜만에 친구들이 모인다고 하는데 만나자.-

“어디로 가면 되는데?”

-신촌의 다락방으로 오후 5시까지 오면 된다.-

“알았다.”

-그래. 나중에 보자.-

“그래. 들어가라.”

통화를 종료한 현수가 눈을 번뜩였다.

평생을 원망하면서 살았었다.

그날이 다시 찾아왔기에 너무 신기했다.

“으음, 혹시나 했었는데 역시나 한병규에게서 전화가 왔군.”

입고 있던 옷을 벗고 팬티까지 다 벗었다.

나체로 벽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몸을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근육도 거의 없고 호리한 몸이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여 몸도 좀 만들어야겠군.”

욕실로 들어가서 샤워를 하고 나와서 수납장을 열어 새 속옷을 꺼내어 입었다.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점퍼를 걸쳤다.

군 만기 제대를 한 지 겨우 두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나마 머리카락이 자라 군인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흰색의 삼송 핸드폰을 점퍼 주머니에 넣고 지갑을 들어 펼쳤다.

신분증과 운전면허증이 있고 신용카드도 한 장 있었다.

현금은 10만 원이 들어 있었다.

“은행에서 현금을 좀 찾아서 가야겠군.”

원룸에서 나온 현수가 천천히 길을 걸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길이지만 현수에게는 느낌이 달랐다.

길을 걸어가는 시민들의 모습들과 아가씨들의 옷차림 등도 보았다.

상가의 모습도 복고풍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후후후, 모든 것들이 새롭고 신선하군. 낭만이 있어.”

현수는 두 달 전에 군 만기 제대를 하고 나서 집에서 한 달 동안 푹 쉰 적이 있었다.

계속 쉬고 지낼 수만 없었기에 부모에게 허락을 받고 동작구 노량진에 12평형 원룸을 얻어서 생활하고 있었다.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거였다.

대륙은행으로 들어가서 현금 서비스로 50만 원을 인출했다.

지갑에 현금을 넣었더니 두둑해졌다.

현수의 눈에 럭키복권을 판매하는 곳이 보였다.

씨익 웃으면서 그곳으로 들어갔다.

2게임을 표시하여 돈을 주고 럭키복권을 구입했다.

뒷면에 바로 이름과 주민번호, 주소, 사인을 하고 지갑에 다시 넣었다.

약속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기에 지하철을 타고 신촌으로 이동했다.

신촌역에서 내려서 지상으로 올라갔다.

태연하게 럭키복권 판매하는 곳으로 들어가서 2게임을 표시하여 돈을 주고 럭키복권을 구입했다.

‘후후후, 이 럭키복권이 각각 1등과 2등에 당첨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까?’

럭키복권 뒷면에 이름과 주민번호, 주소, 그리고 사인을 하고는 지갑에 넣었다.

원룸 인근의 노량진에서 럭키복권을 구입해놓고 다시 신촌역 부근에서 럭키복권을 구입했다.

각각 2게임씩 구입한 것으로 1등과 2등에 당첨되는 럭키복권이다.

1등 2매와 2등 2매이니 당첨금이 세금을 제하고 150억 원은 될 거 같았다.

자세한 것은 이번 주 토요일 즉, 내일모레에 추첨을 해보면 결과를 알 수 있었다.

왼손을 치켜들어 손목에 차고 있는 5만 원짜리 일제 싸구려 전자시계를 보았다.

“흐음, 이 싸구려 전자시계부터 바꾸어야 하는데 말이야.”

지금 당장은 돈이 없었기에 럭키복권 당첨 이후에 바꿀 생각이다.

시간을 확인해 보았더니 약속시간이 오후 5시였기에 아직은 한 시간 가까이 남아 있었다.

너무 일찍 원룸에서 나왔기 때문이었다.

약속장소가 10분 거리에 있었기에 적당히 시간을 보내었다가 갈 생각이었다.

현수의 눈에 신촌 서점이 보였기에 그곳으로 들어갔다.

다양한 책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한 권을 집어 들었다.

‘달라지는 밀레니엄 시대?’

책의 뒷면에는 밀레니엄 시대를 맞아 달라지는 것들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책의 내용이 생각보다는 부실해 보였다.

‘으음, 확실히 머리 돌아가는 것이 크게 떨어지는군.’

이 시대로 회귀하기 전만 하더라도 머리는 팽팽 잘 돌아갔었다.

스치듯이 본 것들도 머릿속에 각인이 된 것처럼 박혔었다.

암기력이나 기억력도 상상 그 이상으로 좋았었다.

“혹시나 해서 확인을 해보았는데 역시나 머리가 너무 형편없어.”

마치 이것은 9G 초고속 인터넷을 사용하다가 갑자기 2G를 사용하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다.

지금 당장은 어떻게 할 수 없었기에 답답하더라도 참아야 했다.

“오늘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고 럭키복권 당첨으로 돈을 수령한다면 가능해. 그때까지는 답답해도 참을 수밖에 없군.”

남들이 알 수 없는 말을 나직하게 중얼거린 현수가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다시 내려놓았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한차례 살펴보고는 뒤돌아 신촌 서점을 나왔다.

마침 눈앞에 도넛과 커피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적당히 시간을 때워야 하니 그곳으로 들어갔다.

현수가 도넛 3개와 커피 한잔을 놓고 창가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으음, 확실히 내가 살던 시대와는 모습이나 옷차림이 완전히 다르군.”

먼저 김이 모락 피어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에 설탕 가루가 묻어 있는 도넛을 한입 베어 먹었다.

부드럽고 달콤한 맛에 살짝 머리를 끄떡였다.

김현수는 이 시대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까 서기 2061년도에서 살았었던 84살의 노인이었다.

자신의 능력으로 남아 있는 모든 에너지를 사용하여 이 시대 즉, 서기 2000년 1월 6일 목요일로 영혼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와서 23살의 김현수 자신의 몸으로 스며들었었다.

불과 몇 분 만에 미래의 영혼과 현재의 영혼이 서로 융합이 되었다.

다른 사람의 영혼이었다면 서로 융합되기는 아주 어려웠을 거였다.

그나마 자신의 젊은 영혼이었기에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서로의 영혼이 융합된 거였다.

자신의 능력과 물건은 아무것도 가지고 올 수가 없고 오직 영혼만 시간 이동을 한 거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살아오면서 얻은 각종 기억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밀레니엄 회귀라고 할 수도 있었다.

“오늘은 나의 인생에서 가장 불행했었던 날이니 절대 두 번 다시는 당하지 않겠어.”

옆에 손님들이 없어서 그렇지 만약 누군가 있었다면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그를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도넛을 베어 물고 커피를 마셨다.

신촌의 다락방이라는 곳에서 고교 동창들을 만나면 술을 마시고 안주를 먹을 것이지만 마음 편하게 이렇게 도넛을 3개나 먹고 커피도 마시는 거였다.

오래 있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냅킨으로 입을 닦고 일어나 손목시계를 보았더니 약속 시간 15분 전이었다.

쟁반을 반납하고 도넛 가게를 나와 약속장소인 신촌의 다락방으로 걸어갔다.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더니 아늑한 분위기였다.

이런 분위기와 느낌 때문에 손님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현수야, 여기!”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살짝 돌려서 보았더니 구석 자리에 앉아 있던 고교 동창 한병규가 손짓하고 있었다.

4인 테이블을 붙여 놓았으며 그렇게 친하지는 않고 안면은 있는 고교 동창 2명이 옆에 앉아 있었다.

오늘 친구 즉, 고교 동창들이 전부 8명이 모여서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아직 4명이 도착하지 않았지만 곧 도착할 것이다.

현수가 병규 맞은편에 앉았다.

맥주 3병과 마른안주가 하나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벌써 시작한 모양이었다.

“현수야, 무슨 생각 하냐?”

“아, 아무것도 아니야.”

“제대 축하한다.”

“고맙다.”

“한잔 받아라.”

“그래.”

병규가 현수 앞에 맥주잔을 놓고 맥주를 부어주었다.

성격이 화통하고 다 좋은데 치명적인 것이 바로 술을 너무 좋아한다는 거였다.

그게 결국 죽음으로 이어졌다.

현수는 살짝 안타까운 눈으로 병규를 쳐다보더니 맥주잔을 들고 맥주를 마셨다.

“이야, 맥주를 단숨에 마시네?”

“·······”

평소의 현수는 맥주를 여러 번 나누어서 한잔을 마신다.

그런데 오늘은 맥주를 단숨에 마시니 병규도 살짝 놀랐다.

“군대에서 술 마시는 법이라도 배운 거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오늘 술맛 나겠는데?”

현수는 커피 땅콩을 집어 들더니 입에 넣고 씹었다.

고소한 맛의 커피 땅콩이었는데 이것을 얼마 만에 먹어보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때, 4명의 고교 동창들이 나타났다.

빈자리에 앉더니 맥주와 소주, 그리고 몇 가지 안주들을 주문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거라서 서로 인사를 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현수는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고교 동창들을 다시 보는 것이 무려 61년 만이었다.

그렇지만 사실대로 그것을 말할 수는 없었다.

믿어주지도 않을 거고 말이다.

미친놈 취급을 받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현수가 생각하기에 병규만 친하고 나머지 고교 동창들은 알고 지내는 정도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서로 술을 마시고 안주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3시간이 휙 지나갔다.

각자 회비를 2만 원씩 꺼내었다.

저녁 8시가 살짝 넘었기에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을 하고 신촌의 다락방을 나왔다.

병규가 나서서 노래연습장으로 가자는 것을 현수는 자연스럽게 거부했다.

내일 오전에 이력서를 넣어야 한다면서 말이다.

“같이 가서 노래를 불렀으면 했는데 말이야.”

“다음 기회에 하자.”

“그래. 알았다. 그만 들어가라.”

현수와 2명이 빠지고 5명의 고교 동창들이 노래연습장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고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현수는 2명의 고교 동창들과 손짓으로 인사하고 헤어졌다.

보통은 지하철을 타고 원룸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택시를 세워서 그것을 타고 원룸으로 향했다.

원래 현수는 병규를 따라 노래연습장으로 가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두 시간을 즐겼다가 나왔었다.

술에 취한 병규였지만 노래를 부르면서 취기가 조금 줄어들었기에 자신의 차 조수석에 현수를 태웠었다.

음주운전이지만 현수도 술에 취하였기에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렇게 병규가 운전하여 현수의 원룸으로 향하다가 교통사고가 일어났었다.

3대의 차를 들이 박고 가로수에 부딪치면서 병규는 즉사하고 조수석의 현수는 중상을 입어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현수는 평생을 장애를 안고 살아야 했다.

몸의 절반이 세로로 마비가 되어 왼팔과 왼다리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23살에 불과했었던 젊은 현수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가해자 병규는 즉사했기에 어디에 하소연을 할 수도 없었다.

‘틀림없이 이번에도 음주운전을 할 것이고 교통사고가 일어날 거야.’

이번에는 현수가 조수석에 타지 않았기에 교통사고를 당하지는 않을 거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택시가 원룸 앞에 도착했다.

택시비를 지불하고 차문을 열고 내렸다.

택시가 떠나는 것을 보고 원룸으로 들어갔다.

입고 있던 점퍼를 벗고 흰색의 삼송 핸드폰과 지갑을 꺼내어 한쪽에 두었다.

세면대에서 양치질을 하고 나서 입고 있던 티셔츠와 청바지도 벗었다.

팬티만 입은 상태로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어찌 되었을지는 자고 일어나보면 알게 되겠군.”

어쨌든 현수는 원 역사대로 병규가 운전하는 차에 타지 않았다.

그런 만큼 미래가 바뀌었을 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제는 현수와 상관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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