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뜻이라면
트레보 던전을 점령한 지도 5개월. 이곳에서 죽어나간 사람의 수가 수천을 헤아리고 이젠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
복수를 부르짖으며 도전한 레이지 길드도 4층을 넘기지 못하고 전멸했고, 심지어 알테어와 에크만도 소문을 듣고 이곳을 찾았다가 몇 차례 죽임을 당했다. 그 덕에 이 트레보 던전은 사람들 사이에서 최상급 던전의 윗단계인 금지(禁地)로 불리게 되었다.
그런 모습들을 난 어둠에 묻힌 채 그저 지켜볼 따름이다. 별로 관여하고 싶지도 않고, 굳이 관여할 필요도 없었다. 설치해놓은 마법 트랩이, 몬스터가 알아서 해결해 주기 때문에.
“콜! 다 보고, 들을 수 있는 거 알고 있다. 나와라!”
“음……?”
날 아는 자인 듯. 던전에 들어오자마자 굉장한 크기로 소리를 질러댄다. 자세히 보니…… 아론이다.
“…….”
“이 개자식아, 나와 보라고!”
나가지 않는다. 이미 몇 번이나 찾아온 바가 있는 아론이기에 그냥 놔두면 저러다 돌아갈 것임을 알고 있다.
“으음?”
퍼벙! 콰지지직! 콰앙!
나오라고 소리만 지르다 돌아가는 그 동안과는 달리, 분에 이기지 못했는지 트랩 속으로 달려든다. 뻔히 죽을 것을 알면서, 몸을 사리지 않고 무작정 달려든다. 그에 보답하듯 연달아 터지는 마법 트랩들. 순식간에 아론의 HP를 0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아론은 부활한 뒤, 다시 찾아왔다.
“나와! 나오라고!”
“…….”
오늘따라 더 과격한 모습을 보이는 아론. 다시 한 번 트랩 속으로 뛰어들며 길을 뚫는다. 물론 몇 발자국 못가서 사망. 걸음을 떼서 움직인 거리보다 폭발에 날아가서 움직인 거리가 훨씬 많다. 그러나 아론은 다시 부활해서 찾아왔다.
“소연에 관한 얘기니까 나와 보라고 이 새끼야!”
“음……!”
오늘따라 집요한 모습과 아론의 마지막 말이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는 내 마음을 흔들었다.
“……1층으로.”
슈우우웅-!
6층에 설치된 마법진을 이용하자 곧 1층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이 자식, 끝까지 안 나올 거냐!”
“……여기 있다.”
“이 빌어먹을 놈. 그렇게 외쳐댈 때는 안 나오더니 소연이 얘기를 하니까 바로 튀어나오는군.”
딱히 반박할 말이 없어 용건을 물었다.
“무슨 일이냐?”
“후우, 모르는 게 나을 지도 모르겠다만 그래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신족, 그 재수 없는 새끼들하고 싸우다가 이렇게 달려왔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신족이 중간계에 쳐들어왔다는 공지를 본 것 같다. 마왕이 침공해 왔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마왕이 죽고난 후, 중간계와 마계가 둘 다 약해진 것 같자 음흉한 속내를 드러냈다는 설정이던가?
그 탓에 프리스트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은 강제적으로 신족의 편이 되었고. 당연히 이번에도 어둠 쪽인 어쌔신과 네크로맨서는 신족의 편에 설 수 없다.
프리스트 중에서도 프리스트 이외의 다른 클래스를 병행하는 사람은 일시적으로 프리스트의 능력을 포기하고 인간의 편에 남을 수 있어서 나도 귀찮게 신족 편으로 끌려가지 않았지.
“무슨 일인데? 바깥세상 일이라면…… 돌아가라.”
“말했잖아, 소연이 일이라고. 후우,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뭔데 그래?”
“태연아, 침착하게 내 말 잘 들어. 절대 이 말 듣고 흥분하면 안 돼. 알았지?”
진지한 아론의 표정에서 뭔가 불길한 기운을 읽었다.
“알았어.”
“아씨, 침착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음……. 그래, 정신만 놓지 마라. 알았지?”
“대체 무슨 일이야?”
“알았지?”
“그래. 알았으니까 빨리 얘기해 봐.”
“너, 메일 확인 안 해봤지?”
“메일? 가끔 확인하는데.”
“아니, 그 메일 말고 리얼 모드 1단계에서 읽을 수 있는 메일 말이야.”
리얼모드 1단계라면 메일 기능이 있고, 쪽지 기능도 있었지만 항상 리얼모드 4단계를 사용하니 그걸 체크할 일이 없었다. 뭐, 어차피 내가 리얼모드 1단계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정작 중요한 일로는 보낼 일도 없고.
“그거라면 읽을 리가 없잖아. 내가 리얼모드 4단계만 쓴다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인데 올 리도 없고. 왜, 누가 편지라도 보냈데? 잠깐만.”
“아니! 보지 마! 너한텐 참 미안한 말이지만 내가 지금 천족 놈들 때문에 좀 바빠서, 그리고 너한테 뭐라 할 말이 없어서 빨리 얘기하고 가봐야겠다. 내 말만 들어. 알았지?”
“그래. 얘기해봐.”
“……소연이가 죽었다.”
“……뭐?”
“자동차 사고로 절벽에서 떨어져서 남편이랑 같이 죽었어. 그런데……. 자살인 것 같다.”
“……뭐라고?”
“후우, 넌 잘 모르겠지만 내가 수소문 해본 결과 저번 마왕군 침공 이벤트 내내 너를 쫓아다니고 그런 것 때문에, 자극 받은 남편이란 놈이 의처증 증세를 심하게 보였다나 봐. 듣자하니 소연과의 결혼 허락을 조건으로 회사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는데 그게 잘 안 풀리는지 시도 때도 없이 술 마시고 들어와서 너와의 관계를 추궁하고, 폭력을 휘둘렀다는군. 참다못해 경찰에 신고했더니 경찰이 그 새끼한테 매수당했고, 그래서…… 동반 자살을 생각한 게 아닌가 싶다.”
“그, 그런……!”
날 떠나갔어도, 날 힘들게 만들었어도 행복하기를 바랐는데……. 죽다니? 그것도 나 때문에? 매질까지 당하면서?
“아니야. 아닐 거야. 소연인 기독교라고. 절대 자살 같은 거 할 리가 없어!”
“그것까진…… 나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소연이가 운전석에 앉은 채 절벽 아래로 추락해 죽었다는 것이고, 맞은편에서 온 차는 없었다.
“……그럴 리 없어…… 그럴 리……. 6층으로.”
묵묵히 서 있는 아론을 뒤로하고 6층으로 돌아왔다.
“감도설정 변경, 1단계로.”
그리곤 아론의 말을 떠올리며 리얼모드 1단계에서 메일함을 열었다.
“있…… 다.”
메일함에는 가넷이라는. 소연이의 아이디가 발신자로 표시되어 있는 편지가 한 통 들어있었다.
“……말도 안 돼.”
[네가 이 편지를 읽을 때, 난 세상에 없겠지. 풋, 너무 진부한가? 하지만 사실이니까. 나, 널 그렇게 보내고 나서 힘들었지만 괜찮아지려고, 담담해지려고 많이 노력했어. 내가 한 선택, 후회해버리면 너한테도, 나한테도 참 안 좋을 것 같아서. 그런데…… 너무 힘들다. 찬업이가 날 위해주는 건 정말 고맙지만, 그게 과하다보니까 날 너무 힘들게 하네. ……(중략)……. 너한텐 참 미안한 마음뿐이야. 자살이라는 거, 신의 뜻을 거스르는 용서받지 못할 짓이긴 하지만 난 나쁜 애니까……. 지옥에서 벌을 받으라는 신의 뜻이라고 생각해. 신의 뜻…… 이겠지. 후훗, 신을 믿는다는 게 이렇게 좋은 핑계거리가 될 줄은 몰랐네. 이렇게 마지막으로 너에게 편지를 쓰지만……. 솔직히 네가 읽지 않기를 바라고 있어. 그래서 다른 메일이 아니라 여기에 보내. 세상의 모두가 울어도, 너만은…… 웃을 수 있기를 바라. 안녕.]
“큭큭큭큭, 신의 뜻이라고? 신의 뜻? 이 모든 게 신의 뜻이라고? 정말 이게 신의 뜻이라면……. 난 신을 죽이겠다!”
* * *
“크흠, 드디어 총공세인가? 골치 아프군. 이럴 때 그놈이라도 있어줬으면……. 적의 총병력은 어느 정도지?”
“약 5만입니다.”
인간들의 수도, 폴메르. 그 성 위에서 부하에게 보고를 받는 자는 다름 아닌 아론이었다. 거트가 눈 뒤집혀 드레보 던전을 공략하려다가 실패한 후,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아론이 6개 성을 회유해 수도를 장악한지 이미 1개월이 넘어갔다. 50%씩 하던 세금이 10% 내외로 바뀌고, 레이지 길드에서 독점하던 사냥터의 규제도 풀어버렸으니 일반 유저들이 환호하는 건 당연한 일. 일반 유저들에게 상당한 지지를 얻으며 국왕 자리를 맡게 된 아론은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터진 대규모 이벤트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프리스트들이 없으니 포션으로 모든 걸 해결해야하는데, 문제로군.”
“그렇습니다. 아무리 세금을 내렸다고는 해도 모두들 포션 가격에 버거워하고 있습니다. 몇몇의 여유 자본이 부족한 중수 유저들은 1시간 전쟁하고 3시간 사냥하는 일도 빈번하다고 합니다.”
프리스트가 무조건 신족 편에 서게 만든 것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페널티였다. 회복 주문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없으니 모든 회복을 포션으로만 해결해야했고 그 어마어마한 비용은 개개인이 부담해야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던전에 처박혀서 사냥만 하는 자도 속출했다.
“어차피 결론은 하나다. 전면전!”
“으흠, 승산이 적습니다만?”
“그래도 할 수 없지 않나? 우리는 살아날 수 있지만 적은 죽으면 그걸로 끝이다. 죽을 때 한 명이라도 같이 죽으면 어떻게든 이 위기를 타개해 나갈 수 있겠지. 모두 전면전 준비를 시켜라!”
결국 아론은 어느 한 쪽이 전멸할 때까지 싸우는 슬픈 선택을 했다. 천사들도 가지지 못한 부활의 축복을 자신들은 받았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아참, 어떤 사내가 온갖 장비들을 대량으로 사들인다고 하는데 그냥 놔둬도 될까요?”
“놔둬라. 요즘처럼 사람들이 많이 죽고, 아이템을 많이 떨구는 시기에 그걸 싼값에 사들여서 나중에 배를 불리려는 자들도 있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게 원래 시세보다 오히려 비싸게 주고 삽니다. 혹시 천족의 끄나풀이 아닐까요?”
“흐음, 그건 아닌 것 같다. 마왕군 침공 이벤트 때도 무기를 사들이는 자는 없었으니까. 뭔가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거겠지. 그냥 그자가 어디로 사라지는지 정도만 알아둬라.”
“알겠습니다.”
명령을 하달 받은 길드원은 신속히 자리를 빠져나가 전면전 준비를 시작했다. 이제 앞으로 1시간 정도 후면, 천족과 인간의 한판 대결이 펼쳐진다.
“모두 준비됐나?”
“예!”
“좋다. 적은 ‘신’도 아니고 고작 ‘신의 쫄다구’다. 칼로 찌르면 죽고, 활에 맞아도 죽는다. 강력한 마법이라면 몰살도 가능한,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 주제에 감히 인간계를 넘본 죄가 어떤 것인지 똑똑히 가르쳐주자!”
“와아아아아아!!!!”
끼이이익!
성문이 열렸다.
“돌격! 죽이고, 또 죽여라! 적은 살아날 수 없어도 우린 살아날 수 있다! 죽을 때 한 놈이라도 데리고 죽으면 승리는 우리 것이다!”
말뿐이라면 모르되, 총대장인 아론이 전면에 나서자 그 인간군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에 비해 침착하게 대형을 갖춰 맞서는 천족. 최고 통솔자인 신장이 그의 무기인 창을 휘두르자 하급, 중급, 상급 천사 할 것 없이 인간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검강!”
“헬 파이어!”
“헤븐즈 레이!”
수도 없이 많은 마법과 강기들이 맞부딪혔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폭음. 불과 1m 옆에 있는 사람이 소리쳐도 들리지 않을 정도의 소란 속에서 인간과 천사들의 난전은 계속됐다.
“크윽, 이대로는 밀린다.”
쉴 새 없이 검을 놀려 하나라도 수를 줄이던 아론이 잠시 전황을 살피더니 걱정스레 탄식했다.
그때였다.
“헛, 저건?!”
“메테오 스웜!!”
콰과과과과과광!!!
6대4 정도로 인간군이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커다란 다섯 개의 화염구가 천사들의 진영으로 떨어져 내렸다.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기에 범위 안에 들어있던 대부분의 천사가 등급에 상관없이 즉사. 그 수가 수백을 헤아렸으니 천사들의 기세가 확 꺾였다.
“저, 저걸 봐!”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잘 무장한 군대가 걷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온갖 아이템들로 무장한 언데드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선두에 서있는 콜로니스트. 그의 존재를 알아챈 아론은 있는 힘껏 소리쳤다.
“증원군이다! 우리를 돕기 위해 콜로니스트가 던전의 병력을 이끌고 참전했다!”
“와아아아아아아!!!”
트레보 던전이 유저들에게 금지로 불릴 정도로 공ㅍ의 대상이었던 만큼 아군으로 돌아섰을 때의 효과는 컸다.
그런데 자세히 살피니 그뿐이 아니었다.
“오른쪽에도 있다!”
“적의 후방에도!”
“알테어와 에크만이다!”
콜로니스트가 난입한 적의 우측 말고도 후방과 좌측에 각각 알테어와 에크만이 등장했다. 콜로니스트의 던전이 최고로 꼽히는 것을 보고 자극 받아 하나씩 거머쥔 던전의 병력들을 이끌고서.
이쯤되니 그들이 갑자기 나서는 이유를 알 수 없긴 했지만 병사들의 사기를 증진시키고 적의 사기를 최대한 떨어뜨려야했다.
“셋의 병력이 적을 포위했다! 우리도 정면만큼은 확실히 지키자!”
“와아아아!!!”
조금 전까진 밀리고 있었지만 지금은 되레 천족의 군대를 포위한 상황이 되었으니 병사들의 기세는 산도 놀라 도망갈 정도로 급격히 치솟았다.
* * *
“메테오 스웜!”
인간들이 신의 졸개에게 밀리는 것을 보고 황급히 전장에 뛰어들었다. 측면에서 공격해 올 줄은 몰랐던지 눈만 동그랗게 뜨고 죽어나가는 천사들. 마법 한 방에 수백이 나자빠지자 남은 녀석들도 그 자리에 굳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전원 공격!”
내가 데리고 온 트레보 던전의 몬스터들은 일반 몬스터들과 달랐다. 내가 가진 돈의 대다수를 털어 마련한 장비들로 무장을 한 상태. 어지간한 동급 몬스터는 가뿐하게 찜 쪄 먹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에 호응해, 후방에서 알테어, 좌측에서 에크만이 공격해 들어갔다. 그들의 병사 역시, 내 병사와 마찬가지로 인간들의 아이템을 충분히 착용하고 있었다.
“음……. 저놈이군!”
내 곁을 지키고 있던 변종 미노타우르스와 데스 나이트들이 전장에 합류하는 것을 보고 잠시 짬을 내서 고개를 돌리자 적의 대장으로 보이는 덩치 큰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오우거보다도 큰, 한 6m는 될 법한 키에 창인지 전신주인지 구분이 안 될 무식한 무기를 들고 있다.
“화룡의 이빨!”
잔뜩 굶주린 화룡이 아가리를 크게 벌리며 날아갔다. 그러나 그 위험성을 느꼈는지 훌쩍 뛰어서 피하는 놈.
“감히 나, 신장 고다단에게 덤비다니 건방진 놈!”
“음홧홧홧홧홧! 신도 아니고 조무래기인 주제에 말이 많구나!”
어느새 도착한 알테어, 에크만.
‘신장’이라는 것에 대단한 프라이드를 가진 듯한 고다단의 말을 그냥 넘어가면 그들이 아니었다.
“뭐, 뭣이?!”
부우웅-!
전신주같은 창을 찌르는 것도 아니고 휘둘러 온다. 스쳐도 뼈가 다 으스러질 판. 그러나 힘 대결을 피할 알테어가 아니다.
“으하하하하하! 감히 힘에서 나와 겨루어보겠다는 게냐!”
누가 신장이고 누가 인간인지 모르겠다. 알테어가 손에 맞지도 않는 커다란 창을 잡고 좌우로 흔들자 신장의 몸이 떨어질듯 휘청거린다. 그러다 손을 놔서 땅바닥에 신장을 자빠뜨리는 알테어. 그러고는 슬쩍 내 눈치를 봤다.
“알아서 처리하십시오.”
내가 원하는 건 이런 조무래기가 아니었다.
내가 허락하는 말을 하자 알테어의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흐른다. 그리고는 묠니르를 꺼내 들었다.
“흐흐흐, 넌 이제 끝이다!”
콰앙!
달려드는 알테어의 망치를 허겁지겁 창으로 막아낸 신장의 몸이 땅으로 움푹 꺼진다. 못 본 사이에 한층 더 파워 업한 듯하다.
“아이템이란 것들, 써보니 꽤 좋더구만?”
“으흠……!”
아이템 빨. 드디어 알테어와 에크만도 아이템에 붙은 옵션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
콰직!
이십여 번의 격돌 끝에, 신장의 창이 거짓말처럼 부러져버렸다. 무기마저 사라진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죽음 뿐!
사신처럼 신장을 내려다 본 알테어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묠니르로 신장의 머리를 터뜨려버렸다.
이것으로 순식간에 상황 종료.
“아니?”
신장, 고다단이 죽자 하늘에서 굉장히 밝고 아름다운 한 줄기 빛이 내려왔다. 그와 함께 인간들과 접전을 벌이던 천사들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어울려 싸우던 적이라곤 일부 프리스트들밖에 남지 않았다.
“오옷, 저건!”
“신이다!”
광명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는 중년인. 몇 번 본적 있는 레비스트로스라는 이름의 신이다. 평온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놈을 보고 있자니 속에서 열불이 치밀어 오른다.
“인간이여, 나의 사랑스런 아이들이여. 오늘 너희들의 위대한 의지의 힘을 잘 보았다. 잘못된 길로 빠진 천계의 장수를 쓰러뜨린 그대들이 나는 너무 자랑스럽구나.”
“의지의 힘은 무슨!”
자신의 공이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에게로 나누어지는 것 같자 알테어가 투덜거렸다.
신은 땅으로 천천히 내려와, 머리가 박살난 신장의 시체 앞으로 갔다. 그리고 박살난 놈의 머리에 손을 얹고 뭐라 중얼거렸다.
“허헛!”
“살아난다!”
터져버렸던 머리가 복구되며 고다단의 몸이 조금씩 움직였다. 신이 자신의 권능으로 그를 부활시킨 것이다.
“어리석은 고다단이여, 네 죄를 깨달았느냐?”
“예. 창조주시여.”
“이제 올라가자꾸나. 넌 하늘에서 네 죄에 맞는 벌을 받게 될 것이다.”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고다단은 땅바닥에 머리를 찧다시피 하며 신에게 절을 올렸다.
“아주 생쑈를 하는군.”
“응?”
“무엄하다!”
“무엄하긴 뭐가 무엄해? 한번 디진 놈은 빠져!”
알테어가 나서자 고다단이 움찔거리며 물러섰다. 죽기 전의 기억이, 몸이 반응한 것이다.
그러나 신은 아주 여유로운 표정으로 한 발 나선다.
“허허, 그대는 뭐가 그리 불만인가?”
“신, 인간사의 모든 것들은 다 당신 뜻대로 행해지는 것인가? 당신의 의지대로?”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나의 뜻은…….”
“잡소린 그만두고, 인간이 죽고 사는 모든 것도? 어떠한 삶을 사는 가, 어떤 인연을 맺는 가도?”
“그렇다.”
“그럼…… 죽을 이유는 충분하군!”
몸이 앞으로 쏘아지며 화룡의 검으로 신의 심장을 노렸다. 그러나 여유 있게 손을 휘둘러 보호막을 치는 신. 그냥 공격으론 안 될 것이란 걸 알아채고 급히 회전하며 검을 회수했다.
“화룡의 이빨, 화룡점정!”
화룡을 뿜어내고, 그 반동으로 한 바퀴 더 돌아서 이번엔 화룡을 승천시킨다. 두 마리의 화룡이 어울리며 신의 보호막을 두드릴 동안 화룡의 검을 땅에 박고 이번엔 드래곤 슬레이어를 꺼냈다.
“메테오 스웜!”
다섯 개의 화염구가, 신의 보호막 위로 작열한다. 그리고 그 순간, 하나의 음성이 귓가를 때린다.
[‘신에게 싸움을 건 자’의 수식어를 획득하셨습니다.]
“크흠!”
깨질 것을 염두에 두었는지 두 마리의 화룡까지만 감당하고, 다섯 발의 화염구가 떨어질 때는 뒤로 몸을 날려 피한다. 이것으로 보아, 아주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다.
“메테오 스웜!”
드래곤 슬레이어의 한계치. 5일간 10써클 마법 사용불가라는 제약이 붙지만 무리해서 다시 한 번 메테오 스웜을 퍼부었다. 그리고 드래곤 슬레이어를 신에게 던지며 다시 화룡의 검을 뽑아들었다.
“화룡의 이빨!”
또 한 마리의 포악한 용이 포식자로써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아가리를 벌리고 쏘아져갔다.
“이걸 써라!”
아직 이렇다 할 데미지도 입히지 못했는데 빠져나가는 마나는 엄청나 곤란해 하고 있을 때, 에크만이 두 자루의 창을 던져왔다. 정확히 내 앞에 박히는 창들. 하나는 궁그닐이고, 다른 하나는……?
“룽기누스의 창이다. 신을 상대하려면 그 정도는 써야지!”
과거 신을 찔렀다는, 찔리면 회복이 되지 않는다는 또 하나의 궁극의 창. 그것마저 에크만의 손에 있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궁그닐!”
먼저 신을 향해 궁그닐을 힘껏 던졌다.
그리곤 그 뒤를 따라 돌진!
“방어!”
간단한 시동어였다. 그러나 그 위력은 대단했다. 다섯 발이나 되는 메테오 스웜을 몽땅 막아내고, 또 화룡마저 흩어내 버린다. 궁그닐이 닿는 순간 크게 흔들렸지만, 깨지지는 않았다.
“차핫!”
창 관련 스킬 따윈 모른다. 다만, 육체적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보호막을 찔러댈 뿐이다. 한번씩 찌를 때마다 위태위태하던 보호막이, 다섯 번째 찌를 때 비로소 파괴되었다.
“홀리!”
퍼엉!
막고 자시고 해봤자 소용없다. 눈앞을 가득 메우는 하얀 빛이, 전신을 강타했다. 그 한 번의 공격으로 정신이 아득해진다. 금방이라도 의식의 끈을 놓아버릴 듯, 자신과의 싸움에 들어갔다.
“크아앗!”
마지막으로, 룽기누스의 창을 신에게 던져본다.
그러나 명중 여부를 따지기도 전에 한 번 더, 하얀 빛이 내 몸을 때렸다.
“내세에 속죄하라!”
“크아아악!!!”
“콜!!!!”
더 이상의 고통은 없었다. 오히려 평안한, 그리고 아득한 기분만이 전신을 감쌀 뿐이다.
그렇게, 포근한 느낌을 받으며 의식의 끈을 놓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