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변해가는 마음들 (33/43)

#변해가는 마음들

“길드장, 급보입니다!”

거트가 초조한 마음으로 왕좌에 앉아 마인의 군대가 수도로 오지 않기를, 콜로니스트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이곳에 오지 않기를 빌고 있을 때, 문을 박차고 요즘 자주 보던 정보원이 뛰어들어 왔다.

“엥? 지금 뭐 하십니까?”

인기척도 없이 방으로 뛰어 들어온 사내는 거트의 기도 자세를 가리키며 설명을 요구했다.

“험험, 내가 명색이 프리스트이지 않냐? 그래서 신께 기도를 드렸지. 마인이……. 크흠, 빨리 이곳으로 오게 해달라고. 후딱 해치워버리고 평화를 되찾을 수 있게.”

“헛, 그럼 그 기도가 진짜 통했나본데요?”

“뭐, 뭐라고?”

“급보에요. 뤼크레스가 함락당했다는.”

“그럴 리가! 해가 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함락 당했다고? 스피릿 길드가 성을 포기한 거냐?”

“아니오. 오히려 베셀 영지에서 지원까지 받아서 용감하게 싸웠다는데요? 뤼크레스에 길드 하우스를 가진 길드들도 꽤 많이 참여했고, 일반 유저들도 상당수 참여했는데도 일방적으로 깨졌답니다. 마인이란 놈은 코빼기도 못 보고.”

보고를 들은 거트는 놀라서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적이 삼만 대군이라고는 하지만 한 주먹 거리도 안 되는 세켈레톤이나 힘을 줘서 치면 뼈가 똑 분질러질 스켈레톤 나이트, 아쳐, 메이지 같은 놈들이라기에 은근히 얕보고 있었는데, 마스터급이 다수 포진해 있는 길드 2곳을 포함한 수 백의 유저가 일방적으로 깨지다니.

필시 보고서에 나온 ‘정체를 알 수 없는 후방 부대’의 짓일 거란 건 알고 있지만 마인의 부대 전체에 대한 두려움이 스멀스멀 가슴속에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짧은 시간에 성을 함락시킨 것도 놀라운데 정작 중요한 마인은 코빼기도 안 비췄다지 않는가? 그렇다는 것은 뭔가 숨겨둔 힘이 더 있다는 소릴 텐데 말이다.

“그, 그래서 성을 함락하고 그놈들은 어떻게 하고 있지? 설마 이리로 진군하고 있나?”

“아니오, 빼앗은 뤼크레스 성에 그대로 잔류해 있답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그곳에서 지낼 생각인가 본데 아직 밤도 많이 남은 상황에서 무슨 속셈일까요?”

“그, 글쎄. 또 뭔가 꾸미는 지도 모르지.”

거트는 자기 입으로 말해 놓고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소름이 돋은 것처럼.

“어찌 됐든 다음 목표는 베셀 영지나 수도. 둘 중 하나겠죠. 아참, 소식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또?”

“듀폰 영지를 함락시켰던 몬스터 군단이 베테랑 길드의 공격 몇 번을 압도적인 우세로 막아내더니 느닷없이 성을 파괴하고 이동하기 시작했답니다. 거의 비코 영지 수준으로 말이죠.”

“설마 여기로 오는 건가?”

듀폰에서 수도로 오려면 작은 산맥 하나를 지나야 하지만 거리상으로만 생각 했을 때 가장 가까운 곳이 수도였기 때문에 거트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만일 몬스터 군단과 마인의 군대가 양동 작전이라도 펼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방향으로 봐선 아닌 것 같습니다. 남서쪽이니까 아무래도 오마이스 영지 쪽인 것 같은데요? 마인의 군대에 피해 안 입는다고 설쳐대더니 잘나신 연예인 양반들이 꽤나 바빠지겠군요.”

마인 이벤트가 시작되고 마인의 군대가 자신들의 성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이동하자, 마인도 자신들을 두려워한다는 둥 헛소리를 해댄 엔젤 하트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사내는 쌤통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언제 방향을 바꿀지 모르니까 계속 주시하도록. 그리고 콜은, 아직도 연락이 없나?”

“예. 계속 귓속말을 보내고 수소문을 하고 있지만 본 사람도 없고, 연락도 닿지 않고 있습니다. 길드장, 혹시…….”

“혹시?”

“혹시 콜로니스트님이 부업으로 운영자를 하시는 게 아닐까요? 솔직히 그분 정도면 회사 밖에서도 스카우트 제의를 할 법하지 않습니까?”

“에라, 이 자식아. 생각을 해봐라. 운영자를 하면 이벤트나 각종 비밀 사안을 다루게 될 텐데, 그렇게 되면 유저로서의 생활은 끝 아니냐? 콜리가 그런 짓을 할 것 같아? 마음만 먹으면 골드를 팔아서 운영자를 해서 버는 돈보다 많이 벌 수도 있는데.”

“듣고 보니 그것도 그러네요.”

사내가 진실과 근접한 의견을 내놓았지만 거트의 질책 때문에 쉽게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고 말았다.

“으으, 어쩔 수 없다. 아론 불러와!”

“옙!”

아론을 불러온다는 것.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사내는 기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콜로니스트님이 지휘를 해주면 저 멍청한 길드장이랑 있을 때보다 살아날 확률이 수십 배는 더 높아지지!’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사내는 급히 수소문해서 아론이 있는 위치를 알아냈고 쪼르르 달려가서 얘기를 전했다.

“거트 형, 마침 잘 불렀어. 세금이 50%라고? 그게 말이 돼? 세금을 낮춰서 한 명이라도 더 무기를 들게 해도 모자랄 판에 세금을 이렇게나 높이는 게 말이 되냐고!!”

사내에게 말을 전해들은 아론은 안 그래도 하고픈 말이 많았던지 씩씩 거리면서 문을 박차고 들어와 큰소리부터 냈다.

“야야, 그렇게 소리치지만 말고 내 말 좀 들어봐. 지금 힐름을 주도해 가는 게 누구냐. 우리 레이지 길드와 여섯 개의 대영지 주인들 아니겠냐? 그런데 그 중 하나인 비코 영지가 심각한 타격을 입었으니 이건 균형에 큰 구멍이 뚫린 셈이지. 우린 그 무어소다 그 구멍을 메워야 해! 그러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많은 돈이 필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솔직히 여인궁의 실력만으론 성을 빼앗겼어도 진작 빼앗겼어야 하잖아? 그런 실력의 길드를 하나 살려보겠다고 수백 수천의 유저들을 엿 먹이다니,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소리야? 그리고 형 말이 맞다고 쳐. 그럼 아직까진 크게 위험하지도 않은 축을 일으켜 세우겠다고 당장 위험한 축 두 개를 버리는 건 뭐하자는 거야!”

“그, 그건……. 그래도 네 형수님 성인데 사정 좀 봐주라.”

“에린 누나가 형한테 마음 없는 거 다 아는데 형수는 개뿔! 이게 다 에린 누나한테 환심 사서 마음을 돌려보려고 그러는 거잖아. 누가 모를 줄 알아? 여자 때문에 세상을 말아먹을 참이야!”

“너, 말이 심하다.”

격해진 아론의 말에 거트도 심사가 뒤틀린 듯, 목소리를 가라앉고 표정은 굳어졌다.

“심하긴 뭐가 심해! 벌써 수도까지 일곱 개의 성 중에 두 개의 성이 함락됐어. 아니, 뤼크레스를 도왔던 베셀 영지도 상당한 타격을 입었고, 비코 영지는 수비할 성벽도 없으니 세 개가 함락 됐다고 봐도 옳겠지. 그런데 그동안 형은 뭐 하고 있었어? 열심히 싸우는 사람들 등골 빼먹으면서 형 주머니만 채우고 있었잖아! 듣자하니 수도 주변의 몬스터 정리도 아직이라던데, 적이 수도로 쳐들어오면 어떻게 할 거야? 왕이면 왕답게 행동을 하라고!”

“내가 언제 진짜 왕인 적 있었냐? 그저 니들이 하라고 하는 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였지! 계속 남의 말만 듣다가 이제야 내 뜻대로 좀 해보겠다는 데 그게 뭐가 나빠!”

“상황이 그럴 때가 아니잖아!”

“그럴 상황이든 아니든 난 왕이야. 세율 결정은 왕의 고유 권한이고! 난 내 마음대로 할 거니까 참견하지 마. 그리고 아론, 명령이다. 지금 당장 콜을 찾아와! 콜을 군.사.로 삼고 마인의 군대와 싸움을 벌이겠다!”

“으으, 마음대로 해!”

둘의 말싸움은 서로에 대한 감정의 골만 깊게 파인 채 아론이 문 밖으로 나가면서 끝이 났다.

아론이 쾅 소리 나게 닫고 나간 문을 보며 중얼거리는 거트.

“왕은 나야. 내가 왕이라고!”

* * *

“휴우, 다행이군. 다행이야.”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있습니까, 선배?”

“그래. 지금 아론님이 콜로니스트님을 부르러 가기 위해 로그아웃 하셨다는군. 길드장을 만나러 들어갔을 때 뭔가 둘 사이에 큰소리가 오갔다고는 하는데 별일 아니겠지.”

아론과 거트 형 사이에 큰소리가 오갔다고? 아론이나 거트 형, 모두 어지간한 일은 웃고 넘길 사람들인데 무슨 일이 있던 거지?

“그나저나 이제 좀 살겠군. 콜로니스트님이 오면 뭔가 판도가 달라지지 않겠어? 상황이 또 다른 국면에 다다랐다고는 하지만.”

“또 다른 국면이요?”

“아, 내가 말 안 했나? 조금 전에 듀폰을 점령하고 있던 몬스터 군단이 베테랑의 공격을 또 한 번 막아내고 남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동하기 전에 듀폰 성을 비코 영지만큼이나 심각하게 부숴놓고.”

“남서쪽이면, 오마이스 영지?”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지금쯤 엔젤 하튼가 뭐시긴가 하는 재수덩이들은 대책회의 한다고 난리 났을 걸? 마인이 지들 비켜갔다고 지들이 신의 보호를 받느니 어쩌니 헛소리 할 때부터 알아봤지.”

선배 정보원은 엔젤 하트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엔젤 하트가 위험에 빠진 게 잘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정보원들 중에 우리 길드 정보원이 제일 말이 많군. 정보원이 이래도 되는 거야?

“선배, 그런데 지금 우리만 떠들고 있는 거 알아요?”

“냅둬. 이렇게 지루하기만 한 일 수다라도 떨면서 견뎌야지. 소리는 적에게만 안 들리게 하면 되는 거야. 그리고 우리가 떠든다고 태클 걸 간 큰 놈도 없어. 여인궁 쪽 인물이 아닌 이상.”

길드의 이름을 믿는 것인지 선배 정보원의 말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아니, 저 정도면 거만함이나 오만함으로 불러야 하나?

“아참, 내일 탈환전이 몇 시라고 했죠?”

“날이 밝는 즉시는 적도 경계한다고 경계심이 풀어진 두 시간 후에 공격한다고 했지, 아마? 전면전은 무리고 게릴라전으로 치고 빠진다니 제법 효과가 있을 거다.”

오, 아주 좋은 정보를 얻었다. 게릴라전으로 날이 밝은지 두 시간 후에라? 너무 확실하게 대비하면 의심 살 테니 조금은 내어주는 것도 필요하겠군.

“그렇다면 일단 성문부터 수리해야겠어. 텔레포트!”

들키지 않도록 살금살금 뒤로 돌아가 뤼크레스로 이어지는 텔레포트 스크롤을 찢었다.

돌아오자마자 라노크에게 명령하여 성문 복구 작업을 준비시켰다. 인부야 수천, 수만이 있으니 걱정할 것 없었고, 나무는 근처 숲에서 동원했다. 그 덕에 정보원들의 위치가 더 뒤로 물러났지만 큰 상관은 없을 터였다. 그런다고 그들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다 됐군. 이제 스켈레톤을 이십 마리 씩 스무 팀을 만들어서 성 주위를 순찰하게 해라. 스켈레톤 아쳐와 메이지, 레이스는 다 합쳐서 2백 마리만 성벽 위를 지키게 하고. 아, 그리고 그들 하나당 본 나이트 한 마리씩을 붙여서 화살 공격 등을 방어하게 하라. 남은 숫자는 그냥 휴식을 취하게 하도록. 그리고 리치들은 혹시 있을지 모르는 마법에 의한 습격에 대비하고 있다가 적의 마법이 날아오면 상쇄시키도록.”

“알겠습니다.”

공격은 당해주되, 피해는 최소화시키기 위해 일부러 미끼를 던져주었다. 하지만 그냥 쉽게 먹으라고 준 미끼는 아니다. 아무리 그냥 스켈레톤이라도 스무 마리나 되는 숫자를 상대하려면 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하고, 그 시간이면 방향과 위치가 노출된다. 위치나 방향이 드러나면 스켈레톤 아쳐와 메이지, 그리고 레이스가 화살, 마법 공격. 그리고 스무팀이나 만들면 서로 간의 거리 차이가 얼마 나지 않기 때문에 섣불리 건드릴 수도 없다.

이렇게 대충 방비하고 또다시 라노크에게 전권을 일임한 뒤, 잠시 로그아웃을 했다. 조금 전 정보원을 통해 들은 얘기에서 아론이 집으로 찾아올 거라는 내용이 있었으니까.

띵동! 띵동!

구시대부터 지금까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은 초인종 소리가 들리며 아론이 도착했음을 알렸다.

흐음, 뭐라고 핑계를 대야 수긍하고 돌아갈까?

“기다려.”

일단 내 순발력을 믿어보기로 하고 문을 열었다. 안 열었어도 아론에겐 보조키가 있지만.

들어오자마자 왜 요즘 안 나타나는지부터 따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아론은 냉장고로 가 냉수부터 찾았다.

“하, 이제 좀 살겠네.”

“야, 지금 겨울이거든? 무슨 삼이라도 고아먹었냐? 왜 오자마자 냉수를 찾아?”

“후우, 너 요즘 접속 안 하지?”

“응? 으응.”

단정적으로 말하는 아론 앞에서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기에 요즘 접속하지 않는 것으로 했다.

“그럴 줄 알았다. 네가 접속했으면 당장에 찾아가서 따졌겠지.”

“무슨 일인데?”

“내가 거트 형 때문에 아주 미치겠다. 지금 세율이 얼만 줄 아냐? 자그마치 50%다. 그 뿐인 줄 알아? 지금 마인 이베느라는 게 시작돼서 대륙이 난리인데…….”

아론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모두 잘 아는 내용들이었지만 모르는 척 가만히 듣고 있었다.

말을 할수록 점점 열을 내던 아론은 결국 몇 잔의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고 컵을 탁! 내려놓으면서 말을 마쳤다.

“변해도 너무 변한 것 같다. 그리고 너를 군사로 쓰겠다느니 하는 걸로 봐선 이제 완전히 독재 군주가 될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냐?”

“글쎄. 민심이 돌아서면 자리를 내놓게 되지 않을까?”

“그것도 그럴 만한 세력이 있어야 말이지. 그 재수 없는 엔젤 뭐시긴가 하는 놈들한테 그 자릴 맡기겠냐, 누구한테 맡기겠냐? 이거 길드를 새로 만들어서 뒤집어엎을 수도 없고…….”

확실히 거트 형이 독재를 해도 현재로썬 레이지 길드를 이길 길드가 없었다. 3백명이라는 길드원의 수는 세 개의 성과 맞붙어도 우위를 점할 수 있게 할 테니까.

그나마 가능성 있는 게 엔젤 하트와 더 메지션이지만 엔젤하트는…… 성을 얻으면 더 심할 것 같고. 더 메지션은…….

“뒤집어엎을 수는 있지. 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이번 마인 이벤트를 통해서 된통 당할 것 같은데 그러고도 정신 못 차리면 그땐 정말 뭔가를 해야겠지.”

“엥? 그 말은 너도 마인 잡는 것에 자신이 없다는 소리냐? 하긴, 던전에서 기어 나오는 놈들에 몬스터 대군, 좀비가 7천, 마인의 대군. 어떻게 싸우기 막막하겠지.”

아론은 자신이 말하면서도 주눅 드는지 갈수록 말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표정도 암담해졌고.

“난 이번 이벤트에 참가 안 해.”

“뭐? 네가 없으면 어떻게 하라고! 거트 형이 진짜 세상 말아먹게 놔둘 참이냐?”

“어.”

“야!”

“한번 말아먹어 봐야 정신을 차리지. 어차피 운영자들이 멸망까지 가게 놔둘 리가 없잖아? 그러니까 이참에 따끔한 맛을 한 번 보고, 사람들 통솔하는 법도 좀 배우게 해야 돼.”

물론 운영자가 무언가로 태클을 걸어올 것을 대비해서 지금껏 한줌의 하나조차 사용하지 않고 버텨온 거지만 날 막기 위해 운영자들이 어디까지 막가나 한번 보자고! 가장 흔한 방법이 ‘조율자’를 표방하는 드래곤의 등장쯤이려나?

“휴우, 알았다. 내가 어떻게든 핑계를 대마. 잘 살아라.”

아론은 축 처진 어깨로 다시 돌아갔다.

미안하다. 하지만 난 안 봐준다! 운영자들의 밑천을 다 끌어내보는 게 이번 목표니까.

* * *

“수형 씨, 나 좀 볼까? 빠득!”

김수형. 운영자 아이디 명 제롬인 청년은 모니터를 통해 게임 속 상황을 지켜보다가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움찔거렸다.

“티, 팀장님!”

“따라 들어와!”

척 보기에도 화난 표정의 중년인을 따라 방으로 들어가는 제롬의 얼굴은 거의 울상이 되어 있었다.

탁!

종이 가득 깨알 같은 글씨가 적혀 있는 서류 몇 장을 제롬의 앞에 던져놓은 팀장은 시뻘게진 얼굴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네가 아무리 사장 아들이라도 더 이상은 못 참아! 콜로니스트란 유저에게 이번 마인 이벤트를 맡기자고 한 게 너라면서?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도 그 사람을 몰라! 지금 상황이 어떤지 알고 있기는 해?! 당초 예상했던 일보다 일이 수십 배는 더 커졌어. 이대로 가다간 유저 측의 전멸이라고!”

“아니, 저게 그러니깐…….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면 단 줄 알아? 지금 홈페이지에 항의가 빗발치고 있어. 우린 그에 대해 전혀 대답을 못하고 있고! 어떻게 할 건가, 어떻게 할 거냐고! 죄송하다고 하지만 말고 답을 내놓으란 말이야. 답을!!”

죄인이 무슨 말이 있으리오?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어 고개 숙이고 있는 제롬이었지만 그 모습에 팀장은 더욱 열이 받아 뒷목 잡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티, 팀장님. 혈압은 생각하셔야죠.”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가만 서 있지 말고 빨리 튀어가서 콜로니스트의 행보에 제제를 걸 방법이나 찾아봐! 만약 인간 측이 전멸하면 그땐 진짜 너 죽고 나 죽는 거다!”

“예, 옙!”

도망칠 기회를 부여 받은 제롬은 때를 놓치지 않고 곧장 팀장실 밖으로 도망 나왔다.

“에휴, 친구 아들만 아니면 저걸 확!”

* * *

어떻게 해야 할지도 가르쳤으니 똘똘한 라노크가 게릴라전쯤은 잘 막아내리라 믿고 막간의 수면 시간을 갖고 난 후 게임에 접속했다.

“오셨습니까. 현재 아직 날이 저물기까진 한 시간 가량 남았고, 적의 게릴라전에 의한 피해는 스켈레톤 2백 마리, 스켈레톤 아쳐 일곱 마리, 메이지 세 마리, 레이스 두 마리입니다. 부족한 인원은 계속 충원했고, 공중에서의 마법 공격은 없었습니다.”

“그 정도면 양호하군. 수고했다.”

역시나 라노크는 제 몫을 단단히 해내줬다.

스켈레톤 2백 마리면 순찰 돌던 놈들 중 반절이 박살난 건가? 흐음, 열팀이라……. 생각보다 시도한 숫자가 적군.

“아직 잔당이 남아 있을지 모른다. 방비를 철저히 하도록!”

“알겠습니다.”

해가 지기까지 남은 한 시간 동안 한번쯤 공격해 들어옴직도 하건만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그러다 드디어 해가 지자 레이얼을 비롯한 뱀파이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레이얼, 지금 당장 근처 숲들을 뒤져서 숨어 있는 자들을 모두 죽여라.”

“알겠습니다. 주인님.”

순식간에 엄청난 수의 박쥐로 나뉘어져 날아가는 레이얼. 낮에 활동 할 수 없다는 게 아깝지만 이렇게 밤에 활동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도움이 된다.

그리고 약 삼십여 분이 지난 후, 헤이얼은 다시 박쥐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인간 열여섯 명이 숨어 있었으나 모두 죽였습니다.”

“잘했……. 아! 혹시 우릴 뒤따라오던 자들도 죽였나?”

“예. 주인님께서 모두 직이라 하시기에……. 잘못한 겁니까?”

“아니다. 됐어.”

정보원들이야 죽어도 다시 살아서 쫓아오겠지만 당분간 역으로 정보를 빼낼 수 없다는 게 무척 아쉬웠다.

하지만 뭐,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어쩔 수 없지.

“이제 다음 지역으로 이동한다. 이곳을 다시는 거점으로 사용할 수 없게 완전히 파괴시켜라!”

“예. 주인님.”

“알겠습니다.”

말하고 나서 움찔했지만 다행히 둘은 성내에 있는 병력을 모두 밖으로 이동시키고 나서 성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여섯의 대영지 중 하나에 속할 만큼 견고하고 커다란 성이었지만 2천의 리치와 1천 8백의 뱀파이어들 앞에선 그야말로 모래성과 다름없었다.

“가자! 다음 목표는 이곳에서 북동쪽에 있는 베셀 영지. 이번엔 기다리는 자들이 많을 것이고, 도중에 기습을 해올 수도 있으니 항시 사방을 살피면서 이동하도록!”

“알겠습니다.”

레이얼이 손짓하자 몇 십 마리의 뱀파이어들이 박쥐로 변해 사방으로 퍼졌다.

저것들을 이용해 사방을 살핀다는 건가? 꽤 쓸 만한 방법이군.

“스켈레톤 중 일부로 본대 주위를 둘러싸게 하여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하라!”

뱀파이어들이 없는 낮에 대비하여 스켈레톤들로 본대 주위를 감싸는 일종의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진짜 방어를 위한 것이 아닌 일종의 경보용으로 만든 것이지만 기습을 당해도 반격할 시간을 벌어주니 썩 좋은 방법 아닌가?

이렇게, 혹시 모를 기습에 대한 대비까지 하고 다음 목적지인 베셀 영지로 향했다. 뤼크레스까지 이틀이었으니 베셀까지 삼일쯤 걸리려나?

몬스터 군단도 부지런히 걷는다면 사오일 후에는 오마이스 영지 근처에 도달 할 수 있겠군.

후후, 엔젤 하트. 각오하는 편이 좋을 거다.

* * *

칼바위 산 절벽 위.

드래곤과 똑같이 생기되, 드래곤이라 하기엔 너무 작은. 그래서 드레이크라 불리는 몬스터와 계속 아래에서만 나타나는 타이탄 한 마리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혀, 형! 이걸 꼭 해야 돼요?”

“왜, 하기 싫어? 그럼 팀장님한테 멱살 잡혀 내동댕이쳐진 다음에 사장님한테 몇 번 밟히고 집에서 쫓겨나던가. 아, 팀장님이 왕년에 유도 하셨던 거 알지? 저번에 에류시온이 유도 배우기 시작했다고 팀장님한테 말했다가 연습 경기 한번 하고 골병드는 바람에 유도 때려치운 것도 알 테고?”

“커, 컥! 하지만 이렇게 무식한 방법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법을 사용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지금쯤 에류시온 형은 쭉쭉빵빵한 엘프들이랑…….”

“없어. 그러니까 잔말 말고 해. 아, 저기 온다. 뛰어!”

“어? 어? 으아아아아악!!!!”

절벽 아래를 두리번거리며 살피던 타이탄은 지도를 들고 절벽 아래 계곡을 따라 걸어오는 청년을 발견하고는 냅다 드레이크를 밀어버렸다.

그리고 잊지 않고 한 마디.

“너 날갯짓하면 진짜로 죽는다!”

순간, 파닥거리기 시작하던 드레이크의 날개가 패럴라이즈에라도 걸린 듯 정지해 버렸다.

“하여간 손이 많이 가는 녀석이라니까.”

손을 툭툭 치고 돌아서는 사내. 그는 조금 전, 드레이크를 절벽 아래로 밀어버렸던 타이탄과 동일 인물이었다.

아이디는 고블린. 힐름의 운영자 중 한 명이었다.

쿠웅!

드레이크가 땅으로 추락하며 생긴 뿌연 먼지가 일대를 가득 메우며 시야를 가렸다.

불시에 먼지를 옴팡 뒤집어쓴 사내는 입으로 들어오는 먼지 때문에 콜록콜록 기침을 했고, 먼지가 가라앉을 땐 검던 머리가 누렇게 변해 있었다.

“콜록, 콜록. 이런 재수가…… 응?”

오늘 일진이 사나움을 토로하려던 사내는 눈앞에 있는 괴상한 광경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분명 날개와 몸통, 다리는 드래곤과 흡사한데 머리는 땅에 박혀있는, 그리고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경련처럼 발가락을 까딱이는 모습.

잠시 당혹스러워서 눈만 껌벅이던 사내는 좀 전에 만났던 점쟁이 할머니의 말을 떠올리고 힘차게 외쳤다.

“테이밍!”

그의 손바닥에는 자신의 이름인 듐이 빛으로 적혔고, 그 빛의 글자는 드레이크의 머리가 박혀있는 땅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그리고는 감감 무소식.

테이밍에 성공했다면 드레이크의 이마에 듐의 이름이 적혔을 테고 아니라면 이마엔 혹만 하나 있을 테지만 머리가 박혀 있으니 육안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여, 역소환?”

듐의 미심적은 말투에 드레이크의 몸이 빛으로 휘감겼다. 그리곤 허공에 생긴 검은 게이트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이것은 테이밍에 성공했다는 증거. 듐은 얼떨떨함 속에서 점차 현실을 깨달아갔다.

“크핫……. 크하하, 크하하하하하!!!”

한바탕 크게 광소를 터트리고 난 듐의 눈에는 알 수 없는 열기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마스터가 된 기념으로 아공간을 비우고 있기를 잘했지. 큭큭큭. 아, 그 점쟁이 할머니한테 복채를 두둑이 줄 걸 그랬군. 싫다는 사람 억지로 끌어다 앉히곤 이곳으로 보내더니……. 나를 위한 특수 NPC인가? 분명 ‘북동쪽 계곡으로 가면 난세를 구할 영웅의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으렸다? 북동쪽 계곡이라곤 이거 하나이니 난 영웅의 힘을 얻은 셈인가? 크핫핫핫! 좋았어! 나라고 영웅이 못 되란 법은 없지. 기다려라, 마인!”

듐은 운영자들이 마인, 콜로니스트의 힘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자신을 이용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드레이크로 변한 제롬은 듐의 아공간 속에 갇혀 마인의 앞까지 배달되기만을 기다렸다.

* * *

“길드장. 몬스터 군단은 오마이스로, 마인의 군대는 베셀 영지로 향하는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또……지원군은 없습니까?”

사내는 혹시나 하는 기대에 말을 꺼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여전히 실망감만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그렇다. 뤼크레스를 돕느라 약해진 투혼 길드가 마인의 군대를 막아낼 수 없는 건 자명한 일. 가봤자 괜히 헛된 죽음만 남길 뿐이다. 그보다 비코 영지 주변 던전 정리하는 건 어떻게 됐지?”

“거의 다 완료되었습니다.”

“성벽 수리는?”

“성벽만이라면 80%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더 서두르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길드장.”

“뭐지?”

“콜로니스트님이 해외에 나가서 접속을 못 하신다는데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걸 사람들이 알면 꽤나 소란이 일 텐데요.”

“너, 이름이 뭐지?”

“사내1입니다.”

“특이한 이름이군. 그래, 사내1. 넌 자신이 너무 말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리고 똑똑히 알아둬라. 이곳의 주인은 나고, 콜로니스트는 그저 조언자일 뿐이야. 콜로니스트가 없어도 내가 지휘하면 돼. 이참에 콜로니스트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나에게는 좋은 기회로군. 후후후후.”

거트는 마치 기분 나쁜 소릴 들은 사람처럼 행동하다가 착 가라앉은 눈으로 이번엔 현 상황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조금은 음흉한 웃음과 함께.

“죄, 죄송합니다.”

“괜찮다. 그 동안 내가 바보 같았던 게 사실이니. 하지만 이제부턴 똑똑히 봐라. 그동안의 억눌려 있던 내가 아닐 테니까. 꼭두각시가 아닌 진짜 왕으로서의 나를 보여주지.”

사내1은 거트의 눈에서 약간의 광기를 읽었다.

* * *

“하아암. 따분하군.”

정말이지 따분하기 그지없었다. 스켈레톤으로 본대를 감싸는 방어선을 구축해 놨더니 도무지 기습이란 걸 들어오질 않았다. 처음에 쳐들어온 자들은 리치들에게 혼쭐이 나서 죽거나 도망쳤고 마냥 기회만 노리다 밤을 맞이한 자들은 뱀파이어들의 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이렇게 몇 번에 걸친 기습이 전혀 통하질 않자 유저들도 기습을 포기해 버린 것이다. 아무 일 없이 삼일 간의 여정. 이것만큼 따분한 것도 별로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주인님. 드디어 베셀 영지가 보입니다.”

사흘 밤낮의 여정 끝에 베셀 영지에 도착했다고 하니 이제야 좀 따분함이 가시는 느낌이었다.

자아, 이번엔 어떤 식으로 공략해 볼까? 가만, 뭔가 이상하다?

“어째 우리가 온 것도 모르는 분위기다?”

“그건 아닐 겁니다, 주인님. 저 뒤에 따라오는 자들이 연락을 했을 테니까요.”

레이얼은 말하면서 슬쩍 방향을 가리켰다.

저놈들은 언제 또 따라붙은 거야?

“저번에 저들을 죽였을 때 표정이 좋지 않으셔서 이번엔 살려뒀습니다만, 지금이라도 가서 죽이고 올까요?”

“아니다. 아직은 놔둬. 죽이는 건 조금 뒤다. 그나저나 우리가 온 것을 알고도 저렇게 수비를 허술하게 했단 말이지? 레이얼, 이 근처에 매복이 없는지 확인하고 와라.”

“예, 주인님.”

레이얼이 다른 뱀파이어들과 함께 박쥐로 변신해서 돌아보고 올 동안 난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설마하니 저들이 성을 포기 했을 리는 없고, 매복인가? 아니면 함정? 그래, 함정!

“라노크, 스켈레톤 1백 마리를 움직여서 성 주위를 왔다 갔다 하게 해라. 다른 건 필요 없이 그냥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알겠습니다.”

라노크는 스켈레톤들을 2열 횡대로 줄을 맞추게 해서 똑바로 전진 시켰다. 아유, 이쁜 것. 어쩜 내 마음을 속속들이 잘 알까.

탁. 타탁. 탁탁탁탁!

예상대로였다. 1백 마리의 스켈레톤들은 몇 발자국 나아가지도 못하고 뼈마디가 박살나버렸다.

베셀 성과 상당히 거리가 있는 이곳에서부터 성까지 도적들이 깔아놓은 트랩들이 즐비한 것이다.

스켈레톤들의 뼈가 한 방에 분질러지는 것을 보면 최소 중급 이상이란 소린데……돈 좀 썼군.

“그러고 보니 내가 보석은 샀어도 트랩은 안 샀군. 본 성이라면 무지하게 쌓여 있지만 이 모양으로 거길 들어갔다 올 수도 없고…….”

눈을 돌려 내 몸을 한 번 훑어봤다. 잘 익은 홍시처럼 빨간 피부. 이마에 불쑥 솟아있는 뿔.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내 원래의 얼굴이 아님은 분명한 얼굴 생김. 내 몸이 아님을 확실하게 알게 해주는 근육질 몸.

이걸 보고 비명 안지를 여자 없겠군. 쳇!

“할 수 없지. 재활용 하는 수밖에. 디텍트!”

함정 발견 스킬의 시동어인 디텍트를 외치자 박살난 뼛조각들 아래에 색칠한 것 같은 동그라미 표시가 있는 것이 보였다.

“함정 해제!”

동그라미 위에 손을 얹고 시동어를 외치자 동그라미 안에 빛이 생기며 동그라미를 빠르게 지워나갔다. 그리고 온전한 상태의 함정이 손에 들어왔다.

아차, 난 지금 어떤 아이템도 획득할 수 없지!

“라노크, 스켈레톤을 시켜서 수레를 만들어라. 쇳덩이를 꽤 많이 실을 거니까 이동 속도에 큰 지장을 주지 않을 만한 크기로 많이.”

“알겠습니다.”

베셀 영지의 인물들은 내가 그냥 다른 곳으로 우회하거나 스켈레톤을 희생하면서 돌진해 올 것을 기대했겠지만 순순히 그 뜻에 따라 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마지막에 가선 성벽 위 궁수와 마법사의 사정거리에 걸릴 테니 어쩔 수 없지만.

“아니, 주인님. 주인님께서 허리를 굽히시다니요!”

한참 트랩 수거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돌아온 레이얼은 내가 쪼그려 앉아서 트랩 해제하는 모습을 보고 펄쩍 뛰었다.

흠흠! 하긴, 3만 대군을 이끄는 마인이 성 앞에 쪼그려 앉아서 트랩이나 줍는 건 폼이 안 나지.

“크흠, 매복은 없더냐?”

“예. 숨어 있는 자들이라곤 우릴 뒤쫓아 오는 자들뿐입니다.”

“그래, 수고했다.”

“주인님! 허리를 숙이시는 건 안 될 일입니다.”

펄쩍 뛰며 만류하는 레이얼 때문에 더 이상 허리 숙여 트랩을 해제하는 일은 할 수 없게 되었다. 마인 체면에 부하들을 뒤에 두고 허리 숙여 트랩 해제하는 게 우습긴 하지.

“알았다. 알았어. 라노크! 수레 제작은 그만 두고 나무를 베어라!”

“그건 저희에게 맡겨 주십시오. 주인님.”

라노크에게 나무를 베라 명하자 레이얼이 나서서 일을 도왔다. 손톱을 늘리고 휘두르는 강격에는 고목나무도 쉽사리 견디지 못했고 예상보다 훨씬 일찍 원하는 만큼의 나무를 모았다.

“이제 통나무를 굴린다 통나무의 무게가 트랩들에 영향을 줘서 박살 내거나 통나무를 공격하게 할 것이다. 너희는 통나 뒤에 서서 안전하게 트랩들을 무력화 시키면 된다. 자, 전진하라!”

말 잘 듣는 언데드들은 서로서로 협동해 가며 통나무를 잘도 굴렸다. 통나무끼리의 줄을 딱딱 맞춰서 가지 못한 탓에 발을 삐끗 잘못 디뎌서 트랩에 당하는 놈들도 간혹 보였지만 대체로 잘해주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산하던 성벽 위가 북적이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우리가 쳐들어올 수 있었기 때문에.

“쏴라!”

피잉! 픽!

성벽 위로 올라온 놈들 중 제법 머리를 쓰는 놈이 있는지 성벽 위의 궁수들은 일반 화살이 아닌 불화살을 장전해서 쏘아댔다.

그리고 그들의 방법은 꽤나 유효적절했다. 마인의 지배를 받으면서 불을 두려워하는 본능까지 억제당한 스켈레톤들은 통나무가 불타든 말든 맡은 바 임무인 통나무 굴리기에만 열중했고, 모두 하얀 백골가루가 되어 바람에 흩날리는 신세가 되었다.

이대로 칠까?

“주인님. 곧 날이 밝아올 겁니다.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두고 내일 밤을 기약하시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그렇다면 할 수 없군. 후퇴하라!”

숲은 화계를 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성이 보이고 성에서도 내가 보이는 들판에 진지를 구축하고 새벽이 오기를 기다렸다.

다음 날.

잠이란 걸 모르는 언데드이기에 주위 경계가 여전히 철통같이 이루어지는 터라 동이 텄음에도 성안의 인물들은 쉽게 기습을 가해오지 못했다. 하지만 성안은 꽤나 분주한 모습.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감이 잘 안 잡혔다.

한번 잠입해볼까?

“라노크!”

“알겠습니다. 하지만 조심하십시오. 성안에서 뭔가 기분 나쁜 기운이 느껴집니다.”

“기분 나쁜 기운? 알았다. 조심하도록 하지.”

평소 말을 아끼는 라노크가 저렇게까지 말하는 것을 보면 성안에서는 뭔가 상당히 위험한 것을 준비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운 좋으면 망쳐놓기 위해 로브를 걸치고 텔레포트 스크롤을 찢어 베셀 영지 내로 진입했다.

“적 대군을 앞에 둔 자들로는 보이지 않는 분위기군.”

거리는 꽤나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모두의 얼굴엔 희망이 가득했고 가게를 지날 때마다 활기찬 목소리가 가득 들려왔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이야? 뤼크레스도 그렇게 쉽게 무너진 판국에 뭘 믿고?

“길을 비켜라! 조화의 일족이 지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조화의 일족? ……엘프! 제기랄!”

라노크가 기분 나쁜 기운이라고 한 정체를 찾았다. 그것은 바로 조화의 일족인 엘프 특유의 기운! 언데드란 자체가 조화와 순리를 역행하고 있는 것이니 그로서는 엘프의 기운이 기분 나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라노크가 저들의 기운을 느꼈듯이 엘프들도 나의 기운을 느낄까봐 멀리서 확인한 즉시 도망가려는데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멈춰라, 순리를 역행하는 자여!”

채앵! 챙! 챙!

어느새 허리춤에서 검을 빼어든 엘프들은 차례로 내게 뛰어들며 칼질을 했고 난 시간상 텔레포트 스크롤을 사용하기를 포기하고 손톱을 들어 막았다.

“뭐, 뭐야?”

“빌어먹을! 왜 하필이면 엘프고, 오늘이야?”

“순리를 역행하고 조화를 거스르는 자들의 왕이여, 지금 우리가 여기서 모든 맺음을 풀어주마. 무로 돌아가라!”

누가 엘프 아니랄까봐 말끝마다 조화에, 순리가 어쩌고였다. 그나저나 엘프의 숲과 이곳은 거리가 꽤 있을 텐데? 엘프의 숲에 가만히만 있으면 이곳에서 일어난 먼지바람 한 점 안 가게 할 텐데 왜 끼어드는…… 운영자 짓이군. 수상한 냄새가 풀풀 풍기는 걸로 봐선 확실해!

“그럼 저게 마인?”

“잡아!!”

“넌 포위됐다. 전후좌우 어느 곳으로도 도망 칠 수 없어! 순순히 우리의 정화의식을 받아라.”

정화 의식 이래봤자 결국은 죽이는 것일 터, 순순히 그들의 말을 따라 줄 이유는 있을 턱이 없었다. 그리고 도망칠 곳은 한 곳 더 남아 있다.

“플레임 노바!”

“도루루, 실드!”

나를 중심으로 불꽃이 원을 그리며 퍼져나갔다. 마인으로 변해서인지 짙은 붉은색이어야 할 플레임 노바의 불꽃은 검은색을 섞고 있었고 그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엘프들이 다급하게 정령을 이용한 물 보호막을 치지 않았으면 여러 사람들이 크게 다칠 뻔 했으니까. 아니, 내가 조금만 더 마나를 불어넣었어도 도루루의 실드가 깨지고 주위의 모두가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벌써 마나를 많이 써버리면 안 되지.

“바이바이!”

플레임 노바 직후 하늘로 날아오른 덕에 엘프들이 쫓아올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일단 더 높이 날아 혹시 모를 엘프들의 화살을 경계한 후, 다시 우리 진영으로 돌아왔다.

제길, 이것으로 내 모습이 천하에 공개되었군.

“낭패를 보신 것 같군요.”

“그래. 성안에 엘프들이 있었다. 날 단박에 알아채더군.”

“엘프……. 역시 그랬군요.”

라노크는 엘프에 대한 무슨 기억이라도 있는지 엘프란 말을 자꾸 뇌까렸다. 무언가를 떠올리려는 듯이.

“왜 그러지?”

“아닙니다. 아무 것도. 영생의 삶을 얻었어도 6천년이 지나니 기억하던 걸 자꾸 까먹게 되는 군요. 엘프에 대해 뭔가 기억날 듯하다가 안 납니다.”

“그럴 땐 억지로 기억하려고 하면 안 되지. 천천히 떠올리도록 해. 굳이 엘프를 전멸시키기 전까지 떠올리지 않아도 상관없으니까.”

어차피 오늘밤에 전멸당할 것들, 아주 특별한 정보가 아니면 듣지 않아도 상관없다. 지들이 자폭할 리도 없고, 그냥 마스터급 지원 병력이 왔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니까.

“음화홧홧! 마이는 들어라. 여기, 너를 해치울 용사 듐님이 나타나셨다. 어서 와서 무릎 꿇고 싹싹 빌어라!”

한참 라노크와 얘기하고 있는데 성 쪽에서 누군가 큰소리로 도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레이얼이 들으면 사달이 날 소리로군.

“쟨 뭐냐?”

“음, 마나의 파동으로 봐선 마법사는 아닌 것 같습니다.”

“기사로도 보이지 않는데, 그냥 정신병자인가?”

“제가 공격마법이라도 날려볼까요?”

“내버려둬라. 저러다 말겠지.”

허리에 양손을 얹고 뒤로 넘어가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웃어젖히는 듐이란 놈을 가만히 놔두고 다시 돌아서서 라노크와 함께 저녁 때 있을 공성전 계획을 짰다.

“음홧홧홧! 니들이 지금은 날 무시하지만 이걸 보면 더 이상 날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소환, 드래곤!”

“뭐? 드래곤?!”

“저것은 소환술이 맞습니다. 힘의 파동이 전해져오는 군요. 상당히 강한 무언가가 소환 되고 있습니다.”

듐이란 놈이 외친 ‘드래곤’이란 말에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정말로 커다란 아공간에서 짧은 다리와 커다란 날개를 가진 드래곤의 형상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라노크의 생중계는 나의 놀람을 더욱 증폭시켰다.

“그런데 어째 좀 작아 뵌다?”

“드래곤이 아닙니다. 드레이크군요. 브레스는 쓸 수 있지만 마법은 못쓰고 신체적 능력도 강력한 편이긴 하지만 진짜 드래곤에게는 한참 못 미치는 드래곤의 아류작입니다.”

아공간에서 막 나오기 시작했을 때와 전부 나오고 나서의 차이는 매우 컸다. 드래곤이라면 잔뜩 겁을 먹었겠지만 드레이크라면 해볼 만하니까.

“어떠냐, 나의 드래곤이!”

“이봐! 거기에 소환해 버리면…….”

쿠웅! 타닥! 탁!

듐이 드래곤이라 주장하는 드레이크는 아공간에서 빠져나와 땅을 딛는 순간 성문 앞에 있는 수많은 트랩들을 혼자서 밟아버렸다.

이렇게 고마울 때가!

“큭!”

꽈당!

드레이크는 두꺼운 피부 때문인지 그 많은 트랩을 밟고도 아파하진 않고 가려워했다. 그리고 그것을 못 참겠는지 드레이크는 오른 발을 들어 왼쪽 발을 긁으려 했다가 특유의 짧은 다리 때문에 다리가 꼬여 넘어져 버렸다.

“설명을 하나 빼먹었군요. 지능도 떨어집니다.”

곧바로 라노크의 설명이 들어왔다.

“너와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나?”

“일반적인 경우라면 열에 여덟은 이길 자신 있습니다. 말했듯이 지능이 떨어지니까요.”

“일반적인 경우? 지금은 일반적인 경우가 아닌가?”

“젇 누군가가 드레이크를 테이밍한 것은 처음 봅니다만, 일단 테이밍되었으니 마구잡이 공격이 아닌 명령에 의한 체계적인 공격을 해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럴 경우 드레이크를 조종하는 자의 실력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지만 싸우면 최소 반반의 승률은 보일 수 있을 것 같군요. 나가서 싸울까요?”

내가 보기에 저런 주인이 드레이크를 다룬다면 야생 드레이크보다 약해질 것 같았지만 라노크는 제법 후하게 점수를 줘서 자신의 승률을 30%나 깎았다.

“흐음, 라노크. 넌 저들이 우릴 선과 악 중 어느 쪽으로 볼 것 같으냐?”

“전 선과 악 같은 건 관심 없습니다.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이든 당신을 따르고, 일리아드에 있는 마법 서적들을 얻으면 됩니다.”

“아아, 뭔가를 오해하고 있군. 누가 선과 악인지를 말하라는 게 아니알 저들이 보이게 우리가 선 일 것 같냐, 악일 것 같냐를 묻는 것이다. 어느 쪽일 것 같지?”

“그거라면 아무래도 악이겠지요.”

“그래, 맞았어. 그럼 우리는 ‘악’답게 행동해주는 게 좋지 않겠나? 라노크, 자존심 상할지도 모르겠지만 대충 싸우는 척 하면서 드레이크를 끌고 와라. 그러면 다른 리치들이 합동 공격을 한다.

“전 마법을 위해 자존심 따윈 버린 지 오랩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블링크!”

라노크는 전혀 감정의 변화가 없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답하고는 드레이크 앞으로 순식간에 이동했다.

“자, 이 드래곤 나이트의 위대한 모습을…… 어? 어? 헉! 으아악!!!”

쿠웅!

라노크가 나타난 것도 모르고 드레이크의 등에 올라타려던 듐은 갑자기 나타난 라노크의 모습에 당황했고, 드레이크의 반항으로 그대로 바닥에 추락했다.

머리부터 박았는지 회색으로 변해가는 시체와 다시 검은 아공간에 빨려들어가는 드레이크.

“이거, 대체 뭐하자는 거야?”

어이없는 상황으로 전투가 종결되자 양쪽 어디에서도 추가 공격은 하지 않았다. 우리야 낮이라 그렇다고 하지만 저들은 뭣 때문에 머뭇거리는 거지? 수적으로 불리하다는 걸 깨닫고 수비만 하려는 건가? 하나같이 인간의 사정거리를 뛰어넘는 궁술 실력을 가진 엘프들을 이용해서?

“흠흠, 방금 전에 것은 실수였다. 이번엔 진짜로 죽여주마. 소환, 드래곤!”

잠시후, 다시 살아나서 또 성벽 위로 올라간 듐은 재차 드레이크를 소환했다. 가만, 말은 드래곤이라고 하는데 소환이 되는 건 드레이크잖아? 그렇다는 소리는……드레이크 이름이 드래곤인 거냐?

“라노크.”

“예.”

이번에도 라노크가 곧장 드레이크 앞에 섰다. 물론 마법을 주로 쓰는 리치이기 때문에 조금 거리를 벌리고. 덩치에서부터 수십 배는 차이가 나자 듐은 또 한 번 그 예의 웃음을 터트리며 브레스 사용을 명했다.

“가라! 초반부터 기선 제압이다. 브레스!”

“크오오오오오!”

듐의 명에 의해 드레이크는 숨을 들이켰지만 라노크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자신의 지팡이로 드레이크를 가리켰다.

“다크 홀드!”

라노크의 지팡이 끝이 검은 빛을 뿜으려 작은 원을 그리자 원은 검은 빛의 고리가 되어 드레이크의 입을 막았다.

한껏 숨을 들이켰다가 뱉을 수 없게 된 드레이크. 괴롭다는 듯 제 자리에서 방방 뛰더니 짧은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치려고까지 했다. 물론 팔이 짧아서 가슴에 닿지는 않았지만.

“다크 나이프!”

라노크의 몸 주위로 상당히 커다란 단검 몇 개가 생겨나더니 드레이크를 향해 쇄도해갔다. 대충 방향을 보니 목표는 목. 제대로 맞으면 일격사시킬 수도 있는 위치였다.

“크으읍, 파!”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 드레이크는 오히려 다크 나이프에 얼굴을 가져가 입을 봉하고 있던 다크 홀드를 풀어버렸다.

멍청하다더니, 우연인가?

“크르륵!”

이번엔 드레이크의 공격이었다. 자신의 신체 부위 중 가장 길고 굵은 꼬리로 어택! 뼈다귀인 라노크가 맞았다간 한 방에 으스러져 버릴 것 같은 일격이지만 라노크는 너무도 쉽게 피해냈다. 뒤로가 아닌, 오히려 블링크로 전진해서.

“다크니스 스피어!”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을 몸소 확인시켜주려는 것일까? 꼬리를 피하기 위해 꼬리의 바로 아래로 이동한 라노크는 머리 위로 어둠의 창을 발사했다.

“크오오옥!!”

하지만 두꺼운 꼬릿살을 꿰뚫기는 무리였는지 드레이크를 자극시킨 꼴이 되어버렸다.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난동을 부리는 드레이크. 그 여파로 주변 땅이 꺼져버렸지만 정작 원인 제공자인 라노크는 이미 멀찌감치 떨어져서 발광이 멈추길 기다리고 있었다.

히야, 이거 실력 차이가 나도 너무 나는군.

“크오오오오!”

“저거 왜 저래?”

드디어 드레이크가 미쳐버린 것일까? 성을 바라보고 꼬리만 우리 쪽으로 흔드는 와중에 브레스를 쏘기 위해 숨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 멍청한 용아, 거기가 아니라 반대쪽이야!”

“크워!!!”

브레스를 한계까지 만들어낸 드레이크는 갑자기 몸을 틀어 브레스를 발사했다. 나와 라노크쪽이 아닌 내 군대가 몰려 있는 쪽으로!

“제기랄! 라노크가 거짓말 했을 리는 없고, 드레이크 주제에 일부러 내 병력을 노렸다면…… 운영자로군! 하지만 아까의 그 멍청한 행동은 뭐지? 날 속이기 위한 건가? 운영자 중에 그런 멍청한 짓을 할 위인이…… 있지. 제롬!”

“크크크크크!”

일직선으로 구멍이 휑하니 뚫려버린 군대를 보며 드레이크는 웃음으로 추정되는 소리를 냈다.

이것으로 확실해졌군. 제롬, 그리고 이하 운영자들. 니들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헛, 헛. 흡!”

목적을 달성하고 신이 나서 꼬리를 흔드는 드레이크 아니 제롬을 라노크는 아주 뛰어난 연기력을 보이며 안쪽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라노크가 계속해서 아슬아슬하게 피해내자 제롬은 약이 올랐는지 더 큰 동작을 취해 점점 깊숙한 곳으로 빨려 들어왔다.

“공격하라! 단, 죽지 않을 정도로!”

“다크 홀드!”

이번엔 라노크가 하늘을 향해 동그랗게 원을 그렸다. 좀 전과 똑같이 날아가는 검은 고리. 하지만 이번엔 제롬의 입이 아니라 고리 던지기처럼 몸에 떨어져 몸 전체를 꽉 조였다.

“크르르륵!”

펑! 펑! 퍼벅!

행동이 제약 된 제롬에게 남은 것은 일방적인 구타였다.

한 대, 두 대, 세 대, 네 대……. 다 세기도 귀찮을 정도로 두들겨 팼다. 물론 간간이 체력 회복 포션을 뿌려가면서. 그리고 경고의 의미로 헤롱거리는 제롬의 위로 올라타서 말을 전했다.

“내가 어지간하면 세상을 들었다 놓는 정도로만 끝내려고 했는데, 당신들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나온다면 나도 생각이 달라지지. 드레이크 역할이 끝나면 아이템부터 준비해 놓으쇼, 제롬 씨. 최소 5만 명짜리로!”

<6권에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