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탐사
“흐아아암~.”
오랜만에 푹 자고 났더니 몸이 가뿐 했다.
습관처럼 따라붙던 두통도 없었고, 어젯밤 실수로 열어놓고 잔 창문 덕분에 공기도 상쾌했다. 몇 시인지는 모르지만 날씨도 좋고 뛰쳐나가고 싶은 기분마저 들었다.
“하지만 저쪽 세계가 더 좋지. 그래도 오랜만에 컴퓨터 좀 해볼까?”
자동 라면 조리기와 TV, 컴퓨터를 동시에 켰다. TV는 생긴지 1년도 넘은 힐름 전문 방송. 컴퓨터도 인터넷에 자동 접속돼서 첫 화면으로 힐름 홈페이지를 보여줬다.
홈페이지에 보이는 글도, TV에서 나오는 내용도 모두 어제의 최단 시간 이벤트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정확히는 공지사항으로 올라온 글 끝부분에 달린 연계 이벤트에 관한 추측이지만.
“접속한 김에 로그에 대한 것들도 알아봐야 겠군.”
어느새 완성된 라면을 옆에 가져다 놓고 화면을 각 클래스별 게시판으로 이동시켰다.
도둑을 클릭하자 어쌔신, 로그로 또 한 번 나뉘어졌다. 당연히 로그 선택. 제목으로 판단컨대 게시물의 60%는 보물찾기에 대한 질문과 답변, 레벨이 안 오른다는 하소연이 20%쯤이었다.
먼저 검색창에 스킬이라고 적어 넣었다. 총 1,235개의 글이 떴다. 한숨을 내쉬며 다시 수련법이라고 적었다. 여전히 많은 341개의 글이 떴다.
괜찮아 보이는 글이 꽤 있었지만 그 중에서 내 눈을 끈 것은 ‘갑부들을 위한 속성 수련법’이란 게시물이었다.
“오호……!”
글의 내용을 3번씩이나 반복해서 읽어 머릿속에 저장시켰다. 그리고 급히 라면을 해치우고 방에 들어가 힐름에 접속했다.
“잠금 상자랑 락픽 10개 주세요.”
접속하자마자 도둑 길드로 달려가 게시물에 적힌 대로 잠금 상자와 락픽을 샀다.
“감도 설정 변경, 1단계로.”
그 다음은 리얼모드의 변경이었다.
[리얼모드 1단계, 옵션 창에서 잘 찾아보면 자체적인 매크로가 숨겨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소개하려는 방법은 이 매크로를 이용한 스킬 업 노가다. 아니, 노가다랄 것도 없다. 가만히 걷기만 하면 알아서 되니까. 이 방법은 단기간에 별다른 노력 없이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막대한 량의 마나를 필요로 한다. 때문에 이미 다른 클래스에서 고레벨, 혹은 마스터가 되어 상당량의 마나를 보유하고 있거나, 끝없이 마나 포션을 공급할 만한 재력을 갖추지 못한 자들은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길 바란다. 먼저 리얼모드 1단계로 전환해서 옵션 창을 열어라.]
“옵션창 오픈!”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나타났다.
[옵션 창은 각 항목에 손가락을 대서 선택하는 것 이외에도 항목의 이름을 부르거나 해당 번호를 불러도 반응한다. 매크로 창으로 들어가는 번호의 순서는 9, 1, 4, 4이다.]
“9, 1, 4, 4!”
정말로 매크로 설정이라는 창이 떴다. 자신이 가진 스킬을 선택하고 딜레이와 타깃을 정하는 구조였다.
[매크로 설정 창이 떴으면 이제 다 끝난 셈이다. 각 스킬에 대한 딜레이는 개인 취향에 맞출 수 있겠지만 이 글을 읽는 그대가 퍼내고 퍼내도 줄지 않는 강물과 같은 마나를 지녔다는 가정 하에 가장 실용적인 스킬 조합을 적어보겠다. 먼저 대기 속에 녹아들어가는 하이딩은 7초. 잔상을 남겨 상대를 현혹시키는 잔상은 11초, 순차적으로 몸을 뒤로 빼는 백스텝은 5초. 자물쇠를 따는 락파킹 스킬은 ek로 정해야 한다. 여기에 잡다한 것들을 넣어도 되지만 어차피 이것들을 제외하면 쓸 만한 스킬은 없으니 마나 낭비 하지 않길 바란다.]
“하이딩 7초, 잔상 11초, 백스텝 5초.”
[마지막으로 타깃 설정. 타깃은 라스트 타깃과 타깃 셀프라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당연히 타깃 셀프. 라스트 타깃을 하면 위의 것들은 발동되지 않으니 주의해야한다. 설정을 끝내면 저장하고, 다시 같은 작업으로 락파킹 스킬을 9초 딜레이에 놓은 뒤 라스트 타깃에 맞춰라. 이걸로 끝이다. 마지막으로 당부할 것은 무조건 걸어라. 제자리에 서 있으면 스킬이 아주 더디게 상승할 것이다. 그럼 건투를 빈다 -로그지존-]
“타깃 셀프. 저장. 락피킹 9초, 라스트 타깃. 저장. 스킬에 관한 것 말고도 리얼 모드 3단계에서 가능하다는 말도 있었으렷다? 마나량 체크를 위해 2단계를 권했지만 그럴 필요도 없고, 편한 게 좋겠지. 감도설정 변경, 3단계로.”
약간의 어지러움이 일었다. 매크로는 아직 시작 명령어를 내리지 않아서 침묵 상태였고 마나는 풀로 채워져 있었다.
“계속 걸으려면 큰 길로 나가야겠지?”
여관방 열쇠를 카운터로 반납하고 대로로 나갔다.
뤼크레스의 크기는 수도의 반도 안 됐지만 6대 영지라 불리는 곳 중 하나이기 때문에 사방이 온통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매크로 시작. 이참에 걸어서 대륙 횡단이라도 해봐?”
곧 나는 이 말을 절대 실행에 옮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느릿느릿 걷기 시작하자 몸동작 하나하나에 잔상이 생겨났다. 그리고 잠깐 잠깐씩 몸이 파랗게 변했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이딩 스킬이 발동되었다가 움직여서 풀려버린 것 같다.
여기까진 좋다.
생각보다 많은 양의 마나가 빠져나가고 있지만 마나 회복 속도 증가라는 옵션이 붙은 아이템 몇 개를 찾아 장비하니 포션 없이도 반나절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백스텝이었다.
5초마다 한 번씩 사용되는 백스텝은 나를 제자리로 돌려놓다 못해 조금씩 뒤로 물러나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스킬 레벨이 높아지면 더 먼 거리를 뒤로 이동한다니……!
조금 더 버텨보다가 다리 아프고 지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리얼모드를 2단계로 전환시켰다.
크루드와 쿤에게는 로그 스킬을 올리느라 당분간 같이 사냥 못 할 것 같다는 얘기를 전했고, 이제 스킬 오르는 것이나 감상하며 시간을 보내련다.
그렇게 현실에서 1주일, 게임상에선 3일이란 시간을 보냈다.
* * *
“매크로 정지.”
하이딩, 스텔스(하이딩 상태에서 움직이는 기술), 잔상, 백스텝. 이 4가지 스킬 중 가장 안 오르는 스텔스가 드디어 숙련도 60%를 넘어섰다. 듣자하니 이 정도면 80레벨 대의 로그들과 비슷한 수준.
어차피 꾸준히 사용할 것이기에 만족하고 스킬 업 노가다를 끝마쳤다.
“야, 저기 봐.”
“어? 움직이네?”
“렉 풀렸나?”
매크로를 정지시키고 마나 포션 하나를 따 마시며 이동하자 여기저기서 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지난 3주 동안 난 뤼크레스의 새로운 명물로 떠올랐다.
광대처럼 웃는 흰 가면에 검은 옷을 입고, 잔상을 남기며 몇 걸음마다 감쪽같이 사라져 뒤쪽에서 다시 나타나길 반복하니 시선을 끌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렉 걸린 광대.
하이딩과 스텔스 때문이 백스텝을 쓰는 것은 보이지 않고 앞으로 걸어가는 것만, 그것도 다시 나타날 때는 처음보다 더 뒤에서 보이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은 것이다.
통신 속도가 극한에 이르렀다고 평가되는 시대에 렉이라니. 쳇!
“귓속말, 크루드.”
“뭐 해? 나 스트다.”
“아! 마침 잘됐다. 빨리 의뢰소로 와.”
“응? 알았어.”
“귓속말 해제. 무슨 일이지?”
귓속말을 걸자마자 크루드는 반가우면서도 다급한 목소리로 날 불렀다.
의뢰소라……. 던전 탐사 퀘스트라도 받은 건가?
“크루드, 쿤!”
“스트! 잘 왔다. 안 그래도 널 불러야 할지 고민했는데.”
“무슨 일이야?”
“실은…….”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들어맞았다. 크루드가 랭크 확인도 안하고 던전 탐사, 아니 정확히는 미궁 탐사 퀘스트를 덥석 받아버린 것이다!
무르자니 A랭크라 위약금과 명성치 하락이 너무 컸다. 그래도 포기하는 게 정상이지만 퀘스트가 원하는 것이 공략이 아니라 탐사라는 게 또 걸렸다. 위험을 감수하고 살짝 들여다보고만 오면 상당량의 보수가 들어오니까.
그렇게 고민하던 차에 로그로 전직한 내가 온 것이다. 스킬까지 가다듬은 상태로. 물론 던전 탐사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것들뿐이지만.
“알았어. 한번 들여다보고나 오자. 정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 포기하고.”
“우아앗, 역시 넌 착한 놈이야!”
등급이 A랭크 걸린 미궁에 함께 들어간다는 것은 나 또한 목숨 건다는 소리였기에 크루드는 온몸으로 고마움이 표시했다.
큭, 아무리 그래도 남자끼리 껴안는 건 사양하고 싶다고!
“좀 떨어져, 임마! 근데……누구?”
난리치는 크루드를 떼어놓자 비로소 쿤의 옆에 서있는 검붉은 로브의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쿤과 한마디씩 주고받는 걸 보니 아는 사람 같은데, 파티원인가?
“아, 인사 안 했지? 이쪽은 아슈라. 네크로맨서고, 너랑 만나기 전부터 잘 알던 녀석이지. 너 없을 때도 가끔 팀플 했어. 이쪽은 스트. 얼마 전에 도둑놈 딱지를 떼고 로그가 된 녀석이지. 나이는 스트가 한 살 많으니까 형, 동생하면 되겠네.”
네크로맨서라. 소환사 클래스에서 어쌔신처럼 레벨 40에 범죄자 마을로 가 호칭을 받으면 전직된다던데 실제로 보긴 처음이군. 키우기가 좀 까다로울 텐데?
“반갑다. 난 스트. 크루드가 말했듯이 로그로 전직했고 마법사 클래스도 활성화시켜 놓았지. 나보다 1살 어리다니 동생처럼 대할게. 괜찮지?”
“물론이죠. 전 아슈라고요, 클래스는 네크로맨서. 레벨은 64에요. 형이라고 부를게요.”
“그래, 잘 지내보자.”
“근데……. 스트 형이 혹시 렉 걸린 광대 아니에요?”
아슈라는 내 기분이 상할까봐 조심스레 물었다. 크게 상관하지는 않지만 썩 좋은 별명은 아니니까.
“맞아. 실제로 렉 걸린 건 아니지만.”
“우왓! 역시 맞았네! 스트 형, 그럼 그건 뭐한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보고 웃어도 저한텐 뭔가 대단해 보이던데…….”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아슈라의 눈에는 진실이 담겨져 있었다. 놀리거나 장난치는 건 아닌 것 같군.
“로그 스킬 수련이야. 무한 반복이라 이상하게 보인 거지. 음, 한 번 보여주는 게 낫겠군. 잔상!”
크루드와 쿤도 궁금한 표정을 짓자 한 번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잔상. 손오공이 분신술이라도 쓰듯이 내가 움직이는 뒤쪽으로 나와 똑같은 허상들이 남았다.
“하이딩!”
온몸이 파랗게 변하며 하이딩에 성공했음을 나타냈다.
“백스텝!”
하이딩이 풀림과 동시에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뒤로 약 2m 가량 움직였다. 원래부터 거기 있었다는 듯이.
“이게 반복된 거야. 눈에 잘 안 보이니 사람들은 렉 걸려서 움직여도 제자리, 혹은 더 뒤로 간 거라 생각한 거고.”
“우, 우와. 멋있다!!!”
“오오오오!!!!”
쿤과 똑같이 반응하는 아슈라에게 어깨를 한번 으쓱여 주고 크루드를 찾았다.
“더 이상은 안 되니까 사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슈!”
“알았어요. 삽니다, 사!”
크루드는 한쪽에서 어떤 인물과 거래 중이었다. 잠시 후 돌아온 크루드는 투덜거리면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미궁은 수도 폴메르의 북서쪽에 있는 그로티우스 산맥에 위치. 단층으로 되어 있으며, 1주일에 한 번씩 미궁을 구성하는 벽들의 위치가 바뀌기 때문에 지도를 만들 수 없다. 벽은 어떤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아무리 강한 힘, 강한 마법으로 공격해도 멀쩡하고, 출몰하는 몬스터도 오크, 고블린에서부터 가고일, 리치, 듀라한까지 다양하다. 서식지역 또한 벽위 위치가 달라질 때마다 달라짐. 마지막 장식용 문이 있는 곳에는 미노타우르스가 버티고 있다. 미노타우르스의 뒤에 있는 거대한 문은 아무리 밀고 당겨도 움직이지 않는다. 차후 업데이트 될 것으로 추정.]
역시 돈 주고 산 것이라 그런지 정리는 잘되어 있었다. 별로 도움이 될 만한 건 없지만.
하긴, 매주 길이 바뀌고 몬스터 출몰 지역도 바뀌는데 저들이라고 별 수 없겠지.
“큭, 피 같은 돈 들여서 매스 텔레포트 스크롤까지 샀다. 좌표를 모르니 할 수 없지. 아니, 안다 해도 좌표 계산 스킬을 가진 사람이 없으니 할 수 없나? 아무튼! 이번에 가서 뭐라도 건져와야지 안 그러면 얼마 남지도 않겠다. 포션 값까지 빼면 적자일지도……큭!”
좌표만 듣고 랜덤 텔레포트 스크롤이나 랜덤 매스 텔레포트 스크롤에 좌표를 적어넣을 수 있는 것은 각각 7써클과 9써클. 텔레포트와 매스 텔레포트 마법을 익힌 마법사뿐이다. 해당 마법을 익힐 때마다 패시브 스킬로 생기니까.
그렇지 않다면 직접 가서 땅에 스크롤을 놓고 기억시켜야 하는데 지금 같은 경우 미궁의 좌표가 기억된 텔레포트 스크롤로 한 명이 갔다 와서 모두를 데려가거나 처음부터 좌표가 기억된 매스 텔레포트 스크롤을 사야한다.
하지만 전자를 택할 경우, 보통의 것보다 비싼 텔레포트 스크롤을 사고 텔레포트 스크롤과 매스 텔레포트 스크롤을 하나씩 더 사야하기 때문에 가격에 큰 차이가 나지 않는 한 매스 텔레포트 스크롤을 사는 것이다.
크루드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우리는 하얀빛에 몸을 실었다.
근데, 겨우 4명 가지고 되려나?
“스트, 부탁한다!”
미구으이 입구에 도착하자 크루드가 내 어깨를 짚으며 힘을 주어 말했다.
“초보 로그 너무 믿다가는 피 볼지도 모르니까 너희도 각자 조심들 해.”
반은 농담이고 반은 진담이다. 사람 수가 너무 적은 관계로 내 뒤에 쿤과 아슈라, 그 뒤에 크루드가 서는 식이었다. 그래봐야 좀 강하다 싶은 적이 나오면 크루드가 튀어나올 테지만.
“취이익!”
“오크? 근데 왜 검둥이냐?”
가장 먼저 조우한 적은 까만 피부의 오크들이었다. 아니, 오크가 맞기는 한 건가?
“스트 형. 블랙 오크도 몰라요? 3, 40레벨 대에 많이들 잡는 건데.”
“냅둬라. 저놈이 고생을 모르고 레벨을 키워서 그래. 온실의 화초처럼 살았달까? 킥킥!”
아슈라가 황당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손을 내저으며 놀려댔다.
거듭 말하지만……. 저렙들의 일을 내가 알고 있을 리 없잖아!
“우리는 용맹한 블랙 오크 일족. 취익! 침입자들. 취익! 죽인다.”
대장으로 보이는 놈의 말에 따라 10여 마리의 블랙 오크가 각자의 무기를 꼬나 쥐었다. 무기는 주로 장창.
대체 저런 무기들은 어디서 구하는 걸까?
“둘, 넷, 여섯……. 총 14마리군. 쿤, 스트. 한방씩 먹여줘라.”
“응, 삼촌. 파이어 볼! 파이어 볼!”
“나, 화염의 구로써 적을 멸할지니. 파이어 볼!”
7써클에 오름으로써 그보다 5단계 낮은 2써클의 파이어 볼은 주문 없이 쓸 수 있게 된 쿤은 내가 1번 파이어볼을 쏘는 동안 2번을 쏘아냈다.
명중률? 넓지 않은 공간에 14마리나 되는 놈들이 뭉쳐 있으니 못 맞추는 게 더 이상한 일 아닐까? 결국 세 방의 파이어 볼에 모두 6마리의 블랙 오크가 전사. 이제 8마리 남았다.
“취릭! 동족, 죽었다. 취릭! 취익! 복수한다.”
“오호? 파이어 볼의 여파에도 그을린 자국 하나 없다니. 정말 파괴불능쯤 되나본데? 여기서라면 파괴력 강한 범위 마법도 쓸 수 있겠어.”
블랙 오크들은 우왕좌왕하다가 불탄, 혹은 터져 죽은 동족들의 복수를 다짐하며 열을 냈지만 우리 쪽 반응은 냉담할 뿐이었다. 오크 따위의 행동에 일일이 반응해줄 필요는 없지.
“음, 저 정도 놈들이라면 제가 처리할 테니 형들은 쉬어요. 시체 폭파!”
아슈라가 품에서 손바닥보다 조금 긴 뼈다귀 하나를 꺼내 휘두르자 바닥에 널려 있던 블랙 오크들의 시체가 차례로 폭발했다.
“오, 제법인데!”
네 구의 시체가 폭발하면서 무려 일곱 마리의 블랙 오크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한 마리가 살아남았지만 어디까지나 폭발 범위를 벗어나 있었기 때문. 그리고 그마저도 안면이 꿈틀거리는 게, 시독에 중독된 듯싶었다.
“나의 종들이여, 일어나라. 서먼 스켈레톤!”
대단하다는 말도 하기 전에 아슈라는 한가지 행동을 더 취했다. 그것은 바로 블랙 오크의 시체로 자신의 종, 스켈레톤을 만드는 일! 블랙 오크의 몸에서 뽑아낸 뼈들인 만큼 한 마리 한 마리의 크기가 오크만큼이나 작았지만 여섯 마리나 만들어져서 방패막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을 듯싶었다.
“공격!”
아슈라의 명령에 따라 여섯 마리의 스켈레톤들은 자신의 시체에 있던 무기들을 주워들고 마지막 한 마리의 블랙 오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6대1에 독까지 걸렸으니 싸우기도 전에 승패는 갈려져 있었다. 마지막 한 마리까지 해치운 아슈라는 더 이상 스켈레톤을 만들지 않고 대신에 다른 블랙 오크의 시체에서 무기를 빼앗으라 명했다.
“응? 이미 죽은 시체에서 무기를 뺏을 수 있어?”
도둑도 못하는 짓을 아슈라의 스켈레톤들이 손쉽게 해내는 걸 보고 놀라서 물었다.
“네. 제가 직접은 못하지만 소환한 몬스터들이라면 가능해서. 저 아이템을 제가 넘겨받지는 못해도 저 녀석들에게 장비 시킬 수는 있죠. 네크로맨서에 특권이랄까요? 후후.”
아슈라는 여분의 무기를 챙기는 스켈레톤들을 보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쓰러뜨린 적의 무기를 뤼한다라, 데스 나이트나 듀라한 정도 되는 녀석들을 쓰러뜨리면……. 대단하겠군!
“그럼 혹시 유저들의 시체에서도 무기를 강할 탈 수 있어? 스켈레톤을 소환해내는 건?”
“유저의 무기를 빼앗을 수도 있기는 한데 그건 소환된 몬스터의 힘이 유저보다 강해야하고 한 번 하면 성향이 악으로 변해버리기 때문에 해본 적은 없어요. 유저의 시체로 스켈레톤을 소환하거나 정신체 상태로 살려내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성향이 변한다라? 제법 그럴싸한 페널티이지만 작정하고 써먹으면 무서운 능력이 되겠군. 예를 들면 길드전에서!
“다 됐어요. 스켈레톤들이 앞장설 테니까 형들은 뒤만 잘 봐줘요.”
양손에 무기를 하나씩 꼬나 쥔 스켈레톤들은 달그락 달그락 뼈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겁도 없이 전진했다. 아직까진 길이 일방통행이다.
피슛!
“모두 멈춰.”
뽀각 소리가 나며 가장 앞서 걸어가던 스켈레톤의 갈비뼈가 강궁에 의해 부러졌다.
함정이군.
“나한테 맡겨. 디텍트!”
함정 발견 스키르이 시동어를 외치자 박살난 스켈레톤의 발밑에 색칠한 것 같은 동그라미 표시가 있는 것이 보였다.
저걸 해체하라는 건가 보군.
“함정 해제!”
동그라미 위에 손을 얹고 시동어를 외치자 동그라미 안에 빛이 생기며 빠르게 모양을 지워갔다. 이게 다 지워지면 함정이 해제되는 건가?
“다 됐다. 아니, 다 된 것 같다. 나도 처음 해보는 거라…….”
“뭐, 실험해보면 알겠죠. 전진!”
다시 한 번 스켈레톤들이 달그락 소리를 내며 걸어갔다. 다행히 무사통과. 수련이 헛되지는 않았나 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갈림길이 등장했다. 처음으로 길찾기 스킬을 사용하자 발아래 나만 보이는 화살표가 빙글빙글 돌다가 쓰러지며 어느 한 방향을 가리켰다.
“왼쪽이다.”
어차피 내가 아니면 찍어서 길을 가야 하기 때문에 반대 의견은 없었다.
“삼촌! 저기, 저기!”
일방통행이던 길이 끝나고 직사각형의 네모난 방에 들어섰을 때 무언가를 발견한 쿤이 방의 구석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헛! 보물 상자?”
어두운 방의 구석에는 군데군데 붉은색으로 칠한 낡은 상자가 있었다.
“막다른 길에 보물 상자라,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모양이군.”
아무리 방을 둘러봐도 우리가 들어온 곳 말고는 길이 없었다.
길 찾기 스킬도 숙련 시키지 않으면 실패 할 때가 있는 모양이군. 이거, 미안해지는데?
“형! 자물쇠, 자물쇠!”
보물 상자를 보고 흥분한 쿤이 내 팔을 잡아 흔들며 재촉했다.
자물쇠가 걸려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저 보물 상자를 로그인 내게 열어달라는 소리군. 뭐, 그게 내 몫의 일이긴 하지.
“알았어.”
쿤의 성화에 못 이겨 락픽이라 불리는 자물쇠 따기용 아이템을 들고 보물 상자를 향해 걸어갔다. 자물쇠 따는 방법은 나에게 꽤나 익숙한 것이었다. 어렸을 적 애들과 재미삼아 익혔던 철사로 문 따는 법과 매우 흡사했기 때문에. 다른 거라고는 이 락픽이란 도구가 철사보다 두껍다는 것뿐이다.
그 덕일까? 0%였던 자물쇠 따기 스킬이 단숨에 수십 퍼센트씩 뛰어올라 지금은 80%에 육박하고 있었다.
그런 내가 이런 던전의 자물쇠 따위, 못 딸 리가 없지.
“어? 자물쇠가 없는데?”
덜컹. 덜컹.
“피해!”
“큭, 이건……미믹이다!”
예상 밖으로 보물 상자에 자물쇠가 없다는 점에 놀라고 있을 때, 보물 상자가 덜컹거리더니 갑자기 입(뚜껑)을 쫙 벌리고 달려들었다.
재빨리 피하기는 했지만 왼팔이 미믹의 이빨에 긁혔다. 어찌나 이빨이 날카로운지 살짝 긁혔음에도 꽤 깊은 상처가 남았다.
심한 고통이 일었지만 포션으로 치료할 시간도 없었기에 미믹을 발로 밀어내고 급히 백스텝을 사용해 몸을 피했다.
“공격해!”
“파이어 볼!”
세 번이나 연거푸 백스텝을 사용해서 미믹과의 거리를 벌리자 아슈라와 쿤이 각각 행동을 취했다. 먼저 미믹에게 도착한 것은 쿤의 파이어 볼이었다.
“헉!”
덥석!
죽이진 못해도 미믹을 저만치 날려버리리라 생각했던 파이어볼을 미믹이 입을 벌려 삼켜버리자 쿤은 저도 모르게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나무 재질로 된 것처럼 보이는 미믹은 불덩어리를 삼키고도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달라는 듯 탁탁탁탁 캥거루처럼 뛰어서 다가올 뿐.
설마, 상자라서 저장한 거냐? 쿨럭!
“크루드 형, 이놈은 제가 맡을 테니 스트 형부터 치료해줘요.”
“그래, 부탁한다!”
파이어 볼을 삼키는 모습에 놀라 급히 스켈레톤들을 뒤로 물렸던 아슈라가 다시금 그들을 조종하며 앞으로 나섰다.
“전원 창 장비!”
처음 나타났던 14마리의 블랙 오크 중 10마리가 창을 장비하고 있었으므로 5마리의 스켈레톤들이 창을 하나씩 쥐는 건 어렵지 않았다.
“목표는 미믹. 전원 투창!”
슈슉!
5마리의 스켈레톤들은 별도의 훈련을 받지 않았음에도 제법 정확하고 강하게 창을 날렸다.
허나, 또 한 번 놀랄 일이 벌어졌다.
덥석. 꽈직!
미믹이 날아오는 창을 먹어버린 다음, 길어서 다 넣지 못한 창대를 물어 부러뜨린 것이다.
짧아진 창은 여유 있게 미믹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부러진 창대는 바닥에 널브러졌다. 당황한 아슈라가 무기를 바꿔 다시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괜한 짓이었다.
우적우적
우드득
꽈득!
턱이 강한 미믹은 5마리의 스켈레톤을 과자 씹듯 맛있게도 먹어버렸다. 이걸로 아슈라는 전투력 상실인가?
“다 됐다. 우리가 나서자.”
“삼촌, 힘내! 파이어 인챈트!”
어느새 내 팔에 난 상처가 모두 아물어 있었다.
자신들의 힘으론 무리라 느낀 쿤과 아슈라는 우리의 뒤쪽으로 돌아왔고, 쿤이 나와 크루드의 검에 화염 속성을 부여해줬다.
한번 놀아볼까?
“쉐도우 소드!”
공격을 하기 전, 먼저 그림자의 단검 특수 능력인 쉐도우 소드를 사용해 왼손에도 검을 만들었다. 그런데 상당한 마나가 빠져나가는 느낌. 쉐도우 소드를 만드는 데 마나를 사용 하는 것 같다.
“내가 뒤로 돌아갈 테니 넌 앞을 맡아. 하이딩!”
하이딩으로 몸을 숨기자 바로 옆을 지나가는데도 미믹은 알아채지 못했다.
미믹과 격돌한 크루드는 조금씩 뒤로 물러나면서 확실히 상자 뚜껑을 내리찍었다. 횡베기를 시도했다면 미믹의 이빨에 검이 물렸을지도 모르지만 내려찍는 형태의 종베기만을 거듭하자 미믹은 자꾸 뚜껑이 닫혀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하압!”
적당히 거리가 잡히자 난 다리를 들어 열리려는 미믹의 뚜껑을 내리찍고 두 개의 검을 X자가 되게 꽂아 넣었다.
고통스러운지 발작을 하던 미믹을 크루드가 가세하여 뚜껑을 검으로 찍어대자 얼마 가지 못하고 침묵했다.
미믹이 남긴 것은 붉은 띠가 둘러진 스크롤 한 개.
“그게 뭐야?”
“글쎄. 지금 확인해 볼게.”
“야! 너 감정 스킬 없어? 확인 스크롤이 얼마짜리인데 그걸 그렇게 막 써대?”
품에서 확인 스크롤 한 장을 꺼내자 크루드가 아깝다는 표정으로 물어왔다.
아, 감정 스킬이 있었지!
“아차, 깜박했다. 감정!”
감정용 돋보기를 꺼내 스크롤에 대고 시동어를 말하자 스크롤의 표면에 조그만 글씨가 떠올랐다.
[리빌 마법 스크롤]
6써클의 리빌 마법을 1회 사용 할 수 있게 해준다.
“쩝, 별거 아니네. 팔리지도 않는 거 인벤토리 차지하니까 그냥 써버리자. 리빌!”
우우웅!
리빌 스크롤은 잘 팔리지도 않는 품목이기에 그 자리에서 사용해 없애버렸다. 한데 예상치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보통의 리빌과 다른 느낌이다 싶더니 어디선가 공명음이 들리며 막혀 있던 벽에 문이 하나 나타난 것이다!
혹시……지름길?
“가보자!”
끼이이익!
크루드가 힘을 주자 문은 어렵지 않게 열렸다.
안은 다른 곳과 똑같은 제법 넓고 밝은 길이었다. 30m 쯤 가자 드디어 몬스터가 보였다.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에게? 겨우 좀비에 구울이야? 쓸데없이 힘 빼긴 싫은데.”
“그러게요. 저런 놈들론 스켈레톤을 소환해도 약해빠졌고 좀비 상태로 살려내도 느려서 못 써먹는데…….”
“삼촌, 아슈라 형! 그래도 듀라한 같은 몬스터를 안 만난 게 어디야? 우린 지금 여기서 살아나가기만 해도 다행이라고!”
너무 간단한 승리로 자신들의 처지를 망각한 크루드와 아슈라에게 쿤이 일침을 가했다.
철부지 대학생들보다 야무진 초등학생이 낫군. 쩝!
“그러고 보니 힘 안들이고 이동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지!”
크루드가 힘 빼기 싫다는 말에 잊고 있던 아이템 하나가 떠올랐다. 말하기도 민망한 이름의 럭셔리하고 엘레강스한 마족의 로브가 그것!
이 아이템이 지닌 능력 중 하나인 레벨 40이하 언데드계 몬스터 접근 방지라면 손끝도 안 건드리고 길을 뚫을 수 있는 것이다.
“끼엑?”
“끼에에에~.”
효과는 탁월했다. 로브를 차는 순간 좀비, 구울들은 내 시야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저게 무슨?”
“이 로브의 특수 능력이야. 40레벨 이하 언데드계 몬스터 접근 방지.”
“오오오오!!!”
이미 이 로브에 대해 알고 있는 크루드와 쿤은 고개만 끄덕였지만 아슈라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로브를 샅샅이 둘러봤다.
“그만 좀 보고 이제 이동 해야지?”
“아, 죄송해요. 너무 신기해서.”
“나중에 로브 갈아치울 일 있으면 이거 너 줄 테니까 일단 이동부터 하자.”
“저, 정말요? 가, 감사합니다. 형님!”
어차피 로그로 생활하려면 거추장스러운 로브는 방해만 될 뿐이니 오래 사용할 생각도 없었다.
이 미궁 건만 어찌 해결되면 넘겨줘야겠군. 크루드, 쿤과 친하다고 하고 왠지……. 한두 번 만나고 말 것 같지는 않아.
크그그그그!
“뭐, 뭐야?”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데 앞쪽에서 돌을 가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헛!”
“끼에엑!”
잠시 후, 눈앞에 펼쳐진 것은 바닥에 쌓여있는 좀비, 구울들의 시체와 그 위에서 마지막 구울의 머리를 악력만으로 터트리는 악마 형상의 돌조각상의 모습이었다.
“욱, 우웁!”
“제길. 가고일이다.”
아무리 시체라고 해도 사람이었던 좀비의 머리통이 사과 터지듯 터져나가자 아직 어린 쿤이 토할 것처럼 구역질을 했다.
아직은 초등학생인데, 충격적이었겠지.
“스트, 아슈라. 저놈은 내가 맡을 테니까 너흰 쿤을 데리고 왔던 곳으로 돌아가!”
“하지만…….”
크루드가 가고일에게 검을 겨누며 소리쳤다.
“이대로 있으면 다 죽어. 어서!”
“크루드 형……. 미안해요!”
쿤을 들쳐 맨 아슈라는 왔던 길을 향해 힘껏 달려갔다.
“스트, 너도 가! 스켈레톤도 없는 상태에선 좀비만 리젠되도 저 녀석은 죽어.”
일리 있는 말이었다. 네크로맨서의 스킬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공격 수단 하나 없어 보이는 아슈라는 좀비 몇 마리 이길 수도 없을 터였다.
“제길, 금방 돌아온다. 그때까지만 버텨!”
크루드를 향해 날아오른 스톤 가고일을 뒤로하고, 난 질풍이 되어 쿤에게로 달려갔다.
조금만 버텨라, 크루드!
“비켜!”
퍽! 푹! 퍽! 퍽!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조차 비도는 내 뜻을 따라주지 않았다. 어느새 리젠되어 아슈라의 앞길을 막아선 구울들은 비도에 맞아 주춤거렸고, 그 사이에 난 적진으로 뛰어들어 한바탕 칼부림을 했다.
“나의 종들이여, 일어나라. 서먼 스켈레톤!”
스켈레톤화 시키기에 썩 좋은 뼈는 아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아슈라는 입술을 깨물며 서먼을 마쳤다.
“이 정도면 피해있는데 지장 없지?”
“예.”
“이거 받고, 그럼 쿤을 부탁한다!”
만일을 위해, 입고 있던 마족의 로브를 아슈라에게 건네주고 다시 크루드에게로 힘껏 달렸다.
달리기 할 때 숨차지 않게, 숨을 고르는 방법도 잊어버렸다. 그냥 온몸의 힘을 모두 발끝에 모아 달릴 뿐이다. 내 몸이 이렇게 느리게 느껴져 보긴 처음이다.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어금니에 힘이 들어갔다.
깡! 깡! 퍼억!
다행히도 크루드는 아직까지 버텨 주고 있었다. 독수리가 먹이 채듯이, 공중에서 떨어져 내리며 공격하는 스톤 가고일을 크루드는 몸으로 막아냈다.
자신 이외에 무엇에도 신경 쓰지 못하게 하겠다는 듯이.
번쩍!
다시 한 번 날아오른 스톤 가고일이 나를 발견했는지 눈에서 하얀 빛을 뿜어냈다.
“난 여기 있다!”
스톤 가고일이 자신에게 떨어져 내리지 않고 내 쪽으로 날아오자 크루드는 벽을 도움닫기 해서 날아오른 스톤 가고일의 다리를 붙잡았다. 내가 돌아왔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스톤 가고일은 크루드를 떨쳐버리려 다리를 흔들어댔지만 그럴수록 크루드는 더 악착같이 달라붙었다. 아니, 달라붙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허리로, 가슴으로 올라간 크루드는 다리로 스톤 가고일의 몸통을 감싸고 놈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하기 시작했다.
검은 이미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망가지는 것은 크루드의 손뿐, 스톤 가고일은 약간의 돌가루만을 날렸다.
“크아악!!! 이건 어떠냐!”
두 주먹이 망가져 버렸음에도 크루드는 멈추지 않았다.
이마로 스톤 가고일을 들이받아 버린 것이다. 당해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도 크루드는 망설임이 없었다.
“크루드!!”
땅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크루드에게 부유 마법을 걸고 스톤 가고일에게는 라이트닝을 연속해서 쏘아냈다.
땅에 사뿐히 내려앉은 크루드의 몸 상태를 재빨리 살폈다. 아직까지 회색으로 물들지 않은 걸로 보아 죽지는 않은 듯. 나는 서둘러 크루드의 입가에 상급 포션을 흘려 넣고 엉망이 된 주먹과 머리, 온몸을 포션으로 흥건히 적셨다.
“감히 네깟 놈이!!”
쉬이익!
방금 전 난사한 라이트닝 때문인지 공중에서 빙빙 돌기만 하던 스톤 가고일이 내 고함 소리에 맞춰 짓이겨 들어왔다.
“라이트닝 랜스, 차지 볼트!”
기다란 전격의 창과 노오란 전격의 구체가 스톤 가고일을 향해 달려들었다. 먼저 팔뚝만한 굵기의 라이트닝 랜스는 쉽게 피했다. 하지만 사람 머리통보다 큰 차지 볼트에는 약간의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가슴팍이 떨어져 나간 스톤 가고일은 다시 하늘로 올라 틈을 엿봤다.
“무지한 자들에게 심판을…….”
양손에 마나를 모으자 샛노란 번개가 두 손에 넘실거렸다.
“체인 라이트…….”
“참!!”
더블 체인 라이트닝으로 스톤 가고일을 박살내 버리려는 순간, 뒤쪽에서 날아간 핏빛 광선이 스톤 가고일에게 명중했다.
외관상의 변화는 없었다. 다만 움직이지 않고 눈으로 내뿜는 하얀빛이 흐려졌다 밝아졌다 하기를 반복할 뿐.
잠시 후, 흐려진 빛으로 고정된 스톤 가고일이 얌전하게 날갯짓해 내 뒤쪽으로 내려앉았다.
“니들…….”
내 뒤에 서 있는 이는 핼쑥한 얼굴의 쿤과 마족의 로브를 입은 아슈라였다.
“쿤이 졸라대서 어쩔 수 없었어요. 그런데 이 가고일, 돌머리긴 돌머린가 본데요? 이렇게 쉽게 매혹에 걸리다니.”
스톤 가고일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린 아슈라는 멋쩍은 모습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삼촌!”
쓰러진 크루드를 발견한 쿤이 잽싸게 달려갔다. 상급 포션의 뛰어난 치유력 덕분에 외상은 사라졌지만 크루드는 아직 기절한 상태였고, 쿤은 그런 크루드의 머리를 붙잡고 ‘나 때문에…….’를 연발하며 울먹거렸다.
“이제부터 네 이름은 돌대가리다.”
끄덕. 끄덕.
크루드가 깨어날 때까지 이 자리에 머물기로 하자 아슈라는 먼저 스톤 가고일에게 이름부터 지어줬다.
“자, 내가 부를 때까지 처음 네가 있던 자리로 가라.”
아슈라의 명령을 들은 돌대가리는 근처의 동산 받치매 위로 올라가 섰다.
저기에 있다가 침입자인 좀비, 구울들을 죽이러 내려온 거군.
“저럴 필요 없이 그냥 근처에 두는 게 낫지 않을까? 근거리 방어용으로도 쓰고.”
“제가 몇 번 실험해 봤는데 가고일처럼 특정 장소에서만 리젠되는 놈들은 리젠 장소를 막아버리면 막혀 있는 동안은 리젠되지 않더라고요.”
“으흠…….”
“삼촌, 정신이 들어?”
던전에 대해 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아슈라와 정보 교환이 한참일 때, 크루드가 뒤척이며 눈을 떴다.
“쿤? 여긴……?”
“아직 미궁 안이야. 삼촌. 나쁜 가고일은 아슈라 형이 복종시켰어.”
“큭, 도망가라니까 그런 위험한 짓을 잘도 해냈군. 다친 사람은?”
“너 혼자야. 어때, 몸은 괜찮아?”
“머리가 조금 아픈 걸 빼면 그런대로.”
“머리야 당연히 아프겠지! 돌덩이에 박치지 하고 멀쩡하면 그게 어디 사람이냐? 뇌진탕 안 걸린 걸 다행으로 알아!”
내 호통에 크루드는 머리만 긁적였다.
크루드가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것은 조금 시간이 지나서였다. 머리를 다친 후유증은 그만큼 컸다.
계속 진행 할까, 이만 돌아갈까를 상의해본 결과 계속 진행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이번엔 여차하면 돌대가리를 뒤에 남길 수 있으니까.
돌대가리가 리젠 장소를 벗어나고도 스톤 가고일의 리젠은 바로 이어지지 않았고, 우리는 순조로운 진행을 보였다.
500m쯤 되는 거리를 걷는 동안 모두 3개의 함정이 있었지만 고작 하급, 중급일 뿐이어서 내게 위협이 되진 못했다.
“삼촌, 저기!”
끼기기기긱!
3번째 함정을 제거하고 다시 7분쯤 걸었을 때, 넓은 방으로 들어서면서 이번엔 쇠로 만들어진 가고일 한 마리가 우리의 움직임에 반응해 날아올랐다.
“이번엔 쇠대가리냐? 참!”
돌대가리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언 가고일의 녹색 눈빛이 흐려지더니 이내 굴복했다.
허……! 참의 효과가 장난이 아닌데?
“이제부터 네 이름은 쇠대가리다.”
아슈라는 이번에도 아이언 가고일의 이름을 멋대로 바꾸어 버렸다.
돌대가리에 이어 쇠대가리라, 의외로 어울리는 이름이긴 하지만……. 끄응!
“삼촌, 저거 문 아니야?”
“응?”
다부진 소대가리의 몸매를 감상하던 중, 쿤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200m 정도 앞에 있는 커다란 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더불어 그 앞을 지키고 서있는 가디언, 미노타우르스까지.
“뭐, 뭐야. 저 소대가리 몬스터는? 설마……우리가 벌써 미궁의 끝까지 도착한 거야?”
그러고 보니 오른쪽에 길이 하나 나 있고 우리가 왔던 길은 두꺼운 벽으로 변해 있었다.
이번엔 리빌을 써도 안 나타나겠지?
“이제 결정을 내려야겠다. 여기서 탐사를 끝마칠지, 저 소대가리하고 한 판 붙을 지.”
명색이 미궁의 보스인데 돌대가리, 쇠대가리가 합공한다고 이길 수 있을 리는 없었기에 크루드는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우움, 난 몰라. 삼촌 마음대로 해.”
쿤은 기권했다.
“참이 한 번 남아서 한번 써보고 싶기는 한데……. 어떻게 안 될까요? 돌대가리랑 쇠대가리로 시간을 벌고, 안 되면 그때 도망가도 될 것 같은데…….”
아슈라는 미련이 남는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모두들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일이니 강하게 주장하진 못했겠지. 음, 시도는 해볼 만하군. 안전장치만 마련해 놓으면.
“한번 시도해 보는 건 괜찮을 것 같은데? 대신 다른 사람들은 리턴을 준비해놓고 아슈라만 두 대가리들을 이끌고 가야 해. 그래야 타이밍 맞춰서 도망 갈 수 있으니까. 괜찮겠어?”
“네! 스트 형!”
크루드가 반대해도 다수결에 따라 2대1로 승. 위험한 일이었지만 아슈라는 혹시 모를 기대감에 흥분했다.
“좋아. 그럼 우린 이 방의 중앙에서 기다릴 테니까 실패하면 재깍 달려와. 다른 사람들도 긴장 해. 타이밍 잘 못 맞추면 오프닝에 나온 파티 꼴 날 수 있으니까.”
‘오프닝에 나온 파티’라는 소리에 모두가 움찔거렸다. 그 처절한 외침이 떠올랐기에.
“그, 그럼 다녀올게요. 돌대가리, 쇠대가리. 앞장서라.”
우리가 역삼각형 형태로 진형을 갖추자 아슈라는 두 대가리들과 함께 미노타우르스에게로 다가갔다. 미노타우르스와 거리는 아직 100m나 떨어져 있었지만 저 큰 덩치가 성큼성큼 달려오면 금세 좁혀질 테니 방심하진 않았다.
거리가 50m까지 좁혀지는 순간, 석상처럼 서 있던 미노타우르스가 감았던 눈을 뜨며 자이언트 액스를 치켜들었다.
“참!”
아슈라의 손에서 핏빛 광선이 쏘아졌다.
“크으…… 크워어어!!”
“모두 공격해!”
핏빛 광선을 맞은 후, 3초 간 멈춰있던 미노타우르스는 화가 난 것처럼 두 눈이 붉게 충혈되어 달려들었다. 아슈라는 침착하게 두 대가리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고 뒤돌아 달려왔다.
콰앙!
날개를 활짝 펴고 달려들던 돌대가리가 단 한 방에, 몇 조각의 돌덩이로 변해버렸다.
허, 이런 힘이라니!
“피해!”
크루드가 튀어나가 달려오는 아슈라를 밀치고 자신도 데굴데굴 굴렀다. 나와 쿤 역시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강철로 이루어진 쇠대가리가 미노타우르스의 엄청난 힘에 휴지조각처럼 구겨져 우리에게 던져졌기 때문에!
“오, 온다!”
우리는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땅에 처박힌 쇠대가리를 넋 놓고 볼 시간도 없이, 달려오는 미노타우르스를 피하기 위해 몸을 움직여야 했다.
“이쪽이다!”
그나마 일행 중 제일 빠른 내가 유인하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 하에 비도를 연속적으로 날렸다.
어차피 데미지는 기대도 안 한다. 시선을 내 쪽으로 끌어올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할 뿐.
“잔상! 쉐도우 소드!”
일행들이 없는 왼쪽으로 도는 내 뒤로 파란 허상이 따라붙었다. 얼마나 통할지는 모르지만 그걸 써볼까?
“위험해!”
“블링크! 하이딩!”
머리 위로 짓이겨 들어오는 커다란 도끼를 보며 난 수련할 때 생각해 두었던 기술을 선보였다.
블링크를 이용해 적의 뒤로 돌아가서 하이딩으로 기습을 가한다!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비록 등줄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미노타우르스가 몸부림치는 바람에 등에 X자의 상처를 남겼을 뿐이지만 미노타우르스의 키가 조금만 더 작았다면, 내가 조금만 더 높이 뛰었다면 목을 벨 수도 있었으리라.
“크워~.”
하지만 지금으로썬 놈을 더 화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스트, 도와줄게!”
“오지 마! 내 한 몸 지키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너흰 먼저 피해.”
“스트 형, 하지만…….”
내가 속도에서는 미노타우르스에게 그리 밀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아슈라는 도망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팡질팡했다.
“니들이 지금 가지 않으면 나까지 위험해져! 어서 가!”
“큭, 미안하다!”
“그러실 것 없습니다. 저희가 도와드리죠. 하압!”
크루드 등을 겨우 타일렀나 싶은 순간 다섯으로 이루어진 파티가 난입해서 미노타우르스를 대신 상대했다.
“크윽, 이거 생각보다 대단한 놈인걸? 그린, 블루. 협공하자.”
“오케이!”
미노타우르스와 한 번 맞부딪힌 붉은 망토의 사내가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서며 말하자 파란색, 초록색 망토를 두른 사내 둘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답했다.
이건 뭔가…… 특촬물 분위긴데?
“블루, 권풍 연타!”
둥! 둥! 둥! 둥!
가죽 북 두드리는 소리를 내며 블루라는 사내의 권풍이 미노타우르스를 뒷걸음질 치게 만들었다.
“그린, 토네이도 어택!”
그린이란 사내는 워리어인지 메이스를 들고 점프했다. 그는 공중에서 몸을 돌려 회전력을 얻은 뒤 미노타우르스의 오른 팔목을 내리쳤다.
“크아앙!”
강한 어택에 잔뜩 화가 난 미노타우르스가 왼팔을 휘둘러 그린을 벽까지 날려버렸다. 그사이 돌진하는 레드.
“레드, 열화검!”
열화검이란 말이 시동어였는지 그 말과 함께 레드의 검에서 강대한 불길이 치솟았다. 10m도 넘는 거리까지 퍼져 나온 뜨거운 바람. 이것이 저 무기가 범상치 않음을 말해줬다.
“크아아앙!”
미노타우르스의 오른쪽 어깨부터 왼쪽 옆구리까지 깊은 상처가 생겼다.
저런 멍청이! 그런 위력이라면 머리나 심장을 노렸어야지!!
“블링크! 하이딩!”
행동 불능 정도의 치명상은 아니었기에 미노타우르스의 손이 발악적으로 레드를 향해 날아들었다.
내가 나타난 곳은 미노타우르스의 어깨 위! 재빨리 왼손의 쉐도우 소드를 어깻죽지에 박아 넣었다.
“레드!”
파워는 많이 약해졌지만 적지 않은 위력에 레드 역시 벽으로 날아갔다.
그린과는 달리 벽을 차고 바닥에 내려앉았지만 다리에 온 통증이 보통은 아닌 듯싶었다.
발작하듯 두 팔을 휘젓는 미노타우르스를 뒤로하고, 나도 몸을 날렸다. 검은 그대로 박아둔 채.
내 생각이 맞는다면 마나로 만들어진 쉐도우 소드는 내 손을 떠나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예상은 적중했다.
“쉐도우 소드!”
미노타우르스의 어깨에 박힌 쉐도우 소드가 안개처럼 흩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새롭게 한 자루를 더 만들었다.
“옐로우, 그룹 힐!”
노란색 로브의 여성은 프리스트인지 쓰러진 그린, 레드에게 회복 주문을 걸어줬다.
그렇다면 저 분홍색 로브의 여자는……마법사?
“멸망으로 이끄는 홍염의 불꽃, 핑크, 그랜드 파이어!”
열화검 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강렬한 불꽃이 대지를 달구며 날아가 미노타우르스에게 작열했다.
“마무리다!”
“오케이!”
어느새 일어선 레드가 소리치자 이번엔 4명 모두가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핑크! 찢어발기는 진공의 검. 소닉 슬러쉬!”
“옐로우! 떨어지는 심판의 빛, 슈팅스타!”
“블루, 아쿠아 스파이크!”
“그린, 라이트닝 랜스!”
“레드! 열화검, 화룡출두!”
레드의 검에는 못 미치지만 블루와 그린도 제법 고위급의 마법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진공의 칼날, 빛의 구슬, 물의 못, 전격의 창, 그리고…… 한 마리의 용이 되어 날아간 불꽃까지.
이 모든 것을 여과 없이 몸으로 받아낸 미노타우르스는 죽진 않았어도 그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마지막 숨통을 끊는 거 s대장인 레드. 다시 한 번 열화검에 불꽃을 일으켜 미노타우르스의 목을 찌른 그는 뒤돌아서며 큰 소리로 외쳤다.
“정의는 언제나 승리한다!”
“…….”
나로서는……이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름을 알려달라는 크루드의 말에 레드는 엉뚱한 행동을 보였다. 그는 미노타우르스가 남긴 아이템들을 줍다 말고 자신의 일행들에게 달려가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소리쳤다.
“지구 방위대, 후레쉬맨!”
역시나…… 특촬물 마니아였다.
“신입생 아저씨! 뭐 하나 물어봐도 되요?”
한껏 폼을 잡고 있는 그들에게 쿤이 말을 걸었다.
“뭐, 뭐라고 했니. 꼬마야?”
“뭐 하나 물어봐도 되냐고요.”
“아, 아니. 그 전에.”
“신입생 아저씨요. 움……후레쉬맨이면 신입생 맞잖아요?”
휘청!
내가 어렸을 때 겨우 한 번 리메이크 돼서 나도 운 좋게 알고 있는데, 후레쉬맨이 뭔지 알 리 없는 쿤은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받아들여 말했다.
큭큭! 신입생. 말이야 맞는 말이지.
“꼬마야, 후레쉬맨은 그런 뜻이 아니라…….”
“나 꼬마 아이에요! 쿤이라고요!!”
“그래, 쿤. 후레쉬맨은 그런 뜻이…….”
“맞다!”
“맞아. 으잉? 이게 아닌데.”
“내가 먼저 물어봤잖아요!”
그린은 후레쉬맨에 대한 오해를 풀려다가 쿤에게 말려들어 땀만 삐질거렸다.
어린애한테 화낼 수도 없고, 속 타겠군.
“끄응. 그래, 물어봐라.”
“여긴 지구가 아니라 힐름인데 왜 지구방위대에요? 아저씨들 혹시 진짜 군인? 저 누나들은 아닌 것 같은데…….”
순간, 자칭 후레쉬맨인 5인조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허점이 있었을 줄이야……. 무식한 바이오맨 놈들한테 트집 잡힐 뻔 했군. 꼬마, 아니 쿤! 우릴 일깨워 줘서 정말 고맙다. 감사의 의미로 저걸 너에게 주마!”
레드가 가리킨 곳에는 미노타우르스가 죽으면서 남긴 자이언트 액스가 떨어져 있었다.
저거……팔면 값이 만만치 않을 텐데?
“네?”
“감사의 표시니까 사양 말고 받아줘. 그리고 자네.”
쿤의 두 손을 감싸 쥐고 말하던 레드가 갑자기 나를 지목했다.
“왜 그러시죠?”
“아까 보니 제법 잘 싸우던데, 혹시 우리 후레쉬맨에 들어올 생각 없나? 자네가 들어온다고만 하면 내 특별히 블랙의 자리를 주지.”
“싫습니다!”
울컥하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험험, 싫으면 싫은 거지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나. 그럼 우린 이만 가보겠네. 본부로 귀환한다!”
“오케이! 맡겨두라고. 리턴!”
블루가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운 뒤, 리턴 스크롤을 찢었다.
끝까지 할 건 다하는 양반들이군.
“이상한 사람들이긴 했지만 그래도 큰 도움을 받았어. 크루드, 저 도끼 챙겨 쿤은 힘이 약해서 못 들 테니까 네가 대신 들어야지. 그리고 나중에 쿤한테 꼭 돌려줘라. 쿤이 그 사람한테 개인적으로 받은 물건이니까.”
“그럼 내가 조카 물건을 떼어먹기라도 할 것 같냐!”
“응.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아.”
“뭐야~? 쳇! 들켜버렸군. 킥킥킥!”
“아참, 스트 형. 이거 돌려드릴게요.”
크루드가 낑낑대며 자이언트 액스를 챙기는 동안 아슈라가 마족의 로브를 곱게 접어 나에게 내밀었다.
“아니야. 너 가져. 이젠 나한테 필요 없거든. 로그가 로브같이 거추장스러운 걸 입을 수야 있나?”
“정말요?”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그리고 그 로브는 나보다 너한테 더 필요하고, 어울리는 것 같다.”
“고마워요, 스트 형!:
아슈라는 마족의 로브가 무척이나 갖고 싶었는지 폴짝폴짝 뛰며 춤이라도 출 기세였다.
내가 갖고 있어봐야 창고에 썩혀둘 텐데, 주인 찾아주는 편이 현명한 거겠지.
“근데 저 문은 정말 열 수 없는 건가?”
벽 그 자체라 말해도 될 만큼 커다란 문을 보고 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봤다.
흐음, 저 뒤에 뭐가 있을지 나도 궁금하긴 하군.
“그러게. 나도 궁금한데? 스트 형, 우리 조금만 살펴보다가 가면 안 될까요?”
“뭐, 고위 몬스터일수록 리젠되는 속도가 느리니 괜찮겠지. 그러자.”
“야호!”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둘은 문 앞으로 달려갔다. 아니, 정확히는 쿤이 문 앞으로 달려갔고 아슈라는 미노타우르스의 시체로 달려갔다.
스켈레톤이라도 소환해낼 생각인가?
“파이어 볼! 파이어 볼! 파이어 볼!”
둘 중, 먼저 행동을 취한 것은 쿤이었다.
쿤은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한 뒤 숨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문을 향해 파이어 볼을 쏘아내었다.
“헥, 헥! 아쿠아 볼! 아쿠아 볼! 아쿠아 볼!”
한참을 파이어 볼만 날리던 쿤이 이번엔 아쿠아 볼로 바꿔서 난사했다. 달궈진 문에 차가운 물을 부어 부수려는 모양인데, 틀렸어. 문은 처음부터 달궈지지도 않았으니까.
“에휴, 난 포기!”
힘이 다 빠져버렸는지 바닥에 벌렁 드러누으며 쿤이 포기했다.
“나의 종이여, 일어나라. 서먼 스켈레톤!”
들썩. 들썩.
아슈라가 미노타우르스의 시체로 스켈레톤을 만들려 했다. 하나 미노타우르스의 시체는 몇 번 들썩이기만 할 뿐,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쳇, 아직 이런 보스급을 다루기엔 무리라는 건가? 할 수 없지. 죽음을 양분으로 삼는 이들이여, 깨어나라. 서먼 라바!”
아슈라가 스켈레톤 대신에 다른 주문을 외우자 미노타우르스의 시체에서 커다란 알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넌 나의 종이자 친구가 될 지어다. 패밀리어!”
알에서 뭔가 나오기도 전에, 아슈라는 재빨리 또 다른 주문을 외워 알에 사용했다.
패밀리어라니, 뭘 하려는 거지?
촤좌좌좍!
이내 알이 깨어지며 수백 마리는 됨직한 애벌레들이 쏟아져 나왔다. 내가 알고 있기론 패밀리어가 소환수에게 걸면 그 소환수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공유하는 첩보용 마법인데?
“후우, 스트 형! 제가 신호하면 이 벌레들을 죽여줘요. 전부 다.”
“그거야 어렵지 않지만…….”
“그럼 부탁할게요. 감도 설정 변경, 1단계로. 죽여요!”
갑자기 리얼모드를 1단계로 전환시킨 아슈라가 비틀거리며 외쳤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미 약속했기 때문에 마나 공금만 하면 지속적으로 화염을 내뿜는 멜트를 사용했다.
“감도설정 변경, 3단계로.”
벌레들이 죽을 때마다 인상을 찌푸리던 아슈라는 벌레가 1마리도 남김없이 다 타버리자 다시 리얼모드 3단계로 전환시켰다.
“패밀리어. 최대 2마리의 소환수에게 사용할 수 있으며 사용하면 대상 소환물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공유 할 수 있다. 그리고 패밀리어가 죽을 경우, 소환자는 10분간 한 마리당 힘 3 상승의 효과를 얻는다! 후후, 벌레의 수는 정확히 105마리. 고로 제 힘은 315 상승!!”
최대 2마리까지 만들 수 있는 패밀리어를 벌레가 알인 상태일 때 사용해서 그 안에 들어 있던 모든 벌레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건 왠지…….
“……버그 같은데.”
“크루드 형, 비켜 봐요.”
아직도 자이언트 액스를 들지 못해 낑낑대는 크루드를 뒤로 물리고, 아슈라는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올렸다.
그래, 생각해 보니 아론도 힘이 400을 간신히 넘겼어! 그럼 아슈라가 시체 두 개에 이 방법을 쓰게 될 경우……!!
“너, 너……!”
“어서 받아요.”
“그, 그래. 고맙다.”
크루드에게 자이언트 액스를 넘겨준 아슈라는 주먹을 불끈 쥐며 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 앞에 도착한 아슈라는 발로 툭툭 차서 바닥에 홈을 만들고 있는 힘껏 문을 밀었다.
“흐아압!!!!”
하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으랏차차! 뺘사! 끄응차! 아싸라비야?!”
온갖 기합을 넣어봤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미는 것에 실패한 아슈라는 4m 정도의 높이에 달려 있는 문고리를 향해 점프했다.
문고리 위에 올라간 아슈라는 오른쪽 문에 발을 디디고 왼쪽 문의 문고리를 힘껏 잡아당겼다. 밀어서 안 됐으니 당겨보려는 거다. 하지만 역시나. 문은 꿈쩍도 안했고 아슈라의 파워 업 시간은 이제 5분 남짓 남았다.
“흐에에에엣!”
미끌.
한참을 문과 씨름하던 아슈라가 발을 헛디디며 미끄러졌다.
드륵!
아슈라가 미끄러지는 순간, 오른쪽 문의 문고리에 다리를 디딕 왼쪽 문의 문고리에 팔을 의지하고 있을 때! 난 미세한 소리를 포착했다.
“아슈라, 그대로 밀어!”
“예?”
“이 문은 여닫이가 아니라 미닫이야!”
“아, 예!”
드르르륵!
크루드까지 합세시키자 문은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10센티, 20센티, 30센티……. 마침내 어른 한 명은 너끈히 통과할 수 있는 넓이가 되었다.
“됐어, 들어간다!”
크루드와 아슈라가 힘을 빼는 순간, 이 문이 닫혀버릴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에 나와 쿤이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와아~.”
문의 안쪽은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한 자루쯤 퍼 담아가도 모를 정도의 보석이 사방에 널려 있고 이 공간을 떠받치는 대들보나 조각상들에서는 한결같이 뛰어난 장인의 솜씨를 느낄 수 있었다.
“이거 대단한데? 넓기도 무지 넓은데 이렇게나 많은 보석이라니, 이곳의 주인은 누굴까?”
크루드는 자신이 말해 놓고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숨이 탁!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든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 이렇게 많은 보석을 모아두고 사는 존재라면…….
“설마, 드래곤?!”
“그, 그럴 리가. 드래곤은 레어에 사는데…….”
“별종 일지도…….”
일순간에 침묵이 찾아왔다. 조금 후, 정적을 깬 것은 크루드.
“이왕 이렇게 된 거……. 드래곤이든 뭐든 챙기고나 보자!”
그 말과 함께 크루드는 보석들이 쌓인 곳으로 뛰어들어 품에 가득 쓸어 담았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뭐야, 이거 왜 안 들어가?”
크루드의 품속에 들어간 보석들은 아이템 창에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거나 흘러내렸다.
아, 나도 이런 적 있었지. 왕국 지하 보물 창고에서. 그렇다면 이것들도…….
“취득 불가 아이템이라니. 사람 놀리는 거야, 뭐야?”
“그럼 이것들, 못 갖는 거야?”
“그림의 떡은 안 좋아하는데……. 크루드 형, 스트 형!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더 안으로 들어가 볼래요, 아니면 보스급 몬스터라도 나오기 전에 돌아갈래요?”
아슈라가 더 늦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어지기 전에 결단을 내릴 것을 재촉했다. 어렵사리 발견한 곳이라 위험하더라도 안까지 들어가 보고 싶기는 한데……. 혼자가 아니라 쉽게 결정 할 수 없군.
“까짓 거 들어가 보는 게 어때? 던전 탐사 퀘스트를 완료하면 약간의 경험치도 줄 거고, 받은 돈으로 복구에만 전념하면 떨어질 레벨쯤이야 어렵지 않게 올릴 수 있지 않겠어?”
크루드도 내심 들어가 보고 싶었는지 먼저 제의했다.
“나도 들어가 보고 싶은데? 위험할 게 뻔하니까 꺼려지는 사람은 따라오지 않아도 돼.”
“나도 갈래!”
“파워업 시간이 2, 3분 정도 남은 것 같은데 빨리 가죠. 써먹을 수 있는 건 써먹어야 할 테니까.”
쿤도 아슈라도 동행을 결심했다.
안은 정말이지 넓었다. 잠실 운동장 두 개를 합쳐 놓아도 이보다 클까? 한참을 걸어가고 있는데 우리 앞으로 조그만 돌기둥 하나가 솟아올랐다.
“뭐, 뭐야. 이건?”
“삼촌, 여기 뭐라고 씌어 있는데?”
[대지를 알지 못하는 자, 돌아가라.]
“무슨 뜻일까?”
“알게 뭐야. 어차피 돌아갈 생각도 없는데. 경고문까지 뜨는 걸 보니 길은 제대로 인 것 같네.”
하긴, 이런 글에 겁먹고 돌아갈 거였으면 애초에 들어오지도 않았지.
“그래, 가자!”
[땅의 단단함을 이길 수 없는 자. 돌아가라.]
얼마 가지 않아 또 글이 새겨진 돌기둥이 솟아올랐다.
이번에도 무시.
[이곳까지 온 자,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죽음을 맞이하리라.]
쿠구구구!
솟아올랐던 돌기둥들이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고, 저 멀리 석상인 줄 알았던 거인이 몸을 일으켰다.
혹시 골렘인가? 가고일?
쿵! 쿵! 쿵! 쿵!
돌의자에서 일어난 거인은 성큼성큼 우리에게로 달려왔다.
거인이 다가올수록 골렘이 나니 것만은 확실해졌다. 저 황색 피부와 흰색 머리카락을 달리 생각할 방법이 없으니까.
하지만 저 6m 정도 되는 키는 사람이라 생각하기에도 무리가 있는데……. 끄응!
“거인 아저씨!”
“……뭐냐, 꼬마?”
“치타는 어디 있어요?”
“뭐?”
“에이, 치타도 없어요? 그럼 제인은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아저씨, 지금 타잔 놀이하는 거 아니에요? 우움, 옷을 보며 맞는 것 같은데.”
“푸웁!”
“킥킥킥.”
실제로 거인은 타잔처럼 가릴 곳만 가린 아슬아슬한 옷을 입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타잔이라니, 타잔은 흰머리가 아니……. 흠흠, 내가 지금 무슨 소릴…….
“그게 무슨 소리냐! 난, 대지를, 깨달은 자, 잠지드다!”
우람한 근육을 가진 그는 말을 끊을 때마다 보디빌더처럼 온갖 포즈를 취했다.
대지를 깨달은 자라니, 설마 라무와 같은 부류인가? 그건 그렇고 잠지드. 어감이 영…….
“내 영역에 침범한 것은 괘씸하지만 시험에 통과하면 살려주지. 자, 문제다. 대지의 속성은 무엇인가!”
“땅!”
문제가 나오자마자 쿤이 답했다.
그 소리에 잠지드는 잠시 비틀. 원했던 답은 이런 식이 아닌지 당황해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런 속성이 아니라……. 불은 뜨거움, 물은 차가움. 뭐 이런 거 있잖아!”
“흐음, 대지하면 포용력. 그러니까 부드러움!”
“땡!”
“따뜻함!”
“땡!”
“단단함?”
“오, 정답!”
너무 꼬아서 생각하던 크루드, 아슈라는 틀리고 오히려 단순하게 생각한 쿤이 정답을 맞혔다.
근데,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야?
“근데 우리가 이걸 왜 하는 거지?”
“응? 글쎄다……. 아슈라, 넌 아냐?
“타잔이 살려준댔잖아요. 시험에 통과하면.”
“아, 그랬었지. 타잔이.”
“맞아. 타잔이 그랬었어.”
어느새 잠지드는 타잔으로 불리고 있었다.
근데 말이야, 난 살아서 돌아가도 별로 기쁘지 않은 걸? 저놈을 라무처럼 봉인구로 만들지 않는다면!
“두 번째 시험은 너희들의 강함을 평가하는 것이다. 자, 덤벼라!”
“타잔 아저씨!”
“타잔이 아니라 잠지드라니까!”
“아무튼요. 아저씨, 우리 안 봐줄 거죠?”
“당연하지. 싸움에 동정이 있을 수야 없는 일이니까!”
“도중에 멈추는 일도 없을 거고요?”
“물론!”
“그럼 방금 전에 시험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왜 한 거예요?”
“그거야……. 그냥. 재밌잖아.”
“…….”
결국은 싸우는 것으로 결정났다.
칫, 이놈을 잡으려면 무조건 본 클래스로 돌아가야 할 텐데 이제 들통 나는 건가?
“소환수는 없지만 몇 가지 재주는 있으니 도울게요. 약해져라, 위크니스! 느려져라, 슬로우! 그대에게 저주를, 커스!”
아슈라는 잠지드에게 탈력 주문과 속도 저하 주문을 차례로 걸로 낡아빠진 검을 꺼내 저주를 걸었다.
“몸이 조금 무거워졌군. 이제 시작해도 된다는 소리겠지?”
아슈라의 마법에 걸린 잠지드는 그것을 선전포고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달려왔다.
맞기야 하지만 너무 빠르잖아!
“파이어 볼!”
“먹어라!”
“스톤 스킨!”
들킬 때 들키더라도 일단은 안 들키는 쪽으로 해보려 마법이 아닌 비도를 날렸다.
셋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내가 최후의 1인이 된다면 들키지 않을 수 있으니까. 하나 나의 기대를 비웃듯 잠지드는 나만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을린 자국 하나 없이 파이어볼을 뚫고서.
“크윽, 블링크!”
저 무식한 몸통 박치기에 잘못 맞았다간 즉사할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블링크를 시전했다.
이 정도는 괜찮았다. 만일을 위해 주문을 외워뒀다던가 블링크 마법이 담긴 매직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고 둘러대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잠지드는 날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역시 마법사였군. 강렬한 마나의 기운이 느껴지더라니……. 그 정도 기운이라면 마스터인가?”
“마, 마스터? 스트가?”
잠지드의 한마디로 인해 큰 파장이 일었다.
크루드는 들었던 검을 축 늘어뜨렸고 쿤, 아슈라는 외우던 주문이 꼬여버렸다.
젠장, NPC 주제에 입을 함부로 놀리다니!
“그래. 나 마스터다. 꼽냐? 크루드, 쿤, 아슈라.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까 너흰 먼저 가 있어. 난 이놈 때려잡고 갈 테니까.”
“으응? 아, 알았어.”
“누구 마음대로? 스톤 엣지!”
잠지드가 손가락을 튕기며 외치자 리턴 스크롤을 찢으려면 크루드의 머리 위로 커다란 바위가 떨어져 내렸다.
“윈드 봄버!”
압축된 바람이 바위가 떨어지기 전에 크루드의 몸을 날려버렸다. 간신히 위기는 넘겼군.
“이봐, 잠지드. 넌 강한 상대와 싸우는 걸 즐기는 듯한데, 아닌가?”
“맞다. 난 강한 상대와 싸우며 희열을 느끼지.”
“그럼 결정 났군. 저들을 보내라.”
“어째서이지?”
“네 눈엔 저들이 강자로 보이나? 그리고 저들이 있으면 내가 맘껏 싸울 수 없을 것 같군.”
“……좋다.”
잠지드의 언행으로 추측해서 넌지시 건넨 말이 제대로 먹혔다. 크루드, 쿤, 아슈라가 떠나자 잠지드는 한발 앞으로 나섰다.
“이제 붙어 볼…….”
“인페르노!”
잠지드가 리턴을 사용해 사라지는 크루드의 등을 보고 있는 동안 난 조용히 주문을 읊었다.
비겁이고 뭐고, 일단은 이겨야 하니까.
“몸이 좀 달궈졌나? 이번엔 좀 식혀주지. 블리자드!!”
인페르노가 잠지드의 몸을 화끈하게 달궈 놓았을 때, 더블 스펠을 이용해서 준비해 놓은 블리자드가 연달아 몰아쳤다.
공격 원리는 쿤이 문을 부수려 했을 때와 동일. 고열로 달궜다가 갑자기 냉기를 뿌림으로써 몸에 균열을 일으키려는 것이다.
큭, 8써클 마법을 동시에 쓰려니 무리가 따르는군.
“커헉, 내 극에 달한 스톤 스킨을 깨다니……. 방심할 수 없겠군.”
제법 타격이 있었는지 잠지드의 온몸은 그을림투성이였다. 하지만 아직 여유 있는 모습. 너덧 번은 반복해야 눈에 보일 정도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전에 내 마나가 먼저 동날 것 같군. 어떡하지?
“스톤 스킨!”
우물쭈물하는 사이, 다시 한 번 피부 강화 마법을 건 잠지드가 갑옷이라 할 만한 근육을 앞세워 달려들었다.
젠장, 일단 더 몰아붙였어야 했는데!
“블링크. 무지한 자에게 심판을, 체인 라이트닝!”
잠지드의 뒤로 돌아가 체인 라이트닝을 시전했다. 원래는 다수를 공격하는 마법이지만 덩치가 덩치인 만큼 고루 효과가 퍼질 수 있으리라. 하지만 잠지드는 의외의 행동으로 체인 라이트닝을 막아냈다.
“스톤 오브 월!”
내가 만들어 냈을 때보다 두 배는 더 크고 두꺼워 보이는 돌의 장벽은 체인 라이트닝이 가진 물리력에 부서지긴 했으되, 전기적인 힘을 많이 약화시켰다. 때문에 잠지드의 몸에 직접 닿은 체인 라이트닝의 위력은 처음에 비해 극히 미미한 수준.
놀랄 새도 없이 잠지드는 반격을 시작했다.
“내가 달려가는 게 느리다면 이런 방법도 있지!”
“블링크! 블링크! 블링크!”
잠지드는 스톤 오브 월이 박살나며 바닥에 널린 돌덩이들을 주워 던지기 시작했다. 힘이 힘인 만큼 날아오는 속도는 가히 경악할 만한 수준!
숨 돌릴 틈도 없이 블링크를 써대고 나서야 겨우 손에 들린 돌을 모두 피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안심할 새도 없이 잠지드는 조금 전보다 더 많은 양의 돌을 주워들었다.
“일단 숨어야겠어.”
주위를 둘러보니 별로 숨을 곳도 없었다. 있는 거라곤 커다란 기둥 몇 개가 고작. 썩 믿음직스럽지는 못했지만 마지못해 그 뒤로 몸을 숨겼다.
“그렇게 기운을 풀풀 풍기면 숨어봐야 소용없지!”
쿠웅! 쿵! 쿵!
어떻게 된 놈인지 아무도 못 느끼는 마나의 기운을 혼자 느끼는 잠지드는 내가 숨어 있는 기둥을 정확히 알고 돌을 던져댔다. 등을 타고 전해지는 울림이 돌 하나하나에 담긴 위력을 대변해줬다.
“스쳐도 죽겠군……. 응?”
쿵! 쿵! 쿵!
분명히 커다란 울림은 계속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등에 전해지는 울림은 사라졌다.
등이 마비된 것은 아닐 테고, 그렇다면?
“빌어먹을! 블링크! 하이딩!”
콰과과과광!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무식한 잠지드는 내가 숨어있던 기둥을 냅다 들이받았다. 무너지는 기둥과 먼지를 툭툭 털며 일어나는 잠지드.
“음? 기운이 사라졌군. 죽어버린 건가? 음홧홧홧! 역시, 내 강철 같은, 근육에, 당해낼, 자는, 없지!”
하이딩이 마나의 기운까지 감춰버린 것일까? 잠지드는 20m도 안 떨어져 있는 나를 찾아내지 못하고 또 말을 끊으며 보디빌딩 자세를 취했다.
로그나 어쌔신은 숨을 때 모든 기운, 기척을 숨기니 잠지드가 날 못 찾은 거로군. 이틈에 방법을 찾아야 해…….
“찢어발기는 진공의 검, 소닉 슬러쉬! 더블!”
돌아선 잠지드의 등을 향해 십자 형태로 포개진 진공의 검이 쇄도해 들어갔다.
상처만, 상처만 낼 수 있으면 돼! 파고들 틈만 있으면 버스트 플레어로……!
“헛, 크흡!”
공기조차 찢어발기는 진공의 검을, 잠지드는 힘으로 맞섰다. 지금까지 파괴력 위주의 공격에는 끄덕도 않던 잠지드도 바위조차 쉽게 토막 낼 가공할 예리함에는 어쩔 수 없는지 가는 혈선을 보이고서야 간신히 막아냈다.
만족할 만한 상처는 아니지만, 그래도 통한다!
“찢어발기는 진공의 검, 소닉 슬러쉬! 더블!”
“살아 있었구나!”
잠지드는 왠지 기쁜 목소리로 다가오는 진공의 검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슈슉! 펑!
얼마나 강한 권풍이었던 것일까? 잠지드의 주먹에서 뻗어 나온 힘은 십자로 교차되어 있는 진공의 검을 흩어버리고 내게까지 미풍을 가져왔다.
하아, 나 혼자선 무리란 말인가?
“이봐, 설마 그걸로 끝이야? 좀 더 덤벼 보라고!”
NPC따위에게 조롱을 들어야 하다니……. 큭, 길드에 도움을 청해야하나? 내 힘으론……. 잠깐, 힘?!
“쳇, 재미없게.”
“……써주지.”
“응?”
“써주겠단 말이다. 네 놈을 죽이기 위해. 마족의 뿔을!”
품속에 손을 넣어 마족의 뿔을 꺼냈다. 똑같은 이미지인지라 두 개가 꺼내졌지만 제롬이 친절하게도 이벤트에 쓸 마족의 뿔에는 이벤트용이라 적힌 종이를 붙여 놓았기 때문에 쉽게 구별할 수 있었다.
이벤트용은 다시 아이템 창에 넣고, 뿔을 머리 위에 붙였다.
머릿속으로 뭔가 파고드는 느낌이 들며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양팔, 허리로. 허리에서 두 다리로 침식당하는 느낌이 퍼졌다. 소리조차 지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던 고통은 허리를 침식당할 무협 거짓말처럼 깨끗이 사라졌다.
마약을 하면 이런 느낌일까? 오히려, 평온한 느낌과 강대한 힘이 느껴졌다.
“내 몸이, 변했군.”
몸을 훑어보니 내 피부가 아니었다. 속은 어떨지 모르지만 겉에 보이는 건 딱정벌레 껍데기 같은 검은 갑주뿐.
이것이…… 마인인가?
“검은 마나……!”
“다시, 붙어보지.”
왼발을 박차고 달려 나가 잠지드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마인이 되면서 강해진 건 마나뿐이 아니니까. 스테이터스 창을 열어 확인해 본 건 아니지만 느낌으로, 감각으로 알 수 있다.
퍼억!
주먹질 한 번에 단단한 바위 같던 잠지드가 주르륵 밀려났다.
“스톤 엣지!”
바닥에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내 머리 위로 잠지드만큼이나 큰 바위가 떨어져 내렸다. 피해야 정상이나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두 손을 하늘 높이 뻗었다.
터억!
제법 묵직한 느낌이 들며 떨어지던 바위가 멈춰섰다.
무겁긴 하지만 부담되는 무게까진 아니군.
“돌려주마.”
“하압!”
“블링크! 하이딩!”
들고 있던 바위를 힘껏 던지가 잠지드는 일권을 내질러 박살냈다. 난 시야가 가려지는 틈을 타서 이동. 다행히 마인이 된 상태에서도 스킬은 정상적으로 사용됐다.
“어디냐, 이놈!!”
내 모습을 찾을 수 없자, 잠지드는 괴성을 질러댔다.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주지. 어스퀘이크!!”
쿠구구구구구!
땅이 매섭게 진동하며 거미줄처럼 수십, 수백 갈래로 갈라졌다. 하지만 나에겐 딴 세상 얘기일 뿐이다.
내가 숨어 있는 곳은 하늘. 혹시 날개도 있을까 하는 생각에 난다라고 되새겨 봤더니 정말로 날개가 생기며 날아오른 것이다. 움직이는 방법은 내 의식을 통해서. 플라이 마법을 펼쳤을 때와 동일했다.
아차, 그러고 보니 제한 시간이 6분이었지! 서둘러야겠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연옥의 불꽃, 헬파이어. 더블!”
마인이라서일까? 검붉은 색이던 헬 파이어가 완전한 검은색을 띠며 더욱 크게 일렁였다.
이게 진짜 지옥의 불길인가……?
“크윽, 스톤 엣지!”
머리 위로 떨어지는 지옥의 불길을 막기 위해, 잠지드는 자신의 머리 위로 커다란 바위를 소환해냈다.
하나, 헛수고였다.
“크앗!”
일반적인 헬 파이어라면 바위에 부딪히는 즉시 폭발부터 했겠지만 이 원조 헬 파이어는 엄청난 열기로 바위를 녹이며 전진했다.
정수리에 내리 꽂히기 전, 후끈한 열기를 알아챈 잠지드가 바위를 던지고 두 팔을 교차시켜 막기야 했지만 두 손은 녹아버려 더 이상의 사용은 불가능하게 됐다.
“블링크! 하이딩!”
고통에 몸부림치느라 정신없는, 이런 좋은 기회를 놓쳐서야 말이 안 됐다.
내가 이동한 곳은 잠지드의 등 뒤. 날개 말고도 새로 알아낸 능력인 마족의 손톱을 이용해 목을 찔렀다.
“늘어라나, 손톱!”
“컥!”
헬 파이어의 고통이 너무도 컸던 탓에 잠지드는 너무도 무력하게 생을 마감했다.
아니, 한 속성이라도 그 끝을 본 자는 죽지 않는다고 했으니 죽는건 아니군. 봉인되었다가 맞는 표현이겠지?
“줄어라, 손톱!”
50cm 가량 늘어났던 손톱이 원래대로 줄어들었다. 이거 원,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의 여의봉도 아니고‥.
“아이템은…… 달랑 두 갠가?”
[봉인의 구슬(土)]
땅 속성의 그랜드 마스터 잠지드를 1회에 한해 소환할 수 있다.
부가 설명 : 한 가지 원소라도 진정으로 터득한 자들은 죽지 않는다. 그들을 쓰러뜨린 자들에게 언제든 자신을 부를 수 있는 구슬을 남기고 떠나는 데 이 구슬을 사용하면 구슬 속 인물은 무조건 사용자의 말에 복종해야 한다.
장난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
[토황추]
땅에 휘드르면 엄청난 진동이 일어 100% 확률로 적들을 넘어뜨리는 망치. 단, 사용자 전체 마나의 10분의 1이 사라지며 사용자의 마나량에 따라 위력도 달라진다.
“역시……. 이놈의 마나 10분의 1은 빠지질 않는군.”
가진 바 마나의 10분의 1을 사용해서 일정 범위 내에 있는 모든 적을 넘어뜨린다. 언뜻 생각하면 마나 낭비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100명의 적에게 둘러 싸여도 능히 도망칠 수 있고, 뒤에 응원준이라도 있다면 순식간에 적을 궤멸 직전까지 몰고 갈 수 있으니까.
“변신이 풀리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았군. 조금만 놀다갈까?”
아이템을 모두 회수하고, 변신이 풀리기까지 약 2분 동안 미궁 안을 휘젓고 다녔다. 마인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이런저런 기술을 찾아내며.
그러다 2분쯤 지나자, 온몸에 나른함이 느껴지며 픽 쓰러져 버렸다.
“으음……!”
눈을 뜬 곳은 어느 병원이었다. 몸은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고, 살펴보니 마나는 고갈, 성향은…… 악이었다.
“성향이 악? 젠장, 페널티가 붙어 있었나 보군.”
악으로 변한 성향쯤, 금방 선으로 바꿀 수 있었지만 귀찮은 건 귀찮은 거다.
그래도 가면 때문에 도망 다니진 않아도 되겠군.
“그건 그렇고……. 걔들한텐 또 뭐라고 설명해야 돼?”
크루드 등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또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막막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젠장!
“망할 놈의 NPC!”
딱!
말하자마자 옆에 서있던 의사 NPC가 뒤통수를 때리며 화를 냈다.
“다 죽어가는 놈 살려놨더니 뭣이 어쩌고 어째? 당장 나가!”
“……네.”
대꾸할 힘도 없이 터덜터덜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로티우스 산맥에서 죽었으니 여긴 듀폰이겠군. 셋은 리턴을 사용했으니 뤼크레스에 있을 테고……. 의뢰소에서 기다리겠지? 텔레포트!”
[듀폰 영지의 병원에서 당신의 치료를 거부하였습니다. 이제 듀폰 영지 근처에서 사망 할 시, 가장 가까운 미넬 마을에서 눈을 뜨게 됩니다.]
텔레포트 스크롤을 찢는 순간, 쪼잔한 NPC의 결정에 의한 페널티가 부과되었다.
“역시 망할 놈의 NPC야!”
흠칫!
순간, 길을 걷던 행인 NPC 일체가 날 노려 본 것처럼 보인 건 내 착각이었을까?
* * *
“……그렇게 된 거야.”
“…….”
내 설명, 변경이 끝날 때까지 셋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긴 침묵이 흐르고, 죄인 같은 표정으로 가시 방석에 앉은 나에게 크루드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넌, 마법을 ‘좀 많이’ 잘하는 로그. 스트일 뿐이다. 예전 이름이 무엇인지 따위는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어. 중요한 건 우리 동료라는 것과 마법을 ‘조금 많이’ 잘한다고 나섰다간 내 손에 칼 맞을 거라는 것뿐이야.”
“크루드…….”
마법사 콜로니스트란 이름이 줄 무게, 부담감 때문에 이름은 굳이 밝히지 않았다. 물어봤다면 알려줬을 테지만.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다. 스트라는 이름에서 유추하거나 내가 사라졌던 시기에 벌어진 일들을 끼워 맞추면 간단히 답이 나올 테니까.
알고 있든, 알지 못하든 크루드는 ‘나서다간 내 손에 칼 맞는다’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날 스트로서 받아줬다.
“아참! 대신에 이제부터 퀘스트 깨도 네 몫은 없다!? 그 정도 갑부면 퀘스트 보상 정도는 양보해야지. 암, 그렇고말고.”
“야, 야! 나도 요즘 벌이가 없다고~.”
“히힛, 아니면 방금 전에 타잔 잡고 얻은 걸 주든가요!”
“끄응. 치사한 것들. 마음대로 해라, 마음대로 해!”
“하하하하!”
힘 없는 저항을 해봤지만 쿤의 넉살에 두 손 들어버렸다.
뭐, 퀘스트 보상쯤이야…….
“오? 대단한 일을 해내셨군요. 추가 수당까지 합해서 모두 34골드입니다.”
퀘스트가 적힌 양피지를 NPC에게 내밀자 NPC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다는 듯 말했다.
“여기에 그런 것도 적혀 있습니까?”
“물론이죠. 퀘스트용 양피지는 특별하거든요.”
신기한 눈으로 양피지를 보던 크루드는 묵직한 돈주머니를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A랭크 퀘스트 중에 싼 건 10골드 겨우 넘고, 웬만큼 어려운 것도 20골드를 넘을까 말깐데 34골드라니. 쳇! 복 터졌군.
“34골드니까 한 사람 당 11골드씩 가지면 되겠다. 음, 그래도 1골드가 남네?”
그래도 내가 한 노력이 있는데 남는 1골드 정도는 주겠지.
“난 미노타우르스 도끼를 얻었고, 아슈라 형은 로브 받았으니까 삼촌이 가져.”
“그럴까?”
쿤은 혹시나 하는 내 기대를 무참히 짓밟았다.
진짜 한 푼도 안 주다니, 매정한 것들! 뭐, 그래도 잠지드가 준 아이템에 비하면……. 흐흐흐!
“뭘 그리 실실 거려? 얼씨구, 침까지 흘리네?”
“쓰읍. 아니야, 아무것도.”
[공지]
내일 0시를 기점으로 대대적인 던전, 몬스터 추가와 시스템 추가가 있을 예정입니다. 따라서 하루 동안 서버를 개방하지 않을 것이오니 유저 여러분께서는 이 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P.S 좀 더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에 있어용~
“오오! 던전 추가에 몬스터 추가까지!!”
“중급자 던전이 더 생겼으면 좋겠는데…….”
“빨리 홈페이지에 가보자!”
“로그아웃!”
갑작스런 공지에 사방에서 열광하는 소리가 들렸다. 힐름이 금방 질려버릴 만큼 작지는 않지만 그래도 새로운 것엔 기대하기 마련이니까.
“한 곳은 알 것 같지?”
“키메라의 탑?”
“뭐?”
“키메라의 탑이라니, 그게 뭐야?”
“이봐! 좋은 정보 있으면 같이 좀 알자고!:‘
크루드가 무심코 입 밖으로 내버린 말을 들은 주위 사람들이 하나둘 씩 모여 들었다.
이런, 도망칠 수도 없겠군. 어차피 내일이면 다 알게 될 테고 제롬도 별 거리낌 없이 들여보내줬으니까……. 말해도 상관 없겠지?
“그러니까 내일 패치 될 곳 중 하나는 키메라의 탑인데…….”
8층짜리 건물에 키메라가 나오고, 1층에는 음침한 사내가 운영하는 상점 하나가 있다.
이 얼마 되지도 않는 말을 꾸역꾸역 몰려든 사람들에게 되풀이해 주느라 우리는 로그아웃할 때까지 의뢰소에서 나가지 못하고 갇혀 있었다.
에휴, 내일은 뭐하면서 하루를 보내나?
에라, 모르겠다. 일단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