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숨긴 귀환자 139화
14. 일을 합시다(17)
“그래서 자네가 알아온 것이라도 있어? 더 있으면 어서 말해봐.”
“…….”
따져 묻는 듯 말하는 이준식 대령의 행동에 김태식 소령은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마른침만 꿀꺽 삼켰다.
‘하아, 아무래도 이 얘기를 하면 대령님께서 자존심이 상할지도 모르는데…….’
그렇다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면 바로 자신에게 질타가 내려올 것이다.
‘그래. 솔직하게 말하자.’
김태식 소령이 결심을 한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선이 닿아 있는 곳까지 최대한 알아봤는데 평화수호회 쪽에서 아무래도 저희 사단 쪽을 완전히 장악할 모양인 것 같습니다.”
“뭐야! 그게 무슨 소리야.”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있던 이준식 대령의 고개가 바로 치켜 올라갔다.
“아직 확실한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위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더 자세히는 알지 못하고?”
“그냥 저희 사단하고 후방에 있는 사단과 맞바꾸는 선에서 조율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야이씨! 내가 여기 공들인 것이 얼마인데……. 누구 맘대로 이곳을 평화수호회에 넘겨!”
김태식 소령의 눈가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그것은 저보다는 작전참모님께서 더 잘 알지 않습니까?”
“뭐?”
이준식 대령의 눈이 치켜떠졌다. 김태식 소령도 뭔가 억울하다는 듯 살짝 항변하듯 말했다.
“제가 이 이상 어떻게 압니까. 어쨌든 윗분들의 결정입니다. 저보다는 참모님께서 더 잘 알지 않겠습니까. 윗분들의 생각을 말입니다.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인맥을 총동원에서 겨우 알아낸 것입니다.”
김태식 소령의 말에 이준식 대령은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어이가 없었다.
“자네…….”
이준식 대령이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됐네. 알았으니까. 그만 나가봐.”
“……알겠습니다.”
김태식 소령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가 경례를 한 후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본 이준식 대령이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쳤다.
쾅!
“이것들이 진짜…….”
책상을 내려친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그러면서 이준식 대령은 이곳 강원 11사단으로 처음 내려왔던 그때를 떠올렸다.
이준식 대령이 이곳 강원도까지 내려와 이 고생을 하고 있는 이유는 강원 11사단의 사단장이 되기 위해서였다.
물론 이준식 대령이 사단장이 되기 위해서는 별을 우선 달아야 하는 전제조건이 있다. 그래서 이준식 대령은 머리를 썼다.
일단 육군본부에서 잘나가고 있는데 이곳에 있어 봐야 그냥 다른 장군들 뒤치다꺼리만 할 것이 뻔했다. 마냥 똥차들이 빠져나갈 것만 지켜봐야 하는 것이다. 그럴 바에는 이곳에서 많은 실적을 얻어 더 빠른 진급을 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육본보다는 강원 11사단으로 옮긴 것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뼈를 묻을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준식 대령은 지난번 블랙 게이트 사건 때, 그것을 진급의 기회로 삼았다.
자신이 진두지휘해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둘 경우에는 최소한 일 계급 특진쯤은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 것다.
막말로 대한민국에서 블랙 게이트를 공략한다고 하면 그 업적은 상당할 것이고, 자연스럽게 일 계급 특진으로 이어질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원 스타가 되면 부국강변회에서도 모른 척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이준식 대령의 진급이 빠른 상태고 능력까지 보여주면 절대로 나 몰라라 하지 않을 것이 당연했다.
그러다 보면 머지않아 김승철 소장을 밀어내고 자신이 강원 11사단 사단장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리고 강원 11사단을 확실하게 부국강변회 라인으로 만든 후 그 성과를 들고 자연스럽게 육본으로 들어간다면 무척이나 환영을 받을 일이었다. 거기까지 모든 것을 생각해 둔 참이었다.
그런데 블랙 게이트의 일이 틀어지면서 이준식 대령이 세웠던 모든 계획이 뭉개졌다. 게이트가 그레이 게이트로 변형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해 이준식 대령은 당연히 진급이 누락될 것이었고, 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김승철 소장에게 떠넘겨야 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강원 11사단이 부국강변회에 거의 넘어간 상태고, 김승철 소장은 평화수호회 소속으로 어쩔 수 없이 허수아비로 내려온 상태였다. 그래서 김승철 소장의 라인이 한 명도 없었다. 한마디로 사단 안에서 한목소리를 내면 김승철 소장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몰렸다.
하지만 그 그레이 게이트에서 생존자가 나타났다. 그 존재가 바로 이진우였다. 그로 인해 이준식 대령은 또 한 번 일이 틀어졌다. 지금까지 모든 것이 자신이 의도했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 탓에 이준식 대령이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블랙 게이트 공략 자체는 처음부터 무리였다. 블랙게이트를 처음부터 기획하고 공략대를 구성한 사단 작전처의 미스다. 이런 소문들이 꼬리를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진우가 살아 돌아오면서 모든 것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준식 대령 역시 그냥 앉아서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진우가 그레이 게이트에서 혼자 살아 돌아온 점. 그 과정에서 지휘 오류가 있지는 않았는지 진우를 조사하여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고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조사 결과는 블랙 게이트 공략은 처음부터 C등급, D등급을 구성된 천 명의 공략대로는 무리라는 결과만 보여준 꼴밖에 되지 않았다.
당연히 그 불똥은 모든 것을 계획한 작전처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이준식 대령은 모든 언론과 국민들로부터 질타를 받아야 했고, 부국강변회에서도 슬슬 발을 빼는 분위기였다.
이준식 대령은 당연히 이 일을 수습하려고 뛰어다녀야 했다. 자신에게 쏠린 시선을 어떻게든 돌려야 했다.
하지만 김승철 소장 역시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렇듯 정신없는 와중에 윗선과 딜을 한 모양이었다.
평화수호회에서도 강원 11사단은 애당초 부국강변회 것이었고, 김승철 소장이 옷을 벗고 싶지 않아서 마지못해 내려보낸 것이다. 그래서 때가 되면 김승철 소장이 자연스럽게 전역을 하면서 부국강변회 쪽으로 넘겨주는 것이 맞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강원도 11사단이 점점 김승철 소장의 힘이 부각되면서 점점 욕심이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평화수호회에서 김승철 소장에게 힘을 불어 넣어주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이준식 대령이 부국강변회 소속이고, 그로 인해 이번 사건이 자신들에게 향하자 오히려 평화 수호회쪽으로 토스를 해서 이 사건을 마무리 지어주길 원했다.
그렇게 서로 의견이 조율되어 딜을 했고, 일이 이 지경으로 되다 보니 중간에 있는 이준식 대령만 피를 보게 된 것이다.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이준식 대령이 까득 이를 갈았다. 그리곤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임경식 중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우우우, 뚜우우우우…….
신호음은 가는데 임경식 중령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계속해서 통화 버튼을 눌러서 연락을 취했지만 받지 않았다.
“이 빌어먹을 자식이…….”
이준식 대령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럼에도 휴대폰을 손에 쥔 이준식 대령의 전화는 계속 이어졌다.
다음 날 진우는 자신의 방에서 눈을 떴다.
“으으음…….”
그러면서 슬쩍 안 떠지는 눈을 돌려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덧 정오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진우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정말 오랜만에 푹 잠을 잔 것 같았다.
사실 어제 거의 새벽 4시 넘어서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침대에 앉아 가부좌를 튼 상태로 관조를 시작했다. 관조를 통해 새벽에 자신 집 앞에 있던 김미영과의 불쾌했던 기분과 체내에 남아 있던 알코올을 털어냈다.
그렇게 해서 새벽 5시가 넘어서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점심때쯤에 눈을 뜬 것이다. 그나마 관조를 하고 잠에 들어서 잠을 푹 잘 수 있었고, 이렇듯 개운한 상태였다.
“잘 잤다.”
진우가 기지개를 한 번 켠 후 책상 위에 올려뒀던 휴대폰을 봤다. 그런데 조유진으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었다.
“어? 유진 씨네.”
진우가 곧장 휴대폰을 터치해 메시지를 확인했다.
-진우 씨 일어나는 대로 연락 좀 주세요.
진우가 피식 웃으며 바로 문자를 보냈다.
-저 일어났습니다.
-어? 좀 늦으셨네요. 잠깐 통화 괜찮아요?
-네.
진우가 답 문자를 보내자 바로 전화가 울렸다. 조유진이 바로 연락을 한 것이다.
“네에.”
-진우 씨. 이제 일어난 거예요?
“네. 새벽에 잠을 좀 설쳐서요.”
-왜요? 어제 그냥 가서 그래요?
“어, 저어…….”
진우는 곤란한 듯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 조유진은 오해한 듯 말했다.
-괜찮아요. 저도 어제 진우 씨를 그렇게 보내고 좀 많이 아쉬웠어요.
“하하하……. 그러게요.”
조유진의 말에 진우가 살짝 미소를 보였다. 솔직히 진우는 그녀와 만난 것은 이번이 딱 두 번째였다. 그런데 뭐랄까? 뭔가 재고 따지는 그런 연애보다는 서로 호감이 있고, 그러면서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그런 연애가 좋았다.
“유진 씨는 오늘 뭐 하세요?”
-저요? 오늘 데이트 약속이 잡혀 있어요.
“데이트요? 누구랑…….”
-누구긴 누구에요. 진우 씨죠. 설마 휴가 나왔는데 저랑 데이트 안 할 생각이었어요?
“아뇨. 만나려고 했죠.”
-정말요? 그럼 언제 봐요?
“일단 제가 방금 일어나서요. 씻고, 준비해서 연락할게요.”
-알겠어요. 나는 괜찮으니까. 천천히 준비해요.
“그래요.”
진우가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잠깐 휴대폰을 바라보고는 피식 웃었다.
“훗…….”
그러곤 책상 위에 휴대폰을 올려두고 방을 나섰다. 곧장 화장실로 가서 샤워를 했다. 온몸을 닦은 후 세면대 거울을 바라봤다.
“역시 괜찮네. 몸도 더 좋아진 것 같고…….”
그러다가 문득 등 뒤쪽이 신경 쓰였다.
“계속 가려웠는데…….”
등 날갯죽지 쪽을 확인하려고 노력했다. 처음 봤을 때는 안 보였던 검은 점이 뭔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응? 전에는 없었는데…….”
진우가 이리저리 확인을 했다. 혹여 때는 아닌지 긁어보기도 했지만 전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점인데. 갑자기 왜 생겼지? 뭔가 점점 커져가는 느낌도 들고 말이야.”
하지만 진우로서는 더 이상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냥 어쩌다가 생긴 점이라고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머리를 수건으로 털고는 화장실을 나왔다.
그런데 바로 아래층에서 동생 이진상이 올라왔다.
“어? 이제 일어났어?”
“그래. 그런데 너 출근 안 했냐?”
“늦게 나가도 돼.”
“와. 너 일은 제대로 하고 있는 거지?”
“그럼 부회장이 괜히 된 것은 아니거든. 그리고 오너들 출근 시간은 따로 있거든?”
“오호. 그래? 뭐…….”
진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방으로 걸어갔다. 이진상이 그런 진우를 보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