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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숨긴 귀환자-124화 (124/177)

힘을 숨긴 귀환자 124화

14. 일을 합시다(2)

이준식 대령이 진우를 빤히 바라봤다. 그러자 진우가 물었다.

“저에게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아, 아니야. 다른 것보다도······. 그동안 내가 미안했네.”

“네?”

뜬금없는 사과에 진우가 눈을 크게 했다. 이준식 대령도 슬쩍 시선을 피하며 다시 말했다.

“미안하다고.”

“뭘 말입니까?”

“아니, 자네들 블랙 게이트에 보내고 고생시킨 것도 그렇고. 작전참모로서 할 말이 없어.”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시니 많이 당황스럽습니다.”

진우가 이준식 대령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한두 해 겪은 것도 아니었다.

블랙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준식은 대령이었고 작전참모였다. 당연히 진우와도 이래저래 많이 부딪치긴 했다.

그때마다 이준식 대령은 계급으로 찍어 눌러왔다. 게다가 플레이어로서 인정해 주지 않으려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니 웃겼다. 그렇다고 해서 블랙 게이트에 들어갔던 천여 명의 병사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아······.’

진우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저렇듯 먼저 손을 내미는데 계속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진우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더 하실 말씀은 없으신 거죠?”

“어, 그래.”

“그럼 저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나갔다. 그런 진우를 보며 이준식 대령이 어금니를 까득 깨물었다.

“건방진 자식······. 저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하는데. 뾰족한 방법이 없나?”

그러다가 이준식 대령이 소파에 몸을 깊게 눕혔다.

“그나저나 도대체 어떤 새끼가 훔쳐 간 거야. 뭔가 단서라도 있어야 수습을 하지. 이것 참 미치겠네.”

이준식 대령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다시 게이트 부대로 돌아온 진우. 그런데 임경식 각성부대장이 와 있었다. 그는 진우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어, 이 소령.”

“충성. 나오셨습니까?”

“나와야지. 내가 출근을 안 해서야 되겠나. 그보다 어딜 다녀와?”

“사단 작전처에 다녀왔습니다.”

“작전처? 혹시 작전참모님께서 부르셨어?”

“네.”

“아니 왜?”

“그냥 쓸데없는 말씀을 하시기에 대충 시간만 때우다가 왔습니다.”

“아이고······. 잘했어. 그 양반도 참 할 일도 없다. 휴가 이제 막 복귀한 사람을 왜 부르고 그래.”

“그러게 말입니다. 그보다 서울로 올라가실 준비는 잘하고 계십니까?”

“어······. 잘되고 있어. 이번에 올라가서 집을 알아보고 왔잖아.”

임경식 중령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 그렇습니까. 어떻게 괜찮은 집은 찾았습니까?”

“그럼. 찾았지. 그리고 내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출이 안 됐었는데, 이번에 대출이 뜨더라고.”

“그렇습니까?”

“어어. 그 대출 받고 하면 괜찮은 곳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축하는······.”

임경식 중령의 표정이 인자하게 바뀌었다. 그는 진우를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이 소령 자네가 날 구해주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계속 여기 남아 있었을 거야. 이 소령이 계속 열심히 해주니 그 공이 나한테도 오는 것 같아.”

“아닙니다. 솔직히 제가 한 것이 뭐가 있습니까.”

“어허. 그렇게 따지면 오히려 내가 더 할 말이 없지. 아니지, 내가 더 부끄럽네. 난 그저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것이잖아.”

“하긴 그렇지 말입니다.”

진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대답했다. 그러자 바로 서운한 표정이 된 임경식 중령이었다.

“와, 이 소령.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대놓고 그런 소리를 해.”

“어? 그러면 안 되는 겁니까?”

“아니야. 해. 자네는 해도 돼. 오히려 이 소령이 날 이렇듯 대해주니 마음이 편안하다.”

“그럼 언제쯤 서울로 옮기실 것 같습니까?”

진우의 물음에 임경식 중령은 자신의 턱을 어루만졌다.

“사단장님 말씀으로는 자리는 마련해 뒀는데 자리를 옮기려면 준비해야 할 것이 많은가 봐. 어쨌든 인사철이 아닌데 나 혼자만 옮길 수 없는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엉뚱한 곳에 발령을 낼 수도 없잖아.”

“네, 맞는 말이죠.”

“그래도 내가 급하게 떠버리면 이 자리에 쓸데없는 사람이 올지도 몰라. 사단장님이 그것을 막기 위해서 인사철 때 전출 명령을 내실 모양이야. 인사철에 전출 명령을 내리면 서로서로 딱딱 맞아떨어지는 거잖아.”

인사철 때는 그야말로 전쟁이다. 서로 좋은 자리 가려고 애쓰다 보면 각성 부대장 자리가 비더라도 곧바로 이곳으로 넘어오려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중간에 각성부대장 자리가 비어버리면 이곳저곳에서 한 발 걸치려고 잔머리들을 굴린다. 그렇기 때문에 인사철에 맞춰서 전출 명령을 내리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말이야. 요새 계속 게이트가 생성되어서 좀 힘들겠어.”

임경식 중령의 걱정에 진우가 피식 웃었다.

“힘들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옛말에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여자는 여자로 있는 거라고 말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다시 게이트에 들어갈 때 많이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고 나니 숨통이 좀 트이고 그랬습니다.”

“그래? 그럼 또 게이트가 생겨야겠네.”

“에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는 거죠. 게이트에 들어갔다가 나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요.”

“알았어. 미안하네. 이제 들어가서 일 보게.”

“네. 충성.”

진우의 경례에 임경식 중령이 경례로 화답했다. 진우가 사무실로 가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래도 이렇듯 진우랑 편안하게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어서 참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그의 휴대폰에 진동이 울렸다. 휴대폰을 꺼내 확인해 보니 이준식 대령이었다. 발신자를 확인하자마자 바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하아······. 진짜.”

임경식 중령이 인상을 쓰며 전화를 받았다.

“충성. 임 중령입니다.”

-자네 어디야? 출근했어?

“네. 출근했습니다.”

-그럼 내 방으로 와.

이준식 대령은 그 말만 하고는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그 순간 임경식 중령은 자신의 휴대폰을 보며 버럭 했다.

“젠장할! 아니, 도대체 왜······. 진짜 내가 빨리 서울을 가든가 해야지.”

임경식 중령이 투덜거리며 사단 작전처로 향했다.

임경식 중령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왔어? 이리 와 앉아.”

“······.”

임경식 중령이 와서 자리에 앉았다. 그는 소파에 가지도 않고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업무를 보며 물었다.

“이 소령 말이야.”

“네.”

“이 소령에 대해서 뭐 알아낸 거 없어?”

“뭘 말입니까?”

임경식 중령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이준식 대령은 어이없는 얼굴로 말했다.

“아니, 이 친구가 진짜······. 지금 나랑 장난해? 내가 처음에 이 소령이 왔을 때 자네보고 알아보라고 했던 것을 잊었어?”

“아, 그거 말입니까?”

처음 진우가 왔을 때 이준식 대령은 임경식 중령을 따로 불러서 얘기했다. 분명 뭔가 있을 것이니 하나도 빠짐없이 샅샅이 뒷조사를 해보도록 지시를 내린 것이다.

그에 따라 임경식 중령은 알았다고 대답을 했다. 물론 그때는 어느 정도 이준식 대령의 말을 따르려던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자기 블랙 게이트에서 살아 돌아온 진우가 자신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진우를 겪어보고 나니 또 생각이 달라졌다. 진우는 사실 부대에서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사단장부터 진우에게 벌벌 기었다.

게다가 군 차원에서도 진우는 주요 전력원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진우가 군에 남아주는 것이 고맙게 생각해야 했다.

한데 고작 자기들끼리 권력다툼을 하겠다고 진우를 뒷조사하는 것은 조금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차마 그런 속내를 드러낼 수 없었던 임경식 중령은 대충 둘러대었다.

“알아보고 있긴 합니다. 그런데 별것 없습니다.”

“제대로 알아본 거야?”

“네. 열심히 알아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대놓고 이 소령을 따라 다닐 수는 없지 않습니까.”

“못할 건 뭐가 있어.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이 뭐가 있냐고.”

“작전참모님. 이 소령은 플레이어입니다.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게다가 그레이 게이트에서 살아 돌아온 이후에는 감각이 얼마나 예민한지 제가 바라만 봐도 바로 고개를 홱 돌려서 봅니다. 그때는 얼마나 무서운지 아십니까?”

임경식 중령은 일부러 몸을 부르르 떨기까지 하며 말했다.

“그······ 정도야?”

“장난 아닙니다. 귀신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이 소령을 따라다닙니까.”

임경식 중령은 정말 진우가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부각시키며 말을 했다. 하지만 이준식 대령은 그것을 또 다르게 받아들였다. 만약 임경식 중령의 말처럼 진우가 평소에도 대단한 능력을 보여줬다면 마음먹고 작전처에 쳐들어와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 정말 이 소령인가? 그런데 왜 저렇게 가만히 있는 거야. 도대체······.’

이준식 대령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러다가 다시 임경식 중령을 보며 물었다.

“자네는 이 소령에게 무슨 얘기 못 들었어?”

“네? 무슨 얘기 말입니까?”

“내 얘기를 한다든지. 아니면 옛날얘기를 꺼낸다든지 말이야.”

“아뇨. 딱히 그런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자네 이 소령하고 대화는 하나?”

“방금 전에도 대화하고 왔습니다.”

“그래? 그런데도 아무런 말도 없었어?”

“도대체 작전참모님께서 무슨 말을 듣길 원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이 소령과는 그냥 평상적인 대화를 했을 뿐입니다. 그 외는 어떤 말도 없었고 말입니다.”

임경식 중령의 대답에 이준식 대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자네에게 무슨 말을 하겠어.”

“네?”

“됐어. 쓸모도 없고······. 알았으니까. 나가봐.”

“······.”

임경식 중령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일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충성.”

경례를 하고는 사무실을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영 못마땅한 얼굴이 된 이준식 대령이었다.

“아무튼 요즘 들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러다가 옆의 전화기를 들어 이번에는 김세령 소령에게 전화를 했다. 그녀 역시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일단 연락은 해보기로 했다. 지금 상황에서 진우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김세령 소령뿐이었다.

뚜우, 뚜우, 뚜우······.

세 번의 연결음이 가고 김세령 소령이 전화를 받았다.

-통신보안 각성부대 작전과장 김세령 소령입니다.

“어, 김 소령. 나 작전참모다.”

-네. 충성!

“바쁜가?”

-아닙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다른 것은 아니고 이 소령 말이야. 요새 좀 어때?”

-네? 이 소령은 휴가 갔다가 오늘 복귀했습니다.

“아니, 그전에 무슨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거나 다른 것은 없었냐고.”

-네. 없었습니다.

“무슨 대답이 그래. 건성으로 대답하고 있어.”

-정말 특별하게 답변을 드릴 것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이 소령 부대 복귀하자마자 게이트에 들어가고, 곧바로 휴가를 갔지 않습니까. 그리고 오늘 복귀를 했고요. 제가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이준식 대령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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