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숨긴 귀환자 123화
14. 일을 합시다(1)
휴가를 마친 진우가 부대에 복귀했다. 부대에는 장교들이 와 있었다.
“부부대장님 오셨습니까.”
“오, 그래. 다들 잘 있었어?”
“네.”
“휴가는 잘 보냈습니까?”
“나야, 뭐 항상 똑같이 보냈지. 너희들은 어때? 잘 보냈나?”
“네. 그렇습니다.”
진우는 장교들과 인사를 하고는 자신의 자리로 갔다. 그러자 안유정 중위가 환한 얼굴로 물었다.
“부부대장님. 어떻게······. 소개팅은 잘하셨습니까?”
안유정 중위의 말에 김슬기 대위도 눈을 반짝이며 반응했다. 그녀 역시 진우의 소개팅이 궁금했던 것이다. 진우는 멋쩍게 웃었다.
“어, 뭐······. 좋은 분 같아서 잘 만나보려고.”
“혹시 플레이어입니까?”
“플레이어는 아니야.”
“그럼 뭐 하시는 분입니까?”
“그냥 작은 사업체를 운영한다고 들었는데. 그렇지 유 중위?”
진우의 시선이 유지태 중위에게 향했다. 유지태 중위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안유정 중위는 뭐가 그리도 궁금한 것이 많은지 진우 곁에서 이것저것 물었다.
“예쁩니까? 얼굴을 보셨다면······. 혹시 사진 가지고 계십니까? 갖고 계시면 보여주십시오.”
안유정 중위가 호들갑스럽게 말하며 관심을 보였다. 진우도 그런 안유정 중위의 행동이 귀여웠다.
“사진? 잠시만······.”
진우가 휴대폰을 꺼내 사진첩을 뒤졌다. 유지태 중위에게 받았던 사진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아, 여기 있네. 자.”
진우가 휴대폰을 안유정 중위에게 내밀었다.
“대충 이렇게 생겼어. 실물은 이것보다 더 예뻐.”
진우가 환하게 웃으며 조유진의 사진을 보여줬다. 안유정 중위는 그 사진을 뚫어져라 봐라봤다. 김슬기 대위 역시 슬쩍 다가와 확인했다.
“오오오······. 사진으로 봐도 엄청 예쁘십니다.”
하지만 안유정 중위의 표정에는 실망감이 조금 어려 있었다. 솔직히 말해 자신도 플레이어가 되면서 건강해졌고, 나름 예쁘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조유진은 확실히 더 예뻐 보였다. 김슬기 대위도 힐끔 보고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두 사람의 반응을 보던 유지태 중위가 입을 열었다.
“두 분 표정이 왜 그럽니까? 안 중위도 그렇고, 김 대위님도 그렇고 말입니다. 부부대장님께서 연애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아, 아니야.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너무 갑작스러워서 말이야.”
김슬기 대위가 당황하며 말했다. 안유정 중위도 바로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저와 김 대위님은 솔로인데 부부대장님은 연애하시고. 너무하십니다.”
괜히 연애한다고 구박을 당한 진우였다. 그는 살짝 억울하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유 중위도 연애하는데 왜 나만 가지고 그래?”
“유 중위님은 부대 들어왔을 때부터 연애하고 계셨지 않습니까.”
두 사람 다 진우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런 진우가 다른 여자와 연애를 한다고 하니 살짝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진우는 오랜만에 연애를 해서 그런지 여자들의 그런 질투심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그 중간에 유지태 중위만 끼어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안 중위가 부부대장님 좋아한다는 것은 대충 눈치를 챘는데······. 김 대위님까지? 아이고, 중간에서 나만 욕먹게 생겼네.’
유지태 중위가 난감해하고 있을 때 전화가 지잉지잉 울렸다. 진우는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확인해 보니 발신자는 이준식 대령이었다.
‘이 양반이 왜 전화 한 거야.’
진우는 심드렁하게 전화를 받았다.
“통신보안. 충성. 소령 이진우입니다.”
-이 소령. 휴가는 잘 다녀왔나?
“네.”
-괜찮으면 나랑 차 한잔하지.
“네?”
-시간 괜찮으면 차나 한잔하자고.
“으음······. 오랜만에 복귀를 해서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서 말입니다.”
-하아······.
수화기 너머 이준식 대령의 긴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에도 진우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럼 하던 일 어느 정도 마무리 지으면 그때 내 방으로 좀 오지.
“알겠습니다.”
뚝!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전화가 끊어진 것을 확인한 진우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 양반은 오자마자 전화를 해서는 오라 가라야.”
진우가 휴대폰을 한쪽에 내려놓고 유지태 중위를 봤다.
“유 중위.”
“네.”
“부대장님은 출근했어?”
“오늘 좀 늦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알았어. 나는 잠깐 숨 좀 돌렸다가 사단 작전처에 다녀올게.”
“네. 알겠습니다.”
진우가 고개를 끄덕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우가 사무실을 나가기가 무섭게 갑자기 사무실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자자! 우리도 서서히 일과를 시작해 봅시다.”
유지태 중위의 말에 김슬기 대위가 쌀쌀맞게 대답했다.
“그러자고.”
안유정 중위는 벌써 저만치 자신의 자리로 가 있었다. 그 모습에 유지태 중위가 속으로 생각했다.
‘아이고야. 이거 한동안 눈칫밥 좀 먹겠는데······. 어디 게이트라도 안 열리나?’
유지태 중위가 창밖을 바라봤다.
잠시 휴게실에서 시간을 때우던 진우는 게이트 부대를 떠나 사단으로 걸어갔다. 사단 건물까지는 대략 10여 분을 걸어가면 되었다.
사단 건물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작전처로 향했다. 작전처에는 이준식 대령이 있었다.
“충성.”
“어서 와. 일단 좀 앉아.”
진우는 소파로 가서 앉았다. 이준식 대령이 몇 가지 결재를 하고는 책상에서 일어나 앞 소파 상석으로 와서 앉았다. 진우가 바로 물었다.
“무슨 일 때문에 저를 부르셨습니까?”
“무슨 사람이 그렇게 급해.”
진우는 빨리빨리 용건만 말하고 싶었지만 이준식 대령은 할 말이 많았다.
첫 번째 게이트와 두 번째 게이트를 엄청 빨리 클리어해 버리고 돌아온 진우를 이준식 대령이 빤히 바라봤다.
‘분명 뭔가가 있어. 이 녀석 실력이 블랙 게이트에 들어갔을 때보다 더욱 늘었어. 그건 확실해. 그런데 뭐지? 왜 B등급으로 나오지?’
이준식 대령은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실력이 늘었다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왜 등급이 B로 나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것에 대해 뭐라고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계속해서 심증만 쌓여가고 있었다.
“지난번 게이트 보고는 잘 받았어. 그런데 이번에는 첫 번째보다 더 빨리 클리어가 되었어.”
“네. 공략대와 손발을 맞춘 것도 있지만 이번에 헬퍼들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헬퍼들이? 그래도 지난번보다는 더 어려운 게이트라고 하지 않았나?”
이준식 대령은 계속해서 의문을 가지며 질문을 던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번 게이트의 수치는 130이었고, 이번 게이트의 수치는 160이었다. 게이트 수치 30 차이가 얼마나 큰 차이냐고 말하겠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크다.
하지만 또 이론과 실전은 다른 것이 게이트 치수가 30이 올라갔다고 해서 모든 몬스터들의 공략 난이도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었다.
게이트 밀도라는 것은 개체 수 혹은 보스 몬스터의 난이도를 의미하는 것도 했다.
이번 하수구 게이트만 해도 나태한 대왕쥐 공략 자체가 까다롭긴 했지만 전체적인 몬스터 수치는 지난번에 싸웠던 개미굴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헬퍼가 있어서 훨씬 쉽게 공략할 수 있었다. 진우는 살짝 무시하는 발언을 내뱉었다.
“작전참모님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이번에 참여한 헬퍼 중에 마법사가 있습니다. 그분 실력이 상당히 좋습니다. 아마 강원도 지역에서는 첫 손에 꼽힐 정도고, 대한민국 전체를 따져봐도 인정받는 수준입니다.”
“그래? 이 소령이 그런 마법사를 알고 있었어?”
“예전에 군대 오기 전 길드 생활을 했던 길드원입니다. 요새 하도 대형 길드들이 중형 길드들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길드도 많이 힘들어서 슬쩍 부탁을 했더니 승낙을 해줬습니다. 그런데 예전 같았으면 절대로 승낙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이 일을 해서 헬퍼들이 뭘 많이 받아가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뭐, 그렇지.”
이준식 대령도 잘 모르지만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다가 보고서에 적힌 헬퍼들의 내역서를 떠올렸다.
“그런데 내가 보고받기에는 20%를 가져가기로 한 것 아니었나? 그게 적은 건가?”
“작전참모님도 계산을 그렇게 단순하게 하시면 어떻게 하십니까. 그러면 저도 똑같이 일반 사병들과 같은 몫을 받아야 합니까?”
“아니. 그건 아니지.”
“A등급 마법사입니다. 그것도 전투용 A등급 마법사란 말입니다. 뒤에서 서포트나 하고 원거리 마법만 하는 그런 몸 사리는 마법사가 아니란 말입니다. 보스룸 들어갔을 때 어떻게 했는 줄 아십니까? 헐퍼가 저랑 단둘이 중앙까지 들어가서는 광역 마법을 시전했습니다. 덕분에 한꺼번에 다 쓸어버릴 수 있던 것이죠. 그러지 않았다면 저희들도 상당히 피해를 받을 뻔했습니다.”
“보스룸에서 말인가?”
“네.”
“보고서만으로는 잘 몰랐지.”
물론 보고서에는 상세하게 적혀 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군에 올라가는 것인데 헬퍼가 다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보고를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그런 식으로 알려진다면 게이트 부대의 가치가 의심받게 되기 때문이었다.
헬퍼의 의미는 가장 간단하고 축약해서 쓴다. 그래서 이준식 대령이 오해를 했지만 실제로 하수구를 공략하는 데 임미숙의 도움이 상당히 컸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른 헬퍼가 탐지꾼이었습니다. 그래서 게이트를 쉽게 공략할 수 있었습니다.”
“탐지꾼도 있었어?”
“네. 그것도 B등급 탐지꾼입니다. B등급 탐지꾼이 얼마나 귀한지 알고 계시죠.”
이준식 대령이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어, 그렇지.”
이준식 대령은 아는 것이 없었다. 그저 기본적인 것만 알고 있다. 플레이어 중에서 A등급은 귀하다. B등급 정도는 쓸 만하다. 이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탐지꾼이라는 것 역시 게이트를 공략할 때 필수적인 지원팀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다.
B등급 탐지꾼이 어떻고, C등급 탐지꾼이 어떤 것인지 잘 알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걸 진우도 알고 있기에 그런 복잡한 것들을 설명했다.
그 얘기를 듣는 이준식 대령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지만 그사이 진우는 열심히 설명을 했고, 결론은 어쨌든 모든 것은 헬퍼들이 다 했다는 내용이었다.
‘아, 이런 식으로 결론이 나면 안 되는데······.’
이준식 대령은 난감했다.
‘이걸 한번 엮어야 하는데 참 답답하네.’
이준식 대령은 짜증이 났다. 지난번은 그냥 넘어갔지만 이번 하수구 게이트 때만큼은 어떻게든 진우를 엮어서 진실을 털어놓게 만들든지 약점을 잡아서 최소한 자신에게 협조를 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진우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설마 정말 지난번에 작전처를 뒤집어 놨던 것이 이 소령인가? 만약 그랬다면, 그 안에 있는 것을 봤다면······. 아니지, 아니야. 정말 왜 블랙 게이트에 들어가야 했는지 알게 된다면 이렇게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야. 그런데 가만히 있는 것을 보니 모르는 것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