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숨긴 귀환자 103화
12. 봄날은 간다(3)
신화 머니는 일단 블랙 게이트에 들어간 가족들에게 채무를 지게 했다. 그 채무를 변제하는 조건에서 블랙 게이트와 관련된 그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낼 생각이었다.
지금은 한 가구당 5천만 원에서 1억 원이라는 대출이 나갔다. 따지고 보면 맥시멈 천억이었다. 그 천억으로 퉁 치는 것이 앞으로 수십 년간 그 몇 배의 돈을 지급하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작업 대출 형식으로 작업을 해놨는데 그중 20%나 갚아버리니 상황이 복잡해졌다.
“어쩌면 다른 곳에서도 블랙 게이트 채권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곳? 다른 곳이 왜?”
“지난번 어떤 뉴스가 나온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번에 청문회가 흐지부지되지 않았습니까. 그러고 난 다음에 여론이······. 어쨌든 정부에서 간을 보고 있긴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보상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정부 차원에서? 지금까지 가만히 있다가?”
“이제 곧 선거철 아닙니까. 강원도 지역에서 여야가 팽팽한 상황이니 서로 보증 채권을 가지고 장난칠 수 있습니다.”
“으음······. 아무튼 선거 때문에 문제네. 선거 날이 되면 관심도 없는 것들이 이리저리 들쑤시고 난리야. 어쨌든 네 말은 다른 회사라든지 다른 길드에서 작업 들어온 거란 말이지?”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겠습니까?”
“그럼 어떻게 한다?”
“지금 당장 강원도로 넘어가서 알아봐야 합니다. 애들과 함께 가서 알아보겠습니다.”
“알았다. 상태가 웅철이 데리고 가서 알아보고 와.”
“네. 알겠습니다.”
상태가 인사를 하고 나갔다. 그리고 고블린 눈알을 맞은 웅철이가 그것을 들고 조심스럽게 가지고 왔다.
“혀, 형님 여기······.”
“형님이 아니라, 사장님 새끼야! 우리 아버지가 황상욱이야, 인마! 그런데 왜 내가 네 형님이냐. 너희 아버지가 황상욱이야?”
“그건 아니지만······.”
“이래서 배우지 못한 놈들은 답이 없는 거야.”
황대철은 황상욱 회장이 버린 자식이었다. 막내아들이지만 워낙에 사고를 많이 쳐 수습을 하다가 포기를 한 것이다. 그룹과 관련된 모든 것에서 손을 떼게 한 후 돈을 좀 주고 방치를 했다.
황대철은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애들 패고, 술 처먹고 다니다 결국 용역회사를 차렸다. 그게 바로 신화머니의 시초였다.
예전에 황대철이 막 살 때는 형님이라고 불렸는데 막상 그 용역회사가 신화그룹에서 일감을 받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이번 일만 잘하면 왠지 다시 자기가 주류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주제도 모르는 웅철이 형님, 형님 하자 꼴 보기 싫었던 것이다.
“하아, 나도 빨리 서울 올라가야 하는데······. 언제까지 이런 촌구석에 있어야 하냐.”
황대철이 투덜투덜거렸다.
부대로 돌아온 진우는 유지태 중위에게 병사를 맡기고 안유정 중위와 박진철, 안미숙과 함께 군수보급관실로 향했다.
“충성, 벌써 오셨습니까?”
군수행정보급관 김태환 상사가 환한 얼굴로 일행들을 맞이했다.
“아, 네. 공략이 생각보다 빨리 끝났습니다.”
“이야. 게이트가 나타나자마자 그냥 순삭입니다.”
진우는 그저 미소를 보여줄 뿐이었다. 그러면서 김태환 상사가 슬쩍 확인을 했다.
“이게 다 핵입니까?”
“네.”
“이거 몇 개나 됩니까?”
“유 중위 말로는 3천 개 정도 되는데 일단 확인해 보시죠.”
“알겠습니다. 그럼 확인을 좀 하겠습니다.”
김태환 상사가 손짓을 하자 병사들이 달려왔다. 그렇게 몬스터 핵을 확인해 보니 정말 3천 개가 나왔다.
“와아······. 진짜 3천 마리를 잡은 겁니까?”
“그렇죠.”
“대단하십니다. 블랙 게이트 열리고 우리 부대 각성병사들이 없어서 다른 부대랑 통합되니 마니 했는데 이렇듯 부부대장님 오시니 안심이 됩니다. 그런데 뒤에 계시는 두 분은?”
김태환 상사의 물음에 진우가 바로 소개했다.
“아, 이번에 헬퍼로 오신 두 분입니다. 오늘 헬퍼 등록 좀 하려고 합니다.”
“그렇습니까? 정산은 바로 해드리면 되는 겁니까?”
“네. 그렇게 해주시면 좋죠.”
“그럼 정산은 어떤 식으로 해야 합니까?”
“두 분의 실력이 좀 있어서 20% 정도를 떼서 주기로 했습니다.”
“순수익이 아니라 총 수익에서 말씀이시죠?”
“네.”
“아이고 총 수익이면 꽤나 나가겠습니다.”
김태환 상사가 박진철과 안미숙을 바라봤다. 진우가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냐마는 한편으로는 진우가 아직은 나이가 많지 않아 혹여 눈탱이를 맞은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여기 이분은 길드 마스터고. 곧 A등급으로 올라가실 B등급 플레이어입니다.”
“아, 네에.”
“그리고 이 부분은 A등급에서도 손에 꼽히는 마법사입니다.”
“아! 그러시구나. 그럼 진즉에 말씀을 해주시지 그랬습니다. 하하하.”
김태환 상사는 자신이 생각했던 모든 것이 민망해졌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는지 안미숙을 빤히 바라봤다.
“잠깐만······. A등급이시면 혹시······.”
“저를······ 아세요?”
“그 뭐냐. 스킬 불의 심판······.”
“어? 그걸 어떻게 아세요?”
“아, 그분이시구나. 제가 이런 말 하는 것이 좀 그런데. 저희 교회 집사님 딸이 마법사입니다. 교회 집사님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이 동네에 A등급 마법사가 있다. 엄청나게 센 마법을 익혔다. 그런 얘기를 얼핏 들었습니다.”
“어멋! 별소리가 다 돌았네요.”
“그럼 일단 계약서를 작성할까요?”
박진철과 안미숙에게 계좌번호를 받은 김태환 상사는 물품 수량에 3천 개가 아닌 천오백 개를 적었다.
그 순간 흠칫 놀란 안미숙이 박진철을 바라봤다. 하지만 박진철은 괜찮다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적으면 되겠습니까?”
“네네, 맞네요.”
박진철이 바로 사인을 했다.
“입금은 바로 됩니까?”
“일단은 가정산 금액은 바로 되고요. 최종 정산은 시간이 걸리는 거 아시죠?”
“네. 그럼요. 알겠습니다.”
“그럼 물건 상태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김태환 상사가 하나하나 확인을 했다.
“오, 지난번보다 크기도 크고······. 마나 순도는 조금씩 빠진 것 같습니다. 이번에 사냥이 좀 힘들었습니까?”
“우리 행보관님 속일 수가 없습니다.”
진우가 바로 말했다. 김태환 상사가 피식 웃었다.
“제가 여태까지 본 마나 핵이 몇 개입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진철 님.”
“와, 저보다 전문가이신 것 같은데요.”
박진철도 나름 핵 보는 눈이 남달랐는데 김태환 상사도 보통이 아니었다. 일반 군인이 각성 부대에 일하면서 핵 관리를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눈요기로 보는 것도 있고 여태까지 확인하며 체득한 것도 있다. 그래서 척하면 척이었다.
“그러면 금액이 지난번보다는 덜 나오겠습니까?”
진우의 물음에 김태환 상사가 손을 흔들었다.
“아닙니다. 지난번과 거의 비슷하게 나올 겁니다. 지난번 가정산은 30억 정도 했습니다. 그런데 보배그룹에서 어제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요? 얼마 정도 나왔다고 합니까?”
“워낙에 질이 좋아서 추가적으로 20억 정도 더 준다고 합니다.”
“그럼 총 수입이 50억이라는 겁니까?”
“네.”
“그럼 이번에도 그 정도 나올 것 같습니다.”
진우의 말에 박진철과 안미숙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50억의 20%는 10억이었다. 이 두 사람은 헬퍼로 뛰면서 10억을 벌게 되었다. 그 표정을 읽은 김태환 상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떻게, 만족하십니까?”
“아이고, 앞으로 잘 좀 부탁드립니다. 부부대장님.”
“나에게 잘 부탁하지 말고 우리 행보관님에게 말씀하세요. 돈과 관련된 모든 것을 처리하시는 분입니다.”
그러자 박진철이 바로 김태환 상사에게 붙었다.
“아이고······. 행보관님 잘 부탁합니다. 충성, 충성.”
박진철이 바로 허리를 굽신거리며 말했다. 김태환 상사도 바로 허리를 굽혔다.
“아닙니다. 제가 잘 부탁드려야죠.”
두 사람이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나눴다. 그렇게 모든 것을 마치고 박진철과 안미숙이 밖으로 나왔다. 안미숙은 조금 전 그 일에 대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자기야. 아까 왜 가만히 있었어?”
“뭐가?”
“아니, 우리 몬스터 핵 3천 개 먹었잖아. 그런데 왜 천오백 개로 해?”
“아, 그거 말이야? 보통은 군부대에 들어오는 핵들의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대.”
“그런데?”
“자기도 알다시피 사냥을 하다 보면 불량이 나오잖아.”
“불량률이 나와 봤자 10% 이내잖아.”
“그거야. 우리끼리 호흡이 잘 맞으면 그런 거고. 신입들 끼고 그러면 불량이 많아지는 거야. 그건 알고 있지?”
“그렇지.”
“그런데 군부대는 오히려 불량이 더 많아. 그래서 불량을 50%로 잡고 가정산에 들어가는 거야.”
“헐, 그래서 50%나? 이번에 불량이 많이 안 나올 텐데.”
“아까도 행보관이 말했잖아. 일단 불량 50%로 잡아서 넘기면 업체에서 최종적으로 처리해. 추가적으로 더 소득이 나오면 지급해준다고.”
“그걸 안 해주면?”
“자기야. 여기서 보내는 곳이 어디야?”
“아. 보배그룹이지.”
“그래. 진우네 아버지 회사. 설사 돈 좀 떼먹으면 어때. 우리 물주님 회사인데.”
“그러네. 진우네 아버님 회사가 진우고.”
“그럼. 그리고 알잖아. 진우 인벤토리에 뭐가 있는지.”
“아, 참. 그렇지.”
“그러니 자잘한 것에 신경 쓰지 마. 알았지?”
“응, 알았어.”
요새는 워낙에 몬스터 핵이나 부산물들을 처리하는 업체들이 많다 보니 빠른 입금이 중요했다. 입금을 빨리 하려면 가정산 시스템이 들어가야 한다.
그 가정산 시스템에는 불량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A길드와 어떤 업체와 계약을 했다. A길드가 불량을 20%로 잡았다. A길드에서는 게이트에서 나오는 것을 업체에 넘기는 대신에 불량 20%로 해서 가정산을 받는다.
몬스터 핵이 나왔다. 그러면 그중 20%는 불량일 가능성이 높다. 상품성이 없고, 폐기 비용이 나온다. 그래서 20%는 빼고 계산을 하는 것이다.
그 후에 해당 업체를 통해 판정을 받아 추가 정산이 나온다면 그것을 받는다. 반대로 20% 불량인데 40%가 나왔다. 그래도 해당 업체에게 돈을 되돌려 주지는 않는다.
이건 절대적으로 공급업체가 유리한 계약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군부대 같은 경우는 워낙에 각성병사들이 서툴고 구시대적인 공략방법을 통해 사냥을 한다. 전문 플레이들처럼 약점을 통해 단숨에 처리하는 방식이 아닌 쓰러질 때까지 플총을 쏘기 때문에 몬스터의 핵들의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다. 그래서 불량을 50%로 찍는 것이었다. 어느 부대든 공통이었다.
“어쨌든! 헬퍼 한 번 뛰고 10억이라니······. 괜찮다.”
안미숙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그러게. 우리 이렇게 몇 번 더 뛰면 우리 자기 마법서 하나 사 주겠는데.”
“뭐야아아아~ 자기도 내 마법서 사 줄 거야?”
“그럼. 진우도 사 준다고 했지만······. 진우는 진우고 우리 핵심이 자기인데. 내가 길드 마스터로서 말이야. 마법서 하나는 사줘야지.”
안미숙은 바로 감동받은 눈빛이 되었다.
“뭐야. 우리 자기······. 왜 이렇게 멋진 말을 해?”
“그런 의미에서 오늘 뜨밤?”
“뜨밤? 좋지. 가자, 가자.”
“그래.”
박진철의 표정이 환해지며 걸어가는데 안미숙이 말했다.
“이럴 때 말이야. 플라이 마법을 배워서 날아가면 딱 좋은데.”
“나를 안고 날아가게?”
“당연하지.”
“우리 자기는 나를 너무 사랑하는구나.”
“그럼 몰랐어?”
“알지. 빨리빨리 가자.”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미친 듯이 달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