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숨긴 귀환자 102화
12. 봄날은 간다(2)
“거짓말이었어?”
“아니요, 거짓말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걸 지금 얘기하려고 하잖아요.”
“그래, 그래. 얘기해 봐.”
“어쨌든 갔는데요······. 아이씨. 할아버지. 대광그룹 좀 어떻게 해봐요.”
“또 그 미친 영감이 가져간 거냐?”
“네에!”
“이 녀석아, 그럼 웃돈이라도 얹어보지?”
“제가 안 해봤겠어요? 순도도 50%가 넘어요.”
“뭐라고? 순도가 50%가 넘어? 그런 것이 나와?”
“그러니까요. 그걸로 아이템을 만들어 봐요. 그리고 할아버지도 아시잖아요. 저 조금만 더 가면 S등급인 거.”
“알지, 알지. 우리 손자······.”
황준수도 플레이어다. 등급은 A다. 그것도 그냥 A등급이 아니라 AS등급에 근접한 랭커였다.
A등급에서 세부 등급으로 나뉘면 A0부터 A9등급으로 나뉘는데 사실상 A7등급을 넘어서면 등급 분류가 크게 의미가 없다.
플레이지수로 따지면 A7은 900 이상, A8은 950 이상, A9는 980 이상, AS는 990 이상이다.
A7을 넘어서면 다 그냥 준S급이라는 표현으로 통용된다.
플레이지수도 높을뿐더러 언제 어디서 각성을 해서 S등급으로 올라가도 이상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상욱 회장도 망나니나 다름없는 황준수를 애지중지하는 것이다.
황상욱 회장의 오랜 소원이 신화그룹의 길드인 신화길드 내에 S등급 플레이어를 영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S등급 플레이어는 자신만의 길드를 가지고 있다. 그 길드를 통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대기업에서는 S등급 플레이어를 쉽게 영입하지 못한다.
10대 게이트 재벌그룹 중에서 유일하게 S등급 플레이어를 소유한 곳이 바로 선진그룹 하나뿐이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무려 3명이나 보유하고 있었다. 그 3명 중 하나는 선진그룹 후계자고 나머지 2명은 선진그룹 가신의 자식들이었다.
그래서 이 세 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하물며 업계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어 다른 곳으로의 이적은 생각도 못 한다.
반면 다른 그룹들은 선진그룹처럼 S등급의 플레이어가 없기 때문에 국가 차원의 길드 공략에 있어서 항상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신화그룹은 그것이 항상 불만이었다.
때문에 1년 전 블랙 게이트를 발견하고 나서도 군부대를 끼워 넣을 수밖에 없었던 것을 떠올리며 황상욱 회장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준수 이 녀석이 그때 S등급으로 올라만 갔어도 참 좋았을 텐데······.’
황상욱 회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황준수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너무 속상해하지 마라. 차라리 한대광 그 미친 영감에게 간 것이 낫다.”
한대광은 대광그룹의 회장이다. 황준수가 잔뜩 인상을 쓰며 입을 열었다.
“아니, 전 이해가 안 된다니까요. 그 양반은 길드를 끼고 있는 것도 아니고 플레이어도 아니면서 왜 몬스터 핵에 집착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 인간 평생소원이 S등급으로 각성하는 것이란다.”
“네에? 이런 미친 영감탱이를 봤나······.”
“아, 그 뭐냐. 외국에 돈 많은 부자 한 명이 S등급으로 각성한 거 있잖아.”
“그 사람요? 말만 S등급이지 별것 없던데요.”
“아무튼 S등급이라고 해서 이곳저곳에서 인정해 주고 그러잖아.”
“그래서 고작 그것 때문에 이러는 거라고요?”
“그것이 다 10대 게이트 재벌에 못 끼어서 그래.”
“그럼 차라리 길드를 끼게 하든지. 도대체 뭐 하는 건지 모르겠네.”
황준수는 연신 투덜거렸다.
돈 많은 외국인 아저씨는 미국의 베일로라는 부동산 부자였다.
이 사람은 엄청난 땅부자로 유명했는데, 게이트 시대가 되면서 그의 땅에 많은 게이트가 생성되어 버렸다. 그러자 국가가 그 땅들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덕분에 이 사람은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였다.
그의 천운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하루는 자신의 집에 게이트가 생성되며 갇혀 버리는 사고가 벌어졌는데, 그곳에서 탈출하려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어떤 미로에 빠졌다고 한다.
베일로는 그곳을 빠져나오려고 돌아다닌 끝에 겨우 나왔다. 한데, 미로를 빠져나오고 얼마 가지 않아 각성을 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보통 일반 각성이 아닌 바로 S등급의 각성이었다. 그것도 전 세계 단 한 명뿐인 S등급 탐지꾼으로 말이다.
하지만 탐지꾼은 굳이 S등급은 필요가 없다. 혼자서 게이트 공략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예전이야 엄청나게 인정을 받았지만 지금은 이름뿐인 S등급으로 남은 상태였다.
그런데 대광그룹 한대광 회장도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그린벨트 지역 땅이 정말 많았다.
이 집안 자체가 개발제한지역에 투자하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언젠가는 풀릴 것이란 미래를 보고 투자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지역에 전부 다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게이트 초창기일 때는 어떤 보상정책이나 게이트 관련 정책이 통과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국가 입장에서는 급하게 돈으로 그 땅을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대광그룹의 규모가 확 커졌다.
대광그룹은 현재 아이템 가공과 유통으로 큰돈을 벌고 있지만 10대 게이트 재벌그룹에 들지는 못했다. 졸부라는 소문과 다른 그룹의 견제, 또 따로 별도의 길드를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집안에서 플레이어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돈 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한대광 회장은 미국의 베일로처럼 직접 각성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남아도는 돈으로 S등급 몬스터 핵을 마구 모으고 있었다.
거기서 S등급 힘을 추출해서 S등급으로 각성하겠다는 망상에 빠져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황준수 입장에서는 정말 미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상욱 회장은 그런 손자를 위로했다.
“그래도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는 마라. 그 몬스터 핵이 다른 길드에게 넘어갔다고 생각을 해봐라. 얼마나 골치가 아프겠냐.”
“그건 그렇긴 한데요. 그래도 이번에는 진짜 낚아챌 수 있었는데······. 아까워 미치겠네요.”
“그런데 S등급 몬스터 핵은 어디서 나왔대?”
“지금 그게 중요해요, 할아버지는? S등급을 뺏겼다니까요.”
당장 눈앞만 보는 손자 황준수를 보며 황상욱 회장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 답답한 놈아. S등급 게이트가 열리지 않았는데 S등급 몬스터 핵이 나왔어. 그럼 무슨 다른 루트가 있다는 것인데 당연히 알아야지.”
황상욱 회장이 잔소리를 했다. 물론 황준수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손자였다. 또한 황 씨 오너가문에서 유일하게 A등급이 되었고, 곧 S등급까지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마음에 들지 않은 짓도 다 덮기로 하고 그룹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공부야. 하아······.’
황상욱 회장은 그 생각만 하면 머리가 아파왔다. 황준수는 공부를 너무 하지 않아서 생각이 좀 짧다. 이래서야 신화그룹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신화단을 맡길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신화단은 신화길드 내에서는 특출하거나 엘리트만 뽑아 놓은 플레이어들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너무 그렇게 열 내지 말고. 가서 며칠 푹 쉬다가 와라.”
“그렇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에요. 한 달 정도만 미국에 가서 쉬다가 올게요.”
“미국? 거긴 왜?”
“방금 바람 쐬고 오라면서요. 그래서 미국 가서 쉬려고요.”
“이 녀석아. 언제 또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미국에 한 달이나 가 있으면 어떻게 해.”
“할아버지. 진짜······.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뭐 볼 것이 있다고 그래요. 그리고 저 미국에서 유학하다가 왔잖아요. 오히려 미국이 더 편해요.”
“그래도 한 달은 너무 길다.”
“알았어요. 25일!”
그 말을 뱉고 일어서는 황준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후, 저놈의 자식 언제 사람 만들꼬.”
분명 황준수가 신화그룹의 미래이긴 한데 하는 짓은 정말 답답했다.
그 시각 황상욱 회장의 막내아들인 황대철 신화머니 대표도 이상한 보고를 받았다.
“뭐? 다시 말해봐.”
“블랙 게이트와 관련된 채무자들 말입니다.”
“그들이 왜?”
“200명이나 채무를 갚았습니다.”
“채무를 갚아? 그게 가능한 일이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황대철의 손에는 고블린의 눈알을 가공해 만든 구술을 손안에서 굴렸다. 그는 그대로 멈추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래서 회수된 금액이 얼마야?”
“2백 가구에서 5천만 원씩 빌렸는데 이자까지 합쳐서 대략 150억이 좀 넘습니다.”
“그래? 채무가 회수되었다고 해야 하니 좋아해야 하는 거지?”
“······.”
“그런데 그 돈을 다 어떻게 갚았다고 해?”
“안 그래도 확인 중입니다.”
비서가 말은 했지만 또 다른 덩치 큰 녀석이 손을 들었다.
“웅철이 왜?”
“혹시 말입니다. 사채를 쓴 것이 아닐까요?”
황대철이 비웃음을 날렸다.
“야이씨. 멍청한 새끼야!”
황대철은 손에 쥐고 있던 가공된 고블린 눈알을 던져버렸다.
딱!
그 소리와 함께 웅철이가 뒤로 튕겨 나갔다.
“병신 같은 새끼. 어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지껄이고 있어. 다른 곳에서 사채를 써서 우리 빚을 갚는다고?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것이 아니면 돈 나올 곳이 없습니다.”
“야. 우리가 어디 돈 내라고 재촉하지도 않고, 이자를 강하게 요구하는 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데 우리 돈을 갚을 이유가 있어?”
“그러면 왜 그럴까요?”
“이 새끼야. 지금 내가 묻고 있잖아.”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놈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아예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야! 웅철이 저놈이 그런다고 너까지 왜 그래.”
“저희가 블랙 게이트 관련해서 채권 회수하는 이유가 있지 않습니까.”
신화머니에서 블랙 게이트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준 것은 간단했다. 채권을 회수하기 위해서다.
그 채권을 회수하는 이유도 있었다.
사람들 대부분은 잘 모르고 있지만 블랙 게이트는 신화그룹에서 확보한 게이트다. 그리고 신화그룹에서 강원도 11사단에게 위임을 한 것이다.
블랙 게이트에 탐지꾼들이 들어가서 파악한 결과 천 명의 플레이어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런데 신화그룹에서 그 천 명의 플레이어를 준비하기에는 너무 숫자가 많았다. 블랙 게이트 특성상 생존자보다는 죽는 플레이어가 많다. 그래서 만만한 11사단에게 그 게이트 공략을 맡겼다.
만에 하나 게이트 공략시 문제가 생기면 신화그룹에서 어느 정도 보증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갔던 공략자들 천 일명 중에서 천 명이 사망자 처리가 되어버렸다.
물론 아직 시체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에 일단은 실종자로 군부대에서 묶어 놓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묶어 놓을 수는 없었다. 이미 블랙 게이트의 유일한 생존자인 진우가 이미 그들은 사망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이들이 군 부대에서 사망 처리를 해버리면 그 책임이 누구에게 가겠나. 당연히 신화그룹으로 향한다. 신화그룹에서 보증 책임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막대한 보상금을 내놓아야 할 입장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블랙 게이트와 관련된 채권을 사들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