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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숨긴 귀환자-92화 (92/177)

힘을 숨긴 귀환자 92화

11. 쥐를 잡자(6)

김철수가 최대근을 봤다. 최대근 역시 잔뜩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안 되겠다.”

최대근이 막 들어가려는데 김철수가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고…….”

최대근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일단 김철수의 말을 들었다.

우당탕탕!

어느 허름한 주택에 건장한 사내 네 명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집 안에 있는 가재들을 마구 부수며 소란을 피웠다.

“그러니까, 말했잖아. 돈을 가져오라고! 돈을 가져오면 될 거 아니야. 지금 이자도 못 내고 있잖아!”

그러자 바닥에 주저앉은 노모가 몸을 벌벌 떨면서 말했다.

“그만! 그만해 주시게.”

“돈을 가져오면 그만한다니까. 할망구, 돈을 가져와. 돈을!”

“지금 돈이 없어. 죽어도 없는 것을 어떻게 한단 말이야.”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고. 난 돈을 받아 가야 하니까. 알아서 준비해서 가져와야지. 도둑질을 하든, 은행을 털든 말이야.”

“이보게, 조금만 기다려 주게. 1주일만! 응, 1주일만…….”

“이 할망구가 1주일만 한 지가 언제인데. 지금 이자만 무려 5백이나 밀렸어.”

“오, 오백? 아니, 원금이 삼백인데 어떻게 이자가 오백이에요.”

그러자 사내가 자리에 쭈그려 앉으며 노모를 노려봤다.

“할망구, 우리 이자 몰라? 원금도 모자라 이자를 갚지 못해서 이렇듯 불어난 거잖아.”

“그, 그래도 오백은…….”

쾅!

꽈직!

사내가 옆에 있던 작은 상에 주먹을 내려쳤다. 상이 부서지며 파편이 튀었다. 할머니가 잔뜩 움츠러들며 눈을 감았다. 몸은 더욱더 떨려왔다.

“제, 제발……. 그만해. 제발…….”

할머니가 눈을 감으며 간신히 외쳤다. 사내가 히죽 웃었다.

“그러니까, 돈을 갚으라고 이 할망구야. 돈을 갚으면 이런 꼴을 안 당하잖아!”

“…….”

그때였다.

“어머니! 어머니!”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뛰어 들어왔다. 그는 재빨리 바닥에 쓰러진 할머니를 감쌌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아, 아가…….”

할머니는 몸을 부르르 떨며 며느리를 올려다봤다. 그러자 사내가 입술을 달싹이며 며느리를 봤다.

“며느님께서 오셨구만.”

“당신들 내가 저번 주에 돈을 줬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또 찾아오면 어떻게 해요.”

“저번 주 돈은 저번 달 이자고. 오늘은 이번 달 이자를 줘야지.”

“나쁜 인간들…….”

아주머니가 눈을 부릅떴다. 할머니는 그런 며느리를 안으며 통곡했다.

“아이고, 우리 아들이 살아 있었다면 네놈들을, 네놈들을…… 가만두지 않았을 거야.”

그러자 사내가 히죽 웃으며 사진을 봤다. 그곳에 플레이어처럼 보이는 사내가 웃고 있었다.

“아, 여기 사진 속에 있는 아드님? 죽었다며! 블랙 게이트에 들어가서 죽었잖아. 그런데 뭐? 어쨌든 돈을 빌린 사람은 당신들이잖아.”

“이자가 터무니없이 높잖아요.”

“그걸 알고 빌린 사람이 당신이야. 내가 잘못이야?”

사내가 이죽거렸다. 며느리와 할머니는 입술을 깨물었다.

“흐흐흑, 우리 아들만 살아 있다면…….”

“거참 할망구! 당신 아들 죽었다고! 벌써 1년이 넘었어. 그 정도는 알아야지!”

“아이고, 이 몹쓸 놈들! 이 몹쓸 놈들!”

“그러니까, 돈을 갚으라고! 정 안 되면…….”

사내가 힐끔 아주머니의 전신을 훑었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쯧, 아주머니가 몸을……. 나이가 있어서 몸까지는 안 되겠네. 정 안 되면 장기 하나 팔면 이자는 갚겠네.”

“뭐라고! 안 된다. 이놈들아! 안 된다.”

할머니가 완강하게 며느리를 감쌌다. 며느리는 눈가에 눈물을 맺혔다. 그때 사내가 사진을 쭉 훑다가 건장하게 생긴 남자를 봤다.

“어? 이 사진 아줌마 아들?”

며느리가 눈을 크게 떴다.

“아들 잘생겼네. 딱 보니 대학생인 것 같고……. 정 안 되면 아들이 다니는 학교로 찾아가야겠지.”

“안 돼요! 그것만은 안 돼요!”

며느리가 강하게 소리쳤다. 사내가 이죽거렸다.

“안 되긴 뭐가 안 돼! 이렇게 건장한 아들놈이 있는데.”

“안 돼! 그것만은 안 돼!”

며느리가 완강하게 거부했다. 사내는 짜증이 나는지 인상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그럼 돈을 어떻게 갚을 거야! 정 안 되면 며느리가 장기라도 팔아서 돈을 갚으시든가!”

며느리가 피가 날 정도로 강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그녀 앞으로 신체 포기 각서 한 장이 나왔다.

“어쩔 수 없잖아.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면 어쩔 수 없는 거지. 자, 여기에 사인하면 돼. 콩팥 하나 없다고 해서 생활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어.”

“안 된다, 이놈들아. 안 돼!”

할머니가 며느리를 강하게 붙잡으며 소리쳤다. 사내는 그런 할머니가 거추장스러웠다.

“거참, 할망구! 선택은 며느리가 하는 거야. 당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 내 장기를 가져가라! 내 장기를 가져가!”

“에헤이, 이미 망가진 할망구 장기를 어따 팔게! 됐고, 그나마 젊은 우리 며느리면 그나마 돈이 되겠네. 자, 여기 사인만 하면 돼.”

사내가 사인할 곳을 지정해 주면 툭툭 건드렸다. 며느리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자신이 여기에 사인을 하지 않으면 잘 다니고 있는 아들의 대학교까지 찾아갈 심산이었다.

“당신들 지옥에 떨어질 거예요.”

며느리가 눈물 맺힌 상태로 소리쳤다. 사내는 손가락으로 귀를 후벼 팠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뭐 그런 것까지 챙겨줘. 그냥 아줌마는 여기에 사인만 하면 된다니까.”

볼펜까지 내민 사내를 본 며느리는 손을 부르르 떨며 볼펜을 잡으려고 했다. 사내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때 밖에서 작은 소란이 느껴졌다.

퍽! 퍼퍼퍼퍽!

“혀, 형님…….”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내 한 명이 피떡이 된 채로 안으로 들어왔다.

“뭐, 뭐야.”

사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쓰러진 사내 뒤로 선글라스를 낀 사내 두 명이 나타났다.

“다, 당신들 뭐야.”

하지만 그 사내를 무시한 정장 차림의 사내는 곧장 며느리에게 갔다.

“혹시 여기가 임주혁 씨 댁입니까?”

“주혁이? 우리 주혁이?”

할머니가 눈을 번쩍 떴다. 며느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제 남편인데요. 왜요?”

“아. 형수님 되시는군요. 잠시만요. 일단 이놈들부터 처리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김철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최대근을 보았다. 최대근이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깍지를 끼며 우두둑했다.

“간만에 몸 좀 풀어볼까?”

“뭐야, 이 새끼는?”

최대근이 히죽 웃으며 손가락을 까닥까닥거렸다.

“딱 봐도 우리들 말로 할 성격 아니잖아. 알아서 들어와. 아니다. 귀찮으니까, 한꺼번에 덤벼!”

“이 새끼가……. 조져 버려!”

덩치들이 우르르 최대근에게 덤벼들었다. 최대근은 덤벼드는 사내들을 딱 한 방씩에 다 쓰러뜨렸다. 그 사이 김철수는 할머니와 며느리 앞에 서서 보호했다.

5명의 덩치들을 처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5초였다. 최대근이 손을 탁탁 털며 걸어왔다.

“15초다.”

“뭐?”

“저 녀석들 상대로 15초라……. 실력 줄었네.”

“아니거든. 슬슬 놀면서 했거든.”

“됐고!”

그때 피범벅이 된 한 녀석이 일어나 소리쳤다.

“야 이 새끼들아! 내가 누군지 알아!”

최대근의 표정이 싹 굳어졌다. 그러자 김철수가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너는 내가 누군지 알아?”

그러면서 김철수가 서서히 기운을 끌어올렸다. 몸 주위로 검은색 기운이 넘실거렸고 눈이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그 모습에 흠칫 놀란 녀석.

“아아아…….”

그 기운에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 급기야 몇몇은 바지에 오줌까지 지렸다.

“사, 살려주세요. 사, 살려주세요.”

김철수가 품어대는 기운에 녀석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바닥에 기며 두 손으로 싹싹 빌고 있었다. 그 앞으로 김철수가 갔다.

“야. 원금이 얼마야?”

“네?”

“원금이 얼마냐고!”

“사, 삼백만 원입니다.”

“삼백? 자, 여기 삼백!”

김철수가 품에서 돈다발을 던져줬다. 그러자 사내가 고개를 들어 용기 있게 말했다.

“그, 그런데 이자는…….”

“이자? 이자 뭐?”

“그게 아니라……. 아닙니다.”

사내가 고개를 푹 숙였다. 김철수가 물었다.

“이자 얼마야?”

“아닙니다.”

“얼마냐고!”

“오백만 원입니다.”

“좋아. 이자까지 합쳐서 오백 주지. 대신에 더 허튼짓을 했다가 내 눈에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지.”

김철수가 최대근을 봤다. 최대근은 기다렸다는 듯이 한 놈에게 다가갔다. 그 녀석의 팔을 붙잡았다.

“이 팔로 우리 형수님을 만졌지.”

“……네?”

그 사내가 두려운 눈으로 최대근을 올려다봤다. 최대근이 씨익 웃으며 손아귀에 힘을 꽉 줬다.

“윽? 으아아아아악!”

팔이 그대로 터지며 덜렁거렸다. 단지 손 악력으로 쥐었을 뿐인데 건장한 남자의 팔을 터뜨려 버린 것이다. 그러곤 최대근은 손에 묻은 피를 팔을 잡고 뒹굴고 있는 옷에 쓰윽 닦았다.

그 모습을 본 사내가 벌벌 떨었다. 김철수가 그 사내에게 말했다.

“혹시라도 말이야. 주변에 아는 플레이어가 있어서 복수하고 싶다? 얼마든지 해도 돼. 그런데 똑똑히 봐도 이번에는 저렇게 팔 하나로 끝나지만 다음에는 어디가 될지 장담하지 못해.”

“……네. 아, 암요. 네 저, 절대 없습니다.”

사내가 벌벌 떨며 말했다.

“가 봐.”

“가, 감사합니다.”

사내는 돈과 이자를 챙겨서 후다닥 그곳을 벗어났다. 김철수가 몸을 돌렸다. 할머니와 며느리는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었다. 김철수가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그래도 갚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누구신지…….”

그나마 할머니가 먼저 나서서 물었다. 김철수가 차분하게 말했다.

“그건 나중에 차차 말씀드리겠습니다. 그전에 혹시 신화캐피탈에서 대출받은 것이 있습니까?”

“네네. 있어요.”

“그건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그것도 이자를 못 내고 있어요.”

이번에는 할머니를 대신에 며느리가 나섰다. 김철수의 정중한 말에 어느 정도 용기가 난 것이다.

“그런데 그 얘기는 왜요? 별말이 없어서…….”

“별말이 없는 것이 아닐 겁니다. 이자를 못 내고 있는데 특별한 말이 없다는 것은 다른 꿍꿍이가 있을 겁니다. 빨리 갚으셔야 합니다.”

“네? 그런데 저희는 돈이…….”

며느리가 주춤하며 말했다. 김철수가 바로 답했다.

“그 돈은 저희가 융통해 드리겠습니다.”

“네?”

할머니도 며느리도 눈을 크게 떴다. 김철수기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저희는 사채가 아니라 저희 둘이 임 상사님께 큰 신세를 졌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꼭 사례를 해드리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렇듯 도움을 드릴 수 있어 다행입니다.”

“아이고 그래요?”

할머니와 며느리는 서로 손을 잡고 기뻐했다.

“앞으로 저희가 주기적으로 방문해서 도움을 드릴 겁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고. 일단 급한 불부터 끄시죠.”

“아, 네네. 급한 불…….”

“대출금이 얼마라고 하셨죠?”

“저희가 빌린 것은 6천인데……. 이자까지 다 하면…….”

며느리가 우왕좌왕했다.

“일단 신화 캐피탈 쪽으로 전화해서 알아보세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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