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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숨긴 귀환자-87화 (87/177)

힘을 숨긴 귀환자 87화

11. 쥐를 잡자!(1)

“충성.”

“그래. 다 모였나?”

“네, 그렇습니다.”

“보급은 제대로 받았고?”

“네.”

진우는 고개를 끄덕인 후 단상에 올랐다. 질서정연하게 줄을 선 각성병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맨 앞줄에 최민철 병장이 있었다.

“어? 최 병장.”

“병장 최민철.”

“너 제대 안 했냐?”

“저 제대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그리고 저 이번에 제대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뭐? 설마 말뚝 박을 생각이야?”

“말뚝은 아니고 말입니다. 플레이어 병사들은 본인 요청에 따라 군 생활 연장할 수 있지 않습니까.”

최민철 병장의 말에 진우가 살짝 놀란 얼굴이 되었다.

“이야. 너 군대가 좋아? 왜 연장할 생각을 해?”

“지난번에 부부대장님과 함께 게이트 들어갔을 때 바로 팍하고 느낌이 왔지 말입니다.”

“무슨 느낌?”

“이대로 조금만 더 하면 B등급으로 올라설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왔습니다.”

최민철 병장은 상세등급이 현재 C2에 올라와 있었다.

D등급과 E등급이 판을 치고 있는 이 상황에서 C2등급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C2등급에서 CS등급까지 올라가려면 한참이나 더 걸렸다.

게다가 최민철 병장의 C2 등급은 C등급 게이트를 많이 참여하면서 활동 횟수로 경력을 인정받은 거지 플레이어 지수로는 아직 C2등급에 미치지는 못했다.

그랬었는데 최근 들어 최민철 병장은 이제 진정한 C2등급 플레이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킬 숙련도며 이것저것 모든 것들이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부부대장님. 제대는 무슨 제대입니까. 죽을 때까지 부부대장님 옆에서 꿀 빨 겁니다. 이런 기회는 진짜 좀처럼 없습니다. 저 말입니다. 무조건 B등급 갑니다.’

최민철 병장이 속으로 생각했다. 그의 눈빛에서 강한 의지가 엿보이고 있었다.

그런 최민철 병장의 속내도 모르고 진우는 각성병사들에게 얘기했다.

“자, 너희들에게 소개시켜 줄 사람들이 있다.”

그러자 박진철과 안미숙이 단상에 올라왔다. 진우는 두 사람을 보며 소개했다.

“이 두 사람은 나와 예전에 같이 게이트를 공략했던 동료들이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들과 함께 헬퍼도 참여하게 되었다.”

헬퍼(Helper).

던전 공략에 도움을 주기 위해 참여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표현이지만 흔히들 용병이라고 한다.

헬퍼로 참여하는 이들은 어느 정도 게이트 활동에 잔뼈가 굵은 실력자들이다.

당연하게도 제 앞가림도 못 하는 플레이어들은 헬퍼를 할 수가 없다.

진우가 헬퍼라고 소개를 했을 뿐인데 각성병사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박진철이 먼저 인사를 했다.

“반가워요. 박진철입니다. 과거 이진우 소령님이 몸담았던 길드의 길드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미숙이 나섰다.

“으음! 저는 강힘길드 부길드장입니다. 마법사고요. 뒤에서 여러분들 서포트해 줄 테니까. 맘 편히 게이트 공략하세요. 알았죠?”

“네. 알겠습니다.”

“우오오오오오!”

각성병사들은 환호하며 두 사람을 반겼다. 진우가 손을 들어 진정을 시켰다.

진우의 시선이 지휘장교들을 바라봤다.

“일단 김 대위하고 유 중위, 안 중위는 잠깐 이리와 와.”

세 사람이 진우에게 모였다.

“게이트 공략은 저번과 똑같다. 그리고 미숙이 누나가 뒤에서 서포트해 주시고.”

“오케이.”

“유 중위하고 진철이 형이 선봉에 설 겁니다. 그리고 길을 열고요.”

유지태 중위와 박진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우의 시선이 김슬기 대위에게 향했다.

“김 대위의 역할은 뭔지 알지?”

“네. 열심히 버프 걸어드리겠습니다.”

그랬더니 안미숙이 김슬기 대위를 보며 말했다.

“어? 버퍼셨어요?”

“네.”

“마나 회복이라든지……. 그런 쪽으로 가능해요?”

안미숙의 물음에 김슬기 대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크게 효과는 없을지 모르겠지만 익혀두고는 있습니다.”

“어이구. 마법은 마나를 1% 아낄 수만 있어도 성공한 거예요. 오늘 왠지 편안하게 사냥할 수 있겠네.”

박진철의 시선이 진우에게 향했다.

“그럼 우리 대장님은 뭐 하시는데요?”

“저는요. 전체적으로…….”

“조율?”

박진철이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중얼거렸다.

“아하, 꿀을 빠시겠다? 전생에 꿀벌이셨어요?”

박진철이 장난스럽게 말을 했는데 웃는 사람은 안미숙밖에 없었다. 그것도 잠시 안미숙은 곧바로 웃음을 거뒀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모든 사람들은 지난번 개미굴에서 진우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살짝 당황한 박진철이 안미숙 옆으로 가서 낮게 소곤거렸다.

“자기야. 안 웃겼어?”

“아니. 나는 웃겼는데.”

“그런데 여기 반응이 왜 이래?”

“아무래도 군인들이잖아. 그러니까…….”

“우씨. 군대에서는 내 웃음 코드가 안 먹히나?”

“에이. 뭐가 중요해. 자기는 나에게만 먹히면 되는 거지. 안 그래?”

“그렇지?”

“아니면 뭐? 저기 두 아가씨 중에 맘에 드는 사람이라도 있어?”

“어? 어디?”

박진철이 손으로 눈을 닦으며 말했다.

“어디 있는데? 내 눈에 여자는 너밖에 안 보이는데.”

“으이구. 말이라도 못하면…….”

안미숙이 살짝 눈을 흘겼지만 내심 기분은 좋았다. 그런 두 사람의 꽁냥에 진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부대를 벗어난 차량들은 게이트를 향해 움직였다.

그중 선두의 게이트 차량에는 진우를 비롯해 박진철, 안미숙, 김슬기 대위가 탔다.

박진철이 차창을 바라보다가 옆에 앉은 안미숙을 불렀다.

“자기야.”

“응?”

“혹시 군대 두 번 가는 기분 알아?”

“그게 무슨 소리야?”

“내 친구들은 대부분 군대 갔잖아.”

“그렇지. 자기는 플레이어 친구 없으니까.”

박진철이 바로 인상을 쓰며 고개를 홱 돌려 안미숙을 봤다.

“에이씨. 왜 또 얘기를 그렇게 해.”

“아니, 그냥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건데 왜 자기는 자격지심을 느끼고 그래.”

사실 플레이어에게 플레이어 친구가 없다는 것은 한마디로 왕따나 다름이 없다.

원래 플레이어들에게는 일반인 친구들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플레이어들은 돈이 많고 그 주변에 있다 보면 얻어먹을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플레이어들에게 매우 호감적으로 대한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철저히 약육강식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플레이어들은 철저히 멀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박진철은 참 괜찮은 플레이어지만 실력으로는 많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박진철에게 친구라고 부를 만한 플레이어는 안미숙밖에 없었다.

그런 안미숙이 친구에서 연인으로 바뀌었으니 플레이어 중에서는 이제 친구가 없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었다.

“알았어. 알았어. 그래서 뭐?”

“한 번만 더 그러면 나 진짜 삐진다.”

“알았다니까. 말해봐. 뭐?”

“어쨌든 그놈들이 그러더라고. 꿈 중에서 제일가는 악몽이 바로 재입대하는 꿈이라고.”

“재입대? 그런 꿈도 꿔?”

“몰라. 그래서 내가 그랬지. 3년 고생하는 것 가지고 난리야.”

게이트 시대가 되면서 국방의 의무 역시 강화가 되었다. 그러면서 2년이었던 군 생활이 다시 3년으로 올라갔고, 여자들 역시 군 복무를 해야 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군 복무를 대체하는 국방세를 내야 했다.

이를 두고 많은 여성 단체들이 반발했지만 게이트 시대에 현 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얘기는 왜?”

“아니, 난 그놈들이 그런 얘기를 할 때는 별로 실감이 들지 않았거든. 그런데 방금 들어갔던 게이트에 다시 들어갈 생각을 하니 우울해진다.”

“뭐야. 강원도 최강의 탐지꾼이 되겠다고 하던데 벌써 포기한 거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자기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나는 이미 한 번 다녀왔잖아. 그것도 이번에 들어가면 보스를 잡을 때까지 못 나오잖아. 와이씨……. 그 더러운 시궁창을 끝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찝찝해. 벌써부터 스트레스받는다.”

“아우, 말하지 마. 나도 속 안 좋아.”

“자기야. 자기는 그냥 막연한 불안함으로 속이 안 좋은 거잖아. 나는 이미 그걸 다 봤다니까.”

“알았어. 알았어. 너 잘 났네. 네가 최고예요.”

그러고 있는데 박진철의 시선이 진우에게 향했다.

진우는 딱히 뭐 이상할 것도 없이 무덤덤한 얼굴로 앉아 있다.

“진우야.”

“네?”

“너는 던전 들어가는데 긴장도 안 돼?”

“긴장해야 돼요?”

“와……. 자기야 봐봐. 실력 좀 있다고 긴장 하나도 안 하는 거.”

안미숙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진우에게 말했다.

“진우야. 너 잘난 거 알고 있는데 다른 사람 앞에서는 긴장하는 척이라도 해. 무슨 인간미가 없니.”

진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요? 알겠어요.”

진우는 잠깐 생각을 하더니 어색한 말투로 말했다.

“와아아아……. 완전 긴장된다. 이 인원으로 게이트에 들어가야 하네? 어떻게 하지?”

그러자 옆에 있던 김슬기 대위가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렸다.

박진철이 바로 웃는 것을 보며 말했다.

“어? 김 대위님 웃었다.”

“왜, 왜? 김 대위님이 웃으면 뭐 어째서? 여자가 웃으니까 좋아? 좋냐고.”

안미숙이 박진철의 옆구리를 꾹꾹 쑤시며 말했다. 박진철이 움찔했다.

“아니, 그렇다고. 누가 뭐래? 그냥 말수도 적고 하셔서 그랬던 거지. 자기는 또 그런 걸로 그러냐.”

“아무튼 내가 조금만 방심하면 사방팔방으로 아주 그냥 딴짓을 하고 다녀요. 아무튼 남자들이란…….”

“에헤이. 이 사람이 진짜……. 여기서 왜 남자 탓을 하고 그래. 그래! 내가 잘못했네. 잘못했어. 내가 죽일 놈이야.”

두 사람은 서른다섯에 늦은 연애를 시작했다. 이제 막 사랑에 눈을 뜬 두 사람은 뭘 하든 사랑싸움으로 번지곤 했는데, 보고 지낸 세월만 10년이 넘다 보니 무엇을 하더라도 수위가 높고 감정이 격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두 사람을 대신해 진우가 김슬기 대위에게 나직이 말했다.

“김 대위가 이해해.”

“아닙니다. 솔직히 전 좀 부럽습니다.”

“부러워? 김 대위는 연애 안 해봤어?”

“아, 그것이……. 연애를 해봤다고 해야 할지 안 해봤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이야?”

“그게 아는 친구에게 고백을 받았는데 말입니다. 그다음 날 제가 각성을 해버렸습니다.”

“와! 그 남자 정말 억울하겠다.”

“그러게,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 각성을 했다면 그나마 인연을 이어갔을 텐데……. 그런데 그전에 각성을 해버렸으니.”

사실 일반인이 플레이어와 사귀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등급에 따라서 가치가 천차만별이니 각성 전과 각성 후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김슬기 대위가 피식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휴가 때 집에 잠깐 내려갔었어요. 그때 잠깐 마주쳤는데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제가 이렇게 잘나갈 줄 알았으면 그때 무슨 수를 쓰더라도 붙잡았을 것이라고요. 그 말에 저는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안미숙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했어요. 잘했어. 어후, 그런 찌질한 놈은 안 만나는 것이 나아요. 나 봐요. 나! 어디서 찌질한 놈을 만나서 지금 고생하고 있잖아요.”

순간 박진철의 표정이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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