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숨긴 귀환자 86화
10. 바로잡아야겠어(11)
“형! 정말 탐지꾼 한다고 했어요?”
“그렇다니까.”
“진짜 탐지 스킬 줘요?”
“줘. 내가 한다니까. 그런데 그거 어디 상태 안 좋은 스킬북은 아니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상세히 확인은 하지 않아서요. 잠시만요.”
진우가 인벤토리에서 스킬북을 꺼내 박진철에게 줬다. 그것을 받아 든 박진철이 상태를 확인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상태가 영 안 좋은 것이 불안한데…….”
박진철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스킬북에 손을 올려 상태를 확인했다. 그런데 박진철의 눈이 번쩍하고 떠졌다.
“지, 진우야!”
“네?”
“진짜 이거 나 주는 거냐?”
“왜요? 상태가 너무 안 좋아요?”
“아니. 상태가 너무 좋아서 그래. 이거 B등급 스킬북이야.”
“B등급이요? 그 정도면 높은 건가?”
“탐지꾼들 중에서 유명하다 싶은 사람들은 대부분 탐지 스킬이 B등급이야. 요새 필드 뛰는 사람들 대부분이 C등급이고. D등급, E등급들도 비싼 돈 받으며 탐지꾼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B등급이면 말 다 했지.”
“그래요?”
“그리고 이거 B등급 몬스터에서 나왔지?”
“그렇죠.”
“어쩐지……. 이거 숙련도가 장난 아닌데? 익히는 순간 베테랑 탐지꾼이 될 것 같은데.”
“잘되었네요. 그럼 형이 익혀요.”
“야. 너 내 말 못 들었어? 이거 팔면 10억이 뭐야. 몇 배는 더 받을 수 있는 거야. 몇 배가 뭐야. 몇십 배도 가능해. 한마디로 부르는 것이 값인 거야.”
박진철은 약간 흥분한 얼굴로 진우를 바라봤다.
물론 이걸 익히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이것을 팔아 차라리 길드 운영비로 보태고 좀 더 싼 탐지 스킬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우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형. 기왕 익히는 거 좋은 것을 익히는 것이 좋지 않아요? 그래야 형도 안전하고.”
“그렇긴 한데…… 갑자기 너무 미안해지는데.”
“뭐가요?”
“아니, 지난번에 내가 살짝 서운했던 것이 있거든.”
“서운해요? 뭐가요?”
“이런 말 하기 좀 그런데. 내 방어구는 15억이었잖아. 미숙이 스킬은 120억이고.”
“에이, 형! 방어구랑 스킬북이랑 어떻게…….”
“알아. 아는데. 나중에 잠자면서 계산해 보니까 미숙이는 내 여덟 배더라고. 한편으로는 자존심도 상하고……. 물론 미숙이가 그만한 대우를 받아야 하지만.”
안미숙이 팔짱을 낀 채 한심한 눈으로 박진철을 바라봤다.
“으구, 박진철……. 정말 그렇게 생각했었던 거야?”
“조금 그랬다고. 그냥 자격지심 같은 거였어. 내가 너무 보잘것없는 느낌? 아무튼 이 탐지 스킬 있잖아. 옥션에 올리면 불의 심판보다 더 받을 수 있을 것 같거든? 그런데도 이거 진짜 나 주는 거야? 잘 생각해. 나중에 아까웠느니 딴소리하지 말고.”
박진철이 다시 한번 물었다. 진우가 미소를 보였다.
“형!”
“응?”
“나에게 형은 그 정도 가치의 이상이에요. 그러니까 형이 익혀요.”
“진우야, 진짜 고맙다.”
박진철이 스킬북을 꼭 움켜쥐었다. 그렇지 않아도 용병으로 뛰면서 잘해야겠다는 부담감이 컸다.
하지만 이 탐지 스킬북을 익힌다면 최소한 밥값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식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박진철은 빈 회의실에 들어가 스킬북을 익혔다.
원래 스킬북은 안전한 장소에서 익혀야 했다. 스킬북에 따라서 몸에서 받아들이는 시간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떤 스킬북의 경우는 거의 하루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스킬을 몸에 받아들일 때 몸은 거의 무방비상태가 되는데 스킬북의 레벨이 높을수록 그 기간이 늘어난다.
일설에 따르면 S급 스킬북은 일주일이 걸린 적도 있다고 했다.
당연히 그 일주일 동안은 주변에서 그 사람을 건드리거나 방해를 받아선 안 된다. 자칫 잘못해 외부 충격으로 마나가 꼬이면서 몸이 난리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몸에 큰 부하가 걸려 플레이어로서 실력을 잃어버릴 수도 있고, 더 최악은 목숨까지 위험해지기에 최대한 안전한 곳에서 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런데 박진철은 안미숙과 진우를 믿고 그냥 스킬북을 익혀 버렸다. 그리고 두 시간 만에 스킬 습득을 끝냈다.
밖으로 나온 박진철이 환한 얼굴로 진우에게 말했다.
“진우야. 이거 장난 아니다.”
“그 정도예요?”
“이거 숙련도가 얼마인 줄 아냐?”
“얼마인데요?”
“A다. A!”
“A면…….”
“S가 코앞이다. 게이트 몇 번 들어갔다가 나오면 S등급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
“진짜요?”
“그리고 이거 감지 범위도 장난이 아니야. 나 지금도 어디에 누가 있는지 감각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아!”
“오오…….”
게이트를 벗어나면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의 능력 일부분만을 사용할 수 있다.
등급이 낮은 플레이어들은 일반인들과 큰 차이가 없다. 그저 몸만 더 건강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등급이 높아지고 가지고 있는 스킬의 숙련도와 레벨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 일부를 사용할 수 있다.
박진철도 여왕개미의 감지 스킬을 얻어버렸기 때문에 제한된 힘만으로도 군부대 주변의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진우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형, 잠깐만요. 내가 기술 하나 쓸 테니까요. 인기척이 느껴지나 확인해 봐요.”
“뭐? 에이. 너 안 된다니까. 나 숙련도 A야.”
박진철이 호언장담했고, 진우는 피식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진우는 곧바로 은신(S)을 사용했다.
-띠링!
은신(S) 스킬이 발동됩니다.
진우가 숨을 죽이고 천천히 다시 박진철이 있는 곳으로 접근을 했다. 슬며시 문을 열었는데 그때까지 박진철은 물론이고 안미숙도 자신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진우가 곧바로 박진철 뒤쪽으로 가서 은신을 풀었다.
“뭐해요? 나 못 찾았어요?”
그 순간 박진철이 깜짝 놀랐다.
“어이쿠! 깜짝이야! 뭐야 너? 언제부터 들어와 있었던 거야?”
“방금 들어와서 뒤에 서 있었는데요.”
박진철이 곧장 안미숙을 보며 물었다.
“자기야. 자기는 느꼈어?”
“아니, 전혀…….”
안미숙 역시도 놀라고 있었다. 박진철은 말까지 더듬으며 진우에게 물었다.
“야, 너, 너, 게이트에서 무슨 짓을 한 거야?”
“아. 이거……. 군대에 들어오면 흔히들 익히는 스킬이에요. 엄폐&은폐라고 숨는 스킬인데, 블랙 게이트에서 고생을 하다 보니 스킬이 좋아졌어요. 상위 스킬로 바뀌더라고요.”
“그래? 와……. 이러면 안 되는데.”
“왜요?”
“아니, 나는 당연히 이 스킬만 있으면 누구든지 다 찾을 수 있을 줄 알았거든. 그런데 진우 너는 안 되네.”
“왜요? 그렇게 억울해요? 그 스킬 내가 줬는데요.”
“억울한 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네가 우리 버리고 가면 널 찾아야 하는데 못 찾을 것 같아서 그렇지.”
“어후, 진짜 형!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다 해요. 아무튼 준비된 거죠?”
“준비 완료지!”
“그럼 어서 일합시다. 뭐 해요? 빨리 게이트 들어가야지. 탐지꾼이.”
“와, 벌써부터 부려먹는다고?”
박진철이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박진철의 첫 탐지꾼 일이 시작되었다.
새로 생성된 게이트는 부대에서 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차에 타기 전 박진철이 말했다.
“나 혼자 다녀와야 하는 거야?”
“그럼 뭐? 같이 가줘?”
“같이 가줘야지. 무슨 일 생기면 어떻게 해.”
“아이고 애다, 애!”
박진철과 안미숙이 게이트 전용 트럭을 타고 이동했다. 그로부터 2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돌아왔다. 트럭에서 내리는 박진철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형. 탐지는 다 했어요?”
“어. 이 스킬 진짜 완전 편해. 진짜 게이트 들어가자마자 감각이 활성화되면서 게이트 내부 몬스터가 몇 마리인지 다 느껴지더라.”
“그 정도예요?”
“그래!”
“그럼 탐지해 온 것을 풀어봐요. 어떤 게이트예요?”
“거기? 주몹이 쥐더라. 쥐!”
“쥐? 설마 하수구요?”
“맞아.”
그러자 옆에 있던 안미숙이 바로 인상을 썼다.
“에이. 왜 하필 하수구야. 악취로 코가 썩어가겠네. 짜증 나!”
안미숙은 짜증을 냈지만 진우는 오히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개미굴과 마찬가지로 쥐들이 출연하는 하수구는 일단 개체 수가 많다. 개체 수가 많을수록 개체들의 수준이 많이 떨어진다.
게이트 밀도라고 하는 것은 게이트 안에 숨어 있는 총 몬스터의 총 전투력의 합이나 다름이 없다.
개미와 마찬가지로 쥐 같은 경우도 일단 수가 많으므로 각 개체들마다 강함이 줄어든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지휘장교들과 각성병사들을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누나. 미리 말하는데 두 사람은 내가 말할 때마다 나서야 돼요. 알았죠?”
“왜? 애들 키우게?”
“키운다기보다는……. 우리 부대 블랙 게이트 때 쓸 만한 애들이 많이 죽었잖아요. 근데 제가 각성부대 부부대장이라 부담이 커요.”
“하긴…….”
“그리고 농담이 아니라 이쪽으로 북의 플레이어들 보내면 금방 뚫릴걸요.”
진우의 말에 박진철이 바로 정색했다.
“야. 말이 씨가 된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내가 강원도에 살면서 제일 조마조마한 것이 바로 그것인데.”
게이트 사건 이후로 남과 북은 서로의 국경선을 유지한 채 도발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제는 단순히 전쟁으로 끝날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지금 세상은 플레이어들의 세상이었다. 게다가 전 세계 모든 플레이어들이 게이트에서 나오는 부산물들을 통해서 국력을 성장시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섣불리 전쟁을 하거나 타국과 불편해져 봐야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일단은 더 많은 게이트를 확보하고, 더 많은 게이트를 공략해서 더 많은 부산물을 확보해 그걸 통해서 더 강해지는 것이 모든 국가들의 똑같은 목표였다.
그래서 지금 북한도 별다른 도발을 하지 않고 잠잠한 상태다.
그러나 마지막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주적은 현재까지도 머리 위의 북한이었다.
“야. 그럼 나 뭐 하러 데리고 가?”
안미숙이 바로 입을 열었다.
“정 심심하면요. 뒤에서 애들 도와주세요. 몬스터 달려들면 떼주고.”
“뭐하러 그래. 불의 심판 한 방이면 끝나는데.”
“그러니까 문제죠. 누나가 불의 심판으로 한 방에 쓰러뜨리면 의미가 없어요. 그냥 형이나, 나나, 누나 셋이면 돌면 되는데.”
“야. 그냥 그러는 것이 좋지 않냐?”
“누나! 이 게이트의 소유권은 현재 군부대에 있어요.”
“알았어. 알았어. 더럽게 복잡하게 구네.”
못마땅하게 여기는 안미숙에게 진우가 말했다.
“대신에 누나! 최종 보스 나오면 선방은 누나에게 양보할게요. 콜?”
안미숙이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콜! 역시 진우는 뭘 좀 안다니까.”
“자! 그럼 이제 우리 슬슬 게이트 공략하러 갈까요?”
세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우는 두 사람을 데리고 연병장으로 향했다. 연병장에는 이미 사전에 대기하라는 지시를 받은 지휘 장교들과 각성병사 20명이 있었다.
진우가 나타나자 유지태 중위가 바로 자세를 잡으며 경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