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숨긴 귀환자 81화
10. 바로잡아야겠어(6)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럼 왜 사단장이 자넬 불렀겠어.”
“이번에 진짜 너무 수익이 잘 나왔습니다. 수익이 너무 잘 나와서……. 막말로 적당히 나와야지, 이상하지 않습니까. 앞엣것에 대한 것을 의심받을 수 있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 핑계로 얼마나 해 먹었는데.”
“그거 아닙니다. 설사 해 먹어도 어디 저 혼자 먹습니까.”
그 소리에 이준식 대령이 또 한 번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 친구가 큰일 날 소리를 하네. 그래서 뭐? 자네가 나한테 그 돈 가져올 때 뭐라고 그랬어. 뒤탈 없는 돈이라며, 아무 조건 없이 써도 된다면서. 이제 와 그걸로 내 약점을 잡으려고?”
“그런 것 아닙니다.”
임경식 역시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사실 이준식 대령이 한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준식 대령이 그전에 자신이 편하게 쓸 돈이 필요하다며 아쉬운 소리를 한 것도 사실이었다.
자신이 에둘러 말했다고 해서 그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와 저런 식으로 말을 해버리니 임경식 중령도 빈정이 상했다.
‘아무튼 저 인간도 믿을 사람이 못돼.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
김승철 소장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아서일까? 지금 이준식 대령의 행동이 정말 꼴불견처럼 느껴졌다.
선배 장교라면 그래도 위엄 있게 행동하고 후배를 보듬을 줄 알아야 하는데 이준식 대령은 항상 자기가 먼저였다.
자기가 살기 위해서는 후배고 동료고 짓밟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 비열한 인간이었다.
그렇다 보니 점점 더 마음이 굳어졌다. 그런 줄도 모르고 이준식 대령이 입을 열었다.
“그거 말고는 다른 것은 없고?”
“네.”
“하아……. 내가 말이야. 자네를 믿고 어떻게 군 생활을 하겠어. 내가 잠을 편히 자겠어?”
이준식 대령은 여느 때처럼 제멋대로 생각하고 함부로 떠들어댔다. 임경식 중령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면서 이준식 대령의 상태를 확인했다. 뭔가 불안한지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뭔 일이 확실히 있는 것 같군.’
임경식 중령이 모른 척하고 물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이준식 대령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간밤에 누가 작전과에 들어왔어.”
“네? 누가 말입니까?”
“그걸 모르겠어. 그걸! 일단 경고음이 울려서 가 봤는데 아무도 없어. CCTV나 들어온 흔적까지.”
“혹시 경보가 잘못 울린 것은 아닙니까?”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지. 그런데 캐비닛이 열려 있고 자료들은 나와 있었어.”
“캐비닛이라면…….”
“있잖아. 블랙 게이트에 관한 자료……. 그걸 덮어놓은 자료들 말이야.”
이준식 대령이 슬쩍 얘기를 했다.
“그거 소각시킨 거 아닙니까?”
“이 친구야. 그걸 어떻게 함부로 처리를 해. 이 일이 어떻게 처리될지도 모르는데.”
이준식 대령이 손으로 이마를 슬쩍 만졌다.
블랙 게이트에 관한 모든 자료는 캐비닛에 전부 다 잠든 상태였다. 전산으로 된 것도 전부 다 암호화되어 있어 볼 수가 없었다.
다시 말해 이준식 대령은 위에서 이 일을 덮으라고 지시가 내려오면 바로 처리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 해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간밤에 그 문제의 캐비닛이 열렸고 몇 개의 자료들이 밖에 나와 있는 것이 당직사령에 의해 발견이 되었다.
그 사실을 바로 보고했는데 문제는 들어간 인물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CCTV는 물론이고 모든 감지 장치에 걸린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항간에는 귀신의 짓이다, 아니면 블랙 게이트에서 죽은 망령의 짓이다, 해괴한 소문이 돌았다.
물론 이준식 대령은 다른 누군가의 소행이라 여겼다. 게이트라는 세상에서 사는데 귀신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진우 그 자식 짓인 것 같아.”
“이 소령 말입니까? 이 소령은 휴가 중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녀석이 맘만 먹으면 부대 잠입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닐걸. 안 그래?”
“네, 뭐……. 이 소령이 등급이 높으니 그럴 가능성도 있죠.”
“그러니까. 이 소령이 미심쩍다고. 그리고 만약에 이소령이 그랬다고 쳐. 그럼 그 사주는 누가 했을 것 같아?”
임경식 중령의 눈이 반짝였다.
“설마 사단장님?”
“그렇지!”
이준식 대령은 의심이 아니라 확신을 가졌다.
“분명히 그 사건을 가지고 쥐고 흔들려고 이진우를 보낸 게 틀림없어. 솔직히 우리들 중에 말해서 캐비닛 자료들에 접근이 자유로운 사람이 누가 있어? 자네라고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아?”
“저야 뭐…….”
임경식 중령 역시 할 말은 없었다. 그는 하라는 대로 그냥 한 것뿐이었다.
11사단 장교들 중에서 유일하게 이 일과 무관할 수 있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김승철 소장뿐이었다.
김승철 소장은 애당초 블랙 게이트와 관련해 보고조차 받지 않으려고 했고, 모든 것을 이준식 대령에게 떠넘겼기 때문이다.
“혹시 자료가 다 사라진 겁니까?”
“아니. 자료들은 다 그대로 있어. 하지만 사진으로 찍어갔을지 모르지.”
물론 확실한 증거는 없었지만 이준식 대령은 어떻게든 김승철 소장의 짓으로 몰아가려 애를 썼다.
그러나 임경식 중령은 아까 김승철 소장에게 이준식 대령의 비리 장부를 가지고 오라는 말을 들은 상태였다.
‘이 일은 사단장님과 관계없어.’
만약 이준식 대령의 말대로 간밤에 블랙 게이트와 관련한 자료를 모두 가져갔다면 뭐 한다고 자신에게 비리 장부를 가지고 오라고 은밀히 지시했겠나.
‘음, 아무래도 이준식 대령이 헛다리를 짚은 것 같은데…….’
하지만 이 사실을 알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또 오히려 이준식 대령이 사단장과 갈등을 일으켜야 자신이 편했다.
‘그래, 차라리 잘됐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것도 힘든데. 둘이 지지고 볶고 그러든가 말든가. 나는 서울로 빨리 가버리자.’
임경식 중령이 마음을 굳혔다. 그 모습을 보며 이준식 대령이 물었다.
“뭔 생각을 그리해?”
“네?”
“뭔 생각을 하냐고.”
“별생각 안 했습니다.”
“자네는 중령이면서 생각 좀 하고 살아라. 이런 상황에서 멍 때리고 있고 싶어?”
이준식 대령은 가차 없이 임경식 중령에게 한소리를 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요즘에 일이 많아서 말입니다.”
“어후, 됐다. 됐어. 그만 나가봐.”
“네.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임경식 중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를 한 후 사무실을 나갔다. 작전과 장교들에게 손으로 대충 인사를 한 후 작전과를 나와 복도를 걸어갔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며 걸어가는데 휴대폰의 진동이 느껴졌다.
“응?”
아내에게서 온 문자였다.
-여보 힘내요♡
그 뒤에 하트까지 찍혀 있었다. 그것을 본 임경식 중령은 더욱 결심을 굳혔다.
그 시각 게이트 탐지 연구소에서 또 다른 게이트 파장이 발견되었다.
“어? 이건…….”
“왜, 뭔데?”
“팀장님 이거 보십시오. 또 게이트가 열린 것 같습니다.”
출출하다고 핫바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던 고지식 팀장이 모니터 쪽으로 다가갔다.
부사수인 한창열 연구원의 말처럼 지난번에 생긴 게이트 주변으로 또다시 마나 파동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건 색이 뭐야?”
“지난번과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요.”
“또 B등급이야?”
“네. 그런 것 같습니다.”
모니터에서 전멸하던 빛은 오렌지색에 가까웠다.
C등급 게이트는 노란색, B등급은 오렌지색, S등급은 골드 금빛이었다.
경험이 부족한 이들은 이 세 등급을 육안으로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게이트 탐지 연구소에서 오랫동안 연구를 한 연구원들은 기본적으로 그 색을 구분할 줄 알아야 했다.
“B등급 맞네. 박대수 소장에게 연락드려.”
“박 소장님 엄청 바쁘다던데 한 소리 듣겠네요.”
“왜? 아직도 직원 못 구했대?”
“거기 강원도잖아요. 게이트가 대부분 산간 지역에 나는데 그런 곳에 간다고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길은 험하고 차 망가진다고 거기는 대부분 안 간다고 하던데요.”
“어이구, 소장님이 고생이 많네. 이거 우리가 건의를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게요. 이거 잘못했다가 저희가 가서 실사 조사하게 생겼는데요.”
그렇게 말을 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김지현 부소장이 코로 냄새를 맡고는 소리쳤다.
“도대체 비품실 핫바 먹은 사람이 누구야!”
그러자 고지식이 엄지손가락만큼 핫바를 냉큼 입에 넣고 그 꼬치를 빠르게 숨겼다. 그사이 한창열 연구원이 사수를 살리겠다고 김지현 부소장에게 다가가 시간을 끌었다.
“부 소장님 오셨습니까?”
“뭐야? 한창열 네가 먹었어?”
“뭐가 말입니까?”
“핫바, 핫바! 내가 비품실에 숨겨놓은 핫바 말이야. 네가 먹었냐고.”
“어후, 저는 못 봤는데요. 그런데 저기 부소장님. 여기 좀 보십시오.”
한창열은 바로 화제를 돌려 모니터를 보여줬다.
“뭔데?”
“여기 말입니다. 이거 B등급 맞죠?”
“뭐야. 또 게이트가 열렸어?”
김지현 부소장이 곧바로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순간 이마를 찌푸리더니 한창열을 봤다.
“한창열!”
“네.”
“너는 여기서 일한 지가 얼마인데 B등급이랑 C등급 구분도 못 해?”
“혹시나 해서 말이죠.”
“혹시나 할 걸 해야지 이건 누가 봐도 B등급이잖아.”
“그래요? 그럼 게이트 밀도가 얼마나 될까요?”
“딱 보면 모르겠어?”
“네?”
“여기 봐봐. 살짝 붉은색이 감도는 것이 150 이상이잖아.”
“아, 그렇구나. 역시 우리 부소장님은 모르는 것이 없으시구나.”
김지현은 나이가 어리긴 하지만 게이트 관련해서 탐지 능력이 워낙에 뛰어나고 똑똑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부소장까지 올라왔다.
그녀가 원래 일하던 곳은 서울이었다. 그런데 지랄 맞은 성격 때문에 강원도로 내려왔다.
강원도에서는 김지현 부소장만 한 능력이 없다 보니 거의 여왕처럼 군림하고 있었다.
그사이 핫바를 빠르게 위장으로 넘긴 고지식 팀장이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죄송합니다. 부소장님. 제가 한창열 연구원 교육을 시키겠습니다.”
“고 팀장님! 만날 놀 생각만 하지 말고 연구원 교육에 신경 좀 쓰세요.”
“네.”
김지현 부소장은 힐끔 모니터를 보고는 혀를 쯧쯧 차며 나갔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욕만 먹어 억울한 얼굴이 된 한창열의 어깨를 쓰윽 감싸며 고지식 팀장이 말했다.
“고맙다.”
“뭘요?”
“너 언제 당직이냐?”
“내일요.”
“알았어. 내일 당직 내가 서 줄게.”
한창열 연구원의 눈이 커졌다.
“진짜죠?”
“그래. 내일 푹 쉬어.”
“감사합니다. 팀장님!”
“감사는……. 그리고 알지?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생기면…….”
“물론이죠. 열과 성의를 다해 서포트 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보며 씨익 웃었다.
잠시 후 게이트 탐지연구소에서 연락을 받은 박대수 소장이 차에 시동을 걸었다.
“아이고 젠장……. 하필 이런 곳에 게이트가 열린 거야.”
박대수 소장이 한참을 운전하여 험한 길을 타고 갔다. 그리고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고 게이트를 확인했다.
“으음……. 지난번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