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 08. 블랙마켓에 어서오세요 (4)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지금이야 안미숙 말고는 바라봐주는 사람도 없지만 박진철도 소싯적에는 여자들에게 제법 인기가 많았다. 플레이어임에도 털털한 모습이 매력적으로 보인 것이다.
그때마다 박진철은 이렇게 말했다.
“길드원들끼리 연애는 안 한다.”
물론 다른 길드원끼리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은 길드장이기 때문에, 길드원 중 누군가와 연애를 하면 길드가 망가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 절대 연애하지 않을 거라 말했었다.
그런데 이제 와 안미숙과 저러는 모습을 보니 왠지 길드원들이 다 떨어져 나가기를 기다렸나 싶기도 했다.
“연애는 무슨 연애!”
“뭐 어때요? 이제 길드에 둘 밖에 없는데.”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설마하니 미숙이하고 이러려고 길드 망하게 내버려 뒀겠냐?”
“나는 별 얘기 안 했는데 왜 이렇게 발끈하지? 설마 진짜 그런 거예요?”
“자식이 장난하지 말고. 가뜩이나 진짜 세금도 못 내서 죽을 지경인데.”
“그래서 내가 오늘 같이 돈 벌게 해주잖아요.”
“아, 네네, 그래서 제가 직접 왔잖아요. 고객님!”
“그런데 왜 고객에게 화를 내죠?”
“제가 언제 화를 냈다고 그러세요. 고객님. 그냥 못 볼 걸 보여준 저희 잘못이죠.”
박진철이 체념하듯 투덜거렸다. 예전의 어수룩한 진우라고 생각하고 적당히 둘러대려고 했는데 자신을 놀려대는 걸 보니 그냥 솔직히 털어놓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진우도 두 사람의 연애를 반대할 생각은 없었다.
누가 뭐래도 두 사람은 천생연분이니까.
그렇게 피식 웃던 진우가 차를 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이 차 예전에 형이 몰던 그 차 아니에요?”
“맞는데.”
“으음······. 그때 내가 알기론 30만㎞던가? 40만㎞던가? 이미 탈 만큼 탄 것 같았는데요.”
“괜찮아, 인마! 차는 보통 100만㎞씩 타고 그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그럼 지금 얼마나 탔는데요?”
“지금? 얼마나 탔지?”
박진철이 계기판을 확인했다.
“이게 9인가?”
“네에? 90만㎞를 탔다고요?”
“그럼 5년을 넘게 탔는데 그 정도는 타야지.”
한마디로 이 차로 일 년에 거의 10만㎞는 타고 다녔다는 뜻이었다.
박진철이 차량 정비를 주기적으로 잘하고 그러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박진철의 신조는 ‘고장 나면 바꾼다’였다.
당연하게도 그전에 타고 다녔던 차도 고장 나서 바꿨다. 그리고 난 다음에 중고차를 구입한 건데, 그 중고차를 또 이렇게 막 끌고 다니고 있었다.
무엇보다 차 뒤에 몬스터 부산물을 들을 넣고 다녔는지 구리구리 하면서도 찝찝한 냄새가 났다.
“형. 이 차 세차는 했어요?”
“했어! 봐봐, 깨끗하잖아.”
“아니, 평소에도 좀 환기도 하고 그러지. 차에서 이게 무슨 냄새에요?”
“야! 이진우. 1절만 하지?”
“그래 인마. 너무한 거 아니냐? 아무리 고객님이라고 해도 그렇지 너 태우러 여기까지 왔는데 꼭 그렇게까지 면박을 줘야겠어?”
“맞아. 차에서 냄새가 날 수도 있는 거지 그것 가지고 그래?”
발끈한 안미숙이 말하자 박진철이 바로 맞장구를 쳐줬다.
“맞아! 지가 사 줄 것도 아니고······.”
진우가 한숨을 푹 내쉬며 차에서 내렸다.
“형. 잠깐만 기다려 봐요.”
진우가 도로 현관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차고 문이 열렸다.
그리고 새 차에 가까운 세단 차량이 나왔다.
“어? 저건······.”
“뭐야 저거?”
“진우 차 같은데?”
“진우 차?”
안미숙이 눈을 크게 하며 말했다. 박진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맞네. 저거.”
“어떻게 알아, 자기야?”
“나야 당연히 알지.”
박진철이 차에서 내려 그 차로 다가갔다. 차 문이 열리며 진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형, 이 차로 가죠.”
박진철이 감탄하며 말했다.
“이야. 이 차가 아직도 있었냐?”
안미숙도 다가와 말했다.
“이 차가 뭐냐니까?”
“아. 이거 얘기하면 긴데 말이야. 짧게 말해서 진우가 김미영이랑 여행 가려고 구입한 차야.”
진우가 발끈했다.
“아, 형!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냥 뽑았어요. 그냥!”
“그냥 뽑기는 뭘 그냥 뽑아! 내가 다 아는데.”
박진철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안미숙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계속해서 물었다.
“뭔데? 뭐야!”
사실 예전에 김미영이 양다리를 걸친 줄도 모르고 진우는 여행을 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전까지는 특별히 길드에서 차를 운영하기 때문에 특별히 차가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김미영과 단 둘이 여행을 가기로 약속한 진우는 플레이어 일을 하면서 모아뒀던 돈으로 특별히 차를 한 대 구입했다.
그것도 일반 차량이 아닌 몬스터 합금으로 만든 정말 비싼 차량이었다.
겉모양은 일반 차량과 비슷해 보여도 어지간한 외부 충격은 다 흡수해 버리는 그런 차량이었다.
그런데 김미영에게 그 차에 대해 말하기도 전에 김미영의 양다리 사실이 들통 났다.
김미영은 진우를 버리고 길드를 나가 버렸고.
덕분에 이 차도 차고에 박힌 채 세상의 빛을 거의 보지 못했다.
“너 이 차는 타고 다녔냐?”
“기억은 없는데. 아마 타기는 했을걸요.”
“너 그때 바로 군대 갔잖아.”
“그렇죠.”
“그럼 4년 동안 차고에 처박혀 있었던 거 아니야?”
“에이! 가족 중에 누가 몰았겠죠.”
“그런가?”
박진철이 운전석에 앉아서 시동을 걸었다.
부아아앙!
다행히 시동을 걸렸다. 계기판에 확인된 킬로미터 수가 17킬로가 조금 넘어가 있었다.
“야. 17킬로 뛰었단다. 17킬로!”
“네? 진짜요? 그것밖에 안 달렸나?”
“와! 이 비싼 차를 4년 동안 처박아 놓고······. 세상에. 너무하네, 너무해. 이건 차에 대한 모독이야.”
박진철이 해도 너무한다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러자 진우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럼 형이 가져가요. 아니면 업어 가든가.”
“진짜? 싸게 팔 거야?”
“싸게 드릴게요.”
“얼마에 팔 건데?”
“그게 원가가 10억이니까······.”
순간 박진철의 눈이 커졌다.
“뭐? 10억? 뭐가 이리도 비싸!”
“형! 거기 별의별 옵션이 다 들어갔어요. 게이트 틈에 빠져도 자동으로 게이트 관리소로 연락이 갑니다.”
“진짜?”
“네. 트렁크에는 인벤토리 기능도 있어서 물건도 막 넣을 수 있어요.”
“워······.”
박진철 혼자 차량을 훑어보며 신나 하고 있는데 안미숙이 슬쩍 다가와 그를 툭 쳤다.
원가가 10억이고 거의 안탔다. 출고한 지 4년이 지났다는 걸 감안해 50% 후려쳐도 5억이다. 그 정도 돈이면 길드 운영을 몇 년은 할 수 있었다.
‘아. 참. 나는 돈이 없지.’
박진철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됐어, 인마. 너와 미영이의 추억이 담긴 차인데 내가 어떻게 가져가?”
박진철이 괜히 진우를 위한 척 말했다. 그러자 진우가 인상을 썼다.
“진짜! 형 그런 얘기 하지 말라니까요. 형이 그 얘기만 안 했어도 내가 진짜 거의 공짜로 넘길까 생각도 해봤는데.”
그 순간 박진철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반짝였다.
“진짜? 공짜로?”
“어차피 난 안 타고 다니까요.”
“고객님.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앞으로 김미영의 김 자도 꺼내지 마요.”
“어후, 그럼요. 김미영이 누구죠?”
박진철이 바로 안면몰수하며 모른 척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안미숙은 속으로 잘한다고 응원을 해줬다.
‘그래. 잘한다. 이 차를 거의 공짜로 받을 수만 있다면······.’
안미숙이 좋아하고 있는 사이 박진철과 진우가 얘기를 하고 있었다.
“형! 방금 또또또······.”
“아. 실수!”
진우의 시선이 안미숙에게 향했다. 안미숙이 움찔했다.
“누나도!”
“나? 나는 왜? 아무말도 안 했는데.”
“어차피 누나도 이 차 타고 다닐 거잖아요. 종종 몰고 다닐 거고!”
“야! 나도 맘먹으면 이 정도 차 살 수 있거든?”
“지금 진철이 형 먹여 살리느라 정신 없는데 차를 어떻게 사요?”
“야. 먹여 살리긴 누굴 먹여 살린다는 거야? 그리고 내가 왜 진철이를 먹여 살리는데?”
“두 분 하는 거 다 봤으니까 발뺌 그만 하죠? 내가 두 사람 사귀는 거 반대하는 것도 아닌데 참.”
“······반대 안 해?”
“반대를 왜 해요? 내가 좋아하는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는 건데. 그러니까 두 사람도 최소한 나에 대한 예의는 지켜줘요. 자꾸 남의 상처 건드리지 말라고요.”
김미영에 대해 다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어제 김미영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보니 또 그게 아니었다.
짜증도 나고 화도 나고 하는 게 아직 100퍼센트 김미영을 정리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런 진우의 말에 안미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앞으로 안 놀릴게. 그럼 됐지?”
“네.”
진우가 키를 박진철에게 줬다. 그리고 뒷자리로 움직이며 말했다.
“명의 이전이나 그런 것은 제가 동생 시켜서 처리하라고 할게요. 그러니까 편하게 타고 다녀요.”
“오오, 그래 알았다. 잠깐만 기다려.”
박진철이 후다닥 원래 차량으로 뛰어갔다. 트렁크를 열어서 가방과 먹을 것을 바리바리 꺼냈다. 그것을 본 진우가 물었다.
“뭘 이렇게 많이 싸 왔어요.”
“거기서 며칠 있을지 모르잖아. 그래서 간단히 옷가지와 간식을 준비했지.”
“에이. 가면서 사면되는데······.”
“야! 다 이런 것도 돈이거든. 넌 인마, 금수저로 태어나서 잘 모르겠지. 하여간 돈 아까운 줄을 몰라요.”
“하긴 그러니 이 10억짜리 차량을 4년 동안이나 썩혔지.”
박진철과 안미숙은 호흡이 척척 맞았다.
“아, 진짜 두 사람······. 자꾸 그러면 차 도로 가져갑니다.”
바로 박진철이 꼬리를 내렸다.
“미안해. 자식이 준다고 해놓고 뺏어가려고 하네.”
“혀엉······.”
“알았다고 인마. 어서 타!”
진우가 뒷자리 문을 열고 탔다. 그러곤 차를 한번 훑었다. 확실히 풀옵션을 해서 그런지 뒷자리도 좋았다.
‘이거 뭐, 너무 쉽게 결정했나?’
진우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앞을 봤다. 앞에 앉은 박진철과 안미숙은 차의 기능들을 확인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자기야. 이것 봐! 와, 대박이지 않냐!”
“어멋! 완전 고급스럽다. 우리 여기서 자도 되겠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진우가 피식 웃었다.
“저기요. 앞에 두 분. 출발 안 합니까?”
“어어, 출발해야지. 가자고.”
박진철이 바로 기어를 넣고 차량을 출발시켰다.
한참 달리던 차량에서 진우는 두 사람과의 인연을 생각했다. 그러곤 슬쩍 물었다.
“진철이 형.”
“응?”
“형은 길드 어떻게 할 거예요?”
“길드? 글쎄다.”
새 차를 몰고 가며 실실 웃던 박진철의 표정이 진지하게 바뀌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안미숙이 박진철의 눈치를 살피며 슬쩍 말했다.
“진우야. 우리 길드 계속 유지할 거야. 걱정하지 마.”
“계속 유지할 거라고요?”
“응. 그래도 강힘길드가 전통도 있고 뭐, 그런데 이제 와 문 닫는 것은 좀 그렇잖아.”
진우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강원도의 힘이라고 한 강힘길드는 4년 전만 해도 강원도에서도 제법 알아주는 길드였다.
길드장인 박진철은 수완이 좋았고 안미숙이라는 능력 있는 플레이어도 있어서 강힘 길드 소속이라고 하면 어디 가서 무시당하는 일이 없었다.
게다가 강힘길드는 거의 육성길드나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