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 08. 블랙마켓에 어서오세요 (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안 되겠다. 최 중사. 인공호흡 좀 해봐.”
“지랄! 난 남자 입술은 싫거든?”
“그럼 가슴 마사지라도 해보든가. 죽으면 우리 좆되는 거야.”
김철수 중사의 말에 최대근 중사도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다행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박수혁의 숨이 돌아왔다.
“숨 쉰다. 숨 쉬어!”
“아오, 시발. 깜짝 놀랐네.”
김철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사이 최대근이 다가가 박수혁의 뺨을 툭툭 건드렸다.
“으으으으······.”
“야 정신 좀 차려봐. 그래야 나도 좀 때리지.”
박수혁은 방금 저승 문앞까지 갔다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덩치 큰 사내가 씨익 웃으며 자신을 때리려고 했다.
“아아아악!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박수혁이 바로 바짝 엎드려 싹싹 빌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플레이어들을 상대해 왔지만 이렇게 압도적으로 짓눌리기는 처음이었다.
죽이네 어쩌네 하며 덤벼드는 플레이어들도 사실 별로 대단할 게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달랐다. 서로 되지도 않는 개그를 치면서 살기를 뿜어대는데 꼭 A급 게이트 속에 홀로 던져진 기분마저 들었다.
“얘 뭐라는 거야?”
“살려달라는데?”
“그래?”
김철수 중사가 엎드린 박수혁에게 말했다.
“살려주면 뭐 해줄 건데?”
“뭐, 뭐든! 뭐든 다 하겠습니다.”
“뭐든 다하겠다고?”
“네.”
“그럼 말이지. 너는 이제부터 아무것도 하지 마.”
“네?”
박수혁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런 그를 보며 김철수가 다시 말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쥐죽은 듯 조용히 살아. 알았어? 너 만약에 뭐든 한다? 그래서 우리한테 걸린다? 그러면 그 때는 절대 그냥 보내주지 않을 거야.”
“네. 알겠습니다.”
박수혁이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빨리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최대근 중사는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너 분명 아무것도 안 한다고 그랬어?”
“네!”
“그래, 그 약속 믿고.”
“네.”
“앞으로 딱 10대만 맞자!”
“네에?”
박수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당연하다는 듯이 최대근 중사가 말했다.
“잘못한 것은 맞아야지!”
그렇게 구석진 골목에서 사람 죽어가는 비명 소리가 구슬프게 울려 퍼졌다.
박수혁을 두드려 팬 후 골목길을 나온 두 사람.
“야, 우리 이제 마스크 좀 벗자! 이거 원 답답해서······.”
최대근 중사가 마스크를 벗으며 말했다. 그러자 김철수 중사가 바로 인상을 썼다.
“최 중사! 너 살살 좀 때려야지. 그러다가 진짜 죽으면 어떻게 해?”
“웃기네. 지가 먼저 저승길 문 앞까지 보내줘 놓구선.”
“그럼 도망치려는데 보고만 있냐? 그건 그렇고 저 자식 무슨 수로 우리 대장 여자친구를 낚아챈 거냐.”
“그러게. 별것도 아닌 것이.”
“돈이 많나?”
“아까 대원 아이템이라고 하지 않았어?”
“하긴. 하고 다니는 꼴을 보니 돈은 좀 있는 것 같더라.”
“그건 그렇고 그 여자도 불쌍하다.”
“왜?”
“아니, 우리 대장을 버리고 저런 얼빵한 놈을 만나다니.”
“세상에 얼빠진 애가 어디 한둘이냐.”
“그러게. 그건 그렇고 저 새끼 정신 못 차리고 대장에게 해코지하면 어떻게 하냐?”
“왜? 그랬으면 좋겠냐.”
“아니······.”
“아니긴 넌 지금 은근히 저 자식이 헛짓거리를 했으면 하잖아. 그래야 또 손을 보니까.”
“그, 그런 거 아니거든.”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래도 모처럼 몸 좀 풀어서 기분은 좋다.”
“그러게.”
임백호 상사는 이해하라고 말 했지만 김철수 중사와 최대근 중사는 정말 아쉬웠다. 진우가 다 끝나고 부대원들과는 회식을 하는데, 자신들은 흑룡인이라 정체를 숨겨야 하는 탓에 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용히 진우의 주변을 맴돌았다. 분위기라도 내보자는 마음으로 말이다.
이번엔 진우가 휴가를 나왔다고 하니 그냥 무작정 숨어서 따라다닌 것인데 그러다 본의 아니게 김미영과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또 박수혁과의 관계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박수혁이 정신을 못 차리고 덤벼들 것 같자 진우를 대신해 응징해 준 것이었다.
“그런데 대장은 우리가 근처에 있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더라.”
“그러게. 당연히 대장이 우리를 느낄 줄 알았는데······.”
“나는 말이야. 지금 우리가 대장의 호위무사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럴지도 몰라. 우리가 대장 덕분에 목숨을 구했잖아.”
“그렇지.”
“대장 말로는 우리를 살릴 때 종속 어쩌고 했다고 하니까 우리는 대장과 한 몸이기 때문에 딱히 인지 못 하는 것일 수도 있어.”
“음······. 뭔 소리인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겠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그냥 느낌적으로 알겠다는 소리야! 아무튼 우리 이런 식으로 대장 따라다니는 것도 재미는 있네.”
“그래! 대장 부대에 복귀하기 전까지 이런 식으로 대장 따라다니자.”
“그러자!”
그 때 건너편으로 중년 사내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러자 최대근 중사가 벗었던 마스크를 냉큼 다시 썼다.
그렇게 중년 사내를 보내고 난 뒤 최대근 중사가 불만스런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우리 언제까지 마스크 써야 해?”
“안 쓰면? 너나 나나 얼굴을 보이면 사람들이 놀랄 텐데······.”
“이거 뭐 어디서 사람 얼굴 비슷한 거 못 구하나?”
최대근이 중얼거리자 김철수가 눈을 번쩍였다.
“응?”
항상 말도 안 되는 말만 하는 최대근이었다. 그런데 사람 얼굴 비슷한 거라도 구해오면 좋겠다는 그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거 괜찮은데? 무협에서는 인피면구(人皮面具)라고 하잖아.”
“인피면구? 그거 그냥 해본 말인데.”
“아니야, 아니야. 그걸 만드는 곳이 있을 텐데······.”
“에이 설마······.”
“아니, 내가 찾아보지는 않았는데. 아마 만드는 곳이 있을 거야. 세상이 이렇게 변했는데 그런 거 만드는 곳 하나 없을까?”
“그럴까?”
최대근이 고개를 갸웃했다.
“참, 대장 말이야. 이번에 블랙마켓 간다고 하지 않았냐?”
“맞아. 그랬지.”
“그럼 혹시 그곳에서 인피면구도 팔지 않을까?”
“슬쩍 말해봐?”
“그래야지. 혹시 알아? 거기서는 팔지? 그래야 나중에 우리도 돌아다니기 편하잖아.”
“좋은 생각이네.”
잠시 후 단체 채팅방이 깜빡거렸다. 진우는 집으로 향하다가 깜빡이는 것을 보고 채팅방을 올렸다.
-대장! 대장! 대장! 대장!
-왜 이렇게 시끄러워?
-왜 이제야 봐요!
-무슨 일인데?
-대장, 대장! 우리 인피면구 하나 구해줘요.
-인피면구?
-저희 마스크 쓰고 돌아다니기 힘들어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본다고요.
-저희도 슬슬 바깥 생활은 해야죠.
-너희들 그거 쓰고 클럽 가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그런 거 아니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잠시 고민하던 진우가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차피 블랙마켓을 가야 하니, 그 정도는 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알았다.
진우가 대답을 한 후 곧바로 채팅창을 닫았다.
몇 번 더 붉은 빛이 깜빡였지만 애써 무시했다.
분명 쓸데없는 대화일 것이 분명했다.
다음 날 진우의 집 앞으로 낡은 중형 세단이 도착했다. 차창이 내려지며 그곳으로 박진철이 고개를 쑥 내밀었다.
“여기가 맞나?”
안미숙이 네비게이션을 보며 말한다.
“네비는 여기가 맞는데?”
박진철이 감탄하며 거대한 집을 올려다봤다.
“와. 여기는 뭔 집이 이렇게 크데?”
안미숙이 피식 웃었다.
“진우네 집이 이제는 그룹이잖아. 대기업이라고.”
대기업의 기준은 게이트 전 시대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자산 가치 5조 이상인 회사들은 대기업에 들어갔다.
보배그룹도 자산 가치가 5조 원을 훌쩍 넘겼다.
그들이 가진 몬스터 핵을 분류하는 기본적인 장비들만 해도 한 대당 수십억에 달했고, 핵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장비도 한 대당 수백억에 달했다.
더군다나 보배그룹의 자회사만 열 개가 넘는다. 거기서 나온 매출까지 더하면 5조 원을 훨씬 넘길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게이트 시대로 넘어오면서 돈의 가치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일반인들에게 5조란 큰 돈이지만 플레이어 시장에서는 큰 것이 아니었다. 게이트의 부산물의 가치가 워낙에 크기 때문에 게이트와 관련된 업체들은 어지간하면 대기업의 기준을 넘어섰다.
그래서 보배그룹도 대기업이긴 하지만 어디 가서 잘나가는 기업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저 강원도에서 잘나가는 기업, 딱 그 정도였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기준에서는 어마어마한 부자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박진철이 슬쩍 부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야. 예전 집도 컸는데. 이번에도 장난 아니네.”
“예전 집도 가 봤어?”
“어. 예전에 진우 미영이랑 헤어지고 지랄 발광을 몇 번 했거든. 그때 내가 몇 번 집에 데려다준 적이 있지.”
“어이구. 잘했네, 박진철.”
“그럼 그때 내가 아니었으면 진우 이 자식 접싯물에 코 박고 죽었을지도 몰라.”
“아무리 그래도 플레이어가 접싯물에 코 박고 죽겠냐.”
“말이 그렇다는 거지. 넌 매사에 이성적이야.”
“네가 너무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니 그렇지. 넌 길드장이면서 계속 그런 소리를 할 거야? 언제까지 그러고 살 거야?”
“또! 또 시작이야. 밖에 나오면 잔소리 안 하기로 했잖아.”
“어휴, 네가 잔소리를 안 하게 하든가!”
그러면서 괜히 서로 삐져서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그러자 안미숙이 말했다.
“알았어. 그만 좀 삐져.”
“됐어! 너랑 안 놀아.”
“어떻게 하면 풀 건데?”
박진철이 고개를 돌려 안미숙을 봤다.
“뽀뽀해 줘.”
“에이씨, 밖이잖아.”
“네가 먼저 뭐라고 했거든?”
“알았어. 알았어. 이리와.”
안미숙이 곧장 박진철의 뺨을 터프하게 양손으로 잡았다. 박진철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술을 쭉 내밀었다.
“으구, 진짜······.”
안미숙이 어쩔 수 없이 입술을 내밀어 쪽 해줬다.
그렇게 잠시 연인간의 분위기를 즐기려던 그때 밖에서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두 사람이 화들짝 놀랐다.
안미숙이 고개를 돌려보니 보조석 창문 쪽에 진우가 씨익 하고 웃으며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뭐야! 진우잖아!”
“그러게 저 자식 언제 나왔지?”
“문 잠가! 어서!”
“알았어.”
안미숙과 박진철이 호들갑을 떠는데 진우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에헤이. 다 봤는데 뭘 문을 잠그고 그래요.”
안미숙은 괜히 민망한지 박진철에게 화를 냈다.
“내가 그러게 뭐라고 그랬어? 밖에서는 조심하라고 했잖아!”
“진우가 볼 줄 알았냐고.”
“아이씨! 나 몰라!”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다니 뭘 어쩔 수 없는데?”
“그냥 벌칙이라고 하자!”
“벌칙? 그걸 믿겠냐?”
“진우 저 자식은 믿을 거야. 날 믿어!”
“어휴!”
계속해서 진우가 창문을 두드리니 박진철이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었다.
“둘이 뭐 하는데 문을 닫고 모른 척하고 그래요? 문 두드렸는데 반응도 없고······. 이거 뭐예요? 창문에 입김이 낀 것 같기도 하고······.”
“입김은 무슨 입김이야. 장난하지 말고! 그런데 너 언제 나왔냐?”
“언제 나오긴요. 형이 아까 출발한다면서요. 그때부터 시간 보고 도착했겠다 싶어서 나온 거죠.”
“야. 그럼 말을 하지. 자식이 사람 놀라게 하고 말이야.”
“왜 놀라요? 나 몰래 둘이 연애라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