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07. 휴가는 알차게 (1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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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너 지금까지 이진우 봤잖아.”
“아니거든.”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안창기가 나섰다.
“뭐뭐뭐? 이진우? 이진우라면 미영이 전남친?”
그러자 바로 박수혁이 발끈했다.
“형! 전남친 아니라니까요. 얘 남친은 나고! 쟤는 양다리······.”
“알았어. 미안하다. 뭘 그걸 가지고 그렇게 따져.”
박수혁은 그렇게 바득바득 우겼다.
하지만 이 바닥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김미영이 이진우를 먼저 만났고 박수혁이 두 사람 사이가 소원해진 틈을 파고들어 물질적인 것으로 꼬셨다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그 당시 김미영은 이진우와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고 했다.
박수혁은 그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정확하게는 남들에게 그렇게 얘기하고 싶었다.
명색이 페가수스 부길드장 씩이나 되어서 남자 친구 있는 여자를 뺏었다는 오명은 듣고 싶지 않았다.
안창기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슬쩍 말했다.
“그냥 나갈까?”
박수혁이 말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뭐하러 나가요. 우리가 뭐 죄 졌어요?”
“미영이는 괜찮겠어?”
“저도 뭐 상관없어요.”
김미영도 아무렇지 않은 듯이 말했다. 안창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여기서 먹자.”
그들은 그렇게 말 없는 식사가 이어졌다.
박수혁은 이진우 때문인지 고기를 먹다 말고 핸드폰을 힐끔거렸다.
반면에 김미영은 며칠 굶은 것처럼 고개를 푹 파묻은 채 먹기만 했다.
“미영아. 좀 더 시킬까?”
“네. 뭐······. 그러세요.”
“여기요. 고기 3인분만 더 주세요.”
“네!”
종업원이 말을 하고 박수혁이 김미영을 노려보며 말했다.
“야! 너 배 안 고프다며?”
“왜? 이제 내 입에 들어가는 것도 아깝니?”
“누가 그렇대!?
박수혁이 말을 하는데 김미영 너머로 이진우의 뒤통수가 보였다.
박수혁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런 줄 모르고 있던 김미영은 박수혁이 자신이 먹는 것 가지고 아깝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아. 내가 미쳤지. 미쳤어. 이 별 볼 일 없는 새끼와 4년 넘게 만났으니. 그냥 계속 진우를 만났다면······.’
김미영은 지나간 일을 후회하며 쌈을 싸서 입안에 집어넣었다.
마치 박수혁을 씹듯 아그적아그적 꼭꼭 씹어 삼켰다.
그러고 있는데 뒤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요?”
순간 김미영의 귀가 쫑긋 섰다. 그 목소리는 확실히 이진우의 목소리였다.
그렇다고 바로 고개를 돌릴 수는 없었다. 바로 코앞에서 박수혁이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김미영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식사를 계속했다.
진우가 등 뒤로 쓰윽 지나가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2~3분 정도 있다가 김미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
“잠깐 나 소화제 좀 사 올게요.”
“소화제?”
“네. 너무 급하게 먹었나? 속이 더부룩하네요.”
김미영이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안창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와.”
“네.”
김미영이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안창기가 박수혁에게 말했다.
“수혁아. 쟤 혹시 이진우 쫓아간 거 아니냐?”
“아, 형!”
“걱정되어서 하는 말 아니냐. 걱정되어서······. 그런데 너 미영이 너무 오래 만나는 거 아니야.”
“뭐가요?”
“미영이 만난 지 5년 다 되지 않았냐? 내가 아는 박수혁은 한 여자를 이렇게 오래 만난 적이 없는데.”
박수혁이 페가수스 길드에 들어온 지 7년째.
김미영을 만나기 전까지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여자를 갈아 치웠다.
그래서 새로 길드에 여자가 들어오면 안창기가 이런 말은 꼭 해줬다.
“스카우트 조심하고, 박수혁 조심하면 돼.”
스카우트야 당연히 다른 길드의 스카우트를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박수혁을 조심하라는 것은 그와 엮여서 좋을 것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랬는데 그런 박수혁이 김미영만 바라보고 있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박수혁도 자기 스스로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날 싸우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그런데 또 김미영과 떨어져 있으면 그녀가 그렇게 보고 싶었다.
도대체 무슨 매력이 있는지······.
이제는 박수혁 스스로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에이씨! 술이나 줘요.”
“어어, 그래.”
술을 바로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넣고 있는데 소화제 사러 나갔던 김미영이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 박수혁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창기가 말했다.
“미영이가 많이 늦다.”
그 소리에 박수혁이 말했다.
“형. 나 잠깐 나갔다 올게요.”
박수혁도 플레이어다 보니 그 소리를 들었다.
‘옆 건물이라고 했지?’
밖으로 나간 박수혁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얼마 가지 않아 저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우와 김미영의 목소리가 말이다.
“······어, 미련 있어.”
김미영이 방금 한 말이었다. 이 말이 박수혁을 환장하게 만들었다.
“뭐?”
“미련 있다고!”
그 소리를 들은 박수혁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시발! 뭐? 어쩌고 어째?”
박수혁이 지금까지 김미영에게 해다 바친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대원아이템에서 만든 고가의 아이템 중에 상당수, 또한 신형 아이템은 전부 김미영을 거쳤다.
또한 대원아이템에서 만들지 못하는 하이 퀄리티 제품도 아버지 몰래 몇 개 빼돌려 김미영에게 준 것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김미영에게 퍼 준 것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아마 시가로 따지면 100억은 넘을 터였다.
‘내가 그렇게 잘 해줬는데······. 미련? 방금 미련이 있다고? 저런 놈한테?’
박수혁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그대로 몸을 돌려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진우가 들어오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김미영이 약국 봉투를 들고 들어왔다.
“어? 진짜 약국에 다녀왔어?”
안창기가 물었다. 김미영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아까 소화가 안 된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말이야. 플레이어도 소화가 안 되는 경우가 있냐?”
“오빠. 그건 케이스 바이 케이스거든요.”
“아, 그래?”
“그리고 여자들은 그날도 있고 그래서 신체 컨디션이 그때마다 다르거든요.”
“그렇구나. 난 잘 모르지.”
“오빠가 그러니까 성 감수성이 떨어진다고 하는 거예요. 아, 진짜······.”
“미안하다. 그래서 내가 이렇듯 너 주려고 삼겹살을 노릇하게 구워놓지 않았냐.”
김미영이 박수혁을 힐끔 한번 바라보고는 삼겹살을 다시 입으로 가져갔다.
박수혁은 그런 김미영을 보며 속으로 이를 까득 깨물었다.
그렇게 먼저 식사를 마무리 한쪽은 강힘길드 쪽이었다.
세 사람이 나간 것을 보고 난 후 안창기도 입을 열었다.
“우리 슬슬 나가자.”
그들 세 사람도 밖으로 나왔다.
안창기가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이제 너희들 어디 갈 거냐?”
“어딜 가긴 어딜 가요. 집으로 가야죠.”
말을 하고는 김미영이 슬쩍 박수혁의 팔짱을 꼈다. 박수혁은 그 모습을 힐끔 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김미영은 박수혁과 헤어질 생각이었다. 그깟 몇천만 원이 아까워서 자신을 챙겨주지 않는 남자 친구는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진우를 만나 잠깐 얘기를 했는데, 흔들리는 눈빛이나 목소리를 들어봤을 때 자신에게 미련이 남아 있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지금은 밀어내지만 몇 번 더 흔들다 보면 자신에게 넘어올 것이 분명했다.
‘그전에 이 놈한테 거하게 뜯어 먹어야지.’
그런 속셈이어서일까?
김미영이 박수혁에게 살갑게 굴었다.
“집으로 갈 거지?”
김미영과 박수혁은 당연하게도 같은 집에 살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박수혁이 얻어다 준 김미영의 집에서 두 사람이 동거하다시피 하고 있다.
물론 박수혁은 따로 집이 있었다. 그래서 두 집을 오가는 중이지만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같이 지내곤 했다.
그런데 박수혁이 김미영의 팔을 빼면서 말했다.
“나 어디 갈 데 있어.”
“뭐라고?”
“못 들었어? 어디 갈 데 있다고.”
“진짜? 이대로 간다고?”
김미영은 모처럼 자신이 화를 풀며 다가가 줬는데 뿌리치는 박수혁이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박수혁은 김미영과 한가롭게 사랑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 금방 볼일 보고 따라갈 테니까 그런 줄 알고 있어.”
“됐어!”
김미영이 몸을 홱 돌리며 걸어갔다. 씩씩거리며 가는 김미영을 보며 안창기가 말했다.
“야, 인마. 기껏 분위기 좋았는데 왜 그래?”
“형. 가서 미영이 좀 달래줘요.”
“내가 진짜······. 너희들 때문에 미친다. 미영아! 미영아 같이 가.”
안창기가 멀어지는 김미영에게 뛰어갔다. 그런 김미영을 보던 박수혁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진우 이 새끼가······. 감히 남의 여자를 넘봐? 너 이 새끼 뒤졌어.”
박수혁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몸을 홱 돌렸다. 그런 다음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얼마 전 길드를 나간 최성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형. 무슨 일인데요.
“너, 어디야?”
-할 것 없어서 여기 PC방 왔는데요.
“어디 피씨방?”
-강힘 길드 근처요.
“그래? 혼자 있어?”
-아뇨. 태성이랑 진태하고 같이 있는데요.
“너희 알바 좀 해라.”
박수혁의 알바란 말에 최성호가 씨익 웃었다.
-완전 땡큐죠. 어디로 갑니까?
“여기 강힘길드 근처 삼겹살집.”
-어? 바로 근처에 있네요. 1분도 안 걸릴 겁니다.
“알았다.
핸드폰을 끊고 진짜 1분도 되지 않아서 세 사람이 도착을 했다.
박수혁은 세 사람에게 말했다.
“예전에 미영이 쫓아다녔던 새끼 있다는 거 알지?”
“네? 누구······.”
두 사람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기억력이 좋은 최성호가 바로 말했다.
“아아, 누군지 알겠다. 걔 말하는 거죠. 걔!”
“그래. 그 녀석.”
“그런데 그 녀석이 왜요?”
“오늘 삼겹살집에서 그 새끼 만났다.”
“와, 또 어떻게 여기서 만난데?”
“아무튼 오늘 나 기분 열라 좋지 않거든. 오늘 그 녀석을 좀 밟아야겠거든. 너희들이 힘 좀 써라.”
박수혁의 말에 최성호와 다른 애들이 별생각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제대로 조져 놓을게요. 우리만 믿으세요.”
“그래! 저쪽으로 갔으니까. 빨리 따라와.”
박수혁을 따라서 세 사람이 움직였다.
진우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진우가 마치 사색이 잠긴 듯이 워낙에 느릿하게 걸어갔기 때문이다.
“형! 저 새끼 아니에요? 저 새끼!”
“어디?”
“저기 말입니다. 저기!”
최성호가 가리킨 방향으로 진우가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맞네!”
박수혁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저 새끼 멀리 못 갔네.”
“형, 저 새끼 처리하면 되는 거죠?”
“맞아!”
“저희만 믿어요.”
최성호와 김태성이랑 강진태가 좀 더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김태성이 슬쩍 물었다.
“그런데 성호야. 저 자식 걔 아니냐.”
“뭐?”
“그레이 게이트!”
“맞아!”
“그런데 우리가 돼?”
최성호가 바로 말했다.
“야, 븅신아! 실력이 있어서 나온 것이 아니라 동료들 다 죽고 나니까 문 열려서 나온 거래.”
“아, 진짜? 완전 개 쓰레기네.”
“군인만 아니었다면 다른 길드에서 척살령 내렸을 거야. 저런 새끼는 플레이어도 아냐. 그냥 쓰레기지. 플레이어라고 할 자격도 없는 새끼야.”
“솔직히 수혁이 형 부탁만 아니었다면 내 눈에 띄면 밟아 버리려고 했거든? 수혁이 형이 용돈까지 준다고 하니 어디 한번 해보자.”
그렇게 중얼거린 세 사람이 걸어갔다. 그런데 앞서 걸어가던 진우가 갑자기 방향을 홱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