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 06. 그냥은 못 넘어가지 (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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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런 잡일은 밑의 병사들이나 자신들의 몫이었다. 계급이 좀 높다고 생각하는 군인들은 손에 물 한 방울 묻힐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게이트 안에서조차 어지간하면 나서지 않는다. 자신은 통솔을 해야 한다는 핑계로 말이다.
그런데 진우는 솔선수범해서 혼자 다 쓸어버렸다. 또 업무분담에 있어서 누구 하나 편애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각자 맡은 역할에 맡게 분배를 했다.
유지태 중위는 워낙에 통솔력이 좋아서 병사들을 맡겼고, 김슬기 대위는 예전부터 교육장교로서 일해 왔기에 사무업무에 강했다.
반면 안유정 중위는 다소 소심한 성격이라 통솔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사무를 잘 보는 것도 아니었다. 이도 저도 아닌 처지라 어쩔 수 없이 몸으로 때워야 하는데 그것도 혼자 하기 좀 심심할까 봐 같이 도와주고 말이다.
안유정 중위가 진우를 빤히 바라봤다.
‘와, 진짜······. 우리 부부대장님 같은 남자 어디 없나? 그리고 보면 볼수록 참 잘생기셨다.’
금사빠 안유정 중위가 이번에는 진우에게 빠져들었다.
진우와 안유정 중위는 몬스터 핵이 담긴 마대 자루를 들고 군수과 창고로 향했다.
때마침 게이트 군수과 창고 앞에는 행정보급관 김태만 상사 서 있었다.
“어이구 행보관님. 미리 나와 계셨습니다.”
“충성충성. 뭡니까. 미리 연락한 사람이 누군데요.”
쿵!
몬스터 핵이 든 마대 자루를 내려놨다. 그것을 본 김태만 상사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아이고 이게 다 뭡니까?”
“우리 행보관님이 그렇게 사랑하시는 몬스터 핵입니다.”
“이야······. 그런데 이거 막 뒤끝 있고 뭐 그런 거 아닙니까?”
김태만 상사가 바로 의심의 눈초리로 바뀌며 말했다. 가끔 김태만 상사를 골려먹겠다고 핵 같지도 않은 쓰레기들까지 잔뜩 주워오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그러자 진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에헤이. 우리 행보관님 장사 한두 번 하시나. 핵만 잘 골라서 가져왔습니다.”
“진짜죠?”
“속고만 사셨나.”
“부부대장님 복귀하기 전에 하도 속아서 말이죠.”
김태만 상사가 주섬주섬 몬스터 핵이 든 마대 자루를 열어 확인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진우가 히죽 웃었다.
“저하고 하루 이틀 장사하시는 것도 아니면서 참.”
“역시 부부대장님 일처리는 깔끔하네요. 그런데 몬스터 핵 전부 다······.”
김태만 상사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어 진우를 봤다.
“알고 보니 B등급 게이트였습니다.”
“네에? C등급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도 그런 줄 알았죠. 말도 마십시오. 뭔 놈의 일을 이따위로 하는지······. C등급이라고 인원 뭐 같이 배치해 놓고 들어가 보니 B등급이었습니다.”
“이야. 이걸 그냥 참으면 안 되죠. 들이받아 버리죠, 그냥 참았습니까?”
“마음 같아서는 저도 그러고야 싶죠. 그런데 복귀한 지 또 얼마나 되었다고 사고를 치겠습니까. 게다가 이제는 각성부대 부부대장인데······. 참아야죠.”
“이런, 이런 우리 부부대장님의 하해와 같은 넓은 마음씨에 저는 탄복했습니다.”
“크으, 제가 좀 마음이 넓죠.”
그런 두 사람의 티키타카를 보며 안유정 중위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부부대장님께서 오시고 난 후 이제 좀 부대에 숨통이 트이는 것 같습니다.”
“그전에는 완전 지옥이었습니까?”
“지옥? 말도 마십시오. 몬스터 핵요? 꿈도 못 꿨습니다. 어디서 요상한 것들만 가져와서는······.”
김태만 상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김태만 상사를 달래듯 진우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앞으로 잘 해 드릴 테니까 걱정 마시고 어서 확인해 보세요.”
“네에.”
대답은 했지만 솔직히 김태만 상사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
진우가 B등급 게이트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고 했지만 시간 상으로 보아 C등급에 가까울 거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가져 온 몬스터 핵의 상태도 좋지 않을 터.
C등급 D등급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제일 처음 손에 든 것을 확인한 김태만 상사는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허걱, 이건······.”
옆에 있던 진우가 슬쩍 말했다.
“어떻게······ 쓸 만하십니까?”
“이건 쓸 만한 정도가 아니죠.”
김태만 상사가 손에 든 몬스터 핵은 바로 여왕개미의 핵이었다. 진우가 막판에 공포를 심어 넣고 처리해서 그런지 몰라도 몬스터 핵이 상당히 순도가 좋았다.
같은 B등급의 몬스터 핵이라고 해도 품질에 따라 그 색이 미묘하게 다르다. B등급의 핵은 오렌지빛을 띠는데 그 색이 진하면 진할수록 순도가 높은 것이었다.
그래서 같은 등급이라고 해도 상급, 중급, 하급으로 나뉜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 최상급도 존재한다.
현재 김태만 상사가 들고 있는 몬스터 핵은 상급에 속해 있었다. 거기다가 순도도 충분히 가득 차 있었다. 김태만 상사는 요리보고 저리 보며 감탄을 했다.
“이야······. 부부대장님 이거 잘하면 우리 각성부대 한 해 예산 나오겠습니다.”
“그 정도입니까?”
“네. 이건 아마 재벌가에 팔아야 할 것 같습니다.”
“에이. 무슨 B등급 가지고 그러신다.”
“아닙니다. 이거 장난 아닙니다.”
“그래요?”
호들갑을 떠는 김태만 상사를 보며 진우가 씨익 웃었다. 그러자 김태만 상사가 그런 진우를 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이거 적당히 떼서 드리겠습니다.”
“그런 거 아닙니다.”
“에헤이. 왜 그러실까. 솔직히 우리 부부대장님께서 고생을 하셨는데 제대로 대가는 치러야죠.”
“그거 어차피 1/3은 저희 공략대 몫 아닙니까.”
“솔직히 이거 1/3만 받기는 그렇죠.”
원래 게이트에 들어가서 클리어하면 거기서 나온 부산물 1/3은 가공처리 및 관리비, 세금으로 들어간다. 또 다른 1/3은 군 예산으로 편성되고 남아 있는 것은 공략대에게 주어진다.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핵일 때의 이야기였다.
“딱 보니까 이거 보스몬스터 핵 아닙니까?”
“우리 행보관님 눈썰미 좋으시네. 맞습니다.”
보통 보스몬스터 핵은 관례상 잡은 사람이 가져가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중간에 따로 챙겨 보관했어야 했는데 진우가 귀찮은 마음에 이걸 다른 핵들과 섞어 놓았다고 여겼다.
김태만 상사는 진우가 내심 아까워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진우는 김태만 상사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다른 생각을 했다.
‘저게 우리 각성부대 1년 예산쯤 되면······. 이건 얼마쯤 되는 거지?’
진우가 의식적으로 자신의 가슴 쪽을 쓸었다. 그 외투 안에는 진정한 어둠의 여왕개미의 핵이 들어 있었다.
‘S급이면 어마어마하겠지.’
다만 아쉬운 점은 S급이지만 순도는 조금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급이 높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충분히 높아질 것만 같았다.
김태만 상사는 계속해서 몬스터 핵이 든 마대 자루를 뒤졌다. 주먹만 한 B등급 몬스터 핵이 계속해서 나왔다.
“아, 아니······. 도대체 뭘 잡으신 거니까.”
“B등급 개미굴이었습니다.”
“개미굴이요?”
“네. 이거 다 잡느라 죽는 줄 알았습니다.”
안유정 중위가 갑자기 끼어들며 말했다. 그 말에 진우가 피식 웃었다.
차에 타기 전.
진우가 병사들을 모아놓고 했던 말이 있었다.
“애들아, 오늘 우리는 다 함께 고생한 것이다. 누구 하나 고생해서 잡은 것이 아니라. 그렇지?”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난 앞으로 이런 게이트가 발생할 시 우선적으로 여기 있는 너희들을 선발할 거야. 너희들 생각은 어때?”
진우의 말에 병사들이 일제히 서로를 바라봤다. 그러자 맨 앞에 있는 최민철 병장이 힘차게 대답했다.
“당연히 저희는 좋습니다. 안 그러냐?”
“네. 맞습니다.”
“저희는 좋지 말입니다.”
진우가 피식 웃었다.
“좋아. 누가 이상한 얘기를 하더라도 항상 너희의 공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또한 다 같이 고생한 것을 잊지 말고 강조하기 바란다. 알았나?”
“네. 알겠습니다.”
진우는 특별히 거짓말하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다만 병사들의 공을 과장하라고 주문했다.
그 말인즉 진우 혼자 싹 다 쓸어버렸다고 말을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병사들 입장에서도 나쁠 건 없었다. 매번 장교들에게 공을 돌리는 게 내키지 않았는데 오히려 진우가 그리 말해도 된다고 얘기해 주니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얘기를 들은 안유정 중위가 먼저 선수를 친 것이었다.
“어휴, 진짜 고생 많으시겠습니다.”
김태만 상사가 물었다. 안유정 중위가 바로 자세를 바로하며 말했다.
“당연하죠. 제가 활로 쏵쏵쏵! 하면 그냥 몬스터들이 쓰러졌습니다.”
“그렇습니까?”
“진짭니다. 행보관님. 우리 안 중사 안 주몽이었습니다.”
“안 주몽? 주몽? 활 잘 쏜다는 그 주몽?”
“네.”
“어이구. 안 중위님 예전에 활 잘 쏜다는 얘기는 얼핏 들은 것 같은데 정말이었나 봅니다.”
“아닙니다. 물론 저도 고생은 했지만 유 중위님이나 김 대위님도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요. 다 같이 고생을 하셨네요.”
김태만 상사가 피식 웃었다. 전공을 서로 나누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김태만 상사가 피식 웃었다. 전공을 서로 나누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게다가 마대 자루 속에 쌓인 핵도 김태만 상사를 흐뭇하게 만들었다.
“내가 진짜 각성부대 행보관 생활을 하면서 쓰레기들만 봐 왔는데 이렇게 도드라지는 것은 처음이네.”
“에이. 너무 좋아하지 마십시오. 밑으로 내려가면 별 볼 일 없는 핵들이 많습니다.”
진우의 말처럼 밑에 깔린 몬스터 핵들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앞서 나온 몬스터 핵들이 상급이었기에 상대적으로 그렇단 것이고, 나머지 몬스터 핵의 등급도 거의 다 중급 이상이었다.
그것만 해도 가치가 상당했다.
“이야. 이거 다 C등급이네. 이 정도면 진짜 당분간 우리 각성 부대 보급 빵빵하게 하겠습니다.”
“아, 그래서 말씀드리는데 앞으로 게이트에 들어가는 공략대들은 행보관님이 제대로 챙겨 줘야 합니다. 이번에 들어갔는데 보조 장치 상태도 별로 좋지 않고 그러더라고요.”
“어이구. 그러면 안 되는 거죠.”
“그러니까요. 이번 기회에 보조 장치 기계들 싹 바꾸죠. 이렇게 돈 벌어 왔지 왔습니까. 목숨 걸고 말이죠. 아, 물론 우리가 번 돈 우리만 써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시잖아요. 우리는 게이트에서 여차하면······.”
“알죠. 알죠. 당연히 알죠.”
임백호 상사는 김태만 상사와 절친이었다. 게이트 보급의 중요성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깨닫고 있었다.
얘기 듣기로는 블랙 게이트가 그레이 게이트로 변하던 날 김태만 상사는 처음으로 무단결근을 했다고 한다. 임백호 상사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 이후로도 거의 한 달 동안 일은 하지 않고 그레이 게이트 쪽에서 임백호 상사가 나오길 기다리다가 징계를 받고 진급 역시 날아갔었다.
그나마 각성부대 행정보급관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 김태만 상사가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아픔을 겪은 김태만 상사이다 보니 보급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