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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숨긴 귀환자-8화 (8/177)

〈 8화 〉 01. 귀환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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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급은 당연할 거라 여기고 일찍 송별회까지 마쳤던 김승철 소장은 그대로 붕 떠버렸다.

너무나 억울한 김승철 소장은 이대로 옷을 벗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전역을 거부했고 결국 강원도 제11보병사단으로 내려오게 된 것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어쩔 수 없이 평화회도 강철회의 독주를 막기 위해 부국회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이번 강원도 블랙 게이트에 대한 처리 권한이 11보병사단에서 부국회 쪽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었다.

물론 부국회도 할 말은 있었다.

애당초 제11보병사단은 부국회의 지분이었다.

전 사단장인 박용기 소장도 부국회 사람이었다.

차기 사단장도 본래 부국회 사람이 내려오기로 했었는데 김승철 소장의 자리가 필요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양보를 하게 된 것이다.

부국회 입장에서는 사단장 자리까지 내줬는데 제11보병사단에서 생긴 블랙게이트 처리를 평화회에서 나서서 처리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는 노릇.

그 결과 김승철 소장을 배제한 채 블랙 게이트에 대한 탐사가 진행됐다.

그것이 바로 1년 전 일이었다.

그런데 각성병사들이 블랙 게이트로 들어가고 6개월이 흐른 후 블랙 게이트가 그레이 게이트로 바뀌는 참사가 일어났다. 무려 천 명의 각성병사들을 던전 안으로 밀어 넣었는데 내부에서 문제가 생겨서 던전 자체가 출입이 차단되어버린 것이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그레이 게이트가 수백 개에 달하지만 그레이 게이트 안에서 플레이어가 살아 나오는 경우는 손에 꼽혔다.

그 마저도 특별한 탈출코드를 획득한 덕분이지 그레이 게이트로 변한 던전이 다시 활성화된 건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 군에서도 그레이 게이트 주변을 적당히 통제만 할 뿐 따로 신경은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레이 게이트로 변한 던전은 안에서도 못나오고 밖에서도 못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김승철 소장도 그냥 이대로 묻어 두면 될 것이라 생각 했다. 블랙 게이트 안으로 들어간 천 명의 병사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과 군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난데없이 국회에서 청문회에 출석하라는 통지서가 날아왔다.

“어처구니가 없군.”

김승철 소장은 화가 났다.

솔직히 자기가 잘못한 것이 있어야 청문회를 나가지.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갑자기 모든 것을 다 뒤집어쓰고 아무것도 모르는 국회의원 앞에서 욕먹을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순순히 양보하는 것이 아니었어.”

출석 요구서를 받고 김승철 소장은 평화회를 이끄는 조영일 육군참모총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이 이렇게 되었는데 평화회에서 막아줘야 하지 않습니까.”

김승철 소장이 따지자 조영일 육군참모총장이 한 숨을 쉬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가 없어. 천 명이나 되는 각성 병사들을 동원했잖아. 조용히 덮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그럼 담당자들을 출석시키면 되는 일 아닙니까?”

-이 친구야. 그레이 게이트가 전국적으로 보도됐는데 누군가가 나서서 이 일에 대해서 최소한 소명을 해야 할 거 아냐? 그렇다고 실무진들을 출석하면 국회의원들이 좋아 하겠어? 그렇지 않아도 군을 제 발밑에 두려고 안달인 인간들인데 빌미를 제공해봐야 좋을 게 없잖아.

“하아······.”

-그러니까 번거롭더라도 이번 한 번만 자네가 나서주게. 그리만 해 주면 나중에 다시 진급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겠네.

솔직히 말해서 진짜로 중장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김승철 소장도 눈 딱 감고 국회에 출석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 봐도 향후 2년 안에 중장이 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그 전에 지금 앉아 있는 사단장 자리에서 방을 빼야 할지 몰랐다.

김승철 소장으로서는 내심 배신감이 치밀 수밖에 없었다.

“이건 아니야, 이건. 고작 이런 일을 뒤집어쓰려고 여태껏 버틴 것이 아니야.”

김승철 소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솔직히 군인으로서 대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쓰리 스타인 중장까지는 올라가고 싶었다. 그리고 진급심사 전 강철회가 제 식구를 챙기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금 쯤 중장을 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김승철 소장은 이대로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강원도에 어떤 마음으로 왔는데.

철저하게 배제된 블랙 게이트 사건까지 뒤집어 쓸 이유가 없었다.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해. 대책을······.”

김승철 소장이 방법을 생각하기 위해 고심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순간 김승철 소장이 고개를 돌렸다. 지금 이 시간에 자신을 찾아 올 인물은 없었다.

“누구야?”

그때 천천히 문이 열렸다. 그런데 문만 열릴 뿐이지 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 뭐야!”

김승철 소장이 깜짝 놀랐다. 그리곤 다급히 허리에 꽂아 둔 총을 꺼내 문 쪽으로 겨눴다.

김승철 소장은 강원도 전체를 관리하는 사단장이지만 그는 플레이어는 아니었다. 그저 일반군인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휴대한 가장 강력한 무기를 꺼내 든 것이었다.

그때 한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단장님 실탄은 장전하였습니까?”

김승철 소장은 눈동자가 흔들리며 총구를 이리저리 휙휙 돌렸다.

“누구야, 모습을 드러내!”

“아, 제 모습이 안보이십니까? 잠깐만 기다려 보십시오. 아이씨, 이거 어떻게 해제하는 거지? 해제? 해지?”

그 순간 책상 너머로 진우의 모습이 드러났다.

김승철 소장의 총구가 바로 진우에게 향했다. 그는 총을 겨눈 상태로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너 뭐야? 어떻게 여길 들어왔지?”

김승철 소장이 날선 목소리로 추궁했다. 그러자 진우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사단장님. 죄송한데 그 총은 좀 치우주시죠.”

“뭐?”

“그리고 저 모르십니까?”

“이 새끼가!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들어 와?”

“으음, 저에게 이러시면 곤란하실 텐데요.”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김승철 소장은 더욱 강하게 말했다. 이에 진우는 가볍게 한 숨을 내쉬었다.

“저 이진우 대위입니다.”

“뭐?”

“이진우 대위라고 말입니다. 일 년 전 블랙게이트에 천 명의 병력을 데리고 들어갔던······.”

순간 김승철 소장의 눈이 치켜떠졌다. 설마하니 블랙게이트에서 누군가 살아 돌아왔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저, 정말 자네가 이 대위라고?”

“그렇습니다. 사단장님.”

“그 말을 내가 어떻게 믿지?”

잠시 흔들렸던 김승철 소장이 두 눈에 힘을 주었다.

덩달에 총을 쥔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그러자 진우가 보란듯이 자신의 목에 걸치고 있던 군번줄을 꺼냈다.

“이걸 확인하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모든 병사들은 피아식별을 위해 군번줄을 소지해야 했다. 세상이 달라지긴 했지만 군번줄은 유사시에 병사들의 신분을 확인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진우가 군번줄을 건네주기 위해 다가가자 김승철 소장이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가까이 오지 마!”

진우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곤 피식 웃으며 자신에게 향한 총을 가리켰다.

“사단장님. 그 총 탄창 안 끼웠지 않습니까.”

“······.”

김승철 소장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진우의 말처럼 급하게 총을 빼드느라 탄창을 끼우지 못했지만 현재 자신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었다.

“아무튼 가까이 오지 말고, 거기서 던져.”

진우는 김승철 소장의 지시대로 군번줄을 책상 위로 던졌다.

타다닥.

군번줄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김승철 소장의 앞으로 굴러왔다.

군번줄에 있는 군인 인식표에는 마이크로칩이 탑재되어 있었다. 그것으로 모니터에 군인 인식표를 인식 시키면 바로 화면에 신분이 출력되었다.

게다가 위조 자체도 불가능하게 되어 있었다.

김승철 소장은 군번줄을 조심스럽게 들어서 테이블 한 쪽에 놔둔 인식기에 가져다댔다.

삐빅.

화면 위로 이진우 대위의 증명사진과 간단한 인적사항이 떠올랐다.

그런데 문제는 이진우 사진에 대각석으로 그려진 붉은 색으로 된 두 줄이었다.

그 표시는 이미 죽었다는 사망 표시였다.

하지만 군인 인식표는 확실하게 이진우 대위 것이었다.

“이게 어떻게······.”

김승철 소장이 놀란 눈으로 진우를 바라봤다.

그리고 진우는 어이없다는 눈으로 모니터에 떠오른 자신의 사진을 바라봤다.

“헐, 너무하네. 사람이 이렇듯 버젓하게 살아 있는데 사망처리 해 버리다니.”

그 소리에 김승철 소장이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어느 새 다가온 진우의 모습에 당황한 것도 있지만 살아 있는 사람을 사망자로 만든 것도 문제가 있었다.

“어, 이건 그러니까······.”

“아, 뭐. 저도 얘기는 들었습니다. 저희가 들어가고 그레이게이트로 변경되었다고 말입니다.”

진우가 이해한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김승철 소장은 블랙 게이트에 들어갔던 진우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네 그것을 어떻게 알았나?”

“게이트 밖으로 나왔는데 게이트 헌병대가 없어서 말입니다. 길을 찾다 보니 주택가로 접어들었지 뭡니까. 그래서 이왕 나온 김에 뭔가 싶어서 개인적으로 조사를 좀 해 봤습니다.”

진우가 최대한 그럴싸하게 말했지만 김승철 소장은 군인답게 그 변명의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바로 부대에 복귀하지 않고 조사를 했다?”

“네.”

“다시 말해 자네가 탈영을 했다는 얘기인가?”

“사단장님 지금 이 와중에 그런 것을 따집니까?”

“뭐?”

“그럼 저도 일일이 하나하나 다 따져볼까요? 이러다 제 입에서 뭐가 나올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살짝 큰소리를 치려 했던 김승철 소장이 다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진우가 나타나기 전까지 김승철 소장의 최대 고민 거리는 청문회였다. 그곳에 나가면 국회의원에게 작은 꼬투리 하나까지 물어뜯길 것이 뻔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 끔찍한 일이 생겨 버렸다.

만에 하나 진우의 입에서 좋지 않은 얘기가 흘러 나온다면?

그 때는 자신은 물론이고 블랙 게이트 건과 관련된 주요 인사들이 줄줄이 옷을 벗게 될지 몰랐다.

김승철 소장의 머릿속으로 빠르게 자신의 미래가 그려졌다.

‘이건 막아야 해. 절대 그리 될 수는 없어.’

김승철 소장이 진우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이 대위.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으니까, 진정하게.”

“사단장님. 이런 얘기 건방지게 들리시겠지만 지금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습니다. 저희가 던전 안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죽은 사람 취급을 하시고 말입니다. 그레이 게이트로 바뀐 후로 제대로 관리도 안한 거 같은데 저희가 나라를 위해서 고생한 대가가 이거란 말입니까?”

“이보게 이 대위. 그것이 아니라······.”

“사단장님. 모르셨다는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사단장님은 이 사단의 최고 책임자입니다. 이 모든 일을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진우의 질책에 김승철 소장은 말문이 막혔다.

솔직히 블랙 게이트 관련해서는 자신이 아니라 작전참모인 이준식 대령이 모두 관리하고 있었다. 각성 병사를 천 명이나 투입하는 것도 추후에 통보를 받은 게 전부였다.

물론 결재사인은 자신이 한 게 맞지만 이준식 대령이 소속된 부국회에서 모든 일을 처리하려고 했기에 김승철 소장은 아예 손을 떼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진우의 질책을 부정할 수도 없었다. 어쨌거나 사단에서 벌어지는 모든 책임은 사단장인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와 모른다고 하는 것은 핑계로 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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