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각오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
샐리 누나가 내게 갑작스럽게 던진 한마디였다.
갑자기 뜬금없이 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그것도 치료의 왕발에게 데려다 주는 과정에 말이다.
그렇다면 당연하게도 저 '각오'라는 건 분명 치료의 왕발과 관련된......?
"조금 특이하셔."
"......."
샐리 누나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 치료하는 데 발 냄새를 쓰는데 정상인일 리는 없다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누나의 저 조금이라는 말은 별로 충격적이지 않다.
단지.......
"진짜 조금?"
"......."
"누나, 진짜 조금이에요? 조금? 조금 특이?"
"......."
조금만 특이하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 질문에 샐리 누나는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난 그 침묵으로 알 것만 같았다. 진실을!
"오, 샐리 왔느냐?!"
"왕발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
난 샐리 누나의 안내로 한참을 헤맬 뻔한 치료의 왕발 님을 손쉽게 찾았다.
아, 손쉽게 찾은 부분까지는 정말 좋다.
완전 기분 최고다.
하지만 첫인상은 지랄 아니, 우울하다.
덥수룩한 수염으로 뒤덮인 40대 초반의 아저씨, 선해 보이는 인상이 좋아 보이는 아저씨다.
그런데 문제는 얼굴까지만 괜찮았다.
무슨 말인고 하면, 하얀 러닝에 분홍색 미니스커트를 입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패션 감각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위에는 아저씨 얼굴, 상의는 러닝셔츠, 하의는 여자들이 입는 분홍색의 미니스커트라는 것이다.
아, 추가로 말하면 하이힐도 신고 계신다.
그것도 빨간 하이힐!
"근데 저분들은 누구냐?"
"아, 아저씨 소개할게요. 아저씨의 도움이 필요해서 온 분들이에요."
그때 아저씨가 멀뚱히 서 있는 우리를 향해 누구냐고 묻고, 샐리 누나는 친절하게 우리를 소개시켜 주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하하하."
한편 난 누나의 소개가 끝나자마자 다급히 인사를 건넨다.
일단은 저분이 우리의 생명 줄이다. 잘 보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마일이 필수다.
그런 나를 본 그 치료의 왕발 아저씨는 잠시 후 말했다.
"하하하. 나의 치료가 필요해서 온 건가?! 그렇다면 당연히 도움을 줘야지!"
"......!"
아주 흔쾌히 치료를 해 주겠다고 말한다.
헉! 난 아주 이상한 아저씨인 줄 알았는데, 이상한 패션을 제외하고는 정말 좋은 아저씨였다.
이렇게도 손쉽게 치료를 해 준다고 오히려 말해 주다니,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모든 걸 파악하는 게 아니었어!
"물론 그분도 흔쾌히 허락해 줄 테지만, 일단은 물어봐야 되니 잠시만 기다려 주게."
"......."
에? 그분이라니? 여기 저분 말고도 다른 분이 있는 건가?
내 눈에는 안 보이는데.
스윽.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그분이 빨간 오른쪽 하이힐을 벗었다.
저기, 갑작스럽게 왜 하이힐을 벗는......?
아니, 그보다 진짜 왕발이었구나.
남자가 하이힐을 신었다는 생각에 자세히 안 봐서 그랬는데, 지금 보니 정말 크다.
하이힐도 보통 하이힐이 아니라 특수 제작된 왕발 전용 하이힐이다.
참,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저분의 이상행동이 중요하다.
누군가에게 물어본다고 하더니, 갑자기 하이힐을 벗는 건 왜일까?
"왕발 님."
"......."
"......."
"......."
"......."
갑자기 아저씨는 우리에게 충격적인 영상(?)을 보여 주었다.
얼마나 충격적이었으면 모든 일행들이 그대로 서서 마네킹이 되어 버렸다.
자신의 왕발과 대화하는 치료의 왕발 님을 보고.......
이건 도대체 뭔 의미일까?
아, 그때 내 머리를 강타하는 한 가지 생각! 새로운 개그구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4차원 개그인 것이다.
근데 여기서 모두 호응 안 해 주면 저분도 엄청 무안할 테니, 나라도 개그에 반응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어디서 웃어야 하나?
발에게 말을 거는 장면? 지금 대화를 하는 장면? 아니면 대화가 끝나는 장면?
어느 장면을 골라서 웃어 줘야 하는 거냐!
"왕발 님이 오늘은 피곤하다고 하는군. 내일 치료를 해 주겠네."
"......."
내가 어느 장면에서 웃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이, 이미 모든 개그가(?) 끝나 버렸다.
악! 나라도 웃어 줘야 하건만 도무지 어느 부분에서 웃어야 되는지를.......
"좀 특이하시지?"
"......."
바로 그 순간 샐리 누나는 어느새 내게 다가와 조금 특이하지 않느냐고 얘기했다.
그리고 난 그 말에 깨달았다. 방금 전 그 행동은 개그가 아니라고.
그러니 샐리 누나 기준으로 단지 조금 특이한 모습일 뿐이었다. 발과 대화하는 장면이.......
두렵다, 내일의 치료가.
나 평생 살면서 나 치료해 준다는데 이렇게 두렵기는 처음이다.
저분, 제정신이 아니야! 그것도 발과 대화를 할 정도로 미쳐 있다?!
내가 보기에는 저분이 오히려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이거, 내일 치료 받기 전에 왕발에게 읽어야 할 기도문(?)이야."
"기도문?"
"응."
"......."
그때 샐리 누나가 혼란스러워하던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누나는 갑자기 종이 한 장을 내게 건네면서 내일 치료를 받기 전 왕발에게 올릴 기도문이라고 했다.
신도 아니고 왕발에게.......
"진짜 치료가 잘되기는 하는 거야?!"
한편 케찹이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다급하게 와서 묻는다.
그렇지만 대답을 해 줄 입장은 아니다.
나도 모르거든.
하지만 지금까지 저 왕발의 치료 능력은 100%라고 모든 사람이 말하니, 믿어 볼 수밖에.
난 그런 생각과 함께 누나가 건네준 기도문이 적힌 종이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아무런 생각 없이 그 기도문을 보았다.
그런데 그 기도문을 보고 난 딱 한 가지가 마구 느껴진다.
아니, 나뿐만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이런 게 느껴질 것이다.
'치료해 줄 마음이 없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이따위 주문을 외우라고 할 수 없다.
그것도 왕발한테.
아, 전설의 왕발 님은 멋져. 너무나도 멋져.
뿅뿅뿅(?).
그대의 발 냄새는 천상의 향기, 그리고 그걸 맡은 난 너무 행복한 존재라네.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깜찍하고, 터프하고, 아름다운 왕발 님, 제게 치료의 빛을 주소서.
"......."
지금 위에 뜨는 문구는 왕발한테 치료 받기 전에 읊어야 하는 기도문이다.
지금 왕발한테 치료 받는 것도 미치겠는데, 이제는 저딴 기도문까지 읽고 치료를 받으라고?!
차라리 그냥 쿨하게 블랙 페리안에게 먹히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서 블랙 페리안에게 먹히는 게 낫다고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곧 죽어도 그놈한테 먹힐 바에는 왕발 님에게 치료 받는 게 낫다.
그런데 진짜 장난 아니고, 그 기도문 꼭 읽어야 하는 거야?!
그냥 이번만 생략을.......
"경건한 마음으로 읽어야 해. 그래야지 치료가 돼."
"......."
하지만 이런 내 마음도 모르고 누나는 아예 쐐기를 박아 버렸다.
진짜 말이 안 되잖아!
발에게 기도문을, 그것도 경건한 마음으로 읽다니!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솔직하게 말해서 그 발을 보면 경건함이 넘치던 사람들도 사라지겠는데, 이건.......
아악! 정말 난 그 왕발에 경건한 마음으로 저 주문을 외우고 발 냄새로 치료를 받는 건 할 수 없다. 진짜!
"아!"
그때였다.
갑자기 내 머리에서 뭔가 번쩍하고 지나갔다.
분명 누나는 기도문을 외운다고 했다.
그리고 보통 기도문은 한 명만 대표로 나서서 읽는 게 아니었던가? 내가 알기로는 그런데?
난 그런 생각이 들자, 당장 샐리 누나를 향해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그 기도문, 누가 대표로 한 명만 읽으면 되는 거야?!"
"응, 한 명만."
"......!"
내 생각이 맞았다.
그래! 모두 읽을 필요는 없다. 단지 대표로 나서서 한 명만 읽으면 된다.
그렇다면 당연하게도 난 죽어도 안 한다.
그렇다면 남는 건 케찹이와 사렌이다.
하지만 사렌은 여자이기에 그런 저질 주문을 외우게 하는 건 정말 큰 실례다.
그렇다면 남는 건?
"케찹이!"
"난 안 해!"
"......."
"죽어도 안 해, 이 씹뽕구!"
그때 내가 말하기도 전에 케찹이가 내 의중을 파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 자식, 역시 자신이 위험(?)할 때는 눈치도 재빠르다.
하지만 그래 봤자 저런 미친 기도문은 난 절대 안 읽는다.
그리고 사렌도 안 되니, 너밖에 없단 말이다.
"제가 읽을게요."
"헉! 사렌?!"
"......."
그때 나와 케찹이가 저질 기도문을 놔두고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고 사렌이 자신이 읽겠다고 말했다.
말도 안 돼! 그런 미친 저질 기도문을 여자의 입으로 읽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것도 경건한 마음으로 말이다.
물론 이건 나뿐만 아니라 케찹이도 반대.......
"난 적극 찬성!"
"......."
"......."
"누나가 읽어, 양보할게."
"......."
"......."
"파이팅!!"
"......."
"......."
반대하기는커녕 독촉한다.
그래, 내가 큰 착각을 했다. 케찹이가 평범한 동생이지는 않았다는 것을!
"......."
"......."
"......."
나와 케찹이, 사렌은 말이 없다.
그리고 그 이유란 치료의 왕발 님이 떡하니 우리를 반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여기서 말하는 치료의 왕발이란, 사람이 아니라 발이다.
그런데 정말 어제는 보이지 않던 빛이 보인다.
에, 무슨 말이냐고?
그러니까 어제는 왕발에서 굳이 특이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 보니 오른쪽 왕발에서 빛이 난다.
아악! 발에서 빛이 나는 이런 웃기지도 않는 상황에 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 거니?
응? 누가 좀 가르쳐 주길!
이렇게 복잡한 마음을 안고 왕발을 보고 있는데, 드디어 사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미친 기도문을 읽기 위해서.
흑! 눈물이 난다.
사렌이 그런 주문을 외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자, 마구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여자의 입으로 그런 주문을 경건한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니.......
아, 전설의 왕발 님은 멋져. 너무나도 멋져.
뿅뿅뿅(?).
그대의 발 냄새는 천상의 향기, 그리고 그걸 맡은 난 너무 행복한 존재라네.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깜찍하고, 터프하고, 아름다운 왕발 님, 제게 치료의 빛을 주소서.
주르륵.
사렌의 기도문이 울려 퍼지고, 난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왜냐고? 너무 슬펐기 때문이다.
발에게 기도문을 읊어야 하는 이 상황도 슬프고, 내가 사렌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게 정말 슬프다.
진짜 다른 건 몰라도 이건.......
흑, 미안해! 사렌.
그렇게 진심으로 사렌에게 속으로 사죄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번쩍!
"윽?!"
"뭐, 뭐야?!"
"......!"
그 왕발에서 큰 빛이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