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단서
"피오탄 마을에서 치료의 왕발을 봤다는 정보가 들어왔어!"
"정말이냐?!"
"어."
난 피엘의 최신 정보에 나도 모르게 눈이 반짝였다.
드디어 알아냈다! 치료의 왕발 거처를!!
그리고 생각할 것도 없이 곧바로 출발이다.
나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스피드!
깊게 생각 안 한다.
일단 그분이 마을을 떠났을 수도 있고, 어떤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머리 복잡(?)하게 생각하는 건 나의 취향이 아니다.
일단 들이대고 보는 게 내 특성이다.
웅성웅성.
웅성웅성.
"......."
난 피오탄 마을을 향해 날다시피 해서 찾아갔다.
하지만 찾아가자 정확하게 피오탄 마을만이 나를 반긴다.
에, 그러니까 뭔 말이냐 하면 사람이 없다는 거랄까?
마을 전체에는 여기에 살았을 거라고 추정되는 마을 사람들의 피와 시체뿐이라는 것이다(어른, 여자, 아이 모두 가차 없이 죽어 있다. 예외 따위는 없었다).
그런 상황에 어느새 모여든 유저들이 수군거리고 있는 건 당연지사.
지금 이게 어찌 된 게냐?
분명 내가 이 마을을 찾기는 했지만, 주 목적은 이 마을에 있다는 치료의 왕발 님을 찾기 위해서다.
그런데 마을 안에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다.
마을 사람들이 다 죽어 버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놈의 돈이 뭔지......."
"맞아. 그놈의 돈 때문에 지금 완전 개판이라니까."
"돈이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이런 잔인한 짓을......."
"......."
그때 내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유저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돈? 갑자기 여기서 돈이 왜 나오는 거지?
설마 지금 이 마을이 이 꼴이 난 게 돈 때문이라는 거?
돈 때문에 성별, 나이에 상관없이 심지어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기들까지 죽였다고?
그 순간 어느새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난 방금 전 이야기를 하던 그분들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러고는 아주 정중하게 물었다.
"방금 전 이야기를 조금만 들을 수 있을까요?"
"......."
"......."
"......."
한데 그 사람들은 나를 보고 순식간에 얼굴이 시퍼레지면서 말문을 닫았다.
어라?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는 건가?
왜 갑자기 말을....... 아!
그 순간 난 저들이 얼굴 색깔과 더불어 말을 닫은 이유를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건 내가 나도 모르게 너무 굳어진 얼굴로 질문해서 그런 것일 테다.
난 그런 생각과 함께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웃었고, 이제 잠시 후 저분들의 저런 미묘한 반응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으악!!"
"우, 웃었어!!"
"채, 채찍질 당하기 싫어!!"
"피 빨리기 싫어!!"
"......."
그런데 나의 예상과는 아주 다르게 그들은 마구 비명까지 지르면서 도망가 버렸다.
뭐, 뭐야?!
내가 뭘 했다고 비명을 지르고 도망을 가는 거지?
추가적으로 내가 왜 당신들을 피와 채찍질을......?
"프레젠이 떴다!!"
"도망가!!"
"프, 프레젠?!"
"악마의 초보자?!"
"왜 여기에!!"
"꺄악!"
"......."
그 순간 내 혼란이 가시기도 전에 2차 비명들이 들려오면서 순식간에 근처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어디론가 달려가신다.
굳이 표현하자면 나를 피해 모두 도망가시는 거다.
아니, 그런데 내가 뭘 했다고!!
그저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한마디 물었을 뿐이다.
그런데 저들은 막 청순한(?) 나를 보고 괴물 취급을 하지 않나, 악마 초보자라고 하지를 않나.......
완전 어이없는 반응이다.
"너, 소문 잊은 거야?"
"내 소문?"
"응."
"......."
그때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을 한 내게 은애가 다가와 슬며시 말했다.
소문이라니? 그건 무슨......!
헉!
바로 그때 내 머릿속에 저번 사건이 지나갔다.
전쟁 때문에 어울리지도(?) 않는 별명이 퍼져 나간 사건!
내 자신이 들어도 무서운 그 소문 말이다.
여자의 피를 빨아먹고 남자들과 옷을 벗은 채 채찍질을 휘두르는 그런 초 변태!
난 어쩔 수 없이 도망가는 사람들 중 한 분을 골라서 잡아, 아니 친절하게 앞을 막으면서 방금 전 이야기의 모든 걸 들을 수 있었다.
약 한 달 전부터였나?
갑자기 전 대륙에 이상한 종이들이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종이의 내용은 각 마을을 멸망시킬 때마다 돈을 준다는 어이없는 내용이었다.
그것도 마을의 크기마다 지급되는 액수는 다르단다.
특히 제일 큰 마을인 세피아 마을을 멸망시키면 100억을 준단다.
솔직히 말해 한 마을을 멸망시킬 때마다 그만큼의 액수를 준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돈이 지급되고 있단다.
그러다 보니 돈에 눈이 먼 일부의 사람들은 돈 때문에 마을을 공격해서 모두 전멸시켜 버리는 이런 상황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나저나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하는 거지?
엄청난 돈을 들이면서까지.......
"이런 방법을 생각하다니......."
"......?"
그 순간 갑자기 엔딘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지더니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이런 방법을 생각해? 마치 누군가에게 말하는 듯한 어조인데.......
"블랙 젠더의 부활 조건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조건?"
"네."
바로 그때 갑자기 엔딘이 나한테 블랙 젠더의 부활 조건을 물어보았다.
참고로 난 그분이 정말 싫다!
지금 그분 때문에 내 몸에서는 이상한 것이 나를 먹으려고 난리치는 중이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그분 이야기 자체가 나오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은 엔딘이 쓸데없이 이야기를 꺼냈을 리는 없으니까 귀를 기울이는 게 좋겠다.
그나저나 질문을 했으면 답변을 해 줘야겠지?
"블랙 젠더의 부활 조건이라, 블랙 페리안의 탄생?"
블랙 젠더가 깨어나는 조건은 분명 블랙 페리안이 태어나면 깨어난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은 나보다 엔딘이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물어보는 의도가 뭔지?
그때 이런 내 궁금증을 알았다는 듯 엔딘이 미리 술술 말하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블랙 페리안이 하는 행동입니다."
"......?"
"행동이라니?"
"확실하게 설명해 드리죠. 블랙 페리안은 인간들을 죽이기 위해서 탄생된 존재,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블랙 페리안이 인간이 죽일 때 생성되는 절망감이라는 마이너스 에너지가 블랙 젠더의 부활을 돕게 됩니다."
"헉!!"
엔딘한테서 나온 이야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그, 그럴 리가!
난 분명 블랙 페리안이 그저 블랙 젠더가 부활할 수 있는 열쇠라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방금 전 그 말은 굳이 블랙 페리안이 없어도 절망감이라는 요소만 있다면 얼마든지.......
번쩍!
그 순간 모든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모두 알 것 같다, 어떤 존재가 왜 마을을 없애 버리면 그런 엄청난 금액을 주는지.
그와 함께 그 금액을 지급하는 자가 누구인지 말이다.
"아아악! 이런 젠장!!"
순식간에 일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난 단지 치료의 왕발을 찾아서 블랙 페리안만 나와 케찹이, 사렌의 몸속에서 제거하면 완전히 끝날 줄 알았는데, 이건 아니다.
블랙 페리안이 없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죽을 때 생기는 절망감만 있다면 얼마든지 부활할 수 있다.
한마디로 지금 상황은 오히려 소수의 유저들이 블랙 젠더의 부활을 도와주고 있다는 거다.
물론 그런 놈들은 내가 얼마든지 상대해 줄 의향은 있지만, 내 몸은 한 개다.
에, 그러니까 무슨 말인고 하면 난 지금 블랙 페리안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마을들을 없애러 다니는 유저가 한두 명이 아니라는 거다.
동시간 대에 멀리 있는 마을을 다른 유저가 공격한다고 치면, 내가 그들을 막을 힘이 있다 하더라도 무리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이분들이 어느 동네를 칠지 모르는 것이다.
마을만 해도 수백 개이니 그중 어디를 지켜야 할지도 모르겠고! 윽!
그뿐 아니라 좋은 말로 '하지 마세요!' 한다고 돈에 미쳐서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 분들이 안 할 리도 없고.
젠장!
"일단은 본보기라도 보여 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본보기?"
"네, 일단 피오탄 마을을 멸망시킨 다크리라는 단체를 만나 보는 거죠."
그 순간 엔딘이 내게 한마디 하시고, 난 그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했다.
그래, 그거 좋은 작전이다!
이럴 때일수록 엔딘의 말대로 본보기가 필요하다.
마을 하나 날리면 그 날린 놈들이 어떻게 되는지 친절하게 모두에게 각인시켜 주는 거야!
"넌 뭐야?"
다크리 소속의 뎀은 자신을 향해 싱긋 미소를 짓는 미남자를 보고 짜증이 밀려왔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왔단 말인가?
자신들은 지금 피오탄 마을에 모든 사람들을 죽인 대가로 상당한 액수를 받아서 꽤나 기분이 좋은 상태다.
한데 그런 기분을 깨어 버리게 하는 한 남자의 무단 침입이 좋을 리가 없었다.
한편 그 남자는 뎀의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해 주는데.......
"프레젠이라고 하옵니다만?"
"......!!"
그 말을 들은 뎀은 안색이 시퍼레졌다.
프, 프레젠? 그 변태 악마 프레젠?!
걸리는 순간 채찍질로 천천히 맛보고(?) 죽인다는 그 전설의 이름, 프레젠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다크리라는 단체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존재는 대악마 프레젠이라는 이름밖에 없다.
물론 그가 왜 다크리라는 단체를 없앴는지는 이미 소문이 난 상황이다.
바로 자신의 먹이(?)를 가로챘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감히 자신이 없앨 마을을 손댔다는 게 궁극의 이유라는 것이다.
"......."
난 순진하게 그저 이제 돈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준 것뿐이다.
하지만 소문은 그게 아니더라.
모든 마을을 내가 없애서 독식하기 위해서 먹이를 가로챈 다크리를 몰살시켰다는 거다.
내가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했다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대악당일 뿐이다. 흑흑!
"아, 근데 주인, 치료의 왕발은?"
"헉!!"
그때 갑자기 케찹이가 내게 엄청나게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그래! 치료의 왕발!
내가 분명 이곳에 온 이유는 치료의 왕발 님을 찾아온 것인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깜빡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치료의 왕발 님은 무사한 건가?!
혹시 그 마을에 있다가 휩쓸려서 이 세상을 하직하셨다면?
으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