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치료의 온천
"젠장."
난 또다시 내 입을 타고 흘러내리는 검붉은 색을 보고 좌절했다.
진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장난이 아니다.
아주 잠시지만 온몸이 찢어질 정도로 아플 뿐만 아니라 자꾸 몸 안에서 무언가 거대한 힘의 충돌이 일어난다.
악! 아무리 백만돌이 블랙 페리안으로 추정되는 애를 내 몸속에 집어넣었다지만, 이건 너무 심하다.
너무나!
"블랙 페리안이 아니다."
루얀은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초기에는 프레젠의 몸뚱이에 들어가 있는 것이 블랙 페리안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약간 격한 반응도 서로 상쇄되는 힘에 의해서 나타나는 부작용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더 심해진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당연히 블랙 페리안의 힘보다는 플레이지 나이트의 힘이 압도적이므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블랙 페리안의 힘이 줄어들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강해져서 플레이지 나이트와 충돌을 일으킨다.
그뿐 아니라 초기에 느꼈던 이질적인 기운이 더 강해져 이제는 확실하게 블랙 페리안이 아니라는 것도 단정 지을 수 있었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그의 몸에 잠재되어 있다는 것이란 말인가?
"너 요새 얼굴색이 맛 갔다?"
"그러게 말이다."
내가 오랜만에 피엘에게 들르자, 피엘이 내게 건넨 첫 마디였다.
오히려 당연한 말이다.
블랙 페리안인가 뭔가 하는 놈은 날이 갈수록 크레이지 모드고, 그뿐 아니라 저번에 케찹이 요리를 먹은 이후 아직도 속이 거북하다.
악! 도대체 어떻게 요리를 그따위로 하면 일주일 동안 속이 이 모양인지.......
"너 온천이라도 갔다 와라."
"......?"
그때 피엘이 뜬금없이 온천을 가라는 말을 던졌다.
지금 장난하니? 네 눈에는 내가 지금 온천이나 즐기게 생겼니?
치료의 왕발인가 족발인가 하는 분을 찾아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내게 말이다.
갑자기 온천이라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야, 그냥 온천이 아니다."
"......?"
그 순간 그냥 온천이 아니라는 피엘의 말이 들려왔다.
그럼 슈퍼 온천?
하하하하!
엄청 재미있는 개그군.
뭐 이해 못하는 분은 그냥 패스하고, 어찌 됐든 그냥 온천이 아니라는 말은 약간 나를 흥미롭게 한다.
"그럼 뭐하는 온천이야?"
"치료 온천."
"헉!"
피엘이 가르쳐 준 치료 온천이라는 곳은 정말 극소수의 사람들밖에 모르는 엄청난 곳이다.
한마디로 난 땡잡았다는 거다.
아무도 없는 치료의 온천에서 일단 1차 치료를 받게 된 것이다.
물론 완치는 불가능하겠지만, 지금 상태보다는 확실하게 좋아질 게 사실이다.
완전 좋다.
인간 외 출입금지!
"어?"
근데 그 온천에 들어가는 입구 바로 앞에 눈에 띄는 표지판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온천이란 인간 말고는 들어가면 안 된다는 표지판이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나와 같은 병에 걸린 케찹이와 사렌도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저 표지판으로 인해서 나만 1차 치료를 받게 되어 버렸다.
뭐, 혼자 치료받는다는 게 좀 미안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들보다는 지금 내가 훨씬 심한 상태다.
백만돌이 블랙 페리안이 나를 너무 괴롭혀서 말이다.
어찌 됐든 난 그렇게 혼자만의 느긋한 온천을 즐기기 위해서 야외 온천을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
그대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이유란 또 안내되어 있는 문구 때문이다.
지, 지금 내가 눈이 잘못된 건가?
아니, 왜 저런 글귀가?
남자나 여자가 같이 들어가야지만 효과가 발생됩니다. 같은 남성끼리 혹은 여성끼리 들어가면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오직 한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같이 들어가야만 치료의 효과가 있습니다. 다수가 들어가도 불가. 참고로 절대 뭘 걸쳐도 안 됩니다.
"......."
아주 저질 문구가.......
"이, 이게 뭐야!!"
난 화가 나서 소리쳤다.
잔뜩 기대하고 왔는데 남자 혼자 가 봤자 아무런 효능이 없다니......!
이건 뭐!
그렇다고 여자들한테 같이 들어가 달라는 말도 안 되는 개소리는 못하고 말이다.
물론 그 글귀를 본 다른 일행들도 무척이나 어이없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진짜 할 짓 없이 시간만 날려 먹은 셈이다.
"어라?"
그런데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 준비를 하던 난 순간적으로 어지러움을 느꼈다.
어? 왜 이러지?
왜 갑자기 어지.......
푹!
"성민아!"
"선배!"
"주인님!!"
"어? 주인 왜 저래?!"
"프레젠 님!"
"......."
그때 순간적으로 또다시 다량의 검붉은 피가 역류되었다.
젠장, 뱉어낸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난리인 거냐?
아, 물론 일행들은 지금 이 모습을 처음 보다 보니 완전 당황한 모습이다.
하지만 내게는 뭐 이제는 익숙할 정도?
아니, 그것보다 이번에는 왜 머리가 어지러웠던 거지?
분명 그런 증상은 없었는데 말이다.
어찌 됐든 난 괜찮다고 일행들에게 제스처를 취했다.
그런데 일행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이렇게 심한 거야?"
"선배, 케찹 님과 사렌 님보다도......."
"주인님, 살아나세요!"
은애와 연희, 이리엘이 달려와서 나를 부축하면서 말을 건넸다.
흐음, 왠지 다른 분들의 한마디보다 더 힘이 나는 건 무엇인고?
역시 미소녀의 힘인가?
아니, 그나저나 이리엘, 왜 자꾸 잘 버티는 날 툭하면 죽은 사람으로 만드는 거야?
나 아직 멀쩡하게 살아 있거든요.
"안 되겠어. 일단 치료의 온천에서 치료받자."
"엥?!"
그때 뜬금없이 은애가 한마디 했다.
치료의 온천에서 치료를 받자니?
저기, 미안하지만 그 온천은 남자와 여자가 동시에 혼욕을 하지 않는 이상 아무 반응도.......
헉! 설마?!
"부, 부끄럽지만 일단 안 아파진다면."
"저, 저도 선배가 아프지 않는 게......."
"주인님이 살아나신다면......."
은애와 연희, 이리엘이 얼굴이 붉어진 채 지금 그 저질 치료 방법에 동참해 주겠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저질 치료 방법을.......
"......."
두근두근.
미, 미칠 것 같아.
난 지금 온천에 들어온 채 입구에 반대편에서 떨리는 마음을 주체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녀들이 도와준다고 했지만, 염치없게 여자와 혼욕이라니!!
하지만 진짜 짐승같이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의 호의를 받아들인 건 정말 아파 죽을 것 같아서였다.
당하지 않은 자 모른다고, 이놈이 오늘 따라 더 발작해서 그런지 몰라도 정말 미치도록 아프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이 고통을 잠재우고 싶은 마음뿐이다.
물론 지금도 아프다.
그렇지만 혼욕을 한다는 생각에 살짝 고통이 어디론가 이사 간 기분이.......
"치, 치료일 뿐이야!"
그래, 이건 치료일 뿐이다.
나에게 일시적이나마 치료를 해 주기 위해서 연희가 용기를 내서 이런 대담한 치료 방법에 동참해 줬다(남자와 여자의 나이가 어릴수록 치료 효과가 더 좋아진다는 안내문 때문에 연희가 되어 버렸다).
이건 혼욕이 아니라 그저 치료일 뿐이야.
불건전한 생각 금지!!
"저, 저기 선배. 드, 들어갈게......요?"
"어어?!"
그때 혼자서 이건 혼욕이 아니라 치료라고 세뇌하고 있던 내 귀에 연희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난 그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같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진짜 이건 아니라고.
그저 치료인데, 뭐하자는 거냐? 이 짐승 자식아!
연희의 순수한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란 말이다.
첨벙.
"......."
그때 연희가 물속에 들어오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드는 생각, '지금 고개만 돌리면 천국이다'라는 순진무구한(?) 생각?
아, 이 자식이!
난 짐승만도 못한 놈이란 말인가! 자꾸 왜 이래!
아씨.
번쩍!
"어?!"
"선배?!"
바로 그 순간 나의 짐승 본능에 자학을 하고 있을 때, 난 갑자기 온천에서 빛이 나는 신기한 상황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갑자기 물에서 빛이 나?
이건 도대체 무슨 일이지?
아니, 그것보다 고통이 사라져 간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미칠 듯한 고통이 있었는데.
"선배, 어, 어떠세요?!"
"어? 그러니까 갑자기 고통이 사라진 것 같아."
"다행이에요!"
"......."
한편 연희는 빛이 나자마자 나의 고통에 대해서 물었고, 난 그 물음에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자 마치 자기 일같이 기뻐하는 연희 양, 정말 감동적이다.
그런데 그런 감동과 더불어서 '고개만 돌리면 천국이!'라는 소리도 자꾸 들려온다.
시, 실수인 척하고 고개를 돌릴까?
연희라면 그 정도라면 너그러이 이해.......
이 변태 자식! 그만해!!
난 내 자신이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남자의 본능이 꿈틀댄다지만 나를 위해서 이렇게 용기를 내 준 그녀에게 불건전한 생각을 하다니, 정말 한심하다.
그래, 차라리 지금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면서.......
"고, 고마워."
"아뇨, 선배에게 도움만 됐다면......."
"......."
"......."
"......."
"......."
침묵을 깨고 싶었지만 한마디 했다가 더 침묵이 생겨났다.
아, 젠장! 평소에는 말도 잘 나오건만 왜 이럴 때는 이 모양인지 정말 모르겠다.
약 10분 정도 지난 듯싶다.
충분히 회복도 된 듯싶고 무엇보다 이게 적응이 안 된다. 연희와 혼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물론 내 자신에게 이건 치료라고 세뇌를 해 보지만, 이놈은 절대 수긍 안 한다.
한마디로 나쁜 자식이라는 거다.
나도 지금 내가 뭔 소리를 하는지.......
어찌 됐든 이제는 나가도 될 듯싶다.
그러니 일단 연희를 먼저 밖으로 보낸 뒤 나도 일어서야겠다.
난 그런 생각과 함께 연희를 불렀다.
"저기 연희야, 이제 된 것 같은데."
"......."
한데 돌아오는 건 그저 침묵뿐이다.
어? 방금 전 내 말이 안 들린 건가?
분명 크게 말한 것 같은데.......
"저기, 연희야?"
"......."
이번에는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연희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이쯤 되자 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설마 연희 쓰러진 거 아니야?!
하지만 지금 연희는 모두 벗고 있는 상태인데, 그걸 확인하기에는.......
그렇지만 진짜 쓰러졌으면?
"연희야!!"
"......."
난 다시 한 번 소리쳤다.
그렇지만 역시 묵묵부답이다.
난 일이 난 것을 느꼈다.
그렇게 되자 일단은 무조건 연희를 구해야 된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당장 연희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연희가 근처 돌에 기댄 채 기절한 상태다.
덤으로 가슴도 다 보이.......
에라, 이 자식이!!
난 순식간에 달려갔다.
지금 내가 알몸이고 연희가 알몸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다.
다행히 연희는 잠시 기절했을 뿐 몸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내가 다급하게 연희를 물에서 꺼낸 직후 연희가 눈을 뜬 것이다.
그렇게 되자, 이건 정말 어색하고 어이없는 상황이 되었다.
연희와 난 서로 알몸을 그대로 보고 만 것이다. 서로 말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연희는 나와 시선을 맞추지 않는다.
정확히는 나도 못 맞춘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지.
아악! 왜 난 하는 일마다 이렇게 꼭 저질이 되어야 하는 거냐?
진짜 미치겠다.
차라리 그때 한 명이라도 옷을 입고 있었더라면 좀 덜 무안했을 것 같기도 한데, 둘 다 알몸 상태여서.......
물론 난 순식간에 물에 잠수 타고, 연희는 순식간에 밖으로 달려 나가서 둘이 알몸 상태로 대면(?)한 지는 10초도 안 되기는 했다.
하지만 일단은 그랬다는 게.......
"주인 덮쳤구나?"
"내가 너냐?"
바로 그 순간 케찹이는 나와 연희의 미묘한 반응을 눈치 채고 헛소리를 했다.
내가 네놈도 아니고...... 아니, 어떻게 보면 케찹이의 말이 완벽히 틀린 것도 아닐지도.
눈으로 다 덮쳤으니까.
"주인, 뭔 일 있었는데? 말해 줘, 말해 줘!"
케찹이는 계속해서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렇지만 난 절대 말해 줄 마음은 없다.
이게 케찹이 귀에 들어가는 날, 난 짐승으로 소문날 게 뻔하니까.
그래서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애들은 몰라도 된다네."
"......."
그러고 보니 나 엄청나게 황홀한(?) 경험들이 장난 아니게 많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