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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여행 (90/100)

제5장 여행

"......."

"......."

"......."

나와 은애, 연희(참고로 연희 보디가드님들도 처음으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말이 없다.

분명 우리는 그분이 오늘 아름다운(?) 여행을 준비했다는 말을 듣고 왔는데, 이건 아무리 봐도 아름답지는 않다고나 할까?

비밀 특수 요원 하르텐 군.

그는 갑자기 나를 찾아오더니 저번 일에 큰 도움을 줬다고 상부에서 여행을 보내 주라는 지시를 내려 줬다고 한다(공짜인 이상 무조건 가는 건 당연지사).

그리고 추가로 그는 나름대로 정말 신경 써서 여행지를 자기가 골라 줄 테니 기대만 하라더라.

물론 난 케찹이와 사렌, 그리고 나의 문제로 인해 머리가 복잡했던 관계로 그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나저나 여기서 문제가 된 건 남자 둘이서 여행이라는 점이다.

아주 침침하다 못해 꿀꿀한 여행이 될 것이라고는 안 봐도 DVD(?)!

그런 까닭에 난 은애와 연희(물론 연희 보디가드 네 명은 자동 옵션)에게 아주 아름다운 여행을 시켜 주겠다고 데려온 것이다.

그런데 이건 도대체 어딜 봐서 아름다운 건데?

약 50평 정도 되어 보이는 별장 하나가 있다.

차라리 그냥 별장이었다면 모두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진짜 보통 별장만 됐어도.

한데 이건 보통 별장이 아니다. 크기만 컸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별장이다.

아니, 말이 별장이었지, 자세히 보면 폐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뿐 아니라 숲 속에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주변은 온통 칙칙하고 어둠이 짙게 깔려 있다.

저기 하르텐 군, 정말로 여기가 신경 써서 고른 여행지인 거 맞는 거니?

덤으로 기대까지 하라던데 뭘 기대하라는 거니?

저 음침함, 즐기고 싶지 않고 기대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 가득하구나.

나는 그런 마음과 함께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이곳을 선택하신 하르텐 님에게 문의를 드리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

없다. 요리 보고 저리 보고 360도를 턴하면서 봐도 없다. 분명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있던 그분이.......

"아까 '식인 식물 찾자!'라는 이상한 소리를 하시면서 사라지셨습니다."

"......."

그 순간 당황하면서 하르텐을 찾는 모습을 본 연희의 보디가드 중 한 분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식인 식물을 찾자!' 하면서 사라지다니!

이런 어이없는!!

갑자기 웬 식인 식물이냐? 아니, 한국에 식인 식물이 있기는 한 거야?

잠시, 그러고 보면 이런 칙칙하다 못해 촉촉한(?) 동네에서 자주 나오는 게 식인 식물이다.

한국에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지형이나 이런 걸 봐서는 이곳에 나오는 게 맞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빌어먹을 자식!!"

그 자식은 이 기회를 틈타 이런 이상한 데로 데려와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용한 것이다.

아아악! 낚였어!!

내가 믿을 인간이 없어서 그놈을 믿다니!!

이런 당장이라도 귀신님이 나타나서 까꿍(?)할 장소에서 뭘 즐기란 말이냐!

일단은 그냥 철수하기는 그래서 그 으스스한 별장에 한 번 들러 보기는 해야 할 것 같아 조심스럽게 돌격했다.

정말 개인적으로 들어가는 걸 사양하고 싶지만, 일단은 든든한 연희 보디가드 분들도 계시니까.

물론 여자 분들이시지만, 실력 하나는 거의 살상 기계 수준이신 분들이다.

연약한(?) 나까지 지켜 주실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렇게 내 자신을 다독이면서 그 별장의 입구까지 도착했고, 이 이상한 별장을 보고 정말 완전 굳어 있는 은애와 연희를 향해서 애써 미소를 지었다.

괜찮다고 말이다.

그나저나 이왕 온 거 좋게 생각하자.

이런 여행 평생 가도 갈 수 없다.

일명 호러 여행이다.

그래! 이렇게 일부러 즐기려고 하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

이것도 엄연히 이벤트 비슷한 그런 것이다.

실제로 보기에는 무너질 것 같지만 사실은 정말 단단할 게 분명하고 종업원들도 구석구석 숨어 있을 게 분명하다.

이런 생각이 들자 내 마음은 편해지고, 이런 내 생각을 은애와 연희에게도 말해 주었다.

그러자 그녀들도 모두 수긍했는지 살짝 얼굴이 밝아졌다.

이건 엄연히 이벤트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진 것이다.

하아, 이런 이벤트(?) 건물을 보고 겁을 먹다니, 나도 참!

그런데 이벤트 건물치고는 정말 잘 만들었구나.

진짜 꼭 무너질 것 같거든.

어찌 됐든 아까와는 다르게 나름대로 편안한 마음으로 별장을 구경하는 은애와 연희.

하지만 난 그렇지가 않다.

왜냐고? 별장에 들어오면서 살짝 붉어져 있는 바닥을 봐서 그런 것일까?

피가 연상되는 그런 붉은색 말이다.

물론 실제적인 느낌을 위해서 가짜 피를 사용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는 왜 진짜 피 같아 보이지?

난 찜찜한 기분을 안고 그 붉은색을 띠고 있는 바닥을 슬쩍 만져 보았다.

확실히 너무 오래돼서 완전히 굳어 버렸지만 알 것만 같다.

이건 진짜 피라고!

진짜 피라는 사실을 인지하자, 갑자기 온몸이 굳으면서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진짜 피라니, 왜 별장에 진짜 피가 묻어 있는 거냐?!

설마 리얼리티를 위해서 진짜로 피 빼서 묻혀 놓은?

그래! 요새는 전부 다 리얼이잖아!

하하하.

리얼 좋지, 리얼이야!!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진짜 피를 묻히다니. 너무나도 감격스럽다 못해 깜찍하군. 후후!

"왜 그래?"

"선배, 왜 그러세요?"

"아, 아니야. 아무것도. 하하하."

"......."

"......."

그때 바닥에 묻은 피를 보고 당황하던 나를 향해 은애와 연희가 묻고, 난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어 댔다.

하지만 그런 내가 이상해 보였는지 그녀들은 나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난 애써 고개를 저으면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거듭 말했다.

과민 반응이다.

이건 터무니없는 나의 과민 반응이다.

"저기, 아무도 없어요?"

"저기요!"

우리는 별장에 들어온 지 꽤나 됐지만, 사람 한 분도 보지 못했다.

분명 숨어 있는 종업원들이 깜짝 등장할 거라고 생각하던 내 예상을 완전히 박살 내는 풍경이다.

종업원은커녕 아무것도 안 보인다.

한편 은애와 연희는 한참을 누군가를 찾더니 아무도 없는 듯하자 나를 보고는 말했다.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선배, 이 집에 저희들만 있는 것 같은데요."

그리고 참고로 그 의견에 적극 동참한다.

진짜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다.

"도, 돌아가자!"

난 입구에서 본 핏자국도 거슬리고, 이 음침한 분위기도 거슬리고, 사람 한 명 없는 이 별장도 거슬리고 해서 그녀들에게 다시 돌아갈 것을 권유했다.

아무리 색다른 게 좋다지만 이런 데는 사절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색다른 게 아니라 이 집에 뭔가 있다.

물론 확정은 할 수 없지만, 나의 위기 센스 감각이 그렇게 외치고 있다.

"그럴까?"

"저는 선배의 결정대로."

한편 내 이런 말에 은애도 내심 껄끄러웠는지 금세 동의하고, 연희는 무조건 내 의견에 따른다고 한다.

그러면 뭐 결론은 한 가지,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딴 별장을 빌린 하르텐 자식 죽여 버리겠다는 자그마한(?) 목적도 덤으로 실행하고.

그렇게 우리는 연희 보디가드 분들의 안내를 받고 방금 전 걸어왔던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

"......."

"......."

"......."

가면 갈수록 우리는 말이 없다.

그것도 전부 다.

왜 그럴까? 왜 그래야만 했을까?

맞춘 분들에게는 0000-0000으로 전화를 하셔서 정답을.......

아니, 이게 아니라!

"기, 길이 이상하지 않아?!"

은애의 말처럼 길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분명 우리는 별장에 들어온 이후 직진으로 아주 가볍게 왔다.

그런데 어찌 된 게 또다시 직진으로 돌아가는데 분명 오기 전에는 없던 길이 있다.

에, 한마디로 갑자기 갈라진 복도가 세 개가 되어 있는 것이다.

왜 올 때는 한 개고, 갈 때는 세 개인 거냐?!

이런 신비로운 집안 같으니!

움찔!

그때 연희가 갑자기 움찔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런 연희의 주변을 다급하게 그녀의 보디가드들이 빙 둘러쌌다.

한편 난 연희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물었다.

"왜 그래?"

한편 그런 나의 질문에 그녀는 두리번두리번하더니 두려움에 떠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서, 선배! 누, 누가 보고 있는 것 같은......."

"......?"

"꺅!!"

"연희야!"

"연희야!"

"연희 님!!"

바로 그 순간 연희는 갑자기 어느 한 곳을 보더니 비명을 지르고는 넘어졌고, 나와 은애, 그리고 보디가드들이 그녀에게 다가가자 연희는 어느 한 곳을 멍하니 보더니 떨리는 어조로 말했다.

"부, 분명 저기에 검은색 망토와 검은색 가면을 쓴 누군가가 하늘에 뜬 채 저를......."

"......."

"......."

아주 놀라운 이야기를 하신다.

검은색의 망토, 검은색의 가면, 센스가 넘치시는군.

그래, 여기까지는 그저 웃으면서 들어도 무방하다.

여기까지만 말이다.

하지만 연희의 추가된 말을 들으면 웃음은커녕 울어야 할 것 같다.

인간의 힘으로 하늘을 뜰 수 있을 리는 만무하다.

아니, 뭐 과학적인 힘으로는 충분히 가능하지만, 인체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그런데 연희가 본 것은 날아다니는 검은색의 망토와 가면을 한 존재.......

이건 뭐임?

난 깨달았다. 이 동네 정말 이상한 동네라는 것을.

몇 시간 동안 입구를 찾아봐도 계속해서 보이지 않던 복도 코너만(?) 나오고, 나가는 입구가 안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이제는 배가 고프고, 무척이나 지쳐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덤으로 모두 다 여기가 정상적인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심리적으로 부담되는 상황이다.

"저기, 갑자기 방이......."

"......."

그때 은애는 뜬금없이 방이 있다고 한다.

저기,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복도만 있던 곳에서 방이 솟아오를 리가 없잖아요?!

은애 양, 너무 힘들어서 헛것이 살짝 보이는 듯싶다.

난 그런 생각과 함께 은애가 가리킨 방향, 즉 내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잠시 후 내 눈을 비볐다.

요리조리 살펴봐도 방이다.

분명 내 뒤쪽에는 복도가 있어야 하는데, 방이 하나 있고 문이 살짝 열려 있다.

한마디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어디도 없다는 거다.

에에에에에헤헤헤헤!

털썩!

그 순간 연희가 갑자기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 난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 지금도 너무 힘들어 죽겠는데, 이런 무서운 일이 일어나니 다리에 힘이 풀려 버린 것이다.

추가로 연희뿐만 아니라 은애, 심지어는 연희의 보디가드들까지 얼굴이 창백해져 버렸다.

난 그나마 이곳에서 유일한 남자라는 생각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완전 미치겠다.

'미쳤어!'라는 아름다운 노래가 떠오를 정도로.

그런데 더 웃긴(?) 건.......

"방금 전 그 복도는 어디 갔니?"

"......."

"......."

"......."

앞으로 가던 길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한마디로 앞은 막혀 버리고, 뒤에는 방이 하나 있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고?!

개인적으로 정말 우리는 모두 저 이상한 방에 안 들어가려고 했다.

저기 들어가면 완전히 낚이는 건 바보가 아닌 이상 아니까.

그렇지만 이게 또 복도에만 있으려니.......

"얼어 죽겠다."

추워 죽겠다는 거다.

아니, 왜 갑자기 온도가 이렇게 급격히 내려가는 거냐!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실내여서 그런 대로 따뜻한 온도였는데, 이건 뭐 실내라는 건 다 무시하고 실외보다도 훨씬 추워지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온도가 개떡으로(?) 추락 중이라는 거다.

젠장! 이러다가는 모두 다 이곳에서 얼어 죽겠다.

물론 추울 때는 서로 알몸이 되어서 몸을 비벼 주면 살아남는다고 과학적인(?) 이론이.......

야! 이 자식아! 지금 상황에서 뭔 불건전한 생각을 하는 거야?

난 진심으로 내 자신에게 실망했다. 이런 호러 분위기 속에서 저런 불건전한 생각을 하는 나에게.

어떻게 보면 대단할지도 모른다. 진짜 이런 상황에서도 남자의 본능이 살아 있으니 말이다.

어찌 됐든 지금은 잡생각 좀 없애야 한다.

"일단 들어가자."

"저, 저기에?"

"서, 선배, 저, 정말 들어가시게요?!"

"......."

"......."

"......."

그때 유일하게 이 미치도록 추운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방에 들어가려고 하자, 은애와 연희는 기겁을 하면서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그나마 기절을 하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다.

그리고 덤으로 연희 보디가드들도 해롱거리신다. 보디가드라도 귀신한테서까지 의뢰인을 지키는 방법은 모르니까.

일단 우리는 함정인 줄 알면서도 그 방으로 들어왔다.

안 그랬다가는 저기서 얼어 죽게 생겼으니까.

그나저나 우리가 모두 공포에 떨면서 들어온 이 방, 생각외다.

방 안은 약 20평 정도로 구성된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고, 거기에는 딱 일곱 개의 침대가 놓여져 있다.

우리의 인원수만큼 말이다.

이건 한마디로 침대에서 자빠져(?) 자라는 메시지.

그런데 이쯤 되면 진짜 믿고 싶지 않았던 사실이 완전히 확정되어 버린다.

귀신 따위는 없다 믿고 있었는데,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은 도대체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아악!! 이 빌어먹을 하르텐 자식!

용케도 이딴 곳을 잡아내다니!

내 만약 귀신에게 죽는다면 네놈부터 찾아가리라.

난 지금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겪게 해 준 하르텐을 원망하면서 정말 속으로는 초비상사태에 걸렸다.

내가 별별 잡것들과 싸워 봤지만 이번에는 귀신이라니, 이건 불가능한 싸움이라고!!

그렇게 난 정말 눈물나는 상황에 그저 큰 절망에 빠졌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여기서 유일한 남자인 내가 지친다면 진짜 이건 귀신에게 죽는 꼴밖에 안 된다. 그러니 내가 격려라도.......

"어?!"

그런 생각에 주변을 둘러봤는데, 이건 뭐야?

너무나도 행복한 얼굴로 자고 있는 은애와 연희, 그리고 연희 보디가드님들.

저기, 다들 지금은 잘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왜 다들 자는 걸까요?

특히 보디가드 분들은 왜?

"......."

하지만 잠시 후 난 그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비과학적인 그분께서 무슨 이상한 짓을 해 버린 거다.

그리고 그 덕택에 다들 꿈나라로 가 버리신 건데.......

그런데 잠깐! 난 왜 멀쩡한 걸까?

왜 나 혼자만 잠에 안 든 거지?

모두 잠들었지만, 나는 잠이 오기는커녕 눈이 말똥말똥하다.

이, 이상한 현상은 도대체?

"설마, 절대 잡생각(?) 배리어?!"

내 말로 이런 말을 하기는 그렇지만, 나에게는 특이한 능력이 있다.

그리고 그건 절대 잡생각 배리어라는 것이다.

에, 그러니까 한 번 잡생각에 빠지면 혼자서 신나게 잡생각을 하면서 노는 그런 거다.

그때는 물리적인 힘이 가해지지 않는 이상, 절대 잡생각이 깨지지 않는다.

저번에 이리엘이 나를 엄청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던 적이 있다.

그만큼 절대 잡생각(?) 배리어가 발동되면 누가 건들지 않는 이상 계속 잡다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어찌 됐든 그 기능으로 인해 이 이상한 것에 걸려들지 않은 것이다.

이런 쓸데없는 능력이 이렇게 빛을 발하는 날이 오다니,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군.

우두둑.

우두둑.

"......."

하지만 이런 나의 감동의 소감(?)이 끝나기도 전에 어디선가 갑옷 아저씨 5인방이 튀어나왔다.

어머나, 분명 대갈통(?), 아니 머리에 투구는 없는데 갑옷만 움직이네?

엄청 신기해.

그나저나 이게 게임이면 뭐 웃으면서 이야기하는데, 아쉽게도 이건 현실이라는 것이다.

현실에서 대갈통 없는 갑옷 아저씨가 움직이는데.......

허허, 미쳐 버리겠군.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그때 설상가상으로 그 대갈통 없는 갑옷 아저씨 5인방이 어느새 오른손에 장검 한 자루를 들더니, 모두 잠들어 있는 우리 일행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저기, 이런 상황은 정말 난감한데 저 어찌해야 합니까. 네?

묻고 싶다, 아무에게나.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없고, 저분들만 점점 다가올 뿐이다.

그리고 그런 그분들을 보고 난 느낀다. 오늘 새로운 경험을 해 보겠다고.

귀신과 육탄전을 벌이는 새로운 경험을.......

근데 귀신도 물리적인 공격이 통하나요(누구한테 하는 질문인지 모름)?

콰앙!

"......."

난 주먹이 부서지는 줄 알았다.

철로 된 갑옷을 이 주먹 하나로 때렸으니 당연하기는 하지만.

그나저나 이렇게 큰 고통을 겪으면서 선사해 준 주먹 한 방에 난 많은 것을 알았다.

일단 갑옷이 찌그러진다.

그 말은 갑옷을 분해해 버리면 어쩌면 저 귀신들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다. 그리고 덤으로 그 갑옷 귀신을 치면서 장검도 하나 스틸했다.

즉 이제는 저 무식한 깡통을 향해 주먹을 안 내질러도 된다는 거다.

그렇지만 그게 위로가 되지는 못한다.

진짜 아무리 세상이 미쳤다지만, 귀신과 싸우는 날이 올 줄이야!

정말 정신적으로 최악이다.

아니, 차라리 드라큘라나 구미호 이런 분들은 베어지기라도 하잖니?

그런데 이런 귀신은 정말 저질 귀신들이다.

완전히 신비의 주문 같은 것에만 반응하는 것이다.

"그렇군!!"

난 깨달았다.

나에게는 엄청난 무기가 있다는 거.

그리고 그건.......

"물러가라! 물러가라!"

"......."

"......."

"......."

소금이 있다!

으악! 삶은 달걀 찍어 먹으려고 가져온 소금이 이런 대박이 날 줄이야.......

그뿐 아니라 난 양손을 교차해서 십자가 빔(?)도 마구 날렸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

"......."

주문도 외웠다.

자, 사라져라! 사라져라! 사라......지기는커녕 어느새 바로 내 앞에 근접해 있다.

젠장!!

차라리 주먹으로 때린 것보다 못한 반응이라니!

내 검이 그대로 갑옷 귀신님의 검이 들려 있는 오른손의 어깨를 베어 버렸다.

그러자 그 어깨는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어깨는 다시 합체하려는 듯 꿈틀거리는 모션을 취했고, 그걸 본 난 그대로 냅다 그 떨어진 팔을 향해 내달렸다.

그러고는 귀신을 상대로 마치 떡을 썰 듯이 팔을 얇게 썰어 버렸다.

다다다!!

그렇게 되자 당연한 말이진 모르지만 합체 불가능해졌다.

팔이 몇 십 등분 됐는데 붙어질 리가 없으니까.

그나저나 이 검 죽인다.

무슨 철을 자르는데 무 자르듯이 잘라지다니, 이런 신비의 검 같으니!

참고로 주부 분들이 참으로 좋아하실 것 같은 검이다.

"죽여라!"

그때 어느새 오른쪽 팔이 잘게 썰려서 합체 불가능해진 갑옷 귀신이 나를 향해 돌격했다.

아무런 무기도 없이 말이다.

자세히 보니, 이것들 좀 많이 멍청하다.

공격하는 것도 멍청하고, 하늘에서 발끝까지 멍청하다.

이거 잘하면 귀신을 상대로 정말 승리를 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헉헉."

난 해내고 말았다.

정말 이기고 말았어! 귀신을 상대로.

으악!!

나는 방 안 가득히 널려 있는 갑옷 조각들을 보고 감동에 젖었다.

이것들을 합체 못하게 하려고 얼마나 썰었단 말인가?!

한석봉 어머니가 울고 갈 정도로 그것도 정밀하게.

그리고 그 효과로 모든 갑옷 귀신들은 합체를 하고 싶어도 합체를 못하게 되어 버렸다.

자, 오늘 아주 유용한 정보를 드리자면,

'갑옷 귀신을 만나면 열심히 썰어 주시면 됩니다!'

라는 거다.

어찌 됐든 그렇게 해서 우리는 탈출을 해 버렸다.

정확히는 추방된 듯한 느낌이?

어느새 모두 다 입구로 내팽개쳐졌으니까.

무슨 저런 미친 인간이 있단 말인가!

귀신을 상대로 저딴 만행을 저지르다니, 보고도 믿을 수가 없다.

귀신, 일명 살아 있는 자가 아닌 죽어 있는 자를 뜻하는 말이다.

한마디로 살아 있는 사람들은 귀신이라는 말만 나오면 완전히 미쳐 버린다.

하지만 저 인간은 그런 귀신을 상대로 싸우고 난리다. 심지어는 재생이 불가능하게 갑옷을 썰어 버리는 미친 행위도 선보이고 말이다.

이건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이다.

귀신들이 제일 무서워한다는 퇴마사보다 훨씬 무서운 인간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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