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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침입 (87/100)

제2장 침입

"괜찮으냐?"

난 케찹이에게 슬며시 물었다.

지금까지 감시자 역할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버지라고 부르던 존재가 죽었다.

그러니 그 당사자를 해치운 난 적이라고 하더라도 약간 뭔가 꺼림칙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말에 케찹이는 지금 내 질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대답을 한다.

"나야 원래 잘났는데?"

아니, 이 자식아! 내가 지금 너 잘났냐고 물어봤어?!

한때였지만 그래도 아버지라고 불린 존재가 죽어서 괜찮으냐고 물은 건데!

"저와 케찹이는 괜찮아요."

"사렌."

그 순간이었다.

동문서답하는 케찹이와는 달리 사렌은 제대로 내 말을 알아듣고 대답했다.

왠지 모르게 감동적이다. 그저 내 말에 대답했을 뿐인데 말이다.

사렌의 말이 이어졌다.

"어차피 거의 같이 있어 본 적이 없었거든요."

"......?"

같이 있어 본 적이 없다니, 그건 무슨 말이지?

"항상 어디론가 사라지고, 가끔씩 나타나서 무슨 변화가 없냐는 것만 물어봤거든요. 그래서 아버지라고는 했지만, 그저 스쳐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친아버지도 아니었고요."

아, 한마디로 그분은 어디서 빈둥빈둥 놀다가 가끔 와서 케찹이와 사렌이 블랙 페리안으로서의 각성을 했는지 검사만 했다는 건가?

그리고 무엇보다 사이가 좋았다고 해도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감쪽같이 속이고 먹이를 돌보는 듯한 행동밖에 안 되었으니까.

그나저나.......

"진정 저 블랙 페리안을 쫓아내는 방법은 없단 말인가?"

케찹이는 아직까지 개기고 있지만, 그래도 언제까지 잘 개길 거라는 보장은 없다.특히 루얀 님은 이제 머지않아 자기 손으로 죽일 날이 온다고 항상 이야기한다.

그 말은 즉 케찹이가 블랙 페리안에게 잡혀 먹는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제는 사렌도 언제 먹혀 버릴지 모른다는 것이다.

루얀 님 말로는 절대 치료 방법 따위는 없다고 하시니 더욱 난감한 게 내 마음이다.

"주인님, 다섯 번째 히든 클래스라면 가능할지도 몰라요."

"......?!"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메라가 내게 엄청난 충격적인 이야기를 해 준 것이다.

다섯 번째 히든 클래스라면 케찹이와 사렌을 블랙 페리안에게서 구해 낼 수 있다고?

아니, 도대체 그 다섯 번째 히든 클래스가 뭐기에 그런 엄청난 효능을?

한편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메라는 싱긋 웃더니 말했다.

"모든 질병과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직업이에요."

"모든 질병과 상처를?"

"네."

한마디로 절대 치료의 히든 클래스인가?

케찹이와 사렌만 블랙 페리안으로부터 지켜 내면 그냥 끝이다.

블랙 젠더 따위랑은 이제 영원히 부활하지 못할 것이고.

그리고 케찹이와 사렌을 블랙 페리안에게 해방시킬 수 있는 방법이 드디어 튀어(?)나왔다.

절대 치료 능력을 가진 다섯 번째 전설의 히든 클래스.

메라의 말에 의하면 정말 죽지만 않는다면 어떤 상처라도, 어떤 저주라도, 어떤 질병이라도 고칠 수 있다고 한다.

그 말은 어떻게 보면 저주일지도, 어떻게 보면 질병일지도 모르는 블랙 페리안을 없애 버릴 수 있다는 거지.

그렇지만 여기서 크나큰 문제가 있기는 하다.

그 다섯 번째 히든 클래스를 찾는 방도를 모른다는 거다.

그저 그 직업이 어떤 것인지만 메라가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루얀도 알지 못한 감춰진 히든 클래스의 직업이 밝혀졌으니, 뭐.

그나저나 어서 다섯 번째 히든 클래스를 찾으면 소원이 없겠다.

그래야지만 어서 사렌과 케찹이를 고쳐(?) 놓을 텐데.......

진짜 그분들이 언제 발작할지 몰라서 항상 기분이 찜찜하기 그지없다.

그렇게 한참 동안 사렌과 케찹이의 문제로 머리 아파할 때였다.

두근두근!

"......?!"

갑자기 내 심장이 뛰었다.

뭐냐, 이 심장의 이상함은?

설마?!

바로 그때 내 머릿속을 지나가는 한 가지가 있었다.

그것뿐이다. 내가 이렇게 심장이 뛰는 이유는 지금 내가 가진 직업의 상극, 블랙 페리안의 등장(?)!

제길, 케찹이와 사렌 중 누구지?!

내가 염려하기가 무섭게 또다시 이런 일이!

그나저나 도대체 누굴까?

난 그런 생각과 함께 다급하게 사렌과 케찹이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

"왜 그래, 주인?"

"왜 그러세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다급해하는 나에게 말을 거는 케찹이와 사렌.

헉! 케찹이와 사렌이...... 아니야?

그럼 뭐냐?!

왜 심장이 이렇게 미친 듯이 뛰는 거지?

두근두근, 두근두근!

털썩.

"주인!!"

"프레젠 님!"

"주인님?!"

그때였다.

갑자기 더 빨라진 심장 소리와 함께 어느새 내 몸은 서서히 쓰러지기 시작했다.

왜 이러는 거지?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몸에 힘이 주르륵 빠진다.

도대체 무슨 일이.......

'모든 것의 파괴.'

"......!!"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내 머릿속에 이상한 음성이 들려온 것이다.

마치 모든 것의 파괴를 부추기는 듯한 목소리다.

물론 그런 목소리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들으면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는 목소리다.

아니, 그런데 그것보다 분명 저 말은?

어디서 들어 봤다. 분명히!

난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그 저 말을 기억해 내기 위해 머리를 더듬었고, 잠시 후 난 그것을 누구에게 들었는지 깨달았다.

저번에 케찹이가 블랙 페리안에게 지배당하기 전 들었다는 그 말이다.

'모든 것의 파괴'라는 단어, 확실하다.

그런데 그 단어가 왜 나에게 들려오는 거냐?

두근두근!

"빌어먹을!!"

"주인?!"

"자, 잠깐만요! 다, 다른 분들 불러올게요!"

"주인님, 왜 그러세요?!"

그때 다시 한 번 심장이 요동치더니, 더 이상 생각하기도 힘들 정도로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도대체 어찌 돌아가는 상황이냐?!

제발 고통만 없으면 금세 파악이 될 듯도 싶은데, 너무나도 고통이 심해서 제대로 된 생각조차도 못할 지경이다.

피식!

......!!

한데 그 순간 갑자기 내 머릿속에 지나가는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한때는 케찹이의 아버지였던 자가 분명 나에게 소멸되기 전 기분 나쁜 미소를 선물하고(?) 가셨다.

그리고 그 이후 그 미소가 한참이나 찜찜했었고 말이다.

그런데 그 미소가 지금 이 상황 무척이나 기억난다.

하필 이 순간에!

'모든 것을 파괴해라.'

바로 그때 또다시 그 이상한 목소리가 내 머릿속을 울렸다.

젠장! 나에게 명령 내리지 마!

뭐하는 놈이 갑자기 나한테서 기어들어......!

기어들어 와?

번쩍!

믿을 수 없었다. 아니, 인정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런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계속해서 증명해 준다.

블랙 페리안이 나의 몸에서 부활하고 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그분이 죽기 전에 나에게 진득한 미소를 날려 준 의미도 모두 알 것 같다.

"최악이군."

루얀은 블랙 페리안과 싸우고 있는 프레젠을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항상 무표정이었던 루얀이다.

하지만 지금은 무표정만으로 있기에는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

블랙 페리안이 세상 최강의 힘을 가진 존재에게 달라붙다니, 이건 말 그대로 완전한 재앙이다.

말 그대로 자신이 제거를 하고 싶어도 제거할 수 없는 존재가 블랙 페리안으로 태어날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블랙 젠더의 힘도 넘어서는 블랙 페리안이 되어 버리는 웃기지도 않는 상황이 발생되고 말이다.

"제길......!!"

난 고통 속에서 짜증 섞인 소리만을 남발했다.

여기서 쓰러지면, 쓰러지면 난.......

으악!!

그렇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은 상상 초월이 되어 버렸다.

진짜 이대로 가다가 그대로 고통으로 인해 정신을 놓아 버리게 된다면.......

정말 최악이 되어 버린다.

견뎌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하지만 무슨 방법으로.......

"왜 그래?"

"선배?!"

"주인님!!"

그 순간 은애와 연희, 그리고 이리엘이 다급한 어조로 내게 물었다.

그런데 대답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어서 말도 못하겠다.

"주인님! 어서 살아나세요!!"

한편 이리엘은 갑자기 나에게 달려오더니 울먹거리면서 다소 충격적인(?) 말을 던졌다.

저, 저기 이리엘. 나 아직 안 죽었는데요?

열심히 잘 개기고 있는 사람 무안하게 벌써 죽은 사람 취급하면 약간 기운이.......

아니, 나도 정말 대단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잡생각을 하다니.

그나저나 오늘따라 울먹이는 이리엘이 참으로 사랑.......

"......."

그때 난 믿을 수 없는 현상을 겪었다.

분명 엄청난 고통을 당하는 도중에 이리엘에 대한 사심이 가득한 나의 마음.

그 말은 즉, 이리엘 효과가 이 블랙 페리안을 압도한다는 건가?

그리고 어쩌면 내가 이리엘 효과에 넘어가면 블랙 페리안도 어쩌지 못하고 기어 들어갈지도?

나는 그런 생각이 들자, 지금까지 참고 참았던 남자의 본능(?)을 풀어 버렸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이미지 생각한다고 이리엘의 유혹에 참았단 말인가?!

그렇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것이 기회가 되어 버린다.

지금까지 저장해 놓았던 남자의 본능으로 이 블랙 페리안을 무찌르는 것이다.

물론 나중에 사과는 할 것이고. 내가 야수가 되어서 이리엘을 덮치기 전 누군가가 막아 줄 거라는 건 생각한다.

그러므로.......

"으아악!!"

"꺄아아아악!!"

"으아아악!!"

"주인님?!"

"으악!!"

난 그대로 남자의 본능을 풀어 버리고 이리엘을 덮치려고 달려들었다.

"......."

"......."

"......."

"......."

모든 일행들은 말이 없다.

그리고 그 이유는 갑자기 이상해지더니 이리엘을 덮치려고 한 프레젠과 그런 프레젠을 보고 은애가 당황해서 어디선가 프라이팬을 집어 들더니 그대로 프레젠의 머리를 때려 버린 것 때문이다.

물론 참고로 한 가지 말하면 프레젠은 머리에 피를 줄줄 흐린 채 다운된 상태고, 은애는 아무리 이리엘을 구하기 위해서였지만 무식하게 프라이팬을 정통으로 갈겨서 프레젠을 저렇게 만든 지금의 상황에 엄청나게 당황하고 있다.

"......."

아프다.

무지 아프다, 머리가!

분명 야수가 되기 전에는 아프지 않았는데, 야수가 된 이후 아픈 걸 봐서는 누가 내가 변했을 때 머리를 공략한 게 분명하다.

그리고 난 아마도 기절했겠지?

그런데 왜 이리 아픈 걸까?

무슨 강철 프라이팬(정답)에 직격당한 듯한 이 고통.......

웬만한 걸로는 이렇게 못할 텐데.

난 그런 생각과 함께 아픈 머리를 더듬더듬 만졌다.

그런데.......

"꺄아악(?)!"

나도 모르게 만지고 난 이후 소리쳤다.

이, 이게 뭐냐?!

왜 내 머리가 두 배가 된 거냐?

아니, 야수화 한 번 하면 갑자기 머리 크기가 두 배가 되는 건 아닐 테고?!

왜 이리 순간적으로 머리가 커진 거냐!!

난 어느새 엄청 커져 버린 내 머리를 보고 당황했다.

분명 자연적으로 생성된 머리 크기는 아니다.

그렇다면 유력한 이유는 누가 나의 머리를 때려서 그 효과(?)로 머리가 두 배가 되어 버렸다는 거?

아니, 얼마나 세게 때렸으면 이렇게까지.......

"그, 그러니까 미, 미안해."

"......."

한편 그 순간 어느새 은애가 내게 다가와 더듬거리면서 사과하신다.

이쯤 되면 뭐가 어찌 된 상황인지 바보가 아닌 이상 깨우치기 나름이다.

그래서 나도 깨우친다.

이 대갈통을 만든 분은 은애라는 걸.......

"그, 그렇지만 갑자기 니가 이리엘 언니를 막 덮치려니까 너무 당황해서."

"이리엘 효과 때문인지는 알지 않아요, 은애 양?"

"아, 알고는 있는데 그, 그러니까 그냥 갑자기 너무 당황스러워서."

"......."

너무 당황스러워서 내 머리를 두 배로 키워 주셨군.

후후, 너무나도 감사다.

"그런데 평소에는 잘 견디다가 갑자기 이번에는 왜 그런 거야?!"

은애는 내 머리를 심하게 갈긴 것이 미안했는지 얼른 말을 돌렸다.

하지만 난 그런 은애 양이 귀엽기만 하다.

뭐, 은애 양에게 맞아서 이렇게 된 거니 웃어 넘어가 주마.

다른 놈이 이랬다면 그대로 인생 하직했을 텐데 말이다.

그나저나 난 은애의 질문에 꽤나 답변이 길어질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건 은애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도 알아야 하는 것.

내가 왜 갑자기 이리엘 효과에 대응하지 못하고, 아니 안하고 이리엘을 덮치려 했는지 모든 것을 말해야겠다.

"그게 진짜야?!"

"농담이지, 주인?!"

"말도 안 돼요!"

"헉!"

나의 설명을 들은 일행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말도 안 된다.

그래,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된다.

블랙 페리안이 내 몸속에 들어오다니, 이 무슨 웃기지도 않은 상황이냐.

하지만 직접 겪어 본 나로서는 믿기 싫어도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말 플레이지 나이트와 블랙 젠더의 힘이 한 몸에서 공존한다니, 이거 참.

그 순간 은애가 내게 질문했다.

"그럼 이리엘 언니를 덮친 것도?!"

"응, 그때는 그 방법밖에 없었어. 내가 블랙 페리안에게 먹힐 뻔할 때 유일하게 반응하는 게 이리엘 효과였거든."

"......."

"......."

"......."

한편 이런 내 말에 모두 수긍하는 분위기다.

그때 이리엘을 덮치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블랙 페리안에게 몸을 내줄 뻔했으니 오히려 그 행동 자체가 바람직(?)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나저나 정말 이리엘 효과는 기가 막히는구나.

신의 힘까지 이겨 낼 정도라니, 멋지다 못해 감동적이다.

아, 그리고 나도 케찹이와 사렌과 마찬가지로 치료해야 할 환자 목록에 추가되어 버렸다.

즉 그 말은 지금 다섯 번째 히든 클래스를 찾지 못하면 블랙 페리안에게 먹혀서 내 손으로 이 세상 날려 버릴지도.......

"주인님!!"

"......?"

그때 이리엘이 갑작스럽게 단단한 각오가 쓴 말투로 내게 말을 건넸다.

그리고 잠시 후였다.

"주, 주인님을 위해서라면 전 상관없어요!"

"무슨 말?"

"주인님이 그 블랙 페리안에게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저를 덮치시는 거라면 언제든지 더, 덮치세요!"

"......."

"......."

"......."

이리엘이 뭔가 참으로 대단한 말을 하신다.

그런데 다른 일행들의 반응이 뭐라 해야 하나?

미묘하다고 할까?

"알겠죠?!"

"으응. 고, 고마워."

이리엘이 내게 재확인을 하고 난 그 말에 '싫어!'라고 할 수는 없었기에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그럼 덮치겠다는 거네?"

"......."

뭔가 살벌한 말투로 말하는 은애 양.

아니, 잠시 왜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건데!

내가 뭐 아무 이유 없이 덮치겠어?!

정말 완전 심각해지면 차라리 그게 나으니까.

아니, 그것보다 나를 후려친 프라이팬은 왜 꺼내 놓은 거야, 은애 양?

"걱정 마. 뒷일은 내가 처리해 줄 테니까."

싱긋.

그러면서 웃는다.

저 웃음과 프라이팬은 무슨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나?

다시 한 번 내가 야수가 되면 왠지 모르게 내 머리통 크기는 10배로 증폭(?)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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