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9장 요정 카사노바 (81/100)

제9장 요정 카사노바

나는 자주 요정들을 본다.

나처럼 자주 요정 보는 사람도 없을 거라고 확신할 정도다.

그리고 그 이유라 한다면 역시 케찹 사마 때문이다.

요정들의 보스라고 불리는 그분 덕택에 별별 요정들이 내 눈 앞에 나타난다.

하지만 이런 요정까지는 나타날 줄 몰랐다.

"그대의 맑은 눈에 빠지면 어떻게 빠져나오죠?"

"......."

"......."

"......."

온몸의 닭살이 곱빼기로 드는 듯한 대사를 읊는 저 요정!

피엘의 정보를 기다리는 도중에 저분이 갑자기 찾아오더니, 케찹이의 피앙세인 세네라는 요정에게 집적거리는 거다.

물론 난 예상하고 있다. 세네는 절대로 성격 더러운 케찹이밖에 관심이 없다고 말이다.

저런 버터, 마가린 같은 요정에게는 전혀 아무런 반응이 없을 거라고.

하지만.......

"그, 그런......."

"......."

"......."

내 이런 예상과는 다르게 세네는 완전히 당황하면서 얼굴까지 빨개졌다.

충격이었다.

케찹이 일편단심 세네가 저 버터, 마가린 요정한테 무너지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아니, 그리고 무엇보다 감히 케찹이라는 요정님과 관련된 분을 건들다니, 저 버터, 마가린도 엄청나게 미친 요정이라는 게 느껴졌다.

물론 당사자인 케찹이는 담담하게 말했다.

"뭐, 뭐 나랑 상관없지."

"......."

하지만 상관없는 것치고는 심각하게 떨고 있다.

'나 떨고 있니?'라는 대사가 새삼 떠오를 정도로 말이다.

사실 아무리 자신이 싫다고 난리 피우던 세네였지만, 막상 다른 남자에게 저런 반응을 보이니 케찹이 입장 상 정말 뭔가 이상할 테다.

그렇지만 내심 표현을 할 수 없었던 케찹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한다고는 하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나저나 저 버터, 마가린, 아니 카사노바 같은 저 요정, 왠지 흥미로운데?

"역시 사렌 님, 그 미모는......."

한편 난 또 새로운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했다.

절대 일부러 엿보려고 한 건 아니고, 그저 할 짓 없어 열심히 싸돌아다니던 내게 진짜 우연히 발견된 모습이다.

그건 세네에 이어서 사렌에게도 집적거리는 모습이었다.

뭐 여전히 내가 보기에는 버터, 마가린 같은 행동으로 말이다.

어찌 됐든 그렇게 사렌에게 들이대는 그 남자, 하지만 아쉽게도 사렌은 이미 길쉬라는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

물론 세네처럼 살짝 흔들릴 수도 있겠지만, 난 사렌은 아닐 거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사렌은 보통 분이 아니거든?

일단 케찹이라는 절대 불량 요정을 두려움에 떨게 할 정도의 힘을 가진 요정계의 숨겨진 대부다.

간단하게 말하면 공식 석상은 케찹이고, 비공식 석상은 사렌이라는 것이다.

그런 사렌이 저런 버터, 마가린에게 넘어갈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런 내 예상은 적중했다.

"무슨 의도죠?"

날카롭게 그 남자를 향해 한마디 하면서 경계했다.

역시나 보통 여자 요정과는 다른 사렌 양, 손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한편 그런 그녀의 질문에 그 카사노바 요정은 순간적으로 당황하더니 말했다.

"제, 제가 무슨 의도가 있는 걸로 보였나요?!"

"......."

"전 그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제 마음을 말했을 뿐인데......."

엄청 슬픈 얼굴을 한 채 눈물을 한 방울 떨어뜨린다.

헉! 고단수다!

완전 슈퍼 고단수다.

어떻게 저런 생 쇼가 가능하단 말인가?!

저 만화에서나 나올 생 쇼가 지금 내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한편 그런 그 남자의 눈물에 사렌은 순간적으로 당황하더니 말했다.

"오, 오해해서 죄송해요."

뭔가 넘어가는 분위기다.

"아뇨. 이렇게 아름다운 분을 보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제가 잘못인 것이죠."

"......."

너무나도 달콤한 한마디, 남자인 내가 듣기로는 당장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여자가 듣기로는 꽤나 감미로운 듯 보인다.

특히 로맨틱이라고는 벼룩의 간도 없는 길쉬에게는 절대 들을 수 없는 달콤한 대사다.

그렇기에 아무리 보통 내기가 아닌 사렌이라도 뭔가 입질이 온다.

그 카사노바 요정의 행동은 점점 영역을 넓혀 갔다.

심지어는 은애와 연희, 그리고 이리엘에게까지 집적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딴 버터 바른 대화는 연희와 은애는 이미 마스터한 상태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카사노바들이 그딴 대화로 그녀들에게 집적거렸는가?

그렇지만 그녀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고작 요정 따위에 무너질 리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리엘은 남자는 인간이든 요정이든 절대 질색이고 말이다.

그렇게 그녀들에게 힘없이 물러난 요정 한 마리.

한데 문제는 아직 세네와 사렌이 그 남자에게 약간의 호감을 갖고 있다는 거다.

"묻어 버리겠어!"

마요네즈의 두 눈이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감히 저 자식이 누구에게 집적거리는 것이란 말인가?

안 그래도 길쉬라는 별 희한한 잡것 때문에 짜증나 죽겠는데, 저런 자식까지.......

참을 수 없다.

그리고 길쉬와는 다르게 저놈에게는 절대 방어막이 없다는 걸 마요네즈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마요네즈는 그놈을 덮치기(?) 위해서 기다렸다.

그런데.......

"마요네즈 님이시죠?"

"......?!"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자신을 알고 있는 것일까?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다.

한편 그런 마요네즈의 당황하는 모습을 본 그 카사노바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평소에 마요네즈 님을 존경해 왔거든요."

"......."

헤벌쭉.

마요네즈는 존경했다는 말에 그저 입이 쭉 벌어졌다.

방금 전까지 자신이 뭘 하려고 했는지는 완전히 까먹고 말이다.

그뿐 아니라 그 카사노바 요정은 웃으며 말했다.

"이 사진 좀 보시죠,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신가요?"

"......!!"

이제는 사진까지 들이대면서 소개팅을 시켜 주려고 한다. 그것도 수백 장의 여자 요정 사진을 들이대면서 말이다.

이런 착한(?) 요정이 있다니!

마요네즈는 정말 감탄하다 못해 감격했다.

케찹이 따위랑은 비교도 될 수 없는 정도의 성자(자기를 존경하고 소개팅 시켜 줘서)를 오늘 보다니, 정말 기쁜 날이다!

"쟤, 왜 저래?"

난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그 카사노바 요정이 마요네즈를 접수한 광경을 보고 약간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어떤 방법을 썼는지 모르겠는데, 저 난폭한 마요네즈를 저렇게 손쉽게 접수를 하다니.......

저 요정이 온 지는 별로 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엄청난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저 자식이 내 꼬봉까지 건드려?!"

"......."

그때 애써 네니와는 상관없다고 절대로 나서지 않던 케찹이가 이번 기회를 틈타 움직일 기미가 보인다.

그리고 그 이유란 자신의 꼬봉을 건들었다는 것이다.

언제부터 마요네즈가 자기 꼬봉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가 그렇다니 그렇다고 치자.

그나저나 저 요정도 이제 끝인가?

케찹이가 움직인다. 요정들의 보스, 악마의 요정이라고 불리는 케찹이가 말이다.

그 순간 케찹이의 입이 열렸다.

"나 좀 보자, 버터 맨."

"헤헤, 존경합니다요!"

"내가 더 존경해! 임마!"

"뭐, 이 자식이!"

"너 죽을래?"

"씹탱구가!"

"잡탱구 자식이!"

난 분명 케찹이가 저 카사노바 요정을 끌고 갔을 때, 저 요정을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갔다 오자마자 너무나도 존경한다는 케찹이.......

그뿐 아니라 서로 더 존경한다고 마요네즈와 케찹이가 싸우기까지 한다.

사렌과 네니, 그리고 마요네즈와 케찹이까지 모든 요정이 저 요정에게 굴복을?

"죄송해요, 케찹 님!!"

"미안해요, 길쉬 님!!"

그렇지만 그런 나의 염려를 사렌과 네니가 덜어 주었다.

다행이었다. 그녀들이 제정신(?)을 차려서.

이제 그렇다면 남아 있는 건 남자 두 마리(?)!

사렌과 네니도 무난하게 빠져나왔으니 저놈들도.......

"아아악! 난 네가 제일 존경스러워!!"

"내가 제일 존경할 거야, 이 자식아!!"

"이 자식이!"

"어쭈!"

여전히 미쳐 있었다. 아니, 더 심해졌다.

그 카사노바 요정에게 목숨 걸고 있는 두 마리의 남자 요정.......

너희들 그런 취미 없었잖니? 언제부터 게이 요정이......!

아악! 끔찍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게이 요정이라니, 온몸이 냉기가 감돈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못해 깜찍한 위험한 상상이다.

그리고 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 위해 사랑의 파리채를 들었다.

정신 차리라고 말이다.

"정신 차려!!"

난 파리채를 그대로 게이 요정이 되려는 그들을 향해 내려쳤다.

"......."

"......."

난 빈대떡이 되어 있는 케찹이와 마요네즈를 향해 다급하게 물었다.

"괜찮니, 얘들아?"

"......."

"......."

하지만 이런 나의 질문에 그들은 대답이 없었다.

아니, 지금 걱정해서 말하는데 대답이 없다니(대답 없게 만든 장본인).

그래도 다행이다. 게이 요정들이 안 돼서.

다 나의 아름다운 마음 덕택이지.

그나저나 그 카사노바 요정은 왜 갑자기 떠난 거지?

"으윽."

전치 6개월이었다.

케찹이와 마요네즈에게 휩쓸려 맞은 카사노바 요정, 이렇게 난폭한 폭행은 처음이었다.

죽지 않은 게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무, 무서운 인간!"

그는 이처럼 무서운 인간은 처음 봤다.

진짜 옆에 있다가는 언제 목숨이 날아갈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는 여자든 뭐든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그대로 도망쳐 나온 것이다.

그나저나 케찹이와 마요네즈는 정말 대단하다.

남들(요정) 전치 6개월 이상 나오는 걸 그놈들은 단 몇 시간이면 완전 회복하니, 트롤의 왕이라고 부르는 분도 당해 내지 못할 회복력이다.

0